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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엽, 아일랜드 대기근을 다룬 대중 역사서이다. 감자마름병때문에 감자를 주식으로 삼던 아일랜드의 가난한 농민들이 100만명 이상 사망하고, 100만명 이상이 고국을 떠나 이민가게 된 그 끔찍한 사건. 160여년이 지난 현재도 아일랜드 인구는 기근 전 인구의 절반밖에 안 된다.
이 책을 읽으면 영국 식민지배하에서 인종적, 계급적, 종교적 차별이 겹쳐 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구하지 않았던 인재로서의 기근의 성격을 알 수 있다. 세계사나 다른 아일랜드 관련 서적에 대강 요약되어 몇 줄 서술된 것으로는 제대로 알 수 없었던 아일랜드 민중들의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책은 쉬운 문체로 되어 있으며 사건의 전말 뿐만 아니라 원인, 문제점, 이후 영향까지 조망해 준다. 당시 문헌 기록뿐만 아니라 민중들의 구술 증언까지 인용해서 사건을 다각도로 밝혀준다. 심지어 이민간 후손들의 증언까지. 책 뒷부분에 관련 역사서 참고 문헌도 잘 정리되어 있어 더욱 좋다. 단, 영어 원서다.
읽는 내내, '좋은 대중 역사서란 이런 것이다.'하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책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샘이 날 정도였다.
이번 세월호 참사에, 나는 아일랜드 대기근을 생각했다. 그래서 대기근에 대한 책을 읽고 글을 썼다.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16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재앙의 근본 원인은 같다는 점과 각성과 실천 없이는 절대 역사는 진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른 분들도 이 책을 한 번 읽어볼 것을 권한다. 아일랜드 대기근을 다룬 책들이 국내 몇 권 없다. 일단 검색해서 나오는 책들 몇 권을 읽어보았는데 이 책이 가장 마음에 든다. 서양사 배경 지식 없는 독자가 읽어도, 청소년 독자가 읽어도 어려울 것 없는 책이다. 강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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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감자”. 제목만으로도 아일랜드 대기근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일랜드 대기근에 관해서는 개인적으로 몇 가지 고리로 기억하고 있다. 그중 첫번째가 마르크스다. 마르크스는 런던의 도서관에서 《자본》을 저술하면서 호구지책으로 통신원 노릇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바로 미국으로 건너간 아일랜드 이민자들에게 아일랜드 사태를 전하는 역할이었다. 또 하나는 대학원 입학하자마자 접한 논문들 중 적지 않은 논문들에 Phytophthora infestans라는 곰팡이 학명이 들어가 있었다는 기억이다. 처음에는 이게 뭐길래 많은 연구자들이 연구를 하지?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 이 곰팡이가 바로 아일랜드의 감자 농사를 완전히 망쳐버린 바로 그 곰팡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150년이 지난 상황에서도 많은 연구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1992년에 개봉한 젊은 시절의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이 주연을 맡았던 <Far And Away>라는 영화도 아일랜드 대기근 사태와 연결된 영화로 기억하고 있다.
거기에 하나를 추가하자면, 이 책의 저자인 수전 캠벨 바톨레트가 쓴 《위험한 요리사 메리》의 주인공 ‘장티푸스 메리’가 바로 아일랜드 이민자라는 것이다. 책을 쓴 순서로 따지자면 이 책이 더 먼저고 메리에 대한 책이 나중이긴 하지만, 수많은 아일랜드 이민자를 낳은 대기근 사태와 묘하게 관련이 되는 상황이다.
1845년부터 몇 년에 걸친 감자 역병(앞에서 밝혔듯이 Phytophthora infestans라는 곰팡이에 감염되어 생긴 질병이다)으로 아일랜드는 전국에 걸쳐 감자 농사를 망친다. 감자 농사 하나였지만, 감자는 아일랜드 주민들의 주식이었다. 주식이라고 해서는 다 설명이 되질 않는다. 아침에도 감자, 점심에도 감자, 저녁에도 감자라는 식이었으니 그들의 모든 식량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농사가 완전히 망쳤으니 그들에게 닥친 것은 대기근. 굶는 일이었다.
16세기에 잉글랜드의 식민지로 전락했던 아일랜드는 최근까지도 유럽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로 꼽혔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런던에서 폭탄 테러가 심심찮게 벌어지는 북아일랜드 독립 운동이 폭력적 형태를 띠기도 했다(아일랜드는 독립했지만, 신교도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살게 된 북아일랜드를 영국은 내줄 수 없었다). 19세기에는 더욱 비참한 상황으로 몰려 있었다. 지주와 마름, 소작인, 거기에 농업 노동자로 이어지는 착취 구조는 공고했고, 이렇다 할 산업 시설도 없이 감자 농사에만 전국민이 의존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 몇 년에 걸친 감자역병과 대기근 사태로 100만 명이 죽고, 200만 명 이상이 이민을 떠났다고 추정되고 있다. 이렇게 커다란 숫자로 딱 떨어지게 말할 때는 이게 별로 믿지 못할 추정이라는 걸 의미한다. 그 후로도 아일랜드의 인구는 당시의 인구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니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수전 캠벨 바톨레티는 이 아이랜드 대기근에 대한 이야기를 쓰며 어떤 분석을 하지 않는다. 다른 사회학이나 역사책이라면 그러한 사태를 가져온 전사(前史)에 대해 쓰고(예를 들어 어떻게 감자가 어떻게 아일랜드로 들여왔으며, 어떻게 주식이 되었는지), 그 감자 역병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그게 어떻게 밝혀졌는지, 그 대기근의 영향은 어떤 것이었는지를 ‘분석’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전혀 그렇게 이 책을 쓰지 않았다. 바로 1845년 감자가 검게 변하면서 물러지는 것을 확인하는 농부들에서 시작하여 시종일관 그들의 상황을 보여줄 뿐이다. 그들이 얼마나 비참했으며, 얼마나 처절했는지, 또 누구는 얼마나 치사하고 악랄했는지, 또 누구는 얼마나 선했는지 등등을 보여줄 뿐이다. 들려주고 있을 뿐이다.
끝에 가서야 이 이야기를 길게 하는 이유를 밝힌다. 당연한 것이긴 한데, 기근이라는 게 단순히 먹을 것이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 식량 이용권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나뉜 데서 생기는 문제라는 점. 오늘날도 이러한 기근의 문제가 여전하며 이는 빈곤과 보건 의료 문제에 눈을 똑바로 뜨고 그런 인류의 고통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딱 한 문단이다. 이 한 문단의 글보다 200쪽이 넘는 분량의 글과 그림은 이 한 문단의 글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가, 또 중요한 일인가를 알려준다. 분석이 아닌 알려주기, 보여주기가 훨씬 의미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보여준다. |
사망자가 100만 명이 넘고 나라를 빠져나간 이주민이 200만 명을 웃돈다고 추정되는 대기근은 인구 800만 명 사는 섬 나라에서 일어났다. 1845년부터 1849년 까지 이어진 기근은 소빙기라는 기후 조건과, 감자 역병이라는 자연 조건, 식민지라는 정치 조건, 그놈의 자유 방임주의라는 이념 조건, 인구 대부분이 소작농이거나 간신히 먹고사는 빈농이었고 항상 그렇듯이었고 토지 소유주는 소수의 대지주였다는 경제 조건, 신교과 구교로 갈라진 종교 조건이라는 완벽한 객관적인 조건에서 벌어졌다. 기근이 아니어도 큰 사건이 안 일어 나는 게 오히려 이상했을 것이다. 사람의 의지가 들어올 자리는 없어 보였고 우연이 아니라 대재앙은 필연이었다.
왜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냐고, 왜 전쟁을 벌이지 않았냐고 남의 이야기하듯 생각해보지만 어제보다 조금 오늘 보다 조금 더 서서히 악화되는 상태에서 부질없어 보이는 질문이다. 상황이 너무 나빠졌을 때는 혁명과 전쟁을 일으킬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작은 전쟁은 있었고 혁명의 씨앗은 뿌려졌다.) 살아 남는 그 자체가 전쟁이었다. * 1670년 조선의 경신대기근과 계속 겹쳐보인다. 인구 500만명의 조선은 최대 100만명이 기근과 전염병으로 죽었다. * 책에 나오는 삽화를 보며 '내 몸 건강해야지, 내가 계속 돈을 벌어야 식구들이 고생 안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면 이기적인 것일까? * 여왕 폐하 만세다. 젠장.....영국의 여왕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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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과 더불어, 어쩌면 영국보다도 더욱 몽환적인 분위기를 뽐내는 아일랜드는 2008년 처음으로 마이너스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다. 적극적인 외국인 투자유치 정책을 통해 평균 9.9%의 놀라운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던 2000년 무렵까지와 비교했을 때 이는 비극과도 같았다. 지금은 그리스와 이탈리아 등이 연달아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유럽연합 전체를 앓게 만들고 있는데, 당시에는 아일랜드의 부침을 조금은 의아하게 생각하는 이들도 많았다. 몇몇 이들은 이로부터 지난 세기의 극심했던 혼란을 떠올리기도 했다. 지금은 대다수가 영어를 사용하지만 사실 과거 아일랜드 인들은 아일랜드 어를 사용했다. 그들의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에 대해 높은 자긍심은 오랜 시간동안 잉글랜드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유지됐다. 경제가 모든 것을 잠식해 들어가는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가 본격화 되기 전에도 인간에게 있어 먹는 것만큼 중요한 문제는 없었다. 아일랜드의 붕괴(?)는 바로 식량난으로부터 출발한다. 얼마나 끔찍했던지 이를 피해 아일랜드를 떠나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영국 등으로 떠난 인원이 500만이 넘는다고 한다. 이는 현 아일랜드 인구(약 400만명)를 웃도는 수치다. 처음부터 끝까지 가난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예나 지금이나 나라가 힘이 없으면 고생하는 건 민중이다. 아일랜드 역시 영국의 지배를 받으며 스스로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그나마 주식인 감자가 풍성해 일 년의 대부분을 굶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그들에겐 몇 안 되는 희망 중 하나였다. 우리에게 보릿고개가 있듯 그들 역시 감자 수확을 기대할 수 없는 시기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한정된 시간이었고, 기다림은 짧았다. 1845년 처음으로 감자 농사를 망쳤을 때 사람들은 망연자실 했을 것이다. 지금이야 당시 감자를 덮친 전염병의 실체를 명확히 알 수 있으나 당대엔 이를 깨달을 지식 따위가 전무했다. 감자를 살려보려는 움직임은 소용없었고, 미래를 위해 남겨두었던 씨감자마저도 모조리 전염병에게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점잖은 아일랜드 사람들은 생존 앞에서 처절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의를 잃지 않았고, 먹을 것이 생길 시엔 서로 나눠 먹으며 가난을 견디어 나갔다. 하지만 인내를 인정해주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데 익숙하지 않았던 잉글랜드 인들은 아일랜드의 기근을 ‘자업자득’으로 해석했다. 그것은 나태와 게으름의 산물이었다며 모든 죄를 아일랜드 인들에게 덮어 씌웠다. 오늘날 복지의 시작처럼 여겨지고는 하는 구빈원도 소용없었다. 최소한 굶지는 않을 거라는 기대감에 구빈원 문을 두드린 이들은 내부의 참담함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구빈원 또한 식량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고, 어찌 보면 그것은 시체가 되고자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처럼 보이기도 했다. 엄연한 과거의 일이지만 아일랜드의 대기근은 오늘날 가난을 경험하고 있는 많은 나라들의 사례와 크게 달라 보이질 않았다.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에서 먹을 게 없어 굶어죽는 사람들이 넘친다. 지난날 아일랜드가 그러했듯 이들 국가들 역시 절대적으로 먹을 게 없어서 그런 게 아니다. 분명 들판에는 곡식들이 자라고 있지만 이는 수출품이다. 모든 게 돈으로 환산되는 사회에서 자국민의 목숨은 곡물 수출을 통해 벌어들이는 비용보다도 저렴하게 여겨지고 있다. 살기 위해 아등바등 거리다 미지의 대륙으로 나아간 이들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당시보다 해외로 나아가는 것을 덜 꺼리는 분위기다. 하지만 돈을 벌기 위한 선택으로 인해 감수해야만 하는 것들은 여전히 많다. 그 중 하나가 가족과의 기약 없는 이별이다. 아일랜드를 떠난 이들 대다수가 다시 아일랜드 땅을 밟지 못했다. 우리나라에서 노동하고 있는 제3 국 출신 노동자들 대다수가 5년 10년 혹은 그 이상 자국 방문을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아일랜드는 정체성을 잃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겠지만 오늘날 아일랜드 어를 구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또한 오늘날 반복되고 있다. 자국의 정치적 탄압, 경제난 등을 피해 이주한 사람들을 우리는 제 문화에 동화시키고자 안간힘을 쓸 뿐이다. 그들이 지닌 고유의 정체성을 인정해주는 문화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적어도 먹는 문제를 걱정하는 이들은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빈부의 격차로 인한 극명한 대립은 존재한다. 아니, 오히려 그 정도가 심해지고 있는 게 문제다. 아일랜드 인들을 절망으로 몰아넣었던 검은 감자를 떠올려 본다. 아일랜드보다 좀 더 앞선 시기에 네덜란드에서 있었던 튤립 광풍도 생각난다. 인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어리석다. 과연 다음에는 무엇을 향한 욕심으로 눈이 멀어 비극을 낳을지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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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감자가 생겨나면서 아일랜드 국민들의 인구가 감소했다. 민족, 민주, 민중의 3민 사관으로 해석하면 영국인들이 구교를 믿는 아일랜드 사람들을 신교로 개종시키기 위해 식량기근을 방조했다는 얘기로 오해할수 있다. 사실 아일랜드 땅에서 날씨가 좋질 않아서 감자가 검붉게 되면서 그걸 먹은 사람이 구토를 하거나 피 묻은 대변이 나오고, 못먹은 사람은 굶어죽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