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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추억 미래의 혁명>은 과거의 혁명에 대한 성과와 한계에 대해 짤막 짤막하게 정리가 잘 되어 있었고 앞으로 진보적 관점에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자 하는 필자의 성실함과 사색이 느껴지는 책이다. 꽤 두꺼운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함 없이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군더더기 없는 필체와명확한 어조 때문이었고, 혁명의 중요한 갈피갈피를 거시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읽는 순간순간 내용이 딱딱 눈에 들어오게 정리가 잘 되어 있었다.
현 시점을 분석하는 부분에서는 현 사회의 근본 문제를 파악하는 데 있어서 '주주자본주의'를 중심으로 분석하고 있는 그 관점이 나의 것과 같아서 왠지 모를 흡족함도 느껴졌다.
대안의 측면이 좀 약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필자도 강조한 것 처럼 대안은 필자 혼자 만들 수 도 없고 모두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에 대안이 약하다고 타박할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도 대안을 중심으로 많이 사색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책들이 많이 출판 됐으면 좋겠다. 비록 글을 잘 쓰지 못하고 내공이 없긴 하지만, 적어도 이런 책들에게는 기꺼이 돈을 지불 하고읽으면서 함께 고민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책들이 많이 출판 되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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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쓰는 한국 현대사'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아마, 이 책을 짚어 든 여러 이유 중의 하나는 '다쓰현'의 추억 때문일 것이다. 그 추억은 단지 종이로 된 책에 대한 추억이 아니라, 열정에 대한 추억이다. 지금 나는 아직도 그 열정 속에서 살고 있는가? 아니 그것은 열정이었나?
책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혁명사에 대한 성찰과 현재 진행되고 있는 혁명에 대한 실천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 두 부분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냥 물리적으로 붙여 놓았다는 느낌이 강하다. 이것은 능력의 문제라기 보다는 지면과 친절함의 문제라고 본다. 그래서, 앞 부분은 단지 역사를 개관한 정도에 그치고 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뒷 부분이다. 핵심은 '공유와 협력'이다. 누가? 우리가. 자본가만이 노동자만이 소수자만이 공유하고 협력하는 것이 아니다. 그 경계를 넘어선 우리가 공유하고 협력하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앞 부분의 혁명사를 이해한다면, 결국 앞 부분은 어떤 혁명이든 위로 부터 아래로 강제된다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배치 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점에서 저자는 사민주의가 결국 국가주의에 포획되었다고 지속적으로 비판한다.
저자는 현대 자본주의의 특징인 주주자본주의를 맹렬히 비판한다. 이는 그 주주가 자산가이든 평범한 사람이든 자본의 기획안에서 이기심을 채우기 때문이다. 즉, 사회 공공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저자는 포드주의 대량생산 체제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의 지식 사회로 넘어가면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맑스가 얘기하는 생산수단의 탈취는 지금은 유효하지 않다.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가 중요한 시대다.
저자는 대안으로 다양한 사회운동의 네트워크와 지역 공동체를 제시하고 있다. 네이들 단위에는 당연히 기업도 포함된다. 이를 통해 위에서 얘기한 주주자본주의의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고 본다. 또 대의 민주주의를 통한 소수 독점 지배도 깰 수있다고 한다.
자본을 공산주의자들처럼 배제의 대상으로 보거나 자본주의자들처럼 숭배의 대상으로 보든, 두 관점을 모두 비판하는 저자의 생각이 인상깊다. 저자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말한다.
700쪽여쪽이지만, 주제가 주제인지라 지면이 많이 부족했다. 좋은 점은 일관된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아쉬웠던 점은 워낙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 많은 부분이 선언 수준에 그쳤다는 점이고, 기존의 생각들을 정리하는 수준에 그쳤다는 점이다. 물론, 이 책도 수 많은 네트워크의 한 부분이라고 이해한다면, 책에 대한 이해심은 조금 더 깊어질 수 있다.
많은 책이 공유와 협력을 얘기한다. 많은 시도가 있었고 또 많은 실패가 있었다. 오히려 한국 사회는 점점 더 보수화 되고 있다. 보수화를 넘어 권위주의로 가고 있다. 기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기자를 한 밤중에 잡아가고 약혼자까지 감시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어떤 빛을 바라보고 걸어가야 할 것인가? 다시 20여년 전처럼 거리로 나서고, 다양성이고 뭐고 눈 앞의 적을 무찌르는 데 전념해야 하는가? 그럼, 우리 안의 적은 다시 수십년간 묻어 둬야 하는가?
책이 성찰의 도구라면 이 책은 그 값을 충분히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