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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22
삶을 사랑하는 시골노래 ― 개구리 울던 마을 이오덕 글 창작과비평사 펴냄,1981.6.15.
여름 날씨가 덥습니다. 햇볕이 후끈후끈 온누리를 내리쬡니다. 우리 식구 살아가는 전남 고흥은 날마다 불볕입니다. 그래도 불볕 사이사이 후욱 끼치는 시원한 바람 감돌면서 땀을 식힙니다. 바람이 꾸준히 불면 더 시원할 텐데, 한여름이라 그런지, 더위를 실컷 누리라는 뜻인지, 한 번 휘익 시원스레 바람이 감돌고 나면 이내 잦아들곤 해요.
다른 곳은 어떠할까 궁금합니다. 다른 시골도 빗방울 거의 안 들으면서 햇볕이 쨍쨍 내리쬘까요. 다른 시골도 소나기 죽죽 내리다가 그치면 다시금 햇살이 고개를 내밀면서 온 들과 숲을 뜨끈뜨끈 덥힐까요.
도시는 어떠할까요. 자동차도 사람도 건물도 가장 많은 서울은 어떠할까요. 서울을 둘러싼 크고작은 도시는 어떠할까요. 부산이나 대구는, 광주나 대전은, 또 바닷가 따로 공장 빼곡한 인천이나 울산이나 안산 같은 곳은 이 여름날 어떤 날씨일까요.
.. 먼 남쪽 하늘 / 눈 덮인 산봉우리를 넘고 / 따스한 입김으로 내 이마에 / 불어어노러 .. (봄아, 오너라)
더운 여름 날씨는 사람을 괴롭히는 날씨가 아닙니다. 사람을 괴롭히고 싶어 후끈후끈 무덥지 않습니다. 풀과 나무가 푸르게 자라라는 더위입니다. 숲이 한껏 우거지라는 땡볕입니다. 바다가 깊이깊이 파랗게 아름다우라는 더위예요. 하늘이 새파랗게 빛나라는 더위입니다.
추운 겨울 날씨는 사람을 들볶는 날씨가 아닙니다. 사람을 들볶고 싶어 오들오들 춥지 않습니다. 풀과 나무가 고이 쉬라는 추위입니다. 숲이 고즈넉히 쉬면서 새 한 해 맞이하라는 추위입니다. 바다도 하늘도 모두모두 마알가니 하얗게 빛나라는 추위입니다.
.. 진달래야! / 그리도 이 땅이 좋더냐? / 아무것도 남지 않은 헐벗은 이 땅이 / 그리도 좋더냐? .. (진달래)
먼먼 옛날부터 사람들은 흙에 깃들어 살았습니다. 먼먼 옛날부터 사람들은 흙에서 자라는 풀을 먹고, 흙에서 자라는 나무를 얻어 살았어요. 먼먼 옛날부터, 참말 아스라히 먼먼 옛날부터, 사람들은 숲에서 보금자리를 마련했고, 숲에서 먹을거리를 얻었으며, 숲에서 이야기꽃을 피웠어요.
오늘날은 거의 다 도시사람이요 시골사람은 얼마 없습니다. 오늘날은 거의 다 도시에서 회사원이나 노동자 구실을 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스스로 흙을 만지는 일이 드물고, 하루 스물네 시간 가운데 흙을 쳐다볼 겨를이 1분조차 없기 일쑤입니다.
아파트에서 나와 자가용을 타거나 버스를 타거나 전철을 타고 일터로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흙 한 줌 만지거나 밟지 못해요. 흙이 있는 곳을 구경하거나 들여다볼 틈이 없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제아무리 도시에서 살아가며 도시내기가 된다 하더라도 ‘흙에서 자란 풀’을 먹습니다. 벼(쌀) 또한 흙에서 자란 풀 가운데 하나예요. 흙이 없으면 벼가 자랄 수 없어요. 빵(밀) 또한 흙에서 자란 풀로 굽습니다. 흙이 없으면 빵을 구울 수 없어요.
감자도 옥수수도, 이를테면 햄버거와 피자도, 튀김닭이건 소시지이건, 흙이 없는 터전이라면 어느 한 가지도 얻을 수 없어요. 흙이 있어야 돼지우리나 닭우리를 마련하고, 흙이 있어야 닭이건 돼지이건 돌보지요. 흙이 있어야 돼지똥이나 닭똥을 치울 수 있고, 흙이 있어야 냇물이 흘러 모든 목숨이 살아갈 수 있어요.
.. 용이, / 너의 소매에서 찔레꽃 냄새가 난다. / 너의 책보자기에서 감꽃 냄새가 난다. / 바짓가랑이에서도 무슨 풀 냄새, 꽃 냄새가 난다. // 용이, / 너의 두 손바닥은 오디 물이 들었구나. / 입술 언저리에도 보랏빛이 들었구나. / 귀에는 뻐꾹채꽃이 꽂히고 .. (용이, 너의 소매에서)
곧, 흙이 있는 곳에 물이 흐르지, 흙이 없는 곳에 물이 흐르지 않습니다. 도시에서도 한강이 흐르기는 하지만, 한강물을 곧바로 떠서 마시지는 못해요. 서울을 가로지르는 한강물은 사람들이 두 손으로 떠서 마실 만 하지 않습니다. 마실 수 없는 냇물이 커다랗게 흘러요. 마실 수 없는 냇물을 그저 바라보거나 곁에서 자동차를 달려요.
깊은 멧골에서 솟은 물줄기가 가늘게 흘러 졸졸졸 골짝물이 되고 냇물이 되며 바닷물로 이어져요. 냇물이 흐르는 동안 갯벌로 이것저것 실어 옮기면서 갯벌을 축축하게 적십니다. 갯벌은 먼 멧골부터 흘러온 여러 가지가 내려앉아 수많은 목숨이 저마다 다른 삶을 일구는 터전이 됩니다.
사람은 갯벌이 있어 조개를 얻고 굴을 얻습니다. 사람은 갯벌이 있어 낙지를 잡고 온갖 바닷것을 얻습니다. 바다에서 물고기를 낚고 여러 가지를 캡니다. 바다에서 김과 미역을 얻고 파래와 톳뿐 아니라 매생이를 얻습니다.
바다가 싱그럽지 않으면 바닷물고기를 못 먹습니다. 바다가 정갈하지 않으면 사람은 소금조차 못 얻습니다. 깨끗한 바다에서 깨끗한 소금이요, 깨끗한 바다에서 깨끗한 숨결이 퍼집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바닷가에 척척 아파트를 세워요. 바다를 빙 둘러 ‘바닷가 일주도로’를 닦아요. 바닷가를 시멘트로 막아 해수욕장을 만들지요. 바닷가에 호텔을 짓고, 바닷가에 식당이나 유흥업소를 세웁니다.
.. 그렇다, 진흙 구덩이에 빠져 헤어나지 못해 / 기진한 청개구리 한 마리, / 내가 살려 준 그 조그만 목숨이 / 지금은 풀잎 위에 앞발을 모으고 앉아 / 반짝이는 이슬 방울을 핥고 있겠지! // 숙제를 못해 꾸중을 들을 일도 참자. / 회비를 못 낸 일도 괴로워 말자. / 크레용 못 사는 걱정도 / 급장과 싸운 어제의 일도 / 까짓 것 구지레한 일 바람같이 지나가라 .. (학교 가는 길)
바람이 맑아야 숨을 즐겁게 쉽니다. 바람이 맑지 않으면 숨쉬기가 즐겁지 않습니다. 지하철에서 숨을 쉴 때에 얼마나 즐거울까 생각해 봐요. 꽉 찬 버스에서 얼마나 즐겁게 숨쉴 만한지, 사람들 북적거리는 지하상가나 백화점에서 얼마나 즐겁게 숨을 쉬는지 곰곰이 돌아봐요.
사람도 개도 고양이도 숨을 쉽니다. 소도 비둘기도 제비도 숨을 쉽니다. 귀뚜라미도 매미도 지렁이도 숨을 쉽니다. 나비도 벌도 개미도 숨을 쉽니다.
숨을 쉬지 않으면 모두 죽습니다. 숨을 쉬기에 모두 살아요. 숨을 쉬면서 저마다 아름다운 숨결 건사해요. 숨을 쉬는 동안 서로서로 환하게 웃어요.
그러니까, 햇볕과 흙과 물과 바람, 이렇게 네 가지가 사랑스레 있을 때에 사람들은 사랑스레 살아갈 수 있어요. 여기에 풀과 나무와 숲이 사랑스레 어우러질 때에 사람들은 사랑스레 어우러질 수 있어요. 햇볕과 흙과 물과 바람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데에서는 사람다움을 지키기 어렵습니다. 풀과 나무와 숲을 넓고 깊게 누리지 못할 때에는 사람답게 착하거나 참다운 길 걷기 어렵습니다.
.. 너희들은 마룻바닥에 꿇어앉는 대신 / 길가에 먼지를 덮어쓰고 서서 / 언제나 사람들이 짐짝같이 실려 가는 차를 / 보고 있어야 하고 / 책 보퉁이보다 무거운 걱정을 한아름씩 / 안고 다니는 아이들을 / 보고 있어야 하는구나 .. (가로수 포플러)
이오덕 님 동시를 그러모은 《개구리 울던 마을》(창작과비평사,1981)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쓴 동시를 모은 이 동시집 이름은 “개구리 울던 마을”입니다. “개구리 우는 마을”이 아닙니다.
이오덕 님은 왜 “개구리 우는 마을”이 아닌 “개구리 울던 마을”을 노래했을까요. 1950∼1980년대는 어떤 나날이었기에 “개구리 우는 마을” 이야기가 아닌 “개구리 울던 마을” 이야기가 흘러야 했을까요.
가만히 살펴봅니다. 1980년대로 접어드는 나날은 그야말로 온 나라 곳곳에 “개구리 울던 마을”로 바뀌는 무렵입니다. 1990년대를 지나 2000년대와 2010년대에는 “개구리를 생각하지 않는 마을”로 바뀝니다. 이중창이니 삼중창이니 무슨무슨 창문이니 해서 바깥소리 꽉 닫아거는 오늘날, 개구리가 울든 귀뚜라미가 울든 거의 못 듣거나 안 듣기도 합니다. 바깥에서 개구리가 울더라도 마루에 켜 놓은 텔레비전 소리가 훨씬 크겠지요. 둘레에서 귀뚜라미가 울더라도 손전화로 떠드는 소리가 아주 크겠지요.
.. 까만 옷을 입고 다녀도 / 깨끗한 풀만 먹는 염소야, / 깨끗한 풀만 먹는 염소야, / 너는 그래서 겨우 손가락만한 / 뿔을 두 개 길렀느냐? // 조심스레 깨끗한 땅만 밟고 다니며 / 언제나 서먹서먹 나를 대하는 염소야, / 가랑잎이 바스락거려도 너는 놀라더구나 / 강아지가 달려와도 너는 비켜서더구나. / 너는 너무도 착해서 / 촌스런 수염을 달고 다니지 .. (염소)
아침에 풀을 베다가 문득 까마중 열매를 만납니다. 올해 까마중 열매는 언제부터 맛보는가 하고 요즈음 생각했는데, 바로 오늘부터 맛보는군요. 아침 차리기 앞서 토독토독 따서 두 아이한테 두 손 가득 나누어 주고 나는 한 알만 입에 넣습니다. 햇볕 듬뿍 받으며 자란 까마중풀이 맺은 싱그러운 열매를 가만히 떠올립니다.
나는 도시에서 살던 때에도 으레 까마중 열매를 따서 먹었습니다. 나즈막한 5층짜리 아파트로 이루어진 동네 한쪽 꽃밭이나 울타리에 까마중풀이 올라오기 마련이었고, 동무들과 새까만 열매 찾아다니느라 바빴어요. 시골처럼 온갖 들꽃과 들열매 가득하지는 않다 할 만하지만, 학교 꽃밭에서 사루비아 꽃물 빨아서 먹고, 동네 곳곳에서 까마중 열매를 훑어 먹었습니다.
요즈음 시골에서는 까마중풀을 여느 잡풀로 여겨 몽땅 베어 없앱니다. 까마중 열매 훑을 만한 아이들이 거의 다 사라지기도 했고, 까마중 열매 애써 맺혔어도, 마을 할매나 할배가 이 열매를 훑어서 자시지는 않습니다. 조그맣게 하얀 눈송이처럼 터지는 까마중꽃 물끄러미 바라보며 환하게 웃는 아이들은 참말 모두 어디로 갔을까요.
.. 나 또한 이 아침 어느 길가에서 / 한 송이 꽃으로 피고 싶구나 .. (코스모스꽃)
1981년에 태어난 동시집 《개구리 울던 마을》을 읽으면, 1950∼1980년대 사이에 시골을 떠나 도시로 가고픈 아이들과 어른들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사랑받지 못하며 괴로운 아이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들과 숲에서 맑게 웃음짓는 모습을 볼 수 있고, 가슴속에서 피어나는 사랑꽃을 보듬는 손길을 마주할 수 있어요.
아이들과 함께 누리는 동시이기에 아이들 살아가는 모습을 만납니다. 다른 동시인은 으레 도시에서 살아가며 도시에서 넌지시 구경하거나 스쳐 지나가는 시골 모습을 그린다면, 이오덕 님은 멧골자락에서 살아가는 아이들과 어우러지면서 늘 부대끼는 시골마을 아이들 모습을 그립니다.
일하는 아이들을 그리고, 놀이하는 아이들을 그려요. 노래하는 아이들을 그리고, 동생을 보살피는 아이들을 그려요. 여기에, 밥을 짓고 흙을 만지는 아이들 삶을 그립니다.
.. 밥을 짓는다. / 아궁이에 불을 피운다. / 내가 끌어 온 가랑잎 불살개 / 한아름 넣고 / 스윽, 성냥을 긋는다 .. (불을 피우면서)
아이들은 어떤 동시를 읽을 적에 마음을 곱게 북돋울까요. 아이들은 어떤 동시를 만나면서 꿈을 살찌울까요. 아이들은 어떤 동시를 들을 때에 생각을 활짝 열까요. 아이들은 어떤 동시 하나 가슴으로 품으면서 이야기 한 자락 얻을까요.
학교는 배우는 곳입니다. 학교는 윽박지르는 곳이 아닙니다. 학교는 가르치는 곳입니다. 학교는 성적과 숫자로 아이들을 줄 세우는 데가 아닙니다.
학교에서 아이들한테 가르치는 교과서에는 어떤 동시가 실리나요.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며 어떤 동시를 외워야 하나요.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어떤 동시를 읽히려 하나요. 어른들은 아이들 마음밥이 될 동시를 어느 곳에서 쓸까요.
.. 선생님이 통지표를 가지고 들어오신다. / 아이들이 와아! 하고 고함쳤다. / 나도 와아! 소리쳤다. / 소리쳐 놓고 나니 부끄럽다. / 뭣 때문에 내가 와아, 했는가? / 반갑지도 않은데 괜히 그랬구나. / 따라서 와아 했구나 싶다. / 나는 성적이 나쁘다. / 1학기 때도 ‘우’는 없었고 / ‘양’이 두 개나 되었다. / 집에 가면 언제나 숙제 대신 / 일만 하니 어쩔 수 없다 .. (통지표)
예쁘장한 말마디를 엮는대서 동시가 되지 않습니다. 웃고 떠들며 노는 줄거리로 엮는대서 동시가 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오늘 살아가는 모습을 담으면서, 아이들이 모레와 글피에 마주할 삶을 그릴 때에 동시가 됩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아름답게 피어날 사랑을 그리기에 동시요, 아이들이 즐겁게 어깨동무하는 꿈을 보여주기에 동시입니다.
바보스러운 학교교육 울타리를 고발하기에 동시가 되지 않아요. 엉터리 같은 모습으로 사회를 일그러뜨리는 어른들을 꾸짖는대서 동시가 되지 않아요. 바보스러운 학교교육 울타리를 밝히면서도 사랑스러운 손길로 보듬을 때에 동시가 됩니다. 엉터리 같은 어른들 몸짓을 드러내면서도 따사로운 눈길로 살필 적에 동시가 됩니다.
삶이 나아갈 빛을 그리는 동시입니다. 삶을 즐기는 빛을 밝히는 동시입니다.
.. 대숲의 참새들이 / 다 죽고 나면 // 엄마야, 쓸쓸해서 / 어이 사나 .. (총소리)
이오덕 님은 멧골자락에서 지내면서도 “개구리 울던 마을”을 말합니다. 새마을운동에 따라 1960년대나 1970년대뿐 아니라 1980년대와 1990년대에도 시골마을은 끝없이 파헤쳐지고 무너집니다. 흙과 나무와 풀과 돌로 짓던 시골집을 시멘트와 플라스틱과 쇠붙이로 짓도록 다그치는 정치요 사회이며 경제요 문화입니다. 시골사람 농사짓기를 농약농사와 비닐농사로 바꾸어서 아주 길들여 놓은 새마을운동이며, 정치이고 정책이자 행정입니다.
오늘날 시골 할매와 할배는 쉰 해 예순 해 흙을 만지며 살아오셨지만, 막상 흙을 만지는 손길보다 농약을 만지는 손길과 비닐을 만지는 손길이 한결 익숙합니다. 씨앗을 흙에 심는 시골일 아닌 농약과 비료와 비닐로 흙을 다그치거나 닦달하는 기계일이라 할 만합니다.
흙을 살리는 시골일은 거의 모두 사라졌어요. 흙을 괴롭히면서 알곡과 열매를 더 많이 더 굵게 뽑아내도록 하는 기계일이 되고 맙니다. 흙을 살찌우는 시골일 아닌, 일손이 모자란다고 하면서 농약 더 치고 기계 더 쓰는 화학농과 기계농으로 바뀌었어요.
.. 캄캄한 밤이 오면 / 땅 위의 모든 것이 / 하늘 나라로 올라갑니다. // 대숲에서 지껄이던 참새들의 얘기가 / 문간에서 트집을 부리던 아기의 울음이 / 스러지는 노을을 타고 올라갑니다 .. (밤의 노래)
도시사람은 시골사람을 괴롭혀 시골을 떠나게끔 부추깁니다. 시골사람은 스스로 괴롭히면서 흙을 망가뜨립니다. 흙을 아껴 보듬지 않고, 흙에 농약과 비료를 끝없이 치면서 비닐을 마구잡이로 심습니다. 흙에 온갖 쓰레기를 파묻습니다. 흙에 대고 비닐과 플라스틱과 농약병을 아무렇지 않게 태웁니다.
그리고, 이처럼 흙을 괴롭히거나 들볶여 알곡과 열매를 더 크고 더 굵게 맺도록 채찍질하는 모습 그대로, 학교에서 아이들이 성적과 숫자 더 크고 더 높이 나오도록 채찍질합니다. 도시에서는 시멘트와 아스팔트에 짓눌리며 괴로운 흙이요, 시골에서는 농약과 비료와 비닐과 쓰레기에 뒤범벅이 되며 괴로운 흙입니다. 도시에서 아이들은 도시 얼거리대로 괴롭고, 시골에서 아이들은 시골 짜임새대로 괴롭습니다.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아이들을 놓아주지 않아요.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아이들을 다그치기만 해요.
놀 수 있는 아이들이 없어요. 아이들이 뛰놀 빈터가 없어요. 도시에서는 골목마다 자가용 가득하며 오토바이 아무 때나 싱싱 내달립니다. 시골에서는 온통 농약투성이라서 아이들이 도랑물에 발 담그지 못하고, 아이들이 거리낌없이 만질 만한 흙이 없습니다. 시골 풀밭이나 숲속이라 하더라도 아이들이 신나게 뒹굴지 못해요. 어느 풀밭 어느 숲속에 어떤 농약 얼마나 뿌려댔는지 알 길이 없어요. 무덤가 잔디밭도 온갖 농약범벅인 터라, 아이들이 드러눕거나 구르며 놀지 못해요.
.. “개새끼들 조용하지 못해!” / 책가방을 등에 멘 / 빨간 스웨터의 급장은 / 선생님의 말씨를 흉내내며 / 교탁을 탕탕 두드린다 .. (청소 시간)
예나 이제나 아이들은 놀아야 합니다. 예나 이제나 어른들은 일해야 합니다. 아이들은 즐겁게 놀아야 합니다. 어른들은 즐겁게 일해야 합니다. 아이들은 삶을 밝히고 사랑을 꽃피우며 놀 수 있어야 합니다. 어른들은 삶을 빛내고 사랑을 나누면서 일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골목 빈터 한 뙈기는 아이들만 누리지 않습니다. 어른들도 함께 누립니다. 시골마을 풀밭은 아이들만 누리지 않아요. 어른들도 함께 누려요.
온통 자동차투성이 된 도시에서 어른들 또한 쉴 자리가 없고, 이야기 나눌 데가 없습니다. 온통 농약투성이와 비닐투성이와 쓰레기투성이 된 시골에서 어른들 또한 느긋하게 앉아 이야기꽃 피우거나 막걸리 한 사발 나눌 만한 데가 없습니다.
.. 조그만 아이한테도 얻어맞고 울던 아이, / 찢어진 저고리에 때묻은 치마, / 한 번도 웃어 본 일이 없는 / 옥순이가 거지였구나! / 바가지를 들고 오늘 아침에도 / 집집마다 돌아다녔구나! / 복숭아꽃 오얏꽃이 환히 웃는 / 이 봄날 아침에 .. (복숭아꽃 핀 아침)
새마을운동 언저리에 시골사람 가운데 처마 밑 제비집 일부러 허는 사람 있었습니다. 도시에서도 1980년대 언저리까지 제비집을 곧잘 볼 수 있었으나, 도시에서도 ‘도시 미관’을 내세워 제비집 헐기를 마치 사회운동처럼 벌이기도 했습니다. 제비똥 떨어져서 처마 밑이 더러워지니까 제비집을 헐어야 한다는 ‘어른들이 벌이는 운동’을 귀로 듣고 눈으로 보며 내 어린 나날이 지나갔어요. 제비가 우리 삶터에서 어떤 구실 어떤 몫 어떤 자리 차지하는지 깊이 생각하거나 넓게 헤아리는 슬기로운 어른을 만나기는 아주 어려웠어요. 내가 국민학교를 다니던 1982∼1987년 사이에 교장선생이 손수 긴 작대기를 들고 학교 건물 한켠 제비집을 떨구어 없애는 모습을 똑똑히 보았어요.
내 어린 나날뿐 아니라, 어른 되어 두 아이 낳고 살아가는 오늘날에도, 제비 한 마리와 제비집 하나가 우리 삶자락에서 어떤 구실과 몫과 자리를 차지하는가 살필 만한 사람은 좀처럼 못 봅니다.
너무 마땅한 노릇일까요? 논에 둥지를 짓고 알을 낳아 살던 뜸부기가 거의 모조리 사라진 모습을 슬프게 여기거나 안타까이 생각하는 사람을 찾아볼 수도 없으니, 제비쯤이야 아무것 아닐까요?
예전에는 그 흔하던 두루미를 만날 길 없는 오늘날 모습이 어딘가 잘못되거나 뒤틀린 줄 깨닫는 사람 거의 없는데, 제비야 살건 죽건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 참말 오늘날에는 너무 마땅한 노릇일까요?
.. 나는야 산을 섬기는 / 이 땅의 아이 .. (나무할 때 부르는 노래)
인천에 국제공항 새로 지으면서 영종섬과 용유섬이 통째로 사라졌습니다. 영종섬과 용유섬을 둘러싼 갯벌 또한 한꺼번에 사라졌습니다. 영종섬 갯벌에 철새가 수만 마리 찾아들었지만, 개발업자는 철새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영종섬을 가득 채우던 소금밭 밀어내고 공항을 닦은 일을 놓고 무언가 잘못되거나 바보스레 흐르는 줄 깨닫는 어른도 매우 드뭅니다.
공항이 있어야 해서 공항을 짓는다고만 여기는 어른들이에요. 어른들은 이런 어른들 생각을 아이들한테 고스란히 집어넣어요. 아이들도 섬 두 곳이 사라지고, 갯벌이 송두리째 없어지며, 새와 갯것 삶터가 짓밟히는 대목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어른들은 어느새 ‘도시 어른’이 될 뿐, ‘시골 어른’이나 ‘숲 어른’이나 ‘흙 어른’하고는 동떨어져요. 자가용 모는 어른이 있을 뿐, 두 손으로 흙을 만지며 씨앗을 심는 어른이나, 두 다리로 땅을 밟으며 숲을 사랑하는 어른은 나날이 줄어듭니다.
그러고 보면, 학교에서 아이들한테 시험성적 닦달하는 모습은, 어른 사회에서 어른들끼리 연봉과 은행계좌 숫자를 맞대면서 서로 겨루고 다투는 모습하고 똑같습니다. 오늘날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삶을 가르치지 않고, 삶을 보여주지 않으며, 삶을 물려주지 않아요.
.. 하루 종일 고추밭을 매고 돌아온 언니의 / 온몸에서 땀 내음 풀 내음을 맡아 주고, // 그 엄청난 무게를 지탱하던 아버지 어깨를 / 꽃다발로 덮어 주고, // 나무 껍질 같은 어머니 손등을 / 봉숭아 꽃빛으로 물들이고, // 우리 집이 왜 이렇게 작아졌는가? / 우리 방이 왜 이렇게 흙 냄새만 날까? / 한숨만 쉬고 다시 둥둥 서울로 / 떠나고 싶어하는 누나를 / 따스한 눈물로 달래어 주고 .. (등잔불)
이오덕 님이 쓴 동시는 아이들한테 어떤 이야기로 스며들 만할까요. 이오덕 님이 쓴 동시는 아이들만 읽으라고 쓴 동시일까요.
이제 등잔불 밝히는 시골집 없으니, 이오덕 님이 쓴 동시는 ‘낡은’ 이야기라고 해야 하나 궁금합니다. 숲속에 깃들거나 멧골에 머물며 ‘나는야 숲 아이’나 ‘나는야 산 아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 찾아보기 어려운 만큼, 이오덕 님이 쓴 동시는 ‘옛날’ 이야기로 밀어두면 되는지 궁금합니다.
피시방과 게임 이야기를 적어야 오늘날 읽힐 만한 동시일까 모르겠습니다. 운동경기와 텔레비전 이야기를 써야 오늘날 읽힐 만한 동시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쁘장한 말놀이를 한다거나 한글교육 이끄는 이야기를 써야 오늘날 읽힐 만한 동시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 참꽃 한줌 따먹고 / 나물을 하세. / 찔레순 한줌 따먹고 / 나물을 하세. // 숟가락 같은 건 숟가락나물, / 우산 같은 건 우산나물. / 보는 대로 다 하세. / 아는 대로 다 하세 .. (산나물 하러 가세)
오늘날 웬만한 어른은 나물 이름 잘 모릅니다. 아니, 들풀 이름을 거의 모른다 할 만합니다. 오늘날 웬만한 어른은 들이나 숲이나 멧자락에서 풀을 뜯어서 먹을 생각 안 합니다. 자가용 몰고 마트에 가서 푸성귀를 사거나 세겹살 굽는 고깃집에 가서 고기 구워 먹을 때에 고기 살점을 얹는 상추나 깻잎만 생각합니다.
그런데, 시골 할매와 할배도 엇비슷해요. 시골 할매와 할배도 논둑과 밭둑에서 자라는 수많은 나물을 잡풀로만 다뤄요. 늙은 두 분이 나물을 뜯어서 자셔 보아야 얼마 안 드실 테니 ‘뜯고 난 나머지’는 모두 잡풀이 될밖에 없구나 싶기도 해요. 도시사람은 몇 가지 곡식과 열매와 푸성귀만 알 뿐, 온갖 들나물과 멧나물은 헤아리지 않을 뿐더러 즐겨먹지 않으니까, 굳이 힘들여 들나물 뜯지 않는구나 싶어요.
들풀(들나물)은 모두 천덕꾸러기가 되어요. 들풀은 농약 마시고 죽어야 한다고 여겨요. 풀숲에 깃드는 벌레는 몽땅 ‘해충’ 대접이에요. 참새 몇 마리, 멧비둘기 몇 마리, 제비 몇 마리, 모두모두 ‘나쁜 새’ 대접입니다.
사람들은 이 땅 모두 사람들투성이로 만들면서, 새들 보금자리와 삶터 모조리 망가뜨리기만 하지, 새도 짐승도 벌레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살피지 않아요. 그저 농약과 공기총과 덫과 울타리 있으면 된다고 여겨요. 나비를 이웃으로 여기지 않아요. 나비애벌레는 아주 끔찍한 해충이라고 여겨요. 나비를 보며 곱다고 말하지 않아요. 저 나비가 애벌레였을 적에 푸성귀를 얼마나 뜯어먹었는가 외치며 나비도 농약 뿌리는 김에 다 죽기를 바랄 뿐이에요.
.. 혀끝에 닿는 / 달콤한 그것은 / 하늘의 마음이었다. / 이빨에 물리는 향긋한 그것은 / 땅의 사랑이었다. / 온몸에 스며드는 배릿한 그것은 / 가을의 숨결이었다 .. (담뱃잎을 엮는 소년의 가을)
하늘마음 사라진 이 나라예요. 하늘마음으로 살아가는 하늘어른이나 하늘아이 찾아보기 어려운 이 나라예요. 삶을 사랑하는 시골노래 숨을 거둔 이 나라입니다. 삶을 가꾸는 시골빛 스러지면서 짓밟힌 이 나라입니다.
동시집 《개구리 울던 마을》은 시골노래 한 가락입니다. 삶을 사랑하는 시골노래 한 가락입니다. 사람이 어느 때에 가장 빛나는 넋인가를 밝혀서 아이들한테 꿈을 물려주고 싶다는 생각 보여주는 노랫가락입니다. 착하게 살고, 참답게 살며, 아름답게 살아가는 길을 환하게 밝히고 싶어 눈물로 외치고 웃음으로 읊은 노랫가락입니다.
.. 아, 저기 아버지가 오시는구나. / 햇볕에 그을린 흙빛 이마가 땀에 젖어 보인다. / 얼마나 무거울까? / 아이들이 자꾸 수군거린다. / 남의 집 머슴이란다―누가 하는 말소리. / 고개 숙이고 걸어가는 내 얼굴이 화끈거린다. / 어딜 숨어 버리고 싶다. / 그러면서 마음 한구석에 / 치밀어오르는 미움. / ―오냐, 그래 우리 아버진 머숨이다. / 머슴이면 어쩔 테냐? / 수군거리는 아이들의 얼굴에 침을 / 뱉어 주고 싶은 마음. / 그러나 나는 여전히 얼굴을 못 들고 / 땅만 내려다보고 걸어간다. / 아버지는 나를 보셨을까? / 내 해진 바지와 다른 아이들의 잘 차린 옷을 / 견주어 보고 / 얼마나 슬퍼하셨을까? / 아니, 보시지 않았을 거야, / 무거운 짐에 눌려 / 땅만 보고 걸어가셨을 거야 .. (아버지)
동시라면, 아니 동시뿐 아니라 시라면, 가을빛과 봄빛을 노래할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여름빛과 겨울빛을 나란히 노래하면서 삶빛을 밝힐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구름빛과 무지개빛을 노래하면서 이야기빛을 살찌울 수 있어야겠지요. 하늘빛과 흙빛을 섬기면서 사랑빛이 흐드러지는 꿈빛을 들려줄 수 있어야겠지요.
시쓰기는 문장작법이 아니고, 동시쓰기는 교훈이 아닙니다. 시쓰기는 문장놀이가 아니며, 동시쓰기는 한글교육이 아닙니다. 시쓰기는 삶쓰기입니다. 동시쓰기는 사랑쓰기입니다. 시쓰기는 꿈쓰기입니다. 동시쓰기는 이야기쓰기입니다.
삶을 쓰면서 꿈을 드러내는 시입니다. 사랑을 쓰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시입니다. 어른들은 서로 꿈을 키우면서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아이들은 이야기밥을 먹으면서 언제나 즐겁게 뛰놉니다. 어른들은 서로 손을 맞잡으며 즐거이 두레를 하고 품앗이를 해요. 아이들은 서로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다 함께 신나게 뛰어놉니다.
.. 언니가 쓴 글에는 언니 마음, / 내가 쓴 글에는 나의 마음 .. (나의 작품, 나의 마음)
마음을 읽어요. 문학을 읽거나 작품을 읽지 말고, 글 한 줄에 깃든 마음을 읽어요. 어른시도 동시도 시도 아닌 삶을 읽고, 삶에 서린 마음을 읽어요. 마음 가득 피어나는 사랑을 읽어요. 마음으로 아끼며 함께 보살피는 따사로운 꿈을 읽어요.
우리는 아름답게 살아가며 하루하루 한껏 즐기려고 이 땅에 태어났어요. 어른이 되어 쉰 살이거나 예순 살인 분도, 이제 막 태어나 세 살이나 여섯 살인 아이들도, 모두 이 땅에서 아름답게 살아가며 하루하루 실컷 누리려고 태어난 숨결입니다. 4346.8.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동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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