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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과거의 그림자다-스완네 집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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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최고의 작품이며 모든 현대소설의 출발점이라고 각광받는 소설이 바로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이다. 앙드레 모루아는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 프루스트를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만이 있다”라고 이야기 했다. 이는 이 작품이 그리 쉽게 만날 수 있는 작품이 아니라는 반증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대단한 매력을 가진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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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최고의 작품이며 모든 현대소설의 출발점이라고 각광받는 소설이 바로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이다. 앙드레 모루아는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 프루스트를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만이 있다라고 이야기 했다. 이는 이 작품이 그리 쉽게 만날 수 있는 작품이 아니라는 반증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대단한 매력을 가진 작품이라는 의미의 반증일 것이다. 앙드레 모루아 말고도 우리가 이름을 기억하는 많은 작가들이 이 작품에 대한 극한의 찬사를 바쳤다. 하지만 읽은 이보다 읽지 않은 이가 더 많은 이작품은 마음을 먹고 쉽게 접근할 수는 있지만 문장의 난해함으로 그 끝을 보기는 어려운 대표적인 작품이다. 방대한 분량으로 거부감을 주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와 더불어서.

 

  한 사람의 지난 과거의 기억을 통해 삶을 반추해보는 회상의 이야기로 구성된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총 7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7편의 이야기 하나하나가 독립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전체 이야기가 한 사람의 지난 과거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성장에 관한 작품이기에 하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과거에 대한 회상은 누구에게나 애틋함을 선사한다.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되는 과거의 이야기는 행복과 아름다움, 그리고 예술적 영감의 소재이다. 첫 이야기인 스완네 집 쪽으로의 첫 장을 열었다. 난해했다. 고전문학을 통해 일상적으로 만나는 문장은 아니다. 프루스트의 문장은 길고 난해한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하지만 실상은 상상을 초월했다. 만연체의 느긋함을 동반한 문장은 읽는 이의 호흡까지도 느려지게 한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야기의 연결과 한 문장 안에서도 수 십 번 반복되는 은유는 가히 넘사벽이다. 하나의 단어가 떠오르면 거기에 연상되는 수많은 단어들이 꼬리를 물고 나타나 어쩌면~ 어쩌면~ 또는~또는~ 등이 반복된다. 이러한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본래의 출발점에서 상당히 멀어져 시작점이 어디인지를 잊게 한다. 이러한 이탈에 사물의 다양한 모습을 그려내기 위해 은유와 비유의 소재로 등장하는 그림, 음악, 건축, 성경, 신화 등에서 빌려온 이미지들과의 비교는 해당하는 작품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으면 문장 자체를 이해하기 힘들게 만든다. 19세기 말 프랑스 사회를 지배한 사회·문화적인 지식기반이 없으면 이해하기가 힘들었겠지만, 지금이야 인터넷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으니 작가가 인용한 작품 속 인용문구나 은유에 사용한 각종 그림이나 음악 등에 대한 자료를 참고하면서 읽어나가면 의미를 파악하기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이러한 이유로 이 작품은 기존의 책 읽는 속도를 유지하기는 어렵다. 속도의 미련을 버리지 않으면 한참을 이어지는 은유의 반복이 문장의 난해함을 가중시켜 처음의 주제로부터 한참을 벗어나기 때문에 한 문장 한 문장, 한 단어 한 단어를 세심히 읽고 호흡을 가다듬지 않으면 책을 읽는 독자는 안드로메다의 암흑성운 속에서 헤매는 자신을 추스르기가 힘들 것이다. 그만큼 집중을 요하는 작품이다. 수많은 은유 속에 등장하는 각종 미술작품과 작가들에 대한 묘사, 한사람의 인물을 표현할 때 예로 드는 화가들의 작품, 한사람에 대한 감정을 표현할 때 예로 드는 뱅퇴유 소나다의 소악절 한 구절 등은 해당되는 작품과 음악에 대한 지식이 없는 우리를 당황하게 한다.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그림에 대한 인용이 자주 등장하는 스완의 사랑이야기 속 정경은 화가에 대한 작가의 남다른 애정을 상징한다. 자주 등장하는 그의 그림에 대한 묘사를 빌어 은유하는 풍경은 그의 작품을 보지 않고는 이해하기 힘들다. 하지만 어쩌면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은유를 통해 작가는 자신의 느낌을 정확히 전달하고자 했다. 내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이미지를 누군가에게 보여주기에는 부족한 언어의 영역보다는 존재하는 어떤 형상에 대입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그런 작가의 욕심이 만들어 낸 문장을 정신 차리고 읽지 않으면 의미 없는 활자의 무덤 속에서 갈 길을 잊고 헤매는 자신의 시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1편의 중반을 넘어가 프루스트의 문장에 적응력이 생기면 이 작품이 주는 궁극의 매력을 만나볼 수 있다. 등장인물에 대한 프루스트 전공자인 역자의 세세한 주석과 그 시절 프랑스 문화에 대한 해설은 이 작품에 대한 이해도를 증진시킨다. 물론 진짜 세부적인 것에는 여러 면이 있어서 서로 붙어 있는 진실의 조각들 사이에서 밖에는 끼어 있지 못하는데도 그녀는 그중 하나를 제멋대로 뽑아내 자기가 꾸며 낸 세부적인 거짓말 사이에 끼어 넣으려 했고, 그 꾸며 낸 세부적인 거짓말이 어떠하든, 거기에는 지나친 면과 채워지지 않는 면이 있기 마련이어서, 바로 이점이 진짜 세부적인 진실이 있을 곳이 그녀가 꾸며 낸 거짓말 사이가 아니라는 것을 폭로했다. (2162) 같은 문장을 만나면 이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하는가 에 대한 회의가 수시로 읽는 이의 발목을 잡지만 말이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화자로 표현되는 는 아마도 작가자신을 나타내는 듯하다. 일인칭 화자는 잠 못 이루는 불면의 밤의 무료함 속에 문득 어린 시절의 회상 속으로 빠져든다. 엎치락뒤치락하며 잠 못드는 밤의 몸부림이 30페이지 넘게 이어진다. 이 책을 읽기 위해 달려든 독자를 무력화시키는 첫 번째 고비이다. 그 회상 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추억인 어린 시절 가족들과의 휴가 때 방문했던 콩브레에서의 기억이다. 책을 좋아하고 작가를 꿈꾸는 어린소년, 저녁마다 어머니의 굿나잇 키스를 받고 잠이 들던 화자’. 하지만 손님의 방문으로 인해 저녁식사 후 어머니의 키스를 받지 못하고 잠자리에 들던 날의 기억 속에는 화자의 불안함과 어머니의 키스에 대한 염원으로 불면의 밤을 보냈던 고통스러운 시간이 있었다. 어쩌면 그 시절 어머니 사랑의 결핍은 훗날 여성에 대한 상실의 불안과 공격적 질투심의 근원이 된 듯하다. 두번째는 어느 날 일상의 피로에 지친 추운 겨울에 화자에게 어머니는 홍차에 적신 마들렌 한 조각을 권하고 그 음식에 깃들여 있는 향과 맛은 머릿속 한구석에 쥐죽은 듯 잠들어있던 추억이라는 기억의 파편들을 잘 엮어서 대낮같이 환하게 햇살 속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여름휴가 기간동안 콩브레에서 보내면서 매일같이 반복되던 산책의 기억들을 떠올린다. 메제클리스쪽과 게르망트 쪽으로 이어지는 산책길에서 마주치는 풍경에 대한 다양한 묘사와 그 길에서 발견한 한 소녀와의 만남이 마치 한 폭의 수채화 마냥 묘사된다. 그 길에서 느꼈던 느낌이며 그 순간의 풍광이며, 한줄기 소나기 뒤의 바뀐 자연이며, 우연히 마주친 소녀로 인해 그 시절 사춘기 소년들의 느꼈을 떨림이 그대로 전해져온다. 세 번째는 스완의 사랑이야기이다. 이 시점에서 이 작품은 1인칭 화장의 시점이 아니라 3인칭의 관찰자 시점으로 전환한다. 이질적이다. 갑자기 작가 자신이 스완이 되어 좋지 못한 소문의 주인공인 오데트와의 사랑이야기가 그려진다. 욕정에 끌려 사랑하게 된 오데트에 대해 들려오는 소문과 뭇 남성들과의 관계로 인해 끊임없는 질투와 의심에 사로잡힌 스완의 모습. 네 번째는 화자의 첫사랑인 질베르트와의 만남이 그려진다. 이러한 모든 이야기의 근저에는 바로 유대인인 스완이 있다. 거의 매일저녁 자신의 집 저녁식사에 초대되어 자주 방문하던 스완, 어린시절 어머니의 키스를 받지 못하게 방해하던 스완, 산책길에서 만나는 스완의 집, 그리고 스완의 딸인 질베르트와의 사랑. 이러한 과거의 기억에 대한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는 않았지만 화자인 작가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쳤음을 느끼게 한다. 1편의 경험들이 앞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소재나 원인이 되지 않을까 한다.

 

우리가 알았던 장소들은 단지 우리가 편의상 배치한 공간의 세계에만 속하지 않는다. 그 장소들은 당시 우리 삶을 이루었던 여러 인접한 인상들 가운데 가느다란 한 편린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이미지에 대한 추억은 어느 한 순간에 대한 그리움일 뿐이다. ! 집도 길도 거리도 세월처럼 덧없다. (2, 407)

 

  작가는 미시적 관점에서 에 대한 묘사를 3인칭의 시각으로 전환하여 이야기를 끌어감으로써 자신의 이야기를 객관화하여 주관성의 객관화를 꾀한다. 어쩌면 자신의 기억속에만 존재하는 기억의 편린에 대해 객관성을 확보하여 그 자체가 진실임을 우리에게 반증하기 위해 그런 시선을 견지한 듯하다. 어린 시절의 기억, 그리고 추억이 불러오는 이미지. 하지만 추억이란 이름의 기억은 있는 그대로를 재생하지 않는다. 잊혀진 기억의 하나로 존재조차도 의심스러웠던 과거의 추억은 잊힌 채 어느 한구석에 내동댕이쳐져 있다가, 그 기억과 관계된 냄새나 풍경, 또는 그와 관계된 현실에서의 매개체를 만나면, 그걸 열쇠삼아 망각의 숲에서 걸어 나와 마치 어제의 일처럼 재생된다. 하지만 그 기억은 있는 그대로를 재생되지 않는다. 필요에 의해 재편집되고 왜곡된다. 편리에 따라 객관적인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주관적인 시간의 흐름으로 재생되기도 한다. 또한 지나간 시간에 대한 기억은 그 기억을 공유하는 많은 이들에게 동일한 모습으로 재생되지 않는다. 자신의 시점에서 새롭게 편집되고 각색된다. 이런 과거의 기억은 우리의 현재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화자로 표현되는 작가가 이러한 과거의 기억으로 인해 현재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 것처럼, 과거란 잊혀진 기억이 아니라 현재에도 우리 삶속에 살아 숨쉬는 시간임을 작가는 기억의 편린 속에서 유추해낸다. 그 기억을 형상화한 이 작품 속에서 우리는 작가의 다양한 삶의 상념을 통해 현재의 삶속에 숨겨진 진실을 볼 수 있게 한다. 추억이란 잊혀진 과거가 아니다. 바로 오늘의 현재를 있게 한 매개체가 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한 작가의 기억 속 추억에 대한 이 작품이 그 나름의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대화를 채우는 숱한 몸짓이나 말, 하찮은 사건들 속에서 우리 주의를 끄는 것은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한 채, 우리 의혹이 무턱대고 찾는 진실을 감추고 있는 것의 곁은 그냥 지나쳐 가면서도, 반대로 아무것도 없는 것들 앞에서는 발길을 멈추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2,164)

 

 

 

YES마니아 : 로얄 h*****o 2015.06.15. 신고 공감 4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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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흠뻑 빠져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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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대학시절 완독을 시도했다 실패했던 책이다. 이후 오랜 시간 동안 이 책을 마음에만 담아두고 다시 읽을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이 책의 완역본이 민음사에서 출간되고 있음을 알았지만, 이 책의 분량을 생각해 가급적 천천히 읽기로 마음먹었었다. 그 결심이 깨진 것은 여러 이웃 블로거들의 후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긴 기다림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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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대학시절 완독을 시도했다 실패했던 책이다. 이후 오랜 시간 동안 이 책을 마음에만 담아두고 다시 읽을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이 책의 완역본이 민음사에서 출간되고 있음을 알았지만, 이 책의 분량을 생각해 가급적 천천히 읽기로 마음먹었었다. 그 결심이 깨진 것은 여러 이웃 블로거들의 후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긴 기다림 속에서 다음편 번역이 나오기만 기다리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10편 중 2편만 벅역되었으니 이 기다림이 얼마나 길어질 지 가늠하기 어렵다.

 

 4권까지 그래도 수월하게 책장을 넘기면서-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린 것은 어디까지나 후속편을 기다려야 한다는 심리때문에 일부러 독서의 속도를 늦춘 탓이다- 예전에 왜 완독에 실패한 것인지 잠시 생각해 보았다. 한참의 생각 끝에 나는 끝없는 이미지와 사고의 흐름이 그 원인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내가 좋아하는 고전소설과 다른 형태의 소설이면서, 이 소설에는 상당히 많은 이미지들이 두서없이 이곳 저곳에서 떠오르고 있었다. 특히 수없이 많은 그림들의 이미지들이 불쑥 그 모습을 드러내고 문장들이 춤추고 알 수 없는 선율이 휘몰아치며 때로는 이 곡으로 때로는 다른 곡으로 그 모습을 바꾸고 있었다. 여기에 등장인물인 화자의 사고는 여기 저기로 그림과 책과 음악과 과거와 자신의 상념 안에서 즉각적인 형태로 드러내며 살아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러니 이 과도한 이미지들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프랑스 사교계와 브루주아 계층을 아주 면밀하고 세밀하게 서술하여 미시사 서적을 보는 느낌을 주면서, 그 서술 속에 화자와 작가의 사고가 교차로 드러난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느 순간에는 화자가 아닌 작가의 생각인가 싶다가 바로 다음 문장이나 단어에서 화자의 생각으로 넘어가고 때로는 그 반대의 느낌을 주는 경우가 있어 그 점들이 묘하게 내 신경을 자극했다.

 

 유명한 이 작품의 도입부는 이내 콩브레의 공간으로 나를 이끌었는데 1권을 통해 서서히 화자와 그 주변 인물들이 그들이 속한 사회와 프랑스, 그리고 그 시대 상류층의 풍속과 문화를 통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후 스완의 사랑과 화자와 질베르트의 사랑, 이후 화자의 발베크에서의 생활과 알베르틴과의 만남, 사랑이 이어지는 것이 1권에서 4권까지의 내용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사랑에 대한 독특한 서술이 매력적이기도 하면서 특별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 작품 속에서 사랑이란 마치 한 사람(특히 남성)의 내부에서 시작되어 상실감으로 절정에 이르며 끝없는 변화를 추구하면서 그 대상을 사고 속에서 한없이 변환하고 재배치하여 자신만의 틀 안에서 전혀 다른 새로운 존재로 창출하고 있었다. 마치 인상파의 그림 속 풍경을 보듯 달라지는 그 인상과 생각과 다르게 묘사되는 상념들과 시간에 따른 변화들을 읽고 있다보면 작가에게 사랑이란 혼자만의 것처럼 느껴지곤 했다.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충실하게 자신안에서 만화경을 보듯 전황되는 감정들, 한 쪽의 서술, 어찌 보면 위기감에서 고조되고 상실감에서 절정에 달하고 소유함 속에서 식어가는 듯한 느낌들이 내게 매우 이질감을 안겨주었다.

 

 전지적 작가 시점의 스완의 사랑을 제외하고는 철저하게 화자의 시점에서 쓰여진 이 작품은 그래서 정말 독특한 느낌을 선사하고 있다. 게다가 작품 속에서 어느 순간 튀어나올 지 모르는 문학 작품들과 그 시절의 모든 문화 활동, 특히 미술과 관계된 묘사들이 서로 맞물리고 있었다.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을 읽을 때 느꼈던 것과 비슷한 느낌도 받았다.

 

 화자의 일깨워지는 기억의 기록들, 순간 순간을 환기시키는 것은 이미지와 사고들이다. 그래서 제목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정말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읽는 내내 받았다. 어떻게 보면 흘러 지나간 시간을 하나 하나 재구성하는 듯 보이기도 했지만.

 

 뒤 이어지는 내용이 무척 궁금하지만 끝없는 기다림을 바탕으로 하는 듯 싶어 희망을 접고 그저 기다리기로 마음먹고 있다. 뒷편이 빨리 출간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 사이에 '프루스트가 사랑한 화가들'이란 책을 먼저 읽으리라고 마음먹는다. 작품 속에 묘사하는 그림들이 대충 이미지로 떠오르지만 과연 내가 제대로 떠올린 것인지 확신이 서질 않는다. 게다가 미술사는 그나마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방학 숙제로만 조사했었기 때문에 더더욱 기억에서 가물거린다. 희곡이라던가 오페라, 음악, 문학작품들은 그래도 미술과 관계된 내용들보다 조금 더 선명하게 잡히지만 이것도 흐릿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와 연관된 것들을 정리할 필요성이 느껴지기에 대략적으로 관련된 도서들을 다시 읽으면서 후속편을 읽을 준비를 마칠 생각이다.

YES마니아 : 골드 e***h 2014.12.15. 신고 공감 3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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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 4권(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에 관한 리뷰입니다.     이제는 프루스트의 문체에 적응되어서일까. 그의 문장이 주는 감칠맛이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언어가 가진 수사적 기법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이절적인 것 속에서 동질적인 요소를 추출하여 덧씌워 일체감을 제공하는 은유의 기법 속에 또 다른 은유를 끼워넣어 한없이 길어진 작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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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 4권(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에 관한 리뷰입니다.

 

  이제는 프루스트의 문체에 적응되어서일까. 그의 문장이 주는 감칠맛이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언어가 가진 수사적 기법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이절적인 것 속에서 동질적인 요소를 추출하여 덧씌워 일체감을 제공하는 은유의 기법 속에 또 다른 은유를 끼워넣어 한없이 길어진 작가의 글은 문장의 주어를 저 멀리 암흑의 세계로 날려버리는 단점이 있지만, 조금이라도 책에 집중하지 않으면 책을 읽는 시선과 감성을 이별시켜, 주어를 찾아 한참을 헤매게 만들기에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프루스트의 문장이 주는 그 묘한 매력이 이제는 받아들여진다. 긴 문장의 매력은 리뷰를 쓰는 나도 닮고 싶게 만든다. 이런 매력이 그의 작품에 열광하게 하는 듯하다. 단순히 문장의 길이가 주는 압박감이 아니라, 은유 속에 또 다른 은유를 받아들여 언어가 가진 태생적 한계에서 벗어나 문자로 표현된 모든 것들을 한 장의 사진을 보는 것처럼 시각으로 전환시켜 사람이나 사물, 어떤 현상에 대한 저자의 감성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전해져 온다. 그의 문장을 읽는 순간에 그 문장을 쓰며 작가가 머릿속에 그렸을 과거의 회상에 좀 더 접근하여 그 회상이 마치 내 머리 속에서 떠오르는 추억처럼 내 자신이 프루스트가 되는 환상에 빠지게 된다. 작가가 은유의 수단으로 자주 사용하는 다양한 화가들의 작품을 찾아보며 그의 글을 만나는 즐거움 또한 색다른 매력이기도 하다. 물론 번거롭기도 하지만. 저자가 만나고 사랑했던 많은 여인들의 모습을 전해주는 데도 그 어떤 미혹적이고 수사적이고 평면적인 언어보다는 자신의 연인들의 아름다움과 매력을 보여주기 위해 저자가 즐겨 차용했던 수많은 화가들의 작품을 만나보며 프루스트가 사랑을 느끼고, 질투하고, 이별했던 연인들의 모습을 더 실감나게 머리에 그려볼 수 있다. 상대의 마음에 들기 위해 일부러 흘러내린 한줄기의 머리카락과 게임 중에 손길이라도 한번 마주칠까 하여 좋아하는 이의 옆자리를 고수하는 작가의 청춘시절에 대한 회상은 젊은 날의 한때를 떠올리게 한다. 어쩌면 순순하고, 어쩌면 아무것도 모르기에 저돌적일 수밖에 없었던 젊은 날의 소중한 기억이, 저자의 회상이 한조각의 비스킷과 차의 향기에 의해 떠올랐다면, 우리의 추억은 그의 문장이 불러들인다. 어쩜 그리도 한결같은 젊은 날인지. 시대가 다르고, 세태가 다르고, 많은 것들이 시간의 흐름이 가져다주는 차이로 인해 여건들이 다르지만 젊은 날의 사랑에 대한 열정과 애달음은 너무도 닮았다. 그것만은 시대의 변화와 시간의 차이도 어쩔 수 없는 듯하다. 그러기에 사랑에 대한 감정만은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프루스트는 자신을 온전히 드러냄으로 새로운 세상을 창조했다. 우린 흔히 자신의 지난 시간에 관한 기억을 미화하여 포장하고 때로는 각색하여 새로이 창조하기도 한다.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민낯이 내보이기엔 너무도 불편하기에 우린 예사롭지 않게 그런 행위들을 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지나온 시간을 편집하고자 하는 욕구는 현실이 변변치 못할수록 더욱 강해진다. 하지만 프루스트는 소소한 기억까지 상세히 은유 속에 또 다른 은유를 들어가며 세세히 우리 앞에 펼쳐보인다. 그런 모든 행위는 그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형상과 이미지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서다. 그 노력을 위해, 언어가 가진 수사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화가들의 작품도 수시로 예를 들어가며 보여준다. 그러한 모든 것이 조금의 왜곡됨도 없이 자신의 지나온 시간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남에게 내보이기 싫은 아픈 이야기나 은밀한 이야기, 찌질한 이야기까지도 가감없이 발굴해서 보여준다. 그건 대단한 용기다.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누구나 내가 살아왔던 기억이나 내가 살아왔던 여정에서 행했던 일들이 대단하기를 바란다. 남과 다르기를 바란다. 남보다 위대하고 가치 있는 시간들을 보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자신을 잘 아는 자신의 눈으로 봤을 때 감추고 싶고, 잊고 싶은 기억이 많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시간들만을 보냈다고 스스로를 내세울 자신이 우리에겐 없다. 우린 그 모든 것을 망각의 강에 흘려보내고, 때로는 모른 척, 때로는 기억나지 않는 척 외면하고 산다. 어쩌면 뇌라는 우리 몸의 기관이 스스로를 변호하기 위한 방호전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프루스트는 그러지 않았다. 그렇지 않았기에 새로운 세상을 창조했다. 잃어버린 시간, 밝혀내기 어려운 시간, 잊혀진 시간의 기억들도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보여줄 때 또 다른 새로운 세계가 우리 앞에 창조될 수 있다는 것을. 그가 얼굴의 화장기를 지우고 맨얼굴을 드러낸 그의 지난 시간의 이야기는 꾸며진 이야기보다 더 아름답고 진실하게 보이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과거의 기록에 진실의 자를 들이대면 들이 될수록 그 세계는 아름다운 시간으로 창조되어 우리 앞에 새로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을.. 그러기에 그의 작품은 잃어버린 시간이 아니라. 새로이 부활된 시간이다. 새로이 창조된 시간이다. 어느 누구라도 진실된 모습으로 자신을 마주하게 되면 이처럼 새로운 자신을 창조해 낼 수 있다. 이전에 스스로 알던 자신과 자신의 본모습을 들여다 본 이후의 자신은 같은 사람이 아니다. 같은 가 아니다. 전혀 새로운 이다. 그건 자신의 한계를 들여다보는 것이고, 자신의 볼품없음을 아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자신의 위대함을 아는 것일 수도 있다. 내가 아는 내가 찌질하게 보이는 것은 나를 독립적인 객체로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세상적인 눈높이에 맞추어 나를 판단하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온 삶은 나만의 삶이다. 그건 유일한 삶이고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다. 그 시간이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든 간에. 프루스트는 이 작품을 통해 어느 누구라도 자신의 살아왔던 시간들이 가진 위대함을 객관적으로 증명해주고 있다. 대단한 것도 없고, 내세울 것도 없는 그저 그런 시간을 보내왔던 지난 시간의 이야기도 진실한 모습으로 마주할 때 위대한 문학작품으로 탄생할 수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 작품의 제목인 꽃 핀 소녀들의 그늘에서도 작가 특유의 은유가 포함되어 있다. 제목이 상징하는 것처럼 이 작품은 과거의 기억 속 소녀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한 때는 꽃처럼 찬란한 소녀들이었지만 이제는 그들도 시간을 거스르지 못하고 세월과 함께 늙어 얼굴에 그늘이 드리운 중년의 나이가 되었겠지만 작가의 기억 속에 살아있는 소녀들은 꽃처럼 아름답고 활기찬 모습이다. 그래서 이작품의 중요 소재인 시간은 고정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무상한 것임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 무상함이 바로 오늘의 작가를 있게 한 소재가 된 것이다. 소유(?)하지 못한 사랑에 대한 애달음과 아쉬움 그리고 미련, 하지만 소유하지 못한 사랑은 기억 속에 살아남아 영원히 기억된다.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 더 아름답게 기억되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사랑의 아이러니이다.

 

우리가 연이어 사랑하는 여인 사이에는 변화를 보이면서도 우리 기질의 고정된 성격에서 연유하는 어떤 유사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기질이 우리와 상반되면서도 보완해 주는 여인을, 다시 말해 우리 감각을 충족하는 동시에 고통스럽게 하는 데 적합한 여인을 선택하고, 그렇지 못한 여인은 모두 제거하는 것이다. 이렇게 선택된 여인들은 우리 기질의 산물이자 이미지이며, 거꾸로 비친 상이자 우리 감성의 음화.(4. 416)

 

  마르셀이 작가의 길을 가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화자의 부친은 어느날 노르푸아 후작을 초대한다. 그 후작은 외교관 출신으로 화자의 아버지에게 작가로서도 외교관 못지않은 명성과 부를 누릴 수 있다고 얘기한다. 이 권유는 화자의 부친을 놀라게 한다. 하지만 순수한 문학을 명성과 부를 누리기 위한 하나의 수단화 하는 이 대목은 그 시절 순수성을 위반한 문학에 대한 강렬한 비판으로 보인다. 꽃 핀 소녀들의 그늘에서는 크게 2부로 나뉜다. 1부인 스완 부인의 주변에서 화자는 베르고트라는 평생에 존경하는 작가를 만나지만 그의 외모가 그가 상상한 것과는 차이가 나는 것에 많은 실망을 한다. 하지만 진정한 작품은 작가의 외형이나 도덕적 자아와는 무관한 창조적 자아의 산물이며, 아무리 초라하고 시시한 삶을 보낸 작가라도 그가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을 포기하고 자신을 객관적인 성찰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면 훌륭한 예술적 창조의 기쁨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2고장의 이름에서는 스완이 말하던 인상파 화가인 엘스티르를 만난다. 화자는 그의 그림을 통해 기존의 사물을 새로운 사물과의 비교할 때 그 사물의 본질이 제대로 인식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즉 사물은 더 이상 현실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암시적이고 은유적이며 상징적으로 표현되었을 때 그 존재의 가치가 더욱 돋보임을 깨닫는다. 꽃 핀 소녀들의 그늘에서는 이런 예술가들과의 만남을 통해 프루스트 자신이 작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떤 글을 써야하는지가 태동했다고 볼수 있다. 소년기와 청소년기의 이런 경험은 작가로서의 그의 이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거기에 더불어 1부의 배경인 파리의 겨울풍경과 2부의 배경인 발베크의 여름풍경이 주는 계절의 비교를 통해 이 책의 제목이 주는 꽃의 화려함과 그늘의 그림자를 더욱 부각시킨다. 겨울이 주는 음울함은 그늘을, 여름이 주는 활달함과 찬란함 속에 만난 소녀들과의 기억은 꽃핀 소녀와의 대조를 이룬다. 이렇듯 프루스트의 문장은 단순히 한 문장 안에 은유 속에 또 다른 은유를 통해 사물의 본질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을 넘어서 작품의 전체적인 구성안에 수많은 비유와 은유를 포함하고 있다. 미시적인 은유와 거시적인 비교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큰 그림에서의 흐름을 제대로 볼 수 있어야 프루스트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또한 그 각각의 공간에서 이루어진 소년기의 사랑과 청년기의 사랑이 겹치면서 치기어린 작가의 사랑이야기가 흥미있게 펼쳐진다. 마르셀은 스완의 딸인 새침떼기 질베르트를 샹젤리제에서 만나 잊지 못할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이루어지지는 못한다. 첫사랑이 언제나 그렇듯이. 더불어 난생 처음으로 성적인 경험도 한다. 병약했던 마르셀은 요양을 위해 열일곱 살 때 그의 할머니와 함께 노르망디 해변의 발베크로 해수욕을 하러 간다. 그곳에서 그는 로베르 드 생 루를 사귀게 된다. 이제가지 이야기에서 처음 등장하는 마르셀의 친구이다. 생 루는 대단히 매력적인 젊은이며 군인이다. 마르셀은 발베크에서 우연히 해변을 거니는 소녀들 속에서 한 여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녀가 마르셀의 두 번째 사랑의 주인공 알베르틴이다. 다양한 사람들과 만남과 헤어짐을 거치면서 한걸음씩 구체적인 삶에서의 배움을 통해 자신의 성찰을 이루어가는 작가의 이야기는 바로 그와 유사한 잃어버린 시간을 가진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지금은 사랑하지만 언젠가는 아무 상관도 없을 여인 때문에, 현재는 상관이 없지만 앞으로 사랑하게 될 여인을 건방지게 거절한 것이다. (3. 348)

 

  이 작품은 단순한 성장소설이 아니다. 저자가 이 작품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걸어왔던 여정에 대한 기록이다. 기쁨과 슬픔, 사랑과 이별 등의 기억들이 그의 삶속에 차곡차곡 쌓여 이 작품의 밑거름이 되었다. 제 삼자가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평범한 일상이고, 젊은 시절 누구나 겪었을 것 같은 사사로운 일상이었지만, 그 일상 속에서 느끼는 소소한 감성들이 모여 지금의 작가를 만든 것이다. 그래서 현재는 과거의 그림자이다. 오늘의 우리가 현재의 모습으로 사는 것은 지나간 시간 속에 우리가 살아왔던 삶의 결과물이다. 즉 과거의 삶의 모습이 현재의 삶을 그려낸 것이다. 이 작품은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현재의 시간이 우리의 미래를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가는지를 예단케 한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평범한 일상이 우리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이 작품의 제목처럼 잃어버린 시간은 우리의 지나간 시간이며 그 시간 속 과거에 자신을 찾아나선 작가의 회상은 오늘의 자신을 알게 한다. 그래서 지나간 시간은 잃어버려 없어진 시간이 아니라 우리의 삶속에 차곡차곡 그 흔적으로 남는다. 이 작품을 읽어가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작가의 문장에서 벗어나 자신의 과거로의 여행을 떠난다. 그 치기어린 시절, 되지도 않은 도덕관념과 조악한 정의감, 치기어린 자신감들이 모아져 지금 돌이켜보면 찌질하다고 밖에 표현이 안되는 젊은 날이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절로 입가에 미소가 머금는다. 추억이란 그래서 아름다운 것인가.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설레고 아련해온다. 젊음의 광기로 그 불같은 열정과 정열로 태워버렸던 젊은 날의 그 수많은 날들에 관한 기억들이 작가의 인도에 따라 현재의 시간으로 환생한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보인다. 그 때문에 책을 보다가 자주 젊은 날의 환상과 만나 본분을 망각한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작가는 자신의 잃어버린 시간을 통해 우리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준 것이다. 잃어버렸던 시간, 잊혀진 시간, 그 시간에 대한 기억들이 새록새록 돋아난다. 가슴이 싸해진다. 얼굴에 슬며시 미소가 번진다. 그래.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젊을 때는 열정에 불타오르고, 나이 들어서는 그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을 되살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추억을 먹으며 늙어가는 것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야 하는 것은 작가가 아니라 바로 이 책을 읽는 우리 자신이다. 책을 읽을수록 그의 글이 주는 묘한 마력에 중독되어간다. 아직 출간되지 않은 다음 번역편이 무척이나 기다려진다.

 

그러나 내가 통과하던 이 우스꽝스러운 나이 다시 말해 메마르지 않고 아주 감수성이 풍부한 나이 의 특징은 지성에 의존하지 않고, 존재의 가장 하찮은 속성을 그 인격과 분리될 수 없는 부분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괴물과 신들에 둘러싸인 이 나이는 평온함을 알지 못한다. 어린 시절에 저질렀던 행동 중 나중에 지우고 싶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가 아쉬워하는 것은 그런 행동을 할 수 있게 이끌었던 자발성을 이제는 더 이상 갖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어른이 되면 사회와 완전히 일치한 가운데 사물을 보다 실질적으로 보지만, 청소년기는 우리가 무언가를 배우는 유일한 시기다.(4.154)

 

 

 

YES마니아 : 로얄 h*****o 2015.06.26. 신고 공감 1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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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프루스트 연작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4 세트]. 유년, 사랑, 정념, 예술, 그리고 죽음까지 19세기를 관통해 20세기를 거쳐 오늘날까지 이르는 인간 삶의 총체적으로 서술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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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프루스트 연작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4 세트]. 유년, 사랑, 정념, 예술, 그리고 죽음까지 19세기를 관통해 20세기를 거쳐 오늘날까지 이르는 인간 삶의 총체적으로 서술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