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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언어 ?하권- 최기재 인간사랑/2024.6.20. sanbaram
<치유의 언어-하->권은 장자 읽기로 되어있다. 즉, <장자>를 <논어>와 비교하여 우리 삶의 균형을 잡기 위한 내용으로 해설하고 있다. 장자는 도가의 대표적인 인물로 노자 사상을 계승, 발전시켰다. 노자의 사상과 장자의 사상을 합하여 노장사상이라 한다. 중국 최고의 문장으로 평가받는 <장자>는 “33편 중 장자 자신의 저술로 추정하는 ‘소요유’, ‘제물론’, ‘양생주’, ‘인간세’, ‘덕충부’, ‘대종사’, ‘응제왕’ 등 내편 7편이 장자의 핵심 사상이다. 대부분 장자 읽기는 이 내편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p.12)”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는데 그중에서 핵심은 ‘소요유와 제물론’이라고 한다. “노자가 무위자연을 주장했다면, 장자는 속세를 벗어나 홀로 유유자적하고자 했다.(p.13)”고 말하는 저자 최기재는 어문교육학 박사. 계간<미래시학>으로 등단하였으며, 저서로 <여행 그림자의 노래>, <일리아스의 모든 것>, <독서논술 지도의 방법과 실제>(공저) 등 다수가 있다.
내편 내용을 간단히 말하면 ‘제1편 소요유’에서, 소요유는 소요하면서 논다는 뜻이다. 장자는 낮잠을 자고 거닐기도 하면서 노는 삶을 첫 장에서 이야기한다. 소요유는 무엇에도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삶이라고 한다. ‘<장자>와 <논어>로 우리 삶의 균형 찾기’에서, 장자는 이름을 껍데기라 하고, 공자는 이름을 이루어야 할 대상으로 본다. 장자에게 이름은 손님이며, 공자에게 이름은 주인이다. 장자는 접여 이야기를 통해 덕이 만물과 하나로 이루어지면서 하지 않아도 함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그런 삶이 사해의 밖에서 노니는 삶이다. 공자는 도와 덕, 인과 예에서 노닐어야 한다고 말한다. 장자는 덕이 무위자연이라는 구체성이 있으나 공자는 도와 덕을 언급만 할 뿐 그 구체성을 한 단어도 찾기 어렵다고 저자는 말한다. 장자는 쓸모없다고 괴로워하지 말라고 말한다. 공자는 말재주 있는 것을 어디에 쓰겠느냐고 말한다. 장자는 쓸모를 기준으로 말하면서 모든 것은 쓸모가 있다고 말한다. 공자는 말재주를 어디에 쓰겠냐고 쓸모를 말한다. 어짊이 더 중요하지 말재주가 진정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공자는 말한다. 그러나 장자나 공자 모두 일상적으로 인식하는 쓸모와 차이가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제2편 제물론’에서, 제물이란 만물을 가지런히 한다는 뜻이다. ‘<장자>와 <논어>로 삶의 균형 찾기’에서, <장자>는 비교하지 말라 말한다. 홀로 살랑살랑하고 흔들흔들한다. 차이를 판단하지 않고 그대로 본다. 그러나 <논어>에서 공자는 군자와 소인으로 나누어 말한다. <장자>는 참모습은 더하고 뺄 수 없다 말하고, <논어>는 각자 역할을 주문한다. 전자는 자연을 말하고 후자는 체제를 말한다. “夫道未始有封 : 대저 도는 처음부터 정해진 경계가 있지않다.”<장자>에서는 내가 어찌 알겠는가라고 말하고 있지만, 공자는 천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자연 앞에서 만물에 대해 알 수 없다는 말은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제물론과 연결된다. 공자는 하늘의 명을 알고 하늘의 명을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노장사상은 겸허하게 모른다고 말하고, 유가사상은 하늘의 명을 아는 자가 군자라고 말한다. 장자는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는 물화를 말하는 것으로 꿈을 이야기하는데, 공자는 꿈속에서 자신이 따르고자 하는 사람을 보지 못함을 탄식한다. 장자는 꿈으로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기를 바라고 공자는 노회하여 따르고자 하는 욕구가 줄어듦을 한탄한다고 해석한다.
‘제3편 양생주’에서는, 장수 비결을 말한다. ‘<장자>와 <논어>로 삶의 균형 찾기’에서 설명하기를, <장자>에서는 죽음을 하늘의 뜻에 순응하여 편안히 때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본다. 노담의 친구 진일이 노담의 조문을 간략히 한다. 공자는 부모가 자기를 품어서 기른 기간이 최소 3년이라 3년 상을 받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자는 상례의 간소함도 강조한다. 공자 입장에서 장자의 조문은 간략하면서 슬퍼함도 없이 비판의 대상이다.
‘제4편 인간세’에서는 처세법을 말한다. ‘<장자>와 <논어>로 삶의 균형 찾기’에서 말하기를 장자는 덕이 이름 때문에 무너진다고 보고, 공자는 죽은 뒤에 이름이 남도록 해양 한다고 말한다. 장자는 이름을 내세우지 말라 하고, 공자는 이름을 위해 살라 말한다. 많은 이들이 성취욕이 있을 때는 이름 때문에 노력하고, 나이 들어서는 껍질인 이름을 버리고 자신을 사랑하는 장자를 따르고자 한다. 장자는 드러나려 하면 잃는다며 화합하라고 말한다. 공자는 자신을 살피라고 말한다. 장자와 공자 모두 처세를 위해 삼가라고 말한다. “子曰, 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 : 공자 가로되, 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남을 알아주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라.(p.127”고 한다. 장자는 쓸모없음의 쓸모에 대해 말하고, 공자는 능력이 없음을 걱정한다. 장자는 심재를 실천하라 말하고, 공자는 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라고 말한다, 장자는 쓸모없음의 더 큰 유용성에 대해 말하고, 공자는 더 큰 쓸모를 위해 능력을 기르라고 말한다.
‘제5편 덕층부’에서는 덕을 충만하게하는 것에 대해 말한다. ‘<장자>와 <논어>로 우리 삶의 균형 찾기’에서는 노장사상은 고요함을 평상심으로 중심에 둔다. 공자는 요순임금의 높음과 겨울을 견디는 소나무를 따르며 자기를 극복하려 한다. 소나무와 잣나무가 푸르디푸른 것보다 왕대가 높다고 본문은 말한다. <장자>에서는 공자를 내세워 덕을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고 <논어>에서는 덕은 이웃이 있어 외롭지 않다고 말한다. 공자는 집에서 듣고 마음 깊이 새겨 자기 것으로 만들지 않고 길에서 남에게 떠들어 대면 덕을 버리는 것이라 말한다. <장자>에서는 덕은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태도를 말하고, <논어>에서는 덕은 마음 깊이 새겨 자기 것으로 만들면 외롭지 않다고 행위와 결과를 말한다. 장자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을 말하고, 공자는 즐겁거나 슬픔을 갖되 그에 빠져서 자신을 해쳐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감정의 강도에서 장자는 공자보다 감정에 좌우되지 않는 더 높은 경지를 말한다.
‘제6편 대종사’에서는 스승 중의 스승에 대해 말한다. ‘<장자>와 <논어>로 우리 삶의 균형 찾기’에서 저자가 말하기를 장자는 서로 하나가 되어 이기려 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고, <논어>에서 공자의 제자인 증자는 군자가 귀하게 여기는 태도를 말한다. 장자는 서로 통하는 참됨을 말하고, 증자는 자신이 수양해야 함을 말한다. 장자는 삶과 죽음을 하나로 본다. 공자는 죽음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본다. 장자는 순리를 따르라며 죽음을 변화라 하고, 공자는 부모가 지식 걱정할 것을 염려하고 부모가 언제 돌아가실지 죽음을 걱정한다. 장자는 상례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공자는 상을 당해 슬퍼해야 하며 3년 상을 치러야 한다고 말한다.
‘제7편 응제왕’에서는 왕의 다스림에 대해 말한다. ‘<장자>와 <논어>로 우리 삶의 균형 찾기’에서 저자는 말하기를, <장자>에서는 아무것도 없는 자연에서 노닌다고 말하고, <논어>에서는 예술의 경지에서 노닌다고 말한다. <장자>에서는 의식하지 않고 홀로 노닒을 말하고, 공자는 사람의 성취로 이룬 예에서 노닒을 말한다. <장자>에서는 자신을 향하고, 공자는 밖을 향한다. 장자는 소박함, 근원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공자는 배워서 하고자 하는 대로 살아도 법도를 벗어나지 않음을 높은 단계로 보았다.
외편 중에서 몇 가지를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노장은 나를 잊으면 하늘에 들어간다고 하고, 공자는 예로 돌아가야 인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노장의 하늘은 무위자연이고, 공자의 예는 인간이 만든 규범이다.(p.261)” 노자는 사사로움을 없애는 것조차 사사로움이라 말하고, 공자는 아들 백어에게 시와 예를 배우라 말한다. 노자는 본성은 본래부터 있는 것이라 말하고, 공자는 인과 의가 인간의 참다운 본성이라 말한다. 그 결과 노자는 사사로움조차 본성이니 그대로 두라 하고, 공자는 시와 예를 배워 인의에 다가가라 말한다. 본성을 추구하는 것은 같으나 노자는 인위적으로 훼손되지 않은 본성을 전제하여 그대로 두라 하고, 공자는 훼손된 본성을 전제하며 이를 되찾으려 인과 의, 지와 예를 공부하라 한다.
“天地有大美而不言 : 천지는 큰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으나 말하지 않는다.” “<장자>에서는 공자가 늘 말하는 시, 서, 예, 악 등으로 웃지 않던 왕이 개와 말의 관상으로 기쁨을 주었다고 말한다.(p.367)” 시, 서, 예, 악이 길이라 해도 그것으로 기쁨을 줄 수 없다. 나라를 떠나면 알던 사람만 보아도 기쁜 것처럼 고향을 떠나거나 함께 한 이들과 떨어져 있거나 시일이 오래 지나면 예전이 그립다. 인생의 즐거움과 기쁨은 큰 것에 있지 않다. 행복은 사소함에 있다. 시, 서, 예, 악과 함께 사소한 즐거움도 누려야 균형 있는 삶이라는 것이다.
“<장자>와 <논어> 모두 공자의 인, 의로움을 이야기한다. 공자의 사상이 반영된 글이다. 공자가 그만큼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사정을 알 수 있다.(p.403)” <장자>와 <논어> 모두 천하의 도가 없어졌다고 문제를 진단한다. 그 대안으로 나온 사상들이 노장사상이고 유가사상 외에 수많은 제자백가의 사상이다. 장자는 후세의 학자들이 옛사람의 도를 보지 못해 천하를 찢게 할 것이라 예언하고 있다. 현대가 장자의 예언대로 천하를 찢었는지 판단해 볼 일이다.
(인간사랑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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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와 함께 노자, 열자, 장자 읽기’라는 부제의 시리즈로서, 2권에서는 <장자>의 번역과 이에 대한 저자의 단상들이 함께 제시되어 있다. 이미 1권에서 <노자>와 <열자>의 내용을 소개하면서 저자의 생각을 접했던 터라, 2권에서는 <장자>의 내용에만 집중헤서 읽을 수 있었다. 과거 동료들과 스터디를 하면서 <장자> 원문을 읽어본 적이 있었고, 또한 다양한 참고 서적들을 통해서 기존 번역서들이 지닌 특징들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다. 주지하듯이 <정자>는 ‘내편’과 ‘외편’ 그리고 ‘잡편’ 등의 체제로 구성되어 있다. 논자에 따라 '잡편' 혹은 '외편'의 일부까지도 후대에 위서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장자>라는 책으로 엮일 수 있는 내용이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하겠다. 흔히 ‘노장사상’이라고 하여 노자와 장자의 사상을 동일시하는 시선이 있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둘 사이에도 적지 않은 차이가 발견된다. 우선 가장 큰 특징으로 <장자>는 비유적인 이야기를 통해서, 인간사의 다양한 상황을 빗대어 표현하는 우언(寓言)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자가 유가의 인위적인 통치 행위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강하게 보인다면, 장자는 속세의 모든 이익에서 벗어나 초탈한 삶의 자세를 강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에는 각각의 편마다 저자의 간략한 설명과 더불러 그 요체를 시로 제시하고 있는데, 그 역시 저자가 바라보는 <장자>의 '해석'일 뿐이다. 그러한 저자의 관점에 공감할 수도 있지만, 딱히 그 내용에 집중하지 않고 그저 본문과 해석에 초점을 맞추어 읽어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여기에 저자의 ‘해석과 감상’이 곁들여지고, 1권과 마찬가지로 해당 편에서 주목할 만한 구절과 그와 유사한 주제로 엮을 수 있는<논어>의 원문과 번역을 제시하여 ‘필사하기’라는 항목을 마련하고 있다.
먼저 각각의 편마다 제시된 <장자>의 본문과 더불어 해석에 집중하여 읽고 나서, 저자가 제시한 ‘해석과 감상’을 참고하여 독자 나름의 관점에서 정리한다면 텍스트 이해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다. 조금 더 여유가 있다면 다양한 해설서와 번역서를 비교하여 살펴보는 것도 <장자>를 넓게 이해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하겠다. 오래 전의 원문 독해와 틈틈이 접했던 다양한 분석서들을 통해 <장자>에 대해 대략적인 내용을 알고 있었지만, 텍스트 원문 대부분과 해석을 제시한 이 책을 통해서 체계적인 정리를 할 수 있었던 것이 개인적인 성과로 꼽을 수 있다. 물론 텍스트를 설명하는 저자의 해석도 적지 않게 도움이 되었지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특정 구절들에 대해서는 공감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음을 굳이 지적해두고자 한다. 후에 <장자>에 대해서 필요한 사항이 있다면, 이 책이 유용한 참고서로 활용될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차니)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바탕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개인 독서 카페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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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2024) 2월에 최기재 선생의 <치유의 언어> 상권을 읽고 리뷰를 올렸었습니다. 또 재작년(2023) 2월에는 같은 저자의 <일리아스의 거의 모든 것>에 대한 독후감도 썼었습니다. 이 하권은 2024년 6월에 발간되었으며 제 개인적 사정으로 인해 지금에서야 후기를 등록합니다. 또 이 책은 인간사랑에서 펴내는 고전아틀리에 시리즈 제4권이기도 합니다. 상권에서 저자가 공자를 잠시 분석한 후 <도덕경>과 <열자>를 심층적으로 해설했다면 이 하권은 <장자>에 집중적으로 분량을 할애하며 전개됩니다. 노장 사상, 도가의 개조가 이이, 즉 노자이긴 하지만 후세 사람들에게 더 그 사조의 깊이를 더하고 더 친숙한 이미지로 어필한 사상가는 장자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최기재 박사님은 <장자> 원문을 병기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고, 특유의 시원시원한 어조로 일관된 관점으로부터의 해석을 자구 하나하나에 적용하십니다. 무용의 용(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쓸모없다고 신세를 서러워할 게 아니라, "쓸모 없는 그늘에 누워 쉴 수 있으니 이 또한 쓸모이다(p30)"라는, 잘 알려진 교훈입니다. 혜자(惠子)는 이 대목에서 쓸모 없는 박을 쪼개 버린 이야기를 들려 주는데, 이에 장자는 답하여 말하길, 손등을 치료하는 약을 어떤 이는 돈 몇 푼을 받고 솜 트는 일꾼에게 팔 뿐이지만 어떤 이는 전쟁에 참여한 군사들을 돌보는 데 요긴히 활용하여 한 나라의 운명을 바꾸었다는 것입니다. 박의 쓸모를 졸렬하게 파악하여 기어이 쓰레기로 만든 혜자의 협량을 할난하는 데서 이야기는 마무리되는데, 소요(遡遙)가 곧 지락(至樂)이라는 장자 사상의 요체가 저자의 입으로 되풀이됩니다. 최 박사님의 지적대로 이 대목은 춘추전국시대 지사들의 유세(遊說)의 한 예화인데, 장자에게서 우리 독자들이 의외로 실용적이고 현실참여적인 면모를 엿보게도 됩니다. 내편(內篇)에 보면 진인(眞人)에 대한 장자의 긴 논변이 있습니다. 도인, 신선 등을 소재로 삼은 민담을 보면 자주 나오는 단어이기도 한데 간혹 사이비종교의 경전에서도 접하는 말입니다. p158에서 장자는 이로움과 해로움을 초월하여 하나로 볼 줄 모르면 군자라고 할 수 없다고 설파하는데 여기서 진인과 군자(君子)는 서로 통하는 개념이라 하겠습니다. 발뒤꿈치로 호흡한다는 구절이 인상적인데 수행의 한 방법으로써 "인도의 요가 수행이 중국에까지 영향을 끼친 흔적이라는 학설이 있다"고 최 박사님이 각주에서 짚습니다. "부지런히 걸어간 사람"이란 뜻의 근행자(勤行者)란 언명도 우리 독자들이 곰곰 새길 만합니다. 백락(伯樂)은 말을 잘 다스린 사람이었으며, 목수와 도공은 나무와 흙을 잘 다스리는 직분(p226)이라는 게 세상의 평가입니다. 그러나 장자는 이 역시 많이 부족한 말들일 뿐이며, 천하가 어울려 돌아가는 이치가 어떻게 한두 사람의 재주로 가능하겠냐고 반문합니다. 도공이 고운 흙을 놀려 가마에 넣고 그릇을 빚는 게 기실 그 전 수많은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노고, 나아가 불어오는 바람과 음양의 이치인들 그에 기여하지 않았겠냐는 것입니다. 대동(大同)의 큰 의미를 새길 때, 자연 안에서 결국 모두가 하나임을 깨닫는 사람만이 진실로 하늘과 교통한다 할 수 있겠습니다. 또 상권에서도 그러했지만, 저자는 수시로 유가(儒家)의 경전 <논어(論語)>에서 여러 구절을 뽑아 "필사하기" 코너에 배치하여 독자의 학습을 돕는데, 여기서는 자로(子路)편의 화이부동(和而不同)을 발췌하여 제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습니다. 선행은 남들이 모르게 완수해야 그게 참된 선행이며, 남들 다 보란 듯이 크게 목소리를 높이면 그게 어디 선행이겠냐는 뜻입니다. p283을 보면 송나라의 탕(蕩)이 장자에게 인(仁)에 대해 묻는 대목이 있습니다. 장자는 과연 그답게 "인은, 이리와 호랑이가 곧 인이다."라고 답합니다. 이는 유가의 가르침 중 인(仁)을 비판하는 의도이며, 범이나 이리도 부자(父子)간에 서로 친하니 그를 어질다 못할 바가 어디 있겠냐는 반어입니다. 소위 삼강(三綱)이라 하여 상하간의 서열이 분명히 정해져 있고 위에서 아래에게 선심이나 쓰듯 어짊을 작위하는 건 전혀 어짊이라 할 수 없다는 호된 꾸짖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p363에는 서무귀(徐無鬼)가 여상(女商)을 따라 위(魏)나라의 무후(武候)를 찾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개의 관상, 고양이의 관상을 논하며 진실로 세상사에 달통한 사람은 그 어느 것에도 치우침이 없다는 게 결론이었는데 무후는 서무귀와의 회견을 마치고 크게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여상은, 자신이 시, 서, 예, 악을 논하고 육도삼략을 설파했을 때도 주군이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는데 어찌 그같은 하찮은 변설로 높은 이의 마음을 살 수 있었는지에 대해 거듭 묻습니다. 서무귀(가상의 인물)는 무후가 진인의 기침 소리조차 듣지 못한 지 오래였으나 이제 비로소 참된 인간의 담론을 접하고 기뻐하지 않을 리 있겠냐며 답을 대신합니다. 뛰어난 사람은 사실 언어의 상론이 문제가 아니라 그 태도와 눈빛, 처신 자체가 모두 뜻이 깊은 가르침이며, 이를 알아본 무후 역시 예사로운 군주는 아니었다 하겠습니다. 책 곳곳에 독자로 하여금 생각해 볼 만한 문제를 던지고 있으며, 실제로 서강대에서 출제되었던 논술 기출 문제들도 수록되었으니 수험생들이 심화 학습 교재로 활용할 만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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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언어(하)는 장자 이야기이다. 노자와 열자를 잇는 장자는 노자의 도덕경을 재미 있는 우화로 풀어낸다. 열자 속 이야기와 겹치는 내용도 상당수 있다. 조선시대 최고의 이야기꾼 연암 박지원이 장자의 이야기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글쓰기를 하려면 장자를 읽어야 한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연상하게 하는 장자의 첫 이야기는 우리가 현대 과학 서적만이 우주를 제대로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이미 장자가 이야기 해 놓았음을 장자를 읽다 보면 안다. 대붕의 이야기, 호접지몽, 수영 잘하는 사람 이야기, 도척을 내세워 공자를 혼내는 이야기, 마지막에서 춘추 시대 제자 백가들에 대한 평가 등은 장자를 읽지 않고는 장자의 가치를 알지 못하게 하는 부분이다. 대부분의 장자에 관한 책은 단순히 번역만 해 놓아서 처음 읽는 사람들은 읽기가 힘들다. 그런데 이 책은 상세히 설명하고 해설을 하나의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덧붙이고 있다. 이어지는 이야기를 이야기 단위로 나누어 놓은 점도 읽기 좋다. 공자의 논어와 비교하면서 정리한 점은 장자를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장자 33편을 모두 읽다보면 중복된다는 느낌을 갖게 하거나 흥미가 떨어지는 글도 있는데 이 책은 꼭 읽어야 할 부분을 중심으로 전개하고 있다. 장자에서 가장 중요한 내편 7편은 모두 실려 있다. 장자와 관련한 다양한 독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이 책은 수많은 다른 독서까지 하는 셈이 된다. 장자의 우화는 스토리텔링의 전범이라 할 수 있다. 시조차 스토리가 있을 때 재미있고 기억에 남는다. 장자는 천재적인 이야기꾼이다. 장자의 주요 사상은 무위자연, 곧 억지로 하지 말라이다. 자연, 곧 스스로 그러함이다. 우리 삶이 스스로 그러하도록 하여 억지로 하지 않아야 건강하다. 육체 건강, 정신 건강 모두 무리하지 않아야 한다. 우주의 길고 넓은 시공간 속에서 인간을 바라보게 하는 책이다. 나를 나로 살게 하는 책이라는 생각이다. 책상에 놓고 아무데나 열어서 한 편의 에피소드를 읽는 즐거움을 치유의 언어(하)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