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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줌의 허기로 생을 수락한다
"나는 한 줌의 허기로 생을 수락한다" 내용보기
내가 일상적으로 받아들이는 현실만이 내게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현실 속에 살고 있지만 또한 현실이 아닌 다른 곳을 향한 열망으로 살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열망하는 현실 아닌 어떤 곳은 천국과 같은 곳은 아니다. 모든 현실의 고난과 죄악을 씻어버린 절대적 아름다움의 세계. 그런 곳을 꿈꾼다면 열망이 아니라 망상일 따름이다. 왜인지 잘 설명할 수 없지만, 나는 오히려 나를
"나는 한 줌의 허기로 생을 수락한다" 내용보기
내가 일상적으로 받아들이는 현실만이 내게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현실 속에 살고 있지만 또한 현실이 아닌 다른 곳을 향한 열망으로 살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열망하는 현실 아닌 어떤 곳은 천국과 같은 곳은 아니다. 모든 현실의 고난과 죄악을 씻어버린 절대적 아름다움의 세계. 그런 곳을 꿈꾼다면 열망이 아니라 망상일 따름이다. 왜인지 잘 설명할 수 없지만, 나는 오히려 나를 공포와 억압 속에 몰아 넣는 꿈과 함께 산다. 나는 악몽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거기엔 죽음마저 준비되어 있다. 내가 어디에도 가지 못하기 때문에, 어디라도 갈 수 있는 꿈을 꾸는 것일까. 여행을, 결국은 '여기'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여행을, 나는 열망하고 있는 것이다. 흔히 '다시 여기', '다시 현실로' 라고 말한다. 구체적으로 일상을 꾸려 나가는 현실로 향하는 손짓이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이야기일까. 존재하는 것들만 의미를 가지는 유물적 세계. 유물론자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유물적 세계에 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럴수록 가끔 일탈하는 움직임은 소 중하다. 그러한 일탈의 정점은 죽음이다. 생명이 없는 것들은 죽음과 무관 하게 존재한다. 그러나 생명이 있는 것들은 죽음과 함께 자기의 존재를 거두어 간다. 화석이나 미이라, 박제 같은 것은 생명 넘어로 존재하는 것일까. 아마도 사라지지도 못하는 외로움이나 부질 없는 집착이나,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한 순교가 아닐까. 나는 윤의섭과 한 권의 시집을 같이 호흡하며 생으로부터의 일탈을 열망하는 나의 악몽과 손을 맞잡을 수 있는 윤의섭의 음영을 만났다. 서글펏던 거지, 생의 무게가. 그래서 무게 없이 검게 늘어져 누운 그림자 하나를 끌고 다니는 것이겠지, "나는 너무 초라하고 / 나는 너무 나약하므로"([바다 의 유전]). 또한 지독한 일상이고, "만 년 뒤에도 그들은 똑같은 하루를 반복한다"([城]), 그게 싫기도 했고, "살생을 거듭하면서 그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 대신 죽일 것을 찾아다녀야 하는 자신이 싫어서일지도 모른다" ([가족사]). 이젠 생이 너무 피곤한 것이다. "그리고 보니 사람들은 꽤 오랜 세월을 서 있었다"([뱀술]). 피곤한 직립이 빨리 지나가기를, 눕고 싶다. 그러나 금지된다. "저쪽은 금지 구역이었다 / 너무 오랜 세월 동안 /그는 금지 구역을 빠져나오려고 계속 길을 걸었다"([나무 밑에서]). 이러나 저러나, 생은 생이로되, 나는 그대들이 외롭고 내가 외로운 것이었지. "오직 혼자 깨어난 아침이 있을 뿐"([깨어나지 않는 사람들]). 사랑이, 같이 깨어날 수 있는 육체를 내 옆에 놓아 준다고 해도, 여전히 나는 혼자 깨어난 아침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겪는 근원적인 외로움의 양상일 것이다. 반복되는 계절과 계절의 미끄러짐 사이에서 감정을 담금질하여, 뜨겁게 달았다가 식었다 하여, 결국 너를 찌를 수 있는 차갑고 날카로운 검을 가지는 것이다. 그건 비극이다. 내 속에서 단련되어 가는 차가운 검을 제거하는 방법은, 뜨거운 감정으로 생을 사랑한다느니 너를 사랑한다느니 하는 것보다, 오히려 차갑게 세상을 대하는 것이다. 그러면 크게 다칠 검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윤의섭의 건조한 어조와 세상 아닌 것들에 대한 열망들 속에 은밀히 펼쳐지는 음험한 손길이 있는데, 그것은 빌어먹을 생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가 아닌 곳, 혹은 적극적으로 죽음에 경도되어 있는 듯 하면서도, 그러한 상황을 설명하는 건조한 어투 밑에는, 잘 건조되지 않는 것을 건조 시키는 흡입력이 있다. 그래, 누구라도 어쩔 수 없는 거야, 그렇다면 정말 어쩔 수 없는 채, 나는 나의 생을 살겠다는 미묘한 의지의 반향. "그러나 이미 몸을 피할 나무는 없었다 / 그는 그대로 들판에 서 있기로 했다"([나무 밑에서]). 내가 약하니까, "잠시나마 멈칫해야 해 / 세월은 그렇게 살아 내는 것"([바다의 유전]). 대신 울어 주고 싶다. '세월은 그렇게라도 살아내는 것'에서 '라도'를 지우고 한참을 울었을 것이다. 그래서 건조하다. 그래도 '사는 것'은 아니고 '살아내는 것'이다. 애초에 알 수 없는 것, 세상, "내 시력으로는 그저 흐릿하게 보일 뿐인 세상 / 그게 제대로 된 느낌일지 모른다"([한 오백 년]). 보이는 만큼만 살아가는 것. 내가 다가오는 사람들과만 사는 세상. "아직 나를 구원하려고 달려온 사람은 없어"([말괄량이 삐삐의 죽음]). 그러나 타인, 나를 구원하지 못한다. 누가 구원의 손길을 내밀 수 있을까. 구원을 기다리는 것은 영원히 허기진 욕망일 뿐이다. 인간을 구원한다는 신이라는 신은 모두 인간이 죽은 다음 어찌 손을 써보기나 할 것 같다. 그러다면 인간에게 구원은 영원한 허기에 다름 아니다. 끄덕이며, 고개를 숙이고, 눈물은 감추고, '생은 다른 곳에'를 나지막히 뇌까리며, 그러나 바로 '여기'를 걷는 것. 생의 의미에 대해, 수락하고 싶지 않은 진리, 그러나 가장 분명한, '그래 아무 의미도 없어 그냥 나는 여기에 서 있을 뿐이야'. 윤의섭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윤의섭의 말대로 인간은 오랜 직립 때문에 너무 지쳐 있다. 직립 덕분에 얻은 많은 것들로 인해 광폭한 피로감을 얻었다. 피곤하다, 자고 싶다. 악몽을 꾸고 싶다.

[인상깊은구절]
별것 아닌 손짓 발짓만으로 스릴 넘치는 액션도 없이 하지만 삐삐를 보면 슬펐다. 세상의 악에 홀로 맛서는 천진한 아이 주근깨와 코가 말린 큰 신발을 보면 가슴속에서부터 저며오는 눅눅한 우울 언젠가 소풍 갔을 때 나는 요구르트 병에 살려달라고 적은 나뭇잎을 넣어 시냇물에 흘려보냈었다. 아직 나를 구원하려고 달려온 사람은 없어 넓은 바닷가 한 알갱이 모래를 줍는 일이란 실제로 삐삐는 죽었다고 했다.
s****e 2000.11.09.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