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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시집 강정 시인의 '처형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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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 시인의 시집 역시 첫 대면임을 먼저 밝힌다. 도서관에 도착했을때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었다. 서가를 천천히 둘러보고 한두편쯤 실려있는 시들을 살펴볼 겨를도 없이 나는 급히 추격물의 냄새를 좇는 사냥개마냥 서둘러 시집 몇 권을 주루룩 뒤져보다 강정 시인의 처형극장을 집어들었다. 왜냐하면, 강렬하고 원색적인 감각이 한눈에 확 들어왔기 때문이다. 시집 안에서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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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정 시인의 시집 역시 첫 대면임을 먼저 밝힌다. 도서관에 도착했을때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었다. 서가를 천천히 둘러보고 한두편쯤 실려있는 시들을 살펴볼 겨를도 없이 나는 급히 추격물의 냄새를 좇는 사냥개마냥 서둘러 시집 몇 권을 주루룩 뒤져보다 강정 시인의 처형극장을 집어들었다. 왜냐하면, 강렬하고 원색적인 감각이 한눈에 확 들어왔기 때문이다. 시집 안에서 강렬한 색감의 색들이 휙하고 빠져나와 펼쳐진 느낌이었다. 시를 읽으면서 어떤 시들은 읽기에 버겁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삶과 죽음에 대한 노골적이고도 확고한 표현들이 나에게는 지나치게 강하게 느껴졌다. 한순간 눈에 확 들어왔던 강렬함이 온 시집 안 곳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목도 '처형극장'. 그래, 그랬구나.

 

 유월 한달은 어찌된 일인지 초반엔 읽을 책이 몇 권 있었구나 싶었는데 중순이 되가니 읽을 책이 한 권도 없었다. 물론 예전에 사두고 '나중에 읽어야지' 했던 책들은 나중을 기약하며 잘 있다. 그런데 꼭 지금 막 관심이 가는 책을 읽고 싶어지는 건 왜일까. 책장에서 나중을 위해 잠들어 있는 책들에게 미안하게도, 시간을 쪼개 '한달에 한 권 정도는 시집을 읽어야겠다'며 도서관엘 들렀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쎈 감각들은 나에게 너무 지나쳐 읽기에 수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편들이 죽 늘여쓴 산문처럼 되어 있는 시였는데, 그 점도 좀 장황하다 생각되었다. 오규원 시인의 시집 '두두'가 자꾸만 떠올랐다. 그 간결함과 함축적인 표현이 극명히 대비되는 느낌이었다.

 

 또 하나 읽기 어려웠던 점은, 종교적인 색채를 띄는 시가 좀 있었다는 것이다. 종교적인 의미를 가지는 상징들이 나왔다 하더라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문외한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그런 부분이 가급적이면 배재된 내용의 시들, 일상의 감흥을 정제된 언어로 아름답게 표현해놓은 시를 좋아하기 때문에 더 그렇다. 그래서 이 시집에서 가장 좋았던 시를 꼽는다면, 들큰한 연시의 느낌을 전해주는 [나를, 그대는]으로 생각한다. 마음에 들었으므로 전문을 소개한다.

 

 [ 나를, 그대는

 

 

 

 잊지 마세요 더 많은 걸 잊어야 할 때가 올 거예요

그대 기억 속에 피는 꽃이라고 말하진 마세요 더 크고 넓은

꽃잎들을 그대는 잊어야 할 거예요 난 그대에게 줄게 없었어요

피도 눈물도 내 것은 하나도 없는 몸뚱이를 그대가 가졌으면

 

사랑한다고 말한 적은 없었지요 유일한 그대 사랑이고 싶었던

날, 없는 우주와 없는 바닷속에서 숨쉬려는 그대는 찾고 싶지

않았겠지요 세상 어디에도 나는 없어요 그대가 내 속에서 달아나

버리는 내가 또 있겠네요 없는 세상이 정말로 없어져버렸으니까

 

다시 올 거라고 믿어요 오지 않으면 어쩌겠어요 새들이 아침마다

내 방 창틀에 붙매어 우는데 무어라 답해드릴까요? 지난밤 악몽 속에서도

그대는 멀쩡히 아침 출근을 하고 나는 다시 악몽의 꿀단지 속에

빠져들어요 깨어나면 정오가 넘어요 점심 먹으러 가는 그대가, 아 없어요

 

그대로 나는 아직 그대 꽃병 속에 박힌 봄꽃이에요 봄이 가도

나는 안 가요 갈 데가 어디 있겠어요? 그대가 가지 않는데, 없는 우주

없는 바다 한가운데 그대가 떠 있어요 아직은 죽지 마세요 내가 붙들어드릴게

잊지 마세요 잊어야 될 더 많은 걸 들고 내가 그대속에 살아 있으니 ]

 

 

 이 시집에서 삶과 죽음, 남성과 여성에 대한 대비가 강렬히 나타난 것 외에도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 비슷한 이미지를 연상시켜 표현했다는 점도 눈에 띄었다.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였다. [선동하는, 선동시키지 못하는 詩] 에서 '아버지가 외출하셨다, 나는 자유다 ...중략... 나는 아버지가 없는 집을 지킨다 나는 그대로 아버지의 집을 떠받치는/ 옹이 많은 서까래 한 토막이다 내 죽음 그대로 짜여진 관 그대로' 라는 부분에서도 아버지의 부재를 나의 자유로 연결시키는 부분이나, [거리의 악사] 에서 '용서하라, 나는 천재가 아니었다 침묵이 나를 만들었음을 알았을 때에도 아버지를 죽이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 목숨의 시월] 에서 '나는 무색의 독극물을 찾는다 엄마에게 약 살 돈을 꾼다 / 꾸어주지 않는다 아버지에게 간다 아버지는 명백한 가을이다 / 노쇠한 강골을 번득이며 아버지가 발악한다 / 나는 도망친다' 라고 표현한 부분들이 그러하였다.

 

 오래 전에 쓰여진 시였다. 내가 읽어낸 강정 시인의 시들이 또 어떤 오독과 작위적 해석으로 넘쳐났는지는 모르겠다. 시집을 읽으며 기록을 남기면서 항상 염려가 앞선다. 이십년 가까운 시간동안 어떤 시집을 냈을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시인의 비교적 최근 시집으로 '키스'가 있었다. '처형극장'과 '키스', 그 멀고도 머나먼 간극이라니. 강정 시인을 다시 만날 시집이 기대된다.

 

 



m******j 2013.06.20.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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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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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읽기 전에는 전혀 느끼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것을 시집을 읽으면서 느꼈다. 당황했다. 정말 상상도 못했다. 그것의 이름은 공감이었다. 내가 이 시들에 공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공감은 아닐지라도 공감 비슷한 것, 이럴 수도 있겠다, 아 시가 정말 좋구나 생각했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었다.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집어 들었다. 시집을 펼치기도 전에 뭔가 그로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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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을 읽기 전에는 전혀 느끼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것을 시집을 읽으면서 느꼈다. 당황했다. 정말 상상도 못했다. 그것의 이름은 공감이었다. 내가 이 시들에 공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공감은 아닐지라도 공감 비슷한 것, 이럴 수도 있겠다, 아 시가 정말 좋구나 생각했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었다.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집어 들었다. 시집을 펼치기도 전에 뭔가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줄 것을 예상하긴 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어둡고 탁한 기운을 가진 이미지란 이미지는 모두 그러모아 전시되어 있긴 하지만 사실은 무척 아름다운 시집이다.

 

  분명히 슬프다, 아니 슬프다기보다는 비참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아름답다. 그들은 아름다움이라는 단 하나를 위해서 달려가고 그 지점에는 섹스와 죽음이 있다. 에로스와 타나토스라는 철학적 개념은 잘 알지도 못하고 그렇기 때문에 말하고 싶지도 않지만 강정의 시 속에서는 육체적인 사랑과 죽음에서 비롯되는 아름다움이 유난히 돋보인다고 생각했다. 온통 검고 붉고 음습하고 잔혹하지만 분명 아름답다. 서양이나 일본의 문학에서는 가끔 볼 수 있었지만 한국문학에서는 처음 보는 것 같다. 적어도 나에게는 처음이었다. 죽음과 섹스를 연결시키기도 하고 서로 겹쳐보기도 하고 탐구해보기도 하는 그의 상상력이 인상적이었다.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타입의 시들인데도 불구하고 묘하게 낯설지 않았고 여러 시들이 한꺼번에 내게 찾아왔다.

 

  특히 <당신을 만난 이후로>, <오렌지 혁명>, <기타리스트가 죽다>, <기도>, <아름다운 적>, <아름다운 흉조>가 바로 그것들이다.

 

  시인은 71년생으로 올해 서른아홉의 나이다. 하지만 처음 시집이 나왔을 때, 1996년에는 그는 아직 스물여섯이었다. 시집을 다 읽고 시집 날개의 그의 약력을 보면서 스물여섯의 남자가 쓸법한, 아니 스물여섯의 남자와 정말 어울리는 시라고 생각했다. 자기 파괴적이고 그 못지않게 사회에 반항적이며 죽음과 섹스와 그를 통한 아름다움을 갈구하는 스물여섯의 나이.

 

  그는 죽음을 원하면서도 섹스, 창조와 부활의 상징 또한 갈구한다. 남근은 여근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한편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니까, 섹스는 죽음이면서도 그와 반대되는 생의 면모까지 갖추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시에서 드러나는 죽음에 대한 갈구와 섹스에 대한 욕망은 전혀 모순되는 게 아닐 것이다. 그는 죽고 싶으면서도 살고 싶다. 그가 죽음을 원한다는 말은 오히려 강하게 살고 싶다는 말의 반복이자 강조가 아닐까 생각해봤다.

 

  그의 시는 조금 이상하지만 아름답다. 혼란스럽고 욕망이 가득하며 불안하지만, 그것이 조금도 불편하지 않다. 그의 첫 번째 시집을 막 덮었다. 두 번째 시집도 봐야지, 세 번째 시집도 읽어야지, 아니 그전에 첫 번째 시집을 사야지. 나의 마음도 시처럼 붉었다가 검게 변했다가 순식간에 부풀었다.

 


  그나저나 필명일 거라 생각했던 시인의 이름 강정이 정말 본명이었다. 뭐랄까. 독특하면서도 절대 평범하지 않은 그의 이름이 그와는 조금 어울리지 않다 싶으면서도 시인, 글 쓰는 사람의 이름 같다는 생각이 든다.

w****0 2009.06.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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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처하는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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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 시인의 <키스>를 먼저 읽고 시간이 지나간 후에야 <처형극장>을 읽는다. <키스>를 읽었을 때 푸른색의 이미지를 느꼈다면 이번 시집 <처형극장>을 읽을 때는 죽음의 이미지가 시집 전반을 뱀처럼 휘감고 있는 이미지를 느꼈다. 연대를 따져보면 <처형극장>이 먼저 출간 되었고 <키스>가 출간되었다. 그렇다면 죽음의 이미지가 만연해 있는 것이 먼저였고 그나마 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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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 시인의 <키스>를 먼저 읽고 시간이 지나간 후에야 <처형극장>을 읽는다. <키스>를 읽었을 때 푸른색의 이미지를 느꼈다면 이번 시집 <처형극장>을 읽을 때는 죽음의 이미지가 시집 전반을 뱀처럼 휘감고 있는 이미지를 느꼈다. 연대를 따져보면 <처형극장>이 먼저 출간 되었고 <키스>가 출간되었다. 그렇다면 죽음의 이미지가 만연해 있는 것이 먼저였고 그나마 정제되고 단련된 모습의 <키스>가 뒤라고 할 수 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깊어지지 않았고 옅어져서 세상에 제법 적응해가는 것 같아 보인다.


현실은 ‘신들도 도망 다니’는 곳이지만 시인은 ‘세상의 근골을 읽’으려 애쓴다. 드러난 세상의 표피들이 아니라 표피 뒤에 숨겨진 진피 혹은 이면을 읽으려 한다. 시인으로 태어나게 된 자들의 공동된 숙명 혹은 천형이다. 내가 보기에 젊은 강정이 읽은 세상은 그리 살만한 곳이 못 된다. 세상의 근골을 탐사하는 강정은 그 기저를 잠식하고 있는 것이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은 어떤 식으로 우리 세상에 드리워져 있는가에 대한 탐색이 시작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나는 죽기 위해서 목을 매달고 있다. 정말 죽을 수 있을까?’라고 스스로에게 자문한다. ‘연극 속에서 죽기를 원한다. 연극은 내 정말 삶일 것이다’라고 선언한다. 흔히 시쳇말에 인생은 연극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 수사를 그대로 차용한다. 그렇다 죽지 않는다면 연극은 끝이 나지 않고 계속될 것이다. 계속 되는 삶을 향해 ‘이런 제기랄 이렇게 맥도 못 추고 다시 살아야’한다고 찬탄한다.


현재의 삶 속에서 죽음의 수용은 기민하게 이루어지는데 ‘모든 사소한 죽음을 수락’하려고 한다. 죽고싶은 삶이다. 죽음이 현실을 외면하는 가장 안전하고 완전한 방편일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는 시인 강정은 죽음을 노래하고 경외하고 숭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면의 시들을 읽다보면 죽음이 지배하는 삶에 대해서 약간 빗겨나 있다. 죽지 않을 것이다. 죽음을 당해야 하는 것이 천형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연극이 끝나는 지점일지라도 그는 무대에서 내려오려 하지 않는다. 되려 죽을 수 있을까라고 사람들에게 묻는다.


인간들이 살아내는 삶의 연대기를 대충 구획해 보면 유년기 청년기 중년기 노년기로 대분할 수 있을 것인데 세상에 태어난 그 순간부터 죽음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생을 살아가지만 청년기에서 죽음의 수용은 커다란 파문이며 굴절을 일으킬 수 밖에 없다. 무의식의 한 부분이 의식적인 부분으로 명징화되는 순간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은 추상화되어서 의미가 모호하다가 청년기가 지나서 명징해진다. 얼마나 슬픈 일인가. 인간의 끝을 스스로 인식한다는 것 말이다.


‘팔다리가 묶여 있’지만 ‘벗어나고 싶지 않다‘ 벗어나고 싶지 않은 곳에서 ’이곳에서 죽‘으려고 한다. 처형당하는 극장에서 말이다. 죽음을 외면하지 않는다. 담담히 받아들인다. 강정의 시가 다행스러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외면하면서 침울하게 혹은 경박하게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나아간다. 개진하는 것이다.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감내하는 것이다.


강정의 시집 <처형극장>을 읽으면서 죽음 이외에 시를 관통하고 있는 것은 아버지의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적화자에게 아버지는 공포와 억압 혹은 두려움의 존재다. ‘아버지가 외출하셨다. 나는 자유다’라고 말하며 ‘이제는 엄마가 된 계집들 불러모아 떼씹을 벌이’겠다고 하고 ‘침묵이 나를 만들었음을 알았을 때에도 아버지를 죽이지 ’못한다. 여기서 지루하게 콤플렉스니 뭐니를 따져도 재미없는 일이다. 식상한 비유처럼 식상한 수사며 이론이다.


시의 좋은 구절들이 별빛달빛처럼 많겠지만 마지막 시의 마지막 연을 한 번 보자 ‘바다와 노을이 섞여 피가 되는 곳/ 다시 바다에서 /입관과 재생의 절차가 다시 , 거기서 , 개진되었다’고 쓴다. 태초에 모든 생명이 시작되었다던 바다는 이미 거대한 자궁이다. 자궁 속에서 강정 같은 이 많이 태어나거나 사산되거나 할 것이다. 죽고 태어나고 살고가 반복된다. 아 이 얼마나 지루하고 멸렬하고 다분한 삶을 언제까지 반복하며 살아야 한단 말인가?


역시 시에 대해서 쓰는 것은 어렵다. 글을 쓰기 위해 뽑아둔 몇 문장들을 다 써보지도 못하고 글을 마무리 짓는다. 많은 문장들은 욕심이고 헛된 것이다. 바람이 불었으면 좋겠다. 바람 사이로 죽음의 기운이 불어와도 좋겠다. 바람이 이끄는 쪽으로 그저 나아갈 것이다. 죽겠다고 죽고싶다고 죽는 것이 그리 쉬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 죽음을 대면할 때까지 앞으로 나아가길 권한다.

y*******n 2011.06.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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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도화지위에 피었다 지는 작자만의 극장(?)을 들여다보곤......
"하얀 도화지위에 피었다 지는 작자만의 극장(?)을 들여다보곤......" 내용보기
어쩌면 세상과의 화목을 스스로 멀리하고 늘 처형극장의 문을 개방한 채로. 삶의 이면만 들여다보며 살아 온 듯한 느낌을 가지게 하는 시집이라고나 할까? 물론 그런 삶의 과정이 무익하다 하는 것이 아니나, 삶보다 너무 죽음의 세계로 인도되는 경향이 군데군데 정말이지 군더더기같이 보일 정도다. 하지만 그 속에서 치열한 삶의 모습들을 그리려 한 점은 이해가 된다. 흔히 빛과
"하얀 도화지위에 피었다 지는 작자만의 극장(?)을 들여다보곤......" 내용보기
어쩌면 세상과의 화목을 스스로 멀리하고 늘 처형극장의 문을 개방한 채로. 삶의 이면만 들여다보며 살아 온 듯한 느낌을 가지게 하는 시집이라고나 할까? 물론 그런 삶의 과정이 무익하다 하는 것이 아니나, 삶보다 너무 죽음의 세계로 인도되는 경향이 군데군데 정말이지 군더더기같이 보일 정도다. 하지만 그 속에서 치열한 삶의 모습들을 그리려 한 점은 이해가 된다. 흔히 빛과 그림자로 비유대곤 하는 상대성 원리, 그 속에서 모든 것이 꽃이 피고 낙엽이 지고 하는 자연과 닮은꼴을 유지하는 것은 아무리 생명공학이 발달해도 원줄기만은 벗어날 수 없겠지! 절묘한 구석까지 삶의 쓴맛을 느끼며 여행을 감행할 줄 알아야 비로소 작은 몇 행의 싯구절이 태어나는구나, 그리고 설사 태어난다한들 그것을 진정으로 보담아주고 안아주는 것은 결국은 스스로로구나... 하는 감정을 지난 시절에 시를 쓰면서 느낄수 있었는데 작자의 내면에선 어떤 울림으로 다가왔을까? 그렇게 좋은 시의 소재를 우린 스쳐지나가면서 스스로 외로워지는 공부를 너무 등한히 하는 것을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인상깊은구절]
배우는 퇴장할 줄 모르고 이제, 세상은 충분히 낯설어져 있다. 배우인 나는 한 번도 죽어보지 않았기에 무대가 곧 나의 무덤임을안다. 나의 대본은 없다 나는 나를 펼쳐보고 모방할 뿐이다 조명이 입을 다문 침묵과 어둠의 한 귀퉁이, 나의 연기는 웅크림에서 출발한다 사람들은 나에게 말을 걸지 못한다 하얗고 단단한 이빨로 팝콘을 씹으며 객석에 엉덩이를 내려놓을 뿐이다 조명이 입을 열어 싯누런 무대 위에 나를 뱉어낸다.......
YES마니아 : 로얄 b*****7 2001.10.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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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죽고 매번 살아나는, 대본도 없는 인생...
"매번 죽고 매번 살아나는, 대본도 없는 인생..." 내용보기
강정은 자신의 시집 처형극장에서 불안과 어두움, 둔탁함과 견딜 수 없는 무관심등을 경험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시인은 자신의 피동적이던 움직임에서 벗어나 그 극장을 인정하고, 연극 속으로 뛰어들기로 작정한다. 시는 한편한편 하나의 삶이 되고, 또 그것은 탄생과 동시에 처형된다. 여기에 처형극장의 아이러니가 존재하는 것이다. 시인은 지금 세상에서 별 의미를 가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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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은 자신의 시집 처형극장에서 불안과 어두움, 둔탁함과 견딜 수 없는 무관심등을 경험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시인은 자신의 피동적이던 움직임에서 벗어나 그 극장을 인정하고, 연극 속으로 뛰어들기로 작정한다. 시는 한편한편 하나의 삶이 되고, 또 그것은 탄생과 동시에 처형된다. 여기에 처형극장의 아이러니가 존재하는 것이다. 시인은 지금 세상에서 별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것들을 자신의 극장으로 끌어들인다. 그들은 모두 극장 위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단 하나의 몸짓만을 남긴체 처형장으로 향한다. 이는 시와 시가 따로 떨어져 있으면서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이런 행위는 무척이나 무자비해보인다. 그러나 잊혀져 가는 삶들을 유기, 또는 방치하는 것보다는 나은 듯 싶기도 하다. 이것은 경고이다. 타인에 삶에 대한 우리들의 무관심에 대한 경고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그런 삶들에 몰입한다. 그래서 그는 매번 시 앞에서 남의 생을 살고, 또 사라진다. 처형극장은 그에게 모든 사람을 이해하는 공간인 것이다. 그 속에는 매번 죽고 매번 살아나는, 대본도 없는 인생들이 연기하고 처형당하는.... 그래서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는 시인의 마음이 잘 들어있다. 좋은 시집이다. 시를 읽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 시집을 추천하고 싶다.
r*****d 2001.08.2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