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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늘 중얼거렸다.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어. 가능하다면 빨리. 가족들의 품에서 벗어나야만 해...” 그 친구에게 가족은 어쩜 반쪽짜리 행복이었을지 모르겠다. 부모의 이혼과 새엄마의 아이들. 귀엽고 사랑스러운 동생임에는 분명하지만, 그 친구에게 가족이라는 것은 늘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랬는지 그 친구는 가장 먼저 가정을 꾸렸고, 친정에서 멀리 신접살림을 꾸렸다. 따스한 정과 웃음이 피어날 것 같은 가족이라는 테두리는 어쩜 우리가 만들어낸 허상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돌이켜보면 사춘기 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가족이 없는 나만의 공간을 꿈꾸게 되고, 가족이 없는 혼자의 시간을 꿈꾸게 된다. 가족이란 존재가 한없이 버겁게 느껴지고 짐처럼 느껴진 적이 있다면 나에게 “돌”이 날아올까?
열아홉의 나이지만 외모는 열다섯 처럼 보이는 나. 학교를 자퇴하고 여행을 떠난다. 나에게는 여행이지만 다른 사람 눈에는 가출처럼 보이는 외출... 여행길에서 나는 돈도 잃어버리고, 무차별적인(?) 친절을 베풀려고 하는 사람들로 인해 불편해지기도 한다. 심지어 수상한 사람으로 몰리는 수모도 겪는다. 하지만 길 위에서 나는 차마 하지 못했던 마음 속 깊은 내면과 만나게 되고 그 상처를 조금씩 치유하게 된다. 나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고, 어떤 아픔이 있었고, 어떻게 치유하게 되는 것일까? 한 소년의 여정을 따라 내 마음 깊은 곳의 아픔을 들여다보고 치유해 보는 것은 어떨까?
사춘기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비련의 주인공인양 내 자신을 아프게 만들고, 아픈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상황을 만든 것과 실제로 아픈 것은 많이 다르다. 아직 여리기 만한 소년의 마음은 상처 입을 대로 입었고, 누구도 그 상처를 함께 치유하지 않는다. 각자 자신의 상처만이 최고의 아픔이 되고, 누가 더 심하게 망가지는지 내기라도 하듯 서로의 상처에 무심하기만 하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부서져 버린 지 오래다. 이렇게 암울하고 아픈 소설이 있을까? 결코 어렵지 않는 글이고, 결코 어렵게 읽히는 글이 아니다. 술술 읽히는 글 속에서 자꾸만 생각하게 한다. 여기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여기서 이렇게 대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작 열아홉이라는 나이에 소년이 겪게 된 현실은 지극히 암담하고 아프다.
놓칠 수 없는 기회. 그런 건 없다. 어떤 엄청난 기회가 인생의 문턱에 찾아왔다고 해도 우리는 한참이 시간이 흘러서야 비로소 그것이 기회였음을 깨닫는다. 기회라는 건 분석된 결과에 지나지 않으니까. (중략) 기회라고 생각했던 순간이 진짜 인지 가짜인지는 모든 것이 끝난 뒤에나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돌이켜 보니 그때 그것이 기회였지.. 하고 (62)
소년에게도 기회가 왔을까? 암담한 자신의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 하지만 그런 기회는 없었다. 축축하고 눅눅한 세균들이 떨어져 나가지 않는 눅진함이 온몸에 달라붙어 기분조차 우울하게 만드는 현실에서 소년은 무슨 희망으로 살아갔을까? 엄마의 죽음이 소년과 형의 인생을 매몰차게 갈라놓았다. 형은 자신의 인생을 망치는 방법으로, 소년은 공부를 더 악착같이 하는 방법으로... 하지만 소년은 학교라는 공간에서 힘들어한다. 일말의 아픔이나 상처를 사유할 시간 없이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로봇이 되어가는 그곳에서 소년은 고통을 치유할 수 없었다. 여행을 떠나는 소년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처음에는 목적지 없는 여행이 가출과 다를 바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소년의 여행은 결코 기분으로 떠나는 여행이 아니었다.
“비가 내리고 있구나.” “그래요 지겹게 오고 있어요.” “그칠 것 같지 않네요.” “곧 그칠 거야.” “그치지 않는 비는 없으니까.” (249) 소년은 그곳 어머니의 고향에서 그간의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다. 이제 이 세상에 남은 사람이라곤 아버지와 소년뿐. 소년은 용서를 받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어머니와 형에게. 그렇게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나서야 살아갈 힘이 생겼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인생은 결국 혼자인 것 인가보다. 곁에서 아무리 따스하게 말해주고, 그 상처를 보듬어 주려고 해도 당사자인 본인의 마음이 어두운 동굴 속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잔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너는 떠들어라, 나는 혼자가 좋다. 이렇게 나만의 심연 속으로 똬리를 틀게 마련이다. 결국 상처에서 벗어나고, 인생 본연의 궤도 안으로 입성하려면 아플 만큼 아파야 하는 것은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바라보는 것은 쉽지 않다. 더구나 자연스럽게 죽음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사고사의 경우는 남은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상처가 되는 것 같다. 하지만 남아 있는 사람들은 또 그렇게 살아야 한다. 커다란 슬픔 속에서 빠져 나와 인생 궤도에 무사히 입성하는 것. 그것도 내 인생의 한 페이지라는 것, 살면서 한바탕의 소나기는 피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결국 그 비는 그칠 수밖에 없다는 것. 그것을 기억하고 싶다. 햇살 좋은 따스함만 가득한 인생은 이 세상엔 없다. 슬프지만 대 놓고 울지 않게 만든 작가의 솜씨가 참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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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도서를 읽다 보면 다 내 자식 같고 내가 부모 같은 생각이 든다. 혹시나 우리 아이가 하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제발 아무 일 없기를 바라면서 읽게 되고 안 좋은 일에는 가슴 조리며 읽어지고 기쁜 일은 같이 기쁨을 나누게 되는 것 같다.
『그치지 않는 비 』는 제 3회 문학동네 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그래서 더 관심이 가는 책이다. 저자는 오문세이다.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이 책을 써서 상을 탔다니 더 관심이 가는 건 사실이다. 문학동네 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을 아직 하나도 읽어보지 않아서 더욱 읽어야겠다는 생각도 든 건 사실이다.
주인공은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매일 술을 드신다 던지 주인공에게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에 학교를 그만두었다. 형 또한 자주 집을 비우지만, 형과 함께 집을 나와 여행을 하게 된다. 아버지가 모아놓은 돈 절반을 가지고 말이다.
무작정 떠난 여행, 주인공은 여행을 다니면서 내내 형과 대화를 한다. 아마 이렇게 하면서 무엇인가를 푸는 것 같다. 항상 형이 주인공 옆에 있다. 집을 나와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에서 첫날부터 돈을 조금 잃어버렸다. 그리고 노숙을 하고 아침에 노숙자를 만나 같이 밥을 주는 곳에서 얻어먹게 된다. 거기서 만나는 목사님이 친절하게 명함을 주셨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을 만난다. 길에서 만난 노래를 하는 의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햄버거 가계에서 만난 할머니, 할머니는 남쪽으로 가신다는 말씀을 하시고 햄버거를 얻어먹고 우산을 주고 떠났다. 잠잘 곳이 없어서 목사님에게 찾아가 하룻밤을 자고 목사님이 가출한 줄 알고 청소년 보호센터도 가기도 한다. 그렇지만 주인공은 가출을 하지 않았기에 거기서 말을 잘하고 나온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학생 같은 남자아이가 혼자 가방을 큰 거 가지고 다닌다면 누구든지 사고를 쳐서 나왔거나 가출했다는 생각을 일반적으로 하는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사람들이 모두 그런 생각을 당연하게 한다고 느꼈다. 왜? 그렇게만 느끼게 되었나? 혼자만의 정말로 여행일수도 있는데 말이다. 우리나라 현실이 그런 걸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만나는 초등학교 같은 반 19번 친구, 그 친구와의 대화에서 주인공은 마음을 조금은 안정을 찾아 간다. 19번 친구도 아픈 과거가 있었다. 그렇기에 둘이 그 아픔을 대화로서 서로 이해하고 푸는 과정이 너무나 좋았다. 주인공이 빨리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겼다. 비는 하염없이 계속 내린다. 그리고 기차를 타고 가는 그곳이 있다. 거기는 태어나서 딱 두 번 가본 곳이다. 혼자가 아닌 아버지하고 말이다. 가족이 4명인데 왜? 그곳을 두 번 간 걸까? 여기서 반전이 일어난다. 그 반전이 참 가슴 아프다.
“너에게는 무너지지 않아야 할 이유가 있어. 멈춰 서기 전까지는 걸어야 하는 거야. 멈추지도 않고 걷지도 않을 수는 없어. 그러니까 기억해 내. 어머니가 너에게 머라고 했어?” p199 형에게 미안한 일이다. 주인공에게 힘을 내라는 형의 말이다. 그런데 반전을 알게 된다면 이 말은 누가 누구에게 한 건지 알게 될 것이다. 기억은 지워지는 게 아니다. 그냥 끊임없이 만드는 것이다. 만들고 또 만들고. 그러는 동안에도 만들어진 기억은 또 거기에 있다. 그것들은 늘 나의 곁에 자리 잡고 있다. 나는 이제 그 사실을 조금씩, 그렇지만 확실하게 마음속으로 들이는 중이었다. p241 기차에서 만난 아픈 여자가 이야기하는 것을 듣다가 주인공을 생각한다. 자기의 기억 속의 일들을 인정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여행을 하면서 점점 그것을 치유해 나간다. 그리고 그 반전에서 형이 왜? 여행을 갈 때마다 같이 다녔는지 이야기 한다. 형은 엄마가 돌아가시는 날 옆에 있지 못했다. 그런데 주인공은 옆에서 엄마가 괜찮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형에게 아무런 기억이 없다고 이야기를 해주지 않는다. 형은 이 일로 무척이나 마음 아파했던 것이다. 주인공은 그 사실을 이야기 하지 않아서 너무 후회한다.
그리고 기차에서 내려 걸어가면서 아버지를 생각한다. 아직도 비가 내린다. 거기서 공중전화박스가 나오고 아버지에게 전화를 건다. 그런데 아버지가 말씀하시길 “비가 내리고 있구나!” 아마 이 말이 주인공에게는 얼마나 다행으로 들리는지 모른다. 아주 많이 내렸다고 이야기 하니 금방 그칠 거라고 하신다. “그치지 않는 비는 없으니까.” p249 인생을 살면서 안 좋은 일들도 다 지나간다. 언젠가는 나의 삶에도 비가 그칠 것이다.
그리고 엄마 산소에서 잠시 잠이 들었다가 밤에 깨어나 형에게 이야기를 한다. “별이야 형.”
주인공은 여행을 하면서 참 많은 사람을 만났다. 집을 나오기 전에도 말도 못하고 그랬는데 여행을 하면서 용기를 내어 말도 걸어보고 다른 사람에게 관심도 가져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기의 아픔도 치유해가게 된다. 가족의 소중함을 잃었기에 여행에서 그 소중함을 다시 찾게 되는 것 같다. 가족이란 옆에 잇거나 없거나 다 소중한 것이다. 항상 우리의 가슴속에 기억하고 있는 게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주인공이 집으로 잘 돌아가서 멋진 인생을 펼치리라 생각이 든다. 이제는 후회라는 거 하지 말고 용기 있는 살아가는 주인공을 상상해 본다. 내가 멋진 글의 리뷰를 표현 능력이 부족해서 이렇게 밖에 쓰지 못하는 거 너무 아쉽다. 아마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고 많이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주변의 사람들이 소중하다는 것을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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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치지 않는 비》는 제3회 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밑도 끝도 없이 시작된 ‘여행 가자’로 시작하여, 주인공이 여행을 마치는 순간까지, 주인공의 머리 위에는 주구장창 비가 내린다. 그것도 미친놈처럼.
열 아홉의 나이에 내린 비는 '불행'이라는 이름으로 내렸다. 수염조차 나지 않은 곱상한 얼굴을 하고 나지도 않은 수염을 위해 형의 면도기를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니는 주인공 '나'에게 드리운 아버지,어머니, 형의 조각들을 하나씩 맞추어 가듯, 주인공과 함께 하는 여행에는 삶의 조각들이 상징처럼 뿌려져있다.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공부와 열정, 패기라는 것을 일찌감치 안드로메다에 보내버린 '나'는 자퇴생이다. 여행으로 인해 처음 마주하는 사회를 ' 괴물들이 돌아다니는 터프한 ' 거리라고 표현할 정도로 생소함과 두려움을 느끼는 주인공. 아닌게 아니라 주인공이 만나는 사람들 하나같이 무언가 하나 부족한, 자신과 다를 것이 없는 '결핍' 의 사람들이다. 어머니의 죽음이후, 드리워진 불행의 그림자로 인해 세상에서 '혼자만의 결핍'이라 느꼈던 '나'의 감정은 이후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의 아픔이자 삶의 본질로 시야를 넓혀간다. 그것은 공원의 노숙자에게서, 전직의사였지만 노래도 못하면서 가수라 자칭하고 다니는 아저씨에게서, 산타클로스를 닮아 미세스 산타클로스라 부르는 할머니나 지하철 역앞 광대에게서나 , 초등학교 때 책상에 금을 그어 놓고 치열하게 자리다툼을 벌였던 동창 19번과의 만남에서도 시한부 선고를 받고 절망에 빠져 있던 스무 살의 여자에게서, 마치 하나의 고비를 넘길 때마다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삶의 아이템을 하나씩 득템하게 되는 것처럼, 이들에게서 비를 피할 수 있는 우산과 용기를 얻는다. 물론 이 우산과 용기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삶의 무게가 배분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서 얻게 되는 아이템이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마다 나타나서 한마디씩 하는 '형'의 존재는 '나'를 따라다니며 조언도 해주고 대화도 하지만,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 형은 이 소설에서 주인공' 나'가 여행을 떠난 결정적 모티브이다.
인생을 종종 여행에 비유하곤 한다. 인생이라는 길을 걷다보면 햇볕 쨍쨍한 날이 있는가 하면 비가 내리기도 하는 날도 있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도 있다. 열아홉이라는 나이에는 인생이라는 길에 몰아치는 변수에 대해 무방비한 나이다. 비가 오는 대로 맞을 수 밖에 없는 나이에 내리는 비는 세상의 끝과 마주할 것과 같은 절망을 심어주지만, 인생이라는 길에는 '비'를 맞지 않고서는 '맑음'을 만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일생에 한번은 주인공 ‘나’ 처럼 미친놈의 얼굴을 한 비를 만나게 되어 있다. 열 아홉의 나이에 내린 비로 여행을 시작한 '나'와 동참하는 시간동안, 기억속의 상처를 헤집고 아픔과 마주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괜찮아'하며 어깨를 다독여 주고 싶었다. 이 비가 그치면 반드시 맑고 깨끗한 날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성장하기 위해서 비는 , 꼭 맞아야 하니까...
그치지 않는 비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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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형’과 함께 여행을 떠났다. 소년에겐 ‘여행’이었으나 아직 ‘소년’이었기에 시선에 따라 가출로 보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어른을 스무 살부터라고 친다면 스무 살이 되려면 얼마 남지 않은 열아홉 살이니 ‘동안’만 아니었어도 가출로 보지 않았을 수도 있었지만 말이다. 소년은 제3회 문학동네 청소년문학상 대상작인 오문세의 장편소설『그치지 않는 비』의 ‘나’이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소설가에 대해 언젠가는 한국어로 씌어진 『호밀밭의 파수꾼』의 저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아직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지 못해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다. 떠남은 고생이지만 떠나기만 하면 뭐든 얻는 게 있다는 조금은 뻔한 설정임에도 어느새 빠져 읽고 있는 ‘나’를 만나게 된 소설이었다. ‘그 시절’을 지나온 지 한참 되었음에도. 나는 여전히 ‘그 시절’에 머물러 있는 것일까? ‘그 시절’ 집을 나가고 싶다는, 그야말로 가출을 생각한 적이 있다. 딱히 갈 데도 없고 돈도 없어 실행할 순 없었지만. ‘그 시절’을 한참 지나왔고 ‘가출’이란 단어가 어색한 나이가 되었지만 가끔은 가출을 생각한다. 여행이 아니고 가출인 이유는 여행은 기다려주든 그렇지 않든 돌아온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고, 가출은 나를 걱정하며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가출은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어야 돌아올 수 있다. 길을 걷는 사람이라면 언제든지 비가 올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어야 해요.(100쪽) 너에겐 무너지지 않아야 할 이유가 있어. 멈춰 서기 전까지는 걸어야 하는 거야. 멈추지도 않고 걷지도 않을 수는 없어.(199쪽) 여행을 하다 뜻하지 않게 고생을 해도 이것도 다 추억이야, 하며 웃어넘길 수 있다. 마음 한구석은 하늘이 무너질 것처럼 아득할지라도. 인생의 길을 걸을 때 비가 오면 왜 그렇게 겁이 나는지. ‘그치지 않는 비’는 없다는 건 거짓말처럼 여겨진다. 책을 읽고 밑줄을 쳤는데 나중에 보니 뒷표지와 띠지 뒤쪽에 나온 문장과 겹쳤다. 위 문장과 같은 말을 듣기보단 해주어야 할 나이임에도 내 마음은 이런 말을 듣고 싶었던 모양이다. ‘나’는 형과 짧은 여행을 하며 ‘겸손한 예술가’를 만나고, ‘미세스 산타클로스’를 만나고, ‘케세라세라’를 만나고 ‘우울한 광대’에게 ‘오늘도 좋은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라는 풍선을 받고, ‘19번’을 만나고 ‘대장’을 만나며 핸디캡은 누구나 있다는 것, 그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그들을 만나며 ‘조금은 이 세계를 좋아해도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과정을 통해 아버지와의 ‘재회’의 가능성이 생겼고 형과의 ‘이별’이 가능해졌다. ‘나’가 여행을 떠난 것은 잘한 일이었다. 떠나지 않으면 몰랐던 세상을 만나게 되었기에. 떠나지 않았다면 ‘그저 그런 공간’만 알았을 것이고 ‘그저 그런 인생’만 있는 줄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우린 떠나야 하는지도 모른다. 돌아온 세상이 그다지 많이 달라져 있지 않고 살아갈 세상은 여전히 안갯속이라 할지라도. 대장의 말처럼 그래도 그게 인생이므로.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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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비, 라는 에피소드를 읽은 기억이 났다. 유리가면이라는 만화책을 읽다가 주인공 마야가 일인극을 준비하면서 일상생활의 모습을 보여주는 내용이었는데 말 그대로 평범하지만 평화로운 가정에 한바탕 위기감처럼 한차례의 비가 내리지만 그것은 곧 지나가는 비여서 금세 그치고 밝은 일상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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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나니, 재미있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강요하고, 또 가르치려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그 때 그렇게 말해주지 않았을까. 나는 왜 그 때 스스로 판단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기댔을까. 그리고, 탓했을까.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서 낫는다고 작가는 후기에서 말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그 상처를 덮고 있었던 것들을 걷어내면 여전히 아프다. 시간은 단지, 상처를 덮을 뿐 낫게 하지 못하는 것 같다. 19번과의 데이트 장면은 작가가 평범한 청소년 로맨스도 잘 쓸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재미있었다. 케세라케라와 헤어지는 장면은 클리셰를 깨려는 의도적인 모습처럼 읽었는데, 읽고 나니 책을 관통하는 주제의식과 닿아 있는 부분 같았다. 누군가에게 꼭 귀기울여야하는거냐고. 그는 나에게 묻고 있다. 사실 등에 지고 있는 것들이 있는 사람들에게, 저 말은 배부른 소리 같다. 책임을 져야한다는 부담감은 안정성이라는 강박감을 준다. 우습게도, 그러한 강박감은 일탈을 동경하게 만들기도 한다. 마치 한여름밤의 꿈처럼. 물론, 일탈을 꿈 속에 고정시키는 것에 익숙해지면서 삶에서는 더더욱 안정을 추구하게 되고. 그래. 살아야 한다. 아니, 죽어도 좋을까. 아냐, 살아야 해. 왜. why. 어른들은 대답하는 걸 싫어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질문하는 걸 좋아한다. 극히 일부의 아이들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대답하는 법을 익힌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무언가를 스스로 시작할 시간에 공부할당량을 채워야 하는 기계가 된다. 일부는 프로젝트의 성공자 대열에 들어가지만, 더 많은 숫자가 비성공자(라 쓰고 실패자라 읽는다)들이 된다. 그들 중 일부는 조금이라도 성공자 대열에 가까워지기위해 스스로 프로젝트에 더 매달리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의 삶은 죽기 직전까지 프로젝트의 연속이다. 그리고 죽겠지. 아이들을 가르친다. 솔직하게 대답하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부끄럽다는 생각 이전에 아이들의 공부할당량을 조금이라도 채워주어야 했기 때문이라는 핑계가 더 두껍다. 실패자들을 많이 봤다. 지금도, 부끄럽지는 않다. 그것도 나였다. 부끄럽다는 생각으로 그 순간의 나를 지울 수 는 없다. 지금 이 순간이 나를 지울 수 없는 것처럼. 혼자 걷는다. 누군가의 간접 경험 없이, 막막한 길을 걷는다. 걷는다. 나는 걷고 있다. 내일은 어떻게 될까.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걷고 있다는 것이다. ... 걷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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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진 작가의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가 생각났다.
가출은 가출이되, 비행이 아닌 여행을 하는 주인공.. 길은 나섰으나 계획된 일정이 있는 것이 아니기에 한 발 한 발 내딛기가 조금은 머뭇거려지던 주인공의 여행은.. 바다가 보이는 산 꼭대기에서 끝이 났다. 그리고 또 다른 여행이 시작되었다.
처음부터 이상했다. 분명 형과 대화하고 있는데도, 왠지 혼잣말하는 것 같은 느낌에 설마~ 혹시?? 그랬다. 완전한(??) 이별을 할 때까지 주인공과 형은, 영화 [악의 교전]에서의 하스미와 그의 싸이코패스 동료(??)와의 관계처럼, 벗어나고 싶은 듯 하면서도 벗어나고 싶어하지 않는.. 뭐 좀 아이러니했다. 기억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잊어버리는 건 더더욱 싫은.. 뭐.. 그런 느낌이랄까??^;;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소설치고는 좀 무시무시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청소년'의 기준이 나는 15세인 내 조카에 두고 있긴 한데.. 그 아이가 읽기엔 좀 역부족인 듯한.. 아직은 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하튼 그치지 않는 비를 맞으며 다소 부담스러운 우산을 들고 여행하는 주인공의 발길이 닿는 곳에 좋은 사람들이 많아 다행이였다. 괜히 '청소년' 소설이 아니다~ 싶다!!^;;ㅋ
p.9 "그래도 일단은 봐 둬." 형은 집 안 구석구석에 박힌 시선을 돌리지 않고 말했다. 나는 무거운 가방을 멘 채로 형을 바라보았다. "기억한다는 건 중요한 거니까."
p.36 형은 아버지와 닮은 구석이 있었다. 그래서 형이 아버지를 싫어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소유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과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다. 형도 아버지도 삶 자체에는 아무런 미련이 없었으니까.
p.73 그러나 말하지 않은 이야기는 독이 되어 몸속 깊숙이 자리 잡는다. 그걸 완전히 잊기란 불가능하다. 몇 년 동안 생각조차 하고 있지 않다가도, 어느 순간 먹이를 잡아채는 솔개처럼 평범한 일상 속으로 파고들어 와 날카로운 상처를 남긴다. 그래서 때로는 누구라도, 어느 누구라도 다른 사람을 붙잡고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어질 때가 있는 것이다.
p.100 "길을 걷는 사람이라면 언제든지 비가 올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어야 해요."
p.196 "가끔씩 아빠 생각을 해. 아침에 눈을 뜨면 종종 아빠가 아직도 살아 있어서, 저편 어딘가에 앉아 언제나처럼 신문을 펼쳐 들고 눈을 흘기고 있을 거라는 착각에 빠져.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겠어. 하지만 그건 틀린 말이야. 살아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어떻게든 빚을 지고 마는 거야."
p.226 대장은 바로 아까 전에 자신이 무시했던 건 생각 안 하고 뜬금없이 나에게 설교를 한다. 나는 별다른 말 없이 그냥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괜한 말을 해서 불필요한 언쟁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쨌든 대장은 나한테 초코바를 줬으니까. 배가 고플 때 초코바를 준 사람과는 싸우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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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치지 않는 비는 없다. 누구에게나 감당할 수 없는 시련과 아픔이 불쑥 다가오지만 언젠가는 과거의 이야기로 남을 것이다. 기억은 잊히는 것이 아니지만 기억을 새롭게 할 수 있다. 그동안 그치지 않는 비를 맞아야 하겠지만. 비를 피한다고 짐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대신 비를 맞아 줄 수도 없다. 비를 함께 맞는 것도 한계가 있다. 고통을 잊기 위해 내가 맞아야 할 비의 총량이 있다. 우산을 씌워주는 것이 위하는 일이 아니기에 묵묵히 그가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길에서 살아남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가족을 잃는 상실의 아픔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이별은 정리의 과정이 필요한 듯싶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기억의 정리 과정이 필요하다. 정리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나를 만나게 된다. 비는 계속되지 않는다. 비가 그칠 것이라는 징조는 먹구름이 거칠 때 알 수 있다. 먹구름 사이에 살짝 내비치는 유난히 밝은 별 빛 속에서 그치지 않을 것 같았던 비가 그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음속에 오랫동안 내린 비도 마찬가지다. 한국판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은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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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잊을 수가 없어요." -97p기억이란 것들은 때로 현실보다 더 선명하게 들러 붙어 삶을 파괴하기도 한다."길을 걷는 사람이라면 언제든지 비가 올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어야 해요." -100p여행길에서 마주친 할머니의 말에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말이 함축되어 있다.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무작정 짐을 꾸리는 열아홉살의 남자를 소년으로 불러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그의 꿈은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지나가는 행인A'가 되는 것이다.누구나 성공을 꿈꾸고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는 삶을 살고자 하는 이 시대에 누가봐도 별것 아닌인생을 살고 싶어하는 소년의 꿈이 하찮아 보인다고 비웃을 수가 없다.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내곁을 지나치는 그렇고 그렇게 보이는 숱한 평범한 사람들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결코 평범하지 않은 삶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의 꿈이 얼마나 이루기 힘든 일인지를 알게된다.세간살이라고 부를 것도 없는 초라한 집을 떠나 그가 당도하고 싶은 곳은 어디일까?그의 곁을 맴도는 형과 함께 시작된 여행길에서 그들은 줄기차게 쏟아지는 비를 만나게 된다.누군가는 비오는 날이 운치가 있어 좋다고도 했고 심지어 급작스럽게 삶을 놓친 그의 어머니도 비오는 날이좋다고 했었다.하지만 여행자들에게 비란 뽀송한 옷과 신발에 감겨드는 축축하고 기분나쁜 방해꾼과 같다.그것도 준비해둔 우산이 없다면 더욱 끔찍한 여정이 될 것이다. 도무지 열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아버지와 비루한 삶을 박차고 나와 그가 만난 사람들은하나같이 너무 비범한 삶을 살고 있었다.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엉성한 로커도 그러했고 첫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초등학교때 짝꿍인19번의 삶도 그러했다. 어머니의 고향으로 향하는 기차에서 만난 여자는 잘 참기만 하면 뭐든이룰 것이란 믿었던 삶이 무너져 내리는시한부 삶을 선고받고 미친듯이 헤매는 사람이었고 자칭목사라는 사람은 전직 조폭이었다고 했다.도대체 세상 사람들은 왜 모두 평범치 않은 것인지 여행내내 그를 쫓아다니는 비만큼이나 지리멸멸하다.공중전화앞에서서 자신을 기억하지도 못하는 첫사랑에게 전화를 걸고 텅빈 집으로 전화를 걸어보는것은 지나쳐온 시간과 사람들에게 대한 그리움이었을 것이다.싫어도 미워도 어쩔 수 없이 마주쳐야 했던 사람들과 시간들에 대한 아련함은 차마 수염이라고 부르지도못할 솜털을 깎기 위해 가방속에 챙겨온 면도기만큼이나 서글프다.남들보다 조금은 덜 성숙한 몸뚱이를 가진 소년이지만 언젠가 억세게 솟아나 귀찮아질 수염을 기다리는 것처럼삶은 어차피 단단해질 것이고 시간은 또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그가 기억하는 가족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은 지워질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특히 꼭 지우고픈 기억같은 것일 수록 더욱 더.하지만 무덤덤하게 내뱉었던 아버지의 말처럼,'영원히 계속되는 비는 없다'그칠 수 밖에 없는 비임을 알기에 미처 우산을 챙기지 못했더라도, 살이 구부러진 우산을 비집고 들이치는빗줄기도 견딜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다.세상을 버리고 죽음을 선택한 이들을 지켜봐야 했던 이들이 꼭 묻고 싶었던 말."왜, 왜 그렇게 삶을 버려야만 했어? 남겨진 우리같은 사람들이 감당해야 할 시간들을 생각해보기는 한거야?"아직 겨울의 찬바람이 머물고 있는 요즘, 시원스런 비를 기다리는 것은 오랫동안 묵은 갈증 때문이다.그치지 않을 것같은 비가 그치듯 멈출 수 없었던 우리들의 무거운 발걸음도 언젠가는 멈춰야 할 시간이 올 것이다.그 사이 우리는 그저 젖은 신발과 양말을 드라이어기에 말려가면서라도 그렇게 씩씩하게 걸어야 하는거야.그게 삶이야. 비에 젖는게 싫다고 언제까지나 숨어있을 수는 없잖아.언젠가 한국어로 씌어진 '호밀밭의 파수꾼'의 저자가 될 수 있을것이란 평가처럼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이저자의 앞날에 디딤돌이 되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