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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어렵고 껄끄러운 관계.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 아닐까? 시어머니 입장에서 며느리는 내 소중한 아들을 빼앗아간 나쁜 년이고, 며느리 입장에서 시어머니는 사사건건 간섭하는 결코 가까워질 수 없는 독한 어른일지도 모른다. 남편과 결혼하기 전. 남편은 시어머니와 함께 살 수 있는 여자를 원했다고 한다. (울 시어머님은 일찍 혼자 되셨다. 그래서 남편에게 울 시어머니는 영원히 안타깝고 아픈 분이신 모양이다.) 이 조건이 아마 35살이 되도록 장가가지 못한 이유가 아니었을까? 그때 내가 나타(?)났고, 시어른과 산다는 것에 심각한 문제가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한 나는 그게 무슨 대수냐 싶어 결혼을 했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제 3자가 아무리 좋은 어른이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받는(?) 그분들도, 그놈의 ‘시’자가 붙으면 영락없는 ‘시’어른이 된다는 사실을. 그나마 다행(?)인 것은 층이 달라 살림을 같지 하지 않는다는 정도? 처음 3년은 매일을 죽을 것처럼 살았고, 다음 3년은 모든 것을 내려 놨으며, 이후 3년은 편안해졌다고나 할까 가끔 사람들은 말한다. ‘이제 그만큼 살았으니 분가해도 되지 않아?’ 이 말에 내 대답은 ‘노’다. 나는 분가할 생각이 전혀 없다. 어머니 스타일에 완벽(?)하게 적응한 나는 이제 어머님이 불편하지 않다. 맏며느리인 내가 제사며 명절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 또한 그런 나를 믿고 맡겨주시는 어머님 덕분에 힘들어도 웃으며 일 할 수 있다. 내가 그리고 어머님이 서로 이런 경지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배려했기 때문 아닐까? 물론 가끔은 ‘말’로 나에게 상처를 주시기도 하지만 그 정도쯤은 애교가 되어 버린 지 오래다. 그런 것에 일일이 반응하고 마음 쓰다 보면 피곤해서 맏며느리를 할 수 없고 같이 살 수도 없다. 때론 어머님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며느리에게 하는 소심한(?) 말의 복수라고 생각하면 그 정도 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어머님의 인생을 조용히 반추하다 보면 시어머니, 며느리 입장이 아니라 여자라는 테두리 안에서 이해할 수 있다. 어렵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어려운 관계지만 이해하고자 맘먹으면 못할 것도 없는 사이. 바로 고부관계.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다시 나와 우리 어머님 관계를 생각하게 되었다. 한 남자를 만나 자식을 낳고 그의 가족이 되었다는 이유로 여자들은 시댁 식구들에게 무조건 잘해야 한다. 나는 왜 무조건 잘해야 하는가? 나는 왜 시키는 대로 해야만 하는가? 나는 왜 내 생각을 말하면 안 되는가? (133) 우리 집의 고부 관계가 계속 이런 상태였다면 나도 뛰쳐나가겠다고 말했을지 모른다. 분가하겠다고 난리를 쳤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시댁 어른들은 이렇게 생각하시지는 않는다. 무조건 잘하려고 하지만, 친정에 무엇을 갖다 주든, 자주 찾아 가든 울 시어머님은 아무 말씀하시지 않는다.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아도 뭐라 하지 않으시고, 내 생각을 말해도 화내지 않으신다. 어쩔 때는 말씀하지 못한 것을 내가 먼저 말해 불편하게 하지 않는다. 우리 집도 김장을 엄청 많이 한다. 심지어 나이 많은 시누이 김장까지 우리가 할 때가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에 토를 달지 않는다. 심지어 더 해드리라고 말씀드리기도 한다. 어차피 하는 것. 70포기 더하든 80포기 더하든 그리 힘든 것은 아니니까.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우리 시어머님은 아직까지 일을 하시는데 만약 그 일을 그만 두고 나면 얼마나 적적하실까? 그때 나도 울 어머님께 뭔가 같이 하자고 말할 수 있는 그런 며느리가 될 수 있을까? (책에선 글을 쓰고 수를 놓았다.) 엄마한테는 쉽게 할 수 있는 말들을 시어머님께는 할 수 있을지... 그건 자신이 없지만, 지금의 관계가 그때도 지속 되면 좋겠다. 오늘은 거리를 두고 떠 있는 저 달과 별이 어머니와 나 같다. 어머니가 달이 되고 내가 별이 되어, 내가 달이 되고 어머니가 별이 되어 우리는 저만큼의 거리를 두고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오래 오래 그렇게 살았다. (139)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거리. 그게 바로 시댁 어른을 대하는 나와 같다. 더 시간이 지나 가깝지도 멀지도 라는 감정 자체가 없어지면 그때 진짜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관계... 지금보다 더 편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서로에게 예의를 지킬 수 있는 만큼의 거리는 유지하고 싶다. 그게 내가 울 어머님을 공경할 수 있고, 어렵게 생각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시어머님은 늙어갈 것이다. 가끔은 장난처럼 나보다 더 건강하시네... 하지만 시간은 그 모든 걸 뛰어 넘기도 하니... 살아계신 동안 잘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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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사람 사는 냄새가 풀풀 풍긴다. 내가 좋아하는 시인 김용택의 모친 박덕성 할머니가 병원 침상에서 며느리 덕에 글을 배웠다. 그리고 어머니가 달라졌다. 뒤늦게 자식으로부터 독립되어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다. 침상에서 바느질과 글쓰기를 하면서 자존감이 회복되고 행복하셨다. 시어머니만 달라진 것이 아니다. 시어머니를 대하는 며느리의 마음도 달라졌다. 시인의 아내 이은영은 프롤로그에서 이렇게 밝힌다. “사랑은 책임과 의무가 아니다. 사랑은 마음이 가는 것이다. … 글쓰기를 하면서 내 마음이 어머니께 새롭게 가 닿았다. 어머니가 새롭게 내게 다가왔다.”(p. 16).
며느리는 병상에서 집과 자식을 그리워하며 한탄만 하고 계실 시어머니를 생각하며 천과 실이 담긴 반짇고리를 내 밀었다. 어머니는 조각보를 만드는 일에 몰두하셨고, 어머니 특유의 문양을 수 놓으셨다. 며느리는 이런 생각을 한 자기 자신이 말할 수 없이 기특했다. 내친김에 며느리는 바둑판 모양의 공책과 여러 색깔의 사인펜을 사서 시어머니에게 건넸다. 글을 배운 어머니는 삐뚤삐뚤한 글씨로 아들이 선생이 된 때가 젤로 좋았다고, 며느리가 우리 집에 올 때 환장하게 이뻐서 좋았다고, 손자를 가졌을 때 제일 좋았다고 쓰셨다. 신랑 얼굴도 모르고 시집와 아들 딸 쑥쑥 낳고 바람 피는 남편 앞에서 오히려 큰 소리 떵떵 치고 살았다고 말씀하신다. 어머니의 말씀을 녹음해서 적으며 며느리는 지나온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어떻게 결혼생활을 했고 시어머니에게 어떤 마음이었는지를 소담하게 글로 담아냈다. 그 시어머니에 그 며느리다. 어쩌면 이렇게 담백하게 할 말 다 써 놓았는가!
김용택 시인은 어머니와 아내의 글을 접하고서는 책을 만들자고 했다.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 있었던 갈등에 직면하면서 그게 우리 모두의 일이며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어머니의 일생을 생각하며, “어머니의 삶에서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의 저울눈은 평행이었다.”(p. 222)고 말한다. 책 마지막에 있는 화보에는 어머니의 손바느질한 조각보 사진들이 실려 있다. 아들 시인은 어머니의 조각보를 보며 이렇게 노래한다. “한 땀 한 땀 바늘 끝이 떨리고 / 꽃실이 딸려갈 때마다 / 산새 소리가 꽃가지 사이로 새어나온다.”(p. 225).
나도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난다. 일본의 식민지 시대와 육이오 전쟁을 겪으신 어머니, 전쟁에서 다치신 아버지와 함께 여섯 형제를 키우시느라 안 해본 일이 없으셨다. 생전에 어머니가 TV 드라마를 보시다가 말씀하셨다. “얘야, 내 살아온 것 소설로 쓰면 몇 권은 되고, 연속극을 만들면 수백 회는 방송할 수 있을게다.” 어머니가 보고 싶다. 그리고 어머니를 잘 모셨던 아내가 새삼 고맙게 느껴졌다. 본시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는 당사자들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일들이 숱하게 많은 법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인생에 대해, 가족 혹은 사람들과 함께 산다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많이 감사하게 되었다. 삶이란 살만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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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시인으로 유명한 김용택님과 그의 아내 이은영 그리고 시인의 모친 박덕성 할머니가 함께 쓴 작품으로 나는 참 늦복 터졌다 라는 책을 들여다 보았다. 보통의 노년에 보낼 수 있는 가장 풍성한 어머니의 모습이 그려진다. 행복한 노년의 아름다움을 보았다. 괜시리 엄마의 모습이 아른거려 눈시울이 불거지기도 했다.. 지내게 된 박덕성 할머니의 소소한 일상들을 본다. 아프다는 하소연과 자식들에 대한 서운함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며느리의 권유로 바느질을 시작하고 한글을 깨치며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인생 이야기를 담았다.
며느리가 어머니를 대하는 마음 어머니가 며느리를 생각하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고 행복해 보였다. 하루하루의 평온함이 가득들어 있는 글들... 고부간의 이야기는 꿈임이 없는 순수한 이야기들을 주고 받는다. 그리고 시골 풍경이 잔잔하게 그려져 읽는 내내 포근했다.
정말로 박덕성 할머니는 참으로 늦복이 터졌다. 노년을 건강하게 아름답게 지낼 수 있는 동기를 찾았으니 좋아보인다. 처음에야 서로 힘이드는 과정이 있기도 했겠지만 여자이기에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통했을 것이다.
오래전에 치매로 요양원에 계시다 돌아가신 시어머님...그리고 몇 년전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신 친정엄마 두 분이 생각에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살아계실때 좀 더 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지...마음이 아파온다. 요즘 100세 시대다 보니 건강을 생각하게 한다. 즐겁고 행복한 노년을 생각하면서...오늘도 열씸히 살아가야겠지...
박덕성 할머니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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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도 “나는 참 늦복 터졌다~!”라고 말씀 하실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어머니는 지금 일산에 계신다. 일산에 있는 국립암센터에서 아버지 간병을 하고 계신다. 아버지는 7년째 대장암 투병중이시다. 마지막 수술 후 아버지 간병을 하시며 어깨에 인대가 파열되고 무릎 관절이 엄청나게 상해 있었다는 사실은 집으로 돌아오신 직후 가본 병원에서 알게 되었다. 뼈에 직접 주입하는 주사를 맞으며 겨우 회복이 되던 차에 아버지가 앰뷸런스를 타고 다시 암센터 응급실로 실려 갔다. 중환자실을 거쳐 지금은 일반 병실에서 어머니의 간병을 받고 있다. 오늘로 입원 15일째다. 지난 주 휴가를 내 어머니 곁에 있었다. 아버지가 중환자실에서 막 나와서 상태가 굉장히 좋지 않을 때였다. 속상해 하는 어머니와 함께 밥을 먹고 말을 했다. 이제까지 한 번도 어머니의 입에서 들어보지 못한 말을 하셨다. “우울증 증세가 있나 봐. 밖에 나가는 것도 싫고 사람 만나는 것도 꺼려 져.” “엄마. 나쁜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에이~ 그런 건 아니야~” 내 어머니는 4남 1녀의 장녀시다. 20대 초반 처녀 때 아버지를 여의시고 집안일을 맡으셨다. 성남 공장에서 밤낮으로 일하며 동생들 공부를 시키셨다. 성격이 화통하고 꼼꼼하면서도 통솔력이 있어서 늘 각종 계를 이끌어가셨다. 주변에는 늘 사람들이 넘쳤다. 뭔가 께름칙하거나 이치에 닿지 않는 일이 있으면 확실하게 처리하시고는 했다. 형님, 형님 하며 따르는 아주머니들이 많았다. 누구보다 밝고 강하신 분이시라 생각했는데……. 사실 아버지의 투병과 간병보다 더 큰 갈등은 아버지와의 관계다. 암 발병 직전 두 분은 이혼을 하시려고 했다. 나와 동생이 적극적으로 이혼하시기를 권했다. 너무 안 맞는 두 분이 늦게라도 헤어지시는 게 두 분과 자식들에게도 행복한 일이라 생각될 정도로 두 분의 관계는 좋지 않았다. 그러던 중, 갑자기 아버지 암 발병 소식이 터진 것이다. 사람이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 다는 것은 내 아버지를 보며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그렇게 아프시고, 그렇게 아플 때 결국 자신을 돌보는 것은 어머니시지만 어머니에 대한 아버지의 태도는 암 발병 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본가에서 함께 살고 계셨지만 실상 정서적으로는 이혼상태였던 것이다. 늘 같은 문제로 다투시고 힘들어하셨다. 거의 완치된 줄 알고 마음 놓고 있다가 갑자기 입원한 지금도 아버지의 어머니에 대한 태도는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너무 속상하고 아프다. 3일의 휴가가 끝나고 어머니들 두고 집으로 내려오는 길이 너무 괴로웠다. 그리고 그날 밤 악몽을 꿨다. 무슨 일인지 어머니가 병원 침대에 누워 계셨다. 큰 수술을 한단다. 수술 시간이 얼마나 걸린 지 모르겠지만 한참 동안의 수술 끝에 어머니가 나왔다. 어머니의 얼굴을 보는 순간 통곡을 했다. 그러고 나서 잠을 깼다. 얼굴과 베개가 온통 눈물로 젖어 있었다. 꿈에서 울었는데 진짜 울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어머니께 전화했지만 꿈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괜찮다고. 아버지가 많이 좋아지셨다고. 밝게 말하시는 어머니께 악몽 이야기를 하며 조심하시라는 당부를 할 수 없었다.
“어머니에게는 내가 며느리였고, 어머니에게는 언제나 나보다 당신의 입장이 중요했다. 나를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고, 그럴 일은 처음부터 없어 보였다.” (p.138) “나는 오래전 어느 날 우리 집 뒤안 연기 나는 굴뚝 옆에 쭈그려 앉아 울던 아내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내는 불을 때서 밥을 해야 했고, 샘에서 물을 길어 와야 했다. 겨울 강바람을 맞으며 강에서 빨래를 하며 살았다.” (p.220)
이 책 「나는 참 늦복 터졌다」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이야기다. 주로 시어머니가 하는 말을 며느리가 기록한 것이다. 시어머니의 말이지만 그 속에는 며느리 얘기도, 아들 달 얘기도 들어가 있다. 내 어머니도 이 책의 며느리가 겪은 시집살이와 거의 비슷했다. 충청도 두메산골로 시집 가 불을 때고 물을 긷고, 개울 얼음을 깨 빨래를 했다. 돌아가신 내 할머니, 어머니의 시어머니는 꽤 지독하게 시집살이를 시키셨던 모양이다. 한 동네에 살던 큰할아버지댁 큰어머니가 명절 때마다 그런 이야기를 하셨다. “OO엄마 진짜 고생 많이 했어. 작은엄마가 보통 분이셨어?”
“어머니가 밉고 싫어졌다. 이러면 안 되지 싶었다.” (p.8) 나는 할머니가 싫었다. 철이 들면서 어머니의 시집살이를 알게 되고 중간에서 제대로 정리를 못하는 아버지로 인해 할머니와 어머니의 관계는 더 틀어졌다. 시골에 다녀오면 며칠 동안은 너무 힘들어 하시는 어머니를 보며 나도 시골이 싫고 할머니가 싫었다. 몇 년 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어머니의 수발을 받다가 돌아가셨다. 장례식이 끝나고 화장하기 직전, 어머니가 너무 많이 우셨다. 우시다가 쓰러질 것 같았다. 장례식 내내 그랬다. 시간이 한참 지난 뒤 물어봤다. “엄마, 할머니 안 미워요? 왜 그렇게 많이 우셨어?” “그래도 어머니잖니. 할머니가 계셨으니까 니네 아빠랑 결혼했고 니들을 낳았지. 니네 할머니 엄마 고생 많이 시키셨지만 잘해 주실 때도 많았어.” 어머니와 할머니의 관계는 내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삶의 역사도 나는 결코 알 수 없다. 어머니를 이해하고 어머니의 슬픔과 한에 공감하려 했지만 그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었다.
“어머니는 몸이 아프면서 잃었던 자존감을, 바느질과 글쓰기를 하면서 회복하고 계셨다. 놀라웠다. 행복했다. 나는 비로소 어머니께 잘해야 한다는 무거운 부채감에서 벗어났다.” (p.15) “마음속에 있는 말을 글로 쓰고 나니 이상하게도 속이 후련하다.” (p.6) 이 책의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어느 정도 관계를 회복했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그것이 가장 부러웠다. 여전히 시어머니에 대한 부채의식과 더 잘해드리지 못한 후회를 하실 내 어머니 생각에. 책의 시어머니는 몸의 건강을 잃었을지 몰라도 자존감을 회복했다. 글을 알게 되고 말하는 것이 글자로 바뀌는 놀라운 경험을 하면서, 며느리가 사다준 천과 바느질 쌈을 통해 아기자기한 소품을 만들기도 했다. 시어머니 스스로 자존감을 회복하고 나니 자식들에 대한 원망과 보챔도 줄어들고 어머니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 갔다. 나는 이것이 너무 부럽다. “어머니 옛날이야기는 민세 아빠가 반이다. 그 사람이 내 남편이라 그런가. 자꾸 눈물이 고인다. 가슴이 먹먹하다.” (p.61)
어떤 어머니가 그러지 않을 어머니가 있을까. 이 책의 어머니도 아들 용택이가 선생된 것이 가장 좋다고 하셨다. 늘 자식 이야기다. 책을 읽다보면 콧날이 시큰해질 때가 많았다. 자꾸만 내 어머니가 생각났다. 손주가 둘이나 되는 할머니가 되신 내 어머니도 늘 자식들 이야기, 자식들 걱정뿐이다. 내 어머니가 더 할머니가 되시고 손주가 하나 둘 더 늘어나면 더 그러실 것 같다. 혹시 아내가 어머니를 찾아가 이런 저런 과거를 여쭤보면 나와 동생 얘기가 많을 것이다. 어머니도 맏이셔서 동생보다 내 걱정을 더 많이 하신다. 나보다 일찍 결혼한 동생을 못마땅해 하셨고, 나보다 더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동생에게 ‘형에게 잘난 체하지 말고 더 잘해라’라며 나무라시기도 했다. 아마 내 얘기를 더 많이 하실 것 같다.
“다시 전화를 걸었다. 저예요, 어머니. 어머니 고맙습니다. 집에 오고 싶다고 전화하셔서요.” “지랄한다. 그게 고마워 내가 고맙지.” (p.72) “지랄한다, 자껏. 그거 만드느라 죽도 못하것다.” “좋았다. 어머니가 기뻐하시니 좋았다. 그리고 나는 내가 참 기특했다.” (p.85) 이미 내 어머니의 시어머니, 나의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이제 내 어머니와 내 아내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내가 어머니와 아내의 중간에서 다리역할을 잘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사람일이 어디 마음대로 되나. 내 아내에게는 시어머니다. 내 어머니께는 며느리다. 둘의 사이에서 내가 결코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쌓일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처럼 그런 갈등과 어려움들이 쌓일 것이다. 이 책의 시어머니와 며느리처럼, 꼭 그런 방법은 아니겠지만 잘 풀고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어머니와 할머니 관계를 보며 힘들었던 것처럼 내 아이들이 아내와 어머니를 보며 힘들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내 역할이 중요하다. 막중하다. 허허허. “내가 참 늦복 터졌다.” 라고 말씀 하셨으면 좋겠다.
“내가 혼자 일하다 보면 넘어지고 자빠지고 하는디 자식들이 나 이런 줄을 어찌 알겄냐, 몰라, 모르지. 길을 가다가도 울음이 나오고 담배를 피다가도 울음이 나오고 내 욕심이지 누가 하라고 했간디.” (p.128) 아버지가 빨리 회복하셔서 집에 내려오셨으면 좋겠다. 간병이라는 것이 이렇게 힘들고 지루하고 외롭고 고통스러운 것인지, 나도 아버지가 아프지 않았다면 전혀 몰랐을 일이다. 지금 그 고통을 오롯이 내 어머니 혼자 감당하고 계신다. 내려오셔도 어깨 치료, 무릎 치료, 허리 치료 받으셔야 한다. “병원 다녀오셨어요?”라고 전화상으로 한마디 하면 그만이었던 내 불효와 건방짐을 후회했다. 잠을 제대로 주무시지 못할 정도로 어깨가 아프고 앉거나 설 때마다 무릎과 허리로 전해지는 고통이 얼마만큼 인지 나는 결코 알지 못한다. 매번 “괜찮아. 병원 다녀오니 훨씬 좋다.”라고만 하시니까. 순간순간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고 헤아리기 위해서 마음을 써야 한다.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건성으로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내 어머니가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내 어머니가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내 어머니께 늦복 터뜨려 드리고 싶다. 진짜 큰 늦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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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어머니 그리고 며느리가 함께 써 내려간 이 책이 이렇게 따뜻할 수가 없었다. 특히나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이야기가 마음을 울렸다. 시어머니의 글을 깨우치는 과정과 삐뚤빼뚤 써서 만들어간 시를 토대로 며느리가 글을 썼고 아들이 책을 엮는다. 얼마나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인지.. 여섯 형제를 키운 시어머니는 그렇게 부지런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세월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고 했던가. 어머님은 그렇게 병원에 입원하게 되셨고, 병원이 싫으시다고, 답답해하셨던 시어머니께서 점점 병원에 의지하게 된 모습을 보면서 며느리 이은영씨는 마음이 아파왔다.
그토록 부지런했던 시어머니. 병원의 병실 침대위에서 멍하게 있는 모습은 그녀의 가슴을 아프게 쳐댔고, 그런 어머니에게 활기를 불어 넣고자, 바느질감을 가지고 어머니께 내민다. 그리고 점차 어머니의 눈빛은 살아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시작된 어머니의 한글 깨치기. 책의 처음에는 그토록 삐뚤빼뚤했던 할머니의 글들이 점점 뒷장으로 가면서 정확하게 횟이 그어진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시어머니가 열여덟 시집을 오면서 시작된 이야기로부터 어머니의 서툰 글씨체에서 시가 빠져나오고, 말씀으로 이어지는 것들을 며느리가 적어보인다. 며느리는 말한다. 남편의 시보다 어머님의 시가 더 좋다고. 그녀의 마음 씀씀이가 얼마나 이뻤던지 몰랐다. 나도 며느리이지만, 요즘 이런 며느리가 있을 까 싶다. 하지만 그녀도 시어머니와의 사이가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새댁대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할말을 다 해야 직성이 풀리는 시어머니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날들도 많았다. 하지만 함께한 세월들은 그 모든 것들을 잊게 만든다. 멀게만 느껴졌던 시어머니도 어느새 자신의 가족이었다.
많은 고부사이의 분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좀 더 그들 사이가 좁혀지지 않을까? 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좀 더 오래도록 글을 쓰고, 바느질을 하고, 아들 내외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많이 가지셨으면 하고 바래본다. 시어머니의 바느질들도 사진으로 뽐내었는데, 손재주가 너무 좋으셨다. 늦게나마 복이 터졌다고. 며느리 덕분에 이렇게 아프지만 늦복터졌다고 말씀하시는 김용택 작가의 어머니. 오래오래 행복하세요.
하루는 집을 치우다 말고 방바닥에 주저앉아 울기도 했다. 어머니가 이 집에 안 계시다니, 어머니가 안 계시는 이 집을 상상이나 해봤는가? 집을 깨끗이 정리해놓으니 그래도 마음이 좀 안정이 됐다. 방에서 나온 어머니 물건은 재봉틀 하나와 낡은 밥보자기 다섯 개가 전부였다. 어머니가 가꾸시던 텃밭에 상추 씨도 뿌리고 고추, 가지, 토마토도 심었다. 햇살이 따뜻한 어느 봄날 어머니를 모시고 시골에 갔다. 집을 둘러본 어머니 입이 함박만큼 벌어졌다. (p.39)
병원에 와서 누워 있으면 일어나고 싶고 일어나 앉아 있으면 옛날 생각만 나고 죽자니 냉큼 죽도 안 하고 아이고 손으로 뭣이라도 꼬무락 꼬무락 했으면 좋겄는디 어느 날 며느리가 바느질감을 가져와서는 저놈의 것을 어쩌까 했더니 넘들은 잠만 자는디 나는 왜 일만 시키냐 했더니 한 가지 한 가지 해놓고 본게 내가 봐도 좋더라. (p.77)
살아 숨을 쉬는 한 생각은 멈추지 않고 감정이 살아 움직이는 거라는 것을 어머니를 보고 알았거든. 늙어서 몸이 아플 때, 자기 몸을 스스로 어쩌하지 못할 때, 기억이 생생한 게 생각이 선명한 게 가슴 아픈 일이라는 걸 알았거든. 몸이 아프면 기억도 따라서 희미해지는 게 차라리 더 낫겠다는 생각도 했었어.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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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주변의 어르신들이 말하시던 잘죽는 것도 복이라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고, 나이들어 아픈 사람이 집안에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몰랐다. 태어난 이상 죽는 것은 정해진 이치인데, 그것을 잊고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며 조금이라도 더 가지려고 하고 조금이라도 더 남보다 이기려고 하는 하는 것이 얼마나 짧으면서도 강렬한 행복인가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얼마되지 않은 일이다. 이 책 <나는 참 늦복 터졌다>를 보면서 책속 시어머니를 바라보는 며느리의 입장에 이렇게 공감하게 되는 것도 몇 해전의 일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겠다 싶기도 하다.
주먹쥔 손안에 든 모래가 나도 모르게 흘러내려가는 것처럼 기력을 잃고 조금씩 약해지는 어른을 계속해서 바라뵈야 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고 애가 타는 일이다. 조금이라도 더 잡고 싶고 전처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은 가득하지만, 그러면서도 전적으로 흐르는 시간을 거부할 수도 없는 것이 과연 내가 하고자하는 것이 그 분을 위한 것인지 내가 제대로 판단하고 있는지에 대한 확신도 없고 그러는 와중에 내 생활도 그대로 살아내야 한다는 이기심 아닌 이기심이 발휘되는 그 시간들 자체가 참 사람을 지치게 하는 것이다. 그러한 일련의 과정들과 생각의 흐름을 일일이 타인에게 설명할 수도 없고 말한듯 그들이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알 수도 없다는 것 또한 참 사람을 외롭게 한다는 생각도 해본다.
책에서는 약해지는 시어머니를 붙잡고 조금이라도 더 기력을 차리게 하려고 글을 알려드리고, 수를 놓게 준비를 해드린다. 참 좋은 방법을 찾으셨다 싶어 박수도 보내드리고 싶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바람을 피셨다는 할아버지와 가난하고 어려웠던 세월을 함께 사셨던 할머니의 인생도 애달프고 바쁜 일상 틈틈히 어머니를 찾아뵈며 지난간 시간들을 돌이켜보는 며느리의 심정도 마음에 와닿았다. 할머니의 글과 자수작품들이 책속에 같이 실려 있어 두고두고 할머니를 추억할 수 있으니 좋을 것 같다. 살아가면서 내 물건을 늘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자주하게 되는데, 뒤에 남아 추억하고 싶은 이들이 많은 분들은 이런 책이 아니더라도 뭔가 기쁘게 떠올리게 할 수 있는 것을 남기는 것은 어떨까 싶다. 또 할머니께서 하루빨리 회복하시고 좀더 자식들 곁에서 좋은 작품들 많이 남기고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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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가 좋아 보인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지 않지만 가까운 거리에 계셔서 남편이 항상 안부를 묻는다. 남편은 내가 한번쯤 해줘도 좋을텐데...하는데 마음처럼 쉽지가 않다. 그렇게 십수년을 살았다. 이 책 여기저기에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다정함이 보인다. 난 왜 못했을까...하는 맘이 든다. 내가 좋다고 상대방도 좋으리라는 착각에 빠지는 때가 많다. 상대방은 그게 아닌데, 나는 잘했다고 생각하는 때도 많다. 이 한 줄을 읽으며 나와 다른 사람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여든여덟의 시어머니 박덕성님의 삐뚤삐뚤한 글씨에 정겨움이 넘친다. 시어머니의 말을 곱게 받아 적어 책으로 만들어낸 이은영님도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생각도 깊어지셨다는 어머니의 글 속에 삶의 정겨움이 묻어난다.
나는 참 늦복 터졌다는 어머니의 말속에 며느리를 향한 사랑이 묻어 있다. 살아오면서 속상했던 일, 아이들에게 못해준 거에 대해 미안해. 하면서 한 자 한 자 써내려간 글에는 우리 할머니들이 겼었을 일들이었다. 한번은 들어 봤던 이야기들...
바느질 솜씨가 좋아 보자기를 뚝딱 만들어 내는 어머니 솜씨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아들 이불 하나 만들어 주고 싶다고 하시다...자식들 다 열거 하시는 모습이 우리 엄마 모습과 겹쳐진다.
이 세상에서 태어난 이상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일들을 우린 운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운명을 가꿀 수도 있고 바꿀 수도 있는 것 또한 사람의 운명이 아니겠는가. 운명...우리에게 주어진 고난을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좌절하기도 하고 또 이겨내려는 노력을 하기도 한다. 우리 어머니들이 그랬듯이 우리 또한 운명을 이겨내고 한 삶을 살아가리라고 다짐한다.
고령의 나이에도 글을 배우고 바느질을 하면서 자신의 시간에 최선을 다하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힘들다 게으름 피우면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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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다가 순간 순간 울컥 울컥 울었네요. 시인을 생각하는 부인의 마음이 너무 고와서 어머님을 생각하는 며느님이 마음이 너무 따뜻해서 깊어가는 가을에 참 따뜻한 동화같은 책을 읽었네요~ 시인의 어머님 시를 읽으며 시인은 아무나 되는것이 아니고 시인의 아내 또한 그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덕성 여사님 건강하게 선생님과 사모님곁에 그렇게 머물러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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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어머니지만 ‘시’라는 글자 하나만 붙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귀머거리도 되고 벙어리도 되어가며 참고 또 참아야 하는 게 시어머니이던 시절이 있었다. 사랑했으니 감당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기엔 너무나도 컸던 시림. 서로의 사이에 놓인 시간이 흐르고 흘러 마침내 어느 하나의 삶이 완성되고 나면 비로소 해결될까. 그래서 사람들은 말했는지도 모른다. 결혼은 개인과 개인의 만남이 아닌 집안과 집안의 만남이라고. 무엇이 그리도 좋았던지 모르겠지만 그땐 이 사람이 아니면 정녕 안 되겠단 확신이 들었다. 임실 진메마을에 들어와 전업주부로 산 세월 중 짧지 않은 순간을 (시)어머니와 함께 했다. 젊은 시절 어머니는 꼬장꼬장한 분이셨다. 조금의 나태함도 허락지 않으셔서 제 몸을 끊임없이 움직이셨으니 그 부지런함을 따르다 보면 젊은 내가 먼저 병이 나도 이상치 않았다. 내 집이었으나 내 집이 아니었다. 이제까지 생활해온 내 방식이라는 것은 이제부터 잊어야 했지만 머리보다 몸이 먼저 이전을 기억해냈다. 일은 배워도 끊이지 않았고, 살림은 배운다고 느는 게 아니었다. 남들이 보지 않는 틈을 타 얼마나 울었던지, 그 모습을 들키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세상사람 모두를 속이는 덴 실패했다. 시간이 차츰 변화를 가져왔다. 여든 무렵까지도 정정하셨던 분이 어느 날 갑자기 소리를 잘 듣지 못하셨다. 어머니 당신보다도 부부의 충격이 더 했다던 고백. 나이 듦을 받아들이기란 쉽지가 않았다. 처음에는 간헐적으로 병원을 오갔다. 오래도록 농사를 지어 몸이 고장 난 건 아닐까 죄스러웠으나 팔십 년의 시간은 도시에서의 삶도 망가뜨릴 정도로 긴 것이었다. 멀쩡한 시골집을 비우고 병원을 집 삼아 살아가게 되셨을 때 느꼈던 슬픔은 비단 어머니만의 것이 아니었다. 어머니의 젊음을 기억하는 며느리는 서러웠다. 빈 집에 뽀얗게 쌓여가던 먼지를 닦아내고 사람의 체온을 불어넣으며 어머니의 부재를 부인하려 들었다. 항상 사이가 좋았던 건 아니었고, 어쩌면 외려 어머니로부터의 자유를 꿈꾸기도 했을 사람이 그랬다. 아직 부재는 상상조차 하기 싫은 것이었다. 막상 병원을 방문해야 할 때면 한숨이 나오기도 했지만 그와는 별개로 어머니는 살아 계셔야만 하는 존재였다. 팔십 년 넘는 세월을 까막눈으로 사셨다. 시대는 암울했고, 여성은 결혼해 남의 집 식구가 될 운명이라 방치되기 일쑤였다. 아들이 시인이었지만 제 아들이 쓴 시의 제목조차 읽지 못했던 어머니에게 며느리는 펜을 건넸다. 평생 잔소리로만 알고 살았던 어머니의 목소리에서 시간의 힘이 느껴졌다. 비뚤빼뚤 써 내려간 글씨는 곧 시였다. 제 아들이 교사가 됐을 때 가장 기뻤다던 어머니는 바로 다음날 제 진술(?)을 바꿨다. ‘니가 우리집에 올 때 환장하게 이뻣다’ 예뻤던 게 아니라 이뻣단다. 그것은 어머니만의 사랑이었다. 비어있던 집 걱정마저도 말끔히 덜어주는 며느리는 아니 예뻐할 수 없는 존재라며 칭찬이 쏟아지는데, “어머니는, 제가 보통 깔끔한 사람이어야죠”라며 거기에 며느리 장단 맞춰 농을 친다. 두 여인의 오가는 대화는 미운 정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을까. 처음은 그랬을 지도 모르나 이젠 그 흔한 긴장감조차도 느끼기 힘든, 딸과 어머니의 대화를 닮아가고 있었다. 입을 맞춰 같이 남편(아들) 흉을 보고, 이웃 주민 흉도 보면서 둘은 뒤늦게 서로를 향한 정을 쌓았다. 그것은 성장이었다. 누군가의 며느리였던 어머니가 제 젊은 시절을 떠올릴 여유를 갖고, 며느리가 누군가의 시어머니가 되는 경험을 쌓을 때 가능한 성장. 하지만 모두가 이와 같은 성장을 겪는 건 아니기에 저자는 말했다. “나는 내가 참 기특했다.” 드러누워 마치 제 죽을날만 기다리는 듯한 삶을 사는 노인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데 그녀의 어머니는 여든이 넘어 한글을 깨쳤다. 파리의 우울, 질문의 책, 창작과 비평, 몰락의 에티카, 클린트 이스트우드. 거실 바닥에 벌러덩 넘어지면서 웃었다고, 배꼽 빠지는 줄 알았다고 말했지만 실은 기쁨이었을 것이다. 초점 없는 눈동자가 생기를 되찾고, 나이에 어울리는 위엄을 되찾아가는 어머니의 모습은 곧 나에게도 힘이었다. 비로소 의무감의 묵직한 무게로부터 자유를 얻었다. 산다는 건 소멸이 아니라는 진리를 어머니는 제 삶으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셨다. 곱디고운 바느질 작품이 나의 손을 붙잡았다. 글씨라곤 한 글자도 없는 페이지를 왜 그리도 나는 오래도록 바라만 보아야 했던가.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우리네 인생은 기적임을. 그 어떤 인생도 감동스럽지 않은 인생은 없음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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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 늦복이라는 말에 너무 공감이 가던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