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렸을 때 세계 전래동화 같은 걸 무척 좋아해서 꽤 많이 읽었습니다. 이 시리즈를 펴들 때 기대한 것도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고요. 하지만 읽어나가면서, 민담=동화라는 뭘 모르던 시절의 환상은 깨지더군요.
물론 기존 동화책에서 봤던 것과 유사한 이야기들도 많아요. 하지만 몇몇 이야기에서 받은 쇼크가 그 익숙함을 뒤덮어 버리는군요. 한때 유행했던 ‘어른을 위한 잔혹동화’ 같은 류의 책들 생각도 나고. ‘장님 왕비 셋’ 같은 경우를 보면, 유모의 모함을 받아 세 왕자비가 쫓겨납니다. 그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은 장관은 안된 마음에 죽이지 않고 그들의 눈만 빼내가죠.(여기까지는 익숙한 이야기 유형입니다.) 세 왕자비는 산중에서 아기를 낳지만, 눈이 안 보이는고로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하고... 결국 제비뽑기를 해서 걸리는 사람의 아기를 식량으로 삼기로 합니다! 두 왕자비의 아기를 먹고, 마지막 남은 막내 왕자비는 아이를 데리고 도망쳐, 결국 사냥을 할 만큼 자란 그 아이의 부양을 받다가 나중에 왕궁으로 돌아가 진실이 밝혀지고 나쁜 유모는 처벌받는다는 결말인데... 이게 과연 해피엔딩인 건지 모르겠어요. 워낙 영아사망률이 높던 옛날이라 아기들의 목숨은 그렇게 중히 여겨지지 않았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아, 동화적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예상을 깨는 몇몇 이야기는 조금 아쉬우면서도 참신했어요. ‘첫 번째 칼과 마지막 빗자루’에서는 딸만 둔 아버지의 위신을 살려주려 프랑스 왕의 지팡이와 왕관을 가져오는 내기에 응한 막내딸이 남장을 하고 프랑스 왕궁에 들어가 하인으로 일합니다. 그런데 프랑스 왕이 이 남장 소녀에게 빠지게 되어, 그녀가 여자임을 확신하고 그걸 밝히려 애쓰지요. 이쯤 되면 당연히 프랑스 왕과 맺어지면서 해피엔딩이 되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겠어요? 전혀 아니더군요.(읽을 분들을 위해 결말은 밝히지 않으렵니다) 로맨스가 부족한 게 조금 섭섭하긴 하지만, 요즘의 웬만한 정치적으로 공정하게 쓴 동화보다 한수 위가 아닌가 싶어요.
이 시리즈의 몇몇 편은 비슷한 유형의 이야기가 많이 실려서 읽으면서 좀 지루해지기 쉬웠거든요. 이 ‘이탈리아 편’은 대체로 다양한 유형의 이야기들이 실렸고, 재미도 있는 편입니다.
몽골편인가? 를 읽을 때도 느꼈지만,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얘기에도 그 얘기를 말하고 듣는 이들은 여전히 헐벗고 굶주린 민중임을 느끼게 하는 마지막 문장이 좀 가슴 아프더군요.
편집이나 크기 등은 다 보기 좋은 편인데, 가끔 오자가 보여서 책상태 별 하나를 깎았습니다. [인상깊은구절] 그래서 그들은 행복하고 즐겁게 살았는데 우리에겐 먹을 것 하나 없다. |
|
4.0
지금까지 이 시리즈 9권을 읽었는데 가장 흥미진진했던 책입니다.
8권 프랑스 편에서처럼 각 지방별로 이야기를 분류해뒀습니다.
1-10권은 동시에 발행된 것으로 보이는데(2003년 9월) 결국 각권의 편집자에 따라 질이 달라졌다는 것을 의미하네요.
사실 지방별로 표시한다는 것은 그만큼 더 원전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사실여부와는 상관없이. 물론, 제 블로그의 [합본]에 가서 보시거나 실제로 책을 읽어보면 유럽권의 다른 나라에서 보던 민담과 대동소이한 것들을 여럿 보실 수 있습니다. 민담이라는 것은 사람을 따라 이러 저리 흘러가기 마련이니까요. 할아버지/할머니가 손자에게 이야기할 때 기억이 흐릿해지면 수정할 수도 있고, 내용이 뭐하면 첨가할 수도 있고 그런 게 이야기니까요.
이탈리아는 수백년에 걸쳐 지역마다 다른 민족이 정착해서 살은 곳이고, 또 국제 정세변화에 따라 지도부가 달라지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므로 각 지역마다 다른 이야기가 내려오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아무튼 9권 중에서는 제일 나은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