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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5] 집에 돌아오지 못한 유물들에 대하여
"[14-25] 집에 돌아오지 못한 유물들에 대하여" 내용보기
약소국의 비애   세계 4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영국의 대영박물관은 컬렉션 규모가 가장 큰 박물관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 컬렉션에는 영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만들어진 유물을 약탈 또는 현지인의 문화재에 대한 무지를 이용해 헐값에 매수한 것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기에 늘 문화재 반환문제가 제기될 수 밖에 없다.   비록 하나의 유물이 지닌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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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소국의 비애

 

세계 4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영국의 대영박물관은 컬렉션 규모가 가장 큰 박물관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 컬렉션에는 영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만들어진 유물을 약탈 또는 현지인의 문화재에 대한 무지를 이용해 헐값에 매수한 것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기에 늘 문화재 반환문제가 제기될 수 밖에 없다.

 

비록 하나의 유물이 지닌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그 유물이 있던 원래 자리에 보존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유물의 보존을 위해 불가피하게 다른 장소로 옮길 수도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그렇기에 강대국들이 약탈 문화재의 반환을 거부하면서 인류의 유산을 보호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고 하는 말이 솔깃하게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옮긴이가 후기에서 “어느 전시실의 한쪽 구석에 놓여있던 철불두상 (鐵佛頭像)의 안내판에는 한국에서 왔고, 만들어진 시대와 원래 있었던 장소가 어딘지 모른다고 적혀 있었다.1)라는 사실을 언급한 것에서 보듯이 인류 공동의 유산을 보관한다는 강대국의 핑계는 말뿐이다.

 

프랑스에서 1866년 병인양요(丙寅洋擾) 때 약탈해 간 외규장각 도서에 대한 반환을 거부하면서 한국의 문화재 보존 능력에 대한 의구심을 드러냈던 것에서도 약탈 문화재를 반환하기 싫어하는 그들의 내심이 반영되어 있다.

 

 

중국 문물의 유실(流失)

 

중국 문물의 유실(流失)아편전쟁(阿片戰爭)이후, 특히 20세기 전반기에 중국이 반()식민지 반()봉건사회로 전락2)하면서 본격화되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엮은이[編者]의 표현처럼 1860 10, 영불연합군이 저지른 야만적인 원명원(圓明園) 약탈과 방화는 인류문명사에서 가장 비참하고도 고통스러운 재난 가운데 하나이자 중국 근대문물의 대량유실(大量流失)의 서막을 연 사건이었다 3)

 

이제 브레이크가 사라진 열차가 된 제국주의 열강은 거리낌없이 “무력을 동원하거나, 혹은 교묘한 속임수를 사용하거나, 혹은 불법적으로 도굴하거나, 여기에 더하여 학자의 탈을 쓴 거간꾼 또는 각양각색의 중개인으로 위장하여 중국의 문물을 훑어갔다. 이 시기의 중국은 세계 각국 문화 강도들이 몰려들어 멋대로 문물을 훔치거나 불법 도굴할 수 있는 천당이었다.4)

 

엄밀히 말하면 중국만 그런 문화 강도들의 천국은 아니었다. 다른 약소국의 경우에도 경우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제국주의 열강들이 원하는 것을 가져갈 수 있는 사냥터였다.

 

 

중국 문물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이 책을 통해 한 때 세계 최강의 국력을 가지고 있었던 나라가 그 허약함이 노출된 순간 하이에나의 사냥감으로 전락하면서 벌어지는 일면을 적나라하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중국’문물의 범위부터 확정하고 생각의 흐름을 이어가야 한다. 이 책 2장에서 언급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오타니(大谷)컬렉션5) 1,500여 점의 존재 때문이다. 현재 혜문 스님이 이 유물의 반환을 추진하고 있는데, 문제는 반환대상이 신장 위구르 자치구[新疆維吾爾自治區], 중국이라는 점이다.

 

만약 우리가 이 유물을 중국에 반환한다면, 자칫 서북공정(西北工程)6)을 긍정하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 2장에서 한때 서역 36국으로 불렸던 누란(樓蘭) 호탄[], 쿠차[龜玆], 고창(高昌) 등 중앙 아시아 지역의 옛 국가의 문물을 ‘중국’문물로 간주하는 엮은이[編者]의 자세는 경계해야 한다.

자국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있는 유물이 남의 박물관이나 개인 소장품으로 뺏겨, 반환 받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 된 비극을 공유하고 있다고 감정적으로 공감만 하고 있다가 고구려-발해 유물의 반환 요구라는 뒤통수를 맞을 수도 있으니까.

 

또 하나는 중국의 화약고라고 불리는 현재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위구르족이 분리독립운동을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오타니(大谷)컬렉션’을 훗날 위구르족이 분리 독립한 후에 반환할 것인가 아니면 현재 그 지역을 영역으로 하고 있는 중국에게 반환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감안하면, ‘중국’문물의 범위를 확정하는 것은 우리가 아라이 신이치[荒井信一]약탈 문화재는 누구의 것인가를 참조로 한국 문화재 유실사를 정리하기 위한 선결조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전에라도 해외에 흩어진 귀한 문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문물을 불법적으로 취득하고 판매하는 행위를 야만적인 행위로 인식7)하여, 이미 잃어버린 소를 가지고 탄식하지만 말고, 외양간이나마 고쳐 앞으로 소를 잃지 않도록 해야겠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에 대한 리뷰입니다.



1) 自成, <근세 백년 중국문물유실사>, 박종일 옮김, (인간사랑, 2014), p. 399

2) 張自成 編, 앞의 책, p. 19

3) 張自成 編, 앞의 책, p. 29

4) 張自成 編, 앞의 책, p. 20

5) 일본 교토[京都] 니시혼간지[西本願寺]의 주지인 오타니 고즈이(大谷光瑞; 1876~1948) 1902년부터 1914년까지 중국 서북지역을 세 차례 답사하면서 수집한 8천여 건의 유물 가운데 일부

6)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에 입각하여 위구르족의 역사를 중국 역사의 일부로 편입하려는 연구

7) 張自成 編, 앞의 책, p. 23

w******f 2014.06.04. 신고 공감 6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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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달에 멍들어 있는 문화유산의 리얼리티 《근세 백년 중국문물유실사》
"응달에 멍들어 있는 문화유산의 리얼리티 《근세 백년 중국문물유실사》" 내용보기
한·중·일 삼국이 동시다발로 서구 열강의 침입에 몸살을 앓던 시대를 서양에서는 중세와 근대사이,  동양에서는 서구열강의 침략기의 시점을 근세라 한다.  폐쇄적인 아시아 국가에 닥친 제국주의에 속수무책이었던 동아시아 삼국은 약탈과 침략으로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이때  중국과 한국은 거의 무방비 상태였으나 일본은 서양에 침략의 빌미를 주지 않은 채 화이질서를 유지하고 있
"응달에 멍들어 있는 문화유산의 리얼리티 《근세 백년 중국문물유실사》" 내용보기

··일 삼국이 동시다발로 서구 열강의 침입에 몸살을 앓던 시대를 서양에서는 중세와 근대사이,  동양에서는 서구열강의 침략기의 시점을 근세라 한다.  폐쇄적인 아시아 국가에 닥친 제국주의에 속수무책이었던 동아시아 삼국은 약탈과 침략으로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이때  중국과 한국은 거의 무방비 상태였으나 일본은 서양에 침략의 빌미를 주지 않은 채 화이질서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면 일본이 결코 녹녹치 않음을 알 수 있다. 2014년, 6월의 아침 현재에도 다케시마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대는 어처구니 없는 뉴스를 보고 출근했으니 일본에 없던 감정도 생길 것만 같다. 이 책 근세 백년 중국문물유실사를 읽으면서 새삼스레 중국역시도 피해자란 사실을 떠올리게 되었지만, 어찌 우리나라만 하겠냐하는 감정이 더 앞서는 바람에 대책 없는 현실에 더 울화통 터지는 날이다.  

 

책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이 책의 저자 장자성은 한 문명의 역사를 훼손하는 비극을 멈추기 위해서 중국문물 유실이라는 굴욕의 역사를 드러내고자 하였다고 밝힌다. 근세에 중국에 행해진 고분 도굴과 문물 절도, 문화재 밀수라는 것이 인류 문명의 존엄에 얼마나 큰 상처이며, 해외에 흩어진 귀한 문물에 대해 독자들의 관심과 문물을 불법적으로 취득하고 판매하는 행위가 얼마나 커다란 범죄행위인지를 인식하게 하고자 하여 이 책을 집필하였다고 한다.  저자는 문물은 역사와 문화의 담체(擔體)이며, 한 국가의 흥망성쇠와 영욕을 진실하게 기록하고 있으며, 한 민족의 문화적 축적의 결정체이자 대중의 정신적 추구의 집합으로 문물은 물질로 표현된 역사이며 문명의 증빙이라 한다.  중국은 세계에 널리 알려진 오래된 문명국가로 대량의 중국문물은 중화민족을 구성하는 56개 민족의 지혜의 결정체로서 다양한 지역의 문명 정수를 흡수하고 중화민족의 응집력, 구심력, 기개를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아편전쟁 이후, 특히 20세기 전반기에 중국이 반()식민지 반()봉건사회로 전락하자 국가주권과 민족의 존엄은 남김없이 상실되었고 제국주의 열강과 대소 군벌이 중국의 대지를 무력으로 짓밟았다. 이 과정에서 중국 문물은 대부분이 유실되었고 도굴과 약탈로 중국의 문물들은 훼손되었다. 중국 역대의 통치자들이 쌓아온 보물창고는 영국과 프랑스를 선두로 1900년의 "8국연합군"이 북경을 점령한 동안에 파괴되고 약탈당하여 수 백 년을 내려오며 황실 궁정에 쌓여있던 귀한 문물들이 깨끗이 사라졌다.  신해혁명이후 청 왕조의 멸망과 동시에 중화민국이 수립되고 난 후의 중국은 외부로는 서구열강의 침입과 일제의 침략과 내부로는 군벌들의 혼전으로 인해 나라의 보물이나 진배없던 문물을 보호할 여력이 없었다. 결국 중국은 수많은 문화유산들을 눈뜨고 코베인 것과  진배없이 유실당한 것이다. 

 

 

비단길의 시발지였으며, 과거 낙타에 짐을 가득 싣고 험난한 천산산맥을 넘어온 중앙아시아의 상인들에게 이제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는 비단길의 마지막 기착지 역할을 하였던 유명한 석굴 돈황은 세계 최고의 문화유산이지만 서양인들의 침략에 가장 커다란 목표물이 되었다. 영국인  스타인과 프랑스인 펠리오에 의해서 쪼개지던 돈황석굴의 유물들은 뿔뿔히 흩어져 대영도서관과 프랑스 국립도서관으로 , 일본으로 수많은 고문서들이 흘러들어 갔다. 돈황에서 유실되어 일본으로 건너간 문물과 불경은 아직도 드러나지 않은 수량이 상당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고 일본인에 의해 쓰여진 [둔황-세계문학전집 49]을 읽으면 둔황의 가치를 문학적으로 역사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렇게 둔황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가장 중요한 문화유산 중의 하나인 서화명품이나 빅토르 위고가 여름궁전이라 칭했던 연명원 역시도 서양 열강의 침략과 약탈에 예외대상은   아니었다.

 

유홍준의 [국토순례]를 보면 우리나라의 문화유산 역시도 중국과 다름없는 약탈과 침략을 받은 작품들의 상당수가 유명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중국의 문물유실사는 우리나라 문물유실사와 궤를 같이 하고 있다. 근세에 빼앗긴 우리의 문물들은 민족과 문화를 대변해주는 아이덴티티이다. 응달에 멍들어 있는 문화유산들의 현주소를 돌아볼 수 있는 책일 뿐만 아니라, 인디아나존스와 같이 과장된 서구화 프리즘이 아닌 아시아의 주체성 회복을 위해서라도 문물유실사는 우리들 모두가 숙고해야할 사명으로 읽어야 한다.



YES마니아 : 로얄 k********2 2014.06.20. 신고 공감 5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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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유실된 문물은 얼마나 될까?
"우리의 유실된 문물은 얼마나 될까?" 내용보기
문물이란 물질로 표현된 역사이자 문명의 증빙이라고 한다. 한 국가나 민족의 흥망성쇠와 영욕을 진실하게 기록하고 있으며, 그 구성원들의 문화적 축적, 정신적 추구의 집합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문물은 남의 것을 가지고 간다고 해서 자신들의 문명을 나타내는 것이 될 수가 없으며, 자신들의 역사가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그러기에 문물은 있던 그대로, 그 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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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물이란 물질로 표현된 역사이자 문명의 증빙이라고 한다. 한 국가나 민족의 흥망성쇠와 영욕을 진실하게 기록하고 있으며, 그 구성원들의 문화적 축적, 정신적 추구의 집합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문물은 남의 것을 가지고 간다고 해서 자신들의 문명을 나타내는 것이 될 수가 없으며, 자신들의 역사가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그러기에 문물은 있던 그대로, 그 자리에서 보존되고, 전승되어야 마땅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과거 제국주의들은 그들이 점령한 식민지나, 그들의 영향하에 있던 국가의 문물을 약탈하는데 열을 올렸다. 그렇기에 그들의 박물관에는 해당국가에도 없는 진기한 유물들이 수십 점, 수백 점씩 진열되어 있다.

 

우리도 오천년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수많은 문물들이 만들어지고, 또 전승되어 왔다. 그렇지만 조선말 개항과 더불어 시작된 제국주의 외세의 침략시기, 그리고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많은 문물들이 유실되는 경험을 당하였다. 그러기에 이 책 [근세 백년 중국문물유실사]를 읽는 동안, 자꾸만 우리의 유실된 문물들이 얼마나 되고, 또 어떠한 것들인지 궁금해지고, 까닭 모를 분노와 서글픔이 들기도 한다.

 

중국문명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문명 중 하나이다. 따라서 그들의 문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또한 중국은 근세에 이르기 전까지는 아시아의 패자로 군림했기에 그들 스스로 문물을 파괴하지 않은 이상, 타국에 의해 문물이 대량으로 유실되는 경험이 없었다. 그러나 아편전쟁 이후 중국이 반식민지, 반봉건사회로 전락하면서 그들 민족이 겪었던 고난은 문물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동안, 중국문물은 철저히 도굴되거나 약탈당하고 파괴되었다. 저자는 이러한 유실을 약탈된 유형별로 살펴보고 있다.

 

먼저, 인간 문명사에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약탈에 대해 설명한다. 현재에도 중국의 수도인 북경은 기원전 11세기 주나라 무왕 때부터 시작하여 여러 왕조의 도성이었다. 특히 원, , 3개 왕조시대에는 통치자들이 모든 힘을 기울여 도성을 건설하고, 많은 고문물과 진기한 보배들을 쌓아 놓았다고 한다. 그러나 1860년 영불연합군이, 그리고 1900 8국연합군이 북경을 점령한 동안, 이 모든 것이 깨끗하게 약탈당하거나 파괴되었다.

 

1860 10월 제2차 아편전쟁시 영불연합군은 북경을 점령하고, 곧 바로 원명원으로 향했다. 1709년 청 강희제가 처음 조성한 원명원은 청황제의 별궁으로 정원중의 정원으로 불렸다. 황실의 보물 및 역사적 가치가 풍부한 전적이 소장되어 있던 원명원의 약탈은, 중국 근대문물의 대량유실의 서막을 연 사건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영불연합군은 원명원에 소장되어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쓸어갔으며, 가져갈 수 없는 것은 파괴하고, 마지막으로는 방화로 모든 것을 태워 없앴다고 한다. 영국의 대영박물관이나, 프랑스 각지의 박물관에 소장된 원명원의 유물은 거의 국보급, 혹은 보물급으로 지금 중국에 남아 잇는 유물보다도 더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북경의 비극은 원명원에서 끝나지 않았다. 1900년 북경을 점령한 8국연합군은 그들이 철수할 때까지 1년동안 북경을 약탈했다. 자금성은 물론 삼해, 이화원, 신단과 사원 등 국가제사시설, 관공서, 귀족이나 고관들의 자택, 심지어는 민가까지 닥치지 않고 약탈했다고 한다. 더군다나 약탈에 참여한 사람들은 군인들뿐만이 아니라 각국 외교관, 선교사 그리고 교민들까지도 약탈에 참가하여, 그들의 눈에 조금이라도 진기하다 싶으면 다 쓸어갔다. 저자는 이 와중에서 명나라 때 편찬된 백과사전 영락대전의 유실을 가슴 아파한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중국서북지역은 탐험의 열풍에 휩싸였다고 한다. 중국정부의 허가도 받지 않은 가운데, 서방 각국은 문화 현지조사 혹은 지리탐험이라는 미명아래, 중국서북지역에서 멋대로 문물을 절취하고 불법으로 고대문화 유적을 파헤쳤다. 감숙성 고대 실크로드의 요충지에 있었던 돈황의 석굴에서 발견된 9-10세기 유물로 보이는 수만권의 불교경전 필사본들, 지금의 내몽고자치구인 흑수성에서 발견된 11세기 서하왕조의 고대장서 24천여권, 신강 롭노르호수 부근에 위치한 춘추전국시대 왕조 누란의 유물들, 곤륜산 북쪽 끝자락에 한나라시대부터 송나라시대까지 존재했던 서역불교의 중심국가 호탄의 유적들, 서한시대 서역36국중 하나였던 쿠차왕국의 석굴군들, 9세기경 고창위구르국의 불교유적들, 기원전 3세기에 처음 등장한 카로슈티 문자로 적힌 목간들, 중국 상,주시대의 문자로 널리 알려진 갑골문,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인류의 유산들이 각국정부의 비호를 받는 영국, 프랑스, 미국, 스웨덴, 일본, 독일, 러시아 등의 탐험대에 의해 불법적으로 도굴되거나, 학자의 탈을 쓴 거간꾼들에 의해 중국 밖으로 빠져나갔다고 한다.

 

저자는 문물의 유실 유형 중 마지막으로 1911년 신해혁명 이후 혼란했던 시기에 일어난 것을 들 고 있다.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였던 부의는 국외로 탈출을 꾀하면서 궁중보물을 내다 팔거나, 그것들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렸고, 군벌들은 건륭황제의 유릉인 동릉을 조직적으로 도굴하기도 했다. 이러한 문물들은 대부분이 거간꾼을 통해 국외로 빠져 나갔으며, 특히 청일전쟁에서 2차세계대전에 이르는 사이 일본의 끊임없는 조사와 발굴은 얼마나 많은 유물이 빠져나갔는지조차 알 수가 없다고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북경원인 두개골 화석이 사라진 것을 들 수가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지도 않은 문물들을 외국의 박물관이 엄연히 소장하고 있는 것이 한두개가 아니다. 더군다나 일제강점기 동안 그들이 조사하고 발굴한 것들은 아마 대부분 일본에 있을 것이다. 어떤 문물이 얼마나 일본으로 빠져 나갔는지 감조차 잡지 못하는 판에,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 의해 유실된 문물은 또 얼마나 될지..

 

중국고궁박물관장 정흔삼은 저자서문을 대신하여 쓴 글에서 중국문물유실이라는 굴욕의 역사, 고통의 역사를 드러내는 이유는 문명의 존엄을 지키고, 아울러 인류 자신의 존엄을 지키고자함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이 아니래도 지금도 세계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을지 모를 문물의 유실에 대해 인류는 어떤 대처를 하고 있는지와 함께 제국주의의 탐욕과 함께 영욕을 같이한 우리의 근대사를 돌아보게 한다.



k*****1 2014.05.14. 신고 공감 5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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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이와 같은 굴욕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다시는 이와 같은 굴욕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내용보기
20세기 기억 이론의 대가 알라이다 아스만의 '기억의 공간'이란 책에 따르면 기억은 정체성의 문제와 직결된다고 한다. 내가 무엇을 기억하고 있느냐가 내가 누구인가 하는 것의 바탕이 된다는 이야기다. 그러고 보니 필립 K 딕의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던 '블레이드 러너'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시간적 배경은 미래로 황폐하게 버려진 지구에서 인간과 꼭 닮은 안드로이드들이 인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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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기억 이론의 대가 알라이다 아스만의 '기억의 공간'이란 책에 따르면 기억은 정체성의 문제와 직결된다고 한다. 내가 무엇을 기억하고 있느냐가 내가 누구인가 하는 것의 바탕이 된다는 이야기다. 그러고 보니 필립 K 딕의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던 '블레이드 러너'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시간적 배경은 미래로 황폐하게 버려진 지구에서 인간과 꼭 닮은 안드로이드들이 인간을 대신하여 전쟁을 벌이거나 힘겨운 노동을 하고 있다. 거기서 인간과 안드로이드를 구별하는 한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기억이었다. 그 사람이 어떤 기억을 가지고 있느냐가 인간이냐 안드로이드를 구별했다. 그렇게 기억은 때로 아주 깊이 인간의 정체성과 연결되어 있다. 이걸 나라로 확장하면 어떨까? 아무래도 기억과 똑같은 그 나라의 역사가 그 나라의 정체성과 연결될 것이다. 그렇게 역사를 확인한다는 것은 사실 그 나라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한 나라의 역사는 그렇다면 어떻게 확인될 수 있을까? 바로 문물일 것이다. 한 나라가 역사 속에서 남긴 것들. 바로 그것들로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알게 될 것이다. 


 문물은 역사와 문화의 담체이며, 한 국가의 흥망성쇠와 영욕을 진실하게 기록하고 있으며, 한 민족의 문화적 축적의 결정체이자 대중의 정신적 추구의 집합이다. 문물은 물질로 표현된 역사이며 문명의 증빙이다. ('근세 백년 중국 문물 유실사'의 '저자 서문을 대신하여' 중에서)


문물은 그만큼 중요하다. 그것이 곧 한 나라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물을 약탈한다는 것은 그 나라의 정체성을 약탈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근세 제국주의가 도처에 팽배하면서 이러한 약탈이 일어났다. 우리나라도 신미양요를 비롯하여 일제 식민지 동안 지속적인 문물 약탈을 겪었다. 보아하니 중국도 그리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그 거대한 나라조차도 제국주의의 발톱 아래 자신이 누군지 알려줄 문물들을 무수히 수탈당했다. 우리 생각 이상으로 아픈 역사를 중국 역시 가지고 있었다. 그 상처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기록한 책이 바로 '근세 백년 중국 문물 유실사'이다.



 유실이란 제목 대로 그냥 잃어버렸으면 좋았을 것을 하지만 아니다. 유실이란 말은 그저 아직 중국에 없다는 현상만을 뜻할 뿐이고 사실은 약탈이다. 이 책 1부의 제목은 '문명사에 유래가 없는 약탈극'이라 되어 있다. 중국 유실의 진정한 모습이 그랬다. 읽으면 다른 민족인 나조차도 분노하지 않을 수 없는 약탈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이 책에 드러나 있었다. 왜 저자는 이런 아픈 역사를 한 권의 책으로 남기려 하는가? 그 이유에 대하여 저자 서문을 대신하여 쓴 글에서 중국 고궁박물관장인 정흔삼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문명화된 인류라고 한다면 문명의 역사를 훼손하는 비극을 멈출 때가 되었다. 우리가 중국문물 유실이란 굴욕의 역사, 고통의 역사를 드러내는 까닭은 문명의 존업을 지키고 아울러 인류 자신의 존엄을 지키고자 함이다. 과거를 망각함은 배반이다.(P. 23)


 기억만이 그 굴욕스런 역사의 반복을 막을 수 있다. 그리하여 이 책은 고통의 역사를 두고두고 물리적 존재로 남기기 위하여 한 권의 책으로 담으려 한다. 이 책은 그 결실이다. 굳이 중국만을 생각하는 건 아니다. 인용한 글에서도 나타나듯이 인류란 언제든 승리자가 되면 강도로 돌변하기 쉬우므로 하나의 경고처럼 이 책을 남겨 장차 어떤 다른 나라에서든지 미래에 있을지도 모를 약탈을 막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같은 비극을 안고 있는 우리는 더욱 이 책을 가까이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안견의 '몽유도원도'와 같은 중요한 문화재조차 아직 되찾지 못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더더욱 말이다.


 중국 문물 유실의 역사는 근세 초기만 잡았는데도 참으로 아프고 남긴 상처는 컸다. 프랑스의 빅토르 위고가 여름 궁전이라 부른 중국 조경 예술의 극치를 보여준 원명원이 1860년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에 의해 약탈과 방화를 당한 것을 시작으로 1940년대까지 그치지 않았다. 여기에는 400년간 중국 통치자들이 거했던 자금성도 예외는 아니었고 그 보다 더 유구한 역사를 지닌 돈황 석굴도 마찬가지였다. 인간 진화의 중대한 증거가 될 북경 원인이 존재했다는 것을 밝혀줄 북경 원인의 유골이 유실된 것도 뼈아픈 사건이었다. 그 자리에 있었으면 중국 당사자 뿐만 아니라 나라를 넘어 총체적으로 인류의 문명을 이해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분명 커다란 도움이 되었을 문물들이 그저 한낱 이기적인 탐욕의 희생되어 먼 나라로 흘러갔으며 이제 그 존재조차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분명 인류 지식의 보고가 되었을 590년 전에 모두 22,937권에 3억 7천만의 글자로 만들어진 영락대전의 약탈은 정말로 안타깝다. 지금도 중국은 그 반환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지만 워낙에 방대한 양이고 그마나 흘러들어간 곳도 세계 각지이기 때문에 그 작업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이렇게 한 번 제자리를 옮긴 문물은 다시 돌아올 것을 기약하기가 어렵다. 지금도 인류 문명에 찬란한 빛을 더해줄 중요한 문물이 어느 개인의 저장고에서 오로지 한 개인의 취미만 만족시키며 잠들어 있는 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다보면 하나같이 유실된 문물들이 저마다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고 또 모두가 나눠 받아야 할 인류 지성의 빛이 간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상실한 문물들에 대한 설명을 통해 중국 문명에 대한 이해를 더욱 높여주는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만큼 잃어버린 문물들이 아쉬울 수 밖에 없고 다시는 그와 같이 약한 나라가 속절없이 제 나라의 문물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뭔가 세계적으로 움직임이 일어나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문물은 그냥 하나의 문화재가 아니라 그 나라로 보자면 역사고 정체성이자 인류적으로 생각하면 그 모두가 인류 지성의 빛이 간직된, 그렇게 모두가 나눠야 할 인류 보편의 기록이자 정체성이다. 때문에 우리들은 그 모든 걸 인류의 소중한 발자취로서 국적을 넘어, 인종을 넘어, 종교를 넘어 함께 존중하고 보존해 줄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자기 나라에 있다고 남의 문물에 소유권을 주장하는 일부터 그만두어야 할 것이다. 한 나라의 소유물이 아닌 인류 공존의 차원에서 문물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앞으로도 모든 인류의 발자취를 소중히 보존하기 위한 첫걸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모든 유실된 문물들이 다시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올 때까지 이 굴욕의 역사, 고통의 역사를 단단히 기억해두고 싶다.









l****1 2014.05.18. 신고 공감 4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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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문물유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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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조상들이 이룩해낸 찬란한 문화유산들은 이루 말할수 없이 많다. 하지만 이들 문화재중 뛰어난 대다수의 문화재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일본과 미국, 그리고 유럽의 몇몇 수집가들에 의해 전세계로 뿔뿔히 흩어져 나갔으며 국내에 남아있던 유물이라 하더라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소실된 것이 부지기수다.   하물며 조선사대부들이 문화의 중심이라 여겼던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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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조상들이 이룩해낸 찬란한 문화유산들은 이루 말할수 없이 많다. 하지만 이들 문화재중 뛰어난 대다수의 문화재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일본과 미국, 그리고 유럽의 몇몇 수집가들에 의해 전세계로 뿔뿔히 흩어져 나갔으며 국내에 남아있던 유물이라 하더라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소실된 것이 부지기수다.

 

하물며 조선사대부들이 문화의 중심이라 여겼던 중국의 유물들은 르네상스 이후로 향신료와 비단, 차를 강하게 원했던 유럽국가들의 관심을 일찍부터 받고 있었다. 아편전쟁 이후 청나라의 무력함이 만천하에 공개 됨으로서 중국은 그때부터 유럽인들의 탐욕으로 부터 자유로울수 없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영불연합국의 원명원 약탈과 8국연합국의 자금성 약탈이다. 청나라 황제들의 여름별장으로 사용되었던 원명원은 국가 재물의 창고라고 손색없을 정도로 전세계의 다양한 문물뿐만 아니라 금괴까지도 보관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영국과 프랑스에 의해 약탈되었고 들고 갈수 없는 물건들은 파괴되었으며 결국 마지막에는 방화로 모든 것을 소각해 버린다. 그 후 중국정부의 지속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수의 원명원 유물들의 행방을 찾을수 없다고 한다.

 

2000년 4월, 홍콩의 크리스티와 소더비 두 경매상이 1860년 영불연합군이 약탈해 간 원명원 문물을 경매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 소식을 접한 후 중국 사화각계에는 큰 파문이 일었다. 모두 국보의 향방에 관심을 쏟았다...경매가 끝난 후 역소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경매에 나온 문물들은 반드시 매입해 우리의 후손들에게 넘겨주어야 한다. 후손들에게 나라의 치욕을 잊지 않게 해야 한다." 또한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가 찾아가지 않으면 누가 찾아갈 것인가!" (p.68-p.70)

 

이 이야기는 중국인들이 자국의 문화재를 되찾기 위한 의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로 보이지만 반대로 생각한다면 원래 자신들의 유물이었던 자국의 문화재가 어느 나라에 있고 누가 소장하고 있는지 조차 알수없을 뿐더러 간혹 경매장에 나오더라도 본래 자신의 물건을 되찾기 위해 막대한 금액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이집트의 오벨리스크나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엘긴 마블스에서 볼수 있듯 전세계인들이 인지하고 있는 유대한 문화유산들 역시 그들이 원래 있던 자리가 아닌 영국과 프랑스, 미국등지에 흩어져 있다. 전 세계인들의 약탈된 문화재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고 문화재의 반환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재를 약탈해간 국가와 박물관 측에서 반환을 강력하게 거부하고 있다.

최근 한국도 프랑스가 1866년 병인양요 당시 강화도에서 약탈해간 외규장각의궤를 반환받았다. 완전한 반환이 아닌 5년 마다 갱신대여 하는 방식으로 영구대여 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 의궤 297권을 반환받는 데에만  30년 여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물론 정부의 적극적인 회수의지와 요구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문화재 한점을 반환받는데(사실 반환도 아니지만)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알수 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중국이 완전한 식민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자율적으로 그들의 문화재를 보호할 권리를 만들어 낼수 있었던 것이다. 중국 국민정부는 1930년 <고물보존법>을 공포하고 <고물보존법시행실적>을 제정하여 문물의 등록,발굴,유통에 관하여 비교적 명확한 규정을 마련함으로서 중국 서역을 탐사하고 막대한 유물과 고적, 벽화등을 유출해간 스타인의 입국을 금지시킬수 있었던 것이다.

 

현재 중국이 파악하고 있는 해외의 자국문화재는 1000만여점에 달한다고 한다. 그 수가 적든많든 중국은 자국의 문화재를 회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문화재청이 파악하고 있는 해외유출문화재는 15만점에 이른다고 한다. 하지만 어떤 문화재도 회수하려는 노력이 보이고 있지는 않는것 같다. 과연 문화재의 소재는 제대로나 파악하고 있는것인지, 지속적으로 해외유출문화재를 회수하기 위해 노력하고 끊임없이 조사 연구하는 중국의 모습에서 배워야 할점이 한두가지는 아닌것 같다.



b******n 2014.05.09. 신고 공감 4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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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중국 문화의 유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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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문화와 문명은 서양의 문화의 탄생과 발전에 비해 절대 뒤지지 않는 문명이다. 우리나라의 역사와 비교하여도 그 시간적, 형태적 깊이와 길이는 더 없이 길다. 5천년의 역사와 비교한다면 중국 문명의 탄생과 더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인도 문명, 메소포타미아, 잉카문명, 이집트 문명 등 세계 각지에서 발견되는 문명의 흔적들은 오늘날에 비하면 더 발전된 문명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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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문화와 문명은 서양의 문화의 탄생과 발전에 비해 절대 뒤지지 않는 문명이다.

우리나라의 역사와 비교하여도 그 시간적, 형태적 깊이와 길이는 더 없이 길다.

5천년의 역사와 비교한다면 중국 문명의 탄생과 더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인도 문명, 메소포타미아, 잉카문명, 이집트 문명 등 세계 각지에서 발견되는 문명의 흔적들은 오늘날에 비하면 더 발전된 문명이었고 그 당시에는 찬란함이 오늘날의 것과 비교하면 미천한 문명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으나 문화와 언어적으로도 오늘날에 뒤지지 않을것이다.

오늘날 역사에 남아있는 문명은 서양의 문명을 더 중요시하고 더 암기되어진 탓에 동양의 문명 보다는 서양에서의 문명이 더 발전하였다고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기원전의 역사적 흔적은 상대적으로 최근의 역사와 비교해 언어적으로 해석하기도 힘들고 역사적으로 남겨진 흔적이 많지 않은 탓에 소홀히 다뤄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볼 필요성이 제기된다.

그리스 로마 문명의 흔적은 그런대로 잘 남겨져 있고 잉카 문명을 보더라고 외세의 침입하기 힘든곳에서 발생한 문명이기에 흔적이나마 남겨져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최근에 발견된 문명의 흔적들을 잘 보관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기에 오늘날에도 몇몇곳은 그들의 흔적을 살펴 볼 수 있는 기회는 있다고 생각된다.

문명의 보전은 그 나라의 힘이 강성하고 나름의 자부심과 자긍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그 문화를 보호하기 힘든것이 사실이다. 사람들의 무관심과 욕심이 이전의 찬란했던 유물들을 지키기 못하고 파괴시킨 원인이 되기도 한다.

아즈텍문명과 잉카 문명의 흔적들은 유럽의 침탈에 의해 흔적없이 사라져 버렸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알 수 있다. 그런 문명의 흔적들은 개인에 의해 무참히 파괴되고 자기 나라의 유물인양 박물관에 보관하면서 그들의 것인양 포장하기도 하는 행태를 많이 봐 왔다.

대영 박물관이나 프랑스의 박물관, 일본의 박물관에는 세계에서 끌어 모아온 많은 외국의 유적들을 자기나라의 것인양 오늘날에도 전시되고 있다.

우리나라 유물의 경우에도 영국에서 프랑스에서 미국에서 발견되어 보관되어지고 있는 현실은 우리나라의 전쟁과 침탈에 대한 역사를 보는것이기도 하기에 더 마음이 아프다. 최근에 오바마 대통령의 한국 방문때 귀환한 옥새는 바로 그런 예일것이다. 우리의 가슴아픈 역사적 현실말이다.

사실 미국의 역사는 오래지 않다. 그리고 미국에서의 문화적 발전의 역사 또한 길지 않다. 그러기에 사실 미국에서의 문명이라는것이 유럽의 문화이다 보니 그들 자신에게서 역사적 자부심은 그다지 깊지 못하고 다만 그들이 침탈해온 많은 외국의 문화적 유물의 확보를 통해 그들의 힘을 과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된다. 영국과 프랑스도 이와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해 본다. 영국에는 문명이라는것이 그리스와 로마 문명, 컬트 문명이 그 대표적이나 해석하기 힘든 환경에서 그들 자신의 문명은 가질 수 없었고 이러한 배경을 인해 그들은 외국의 문화적 유산을 침탈하면서 그들의 문화적 욕망의 흔적을 확보하려 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멸망으로 점철된 여러 문화적 유산속에서 생겨난 흔적들이 지금도 큰 돈을 노리는 도굴꾼들에 의해 파괴되고 있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 왔다. 국내에서도 문제가 된 경주 능의 도굴이나 큰 능을 찾아 샅샅히 파헤치고 도굴한 탓에 흔적조차 알아 볼 수 없는 유적들이 많고 이제는 그냥 하나의 큰 고분의 흔적만으로 추정되는 우리의 문화만이 남아있다는 소식을 들을때면 마음이 아프다.

중국의 황하 문명은 우리가 세계 역사의 흐름을 이해할때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인도 문명이 중국으로 흘러 들어가 발생했다고도 하지만 북경원인의 발견은 이러한 가설을 뒤엎는 증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중국 문명의 발생에 대해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우리의 입장에서 중국의 문명을 이해하기 보다는 우리 고유의 문화와 역사를 소중히 다룸으로서 자부심과 자긍심에 더해 우리의 우월성을 나타내기 위해서 이기도 하지만 외국의 문화를 통해 배워야 할것은 배우고 진정한 우리의 문화로 인식할 수 있는 교육도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오늘 접해 본 중국의 문화와 유물은 참으로 다양하고 많은 역사적 사실이 기록된 그리고 많은 인물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도서, 그림, 문화적 가치를 더한 예술 작품들이 많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많은 유적과 유산들도 한 순간의 파괴될 수 있음도 잘 알 수 있었다.

아편전쟁으로 인한 중국의 내란과 외국의 침탈로 인해 국력이 급격히 쇠퇴할때 국민의 인식은 급격히 변화하고 나라에 대한 자부심과 자긍심은 단 하루만에 삶을 위한 방편으로 변하는것을 볼 수 있다.  그리하여 국민 스스로 그들 선조의 유물이나 유적을 쉽게 파헤치고 팔아 버리는 실수를 저지른다. 물론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에 더욱 안타까울 뿐이다.

중국의 영토는 유럽과 접해있고 더 나아가 동남 아시아에 접해있어 많은 나라와 전쟁을 통해 쉽게 다른 나라의 문명을 접하게 되고 서로의 문명이 융합되어져 더욱 빠른 속도로 발전해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많은 전쟁을 통해 파괴되기도 하고 복구를 위해 더욱 그 문화는 발전해 왔다고도 불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한번 유실된 유적이나 유물을 복구하고 찾기는 힘들어졌다.  경매를 통해 찾는 경우도 있지만 외부로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드물다는 이야기를 "사라진 그림들의 인터뷰"라는 도서를 통해 접한적이 있다. 최근에는 세계적으로 찬탈된 나라의 유물들에 대하여 반환의 의무를 지운 국가적 협정이 체결된것은 적절한 조치라고 생각한다.

정말로 이 도서를 읽으면서 중국에는 역사적 기록이나 유물을 통해 수 많은 유물을 생산한 국가임을 알 수 있엇고 그들의 문화적 융성을 이 도서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서방과 동방의 8개국의 나라가 행한 역사적 찬탈 행위는 차마 두 눈으로도 볼 수 없을 정도이다. 눈에 보이는 것은 마치 자기의 것인양 훔쳐갔다는 상황을 머릿속에 떠올릴때면 인간이기에 그럴수도 있겠다는 푸념마져 들게 한다. 원명원의 유물, 세계 최고의 백과 사전이었을 영락대전, 자연의 순리에 의존해 지어진 막고굴, 그리고 수많은 종교적 문화적 유물들을 통해 찬란했던 중국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었던 반면 문화의 약탈자이자 파괴자 였던 일본을 비롯한 서구 열강의 행동에 무책임함과 더불어 역사적인 사실임을 분명히 하고 그들이 보유한 유물들이 미약하나마 제자리를 차기를 바래본다.  



l*****7 2014.05.15.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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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문물의 수난과 약탈사-[근세 백년 중국문물유실사]
"중국 문물의 수난과 약탈사-[근세 백년 중국문물유실사]" 내용보기
한 나라의 문화와 민족의 얼이 담겨 있는 많은 문화재가 집중적으로 도난, 도굴 당하는 사건은 비단 우리나라 일만은 아니었다 보다. 제국 열강의 강탈과 포악한 욕망 앞에 무자비하게 도굴된 많은 문화재나 보물들에 기록인 이 책은 저자인 장자성 씨의 촘촘한 기록과 상세한 해설과 분실 된 유물들의 이야기로 중국 근세 백년의 수탈사와 역사의 어두운 그림자를 만날 수 있다. 참
"중국 문물의 수난과 약탈사-[근세 백년 중국문물유실사]" 내용보기

한 나라의 문화와 민족의 얼이 담겨 있는 많은 문화재가 집중적으로 도난, 도굴 당하는 사건은

비단 우리나라 일만은 아니었다 보다. 제국 열강의 강탈과 포악한 욕망 앞에 무자비하게 도굴된

많은 문화재나 보물들에 기록인 이 책은 저자인 장자성 씨의 촘촘한 기록과 상세한 해설과 분실

된 유물들의 이야기로 중국 근세 백년의 수탈사와 역사의 어두운 그림자를 만날 수 있다. 참 가슴

아픈 것은 이런 일이 전쟁상황이나 열강들의 주도적인 지배 아래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진 일이다.

 

중국 대부분의 문화재나 보물들은 전부 영국, 미국, 일본, 프랑스 등에 깊숙히 은밀하게 흘러 들었

고 그 양의 방대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가져갈 수 없는 물품들은 그 자리에서 불태워 버렸다니

인간의 탐욕심과 이기심 앞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이 책에서는 그러한 나라들을 강도로 비유했

는데 이건 약화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문명사에 유례가 없는 약탈극> 편에 보면 얼마나 많은

보물들이 사라졌는지 알 수 있어서 중국인들의 분노를 십분 이해하고도 남는 바가 있어 안타까웠다.

 

역사의 발걸음이 20세기의 문턱을 넘어서자 서양 문명의 물결과 서양 과학자와 탐험가들의

무리가 극동의 대지를 휩쓸고 지나갔다. 서양 고고학자와 고생물학자들의 그림자가 중국의

고원과 평원, 고비사막을 훑고 지나갔다. 전란은 빈번하게 일어났고 중국으 대지는 만신창이

가 되었다. 이 대지를 파헤치고 지나간 수많은 서양 과학자들은 "문화침략"이란 개념도 없었

고, 그것이 중국인들의 영혼에 어떤 고통을 주는지도 알지 못했다.

370page

 

역자의 글을 두 권 읽었는데  제국주의와 중국에 관한 폭넓은 식견 덕에 책에 활기가 있고 풍성

한 자료들과 설명으로 도움을 받는다. 내가 책을 읽는 목적 중 많은 이유 중 가장 우선적인

지적갈망과 지식의 보충 부분에 많은 도움을 받는다. 이 책의 출간 의의를 책을 읽고 생각해

보면 크게 두 가지이다. 1. 문명의 역사를 훼손하는 비극을 멈춰야 한다는 각성과 2.중국 문물

을 통해 우리의 현재를 들여다 보는 거울, 이 된다는 점이다. 역사 속에서 사라져간 중국

문물의 비망록을 통해 현재의 대한민국을 돌아 볼 수 있는 책이다. 지명이나 풍경 묘사가

소설처럼 상세해서 좋았고 사진이나 편집자료들이 흑백이라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예를

들면 364페이지의 청동 그릇들을 자세히 알기 힘든 부분은 아쉽지만 책에 실린 자료들이

방대해 이 분야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큰 도움을 주는 책이므로 별점을 후하게 주었다.

역사학을 전공한 저자 덕분에 중국의 많은 이야기들을 풍성하게 만나볼 수 있는 책이다.

 

 

근세 백년 중국문물유실사



k******r 2014.05.21. 신고 공감 2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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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의 아픔을 통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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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박물관'이니 '루브르 박물관'이니 하는 열강들의 박물관이 얼마나 악랄한 도적질의 결과물인 줄은 일찍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을 읽으니 얼마나 체계적이고 계획적으로 이루어진 약탈과 파괴였었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어처구니 없는 사실은 그렇게 약탈해 간 문물들을 체계적이고 계획적으로 돌려줄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채택한 법률에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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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영박물관'이니 '루브르 박물관'이니 하는 열강들의 박물관이 얼마나 악랄한 도적질의 결과물인 줄은 일찍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을 읽으니 얼마나 체계적이고 계획적으로 이루어진 약탈과 파괴였었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어처구니 없는 사실은 그렇게 약탈해 간 문물들을 체계적이고 계획적으로 돌려줄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채택한 법률에 근거해봐도 남의 물건을 훔치면 그에 상당한 죄값을 치루기 마련이고, 또 훔친 물건은 '장물'로 취급하여 주인에게 고스란히 되돌려주는 것이 원칙이며, 행여나 '장물'을 팔아치웠다하더라도 장물을 팔아서 생긴 이득은 피해자에게 보상해야 하고 '장물'을 구매한 사람도 벌을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어찌하여 국가가 앞장서서 파괴하고 훔쳐간 '문물'들은 왜 되돌려 받을 수도 없고, 왜 보상 받을 수도 없는 것인가? 한마디로 보상은커녕 되돌려줄 계획도 없다.

 

  그런데 더 어처구니 없는 사실은 열강들에게 빼앗긴 문물들을 되찾아올 의지도 없고, 보상 받아야 한다는 당연한 생각조차 하지 않는 피해 당사국들이 태반이라는 말이다. 아니 무엇을 빼앗겼는지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그저 열강들의 박물관을 찾아가서 그 웅장함에 넋이 나가고, 그 웅장한 장소를 빛내는 '빛나는(?) 조연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만을 아쉬워 한다는 소식을 접할 때면 울화통이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허나 정작 미워해야 할 대상을 미워하지 못하고 어리석고 무지한 사람들만 애처로워해야만 하는 까닭에 치밀어 오른 울화통을 내뿜지 못하고 장탄식에 묻을 수밖에 없음이 답답하고 또 답답할 따름이다.

 

  이 책은 지난 백 년간 중국문물이 어떻게 빼앗기고 사라져 갔는지 적나라하게 알려줌과 동시에 당췌 무엇을 빼앗겼는지 조목조목 목록으로 만들어 보여줌으로써 되찾아와 와야 할 '우리 것'을 잊지 않게 해주는 책이다. 우리 나라도 중국과 같은 시기에 파괴되고 빼앗긴 유물이 부지기수이며, 역시나 되찾아와야 할 목록이 절실하기에 이 책의 내용이 남 일 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중국 특유의 '과장'한 듯한 뉘앙스가 느껴져서 감정이입에 대한 몰입을 방해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사실'에 근거하여 설명한 부분이 대다수이기에 '남 일'이 아닌 '내 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불현듯 이 책을 읽으며 병인양요 때 유실된 '외규장각'을 프랑스에서 되돌려 받기까지 과정이 떠올랐다. 분명히 약탈이었고 주인이 분명했는데도 되돌아오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그 과정중에서 가장 기억에 떠오르는 것은 단연 '어느 한 프랑스 사서의 눈물'이었다. 그 눈물은 십분 이해가 될 듯 하면서도 몰염치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 같아 굉장히 불쾌하던 기억이었다. 어쨌든 '외규장각'은 되돌아왔다. 기쁘다. 그런데 답답하다. '외규장각'처럼 빼앗긴 것이 확실하면 되돌려받을 명분이라도 있겠지만 우리 내부의 몰염치한 놈들에 의해 외부로 반출된 문물들은 되돌려받기가 요원하니 말이다. 이 책 속 중국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열강들의 약탈과 파괴로 잃어버린 문물도 상당하지만, 그 가치와 귀중함을 알고서 혹은 모르고서 빼돌린 문물 또한 상당했기 때문이다. 이 역시 우리라고 '남 일'이 아니기에 함께 분노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었다.

 

  한편 의아한 대목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주도적으로 중국을 약탈한 적도 없을 터인데, 중국의 문물이 약탈된 나라 가운데 '한국'이 포함된 사실이 말이다. 그것도 시기적으로 열강들이 약탈하던 시기와 딱 맞는 그 시기에 약탈한 중국문물이 우리 나라에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훔쳐온 문물은 아니다. 중국이 약탈 당하던 시기에 우리는 일본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벌어진 일일 뿐이다. 다시 말해, 일본의 약탈전문가(?) '오타니 고즈이'가 실크로드를 훑으면서 약탈한 중국 문물을 그당시 조선에 보관하고 있다가 해방이 되었을 때 미처 챙기지 못하고 남은 문물들이다. 이를 '오타니 콜렉션'이라고 한다. 그래서 중국 문물의 약탈국 가운데 '한국'도 포함되어 있다.

 

  어찌 보면, 억울하게 오명을 뒤집어 쓴 셈인데 그 문물의 양이 상당하니 중국으로서는 무시하지 못하는 셈이다. 그래서인지 우리 나라에서는 오래 전부터 '오타니 콜렉션'을 중국에 되돌려주어야 한다는 여론이 상당하다. 물론 아직 돌려주지는 못했다. 우리의 약탈된 문물도 되돌려받지 못한 상태에서 우리만 돌려주는 것도 우스운 일이고, 설령 돌려준다고 해도 맨입으로 돌려주어서는 안 된다는 심리 덕분일게다. 허나 '세계의 모든 문화재는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 지켜지는 시발점이 '오타니 콜렉션 반환운동'이 될 수 있을 테니, 우리 손에 달렸는지도 모른다.

 

  세계사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킬 칼자루를 우리가 쥐고 있다는 묘한 기분. '오타니 콜렉션 반환'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섣부른 상상부터 하기에 앞서 '목록'부터 만들어야 하겠다. 이 책을 뒤친 이(번역자)의 말을 엿보니 아직 우리 나라에서는 '잃어버린 문물의 목록'조차 없는 모양이다. 칼자루를 휘두르기 전에 되찾을 내 물건부터 당당히 말할 근거부터 마련해야 더 멋들어지지 않을까.

 

 

- 이 리뷰는 [인간사랑]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YES마니아 : 로얄 z******8 2014.06.06.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외국인 내국인 모두에게 털린 중국 유물, 중국의 굴욕사-중국 문물유실사
"외국인 내국인 모두에게 털린 중국 유물, 중국의 굴욕사-중국 문물유실사" 내용보기
가끔씩 해외 토픽에서 소더비나 크리스티 경매 중국이나 우리나라 옛 그림이나 도자기 등이 나와 고가에 낙찰되는 보도가 나오곤 했다. 그 보도를 접할 때마다 저 작품들은 제대로 합법적으로 외국에 유출된 걸까? 하는 의문이 들곤 했는데, '근세 백년 중국문물 유실사'를 읽으면서 이런 의심이 더욱 고개를 들었다. 우리도 우리지만 중국은 그 유출 규모를 어림짐작만 할뿐 아직도 그
"외국인 내국인 모두에게 털린 중국 유물, 중국의 굴욕사-중국 문물유실사" 내용보기

가끔씩 해외 토픽에서 소더비나 크리스티 경매 중국이나 우리나라 옛 그림이나 도자기 등이 나와 고가에 낙찰되는 보도가 나오곤 했다. 그 보도를 접할 때마다 저 작품들은 제대로 합법적으로 외국에 유출된 걸까? 하는 의문이 들곤 했는데, '근세 백년 중국문물 유실사'를 읽으면서 이런 의심이 더욱 고개를 들었다.

우리도 우리지만 중국은 그 유출 규모를 어림짐작만 할뿐 아직도 그 유출 규모나 목록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워낙 그 규모가 엄청나서.

 


우리나라도 구한말이나 일제 시대에 유출된 문화재가 한두가지가 아니라 반환운동을 벌이고 있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중국 사람이 아닌데도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내가 이 정도라면  민족의식 세기로 유명한 중국사람은 아마도 혈압이 상승하고 뒷목 댕긴다는 사람이 속출할 것이다. 그렇게 분노하는 것이 당연지사일만큼 중국 유물의 수난과 약탈은 심각한 문제였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돈황'이나,  '북경원인'화석 '갑골문' 등 그야말로 인류사적인 가치를 지닌 유물등이 외국인, 내국인에게 도굴되고, 유출되고,사라져 버리는 엄청난 비극이 발생하고 만다.

 

읽다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1840년 아편 전쟁이후 전쟁이나 정당하지 않은 무역 등의 원인으로 해외로 유출된 중국 문물이 무려 천만점에 이른다는 통계가 있다지만,워낙 유출 규모가 방대하다보니 앞에서 말한대로 이 또한 정확한지 장담할 수 없는 실정이다.

아편전쟁 이후 '원명원'을 시작으로 '자금성' 등 중국 황실 보물 등을 비롯한 찬란한 유물은 제국주의자들에게는 전리품처럼 돼버렸다. 군인은 물론이고, 외교관,고고학자, 종교인 등까지 그 약탈과 유세에 가세해버리니 중국은 속수무책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그 문물을 자국에서 팔거나 자국의 박물관에 전시하는 것으로 배를 채웠고, 개인 손으로 흘러간 유물들은 이제 그 존재조차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게 돼버린 것이다. 그만큼 반환받기 힘들어진것이다.

 


그 뒤 중국에는 측량, 조사 등 다양한 명분을 내세운 각국의 탐험가들이 셀수 없이 몰려들었고,그중 스타인이라는 인물이 유난히 자주 등장하는 데 그의 유물 반출 실적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돈황''호탄' 등에서 그가 챙긴 유물 대부분은 지금 '대영박물관'과 '대영 도서관'에 보관되고 있다고 한다. 이 사람의 유물탈취 수법을 보고 있노라니,스티븐 스필버그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 등장하는 고고학자 인디아나 존스교수가 떠올랐다.

나만 그런 게 아니고 역자 또한 후기에서 언급한 걸 보면 이 책을 읽은 많은 독자들 또한 인디아나 존스를 연상하게 될 것인데, 영화 속에서 보면 인디아나 존스는 숨겨진 고분을 발굴하고, 그 고분 속에서 목숨을 걸고 부장품들을 챙겼다.그 과정을  아주 흥미롭게 봤고, 메이킹 필름까지 보면서 감탄했던 기억이 있는데, 그 기억을 지우고 싶은 심정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그건 엄연한 도굴이고 범죄였다. 그것도 자국의 고분도 아니었건만.

 

안타깝게도 중국의 비극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됐다. 외국인들만 중국의 귀한 문물을 약탈한 것이 아니라 자국인들 손에 도굴되고 외국으로 유출되는 상황이 돼버렸다.

마지막 황제로 알려진  '부의'는 외국으로 나가기 위해 자국의 문물을 외국인에게 서슴치 않고 팔아치웠으며, 군벌들은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능을 도굴할 지경이니, 나중에는 한두군데 능을 빼놓고 전 능이 도굴되는 상황에 이르렀던 것이다. 안팎으로 다 털리는 이 지경에 이를 정도면 중국의 굴욕사라고 할 밖에 달리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그저 비탄만 할 수 밖에.

중국과 우리 역사가 마냥 좋게 엮인 게 아니라 중국에 대해서 좋은 감정만 있는 건 아닌데 그런데도 중국 문물이 저 지경으로 유출되는 것이 결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영국의 대영박물관이나 루브르 등 유수한 박물관의 대다수 소장품들이 해외에서 약탈한 유물과 작품들이라는 것이야 익히 알고 있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괘씸한 마음이 안 들 수가 없다.

그리스 등에서 고대 자신들의 유물에 대해 반환해달라고 줄기차게 요구하고 그 요구가 국제 사회에선 어느정도 지지를 받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럼에도 우리 문화재나 중국 등 동양 문화권의 약탈에 대한 여론은 아직 미흡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외교채널과 민간을 통해서 더욱 줄기차게 문물 반환을 요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문물 유실사'는 결국 나라가 약해지고, 나라를 제대로 지키지 못할 때 벌어지고 마는 흑역사의 한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자국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있는 유물도 남의 박물관이나 개인 소장품으로 뺏겨 버리고, 반환 받으려고 해도 힘든 상황이 돼버렸다.

자국의 찬란한 유물을 외국 박물관에서 봐야 하는 중국인들의 심정은 어떨까 상상해봤는데 그 규모가 중국과 비교할 바는 안되지만 그게 비단 남 얘기만은 아니고 보니, 그런 사정은 우리에게도 비극으로 느껴질 수 밖에 없다. 제국주의가 그 나라 유물을 약탈하고 도굴하는 등  부당한 방법으로 유출한 것은 그 나라 역사와 문화를 침탈한 것이고, 더 나아가 인류가 쌓아놓은 문화, 역사, 예술, 지성을 파괴하거나 모욕하는 행위인만큼 지탄받아 마땅하다.

 

'중국문물유실사'는 우리 역사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중국 역사에서 비극의 한 부분을 잘 보여주고 있다.우리에게도 곱씹어 볼 부분이 많아서 관심있게 읽었는데,이 책에서 아쉬운 점은 편집이었다. 사라진 유물의 사진이나 도굴에 가까운 행위를 했던 당시 사진들을 좀더 큼직하게 보기 좋게 상황에 맞춰 넣어줬다면,더 몰입해서 보고, 유출의 심각성이  전달되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앞부분을 제외하고는 잘 보이지 않는 흑백사진에 크기도 작아서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시각적인 편집이 필요한 내용의 책이었는데.

그리고 유출 장소마다 사라진, 약탈된 문물의 목록을 기록했으면, 혹은 마지막 부분에 모아서 제시해줬다면.... 방대하기 이를데 없는 중국 문물 약탈사를 정리하고 파악하는데 도움이 됐을 것 같다.

e****0 2014.05.10. 신고 공감 2 댓글 4
리뷰 총점 종이책
[장자성] 근세 백년 중국문물유실사
"[장자성] 근세 백년 중국문물유실사" 내용보기
장자성의『중국문물 유실사』는 인간출판사의 서평단 이벤트에서 받은 책이다. 벌써 한 달 전에 받은 책이지만 그간 책을 펼칠 여유가 없어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좋은 책을 만든 저자에게는 물론 나를 배려해 준 출판사에 미안한 마음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마음을 몇 가지만 적어보겠다.   첫째, 뜻밖에 흥미진진한 책이었다. 내가 뜻밖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장자성] 근세 백년 중국문물유실사" 내용보기

 

 

장자성의『중국문물 유실사』는 인간출판사의 서평단 이벤트에서 받은 책이다. 벌써 한 달 전에 받은 책이지만 그간 책을 펼칠 여유가 없어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좋은 책을 만든 저자에게는 물론 나를 배려해 준 출판사에 미안한 마음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마음을 몇 가지만 적어보겠다.

 

첫째, 뜻밖에 흥미진진한 책이었다. 내가 뜻밖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흥미와는 관계가 없을 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유물과 문화재 등 옛 문물에 대한 인문서이니 재미가 있을 리가 없고, 또한 우리의 것도 아니다. 더구나 400쪽이나 되는 대작이다.

 

저자에게는 미안한 표현이지만 이 책을 읽는 일주일 동안은 고문을 받듯이 힘겨운 시간일 것이라고 지례 짐작하고 각오를 단단히 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이 책은 단순히 어떤 문물이 어떻게 사라졌다고 서술한 책이 아니었다. 중국의 근대사에 어떤 일이 있었으며, 그때 이런저런 유래와 의미가 있는 소중한 가치를 지닌 유물들이 누구에 의해 어떤 경로로 사라졌는지를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책을 읽는 동안 마치 옛 이야기를 듣거나 역사를 소재로 꾸민 드라마를 보는 듯 빨려 들어갔다.

 

둘째, 감동을 넘어서 울분을 느꼈다. 아편전쟁에서 승리한 8개국 연합군들이 중국을 어떻게 짓밟았는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호승이 지은 『아편전쟁에서 5.4운동까지』를 통해 중국 근대사에서 영국, 프랑스, 러시아, 미국 등 서구 열강에 일본까지 끼어들어서 중국을 유린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이국의 민중들이 우매한 통치자를 만나서 제국주의자들의 군화 아래서 고통을 겪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근대사를 떠올렸다. 노도와 같이 밀려오는 근대화의 물결 앞에서 우왕좌왕하다가 끝내는 망국의 길을 걸어야 했던 우리의 역사와 어찌 그리도 똑같단 말인가? 침략자들의 만행에 함께 치를 떨면서 중국인들의 울분에 공감했다.

 

이 책에서 느낀 울분은 호승의 책에서 느낀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충격이었다. 수많은 문화재들이 어떻게 강탈당했고, 자금성이나 이화원 등의 유산이 어떻게 파괴되었는지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쥘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일을 당한 중국이 일본이나 서구 사회에 대해 적대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특히 50만년의 긴잠에서 깨어난 인류의 먼 조상 북경원인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과정을 보면서 허탈감마저 느꼈다. 그것을 탈취한 범인이 누구이고, 지금 어디에 있는 지도 모른다는 현실에서 가슴이 먹먹할 정도였다.

 

셋째, 그러면서도 부러움을 느꼈다. 저자는 서구 열강과 일본의 제국주의자들이 언제 어떤 방법으로 중국의 문화유산을 강탈하고 파괴했으며, 강탈당한 유물들이 어떤 경로를 거쳐서 어느 나라 박물관(또는 개인 소장)에 머물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 과정에서 강탈자는 누구이며, 거기에 협조한 매국노는 누구였으며, 당시 통치자들은 어느 만큼 무능했는지를 어떻게 그리도 세세하게 묘사할 수 있었을까?

 

그런데 우리는……?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강탈당하거나 파괴된 문화재가 부지기수일 것이다. 그것들을 누가 가져갔으며,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우리에게는 왜 이런 책이, 아니 연구가 없었던 것일까? 이런 책을 만든 중국이 부러웠고, 이런 책을 만들지 못한 우리가 한스러웠다.

 

뜻하지 않은 감동을 안겨 준 저자와 함께 역자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 책을 읽는 동안 번역서를 읽는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박종일 역자도 나 이상으로 감동을 안고 장자성 저자와 교감하면서 글을 옮겼기 때문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인간사랑 출판사의 책을 탐독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학교의 도서관 업무를 맡고 있으면서도 이 출판사의 책을 구입한 것은 많지 않다. 이곳에서 펴내는 책들이 주로 어려운 인문서적들이므로 중학교 학생들에게는 벅찰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책만은 반드시 우리학교에 비치하고 싶다. 그래서 내가 느낀 울분과 깨달음을 학생들도 함께 공유하고 싶다.



y******3 2014.05.31.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