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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적 상상력의 세계를 들여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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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영 시인의 시는 그가 독실한 크리스챤이면서도 그런 분위기를 별로 띠지 않는다는 점에서 나의 주목을 끌었다. 아마 크리스챤에 대한 나의 편견이 있었나보다. 오히려 김신영 시인의 시는 해설에서 김주연 선생이 '연민과 소망'이라는 제목으로 밝혔듯이 작은 것들을 어루만지고 무의미한 존재의 슬픔에 대해 기억하는 정갈함이 있다. 그래서일까? 조용하지만, 힘있는 어떤 분위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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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영 시인의 시는 그가 독실한 크리스챤이면서도 그런 분위기를 별로 띠지 않는다는 점에서 나의 주목을 끌었다. 아마 크리스챤에 대한 나의 편견이 있었나보다. 오히려 김신영 시인의 시는 해설에서 김주연 선생이 '연민과 소망'이라는 제목으로 밝혔듯이 작은 것들을 어루만지고 무의미한 존재의 슬픔에 대해 기억하는 정갈함이 있다. 그래서일까? 조용하지만, 힘있는 어떤 분위기들이 투영되어 있는 그의 시는 읽는이를 淨化하는 능력이 있다. 마치 그가 하느님에게 호소하듯이(「종이의 가장자리」) 나에게 무엇을 부탁하는 그런 느낌을 자아냈다. 그것은 무엇일까? 시인의 시적현실은 무기력하다. 즉, 그의 정신세계는 현실과 대위법적인 구도에 놓여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시인은 부정적이고 무기력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의 모습은 아니다. 즉, 여타의 신앙인처럼 하느님의 건실함과 그 전능함을 토대로 세상을 바라보려는 시선은 아니다. 오히려 세상의 현실을 직시하면서 하느님에게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시에는 그래서 다양한 매개 소재들이 등장한다. 그런 점에 있어서 그의 표현은 자유롭고 일상의 핵심을 찌르는 날카로움이 있다. 더군다나 그 인식이 우리의 인식의 폐부를 찌르며, 비관습적으로 작동한다는 점에 있어서 주목할만하다. 결국 그의 인식은 '자기 개인의 내면적인 의식에만 매달리거나 욕망의 표현에서 멋을 찾는 일, 혹은 정치·경제적 목적과 결부된 현실 개선의 목소리들'은 독을 품은 '화려한 망사버섯'에 다름 아니다. 시인의 부정적 자아인식은 그래서 신학적이고 철학적인 자기인식에 가깝다. 자신의 좌절과 부정적인 인식을 우회하여 신학적으로 이끄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이 글의 앞머리에서 밝혔듯이 이원론적인 크리스챤의 모습이 아니다. 그 사이에는 부정적인 자기인식과 다양한 현실에 대해 적극적인 개입하는 시인의 자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의 시는 단지 신학적인 모습으로만 표출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예수에 대한 애틋한 연민은 균열된 현실세계를 지양하지만은 않는다. 오히려 현실을 자기자신과 동일화하면서 예수와 자아의 거리를 서로의 이끌림으로 극복해보려는 모습이 보인다. 이런 점에 있어서 그는 시 속에 크리스챤의 모습을 글로 적었으면서도 결국엔 지우개로 지워 그 흔적만이 남아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런 신학적 상상력은 나에게 매력적으로 보였다. 종교가 일반인들에게 좀 더 가깝게 다가올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상상해보기도 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지 궁금하다.

[인상깊은구절]
하느님 당신이 저를 사랑하신다면 저를 안아주세요 하느님 당신의 그늘 구석에 매몰되어 바람만 맞는 허기진 저를 -'종이의 가장자리' 중에서
e****l 2001.08.0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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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이곳에서 (화려한 망사버섯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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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83시와 이곳에서― 화려한 망사버섯의 정원 김신영 글 문학과지성사 펴냄, 1996.4.25.  나는 늘 이곳에서 바람을 마십니다. 산들산들 부는 바람도 마시고, 한들한들 부는 바람도 마십니다. 따사롭게 부는 바람도 마시며, 포근하게 부는 바람도 마셔요. 때로는 차갑게 부는 바람을 마시고, 어느 날에는 스산하게 부는 바람을 마십니다.  어떠한 바람이든 기꺼이 마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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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83



시와 이곳에서

― 화려한 망사버섯의 정원

 김신영 글

 문학과지성사 펴냄, 1996.4.25.



  나는 늘 이곳에서 바람을 마십니다. 산들산들 부는 바람도 마시고, 한들한들 부는 바람도 마십니다. 따사롭게 부는 바람도 마시며, 포근하게 부는 바람도 마셔요. 때로는 차갑게 부는 바람을 마시고, 어느 날에는 스산하게 부는 바람을 마십니다.


  어떠한 바람이든 기꺼이 마십니다. 어떤 바람이 불든 씩씩하게 마십니다. 어떻게 부는 바람이라 하더라도 고맙게 마십니다.


  왜냐하면, 나는 바람을 마셔야 살 수 있는 목숨이기 때문입니다. 나한테 밥이나 소금이나 물이 없어도 살 수 있으나, 나한테 바람이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나는 밥을 달포쯤 끊거나 소금이나 물을 열흘이건 보름이건 입에도 못 댈 수 있습니다만, 바람 한 줄기는 1초라도 끊을 수 없습니다.



.. 여기 황폐한 문지방이며 무너진 흙담을 / 일으키어 내 출렁이는 바닷과 별들과 / 유성이 되어도 좋은 밤을 맞고 싶다 ..  (가벼운 섬 1)



  꽃이 핀 나무 곁에 서서 꽃바람을 마십니다. 꽃바람을 마시면서 생각합니다. 꽃바람이란 이처럼 향긋하고 놀랍구나. 꽃바람을 마시면서 나뭇줄기를 쓰다듬습니다. 네가 나한테 이렇게 놀라우면서 멋진 바람을 베풀어 주니, 너는 나한테 아름다운 님이로구나.


  꽃바람을 나누어 준 나무한테 입을 맞춥니다. 아직 꽃몽우리가 터지지 않은 나무 옆에도 서서 나뭇줄기를 살살 어루만지다가 입을 맞춥니다. 어떤 나무이든 모두 사랑스러우면서 아름답거든요.



.. 매일 내분이 이는 종로 오가 / 기독교연합회관 십층에서 나는 책을 만든다고 / 죽을 쑤는데 옆건물 기독농민회에서 머리에 붉은 두건 / 두른 전대협 예수들 연좌농성, 퇴근 시간 다되도록 일렁이고 ..  (개방 압력)



  김신영 님이 선보인 시집 《화려한 망사버섯의 정원》(문학과지성사,1996)을 읽습니다. 김신영 님이 선보인 시집에는 김신영 님이 누린 삶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김신영 님이 지은 웃음과 눈물이 드러나고, 김신영 님이 바라본 이웃과 동무가 드러납니다.


  웃음과 눈물은 좋은 웃음이나 나쁜 눈물이 아닙니다. 그저 웃음과 눈물입니다. 이웃과 동무는 좋은 이웃이나 나쁜 동무가 아닙니다. 모두 그대로 이웃과 동무입니다.


  좋은 시가 있을까요? 나쁜 시가 있을까요? 독재부역을 하지 않았으나 맹숭맹숭한 시라면, 이러한 시는 좋은 시일까요? 맛깔스럽게 빚었으나 독재부역을 한 시라면, 이러한 시는 나쁜 시일까요?



.. 소풍 가는 학생들 쏟아져내리고 / 지하철 환승역 나갈 출구가 없다 // 역은 최상의 포화 상태, 긴 줄을 세우는 거대한 / 공포의 특급 놀이시설이 된다 아무도 나갈 수 없다 / 역무원은 목이 쉰 호루라기를 쉭쉭 불어대고 ..  (환승역에서)



  이곳에서 시가 태어납니다. 다른 곳이 아닌 이곳에서 시가 태어납니다. 흔히들, 사진은 바로 오늘 이곳에서 찍는다고 말하는데, 사진만 바로 오늘 이곳에서 찍지 않습니다. 시도 바로 오늘 이곳에서 태어납니다. 바로 오늘 이곳에서 글쓴이 스스로 겪고 느끼고 생각하고 사랑하고 아파하고 한숨쉬고 노래하고 춤추고 짝짓기를 한 모든 이야기가 시라는 옷을 입고 새롭게 태어납니다.



.. 아산만까지 따라온 詩集은 / 산보다 바다보다 넓어 보였다 ..  (復原)



  시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은 사진을 읽을 줄 압니다. 사진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은 시를 읽을 줄 압니다. 시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은 만화를 읽을 줄 압니다. 만화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은 시를 읽을 줄 압니다. 시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은 동화를 읽을 줄 압니다. 동화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은 시를 읽을 줄 압니다.


  그러니까, 시는 읽되 사진이나 만화나 동화를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이라면, ‘시읽기’를 겉훑기로만 한다는 뜻입니다. 사진이나 만화나 동화를 읽을 줄 아는 넋이나 마음이 될 수 있어야, 비로소 시를 읽으면서 아름답게 사랑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 새는 구름을 부르며 하늘에 오르고, / 나는 노래를 부르며 꿈에 오른다 ..  (마른 종자 활동 장치)



  문학평론을 쓰는 이들은 사진을 찍을까요? 문학비평을 하는 이들은 만화책을 읽을까요? 문학평론을 쓰는 이들은 아이를 낳아 말을 가르칠까요? 문학비평을 하는 이들은 갓난쟁이한테 젖을 물리거나 기저귀를 갈거나 하면서 아이와 함께 삶을 지을까요?


  우리는 평론이나 비평을 하기 앞서 삶을 먼저 지을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시를 쓰거나 읽기 앞서 삶을 먼저 가꿀 줄 알아야 합니다.


  삶이 없이는 아무런 평론이나 비평이 나올 수 없습니다. 삶을 모른다면 어떠한 시도 쓸 수 없습니다. 삶이 없다면 빈 껍데기일 뿐입니다. 삶을 모른다면 헛소리일 뿐입니다.



.. 고속도로에 들어선다 / 길은 많지만 / 나는 고속도로를 탄다 / 통행료를 지불하고서 / 고속으로 달릴 수 있는 권한 누린다 / 신호등에 걸릴 염려 없는 곳 / 브레이크를 밟지 않아도 되는 곳 ..  (고속도로)



  좋은 삶은 없습니다. 좋은 시는 없습니다. 그저 삶이 있고, 그예 시가 있습니다. 나쁜 삶은 없습니다. 나쁜 시는 없습니다. 그대로 삶이요, 고스란히 시입니다.


  이곳에서 시가 태어나고, 이곳에서 시를 읽습니다. 이곳에서 시를 노래하고, 이곳에서 시를 사랑합니다. 4348.3.24.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h*******e 2015.03.2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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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8월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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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을 맞이하며..... 8월은 역시 찬란하거나 화려하다. 모두 마음이 휘날리고 더한 환희에 차 있으니 말이다. 여행을 떠나고 다음의 마디를 위해 최선을 다하려는 심정이 아름답기만 하다.   시원한 나무그늘에 굳히 이의를 달지 않더라도 찬란하기 그지없다. 중요한 것은 그 주위를 맴도는 자신의 피력이다. 수용치 못한 이질된 마음을 갖고도 이 시련속에 피어나는 연꽃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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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을 맞이하며.....

8월은 역시 찬란하거나 화려하다.

모두 마음이 휘날리고 더한 환희에 차 있으니 말이다.

여행을 떠나고 다음의 마디를 위해

최선을 다하려는 심정이 아름답기만 하다.

 

시원한 나무그늘에 굳히 이의를 달지 않더라도 찬란하기 그지없다.

중요한 것은 그 주위를 맴도는 자신의 피력이다.

수용치 못한 이질된 마음을 갖고도 이 시련속에 피어나는 연꽃향기를

맡으려하니 많은 고뇌는 교차한다.

 

헤메어 나붓김은 사실 그리 총명한 사고는 아니나

자신을 본연에 맡기는 것이야 행복이지 싶다.

행복을 각기 다른 그릇에 넣고 서로 다른 실체로 바라본들

결국은 사실적 자기 허무에 빠지기 싶다.

 

인생의 수렁을 알고 그것이 자신만이 탈출할 기회로 알아

이상을 뒤집는 괴로움을 맛보아야 하니 말이다.

이질의 이반은 마치 격정된 파고와 같아 모든 이상을 뒤집는다.

폭풍처럼 뒤집히고 수위의 댐처럼 범람하고 만다.

 

당신은 최후에 누구를 사랑 할수 있는가?

당신의 마음속에 깊이 간직할 이유된 남김은 있는 것인가?

피어나는 것이 사랑이다.

정체되 고갈되는 갈등의 사랑은 종속의 생존력 뿐이다.

 

자유롭고 그리고 이별에 오해 없으며 항상 구속치 않은

나래의 펄럭임 같은 이상 전부의 진실뿐 이다.

고요히 눈을 감고 영원히 간직하여 다음의 잔재를 넘을

부드러운 이해의 강밑에 사는 물결 같은 것이다.

 

굳이 잔재에 허덕이거나 그런 회한으로

자신을 나무라면 결과는 회의만이 가득하다.

누군가는 떠나거나 문득 현실을 직시한 이질된 사고를 펴거나

마음에 상처는 남기어 지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소신이 묻히거나 등한히 하여

후회에 사로 잡힐때 가장 아픈 허무를 느낀다 한다.

허무란 지나간 자리에 남긴 흔적 이지만

그것은 자신의 허물된 그림자와 같다.

 

왜냐면 세상의 속절없는 질주나 그릇된 욕망은

언젠가 자신에게 반영으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세상은 영원이나 전부같은 망상은 어쩜 허울의 한편인지 모른다.

우리의 삶과 그 주변이 알게 모르게 변하면서도

자신이 변하지 않도록 주술을 걸어 놓은듯 사니 말이다.

 

변화....그것은 운명이나 숙명을 결정 기도 하지만

극복하지 못할 필연은 아니다.

변화에 무디어 지면 훨씬 인간스러워 진다.

이질된 자신의 사고에 이반이 일지 않고 그러하듯 세상을 살아가니 말이다.

 

아......

모든걸 떠나 보내려 하고 있다.

소중한 것도 가장 믿던 신의도 그러하다.

그런 이유는 그 누구도 변화 앞에 자신의 숙명을 개척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마음을 비움은 비움 자체보다 그 많은 잔재더미의 언덕을

넘어야 하기에 많은 이반을 갖어오기 마련인가 보다.

변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거짓과 허울은 결국 자신의 초라한 치부를 들어내고 만다.

 

자신의 선각에 후회치 않으려거든 순간에 치중하라.

지나감은 다 초라해 보이는 법이다.

지나감을 羨慕함은 곧 자신의 초상아래 후회를 자처 하는 꼴이다.

기만은 결국 자신의 목적인 이기의 이빨을 드러 내리라 .

 

이해와 진실로 자신을 위로 하면 언젠가는 최후의 본연이 반길 것이다.

우리들의 초상은 지남의 바랜 장미꽃 잎새를 먹고 산다.

마디의 회한을 덮으려는 어리석은 믿음은 욕망을 인정치 않으려는 기만이다.

아름다운 석양처럼 희석해 나가는 본연의 진실을 찾아 나서자.

 

기만이든 만용이던 그 순간의 거래는 이루어 맺어 졌음으로 인생은 그러하다.

누구든 기회의 도약으로 그만한 아픔과 바꾼 모든 거친 희망을 질주하길 빈다.

그 잔재를 지우며 도약의 다음마디나 순간에 최선을 다 하는 것이다.

환희로우며 희귀로운 마음의 병은 오랜 잔재의 몸부림이다.

 

아스팔트 틈새에도 꽃은 핀다.

고뇌와 인고 속에 다시 태어남이 아니런가?

8월은 휴가와 함께 더욱 더욱 환희의 숨을 들이쉰다.

물론 그 속에 나도 있지만 역시 영혼은 가라앉은 수면위를 찬탈 할수 없다.

 

범람한 수위의 댐이 생각나고

새로운 인연의 설레임이 교차하기 때문이다.

나비의 펄럭이는 나래 품에 우린 회상을 먹고 살지만

다신 잔재된 먹이를 동경치 않으리라.

 

본연.......

초연의 그대로 나를 반기면 마지막 자신의 희망이 생각나리라.

모두가 따나가고 아니 모두를 떠나보냈지만

역시 삶은 외로운 혼자가 아닌가?

 

전부나 진실은 없다 알면서도 우린 그러하기를 바란다.

그냥 굴레안에 헤메이는 가련한 나비 한마리라 말하긴

너무 간절하고 초라치 않던가?

순간을 잊지 마라.

 

숱한 자신의 삶을 만회하는 방안은 갖찮은 순간에

무뢰치 말고 진실된 본연 앞에 서야 한다.

그래야 삶에 허망이라는 큰 굴레를 짊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많던 생각과 영화 그리고 멈추지 않던 질주는 어디 갔는가?

 

마치 뒤물린 초라함으로 자신을 혹사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함은 가해자가 아닌 말 그대로 그러함에 감춘 안개빛 환상이라 생각하라.

삶은 파스텔 바랜 초작만으로 완성할 순 없다.

간혹 그렇게 우린 바랜 모습으로도 멈추지 않은 심장의 소리를 엿듣고 있다.

 

아주 비밀스런 가느다란 심장 소리로 그대의 슬픈 마음을 만지고 싶다.

아무일 없듯 오늘도 내일도 변화의 소리에 귀 기우려 보련다.

아....8월은 환희스럽기만 하다.

수렁에 잠긴 달처럼 마음의 희비는 아직도 나의 주위를 맴돌게 하는구나.

h*****k 2013.08.02. 신고 공감 0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