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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장편의 처절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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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미음 맛이 난다. 내게 느껴지는 맛은 기억 속 차갑고도 쓰다. 그럼에도 내가 세상을 당당히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께 듣고 자랐던 도덕원칙과 세상이 이리 차가울지 몰랐던 무지 덕이다. 그 결과물은 '무모함'이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모든 일에 가능성이란 없었고, 나는 무능력했고, 세상은 빈틈이 없었다. 지금의 나라면 다시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이 세상은
"위대한 장편의 처절한 시작" 내용보기
책에서 미음 맛이 난다. 내게 느껴지는 맛은 기억 속 차갑고도 쓰다. 그럼에도 내가 세상을 당당히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께 듣고 자랐던 도덕원칙과 세상이 이리 차가울지 몰랐던 무지 덕이다. 그 결과물은 '무모함'이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모든 일에 가능성이란 없었고, 나는 무능력했고, 세상은 빈틈이 없었다. 지금의 나라면 다시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이 세상은 혹시 거대벌레와 같은 커다란 위협을 그나마 아름답게 가려 놓은 상태일 뿐인 것은 아닐까. 소렌은 어떤 아이일까. 모든 공포가 밝혀지고 어둠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어떻게 눈빛을 잃지 않을 수 있었을까. 이런 아이라면 다시 과거로 되돌아 간다 해도 같은 선택을 하리라 답할지 모른다. 비록 어찌 보면 세파에 휩쓸렸을 뿐이라고 하더라도.. 작가의 필력에 휩쓸려 나까지 침울해질 정도로 딱히 행복할 일 없는 소설 속 분위기에서 그나마 불을 밝히는 것은 소렌의 당찬 행보다. 딱히 뭔가를 잘해서라기 보다는 살고자 하는 의지적 존재에 대한 기특함이다. 하찮은 것 치고는 살기 위해 자신만의 기행을 부릴 수 있다는 기특함이다.  흙바닥에서나, 돌바닥을 들추었을 때 개미를 가까이서 보고 신비로움을 느낀 적이 있는가? 하찮게 밟고 지나기 전 이것들도 나름의 기행으로 삶을 살고 있다. 개미가 땅을 파 집을 짓고 사회를 이루는 것, 씨앗이 자라 변모를 거쳐 꽃을 피우고 다시 열매를 맺는 것, 갓난아기가 제 발로 걷고 의욕을 내며 사회 속에서 자신만의 경쟁을 하며 일원이 되고 가정을 일구고 늙어가는 것. 이 소설의 절망적인 배경 속에서 하찮으면서도 신비한, 처절하면서도 가까이서 보면 위대한 그런 기특함이다.
이 책의 목차를 펼쳤을 땐 약간 당황스러웠다. 벌레들의 외침을 적어 놓은 것일까. 이 소설이 평범하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SF라는 말이 나에게는 영화나 코믹스 등으로 인해 선입견이 생긴 것 같다. 과학은 첨단이고 액션은 화려하고 하늘과 우주를 날아다닌다는 인상이 강하다.  아쉽게도 이 소설은 정 반대이다. 동력은 인력으로 퇴보했고 액션은 지하에서 기어다니면서 처절하다. 오히려 신선한 충격이었다. 시대상으로는 오히려 현대와 같이 암울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마치 작가는 계속 시사점을 던지는 듯한 문구들이 있어 곱씹게 한다. 고아가 당연한 세상을 그린 작가가 외롭게 느껴질 지경이다. 이게 아마 그 미음의 맛이었을까.  내 기대로는 이 책은 소렌의 첫걸음에 지나지 않는다. 더 지옥 같고 더 처절한 앞으로가 기대된다. 더 빛날 라라벤과 창끝이. #내돈내산
m*******7 2024.08.04. 신고 공감 13 댓글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