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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대한민국 국민입니까? 옹호자들.
언제인가부터 누구를 만나든 밥을 먹으러가든 내 일행이 아닌데도 정치인,언론인들 욕하는 소리를듣는게 익숙하다. 듣기 좋은 소리도 한 두번이라고 듣기 싫은데도 말이다. 그 때문인지 정치에 관련된 책을 독서목록에서 배제하기 시작했다. 예전엔 호기심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대통령 부부의 쌍꺼풀 수술을 두고 오락프로서 코메디언들이 따라하는 모습에 나도 따라 킬킬거렸던 기억이 있다. 그땐 지금보다 더 어렸지만 한나라의 대통령 내외를 그것도 버젓히 현 대통령을 소재로 개그를 한다니 대통령이 우습게 느껴지기 보다는 무언가 서글프지만 기분좋은 표현하기 힘든 기분이 들었었다. 밥 먹다가 잡혀가고, 지나가다 총을 맞고, 제대로 변명조차 해보지 못하고 희생당한 이들이 있었던 시대도 있었으니까...
PD수첩 사건때 나는 멀쩡한? 성인이었고, 국민이었지만 나름 긴 시간을 끌고가는 재판에서 무엇때문에 저리 길게도 끌고 가는 것인지, 왜 억지 방송을 만들어서 저렇게 나라를 시끄럽게 만드는지 포승줄에 잡혀가는 그들을 '나쁜 언론인'으로 본 것이다.
정연주 전KBS사장 해임때도 멀쩡한? 성인이었고, 국민이었지만 적자를 나게한 장본인이라는 언론을 믿었다. 언론이 공영방송의 수장을 이유없이 까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는 부끄럽다. 나는 알지 못한 것이, 알려고 하지 않은것이 부끄럽다. 나 또한 언론을 믿지만 언론에 희롱당하며 그들이 부어준 '우롱차(국민을 우롱하는)'를 식수 마시듯 마시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단다. 그렇게 누군가의 소중한 부모,형제,자식들의 목숨하고 바꿔서 얻은 결실을 누군가는 땅콩 까먹듯이 쉽게 까먹고 있다. 무언가 내가 비난한다고 나아지지 않겠지. 그러나 이제는 제대로 알려주고 바로 알려 줄 수는 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첫번째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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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라는 것은 우리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민주 공화국과 법치국가의 의미를 제대로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것은 우리가 세상이 원래 모두 그렇지 라고 이야기하는 그 순간부터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우리의 생각이 분명 상식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을 우리의 현실에서 벌어지게 만든다는 것은 지나친 생각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민주주의와 법치국가의 진정한 의미를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감시와 노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민주주의와 법치국가의 주인은 바로 개개인의 국민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주주의와 법치국가는 한순간에 무너지거나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 경우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이 책 옹호자들은 바로 그러한 민주주의와 법치국가에 대한 상식적인 생각을 지키려는 이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더불어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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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민주주의의 ‘수호자’요 ‘옹호자’이다. 알 수 없는 멜랑꼴리한 느낌과 함께 한숨이 나왔다. 헌법에 명시된 대로 ‘대한민국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이 허무맹랑하게만 들린다. 우리는 과연 주인으로서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나. 아니 최소한 주인인 체하며 살아갈 수는 있는 것인가. 다큐멘터리 ‘최후의 권력‘을 보면서 어렴풋이 희망을 가진 기억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내 손에는 정권의 폐해가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었다.
말 못하는 이들의 목소리로 살고자 한 사람들 책의 서문에서 자크 데리아의 <법의 힘>에서는 이런 말이 나온다. “힘없는 정의는 무기력하다. 그리고 비난을 받는다. 따라서 정의와 힘을 결합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정당한 것이 강해지거나 강한 것이 정당해져야 한다.(…) 사람들이 정당한 것을 강한 것으로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강한 것을 정당한 것으로 만들었다.” 오늘날 강한 것을 정당한 것으로 만든 사악한 무리들에 덤빈 용감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름하여 ‘옹호자들’, 정당한 것을 다시 강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싸운 ‘변호사들‘이다. 그렇다. 이 책은 그런 변호사들이 국민의 목소리를 가슴에 담고 그 가슴에서 우러난 목소리로 남긴 기록들이다. 이 책은 8가지 사건을 다루고 있다. ‘미네르바 사건, 정연주 KBS 사장 해임 사건, <PD수첩> 사건, 국방부 불온서적 사건,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 전교조 명단 공개 사건, 전교조 시국선언 사건, 용산참사’를 빠르게 훑는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의 중심에 대한민국 정부가 있다. 법을 악용한, 법을 교묘히 피해서 억지 주장과 함께 묵비권으로 일관했던 이 어이없는 사건들에 3년이란 시간을 할애해서 겨우 무죄를 받은 판결이 있는가 하면 아직도 그 시간이 흘러가고 있는 사건들이 있다. 그리고 더 이상은 회자되지 않는 이 사건들을 묵묵히 감당하고 이겨내려는 변호사들이 있다.
이런 게 어딨어요,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분노 섞인 표현도 나오지만 변호사 특유의 침착성 때문인지 책은 오히려 보는 이로 하여금 더 흥분하게 만든다. 특히 ‘용산참사’ 사건에서는 입에서 “쓰레기네.”라는 말이 거침없이 터져 나왔다. 용산참사는 철거와 관련하여 경찰의 무리한 진압과정에서 원인불명의 발화로 6명이 사망하고 20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농성자들이 화염병을 던졌다며 형사 처벌된 사건이다. 그러나 사건의 전말을 따지고 보면 도심테러 수준이라는 농성은 평화로운 분위기였고, 진압 전 대화는 오히려 농성자들 쪽에서 몇 번씩 시도했으며, 화염병을 던졌다는 증거조차 불분명한 상황에서 그랬다는 물증 하나 없이 오직 주장만으로 국민의 보호받아야 될 인권을 망각해버린 질 나쁜 사건이다. 검찰이 주장하는, 즉 농성자들이 화염병을 던졌다는 증거는 제출된 두 개의 동영상에서는 찾을 수가 없었고, 그 부분만 잘려 있었다. 변호사 측에서 찾은 동영상 하나에서는 농성자들의 화염병 투척 장면이 아주 미세한 불빛에 근거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걸 보고 화염병을 던졌다고 말하는 게 어이가 없었다. 울화통이 터지는 이 심정을 책을 통해 보는 나도 느끼는데 당사자들은 얼마나 분노했을까. 특수대의 과잉 진압, 안전적 조치 없이 행해진 진압 과정, 또한 화재 시 진압보다 우선되는 안전의 권리 또한 국민들은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다. 국민을 지켜야 될 국가가 되려 소리 없는 폭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영화 ‘변호인’
“이런 게 어딨어요,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할게요. 변호인 하겠습니다.” 농성자들이 왜 농성자가 되었을까부터 접근하면 이 사건, 정말 도덕적으로나 상식적으로나 가늠이 안된다. 삶의 터전을 강제로 빼앗기고, 그 과정에서 국가가 참여해 강제로 빼앗는 것을 도우려고 했던 격인데 국가를 믿고, 국가에게 세금 내며 살아가는 국민 입장에서 이런 천하의 배은망덕한 놈이 따로 없다.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현실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말도 안 되는 국가의 음모를 알게 된 송변은 선배에게 찾아와 분노를 나타낸다. 일시적인 감정이라는 선배의 말에 송변은 변호인을 맡겠다는 말을 한다. 송변의 다짐을 시험하기도 하듯 선배는 목소리를 조금 높여 말한다. “중간에 포기라도 한다면 너랑……!” “안합니다. 절대 포기 안합니다.” 얼굴에서 느껴지는 송변의 분한 마음을 오늘날 ‘옹호자들’ 또한 똑같이 겪었으리라.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사건의 잔재는 변호사들에게 뿌리 깊은 흔적을 남겼다. 변호사들은 원고를 쓰면서 자신이 사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고, 마무리한 뒤에야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들이 이렇게 힘든 기억들을 되살려내면서까지 원고를 쓴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사건들이 어떻게 일어나 우리 사회가 지켜온 기본권을 후퇴시켰는지를, 기록하여 널리 함께 읽자는 데에 공감대가 모아졌다.’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를 옹호하고 지키고자 하는 변호사들의 마음이 이 책을 빚어낸 것이다. 법이 국민들을 위한 것이지 법아래 국민이 있을 수 없다는 그들의 신념에 다시 한 번 박수를 친다. 대검 간부마저 “야 이게 어떻게 배임이 되냐?”는 정연주 사장의 배임죄 사건, 국가가 이익을 얻었는데 국가가 피해자인 이 말도 안 되는 사건 자체를 논리적으로, 민주적으로 이기고자 고군분투한 흔적이 안타깝기만 하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잘못된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우리는 기억해야 하고, 힘을 모아야 한다. 불온서적으로 군법무관에서 파면 당했던 박지웅 변호사님의 ‘깨어있는 조직된 시민의 힘, 그 힘을 살려달라’는 당부가 아직도 또렷히 기억난다. “우리 아들 건우, 연우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로 브레이크 안 걸리는 세상에 살게 할라고예. 사무장님 아 병국이도 이런 세상에 살게 하면 안 되죠.” 이런 변호사들의 투쟁하는 모습은 영화 ‘변호인’과 많이 닮았다. ‘변호인’은 부동면 사건에 휘말린 단골 국밥집 주인 아들을 변호하면서 한 변호사의 삶이 바뀌고, 그 변호사가 바꾸려는 부조리한 사회 실상을 그대로 드러낸다.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영화라지만 허구로 시작한 이 영화는 142명의 변호사 중 99명이 참석했다는 사실로 막을 내린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지만 ‘실화’가 내포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그 실화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어느 정도는 살아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처칠은 말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우리에게는 기억해야 할 책임감과 사명감이 있다. “바위는 아무리 강해도 죽은 기고 계란은 아무리 약해도 살은 기라고, 바위는 부사져가 모래가 되도 계란은 깨어나서 그 바위를 넘는다.“ 살아서 역동하는 것만이 현재를 바꾸고 미래를 결정한다. 그 힘이 국민에게 있는한 국가의 존재는 국민이 전제되지 못하면 쓸모가 없다. 숫적으로도 밀리는 이 싸움에서 우리가 안 이길 이유가 뭐가 있을까. 권력, 고통, 기억. 우리는 권력에 의한 이 고통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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