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琉璃廠). 창문에 끼는 유리가 아닌 청의 수도 연경의 서점거리로 우리에게도 꽤 익숙한 곳이다. 영정조 대에 이르면 청나라에 간 인물들은 유리창에 들러 책을
구하는 일을 빠뜨리지 않을만큼 명소였기에, 자주 언급되고 있어서.
박지원이나 홍대용을 비롯해서 유리창 방문소감이 남긴 인물도 적지 않았는데 청나라에서는 책의 상업적 출판이
활발했고 그런만큼 서점은 물론이고 책을 취급하는 서상(書商)들도 적지 않았던 것이다.
중국에서는 상업적 출판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시기가 송(宋)나라였고, 그뒤 명청대에 이르러서는 과거 더욱 활성화됐다. 책이 상업적으로 출판됐다는 의미는 지식이 대중적으로 확산되고, 사회 질서의 변화를 촉발시키는 단초가 됐다는 점이다.
특히 과거 제도와 관련한 수험용 서적이 상업적으로 개발됐고 상업적 출판을 주도했다. 그리고 이 수험용 서적은 조선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는데 뜻밖이었다. 상업적인 출판을 주도한 책이 수험서였다는 것이. 요즘으로 치면 행정고시나 사법고시 수험서가 여러 종류가 나오고, 베스트셀러가 되는 셈인데, 아무래도 주 소비층이 사족(士族)이고 그들에게 과거급제란 절체절명의 과제일테니.
더 나아가 책 제작과 관련해서 재야인사와 서상들이 큰 이익을 거두게 됐고, 재야인사들은 책을 통해서 자신의 학문적 소신을 전파하는 동시에 정치적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그리고 경전의 해석이 다양해지는 방향으로 나아갔다.반면에 수험서용 때문에 원전을 읽지 않는다는 비판도 나왔지만.
중국과 조선의 출판에서 가장 큰 차이가 나는 점이 바로 이 상업적 출판여부였다. 중국에서 상업적인 출판이 성행한 반면 조선은 관주도로
출판이 이루어졌다는 점, 조선은 종류나 양에서 책이 부족했고, 그렇기에 정부차원에서 중국에서 책을 구입해 조선에 공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사신들은 중국을 방문할 때마다 책 구입에 심혈을 기울였고, 역관들은 책을 치부의 수단으로 삼기도 했다. 사적(私的)으로 책을 구입했다 귀국해서 책을 팔아 돈을 벌었던 것이다.
중국에서 생산된 과거 수험용 책은 조선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쳤는데, 사실 이 책을 읽은 이유는 '명청 출판과 조선전파'에서 후자 조선 전파에 대한 내용이 궁금해서였다. 그런데 중국 부분이 주인데다 언급되는 용어나 사실이 익숙하지 않아서 읽기가 만만하지 않았는데 드디어 조선 부분이 나와서 반갑기까지 했다.
중국에서 다양한 경전해석이 이루어졌다면 조선에서는 여전히 국가주도의 해석본이 강세를 보였다. 책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던 조선으로서는 중국책을 취사선택해서 조선에 보급했는데, 정통적인 유가사상에 입각한 내용을 위주로 했던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놀라웠던 것은 책이 대량인쇄되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지식인들도 많았다는 사실이었는데, 흥미위주의 책이 인쇄되는 바람에 귀한 나무와 종이가 많이 소비된다면서 정통 유가사상을 담은 책 외에는 외면하려 들었다. 이러니 책으로 돈을 번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든 여건이었다.
절대 물량 자체가 부족해서 책 구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하지만 중국에서 들여온 책으로 물량이 늘어났고, 조선에 장서문화를 싹을 틔우는 역할을 했다. 그전에야 왕이 하사해야 책을 소장할 수 있었지만, 어렵게 구해서라도 책을 후손에게 물려주려고 한 한편 우수한 책을 구하기 위해 문헌정보를 정리하기도 했다.
명청시절 과거의 모범답안을 쓰기 위한 수험서가 출판 시장을 주도한다는 것에서 중국인다운 실용성이 느껴졌다. 반면에 조선은 직업적으로 과거 답안서를 써서 파는 사람은 있었는데 정작 상업적인 책 출판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고. 아무래도 중국의 인구가 어마어마하니 조선보다 시장이 형성되는 여건이 유리한 면도 있었지만, 돈에 대한 감각의 차이와 함께 조선 지식인들은 책을 너무 고귀하게만 생각한 것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