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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 당시 영화관에서 보고 이번에 다시 보았다. 우디 앨렌 영화 중 내 마음속 일순위를 차지하는 남다른 영화이다. 영화 속 여자 주인공처럼 타고난 미모와 우아함이 내겐 없지만 벤치에 앉아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그녀를 보며 꽤나 울적했었다. 처음 이 영화를 만나고 나서 분명 감독은 테네시 윌리엄스를 사랑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의 대표작인 <욕망의 이름이라는 전차>와 자꾸 겹쳐보였기 때문이다. 21세기 버전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영화를 재관람하며 또 다시 드는 의문이 있다. 우디 앨렌을 비롯하여 테네시 윌리엄스는 잘 나가던 여자, 다시 말해 허영과 사치를 한때 누렸던 여자의 몰락에 이처럼 사로잡히는 이유가 궁금하다. 집 없이 떠돌며 주변에 민폐를 끼치는 재스민과 블랑시를 그들은 나쁘게만 그리지 않는다. 그들의 정신분열과 현실 부적응을 통해 주변인의 모순과 한계도 동시에 드러낸다. 더 강한 것이 약한 것에 치명적인 상처를 가할 수밖에 없음을 재차 보여준다.
그들에게 재스민과 블랑시가 나쁘거나 현명하지 못한 여자로 보였다면 극이나 영화로 굳이 재현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남성 예술가라는 구분이 편협할 수 있지만 그들은 어쩌다 여주인공들의 그런 모습에 끌려 재연 의지를 발휘하게 되는 것일까. 추측하건대 그들은 사회적인 약자 혹은 가장 상처받기 쉬운 상대로, 불나방 같은 연소성을 그들에게서 발견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카메라는 시간을 현재에서 과거로 무작위로 옮겨가며 쪼개진 재스민의 정신 상태를 담는다. 예전에는 난해하기만 했던 분열적 시간관념이 현대인에게는 익숙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온전하게 전체로 존재하는 사람은 없는 듯하다. 어떤 부분만 마치 유령처럼 시공간을 스쳐간다. 같이 본 누군가의 말대로 스크린 위의 불행과 위기와 달리 배경음악은 낭만적이고 애틋하게 조각난 이야기를 감싼다. 블루문이라는 노래로. 남편의 부정과 배신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감행하는 재스민을 보며 남편을 통해 그동안 최고의 삶을 누려놓고는 지나치게 어리석게 군다고 비난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녀가 남다른 외모로 어려운 성장환경을 이겨내고 다른 여성들보다는 많은 기회와 혜택을 누리며 살아온 나머지 인격적인 성숙함이 부족한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장성한 아들이 있고 큰 규모의 사업을 하는 남편을 두고 화려하게 사교 활동을 해왔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그녀는 아이 같다. 어떤 면에서 자신의 아픔과 트라우마만 끈질기게 보는 이기적인 면도 있다. 남편에게서도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어왔던 게 누적되어 한꺼번에 터진다. 아예 과거에 종속된 것도 앞으로 확 밀고 나가는 것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에서 허덕인다. 이렇게 그녀의 결함과 시간관을 말하면서도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는 너는 온전하게 현실을 사니?’ 우리는 흔히 과거(성장과정의 불운이나 이혼 등)에 매여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을 보며 미련하다고 쉽게 평가한다. 자기 인생 살라며. 하지만 우리의 삶을 무대에 올렸을 때 누가 봐도 제 살 파먹는 일인데도 버리지 못하는 습관이 부각되지 말라는 보장은 없다.
<블루 재스민>을 보면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와는 상황이 좀 다르지만 왜 여자는 남자의 영향력, 특히 집이라는 공간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여동생 진저도 이혼한 상태로 교제 중인 남자에게 지배당한다. 재스민은 동생이 거듭 형편 없는 루저를 선택하는 행위를 못마땅해하지만 별다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 동생의 경우 복권 당첨금은 언니네와 연루되어 날리고 언니를 통해 다른 남자를 만나지만 알고 보니 유부남이었다. 재스민은 동생이 교제 중인 단순하고 무식한 남자친구를 끔찍이 싫어한다. 신기하게도 이 남자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스탠리와 유사하게 마초적이다. 제 뜻대로 되지 않으면 폭력을 행사하고 감정적으로 눈물을 쏟으며 매달린다. 또 그런 모습에 여자는 흔들리며 자매애가 아닌 (잠정적) 부부애를 선택한다.
조각난 현실을 재건해야하는 재스민은 드와이트와 결혼하기 위해 생존 연기를 펼친다. 동생 집이 아닌 자기가 머물 집을 찾기 위해 거짓말로 둘러댄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블랑시의 마지막 출구인 미치가 블랑시의 실체를 듣게 되듯이 전 제부와의 만남으로 모든 게 들통 나고 만다. 현실과 이상의 차이 혹은 문화 차이로 재스민은 프로작에 의지하며 환상의 공간에서 간신히 숨 쉴 수밖에 없다. 천하의 사기꾼을 나쁘게만 보지 않고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것이 아마 예술가의 친절한 손일 것이다. 음악, 향수, 조명, 술, 사랑에 기대서라도 불온(전)할지라도 삶은 지탱되는 거라고 붙잡아주는 손길이지 않나싶다.
<블루 재스민>을 감상하며 ‘나는 어느 시간에 존재할까? 과거, 현재, 미래 시간 중 어디에 걸쳐 있을까?’ 궁금했다. 재스민의 정신세계가 이런 질문을 던지게도 했지만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의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를 잊지 못한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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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게 일하고 난 후 기분 좋아지는 영화 하나 보려고 고른 건데... 아... 마음이 좀 더 힘들다. ㅎㅎ 우디 앨런 영화라는 걸 깜빡했음. 허무 영화의 전문가.
과거와 현재를 오고가는 구성이 좀 특이했고 케이트 블란쳇 미친 연기가 좀 놀라웠으며 - 저렇게 우아하게 생겨서 횡설수설하니까 좀 짠함. ㅠㅠ - 이미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기대하고 있던 재혼이 깨져서 좀 불쌍했고 우연하게 알게 되어 찾아간 아들을 통해 드러난 반전은 대박이었다.
어린 시절 남자를 만나 자신의 인생을 던졌건만 돌아온 건 하나도 없다. 그리고 주위엔 사람도 없고... 거짓말만 하지 않았다면, 그 허영심만 깨뜨렸으면, 돈만 그렇게 쫓지 않았다면 좋았을 걸...
끝은 좀 찝찝하고 내용도 우울하지만 좋은 영어 표현들이 많이 나와서, 그리고 발음도 또박또박한 편이고 폰에 저장해서 다시 들어봐야겠다. 좀 더 집중해서... 그래도 오랜만에 나름 잘 만들어진 영화를 본 듯. 보는 내내 마음은 좀 힘들었지만...ㅎㅎ
아... 마지막 장면 임팩트가 좀 강하다. 케이트 블란쳇의 미친 연기... ㅎㄷ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