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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남미에서 불어온 해방신학을 접한 적이 있었다. 당시의 어지러운 시대상황과 맞물려 어둠의 경로(?)를 통해 젊은이들에게 꽤 파급되기도 한 이 사상은, 라틴 아메리카 지역 정부들의 억압으로 고통 받는 민중들을 위해 태어난 신학이었다. 이 시기에 남미의 생활상이 말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무자비한 정복에 이어 19세기 중반부터는 영국과 미국이 신식민주의 정책으로 이 지역을 약탈하였고, 2차 대전 이후에 명목상으로는 독립 국가가 되어 미국 등 서구권으로부터 원조를 받기도 했으나 종국적으로는 이들이 내세운 소수의 군부정권과 관료 집단들에 의해 거의 모든 것을 빼앗겨 버린다. 민주주의의 모토인 자유, 평등, 기회와 권리보장이 이들 나라에선 억압, 불평등, 가난과 약탈의 이름으로 변질되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암울한 상황에서 미국식 자본주의가 아닌 성경적 자유와 해방의 실현을 담아내고자 했던 것이 해방신학이다. 물론 반공을 국시로 한 한국의 기득권에겐 마르크스주의를 하나의 수단으로 받아들인 해방신학이 수용될 리 없었고, 이 땅의 민주화와 경제적 발전 및 마르크시즘의 몰락으로 그 지지기반은 이제 아득한 추억거리가 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개발독재시기에 경험한 빈부 격차와 비인간적 대우에 항거하는 이론적 버팀목이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고 하겠다.
○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경쟁성장은 선택이 아니라 꼭 필요한 것이다. - 마흐법 울 하크, 전 세계은행 부총재
그렇다. 이 책의 주된 흐름은 <경제 세계화>에 대한 비판이다. 세계화가 시장을 더 경쟁적으로 만든다는 주장은 다 거짓일 뿐이고 오히려 세계적 규모의 독점을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경제 세계화는 거의 모든 면에서 <제국주의적 현상>의 현대적 형태라고 할 수 있기에, 제국주의가 초래한 것과 똑같은 결과를 야기할 것이라는 거다. 당연히 약자에게는 빈곤으로, 강자에게는 경제성장으로 이어진다는 거겠지. 경제 팽창을 지지하는 정책의 문제점은 대개 노동으로 근근이 먹고사는 사람들을 희생시켜 돈 있는 사람들에게로 소득과 자산을 이동시킨다는 것이다. 성장 자체가 필연적으로 가난을 불러오지는 않지만, <성장의 이름으로 추진되는 정책>은 종종 가난을 야기한다는 것이 저자의 통찰이다. 빈곤에 대한 해답으로 경제의 파이를 키우자는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한 가지 중요한 현실은, 어떤 한 사람이 생존에 필요한 자원에 접근할 수 있는가의 여부가 절대 소득보다 상대 소득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자유 시장경제에서 각 개인은 한정된 자원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놓고 경쟁을 벌이는데, 가장 많이 가진 자(특히 기업)가 어김없이 그 경쟁에서 이긴다. 당연히 경제성장은 빈부의 절대적인 격차는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는데, 빈곤층이 염려된다면 부자들을 위한 감세에 신경 쓰지 말고 제발 빈곤층이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을 향상시키는 정책 좀 지지하라고 조언한다. ○ 기업들은 마침내 권좌에 올랐다. 곧 고위직의 부패시대가 뒤를 이을 것이고, 돈의 힘이 사람들의 편견을 등에 업고 자신의 힘을 연장 시키려 기를 쓸 것이며, 결국은 모든 부가 몇 사람의 손에 집중되어 공화국은 멸망할 것이다. 114쪽, 링컨 대통령이 사망하기 직전에 한 발언...
○ 경제 세계화 지지자들은 흔히 세계화가 상호의존과 이해관계의 공유를 창조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완전히 허위다. 실제로는 글로벌 기업과 금융 시장에 대한 인간과 지역의 의존이 점점 더 심화될 뿐이다. 그리고 이 의존의 결과는 더 많은 권한을 중앙에 내어주면서 사람과 지역을 경제적 생존을 위한 자멸적인 경쟁 속으로 몰아넣는 것이다. 373쪽
미국에서 기업가들이 전면에 부상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우리나라 모 재벌기업을 떠올리게 하는 내용이 있어 흥미가 배가되는 부분이 있었는데……. 기업가들은 사회주의자와 대중 운동가들의 정치적인 힘이 점차 커져가는 것에 대해 상당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데, 이는 이들이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와 자신들의 특권적 지위를 상실하게 될 것을 우려해서란다. 그러다가 거물기업가들은 근로자에게 더 나은 임금과 혜택, 근로 조건을 제공할수록 사회주의의 매력을 약화시킬 수 있으며, 그와 동시에 근로자에게서 더 큰 충성심과 동기를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얼른 생각하면 아주 좋은 상생의 행위 같지만, 기업은 많은 사람들을 하나의 구조 속에 결속시켜 기업의 목적에 맞추어 행동하게 만듦으로써 지배 권력을 손에 쥐게 되었다는 점이 문제다. 그 결과 경제적 세계화가 진행될수록 "가난한 나라 안에서 거부들이 차지하는 섬들이 점점 커지고, 부유한 국가 안에 빈곤의 바다가 점점 커져간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저자는 환상과 왜곡의 장막을 뚫고 나아가 인공적 존재인 기업에게 내어준 권력을 되찾아와야만 미래에 대한 우리의 통제력을 되찾고 인간 사회가 이 지구와 균형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 이제 사람들과 살아있는 지구에 봉사하는 경제체제를 재창조하는 일에 나서라고 강조하고 있다.
○ 글로벌 경제에서 거대 기업들은 다른 이들의 경쟁은 최대화하면서 정작 자신들의 경쟁은 최소한으로 줄이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의 경영 수단으로 활용해서 자신들의 비용을 조금이라도 더 사람들과 지역사회로 전가하고 있다. 337쪽
쉽지 않은 결론이다. 돈과 언론 권력과 경찰력을 가진 현대의 기업 세계화와 '생활 민주주의 운동' 사이에서 벌어지는 경쟁이 어찌 쉽게 끝나겠는가. 하지만 건전한 사회를 지향하는 이런 투쟁을 억압하면 할수록 그들의 권력이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민중은 더 빨리 알아챌 것이고 그들의 몰락은 더욱 빨라질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물질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이런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만연한 사회에서 조화로운 공동체를 외치는 저자의 목소리가 예사롭지 않다는 게 바로 오늘, 우리의 현실이 녹녹치 않음을 방증한다 하겠다. 대롱시각(tubular vision)으로 보면 조금은 불편한 논리이긴 하나, 전체를 관조하면 인간적인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 논지임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곳곳에서 해방신학의 그림자가 어른거리지만, 경제관념에 대해 균형감을 유지하게 하는 아주 좋은 책읽기였다. 이런 책들에 의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정책이 아니라 성장과 분배가 조화를 이루는 그런 사회가 되길 바래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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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코튼(David C. Korten)
저자의 해법은 무엇일까 우리가 기존 경제 성장의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돈에 대한 사랑이 아닌, 삶에 대한 사랑으로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주적 다원주의를 회복하고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경제적 수단 등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 역시 스테판 에셀이 외쳤던 “분노하라!” 류의 정치적 활동과 시민 운동에 맞닿아 있다. 다만 수위는 조금 낮다. 말미에 이르러 저자는 우리에게 양자택일하라며 압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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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분히 논쟁적인 제목을 내세운 이 책을 펼치면 책 날개의 저자 소개와 프롤로그에서 저자 스스로가 쓴 자신의 프로필을 가장 먼저 접할 수 있습니다. 왜 이 프로필을 가장 앞에 내세웠는가 하면 지극히 보수주의자였던 저자가 왜 이런 책을 쓰게 되었는지의 과정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저자인 데이비드 C. 코튼은 미국 동부 워싱턴주의 보수적인 중상류층 백인 가정에서 태어났고, 가업인 악기 관련 사업을 물려받을 예정이었으며, 미국 밖으로 나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그는 스탠퍼드 대학에 재학 중에도 심리학을 전공하여 소비자의 구매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중점적으로 연구하였고, 틈틈이 자신의 음악적 적성을 테스트하는 방법을 연구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4학년 때인 1959년에 미국에도 공산주의 사상이 퍼지기 시작하자 자신의 미국식 생활방식에 위협을 가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로버트 노스 교수의 <현대의 혁명들> 과목을 수강하였는데, 이 강의를 통해 공산주의 혁명을 촉발시키는 가장 큰 요인이 바로 빈곤이라는 사실을 깨달고 한 가지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빈곤에 시달리는 저개발 국가들에 현대적인 경영 기법과 미국적인 기업가 정신을 전파함으로써 생산성을 향상시켜 빈곤을 타파함으로써 공산주의 혁명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말소시키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 결심에 따라 경영대학원에서 국제 경영으로 석사를, 조직 이론으로 박사 학위를 받아 이론적인 무장을 마치고, 곧바로 에티오피아에 경영대학원을 개설하여 직접 행동에 나섰습니다.
3년 간에 걸친 에티오피아에서의 활동 후 베트남전 때 군복무를 마쳤고, 이어서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를 맡으면서 중앙아메리카 경영연구소의 고문직을 겸해 중앙아메리카 국가들에 산학연계 지원 서비스를 지원했으며, 1978년부터는 필리핀의 포드 재단에서 미국의 대외지원 프로그램을 맡아 이후 14년 간 줄곳 동남아시아에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빈곤에 시달리는 저개발 국가들에 생산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현대적인 선진 경영과 관리 기법들을 전수함으로써 생산력을 극적으로 높여 빈곤을 몰아냄으로써 공산주의 혁명을 근본적으로 막겠다는 이타적이고 야심적인 이상을 품고, 직접 동남아시아와 중앙, 남아메리카 현지에서 10여년에 걸쳐 미국의 대외 원조사업을 실행에 옮기는 과정에서 저자는 자신이 처음에 가졌던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이상이 실제 현실과는 엄청난 괴리를 지니고 있고, 나아가 생산성을 향상시키면 빈곤이 타파될 것이라는 자신의 생각이 근본적으로 틀리고 잘못된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달게 됩니다.
그리고 순수한 이상에서 시작되었던 자신의 생각을 실제로 현실에서 행동으로 옮겨 실천하는 과정을 통해서 비로소 파악하게 된 진실들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정리하여 발표한 것이 바로 이 책인 것입니다.
저자 부부가 총 30여년에 걸쳐 직접 저개발 국가의 현장에서 경험한 것은 바로 진정한 개발은 결코 외국의 원조에 의존 이루어질 수 없으며,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자신이 살고있는 지역 공동체의 실제 자원들에 대해 스스로 통제권을 가지고 자신들의 요구에 맞게 효과적으로 사용했을 때에만 실질적인 효과와 의미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외국의 원조에 기반한 공식적인 개발 단체들에 대한 환상을 버린 저자는 비정부 기구(NGO) 활동을 하면서 근본적인 문제점들을 분명하게 파악하게 됩니다. 그것은 경제가 발전하여 생산성이 향상되면 그 생산의 과실로 인해 빈곤이 타파되고 사람들의 삶이 향상된다는 기계론적인 세계관에 근거한 성장과 개발우선 정책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저자와 저자의 부인이 30여년 동안 실제로 라틴아메리카와 동남아시아 빈곤의 최전선에서 직접 경험하고 파악한 것은 경제성장 위주의 개발 정책이 성장이라는 효과를 거두더라도 실제로는 빈곤한 일반 국민들의 삶을 향상시키기는 커녕 오히려 더 비참하고 불안하게 만들고 빈곤층을 더욱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게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북반구의 자본주의 주도 국가들의 원조에 의존한 남반구 저개발 국가들의 경재성장 정책들은 비록 경제성장과 생산성 향상이라는 효과를 거두게 되더라도 실제로는 그 성장의 과실은 골고루 분배되지 않고 그 사회의 권력자와 가진자들에게 독점되고, 빈곤층들은 오히려 더 착취를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외국의 원조에 의해 이루어진 성장이라는 과실은 극소수 정치와 경제 엘리트들의 손에 엄청난 경제력과 정치 권력을 배타적으로 집중시키고, 소수의 기업과 경제 및 금융 기관들에게 권력을 넘겨주게 되고, 이들 역시 궁극적으로는 세계적인 규모의 대기업들과 글로벌 금융 자본들에 의해 조종되고 이용당한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익이라는 목적을 위해 경제 세계화와 소비주의 등 자신들에게 유리한 이데올로기와 선전들을 무차별적으로 배포하고, 자신들의 이익과 수익을 위해 저개발 국가의 모든 자원들을 적극적으로 약탈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글로벌 경제 시스템’이라는 이름으로 치장된 이러한 경제 제국주의는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 등의 ‘글로벌 거버넌스’들을 앞세워 ‘경제성장과 무역팽창’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고, 제국주의적인 경제 침략의 선봉에 서서 적극적으로 침략 행동을 하고 있음을 폭로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제성장 우선 논리에 밀려 스스로 지속가능하던 지역공동체는 붕괴되고 그 구성원들은 기준을 낮춘 일자리에 경쟁적으로 흡수되고, 그러한 인력 착취와 자원의 약탈로 인해 저개발 국가가 지니고 있던 가능성의 토대는 빠른 속도로 해체되고 황폐화되고 맙니다. 그 결과 저개발 국가의 천연자원은 한계까지 약탈되고 황폐화되고,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고용불안 속에서 착취당하며,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인해 범죄율 상승과 약물 중독, 이혼 증가, 청년 실업, 자살률 증가라는 갖가지 사회 문제들이 급격한 속도로 높아지게 됩니다.
이러한 비참한 현실은 1945년 이후 무력 충돌로 무려 2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했고, 1.820만명의 넘는 사람들이 현재 국제 난민으로 떠돌고 있는 현실의 수치로도 입증됩니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비단 남반구의 재개발 국가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충분히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생산성이 고도로 높은 북반구의 자본주의 선진국들에서도 이러한 노동자의 소외와 불안, 만성적인 사회의 불안 요소 증가라는 현상은 거의 동일하게 나타나고, 이러한 현실이 개선될 것이라고 믿는 구성원들은 거의 없다는 것인 분명한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저개발국가들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선진국들에서 조차도 일반 국민들이 ‘경제가 성장해 생산성이 향상되고 생산이 늘어나면 그 산출을 사회 구성원 각자가 골고루 나눠 가져 생활이 급속하게 향상될 것이다’라는 논리를 누구도 더 이상 믿지 않으며, 오히려 경제성장률이 빠른 시간 내에 급격히 높아질수록 사회적인 불안요소들도 비례하여 높아지고 미래에 대한 분안이 만연된다는 사실을 여러 지표들을 제시하며 증명합니다. 이러한 방향은 결국 전지구적인 규모로 빈곤과 환경 파괴, 사회 해체라는 삼중 위기를 거친 경제적, 사회적 자멸로 귀결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소수의 권력자와 기업가들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극소수의 글로벌 대기업들마저도 최종적으로는 글로벌 금융자본에 의해 또다시 지배받고 있는 현재의 경제 세계화의 냉혹한 현실은 결국 전세계적인 자연과 환경의 황폐화를 야기함으로써 결국 인류 전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나아갈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저자는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스스로 아이들의 미래를 염려하는 부모의 시각과 이 사회의 일원이라는 자각의 토대 위에서 무조건적인 경제성장 우선 논리의 전세계적인 전파가 실제로는 어떤 결과를 낳는지와 이미 심각한 수준으로까지 진행된 전지구적인 환경 파괴가 결국에는 미치게 될 영향들에 대해 진솔하게 서로 의견을 나누고 고민을 해보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보수적인 토대와 사고관을 지녔고 이타적인 이상과 동기에서 직접 행동으로 자본주의적인 논리의 전파를 위해 30여년 동안 저개발 국가에서 미국을 대변해 일했던 저자 스스로가 오랜 현장 경험에서 온몸으로 체득한 경제성장제일주의와 개발논리의 한계와 오류가 극단적인 양극화와 생존권의 위협, 저소득층의 피폐한 삶이라는 현상들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 현재의 모습에서 우리는 명백한 답을 찾을 수 있고 그 해결을 위해 고민하고 노력해야 할 때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분명하게 보여주는 ‘우리가 지금 꼭 읽어야 할 책’입니다.
ha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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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경제학과 관련하여 정규 코스를 밟아 온 이라는 것이 이체롭습니다. 마치 평생 신을 모시겠다는 맹세를 하고, 전도에 매진하던 이가 어느 날 '내가 믿어왔던 신은, 가짜다!'라고 선언하고 그 정체를 폭로하는 듯한 느낌이 있습니다. 해당 분야에 오랫동안 몸 담고 있었고, 너무 잘 알고 있던 내용들이라서 오히려 더 설득력이 더해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지금 돈이 '신'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 자리 옆에서 달콤함을 누리기 위해 일부 국가와 거대기업, 금융사 등이 연합하여 치밀하게 짠 계획이 어떻게 현재를 만들었고 미래를 구상하고 있는지를 읽어가면서 섬뜩함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몇 년 전 닥쳤던 구제금융을 온 몸으로 겪으면서 세계화란 무엇인지, 그 이면에 숨은 정체가 무엇인지 우리는 너무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고, 그 상처를 몸에 새기고 있습니다. 저자는, IMF니 WTO니 하는 것들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혹은 어떤 절차를 밟으면서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지, 그 이면에 숨은 놈들이 누구인지 폭로하고 있습니다. 세계화가 실상 투기자본이 넘나드는 경계와 장벽을 없애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말입니다. 그리고, 그로 인한 이득은 고스란히 일부 초거대기업에게 돌아가면서 이 세상의 부는 대부분 그들이 독식하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 과정에서 수탈되는 자연환경이나 인간의 삶 따위에 그들은 연연해 하지 않습니다. 몇 년 전에 상영되었던 '엘리시움'은, 부의 99.999%를 가진 일부 인류가 폐허가 된 지구를 벗어나 우주에 건설한 또 다른 세상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의 현실이 그와 비슷한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이미 막대한 부를 소유한 이들은 하늘 위 구름 위에 살고 있으니 말입니다. 경제성장이라는 허울이 가리고 있는 것, 그건 다름아닌 '불평등'이고 '불행'입니다. 이미 전 지구 인류가 누리고도 남을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극소수는 한없는 욕망을 채우려고 안간힘을 쓰고, 다수의 인간들이 굶주림에 시달리는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런지... 그래서 우리는 지금 경제학이 말하는 성장에, 언론이 떠들어대는 거짓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시장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성장이라는 목표에 목을 맬수록 세상은 더 불평등하게 기울어져 갈 것이고, 더 많은 것들이 우리의 주머니를 빠져나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장이라는 신화에서 깨어, 그 성장과 우리 행복 사이의 관계를 따져묻고, 다수가 행복하지 못하는 왜곡된 정의를 다시 세워야 합니다. 성장을 멈추거나, 혹은 성장하지 않아도 이미 우린 충분히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 많은 것들을 서로 서로 나누도록 요구해야 할 때입니다. |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 언제나 비판적 시각으로 접근하며 분배와 공평의 이슈를 치밀한 이론, 동시에 차열한 실천으로 제기해 온 문명사학자 데이비드 C 코튼의 2001년작이며 한국어 번역본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4년에 나왔습니다. 2014년이면 그때로부터 6년 전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화 사태가 세계적 불황으로 이어져 미국에서 "Occupy the Wall Street!" 캠페인이 벌어지고, 프랑스에서는 토마 피케티의 책이 글로벌하게 화제가 되었던 시점이기도 합니다. 성장이란, 전통적으로, "파이를 키우기" 논리에 의해 빈자이건 부자이건 그로부터 모두 이전보다는 나은 삶으로 이끌어 주는, 적어도 비(非) 파레토 균형으로 치닫지는 않는 선택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특히, 성장이 과연 가능한 목표인지, 행여 가능하다고 해도 그것이 과연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지 심각한 회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 크게 대두되었습니다. 코튼은 일찍부터, 성장이란 정책의 유효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해 왔으며, 한때 보수파 주류 경제학에 가담했다 회심 후 지향점을 바꾼 전향자(convert)로서 확고한 독자, 지지자를 가진 인물입니다. 저서에서 그의 시야는 매우 넓어, 경제학자라기보다 문명사학자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합니다.아무래도 이 책이 쓰여진 시기가 좀오래되었다 보니 드는 예시들이 최근의 것은 아닙니다. 우리도 2000년대 초중반 한미 FTA 체결을 앞두고 내부적으로 큰 논란이 일었었는데, 22대 총선 모 정당 출마자(이제는 당선인인) 모 인사도 이무렵에 정부를 원색적으로 비난했던 게 최근에 다시 문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 책에서는 20세기 말에 체결되고 당대에 단연 빅 이슈였던 북미 자유무역협정을 거론하며 글로벌 성장과 장벽없는 교역을 추구했다면서 멕시코의 가난한 농민들에게 어떤 피해가 발생했는지, 또 구조적이고 항구적인 가난으로 빠져 들게 되었는지 자세히 짚습니다(p79).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의 등장은 미국의 강력한 패권 추구, 사회의 전반적인 우경화를 상징하는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레이건은 고령이었던데다 잦은 언행의 실수(물론 대단히 재치있는 레파티도 선보였지만), 중대 정치 스캔들(이란-콘트라 사건)로 평판이 깎일 만도 했건만 확고한 인기를 지켰습니다. 그래서 테플론 대통령이란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이 책 p125에서는 그의 정책을 이른바 봉쇄적 자유주의라 명명합니다. 리버럴리즘을 빼고 containment policy 자체는 트루먼, 아이젠하워 때부터 터키(현 투르키예)에 미사일을 배치하는 등 어래된 것이긴 합니다.성장은 가난한 이들을 소외시키고 부자들에게만 혜택을 주는 목표인가. p188 이하에서 저자는 그렇지만도 않다고 합니다. 이 위태하고 아슬아슬한 곡예에서, 부자도 빈민도 모두 제 자리를 지키기조차 힘들며, 2008년 경제위기에서 보았듯(물론 이 책의 초판은 2001년 발간이므로 그 시점에서 알 수는 없었지만) 중산층은 상승에의 의지, 희망을 박탈당하고, 부자 역시 언제 오발탄, 경기 후퇴의 유탄을 맞아 collateral damage를 입어 전쟁의 사상자(casualties) 대열에 합류할지 알 수 없다는 취지입니다. "그 어느 누구도 면제받지 못한다.(p189)" 19세기는 제국주의의 시대였으며 1차대전은 제국주의 조류의 모순이 극에 달해 열강들끼리 싸우다가 서구 전체가 쇠락의 길로 접어든 계기였습니다. 제국주의 시절에는 기관총과 대포로 아프리카, 아시아를 침탈했다면 2차 대전 후엔 전략을 바꿔 총탄 대신 금전(p253), 즉 IMF와 IBRD를 내세워 세계를 지배하려 드는 게 구미의 검은 속내라고 저자는 지적합니다. 그 누구보다, 저자 코튼이 이들 기관에 몸담고 사회 커리어를 시작한 분이므로 사정을 잘 알 수도 있겠습니다. 한국에서도 피라미드형 금융사기가 지속적으로 문제가 됩니다만, 어찌보면 현대 자본주의 자체가 소액의 부채를 풍선처럼 부풀려(p283) 저개발국의 부(富)와 자원을 수탈하려 든다는 게 저자의 견해입니다."우리는 더욱 불길한 전망을 앞에 놓고 있다... 수익 향상을 위해 비효율을 제거하려는 의도를 가진 그 체제는, (아예) 우리 인간들을 비효율의 원천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p337)." 결국 여기서도 우리가 마주하는 안타까운 현실은 인간소외입니다. 사람이 잘살자고, 잘살아 보자고 시작된 이 모든 일이,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고, 비정하고 앙상하고 잔인한 자본의 기제만 남는다면 디스토피아, 아포칼립스, 좀비 월드에 다름없는 미래가 우리를 기다릴 뿐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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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서는 2001년에 나온 책이다.
아마 불평등에 관한 사회 이슈가 제기되었기 때문에
출판사에서 판권을 계약해 시장에 내놓은 것인 것 같다.
내용은 이미 여러 종류의 책이 다뤘듯이
경제가 성장하는데 왜 우리의 삶은 더 나아지지
않는지에 대해 연구한 책이다.
무분별한 성장에 대한 이데올로기가 우리 전체의
삶을 망가뜨리고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리고 경제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설명도 보충하고 있다.
책 내용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경제학에 관한 전문적인 내용도 없다.
저자의 경력을 살펴보면 후진국에 연구원으로
대부분의 경력을 보냈기 때문에
사회 시스템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술술 읽힌다.
우리가 정말 행복해 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는지 궁금한 분들께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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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책의 원저가 2001년에 나왔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게다가 저자가 서문을 비롯해 구구절절이 자신의 출신 배경이 미국의 보수적인 중상류층 백인이란 사실을 강조하는 이유도 책을 읽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그동안 이 책이 주장하는 바와 비슷한 류의 책을 꽤 많이 접해보았지만 이 책만큼 깊이 있고 단호하면서도 호소력 있는 책은 보기 드물다. 이 책은 우선 정치인들이 규제완화를 통한 경제 성장, 세금 감면, 무역 장벽 제거, 기업에 대한 더 많은 혜택과 보조금 지급, 복지 수혜자에 대한 자립 유도, 경찰력 확충 등으로 현재 세계의 문제들을 해결하려 하는 것에 일침을 가한다. 또한 저자가 중앙아메리카와 아시아 등지에서 행한 많은 활동과 경험들을 통해 외부로부터 가해진 개발은 인간관계와 지역 공동체 생활을 심각하게 파괴한다는 사실도 강조하고 있다. 진정한 개발은 결코 외국의 원조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즉, 개발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 공동체의 실제 자원들에 통제력을 갖고 이것을 얼마나 그들 자신의 요구에 맞게 효과적으로 사용하느냐 하는 지역 사람들의 능력에 전적으로 달려있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의 삶에서 화폐가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면 할수록 공동체 기반이 되는 정신적 유대감과 자연과의 균형 잡힌 관계형성은 사라진다고 역설한다. 지속적인 경제 성장의 추구는 생태계 재생력의 파괴와 인류 공동체를 지탱하는 사회 구조의 붕괴를 가속화시키며 이에 따라 빈부 계층 간 자원 경쟁을 부채질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 책은 현재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물질만능주의, 자본주의를 거침없이 비판하고 있다. 경제의 세계화란 중산층의 소득을 상위계층에게 넘겨주기 위한 장치이며, 국민총생산의 개념을 뒤집어보면 결국 자원을 쓰레기화 하는 비율의 척도이고, 경제가 성장하면 복지가 자동적으로 향상된다는 주장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국회는 한 표의 가격을 흥정하고 질서를 위한 법을 돈으로 사고파는 시장으로 변했고, 시장의 자유는 돈을 가진 자들의 자유라면서 권리가 인간이 아니라 재산과 상관관계를 가질 때 오직 재산을 가진 자만이 권리를 갖게 된다고 역설하고 있다. 또한 기업의 사적 이윤을 늘리기 위해 지역에 사적 비용의 처리를 떠넘기며 강요하는 것이 바로 현재 글로벌 경쟁 시장의 모습이며, 세계은행과 IMF가 기업 식민화를 위해 저소득 국가의 경제를 개방하게 하는데 일조하고 있으며 이들의 진짜 목적은 글로벌 기업들의 이익과 권력을 키우는 것이고, 각종 이익단체들과 홍보회사들이 뉴스와 여론을 조작하고 돈을 주는 의뢰인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도록 공동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하고 있다고 개탄한다. 게다가 세계화가 시장을 더 경쟁적으로 만든다는 주장은 다 거짓이라면서 오히려 세계적 규모의 독점을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또한 예전에는 재화와 용역의 전체 가치는 가족과 지역 공동체 안에서 실제로 가치를 창조하는 사람들에게 분배되고 교환되어서 자원은 실질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엄청나게 효율적으로 사용될 수 있었지만, 현 상황은 우리에게 징수하는 간접비용이 너무나 높아졌고, 보상은 실제 가치를 생산하는 사람들에게 돌아가지 않고 마케팅 환상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에게 돌아가게 되었다고 말한다. 특히 현재 금융 시스템은 거래되는 금융 자산의 시장가치를 실제 재화와 용역의 생산과는 아무 상관없이 끝없이 부풀릴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부를 채취하는 투자자가 얻는 이득은 다른 개인들 혹은 사회 전체를 희생시켜 가며 얻은 것이라 말하고 있다. 거기에다 회사가 커지고 시장이 자유로워질수록 자신의 비용을 다른 사람들에게 떠넘기고 거기에서 이익을 취하는 기업의 능력이 더 커진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현재의 정부는 기업의, 기업에 의한, 기업을 위한 정부라며 강하게 비난을 쏟아내면서 돈이 지배하는 세계에 대한 환상을 떨쳐내고 인생의 정신적인 의미를 회복해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 대안은 바로 지역 공동체에 힘을 불어넣는 지역화한 경제를 창조하는 것이라 말한다. 현재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는 지역의 자원에 대한 관리권이 거의 그 지역 주민들의 손에 있지 않고 중앙 정부 관료들이나 기업들에게 주어져 있는데 이를 되찾아 와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정부와 시장, 시민사회가 갖는 힘이 실질적, 제도적으로 균형을 이루는 지배체제인 민주적 다원주의를 살려 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마디로 말해 강력한 정부 아래 적절히 규제된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족기업, 소규모 협동조합, 종업원 소유 회사, 지방 자치단체로 구성되는 시장경제가 무엇보다 활성화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책에서는 생태혁명이 생태 시대의 문을 열어 줄 것이라는 말도 덧붙이고 있다. 즉, 물질적 소비와 돈에 대한 끝없는 추구는 사랑의 결핍으로 생겨난 삶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돈 버는 일보다 사랑을 가르치고 북돋는 데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사회를 창조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코페르니쿠스적 대변혁과 같은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임금의 형평성이나 일자리의 공정한 분배, 지역 은행에 대한 우대, 반독점법의 엄격한 강화 등과 더불어 생활 민주주의 운동이 펼쳐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삶이 돈보다 소중하다는 것, 돈을 벌기 위해 삶을 파괴하는 것은 사회 병리 현상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 책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세계은행과 IMF연차 총회의 화려함과 빈곤층의 인터뷰를 극명하게 대조한 것과 일본, 한국, 대만의 경제개발 방식을 모범사례로 언급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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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의 제목에 끌렸었다. 이러한 제목은 대부분 발전만을 목적으로 하는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책들이 많다. 하지만 저자의 프로필을 보고 과연 내가 책을 잘 고른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저자의 약력만 놓고 보면 저자는 매우 보수주의자일 것 같았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보수주의자가 아니라 오히려 신자유주의의 만행을 고발하고 실제로 언론에 나오지 않는 IMF의 보고서 같은 것을 예로 들면서 신자유주의라는 단어 자체를 쓰지 않던 IMF가 이 단어를 쓰면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를 보고서로 냈다는 사실을 설명하면서 그만큼 신자유주의는 많은 전문가들에게 실패한 이론이라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사실 책 내용이 막 쉽게 읽히는 그런 내용은 아니지만 뒤로 갈수록 좀 더 재미있어지는 그런 책이니 끝까지 인내를 가지고 보기를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