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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봄에 떠난 발칸여행은 무려 아홉 나라, 아니 공항만 이용한 체코를 포함하면 무려 열 나라를 여행하는 강행군이었습니다. 사실 이렇게 강행군인 여정을 선택한 이유는 책읽기와 관련이 있습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사라예보, 루마니아의 브란, 그리고 알바니아가 포함된 여정을 고른 이유입니다. 여기에서는 알바니아의 경우를 이야기하려 합니다. 사실 발칸반도의 작은 나라 알바니아는 크게 관심을 두던 나라는 아니었습니다. 그런 알바니아를 여행하게 된 것은 이스마일 카다레의 영향이었습니다. 그의 작품으로 처음 읽었던 <돌의 연대기>가 강한 인상을 남겼던 것 같습니다. 이어 읽은 <잘못된 만찬>, <피라미드>, <H파일>, <부서진 사월>에 이르면서 알바니아라는 나라를 가보아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커졌습니다. 발칸여행을 마치고서는 <누가 후계자를 죽였는가>를 읽은 것은 제가 준비하고 있는 <양기화의 BOOK소리-유럽여행>에서 티라나와 함께 소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티라나를 여행하면서 해설사는 엔베르 호자가 이끌던 알바니아의 공산정권이 정말 끔찍할 정도로 독재를 펼치고 국민들을 억압했다고 설명했는데, <누가 후계자를 죽였는가>에서 당시의 알바니아의 사회적 분위기가 어땠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떠나지 못하는 여자>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읽혔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극작가 루디안 스테파입니다. 극작가라고는 하지만 자신의 영감에 따라 작품을 쓰기보다는 당이 요구하는 기준에 부합하는 작품을 써내야 하기 때문에 심사를 마칠 때까지 전전긍긍해야만 했던 모양입니다. 신작을 준비하던 루디안은 어느 날 당 위원회에 소환을 받았습니다. 작품에 관한 건으로 소환된 줄 알았던 그에게 판사는 ‘한 여성에 관한 일입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도둑이 제 발 절인다.’는 말처럼 은밀한 애정관계를 맺고 있는 여성이 있다고 고백하면서 일이 꼬이게 됩니다. 당 위원회에서 문제가 된 여성은 최근에 자살한 린다B라는 여성이었습니다. 그녀가 가지고 있던 루디안의 책에 저자의 헌사가 적혀있었고, 그녀의 일기에도 루디안에 관한 이야기가 적혀있었다는 이유로 소환이 된 것입니다. 사실 루디안은 린다B라는 여성을 만난 적도 없을 뿐 아니라 알지도 못합니다. 단지 애정관계에 있던 미대생 미제나의 부탁으로 헌사를 적어주었을 뿐입니다. 문제는 린다B라는 여성이 구체제의 귀족으로 지방의 작은 도시를 떠나면 안 되는 유배의 형을 받은 상태이며 그녀의 유배형은 5년마다 재심을 받게 되지만 계속 연장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 여성과 연관이 되어 있으니 루디안 역시 반역의 죄를 범한 것인지를 밝혀야 하는 상황입니다. 사실 린다B와 미제나는 같은 학교를 다닌 친구로 학교를 졸업하고 미제나는 티라나로 진학을 하게 되었지만, 린다B는 도시를 떠날 수 없는 처지입니다. 그런데 린다B가 루디안을 추앙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미제나는 친구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하여 루디안에게 접근하였고, 린다B를 위하여 루디안의 책에 헌사를 받아 전해주었던 것입니다. 이야기를 읽어가다 보면 빈틈없이 감시를 받는 체제이지만 그 와중에서 이런저런 사랑도 이루어지고 사람들 간에 관계도 형성되었던 모양입니다. 문제는 누가 누구를 감시하는지 서로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겠지요. 루디안이 린다B와 만나지 않은 것은 사실일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를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신화를 인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몰랐다는 것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 린다B가 유방암영상검사를 받게 된 것과 관련하여 루디안이 린다B와 드리니호텔에서 만나게 된다고 했지만, 사실은 린다B는 이미 자살을 한 뒤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야기가 마지막에 이르면 루디안이 면담을 하는 정신과 의사가 감시자였고 주기적으로 지도자에게 보고서를 보냈다는 것이 알려지게 됩니다. 그리고는 5년 뒤 지도자가 실각을 한 듯 광장에 있던 그의 동상이 끌어내려져 끌려 다니고, 루디안은 여전히 극장에서 독자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린다B에게, 저자의 추억을 담아’라고 헌사를 적어 그녀에게 전합니다. 그가 바라는 대로 여자는 결국 책을 받았고, 죽음의 어둠 속에서 그들의 손가락이 살짝 차갑게 스쳤다고 합니다. 생사를 넘나들고, 이야기가 과거로 넘어가는 등 집중을 하지 않으면 이야기의 줄거리를 놓칠 수도 있는 책읽기였습니다. 만사는 사필귀정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지도자는 그토록 끔찍한 독재를 펼쳐야만 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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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독재가 한창인 1980년대 후반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 작품 검열을 기다리던 극작가 루디안 스테파는 당 위원회의 소환을 받는다. 작품에 문제가 있나? 아니면 미제나와의 비밀연애가 문제가 됐나? 불안감을 느끼던 루디안은 소환 이유가 최근 자살한 여성 린다 B가 그의 친필 사인본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임을 알게 된다.
‘린다 B에게, 저자의 추억을 담아. 6월 12일.’
루디안과 린다 B를 보면 안티고네처럼 국가와 개인, 이상과 현실, 통제와 자유의 가치 대립을 엿보이는데, 책을 읽을수록 차라리 안티고네가 더 낫구나 싶었다. 안티고네는 양심에 따라 저항이라도 했지. 린다 B는 죽음 이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둘 다 결국 죽지 않았나 싶겠지만, 과정도 결말도 너무 다르지 않나. 그나마 루디안의 사인본으로 그마나 그녀의 존재가 잊혀지지 않음에 위로를 얻어야 하나. 죽음으로 자유를 얻은 한 영혼에게 바치는 진혼곡이 애달프다.
행간마다 생각할 여지가 가득한 작품이다. 비교적 짧은 분량에도 책장이 쉽게 넘어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무게감 있는 이야기다. 무엇보다 삶을 지탱하는 근간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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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작가 루디안 스테파는 갑작스레 당 위원회의 소환을 받는다. 자신의 작품 때문에 부른 것일까 아니면 연인 미제나가 자신을 고발한 것일까. 하지만 당 위원회가 그를 부른 진짜 이유는 유배상태였던 여자 린다 B에 관한 것이었고, 그제야 그는 이곳에 오지 못한 친구를 대신하여 책에 사인을 받으러 왔던 한 여인을 떠올린다. 친구가 선생님의 책을 좋아한다며 책에 린다 B라고 써주길 바랐던 여인과 ‘린다 B에게, 저자의 추억을 담아. 6월 12일.’이라고 적었던 자신을. 군주제 시절의 옛 왕실 측근 집안이었던 린다 B는 며칠 전 자살을 했다. 그녀가 떠난 자리엔 루디안 스테파의 헌사가 적힌 책과 그의 이름이 자주 나오는 그녀의 일기만 남았다. 하지만 그는 그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대체 린다 B는 누구이며 왜 자살을 했을까. 그리고 그 자살에 루디안 스테파 자신은 어떤 관련이 있는 걸까.
알바니아의 문학 대사라고 불리는 이스마일 카다레. 나는 이 책을 시작으로 작가의 또 다른 작품들을 찾아 읽어볼 것 같다. 책의 흐름은 루디안 스테파의 입장에서 주로 서술되는데, 중간 중간 등장하는 그의 원고와 신화 오르페우스 이야기, 꿈과 상상의 서술은 무척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이 책이 뛰어났던 건 루디안 스테파와 연인 미제나, 그리고 그녀의 친구인 린다 B의 관계에 있다. 군주제 시절의 옛 왕실 측근 집안이라는 이유로 평생을 벽지에 유배되어 있어야만 했던 린다. 그녀에겐 이동할 자유가 없었다. 더 큰 미래를 꿈꿀 자유도 없었고, 사랑하는 이를 만나러 갈 자유도 없었다. 그녀에겐 차라리 암에 걸리는 것이 희망의 길처럼 느껴질 정도로 자유가 허락되지 않았다. 단 몇 개월만이라도 자유로울 수 있다면. 그녀가 평생 바라던 것은 오직 그것뿐이었다. 그런 그녀의 유일한 친구, 미제나. 린다는 미제나와의 우정을 통해 숨을 쉬었고, 그녀를 통해 TV와 책으로만 접했던 바깥세상을 느껴본다.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사랑하는 이를 만나려 한다. 미제나와 린다의 우정, 루디안 스테파를 향한 맹목적인 사랑, 매개 소유, 자유에 대한 열망. 책을 읽는 내내 린다의 삶이 안타깝게 느껴져 마음이 먹먹했다. 태어나면서부터 당이 정해놓은 현실적 제약에 묶여 ‘자유’를 빼앗겨버린 린다. 그녀는 친구에게 애인을 빼앗긴 것에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그 친구를 통해 꿈꿔왔던 사랑을 느끼려 한다.
그녀의 짧은 생에 대해 생각해본다. 죽은 린다의 시신을 꺼내 수도로 데려가던 가족의 모습이 여전히 눈앞에 어른거린다. 생에서는 결코 벗어나지 못했던 그곳에서 벗어나 그녀는 이제 자유로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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