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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있는 자는 힘없는 자를 집어 삼키려 하고 힘없는 자는 힘있는 자에게 저항하려 한다.그리고 그 중에는 어디선가 기회를 엿보면서 실리를 얻으려는 자가 있다..이런 모습은 오랫동안 우리 역사와 함께 하였으며 우리가 그걸 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건 채 100년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조정래 소설의 아리랑은 그러한 힘있는 자와 힘없는 자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조선 말엽 양반과 상놈 사이에 나라의 운명이 바뀌게 되고 세상은 점점 일본에 의해 지배되어 간다..그러한 일본의 지배가 도드라졌던 곳이 전라도 넓은 평야가 있었던 김제에서 일어났으며 여기서 상놈이란 감골댁과 방영근과 지삼출이라고 할 수 있다..그리고 그들은 스스로 무식함을 드러내면서 일본인들의 꼬임에 미국으로 그리고 일본인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철도 사업에 동원이 되게 된다... 1편의 이야기는 대체로 일제 침입 초기에서 부터 칠본이 아라사에게 이기는 그 순간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김제에서 점차 조선인의 땅이 일본인의 자본에 잠식되어 가고 있다는 걸 알수 있으며 조선인 중에는 백종두처럼 기회를 엿보려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 수 있다..그리고 그들은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서 정당화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소설 속에서 감골댁의 남편은 양반의 김참봉에 대한 반발심에 동학에 가담하게 되고 소식이 끊ㅇ져 버렸고 첫째 아들은 일본인의 꼬임에 하와이로 팔려가게 된다..물론 감골댁은 첫째 아들 방영근이 하와이로 떠났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그리고 하와이에서 100달러의 빚을 지게 되고 일을 통해 갚아 나가려 하지만 백인들의 덫에 걸려 갚지 못한 채 함께 일하였던 동료 주민상의 마지만 죽음으로서 이 소설은 마무리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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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정래님의 책을 통해서 우리 역사의 객관적인 모습을 보곤한다. 내가 살지는 못했지만 우리의 할머니가 살았던 그 어렵던 시대를 통해서 현재의 삶을 배우게 되는 것 같다. 일제시대라는 것이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사라진 건 이미 오래다. 간간히 들리는 얘기라고는 분통터지는 일본의 역사왜곡과 상처받은 우리네 사람들의 맘 아픈 힘겨운 투쟁뿐이다. 우리 세대야 직접 겪은 적이 없으니 관심이 없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은 것은 절대로 그 시절을 잊어선 안된다는 것이었다. 되씹고 되씹어서 그 아픈 역사가 다시는 되풀이 되지 말아야 하고 일본의 만행에 대한 사과도 받아내야 한다.
우리땅에서 시작되어 하와이, 만주, 일본, 러시아까지 광범위한 무대를 배경으로 하는 만큼 우리 조상이 겪어야 했던 아픔도 곳곳에 펼쳐져 있었다. 일본에 대한 분개로 방바닥도 내리쳐 보고 안타까움에 내 멱살을 내가 잡고 답답해하기도 했다. 그리고 조금은 애국자가 된 듯도 싶다. 아리랑이라는 노래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리랑만큼 우리 민족의 삶을 잘 표현한 노래도 드문 듯 싶다. 즐거우면 흥겹게 부르고 슬프면 온갖 한을 담아 부르고.. 우리 민족의 역사는 아리랑 하나에 모두 담겨진 듯 싶다. [인상깊은구절] 술에 취하면 누구나 아리랑을 불렀다. 불러도 목 놓아 불렀다. 목놓아 부르다보니 가락은 제멋에 겨워 더 늘어지며 슬퍼지고 넌출져 휘감기며 처연해지고, 술에 젖은 가슴은 그 가락을 못 이겨 허물어지며 더 서러워지고 녹아내리며 한스러워져 이어지고 또 이어지는 가락에는 끝내 물기가 묻어나고는 했다. 그들은 통곡을 대신해 그 가락을 목놓아 부르고, 분을 삭이려고 목놓아 부르고, 외로움을 달래려고 목놓아 부르는 것인지도 몰랐다. -4권 P313- |
| 엉뚱하게도 '아리랑'을 읽고 나서 저는 마늘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방학을 맞아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에 앉아 은근히 풍기는 화장실 냄새와 싸우며 열심히 책을 읽고 있을 때였었어요. 논두렁에서 새참을 먹고 있던 농부에게 통마늘을 안주삼아 탁주를 한 사발 얻어먹는 장면에서, 생마늘이라고는 입에도 안 대본 주제에 어느새 입안 그득 침이 고이면서 그렇게 먹고 싶을 수가 없더라구요. 결국 집에 도착해서 가방도 풀기전에 찬밥에 물을 말아 마늘에 쌈장을 푹푹 찍어 두 그릇이나 비웠습니다. 어안이 벙벙해서 쳐다보던 엄마의 얼굴과 함께 그 때의 개운한 맛을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아리랑을 읽으면서 울기도 많이 하고, 분개도 많이 했지요. 하지만 정말 기억에 남는 것은 일제의 탄압이 아니라 그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고 생생히 살아 숨쉬던 우리네 삶이었습니다. 끈끈한 정과 순진한 민심이 천성인 우리 민족, 그러한 민족성이 깔려 있었기에 질긴 외세의 탄압에도 그 맥이 끊기지 않고 면면히 이어질 수 있지 않았을까요. 고려청자 조선백자도 중요한 우리 문화이지만 아리랑을 읽고 나서 저는 '민족성'이라는 것이 무었인지, 또 우리네 민족성이 얼마나 정감있는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태백산맥보다 아리랑을 윗길에 두고 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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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사를 전공하고 있는 대학원생으로서, 나는 이 소설을 매우 높게 평가하고 싶다. 역사 소설은 그 자체가 매우 까다롭고 치밀해야 할 것이다. 조정래씨는 특유의 비판적이면서도 재미를 잃지 않는 문체로 이 긴 소설을 짧은 숨에 다 읽어내게 만들고 있다.
식민지 시대를 둘러싼 우리의 역사는 참으로 굴곡이 많은 것이었다. 우리 나라를 둘러싸고, 열강들이 대립하였기 때문에 우리의 문제는 비단 한반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싸움에 휘말려 버리고 만다.
책장을 덮으면서 느낀 것은 픽션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설득력이 뛰어났다는 점이다. [인상깊은구절] 우리는 어찌 이리 가난한가. 아버지가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 빚으로 오빠까지 떠나게 되어 집은 더 가난하게 되었다. 애초에 아버지가 동학군으로 나섰던 게 탈이었다. 그럼, 그게 잘못된 일이었던가. 그렇지 않다. 동학군으로 나섰다가 죽은 사람은 아버지만이 아니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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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데 무려 두 달하고도 열흘이 걸렸다. 그러나 작가 조정현은 이 책을 쓰는데 준비기간 빼고 집필하는 데만도 4년 8개월이 걸렸다. 원고지 매수로 2만 매, 그러나 2만 매의 원고지는 일제36년 동안 죽어간 400만 우리동포의 이름 석자를 기록하는 데에도 오히려 절반밖에 할 수 없는 분량이다.
이러한 소설로서 일제 36년간의 아픔을 세세히 다 기록할 수는 없었을 것이고, 책을 통하여 작가가 표현하고자 했던 그 처절함을 단 두 달만에 100분지 1이라도 읽어 낼 수가 있었을까. 일제치하 36년 동안 죽어간 우리민족 400여만, 강제 징용자 160만, 위안부와 정신대로 끌려간 여자 30만, 전쟁터에 징병된 자 학도병 4천5백 명을 포함하여 40여만. 이제 해방 된지 55년,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일제의 폭압 지배가 남긴 상처를 완전히 치유하지 못하고 있으며, 친일파 척결 문제는 아직도 청산을 하지 못하고 있고,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 시절을 반추하면서 여전히 대동아 공영권을 꿈꾸고 있다. 그리고 우리들 대부분이 "그러한 때에 당신들의 조상은 정말 떳떳했었는가?" 라는 질문에 명백히 "그렇다"고 답 할 수 없는 처지이다.
그러면 이 숙제는 영원한 미궁으로 덮어두어야 할 문제인가? 그렇지는 않다. 우리 민족 하나 하나가 이러한 사실을 명백히 꿰뚫고 있어야 하며 직접 정신대에 끌려가지 않더라도, 직접 징용에 끌려가지 않았더라도, 그리고 직접 독립운동을 하다가 희생되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러한 고통을 함께 하며 우리 누구에게도 닥칠 수 있다는 것을 직시해야 하지 않을까?
세상에는 아직도 강대국의 폭압적 지배에 시달리며 독립을 외치는 수많은 소수민족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일본이 제국주의의 환상에서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고 동아시아를 제패하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일제 36년 동안 그들을 떠받들며 빌붙어 있던 이들이 아직도 우리 나라를 주도하고 있으니까.
지금까지의 일제 36년을 다룬 소설들이 청산리 전투라든가 임시정부 등 특정한 인물의 행적에 초점을 맞추고 영웅화한다거나, 식민지역사를 정리하는 정도의 선에서 그쳤는데 비해 이 소설은 김제 출신의 일단의 인물들을 통하여 우리 민중이 왜 저항을 해야 했고 어떻게 좌절을 겪었으며, 우리민족이 일제시대에 어떻게 생활을 했는지를 그리고 있다. 그리고 조선족이라 불리는 중국 내 만주지방에 거주하는 우리 동포, 옛 소비에트 연방인 중앙아시아지역의 각국에 거주하는 우리동포와 멕시코, 페루, 하와이 등에 거주하는 우리동포들에 대한 아픔의 역사가 숨어 있다. 그들이 그리로 밀려가는 와중에서 싸우고, 병들고, 죽고, 변절하고, 다시 뭉치고 하던 어리석음의 기록 또한 있다.
그리고 일제의 폭압에 맞선 우리 민족의 저항과 투쟁과 승리의 역사를 부각시키고 있으며, 일제하에서 변절한 일단의 지식인들의 친일행적에 대하여 전반적으로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겉으로 드러난 문인들의 행적을 새로이 밝혀 준 점도 그 동안 무심했던 이들에게는 새로운 눈을 뜰 수 있도록 한 작업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조선 3대 천재라 불리었던 육당 최남선, 춘원 이광수의 변절과정과 행적도 그들의 제자들이나 아류들에 의해 감춰 졌던 것을 대중들이 읽을 수 있는 소설로 써 내었던 점도 모르는 이에게는 새로이 눈을 뜨게 된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인상깊은구절] "조국은 영원히 민족의 것이지 무슨무슨 주의자들의 소유가 아니다. 그러므로 지난날 식민지 역사 속에서 민족의 독립을 위해 피 흘린 모든 사람들의 공은 공정하게 평가되고 공평하게 대접되어 민족통일이 성취해 낸 통일조국 앞에 겸손하게 바쳐지는 것으로 족하다. 나는 이러한 결론을 앞에 두고 소설 '아리랑'을 쓰기 시작했다. 그건 감히 민족통일의 역사 위에서 식민지시대의 민족수난과 투쟁을 직시하고자 하는 의도였다. 역사는 과거와의 대화만은 아니다. 미래의 설계가 또한 역사다. 우리는 자칫 식민지시대를 전설적으로 멀리 느끼거나 피상적으로 방치하는 잘못을 저지르기 쉽다. 그러나 민족분단의 비극이 바로 식민지시대의 결과라는 사실을 명백히 깨닫는다면 그 시대의 역사를 왜 바르게 알아야 하는 지도 알게 될 것이다." |
| 아리랑을 읽으면서 '태백산맥'처럼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아이랑은 픽션이지만 작가 조정래님의 글이라 충분한 역사적 고증이 이루어졌으리라 믿는다. 아리랑을 읽으면서 역사란것도 어차피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누가 진정한 지도자가 되어야 하나 모르겠지만 역사는 더 잘 기회를 포착하고 약사빠른 사람들에게 그 길을 주었다. 진실은 꼭 들어난다고 한다. 그래 대부분의 진실들이 드러나겠지만 이미 때가 늦은걸.....벌써 잘못된 이들이 모든것을 누린후 진실이 들어난들 그 시기동안 고통받은 사람들, 잘못 흘러간 세월은 어떻게 하는가? |
| <아리랑>을 읽으면서 너무 슬펐다. 같은 핏줄이면서 누군가는 독립을 부르짖다가 고된 고문으로 죽어가고 누군가는 일본인들에게 갖은 아부를 다 하면서 배부르게 먹고 사는 그 현실이 너무나 슬펐다.그리고 더 안타까운 것을 그렇게 친일파 노릇을 했던 사람들이 거의가 다 처벌을 받지 않고 두다리 뻗고 잔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최남선이나 이광수가 친일파였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들은 친일이 '피할 수 없는 현실' 이라고 했다. 정말 그랬을까... 난 수도 없이 질문을 던졌다. 친일파를 해방 후에도 그저 지켜보기만 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정말 그것을 피할 수 없는 현실 이었을까. 왜 그렇게 우리 민족은 힘이 약했던가.. 우리나라 대신들은 모두 간신배였단 말인가.. 나라는 자신들이 팔아먹어 버리고, 독립운동이니 의병이니 하는 활동에는 그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나라 팔아먹기는 위에서 다 팔아먹고, 되찾기는 아래에서 더 애가 타서 되찾으려 하니... 너무 안타까웠다. 이 대목뿐만이 아니라 여기 이 책에 실린 내용은 모두 다 그렇게 가슴 아프고 슬픈 이야기들 뿐이다. 하다못해 조정래 아저씨는 광복되고 나서도 비극을 써 놓았다. 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그때의 그 쓰라린 기억을 잊지 말자는 것이라고... 이제 일본은 다시 우리를 식민지 삼으려 하고 있다. 옛날처럼 무력이 아닌 문화로.. 이미 많은 젊은이들이 일본 만화 대중음악에 빠져들었다. 문화를 누리는 것은 자유라고 하지만 적당히 주체성을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다. 한쪽에선 반일감정이라며 일본을 비판해대고 한쪽에선 가리지도 않고 일본 문화를 받아들인다면 일본이 우리를 얼마나 우습게 보겠는가.. 우리는 일제 시대에 독립을 지키려다가 안타깝게 죽어간 사람들을 잊지 말았으면한다.아리랑> |
| 아리랑은 조정래가 쓴 대작소설입니다.일제치하의 우리민족의 어려움과 살아가는 방식과 그 시대의 아픔과 슬픔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정말 훌륭한 소설인거 같아요.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과거의 일을 돌아보고 우리민족의 정체성을 잘 알수 있는 좋은 책인거 같아요.민족의 아픔과 일제치하의 혹독한 시련속에서도 꿋꿋하게 헤쳐가는 우리 민족의 강인한 의지와 노력은 후세가 본받아야할 것입니다.더불어 조정래가 쓴 태백산맥과 한강도 같은 맥락에서 볼수 있을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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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을 통해서 분단의 아픔을 알게되었고 또 다시 아리랑을 통해서 36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알게되었다. 그 세월의 기나김만큼 우리민족의 아픔또한 컸으리라. 중학교, 고등학교 역사시간을 통해서 알게된 36년이라는 세월은 나에게 그저 오늘날 우리나라가 있기까지의 과도기가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한달하고 10여일이라는 시간은 다른나라의 역사인양 묵인했던 그릇된 생각을 고치기에 부족함이 없는 시간이었다. 이책을 읽으며 얼마나 많은 한숨이 나왔던가?
이 책에는 수많은 주인공이 등장한다. 저 먼 만주벌판까지 가서 독립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에서부터 노동쟁의·소작쟁의를 일으킨 단한명의 노무자,농민들 모두가 주인공이다. 과연 우리라면 하나뿐인 목숨을 내걸며 어찌보면 승산없는 싸움을 가망없는 싸움을 이들처럼 조국이라는 이름으로 투쟁 할수있을까하는 의문을 가져본다. 혹 그당시 살았다면 자기하나 살기에 급급해서 조선사람들을 잡아먹는 또 한명의 조선사람이 되지는 않았을까?
요즘 우리나라엔 끊임없이 많은 일본의 문화가 들어온다. 그에 맞추어 10대 혹은 20대는 그것을 흡수하려 무단히 노력한다. 그렇게해야만 그들끼리의 어떠한 공감대가 형성이 되니까. 하지만 이러한 현상을 우리의 선인들, 특히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아직도 만주벌판 어딘가에 떠도는 영혼들은 얼마나 땅을 치며 통곡을 할것인가?
작가 조정래님의 말중에 "독일은 수상 빌리 브란트가 전세계를 향해서 사죄를 했고, 유태인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하며 용서를 빌었다. 그래서 유태인들은 그 사죄를 받아들여 <용서하지만 잊지는="" 않는다="">는 민족적 동의에 도달했다. 그런데 일본은 어떤가? 독일과 정반대로 교과서를 왜곡하고, 국회의원과 장관들이 계속 망언을 일삼고 있지 않은가. 용서를 받아야 할 자들이 용서를 빌지 않는데 어떻게 용서를 하라는 것인가. 일본이 독일식이 용서를 빌지 않는 한 우리 민족은 <용서하지도 않고="" 잊지도="" 않는다="">는 민족적 동의를 고수할 수밖에 없다. "라는 말은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모두의 가슴속에 끊임없이 메아리되어 울려야 하리라 생각된다. [인상깊은구절] "상투를 자르고 신식을 따르자는 건 우리의 생각을 바꾸고 구태를 벗어 좀더 좋은 세상을 만들자는 것 아닌가. 물론 사람이 오래 습관되어 내려온 생각을 바꾼다는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건 아네. 그렇다고 또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네. 양반들이 생각을 못 바꾸는 건 자기네들이 양반으로서 취한 이익을 지키자고 하는 욕심과 계속 호의호식하며 살려고 하는 탐욕 때문인 것일세......." "양반의 자식들을 태어나자마자 상놈의 자식들과 똑같이 먹이고 입히고 하면서 글도 가르치지 않고 막일만 시켜대고하면 어떻게 될까? 그랬는데도 그 아이는 커서 양반이 될 수 있겠는가? 자네와 나를 그리했다면 어떻게 됐겠는가 말일세. 우리도 더 볼 것 없이 무식한 상놈일 것이네. 양반과 상놈은 인종이 다른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차별하는 아주 못된 제도로..."용서하지도>용서하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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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 소설 또는 해방기나 동란을 배경으로 한 그린 소설을 읽다 보면 은근히 다른 소설과 다른 즐거움에 도달할 때가 많습니다. 뼈에 사무치도록 부수어지고 깨지고 닳게 되는 우리네 민족의 한과 서글픈 감정을 그려내는 다양한 모습의 소설들. 그들을 접하다 보면 한국인이라는 것, 나라는 인간이 가져야 할 한국사에 대한 시각, 사회의 부조리함과 우리 한국 현대 사회가 가지고 있는 각종 문제들의 근원, 내지는 썩어빠진 강자의 논리 같은 것...
그런 것을 접하다 보면 괜한 열등감 내지는 억하심정에 휩싸인다고는 할 수 없는, 뭔가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분노와 의지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하고, 또 참담하고 비참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희망을 가지지 못하는 민초들의 모습에서 현실의 나를 뒤돌아보게 되고 비판과 반성의 기회를 잡게 되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아니 무엇보다도 마음에 와 닿는, 친숙한 그 분위기는 아무래도 '우리의 이야기' 를 그려냈기 때문일까요.
그 어떤 사회관이나 세계관보다도 우리의 마음에 가장 와 닿는, 우리보다 앞서 태어나 겪고 사라져간 사람들의 이야기. 마치 우리의 이야기를 읽는 듯한, 몇 십년전으로 고개를 돌려 그 시대를 살고 있는 나의 모습을 다시 바라보고 있는 듯한 그런 기분 말입니다. 민족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사회의 더러운 일면을 느끼게 되는 것만이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소득은 아니겠지만, 우리의 것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자 한다면, 적어도 이 책을 대강이라도 접해 봐야 하지 않겠나... 하고 생각합니다. [인상깊은구절] 백종두는 거머잡은 옥향이의 치마를 잡아끌었다. 옥향이는 어떻게 해야 할까를 순간적으로 생각했다. 계속 딴소리를 지껄이는 것도 꼴이 보기 싫은데 이제 또 다리까지 주무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명색이 관리였다. 그의 성질을 잘못 긁었다가는 기생 신세 그나마 쪽박 신세 되기는 하루아침이었다. 아이고 기생년 팔자에 뜨신밥 찬밥 개릴 수 있느냐. 옥향이는 눈앞의 사정에 밀리며 도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짜아, 배도 살살 꺼져내리는 참인게 다리를 꼭꼭 주물러라.」 백종두는 대베개를 끌어당기며 눈을 찡긋했다. 옥향이는 그 눈에 서린 음기를 보자 그만 소름이 끼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