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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年 3月 31日~4月 6日 朝鮮日報에 寄稿한 글이다. 創造 孕胎 余를 主人公으로 삼고 여기 쓰려 하는 바는 余가 文筆에 從事하기 비롯한 1918年부터 오늘날까지의 文壇의 裏面史인 同時에 또한 朝鮮 文化事의 裏面의 一段이라 할 수도 있다. 題目은 余를 主人公으로 한 文壇의 變遷史라 하였지만 또 勿論 余의 自敍傳이 아니다라 하였지만 또한 純全히 文壇의 變遷史뿐도 아니다. 文藝 愛好家들이 많은 好奇心을 가지고 알고자 하는 바인 文人들의 往來며 그 葛藤이며 또한 1918年(1918年이라는 해는 己未事件 前의 해로서 그때부 터 只今까지라 하면 卽 '前期' 부터 '後期' 라 하는 特殊한 時期를 말함 이다.)부터 오늘날까지의 一部 靑年들의 往來며 朝鮮의 文化를 말하는 新聞 雜誌의 出生의 裏面史 等을 아울러 말하려 하는 것이다. 시골 구석에서 小說이나 쓰고 放蕩한 遊興이나 하여 그 前生을 보낸 余로서는 勿論 見文도 不足하고 拙筆인 험도 없지 않으나, 余가 본 限界에서는 아직껏 1918年부터 오늘까지의 變遷史를 쓴 사람이 없었으므로, 拙筆임을 탓하지 않고 부끄러움을 탓하지 않고 이에 붓을 잡기로 한 것이다. 余의 從事하는 業이 文筆이매 다른 일의 變遷에 對하여는 直接으로는 아는 바도 없고 따라서 쓸 수도 없지만 文化事業 中의 가장 貴한 한 가지인 文藝의 變遷史를 쓰노라면 自然히 間接으로 다른 데도 言及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아래 쓰는 바에 한 가지 미리 말씀하여 물 것은 어떠한 사람에게 對하여서는 假名을 使用한다 하는 點이다. 그 本名으로 쓸지라도 그것을 忌憚치 않는 사람에게 對하여는 本名을 쓰기를 꺼리지 않으나 어떤 人事 中에는 名譽上 아무 關系도 없는 일에도 本名이 發表되는 것을 꺼리는 이가 있으니까 그런 이에게 對하여는 不得不 假名으로써 彌縫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이 아래 쓰는 것은 무슨 正確한 文獻에 依支하는 것도 아니요, 또는 이 사람 저 사람의 意見이며 이야기를 듣고 쓰는 것도 아니요, 全然 余의 記憶에 依支하여서뿐 쓰는 것이며 萬若 事實과 틀리는 點이 있으면 容恕하여 주심을 바라며, 좀더 好意가 계신 분은 그 틀린 點을 余에게 一筆로 通知하여 주시면 甚幸이겠다. 金東仁(1900年~1951年)은 小說家. 號는 琴童ㆍ春士. 1919年에 우리나라 最初의 純粹 文藝 同人誌 ≪創造≫를 發刊하였고, 事實主義的 手法과 文章의 革新을 보여 주었다. 作品에 短篇 <弱한 者의 슬픔>, <배따라기>, <감자>, 長篇 <雲峴宮의 봄> 等이 있고 親日反民族行爲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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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年 3月 31日~4月 6日 朝鮮日報에 寄稿한 글이다. 創造 孕胎 余를 主人公으로 삼고 여기 쓰려 하는 바는 余가 文筆에 從事하기 비롯한 1918年부터 오늘날까지의 文壇의 裏面史인 同時에 또한 朝鮮 文化事의 裏面의 一段이라 할 수도 있다. 題目은 余를 主人公으로 한 文壇의 變遷史라 하였지만 또 勿論 余의 自敍傳이 아니다라 하였지만 또한 純全히 文壇의 變遷史뿐도 아니다. 文藝 愛好家들이 많은 好奇心을 가지고 알고자 하는 바인 文人들의 往來며 그 葛藤이며 또한 1918年(1918年이라는 해는 己未事件 前의 해로서 그때부 터 只今까지라 하면 卽 '前期' 부터 '後期' 라 하는 特殊한 時期를 말함 이다.)부터 오늘날까지의 一部 靑年들의 往來며 朝鮮의 文化를 말하는 新聞 雜誌의 出生의 裏面史 等을 아울러 말하려 하는 것이다. 시골 구석에서 小說이나 쓰고 放蕩한 遊興이나 하여 그 前生을 보낸 余로서는 勿論 見文도 不足하고 拙筆인 험도 없지 않으나, 余가 본 限界에서는 아직껏 1918年부터 오늘까지의 變遷史를 쓴 사람이 없었으므로, 拙筆임을 탓하지 않고 부끄러움을 탓하지 않고 이에 붓을 잡기로 한 것이다. 余의 從事하는 業이 文筆이매 다른 일의 變遷에 對하여는 直接으로는 아는 바도 없고 따라서 쓸 수도 없지만 文化事業 中의 가장 貴한 한 가지인 文藝의 變遷史를 쓰노라면 自然히 間接으로 다른 데도 言及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아래 쓰는 바에 한 가지 미리 말씀하여 물 것은 어떠한 사람에게 對하여서는 假名을 使用한다 하는 點이다. 그 本名으로 쓸지라도 그것을 忌憚치 않는 사람에게 對하여는 本名을 쓰기를 꺼리지 않으나 어떤 人事 中에는 名譽上 아무 關系도 없는 일에도 本名이 發表되는 것을 꺼리는 이가 있으니까 그런 이에게 對하여는 不得不 假名으로써 彌縫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이 아래 쓰는 것은 무슨 正確한 文獻에 依支하는 것도 아니요, 또는 이 사람 저 사람의 意見이며 이야기를 듣고 쓰는 것도 아니요, 全然 余의 記憶에 依支하여서뿐 쓰는 것이며 萬若 事實과 틀리는 點이 있으면 容恕하여 주심을 바라며, 좀더 好意가 계신 분은 그 틀린 點을 余에게 一筆로 通知하여 주시면 甚幸이겠다. 金東仁(1900年~1951年)은 小說家. 號는 琴童ㆍ春士. 1919年에 우리나라 最初의 純粹 文藝 同人誌 ≪創造≫를 發刊하였고, 事實主義的 手法과 文章의 革新을 보여 주었다. 作品에 短篇 <弱한 者의 슬픔>, <배따라기>, <감자>, 長篇 <雲峴宮의 봄> 等이 있고 親日反民族行爲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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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의 예술 출판사에서 출간된 '김동인' 저자의 '문단 십오년 이면사' 작품 리뷰입니다. 1000원 쿠폰으로 구매할 수 있어 좋네요 간단하고 짧은 단편이라 금방 읽었습니다. 한국 근대문학을 이해하기 쉽게 현대말로 풀어써주셔서 읽기 쉬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