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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와 제목에 대한 느낌> 이렇게 표지를 만들면 일순 사진 속 인물이 정몽주인가? <이책은> 나남 서평단 활동 도서. <저자는>
<책내용 맛보기>
<책읽은 소감> 일찌기 정몽주에 대하여 이렇게 상세히 알 수 있었던가? 내가 이 책을 만나게 되다니. 나에게 지식의 목마름을 채워줄 작지만 큰 행운이 어느날 다가오고 있었나 보다. 정몽주 라는 역사적 인물을 이병주 저자의 글로 만나게 된 기쁨이 크고도 큼을 널리 알리고 싶다. 앞전에 읽은 정도전으로 이병주 저자의 글맛을 알았지만 이렇게도 박학다식하고 유려한 문체면서도 정곡을 콕콕 찌르는 통쾌함과 속깊이 고뇌하는 정몽주를 그려내다니. 정몽주 라는 인물이 실존한다면 만나보고싶다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대하드라마 '정도전'을 보면서 저자의 정도전을 만났다. 그의 글맛을 익혀가면서 남성위주의 글이라고만 치부하기엔 곳곳에 문학적 감성도 보여 지루하지 않았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쌍벽과도 같았던 정도전을 알고서 정몽주를 만난게 된 기쁨은 컸다. 때늦은 역사공부를 하는듯한 느낌은 공부하는 즐거움이 되었다. 대하드라마를 통해 눈에 익히게 된 정도전, 남은, 조준, 윤소중 등이 특히 기억에 남는데 이들은 이성계 파 이면서 정도전을 중심으로 한 작당들이다.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기위한 끈덕짐은 많은 사람을 주살하고...그런만치 정몽주에게 그들은 아주 뜨거운 감자였다.
이성계가 포은 정몽주를 참으로 높이 여기며 공손한 태도를 보였는데, 그건 정도전을 높이 본 거와는 달랐다. 정몽주는 양반가 자제인데다 정도전은 스스로도 자각하듯 향리 출신인지라 자라난 환경이 달랐기에 생각하는 것부터가 달랐다. 생각이 다르니 행동으로 표출됨도 극과 극이나 마찬가지. 학식면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할만치 앞서갔어도 인성이나 품성은 천지차이였다. 애당초 부터가 비뚤어진 시각과 관점을 가진 정도전이었으니 신하로써 군주를 바른 길로 보필하는게 아닌, 썩은 군주는 갈아치워야한다는 생각이었다.
모든 면에서 나무랄 것 없는 학식을 고루 갖춘 포은이야말로 원, 명, 왜구들까지도 매우 높게 보는 덕망과 학식을 겸비한 선비. 역마살이라도 낀 것처럼 포은은 많은 세월을 외국출장을 다녀야했다. 외교수완이 그를 따를 자가 없을 정도로 능했는데, 그건 말재주가 지식이 바탕이 된 겸손함에서 우러나왔고 친화력이 대단했다. 마음에서부터 우러난 곧은 마음이요 바른 자세로 상대를 겸허하게 대하니 자연 그의 진가는 높아졌다. 사람을 중히 여기며 주어진 상황에서 최고의 합리적인 면을 찾아내 분석하고 피력하니 그를 함부로할 사람이 없었다.
이런 그의 생각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중에 스승인 목은 이색이 있었는데 드라마에선 완고한 사람으로 보였으나 심약한 사람이었음을 정몽주는 여러 번 말한다. 충성하는 신하의 마음가짐은 여러 갈래가 있겠지만 요즘으로 말하면 정몽주 이하 그를 지지하는 사람은 온건파면서 여당, 정도전 이하 이성계를 따르는 자들은 야당으로 보였다. 아무리 그 옛날 고려말의 역사라지만 역사는 흐른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이 책은 작금의 현실을 대입시키는 것 같다. 자신의 안일만을 위하는 것이 아닌 민본을 위한 거라 주창하는 정도전 이하 이성계 무리.
이성계는 최영 장군을 무척 존경했고 우러렀다. 신돈의 자식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루머가 있었다해도 우왕이 정치를 잘했다면 그 루머가 사실일지라도 뒤짚을 수 있었을텐데. 신돈의 횡포와 사리사욕에 물든 권력욕을 공민왕이 제공했다손치더라도 우왕은 극악무도한 왕이었으니 신돈의 자식이란 말이 나올 밖에. 고려말의 망조가 든 왕조를 우왕의 아들 창으로 보위에 올렸으나...이렇게라도 유지되어야는게 사직인가 싶다. 나이 어린 우왕이 뭘 안다는 말인가. 결국 우왕의 비이자 창왕의 생모가 대부분을 대신하는데...이런 왕도 왕이라고 왕을 보필하려는 정몽주의 깊은 한숨은 땅이 꺼져서 지하왕국을 건설하고도 남았다.
정몽주도 최영을 매우 높이 우러르고 존경했다. 그는 많은 연배임에도 반말을 하지 않았고 정몽주가 첫 방문시에 초가에 멍석을 깔았으며 빈대가 있었을만큼 검소하고 청렴결백함이 몸에 배었다 한다. 이성계는 전리품을 군사들에게 비교적 고루 배분하는데 최영은 모조리 국고로 보내니 군사들은 존경하면서도 입맛은 다셨다는. 그런 강직함과 용맹성은 널리 이름을 알렸고 우왕이 자신의 안위를 위해 딸을 달라고 하자 절로 들어가겠다고 겁박을 했건만 결국은 장인이 되는 처지가 된다.
위화도 회군이라는 굵직한 사건. 이성계는 실상 역모의 마음으로 회군을 한 건 아니다. 상부의 명령에 시기가 적절하지 않음을 4가지 이유를 들어 상소를 올렸건만 이미 우왕의 장인이 되어 있는 최영이 왕과 함께 찬성했음이라. 최영의 생각이 일개 사심으로 움직였다면 문제가 크지만 이미 최영은 노령이었고 그의 사고방식은 조금은 낡았달 수 있는 자신의 방식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정몽주는 해석한다. 어쩜 혹자의 눈으로 보건대 최영이 조금씩 노망이 든 건 아닐까...요동정벌을 꿈꿀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음이라.
항명을 할 수도 없었던 이성계는 일부러 느리게 행보했고 조민수와 의견일치를 본다. 역모가 되지 않도록 양해를 구하는 상소를 미리 올리는데, 정몽주는 이미 회군할 수 있음을 예감하며 그 대책을 강구한다. 멀리 내다보는 식견의 탁월함이 여기서 나온다. 이성계의 기개를 높이 보는 정몽주였기에 회군할 시 덜 다치게 할 요량이었다. 이런 높은 학식을 이성계는 높이 샀고 포은을 늘 가까이하려 했으며 그의 의견을 존중하려 애썼다. 정도전과 조준이 그렇게도 정몽주를 밀어내길 간하나 이성계는 그럴수록 포은을 더욱 포용했다. 진정으로 자신의 편으로 품고 싶었음이라. 아래는 이성계가 한 말이다.
"달가는 건드리지 않으면 거암으로 가만있지만, 건드리면 뇌성벽력이 될 것이니라. 당분간 가만 두는 게 낫다." ---344 페이지
드라마에서 조준의 전제개혁을 피력하는 장면이 나왔다. 조민수의 뒤통수를 쳐 내치는 결정적 계기로 나왔다. 그렇기에 더욱 관심있게 읽은 대목이다. 정도전의 속내가 훤히 보이고 정몽주의 예감이 빛을 발하기 시작할 즈음이다.
이 대화를 들어보면 오늘날의 야당과 여당 혹은 보수와 진보 같이도 느껴진다.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중상모략이며 음해는 물론이고, 사안을 떠나서 일단 자신들의 뜻과 다르면 무조건 반대부터 하는 처사. 큰 줄기가 무엇인지 궁극적으로 국민을 위하는게 무엇인지를 염두에 둠이 아니고, 민본을 위한다는 거창한 말로 자신들의 세를 펼치기 위함이라니. 삼봉의 생각대로 움직일 사안도 많겠지만 자신들의 뜻에 반하면 가차없이 없애버리겠다는 발상은 나중에 행동으로 나온다. 그 대상자에 최고봉은 정몽주였다. 그토록 이 원수가 자신의 사람이길 바랬던 사람.
<고려사절요>는 "찬성사 정몽주는 양간에 의위하다. 즉, 중간적 태도를 취했다..."고 적고 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정몽주는 중간적 태도를 취한 것이 아니고 양쪽 주장을 한 단계 높은 데서 조절하는 태도를 취했던 것이다. ---316 페이지
이 책 한 권을 읽고서 정몽주를 다 안다는 듯이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단심가와 하여가, 선죽교 등의 짤막한 지식으로만 알고 있던 내게 어느새 대하드라마 사극이 들어왔고, 그즈음에 읽게 된 정도전과 정몽주. 나도 어느새 그런 정치적인 것들에 관심을 갖는 나이가 된 것인지도... 책을 읽어도 대부분은 자신의 성향대로 파고든다는 생각이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이해하는 것도 엄연히는 힘들고 공감한다는 건 더더구나 어려운 일. 한 부모아래 태어난 형제자매도 이념이 다름이라. 세월호 사건을 두고도 대통령 잘못이라고 하는 막내남동생을 보며 할 말을 잃었다. 엄연히는 그 배에 관련된 사람들이 1차 잘못이고, 그 다음에는 대응방식에서 분통터지는 일처리를 하는...그런 순이 되어야 맞지 않나...한 집안의 가장인 막내남동생을 두고 왈가왈부하고 싶지도 않고...한 가정을 한 나라라고 가정한다면 이 사회에서 야기되는 분쟁들이 전혀 이해안되는 것도 아니라는데 우울감이 자리한다. 가뜩이나 출산률저조한 나라에서 이 나라의 꽃다운 청춘들이 몰살 당하다니. 이 기막힘을 딛고서 다시 재무장해야한다. 그 길만이 그들의 가족과 그들의 죽음을 그나마 달래주는 아주 작은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며 역사속 인물들이지만 세상의 사람을 두 부류로만 나눈다면 정몽주와 정도전 두 타입이 아닐까. 나는 정몽주 같은 타입의 사람임을 확실히 알았다. 집안의 1번이면서 조부모님 이하 부모님, 4남매. 그러자니 다 좋아야하는 법을 가능한 찾아야했고 따라야했었다. 다 좋은 방향의 모색은 늘 힘들었지만 그럼으로써 화목과 우애를 지키려 애썼다. 착한딸 컴플렉스에 나도 모르게 걸렸는지는 몰라도 그게 당연한 걸로 여겼었다. 가능한 합리적인 방법, 한쪽에만 치우치지 않도록 늘 배려를 했지만 이날까지도 늘 불만인 사람은 항상 바로밑 여동생과 막내남동생이다. 둘째들이다. 이 둘째인 우리집 형제자매는 추진력이 좋고 눈치가 빠르다. 결핍도 상당하다. 주었다고 생각하지만 자신들 스스로 만든 결핍이요 피해의식이 강하다. 정몽주를 통해 고려말의 그 암울한 시기를 알게 된 기분좋은 시간이었다. 이병주 저자의 정몽주라는 사람을 만난 기쁨이 크다. 마치 역사의 한 현장을 생생히 목격한 느낌이다. 한자가 많이 등장했지만 감으로 짚어지는 경우도 있었고 시문도 다 의미가 있었다. 잘 만나진 책은 역시 기쁨이요 즐거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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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의 용자였던 인물의 이야기를 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든 가치가 있는 일이다. 더구나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생명 다해 의지를 관철한 인물에 관한 내용이라면 작은 것까지라도 소중하게 보여 질 듯하다. 그런 뜻에서 정몽주의 이야기는 그 작은 것 속에 빛나는 밝은 영혼을 느낄 수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문다. 읽어 가면서 그 생각이 구체화되는 것을 느꼈다. 정말 이 시대에 가치 있는 인물이 아닐까 생각해 보면서 그를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진다. 그는 의지의 화신이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에는 어떠한 유혹도 물리쳤다. 권력도 부귀도 그의 선의를 거스르지 못했다. 그는 고려 왕실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였다. 이성계 일파가 고려의 사직을 무너뜨릴 징조를 보일 때 그는 단독으로 결연하게 이성계가 아파 누워있는 곳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그는 언성을 높이면서 고려를 쇄신하여 바로잡을 것을 요구한다. 그의 태도는 온전히 고려를 다시 부흥하게 만드는데 있는 것이다. 이성계는 그와의 마지막 대회에서 몸을 돌려 뉜다. 그것은 서로에게 나눈 마지막 예의가 된다. 정몽주는 돌아가는 길에서 그의 뜻이 꺾이면서 선죽교에서 피살된다. 그 일로 인하여 그의 의지만 남고 뜻을 사장되는 결과를 낳는다.
젊을 때 그는 명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난파를 당하여 죽을 고비를 당한다. 그때 배에 몸을 묶어 버틴 관계로 어느 땅에 휩쓸려 가게 되는데 그곳이 중국의 남쪽이다. 명주라는 곳인데, 그곳에서 그는 유명한 시인의 글을 만나고 시인의 시에 반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 관리가 그의 문장 능력을 인정해 잘 보살펴 준다. 그러면서 황제에게 고려의 사신이 난파를 당하여 명주에 머물게 되고 있음을 말한다. 그러나 반년이 흘러도 아직 온전하지 못했던 명의 조정에서는 아무 말이 없다. 그런 와중에 명주의 관리는 그에게 거처할 작은 공간을 마련해 주고 조정에서 연락이 올 때까지 편의를 제공해 준다. 또한 초련이라는 여인을 붙여 준다. 몽주는 초련과의 사이에 애틋한 마음이 생겨나게 되고, 초련에게 글에 대해서도 도움을 받게 된다. 그곳에서 더욱 명나라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게 된다. 유학에 대해서도 심취하게 되는 기회를 가지고 앞으로 그가 고려 조정에서 친명파가 되는 바탕이 마련된다. 그런 생활을 하는 중 명의 조정에서 연락이 오고 명주에서 남경으로 오라는 전언이 온다. 그래서 명주를 떠나는 상황이 되고, 그곳에서 잘 대해준 많은 사람들과의 애틋한 이별이 이루어진다. 특히 초란과의 이별은 시를 나눌 정도로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하기도 한다. 다시 만나자는 약속까지 하나 그 후 초란의 기록은 나타나지 않는다. 고려로 돌아간 몽주는 공민왕을 알현한다. 그리고 자신이 겪은 명나라에 관한 긍정적인 인식을 심으려 애쓴다. 이 명주에서의 삶은 정몽주의 문장 능력을 잘 알 수 있는 시간이 되고, 중국에 그의 문명이 알려지게 되는 계기도 된다. 그의 생각과 글에 대한 능력이 당대 동북아 3국의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이 되고, 그의 삶이 부각되는 기회가 된 것이다. 이 일을 통해 독자인 우리는 그의 능력을 재조명해 볼 수 있는 자료로 삼으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달가 정몽주는 왜에도 사신으로 건너간다. 왜구가 너무 창궐하는 바람에 그들을 무마하기 위한 사절로 일본에 건너가게 되는 것이다. 그는 그곳 큐슈에서도 학문에 뛰어난 자로 소문이 나 있었고,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 그곳을 관장하는 아마카와가 그의 학식을 지극히 흠모하는 자였던 것이다. 그곳에서 그의 학식과 지혜를 실제로 보여주는 일화를 많이 남긴다. 왜구의 진원지인 그곳에서 그들을 침략자로 인식하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교류의 대상으로 언급한다. 그리고 싸움은 바람직하지 않고 상업적 교류에도 악영향을 미친다고 설파한다. 또한 동반자의 관계에서 서로의 이익을 찾아야 한다고 한다. 그는 그곳에서 그의 뜻을 충분히 전하고 1년여의 시간을 머문다. 당시 일본의 정권이었던 아시카가 막부의 회답을 기다리면서 그곳에서 머문 것이다. 결국 왜구가 쳐들어오는 일을 막는 소임을 다하지는 못했지만 고려의 위세를 충분히 전달하는 기회가 되었다. 정몽주가 일본에서 돌아왔을 때 고려 조정은 친명파들이 세력을 넓혀 나간다. 그 중심에 정몽주가 있다. 그는 명의 유학을 기반으로 하여 고려를 다시 일으키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고려 조정이 부패와 나약함으로 일관하고 결국 무신들이 힘을 얻는 상황이 된다. 그 가운데 이성계의 세력이 거대하게 성장하게 되고 결국 위화도 회군을 통해 조정을 장악하는 상황이 된다. 그런 가운데 고려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게 작용하는 정몽주는 이성계에게 방해물이 된다. 곳곳에서 이성계의 인물들과 대립하는 관계가 된다. 그의 고려 조정을 향한 충정이 무리들과 함께하게 되고, 그것이 이성계 일파에겐 부담이 되는 것이다. 이 책은 고려사, 고려사절요 및 정몽주의 작품들이 주요 재료가 되어 있다. 글의 곳곳에 그의 시가 등장한다. 그것으로 그의 행동과 생각을 밝혀주는 도구로 삼고 있다. 독자들이 신뢰를 하면서 읽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정몽주의 작품이 그의 마음을 그려내는 부분 부분에 제시되어 마음이 잘 전달되고 있다. 우리는 그의 작품을 보면서 그가 처한 상황과 그의 마음을 절절하게 느껴가면서 책을 읽을 수가 있다. 감사한 책의 짜임이다. “달가는 건드리지 않으면 거암으로 가만있지만, 건드리면 뇌성벽력이 될 것이다. 당분간 가만 두는 게 낫다.” 이성계가 정몽주를 두고 한 말이다. 그를 존중하면서 그를 아끼고 그와 함께 하는 나라를 얼마나 생각했는가? 생각해 볼 수 있게 만든다. 그리고 몽주의 능력도 느껴볼 수 있는 글이고, 이성계가 마지막까지 그를 얼마나 마음에 두었는가를 알 수 있다. 이것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 것이 이방원의 선죽교다. 선죽교에서 정몽주의 피살이 있고난 후 그려 조정은 바로 몰락의 길을 간다. 그 일에 이성계도 급하게 마무리해 나간다. 한 나라를 건설해 나가는데 방해 요인으로 작용했던 인물이 이렇게 후대에 의미 있는 인물로 남는 것도 드물 일이다. 이 책은 그 인물의 능력과 의지를 재구성해 보여 주고 있다. 오늘을 사는 우리 위정자들이 지녀야할 마음가짐을 잘 보여주는 인물이 아닌가 여겨지면서 글을 읽는 내내 씁쓸한 마음을 지녔다. 다가오는 6.4 지방 선거에서는 보다 타인을 위하는 자신의 의지가 굳건한 인물을 뽑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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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주, 그의 글은 그윽하다. 그윽하다는 말은 깊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의 글이 어디 그윽하기만 한가? 넓고 또한 길기도 하다. 그래서 그의 글은 유장(悠長)하다. 유장한 것은 비단 그가 집필한 대하소설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단권 짜리 소설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번 책 <정몽주>를 손에 들면서 느끼는 감회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 그를 아는지라, 그의 책을 대할 때는 어떤 설렘이 앞선다. 그의 글을 펼치면서 느끼는 긴장감에 더하여 이 책을 기쁜 마음으로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소회를 몇가지로 요약해본다.
이번 책을 읽으면서, 나는 정몽주가 어떤 인물인가 알려주는 것에 관심을 가지는 대신에 이병주가 정몽주를 어떻게 서술하고 있는가에 더 관심을 가지고 읽어보았다, 오랜만에 읽어보는 이병주의 글이기에 다시 한번 그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면서 참으로, 흥미 있게 그리고, 그 책이 아까워서 한 페이지, 한 페이지, 그리고 문장 하나 하나를 음미해 가면서 읽었다.
이병주, 그는 독자를 대접한다. 자기와 같은 정도의 지식을 가진 층으로 대접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154쪽이다. “ 우공, 척약재를 좋아했지?” 그렇게 우현과 대화를 나누는 정몽주. 이때 이병주는 ‘척약재’가 누구인지 부가 설명을 하지 않는다. 자기만큼 그에 대하여 알고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말이다. 구구절절이 설명을 하지 않는다, 마치 그런 사항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그는 소설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최인호의 역사소설을 읽어보면 바로 그 차이점을 알 수 있다, 최인호는 그런 것이 있을 경우 어떻게 처리하는가? 그는 설명하고 또 설명한다. 독자들의 기억력을 믿지 못하는 것인지, 나중에 같은 항목이 나온다 할지라도 다시 설명을 하는 습관이 있다. 그에 비하면 이병주는 담백하다 못해 간결하다.
그는 독자를 마치 그의 막역지우로 알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을 때에는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 식으로 그와 대화를 나누는 독자, 독자는 그 의 책 주인공이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현장에 들어가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끔, 독자를 끌어들여 소설을 진행해 나가는 것이다.
그는 철저하게 정몽주에게 집중한다. 다른 사람(저자)들 같으면, 으레 정몽주와 이성계, 최영, 그리고 정도전과의 관계를 설명하는데 적어도 몇 장 정도는 할애할만 한데, 전혀 그런 기색이 없다. 그는 그저 주인공인 정몽주만 철저하게 파고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독자는 정몽주에 대하여 지금까지 누구도 말하지 않는 부분들을 알게 된다. 예컨대 그가 지은 시는 도처에 등장하여 그의 인생을 더욱 풍성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의 소설이 누구보다도 독창적이라는 것이다, 굳이 다른 사람이 언급한 것들 – 누구나 다아는 역사적 사실을 중언부언 인용해 놓는다거나, 모두 다 들어 알고 있는 주인공의 일화 등 – 을 그의 소설에 포함하지 않는다. 그는 그 정도로 그의 글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리라.
그러면서도 그는 그를 둘러싼 인물들과의 관계를 만남이라는 방법으로 묘사하면서, 그 역사의 진행을 서술해 나간다. 그래서 고려말의 그 어지러운 시대를 정몽주의 시각에서, 정몽주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로 하나 하나 기록해 나간다.
이병주는 대화를 할 줄 안다, 그래서 그의 소설에서 주인공으로 하여금 대화다운 대화를 하게 만든다, 그런 대화를 읽고 있노라면, 아, 이런게 진짜 사람들간의 대화로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예를 들어보자. 140쪽에서 142쪽에 걸친 우현과 정몽주의 대화, 그게 바로 사람들이 나누어야 할 대화의 모범이 아닌가?
이미 그의 전작들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것이지만, 그의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그의 소설을 풍성하게 한다. 그래서 그의 글은 다른 각도로 보자면, 단순한 소설이 아니라, 고전에 대한 그의 신선한 해석을 엿볼 수 있어 더욱 좋다. 그래서 그의 소설 면면에 묻어나는 새로운 고전 해석을 읽게 되는 기쁨도 맛보게 되니, 그의 소설을 읽을 때에 느끼는 기쁨은 그래서 일석 삼사조가 된다 할 것이다. 장차 어느 출판사에서 그의 책 들에서 녹아있는 그러한 것들을 뽑아내어 <이병주의 고전 해석집>이란 제목으로 출판해도 좋을 듯하다.
그래서 그런 고전의 새로운 해석들은 - 비록 상상이라 할지라도 – 주인공의 모습을 더욱 살아 움직이는 인물로 만들어 놓는다.
서두에 이 책을 읽는 소회를 시작하면서 ‘한 페이지, 한 페이지, 그리고 문장 하나 하나를 음미해 가면서 읽었다’ 했는데, 이 책을 또 다시 읽는다 할지라도 그렇게 읽을 수 밖에 없는 책이라 할 것이다. 이병주의 손에 의해 다시 태어난 <정몽주>, 역사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극 읽어보기를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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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전:
"태양에 바래지면 역사가 되고 월광(月光)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 문학가였지만 사상가로서 성장하지 못했던 작가의 삶이 안타까운건. 시대가 만든 불운인듯하다. 왕성한 창작의식등은 좋았지만. 직설적이고 호방한 성격인지라 프레임에 대항하는 방식이 정공법이다 보니 많은 피해를 입은 작가가 아닌가 싶다. 내면의식에 강박증처럼 시달렸다하니... 그것이 지금도 그렇게 만들어질수 있는 시대이니.. 그시대를 산 이병주 작가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내드리고 싶다. “한이 많아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한이 풀리려면 아직도 멀었다. 그러니까 계속 써야 한다.”
읽은 뒤:
2013년 MBC 드라마PD 시험에서 2교시 필기시험의 주제가 역사드라마의 주인공을 선정하는것과 시대의 이야기를 옮기는것이였다. 물론 그 인물을 선정하는것과 함께 이야기가 드라마로 제작될 만큼 흥미로운 내용이여야 함은 물론이였다. 드라마PD를 지원한다면 역사서를 볼것을 권한다.
여기 오랜만에 '두 사람'을 접하게 되었다. 책의 제목처럼 고려말 충신인 '정몽주'와 이 책을 쓴 작가 '이병주'였다. 70,80년대를 살아온 세대들이 기억하는 이병주를 기억하는 선배 작가들의 이야기를 가져왔다.
공지영. "산하가 된 그 이름 이병주", 《한겨레》, 2006년 4월 27일 작성. 2008년 6월 23일 확인 손철주. "방황하는 청춘아, 이병주를 읽어라", 《조선일보》, 2006년 4월 21일 작성. 2008년 6월 23일 확인
이병주 선생 스스로가 한이 많다고 했던 시절을 보내며 파란만장한 한국 근대사를 빗대에 역사적 문학작품안에 오롯이 담아냈다.
이색을 판문하부사로,심덕부를 문하시중으로,이성계는 그 아래의 직급인 수문하시중으로.
5,16 쿠데타 직후 최고회의를 만들어선 장도영을 최고회의 의장으로 하고, 박정희가 부의장으로 앉은 것과 동교同巧의 수법이라고 하겠다 p.339
뚜렸하게 비판을 한다기보다. 역사의 기록을 통해 빗대어 현실의 이야기를 담아서 문제제기로서 동일시하였다는것이며. 물론 비판을 하기에 서슬퍼런 시기를 보냈기에 오히려 독자에게 기억하게 만들어주었다.
요즘은 보기 드문 한문으로 읽혀지는 해석들이 다시 읽어도 그 문장에 담겨있는 치밀한 작가의 기록들 탐구로 만들어간 소설<정몽주>가 이 시대 다시 읽혀지기에 충분히 독자들을 매료할것이라고 본다.
좀 아쉬운건. 책에 밑줄긋고 담아내고 싶은 문장들이 너무 많았는데. 조금씩 옮겨오고 싶었다.
그중에 책 제목의 부제로 씌인 구름은 용을 따르는가..
雲從龍風從虎 운종룡 풍종호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따른다.
책의 말미즈음에 정도전이 정몽주를 회유하기위해 이말을 쓰는데.
정몽주의 답변이
인신은 구름이 될 수도 없고 바람이 될 수도 없다.
이것이 나의 마음이다.
작가 이병주가 마지막장에서 정몽주를 이렇게 표현한다.
청사의 비광悲光이라. 이 비광이 춘추를 거듭하는 동안 민족을 광피하는 영특한 빛으로 되는것이니 역사의 오묘함이 역연歷然하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지난 역사를 통해 현재를 읽으려고 하는것 아니던가. 정몽주가 살던 시대와 그 패자의 기록을 찾아 옮기는 작가의 정신을 기반으로 이시대 또 다른 삶의 기록을 역사로 옮길때 잊지 말아야 할 무엇이 있는게 아닌가.
우리는 그래서 역사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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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원과 정몽주의 일화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하여가'와 '단심가'를 주고받았던 유명한 일화, 결국 선죽교에서 이방원의 수하에 의해 피살당하고 만 정몽주. 역사에 대해 문외한이더라도 드라마를 통해서라도 한두번은 다 보았을 듯.
이성계와 정몽주가 사실은 굉장히 서로를 아끼고 존경하던 사이였단 것은 이 책을 통해 알았다. 그러나 역사의 소용돌이는 이들 세력을 대립적인 구조로 만들게 되고. 서로가 추구하는 이념이 다르기에, 그들은 양립하게 된다. 다른 시대에 만났더라면 나라를 위해 함게 하는 좋은 지기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가지고 있는 이념이 달라서 서로가 적이 되어야만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하긴, 어디 비단 이것이 과거 역사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랴. 현재에도, 앞으로도, 거대한 정치판에서는 비일비재한 일이겠지.
정몽주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게 해 준 계기를 마련해 준 책이다. 신의와 지조로 가득한 충신으로서의 모습 뿐만 아니라 학문과 군사, 외교 분야에까지 능했던 달인이었단 것. 문장가, 외교가로서의 자질은 지금 보아도 정말 너무나 훌륭하다. 그리고 앞날을 내려다보는 그의 탁월한 식견도.
절대군왕제의 세상이었다고 하지만 정몽주 같은 달인이 유치한 임금, 또는 암우한 임금을 받드는 심정이 어떠하였을까. (p 101)
썩은 조정을 뒤집고, 새로운 국가를 만들자는 이성계 같은 개혁파가 분명 존재할 것이고, 우군에 대한 충성이야말로 진충이라는 정몽주 같은 충신파가 존재할 것이다.
어느 쪽이 옳고 그르다 감히 재단할 수 있을까? 나로서는 참 어려운 문제 같다.
이념으로서의 충성을 다하기 위하여 인격적인 감정을 절사해야 했던 충신의 비극적 고민과 갈등! 그 안에서 자신의 신념에 따라 최선을 다해 살아온 정몽주. 대의, 명분, 충심, 민생 사이에서 오직 나라를 위해 고민하고 살아온 그의 모습을 보며 이 시대 정치를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
또한 그의 죽음으로 고려의 막이 결국 내려지는 것을 보며, 그의 존재 자체의 대단함을 느꼈다.
정몽주 뿐만 아니라 정도전, 최영에 대해서도 다시금 되돌아볼 수 있었던 책. 역사를 돌아보는 일은 참 흥미로운 일이다. 어쩜 현실과 그리도 다르지 않은지.
요즘 <정도전>이라는 드라마가 꽤 인기를 끌고 있다던데, 그 드라마를 통해서도 정몽주에 대해 다시금 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요즘은 사극을 통해 역사를 배우는 세대가 된 것 같아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그렇게라도 접할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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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주라면 고려의 충신이며 학문에 깊은 조예를 가진 인물이며 많은 시가 유명하기도 하다. 역사적으로도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요즘 TV에서 화자되고 있는 정도전과 같은 시기의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데 사실은 이런 인물들에 대한 내용은 어릴때 한국사를 공부하면서 배웠던것이 거의 전부가 아닌가 싶다. 각각의 인물에 대해 배워야 할 시간도 그러한 인물에 대해 상세하게 알려줄 책이나 저작물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역사서를 통해 그들의 행적과 인품을 추정할 뿐이고 실제 어떤 성품의 인물인지 보다는 역사적 사실에 어떻게 관여했는지가 오히려 더 부각되는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역사서가 공정한 면도 있지만 사건의 성격에 따라 역모를 꾀하였다거나 역모에 휘말려 죽었다거나 하는 편파적인 사실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역사의 기록이 공정하게 기록되어야 하지만 당사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역사는 한 쪽편을 들게되면서 와전되기도 하고 진술이 엇갈리는 경우가 많다는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에 그들 인물에 대해 재조명 한다고 해도 거기에는 한계가 있을것이란 생각과 함께 좋은 점만 보게되는 단점 또한 가지게 된다. 그래서 역사는 역사로만 남아야 하는것은 아닌지......... 오늘날의 일대 사건이 전개되는 방식을 보더라도 옳바른 역사와 진실의 밝히는것은 어렵게만 느껴진다. 세월호 사건을 대하면서 언론과 당사자들의 행동, 이를 어떻게든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습에서 역사적 기록이 모두 사실만은 아니면 그렇다고 모든것이 거짓은 아닐것이다. 그래도 역사는 그 사실들을 사실에 입각해서 공정하게 기록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반면에 역사는 보는 사람들의 시각에 따라 그들의 평가도 달라지기에 참으로 올바른 역사를 기록하는것이 어렵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모든 사람들의 의견이 일치한다면 이러한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기록도 무의미 하겠지만...... 이 병주 그는 작가 라기 보다는 역사분석가가 아닌가 싶다. 경남 하동 출신으로 일본에서 수학하고 학병으로 징집된 후 해방되어 진주농대에서 교수였다고 하니 이 소설을 대하면서 반가웠다. 진주농대를 졸업한 것은 아니지만 경상대학교의 전신이 진주농대였고 나 자신 경상대를 졸업했으니, 스승으로 봐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흐뭇한 마음이 든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중흥기에 문필로서 많은 기여를 한 분이란 생각과 함께 역사적인 사실에 대한 내용을 소설로 그려냈다는 점에서는 문필가와 역사가의 재능을 타고 났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소설의 내용에서도 보면 확실한 근거에 기반하여 주인공의 행적을 추적하려는 생각이 많았다. 앞서 언급했지만 역사적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하더라고 중간자의 입장에서 사실을 고려하려는 마음이 있었기에 옳고 그름을 떠나 주인공 정몽주의 사실된 부분만을 고려하였고 작위적인 상황을 절제한 부분에서 간결하지만 오히려 더 신빙성이 크게 느껴지기도 했다. 한편으로 필체에서 느껴지는 고풍스러움은 이제껏 느껴보지 못했던 우아함이 우러난다. 현대의 글로 씌여진 인물들에 대한 소설은 마치 흥미로운 내용과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내용으로 흥미를 더해 빠른 속도로 읽어 나가기에 무리가 없지만 이병주의 정몽주는 빨리 읽어내려 갈래야 갈 수가 없다. 인물들간의 대화속에서도 문인으로서의 무게감과 말투가 빨리 읽어가면 그 대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지나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마저 느끼게 한다. 그리고 사전에 많은 지식과 조사를 통해 많은 자료를 확보한 다음에 집필하였기에 시대적 흐름마저 놓치기 아까운 장면들이 등장하여 조마조마하는 마음과 사실적 묘사에 매료되기도 한다. 특히나 조난 당했을때와 조난당했다 구조되어 중국 땅에서 만난 초련이라는 미희와의 관계는 설정이 들어간것 같기도 하고.......소설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사실이 아닌것을 사실처럼 만들게 하는것도 허용될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이 소설에서는 대부분의 역사적 사실을 고려사에서 인용했다. 고려사는 고려에 대한 역사를 단편적인 측면에서만 기록된것 같다. 도서중의 역사적 사실 또한 상세하게 기록이 되어있지 못한것 같다. 또한 정인지, 김종서 등이 편찬하였다고 하는데 고려시대의 정치·경제·사회·문화·인물 등의 내용을 기전체(紀傳體)로 정리한 관찬사서로 고려시대 역사연구의 기본 자료이다.『고려사』는 조선 건국 합리화라는 정치적 목적과 아울러 이전 왕조인 고려의 무신정권기~우왕·창왕기까지의 폐정을 권계하고 교훈을 찾고자 하는 목적으로 편찬되었지만, 사료 선택의 엄정성과 객관적인 서술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이라면 조선건국의 합리화라는 측면에서 이성계를 중심으로 한 조선건국의 관점에서 편찬되었기에 그들의 관점이 많이 포함되어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정몽주의 인간됨과 애국심을 잘 표현하였고 소설속의 주인공이기에 그에 대한 세세한 마음까지고 표현하고 있으나 정말로 그럴지는 읽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친원, 친명, 신돈의 정치, 불교와 유교, 왕의 횡포, 자식가진 부모로서의 최영, 정몽주와 이색, 우현, 나라의 문란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새로운 나라를 만들고자 했던 이성계, 왕을 배신할 수없었던 정몽주의 마음과 새로운 왕조의 탄생을 지지했던 정도전....등등은 최근에 화자가 되고 있던 TV대하 드라마 정도전의 내용과도 많이 일치하는 면이 있는것으로 판단된다. 소설이라기 보다는 신록이라고 하는 편이 좋을것 같은 이병주의 소설이다 소설속에서 나타난 정몽주의 시는 그의 인물 됨됨이와 사물과 인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예사롭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한자가 어렵고 한자를 해석하는 법을 잘 모르는 우리로서는 필자의 해석에 의존해야겠지만 상황 상황에 따른 그의 문체는 우리나라가 자랑할 만한 인물임을 알 수 있었다.역사적인 사실은 고려말의 충신으로 기억하고 있고 정도전과의 관계와 이성계의 관점에서 보면 고려의 마지막 충신인지 조선의 건국 공신인지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고는 있지만 이러한 사실을 제외한다면 문인으로서 공직자로서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자로서의 면모는 쉽사리 잊혀져서는 안될 소중한 위인임을 알 수 있었다. 다른 사건의 정황과 시대적 흐름을 제쳐두고라도 정몽주라는 인물이 역사적으로 어떤 인물이었고 어떤 성품으로 국민을 대하였는지 그리고 그가 생각했던 고려의 변화는 어떠했는지 소설속이나마 잘 살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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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드라마 <정도전>이 방영되고 있어서일까 나도 정도전에 관한 책을 한 권 읽어 보았고 저자의 책은 아니지만 다른 저자의 <정도전>을 다시 읽어보려고 준비해 놓고 있었는데 정도전하면 그와 비교가 되는 인물로 '정몽주'를 떠올릴 수 있는데 교과서에서 배운 얄팍한 지식밖에 없어서 다른 이도 아니고 저자의 책으로 읽게 되었다. 그런데 어찌하다보니 지방선거와 맞물리고 감기몸살로 인해 읽고 리뷰를 작성하지 않은 것이 자꾸 늦어지게 되었다. 선거에도 별 관심이 없다가 잠깐 일하게 되어 조금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보수 혹은 진보를 따지지 않고 인물을 보고 평가를 해야 하는데 언제부터인지 우린 편가르기를 하면서 인물보다는 다른 것에 더 치중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보게 되었다.
포은 정몽주의 56년 삶은 그야말로 성,충,정,지,근勤이 함께 어우러진 삶이었다고 보고 있다. 소설은 '화려한 등장이었다'로 하여 그가 과거에 급제하는 이야기부터 시작을 한다. 시골에서 올라온 가난뱅이 선비가 명문의 자제들을 제치고 과거에 급제를 하였으니 얼마나 많은 관심을 받았을까.19세에 부친상을 당해 조금 늦은 감이 있는 24세에 과거에 급제를 하여 많은 이들로부터 관심을 받았지만 나라는 왜구와 홍건적의 침노가 심하여 조정이 혼란할 시기였기에 그는 나라 안에서 뿐만이 아니라 명나라에까지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폭풍우를 만났지만 그의 기지로 인해 다행히 홀로 남아 필문과 필답으로 고려국의 사신이라는 것이 알려지게 되고 초련이라는 여인을 만나기도 하지만 아버지와 딸로서 서로 위로하며 서로 도와가며 살아가기로 하면서 그녀와 나눈 시에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내기도 한다.
"가지가 마르고 잎이 썩는다고 해서 걱정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이미 뿌리가 썩어 들어가고 있는데 말이오."
그의 이야기는 그가 남긴 몇 편의 한 시와 더불어 더욱 실감 있게 그려지지만 작가의 말처럼 '그의 생애를 재구성하기엔 사료가 너무나 부족하다. 범거할만한 <고려사>는 그이 정적의 후예라고 할 수 있는 조선의 중신들이 편찬한 것이어서 어느 정도 그 진실을 믿어야 할지 모르게 되어 있다. 그를 숭앙하는 사람들이 그에게 바친 찬사는 능히 한우충동할 정도이지만,옛글이 대개 그러하듯이 지나치게 관념적이고 추상적이어서 구체성이 결어되어 있다.' 역사는 승자들에 의해 쓰여지기 때문에 패자라 볼 수 있는 정몽주에 대한 기록이 부족한 듯 한가 보다.그렇기도 하지만 기록에서 정몽주 자신,인간에 대한 기록보다는 사건 기록이 우선이었으니 인간 정몽주를 모두 그려냈다고 하는 것은 진실성이 결여되었다고 불수도 있을텐데 그의 시나 글이 함께 하여 대체로 교과서적인 지식보다는 나았던 것 같다.
"그건 서산의 해를 붙들어 동쪽으로 돌리는 것보다도 지난한 일입니다.백성들은 왕에 관한 말만 들어도 치를 떠는 형편입니다."
소설에서는 그가 과거급제부터 선죽교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그 순간까지 기록하고 있다.'정몽주의 죽음은 바로 고려의 종언終焉을 뜻한다.그의 비참한 최후가 있은 지 3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공양왕이 추방되고 고려는 475년 동안 지탱한 왕조의 막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그의 죽음은 고려의 멸망과 같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그는 고려의 충신이라 할 수 있었다고 본다면 신흥세력인 이성계를 탓하기 보다는 그는 어떻게 보면 자신의 지조를 지키듯 고려의 충신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뿌리를 고려에 두지 않았나싶다.고려가 기울어 가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고려를 지키려 했고 자신이 선택한 충에 결코 흔들림없이 없던 그를 정도전이나 이성계 편에서 곱게 볼리는 없었겠지만 그렇게 처참하게 죽여야 했을까싶다.
"주인이 없어도 꽃은 피겠지만 주인 없이 핀 꽃은 뜻을 잃는다."
저자는 역사의 기록에 더하고 빼기 보다는 그만큼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아니 정몽주란 인물을 더 그려내고 싶었겠지만 그렇게 한다면 그란 인물에 진실성이 결여된다고 볼 수도 있어서 기록된 정몽주만큼 그의 글과 함께 그려냄이 더 다가온 듯 하다.저자의 책은 <지리산>을 읽고 반해 다른 책들도 소장을 하게 되었고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가 풀어내는 역사이야기는 우리가 놓쳐서는 안되는 부분들인 듯 하여 소설로라도 관심을 가져보는 차원에서 접했지만 이런 책임감 있는 작가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한편으로는 생각을 한다.승자의 입장에서 보는 관점과 패자 입장에서 보는 정몽주에 대한 시선은 다를 것이라 생각을 하지만 우리가 그를 봐야하는 것은 승자도 패자도 아닌 무능력한 왕권 속에서도 자신의 충과 의를 다했으며 자신의 이익보다는 마지막 순간까지 절개를 지켰다는 것.이 책은 다시 읽어봐야할 듯 하다.너무 시간을 끌며 읽기도 했지만 읽고 바로 저장해두지 않은 것이 흠이 되었다.다음엔 이 책과 함께 저자가 쓴 <정도전>까지 다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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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의 몰락과 더불어 그 혼란의 시기에 충절을 지키고자 했던 고고한 선비의 이야기는 조석으로 변하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준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되는 것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 자문하게 만든다. 학문적으로도 높은 성취를 이루었고, 정치적으로 최고의 위치까지 오르지만 자신의 사리사욕보다는 공명정대함에 비추어 부끄럼없는 삶을 살다간 고려말 충신 정몽주의 정신과 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책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단순히 고려말의 정절을 지키고 두 임금을 모시지 않는다는 이유로 선죽교에서 죽음을 맞이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지만, 그 보다는 왕조가 멸망해가는 시점에서 공민왕의 뒤를 이은 우왕은 향락에 젖어 정사를 돌보지 않고 백성의 삶은 피폐해져가는 것을 보면서 백성의 고통을 덜어줄수 없음을 고민하는 모습과 우왕이 폐위되고 더 어린 창왕이 주변의 신하들에 휘둘려 임금으로서의 지위를 지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임금에 대한 인간적인 안타까움을 고민하는 모습은 나라를 위해서 일해야 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의 표본이라 생각된다. 아니 꼭 국가를 위해서일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사회나 조직을 이끌고 가는 사람들이 구성원들을 위해서 가져야 하는 마음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말해준다. 반면 비록 새로운 왕조를 만들어 승자의 역사속에서 살아남은 정도전의 경우는 기존의 세력에 맞서기 위해서 혁명이라는 길을 걷지만 스승인 목은 이색과 여러 동문수학한 벗들마저도 버리는 비정함을 보인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그에 대한 기록은 많지만 오히려 정의로운 삶을 살다간 정몽주의 기록이 그리 많지 않은 것은 아쉬울따름이다. 그러기에 그에 대한 사실의 기록보다는 작은 사실에 살을 덧붙인 소설에 만족해야 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문신이지만 병법에도 능하였고, 자신이 취한 전략과 비책도 스스로의 명성을 높이기 위한것보다는 백성의 안위와 나라의 실리를 항상 우선순위에 두고서 행동한 그의 모습에서 충직한 절개를 가진 비장함보다는 신뢰가 깊은 리더의 모습을 느끼는 것은 나만의 심정일까? 한 시대를 이끌고간 정신적 지주로써 어느 한쪽의 의견에 치우치는 것보다 양쪽의 장점을 취할수 있었던 포은 정몽주. 숭불정책을 추구한 고려의 충신이지만 유학을 생활속에 실천하지만 불교를 배척하지 않았다. 유학의 예법은 누구나 생활에서 몸소 실천할 수 있기에 유학을 받아들여야 하고, 스스로 깊은 생각에 빠지고 더 높은 정신적인 변화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불교의 수학방법 또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중적인 생각은 단순히 흑백논리에 빠져 편가름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올바른 삶의 자세가 무엇인지 깨달음을 준다. 진정한 리더로써 거듭나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면 이책에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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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나라의 역사를 보더라도 언제나 그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정치, 경제적으로 힘든 난세의 시기이거나 혹은 획기적인 성장을 이루게 되었던 때에도, 그에 상응하는 영웅적인 인물들의 사상이나 행적들은 훗날의 세대에게 좋은 본보기가 된다. 최근 TV 사극을 통해 조선의 건국에 초석을 마련했던 정도전의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그동안 과소평가되어 왔던 그의 정치적 업적이 다시금 재조명을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조선시대의 역사과정에서 조선왕조가 오백년의 역사가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여러 가지가 이유가 있겠지만 새로운 왕조를 개창하는 과정에서 그 기반을 다지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던 정도전의 과업을 결코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금은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이제라도 대중들에게 폭넓은 시각에서 다루지고 있다는 점은 다행스러운 일이라 여겨진다. 그런데 정도전에 대한 인물의 공과 사를 논함에 있어 함께 다루어져야 할 할 인물 중에서 우리들이 간과할 수 없는 이가 있다. 그는 다름 아닌 고려말기의 충신으로 대변되는 포은 정몽주가 아닐까 싶다. 아마도 역사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지 않는 독자들이라면, 정몽주라는 인물에 대하여 단순히 학교 교과서에서만 봐왔던 것이 전부라고 할 만큼 그 상세한 내용을 알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서 정몽주라는 인물이 우리에게는 단순히 조선개국에 반대하는 고려충신의 이미지로만 알려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소설이라는 한계적인 측면과 다소 저자에 의한 주관적인 관점이 개입되어 있기는 하지만, 역사의 사료를 바탕으로 하여 정몽주가 밟아온 그의 일생을 추적해 보면서, 고려 말 핵심적인 정치인으로서 그의 모든 것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정몽주가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관료로서의 첫발을 내딛게 되는 것을 시작으로 해서, 고려 왕조를 계속적으로 이어가려는 그의 정치적 신념을 반대한 이성계 일파에 의해 선죽교에서 피살되기까지, 역사사료를 바탕으로 한 그의 생애가 생생하게 재구성되어 그려져 있다. 그런데 정몽주의 삶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먼저 당시의 시대배경을 고려해봐야 한다. 그가 정치인으로서 활동을 구가하던 시기는, 고려의 왕조가 조선의 시기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대내외적으로 무척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왕권의 약화와 더불어 내부적으로는 권문세족과 같은 기득권층들의 부패가 극에 달했으며, 외부적으로는 중국이 원에서 명나라로 교체되어 가는 어수선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런 연유로 그는 고려왕조가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언제 어느 곳이든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 대화와 타협으로 원만한 해결책을 도모했으며, 주위로부터 적잖은 신임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새 왕조를 일으킨 이성계가 어떻게든 그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는 점에서 여실히 증명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몽주는 급진적인 개혁의 방향보다는 고려왕조의 정통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낡고 잘못된 것을 고쳐나가려는 점진적인 개혁을 추구했는데, 이 부분에서 정도전과 적대적인 관계에 놓임으로서 억울한 희생양이 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 책에는 정몽주가 행해왔던 정치의 두 가지 측면이 비교적 크게 부각되어 전개되어 있다. 그 중 하나는 과거시험을 통해 나타난 그의 능력을 조정에서 높이 인정하여, 명나라와 일본과의 국제관계에서 오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외교사절로서 활동을 많이 하게 되었는데, 그가 남긴 글들을 보면 상대국에게 예절을 다하되, 대신 신뢰를 얻어 실리적인 외교를 이끌어 왔음을 볼 수 있고, 또 한 가지는 국내의 정치활동에서는 친원세력과 친명세력 어디에도 적을 두지 않는 중립적인 위치를 고수하면서, 세력 간의 화합을 통한 상생을 고수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 작품을 읽은 독자의 입장에서 이 책을 읽기 전에 독자들이 우선해서 감안해야 할 것은, 저자도 책의 말미에서 밝혔지만 정몽주의 생애와 관련하여 아쉽게 여겨지는 부분이 몇 가지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외에 그의 정치적 활동을 상세하게 되살펴볼 수 있는 많은 역사적 자료가 남아 있지 않는데다가, 그것 역시도 세종과 문종 때 왕명에 의해 편찬된 것이어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시각을 견지한 사료라고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는 점과, 또한 그 시기의 역사사료들이 그렇듯이, 그 내용에 있어서도 구체적이기보다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표현들이 많아서, 이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아무래도 저자의 임의적인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부분을 어느 정도 감안해서 읽어보았으면 싶다. 이 작품에는 정몽주가 관료로서 중심이 되어 활동하던 시기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 당시 고려의 대내부적인 여러 문제점을 고려해볼 때, 그의 정치적 입지는 어쩌면 숙명에 가까운 것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을 해본다. 소설 속 주인공 정몽주는 고려 말 무능한 왕권과 기득권층들의 부패가 날로 극심해지는 가운데에서도, 제 역할을 다하며 충신으로서 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당시의 시대흐름으로 볼 때, 그의 처신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끝까지 우국충정의 마음으로 올곧게 자기 소신을 지켰다는 점은 높이 살만하다. 현대의 시각에서 보면 정몽주는 이익에 있어서 개인보다는 국가가 우선순위가 되는 보수주의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시기에 정몽주가 택한 정치적 신념이 과연 옳았던 것인가 하는 점은 별개의 문제로 다뤄져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정당성을 잃은 이성계 세력에 의한 쿠데타에 동조하지 않았음은 분명해 보인다. 따라서 고려왕조에 대해 신하로서 충과 의를 다했던 그의 정신은 어떠한 경우라도 폄훼되어서는 안 될 것으로 생각하며, 아울러 이러한 그의 모습이 독자들은 물론이고,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작금의 국내 정치인들에게도 하나의 좋은 본보기가 되었으면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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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은 정몽주> 누구나 알다시피 고려시대 충신이다. 요즘 드라마에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개국, 그리고 정도전에 관한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다. 정도전에 관한 이야기는 많은 듯 한데 그에 비해 고려시대의 충신, 정몽주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나 드라마는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그러기에 더더욱 정몽주 중심의 이야기를 읽어보고 싶었는데 다행스럽게도 나남출판사의 도움으로 읽게 되었다.
작가 이병주님은 고인이시다. 그분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지리산>을 집필하셨고, 정몽주 외에도 여러 편의 역사 인물에 관한 소설을 쓰셨다. 이병주님의 소설은 이번 <정몽주>가 처음이지만, <지리산>은 유명한 소설이 아닌가 싶다.
이 책 <정몽주>는 작가가 정몽주의 관점에서 정몽주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싶어하였지만, 고려가 망한 때문인지 정몽주가 집필한 서책들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아서 사건 위주로 책을 쓰게됨을 저자는 아쉬워 하였다.
이야기는 정몽주의 과거 급제를 시작으로 하여 펼쳐진다. 정몽주는 실력이 월등하였지만 부친상을 당하여 3년을 지키며 효를 다하느라 과거를 늦게 보았다. 포은 정몽주는 유교 사상을 거의 절대적으로 따랐으나 불교를 아주 배척하지는 않았다. 정몽주의 곧은 성격, 그리고 정치에서도 책 잡히는 일 없이 바르게 행하였고, 자신은 고려의 백성이기에 고려의 왕에게 충성해야 하며, 고려에 충성을 해야 한다고 믿었으며 또한 그렇게 행동을 하신 분이였다. 이성계를 존경하기도 하고, 존중하기도 하면서도 이성계와 정도전의 사람들이 고려의 왕을 무너뜨리려는 계획에도 따르지 않았던 것은 교려의 백성이기때문이며, 어리석고 부족한 왕일지라도 충성을 다해야 한다는 곧은 신념 때문이였다.
만약에 정몽주가 이성계와 같이 조선의 건국에 일조를 하였다면 조선의 시작과 조선의 기본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일어나지 않은 일이기에 어쩌면 더욱 좋은 방향으로 조선의 바탕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정몽주와 이성계의 판단과 선택 중 어느 쪽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 말할 수 없지 않나 싶다. 모두가 자신들의 가치관과 신념에 따라 행동을 한 것일테니까...
정몽주처럼 정치, 군사적인 전략 모두에 능력이 있는 사람이 있는데도, 그런 옳은 말은 듣지 않고 간사한 사람들에게 넘어가는 왕들의 어리석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 책에는 정몽주가 남긴 몇 안되는 글들이 원문대로 실려있기도 하고, 고려사에 실린 그대로의 내용이 있기도 하다. 한자 글들이 많아 좀 어렵기도 하였다.
하지만 정몽주의 신념과 곧은 성품을 이해하기에는 충분하였다. 그 곧은 신념과 성품때문에 이방원에게 살해를 당하였지만, 포은 정몽주의 정신은 지금 이시대에도 빛을 발하고 있는 듯 하다. 이 시대에도 포은 정몽주 같은 지혜롭고 올바른 정치인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