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고없이 쏟아지는 비를 맞듯 나오미는 부모님의 이혼소식을 듣습니다. '일주일에 며칠은 아빠 집에, 며칠은 엄마 집에, 여름방학은 아빠 집에서 보내기로 한다'는 등 새로운 계획들이 나오미의 의지와 무관하게 생기고 한 가족으로써 공유하던 생활 속 이야기들도 아빠와 나오미, 엄마와 나오미로 나뉩니다. 이 책은 비교적 엄마보다 아빠와 나오미의 관계를 중점적으로 전개됩니다. 아빠는 미안한 마음에 나오미를 만나는 날이면 나오미를 위해 최선을 다 합니다. 하지만 나오미가 좋아하는 캠핑장 대신 호텔을 예약하고, 아빠와 이야기하며 천천히 자전거를 타고 싶은 나오미에게 운동하듯 열심히 타라고 합니다. 수영을 할 때에도 물을 많이 먹어서 죽을 것 같은데도 열심히 해야 한다고 강조하지요. 이 와중에 기타레슨까지 받자고 하니……나오미는 이중생활의 빽빽한 일정을 참아내느라 지쳐갑니다. 사실 나오미에게 절실한 건 '이혼'에 대한 생각을 꺼내볼 '시간'입니다. 가끔이지만 엄마와 아빠가 종일 곁에 있을 거라는 믿음,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걸 깨달을 '시간' 말입니다. 어느 날 나오미의 마음은 엘렌 고모네 집에 가서 울컥 터집니다. p.102 - 103 "아빠, 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요. 절 좀 그냥 내버려 두세요." 다시 전동 사포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그게 무슨 뜻이지? 더 정확하게 설명해 줄래?" 아빠가 설명이 필요하다니 그렇게 했다. "박물관도, 글자 맞추기 게임도, 체스도, 수영도, 자전거도, 소수 계산도 다 지겨워요. 수영장, 동물원, 무슨 프로그램, 계획, 활동 이런 거 다 지겹다고요. 차라리 늙어서 머리가 백발이 되어 덧창에 사포질이나 하는 게 낫겠어요." 아빠는 눈앞에 쓰나미 파도가 몰려오는 것을 본 사람처럼 무척 당황해했다. 나도 그 파도가 무서웠다. 그래서 아빠에게 등을 돌리고 문을 쾅 닫고 나가 정원의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셨다. 그리고 뛰기 시작했다. 무엇이 되었든 삶은 부대끼며 형성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두렵고 피하고 싶었던 최악의 순간이 때로는 최고의 해답이 되곤 하지요. 아빠가 실망하고 슬퍼할까봐 참고 참았지만 풍선처럼 부풀고만 나오미 안의 마음이 '펑' 터진 순간에 아빠와 나오미 사이의 어색한 장벽이 무너진 것처럼 말이죠. 이 일로 아빠는 더이상 전전긍긍해하지 않습니다. 나오미를 내버려둡니다. 언제든 나오미가 원할 때, 자신의 곁에 기댈 수 있게 맘을 열어둘 뿐이지요. 이혼율이 높아지는만큼 편부모 가정을 소재로 하는 동화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깊게 파고드는 작품을 찾아보기는 어렵지요. 이 책 또한 후련하게 속을 비워주던지, 따끈하게 채워주기에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하지만 나오미의 행동과 몇 마디 말 속에 복잡한 마음을 담는, 심리 묘사만큼은 탁월했습니다. 추상적이고 심오한 내용을 구체적이고 단순하게 표현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작업이니까요. |
|
친한 친구의 생일 파티에 간다고 잔뜩 들떠있던 주말, 생일 파티가 취소되는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이 일어난다. 고양이 포베리노가 심장마비에 걸려 죽는 것보다도 엄청난 일... 셔츠를 거꾸로 입은 채 마도 아줌마의 차에 올라탄 나오미는 멍하게 앉은 채 아무 생각이 없다. 도대체 방금 전 무슨 말을 들었던 거야?
우리집이 아닌 엄마집과 아빠집을 번갈아 가며 시간을 보내야 하는 나오미에게 엄마, 아빠의 이혼은 아무리 애를 써도 풀기 힘든 수수께끼 같다. 수학 문제에 빠져 살던 아빠가 현대식 아파트와 깔끔한 인테리어를 좋아하는 것도 낯설고 심지어 거품 목욕을 좋아한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아빠와 단둘이서 시간을 보낸 적이 없는 나오미에게 아빠라는 존재는 불편하고 어려울밖에. 부모님의 이혼 후 매주 화요일마다 아빠를 만나야 하는 나오미는 싫다는 소리를 할 수가 없다. 모든 걸 아빠의 계획에 맞춰야 하는 데다 쉴새 없이 밀어부치는 통에 숨이 막힌다. 하소연을 해봤지만 아빠가 없는 발랑틴에게는 오히려 배부른 소리로 느껴지는데... 한 가지에 집중하면 다른 것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아빠, 일이 지체되거나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나 계획이 틀어지는 걸 참지 못하는 아빠를 향해 나오미는 자신을 그냥 좀 내버려 두라며 소리친다. 열네 살이면 나도 혼자서 결정할 수 있다구요!!! 부모의 이혼만큼 아이에게 큰 충격이 또 있을까? 더군다나 한창 예민한 사춘기 소녀에게 부모의 이혼은 하늘이 무너지는 일보다 더 큰 충격이다. 부모의 이혼이 자신의 잘못인 것마냥 죄책감에 시달리고 슬픔과 분노를 안으로만 삭히다 끝내 폭발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아이들의 잘못이 아닌데도 말이다. 함께 있을 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아빠의 모습을 새롭게 알아가며 아빠와 가까워지는 나오미를 보고 많은 생각을 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일정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이혼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부모님의 이혼이 분명 좋은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오미가 아빠를 이해하고 좋아할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다. 나오미의 아빠 역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딸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 또한 다행이 아니랴. 사춘기 아들과 아무 탈없이 하루를 넘기기가 힘이 든다. 마음에 안드는 것 투성이고 불퉁거리는 말투는 머리 끝까지 화를 치밀게 한다. <아빠, 나를 내버려 둬>라고 소리치던 나오미를 떠올리며 다시 한 번 심호흡을 한다. 자기 주장이 강한 또래의 특성을 알기에 그저 지켜봐주는 걸로 부모의 역할을 다하자며 마음을 고쳐 먹는다.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지금이 아니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