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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巴里의 어머니날>은 1933年 5月 ≪新家庭≫에 發表한 羅蕙錫의 글이다. 或 싼 보에서 或 넣었던 주머니에서 或 포켓 속에서 葡萄酒, 샌드위치, 비스켙, 캬라멜, 쵸코렛을 펼쳐 놓고 너 먹어라, 나 먹자 떼어주고 쪼개주고 갈라주고 부어주어 마음껏 힘껏 다 먹은 後 行列 앞에서 불고 오던 軍樂 소리 맞춰 서로 끼고 춤을 춘다. 노래를 부르고 콧노래를 내고 뺨을 짝짝 때리고 등어리를 툭툭 두드리고 팔뚝을 서로 꼬집어 흥껏 놀고 나니 黃昏도 다 되었다. 團長 夫人의 指揮를 따라 行列은 다시 整理되자마자 散會를 告한다. 三三五五 짝을 지어 汽車로, 地下車로, 택시로, 다 各各 스위트홈으로 向한다. 그들은 제各其 다 자기의 기쁜 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어린 子女들에게 줄 膳物을 사러 商店을 갸웃갸웃한다. 우리 집主人 夫人도 주렁주렁 무엇을 사 들고 들어오더니 집 본 아들에게 키스하고, “내 사랑하는 아가, 수고했지?” 하며 한 봉지를 내어준다. 거기에는 빨간 옷 입은 大將人形이 들어 있었다. 男便에겐 고운 넥타이, 두 딸에겐 明紬 손手巾, 내게는 쥬비(小人形)을 주었다. 그리고 키스를 하고 마치 17, 8歲 된 어린이같이(40餘 歲 된 婦人이나) 좋아하고 깔깔대고 참새같이 지저귄다. 이같이 하여 파리의 어머니날은 즐거움 속에서 지나간다. 只今도 記憶되는 그날! 羅蕙錫(1896年~1948年)은 日帝强占期와 大韓民國의 畵家이자 作家, 詩人, 彫刻家, 女性運動家, 社會運動家, 言論人, 女性 知識人으로 評價를 받았다. 本貫은 羅州, 號는 晶月이다. 朝鮮 仁川府 水原郡 水原面 新豊里(現 京畿道 水原市 八達區 行宮洞) 出生으로 水原 三一小學堂과 서울 進明女學校를 卒業한 後, 日本의 女子美術專門學校에 留學하여 西洋畵를 專功했다. 歸國 後에는 貞信女學校 美術敎師를 지내기도 했고, 金一葉과 함께 雜誌 <新女子>를 創刊, 發行하기도 했다. 大韓民國의 1代 페미니스트라고도 불린다. 그女는 日本 留學 當時 읽은 女性雜誌를 通해 女性 啓蒙에 關心을 가지게 되었으며 以後 男女 平等과 女性의 權利, 當時 社會의 問題點들을 批判하는 글들을 投稿하는 等 多樣한 社會運動을 展開하였다. 그러나 한便으로는 이러한 行步가 極端的으로 女性優越主義的이고 過激하다는 批判도 있으며, 特히 親子息에 對한 그女의 態度나 崔麟과의 不倫 行爲를 비롯한 그女의 私生活은 當代에 많은 批判거리가 되었다. 또한 獨立 運動家라는 評價와 親日이라는 論難이 共存하고 있으나 大體로는 둘 다 否定되는 便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