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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엽 시인의 장편 서사시 [금강]을 꼭 한번 읽겠다고 벼르기만 하다 마침내 읽었다. 245쪽의 책 한권이 한편의 시이니 말 그대로 장편이다. 또한 동학농민전쟁을 주제로 하여 백제에서부터 조선시대, 그리고 시인이 이 시를 발표한 1967년까지 시간을 초월한 우리 민중들의 역사를 다루었으니 당연히 서사시이다. 시인 스스로도 서사시라 했다. 시인이 노래하는 동학농민전쟁에 관한 역사는 그것을 몸소 겪은 사람들이 조심조심 이야기하여 전해진 금기의 역사이기도 했다. 그래서 출간되자마자 판금으로 묶였고, 시인의 15주기가 지나서야 책으로 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동학농민전쟁에 관한 전체적이고 역사적인 내용을 떠나 시인이 보았던 것은 억압받는 민중의 봉기였고, 외세에 의해 꺾이는 수난의 역사였다. 우리가 결코 잊을 수 없는, 잊어서는 안되는 역사이기도 하다.
시는 총3부 2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1,2로 구분된 보통분량의 시이고, 2부는 제1장부터 26장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3부는 後話<1>,<2>로 구분된 역시 보통분량의 시이다. 대서사시의 시작과 끝부분만을 필사했다. 그 가슴 두근거리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우리들의 어렸을 적/황토 벗은 고갯마을/할머니 등에 업혀/누님과 난, 곧잘/파랑새 노랠 배웠다//울타리마다 담쟁이넌출 익어가고/밭머리에 수수모감 보일 때면/어디서라 없이 새 보는 소리가 들린다.//우이여 ! 훠어이 !//(중략)//내가 지금부터 이야기하려는/그 가슴 두근거리는 큰 역사를/몸으로 겪은 사람들이 그땐/그 오포 부는 하늘 아래 더러 살고 있었단다.//앞마을 뒷동산 해만 뜨면/철없는 강아지처럼 뛰어다니는 기억 속에/그래서 그분들은 이따금/이야기의 씨를 심어주고 싶었던 것이리.//(중략)/배꼽 내놓고/아랫배 긁는/그 코흘리개 꼬마들에게’ <1>
‘우리들은 하늘을 봤다/1960년 4월/역사를 짓눌던, 검은 구름장을 찢고/영원의 얼굴을 보았다.//잠깐 빛났던,/당신의 얼굴은/우리들의 깊은/가슴이었다.//하늘 물 한아름 떠다,/1919년 우리는/우리 얼굴 닦아놓았다.//1894년쯤엔/돌에도 나무등걸에도/당신의 얼굴은 전체가 하늘이었다.//하늘,/잠깐 빛났던 당신은 금세 가리워졌지만/꽃들은 해마다/강산을 채웠다.//(중략)//잠깐 빛났던/당신의 얼굴은/영원의 하늘,/끝나지 않는/우리들의 깊은/가슴이었다’ <2>
‘반도는,/가는 곳마다/가뭄과 굶주림,/땅이 갈라지고 서당이 금갔다./하늘과 땅을 후비는 흙먼지.//1862년/전봉준이 여덟살 되던 해/경상도 진주에서/큰 농민반란이 일어났다.//세금./이불채 부엌세간 초가집/다 팔아도 감당할 수 없는/稅米, 軍布,/마을 사람들은 지리산 속 들어가/화전민 됐지.//관리들은 버릇처럼 또/도망간 사람들 몫까지/里徵, 族徵했다.’ <제1장 1연>
‘꽃노을/아름답게 물든 저녁 나절/웬 낯선 청년 하나가 산에서 내려와/뚜벅뚜벅/형장의 중앙 향해/걸어 들어갔다,//형리들의 손/뿌리치며,/그리고선/눈 위에 네 활개/펴고 드러누웠다,/이목구비가 수려한/사나이, 얼굴에/돋는 무지개//어서/나, 찢으라고 말할 뿐/딴 말이 없었다,//한쪽/손바닥에/덜 아문/흉터가 있었다,//네 쪽으로/찢길 때도/떡이 찢기듯,/살덩이만 몸부림쳤을 뿐,/신음소리 하나/없었다.’ <제26장 마지막 연>
‘1894년 3월/우리는/우리의 가슴 처음/만져보고, 그 힘에/놀라,/몸뚱이, 알맹이채 발라,/내던졌느니라./많은 피 흘렸느니라.//1919년 3월/우리는/우리 가슴 성장하고 있음 증명하기 위하여/팔을 걷고, 얼굴/닦아보았느니라./덜 많은 피 흘렸느니라.//1960년 4월/우리는/우리 넘치는 가슴덩이 흔들어/우리의 역사밭/쟁취했느니라./적은 피 보았느니라./왜였을까, 그리고 놓쳤느니라.//(중략)//논길,/서해안으로 뻗은 저녁노을의/들길, 소담스럽게 결실한/붉은 수수밭 사잇길에서/우리의 입김은 혹/해후할지도/몰라.’ <後話 <2>>
장편 서사시를 한절, 한절 읽어갈 때마다 시인의 또 다른 시가 생각난다. <금강>이라는 제목을 두고 부제로 삼아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 시이다.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내가 본 건, 먹구름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중략)
서럽게 아 엄숙한 세상을 서럽게 눈물 흘려 살아가리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자락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