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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신사 옛길을 따라서 2- 오사카부터 나고야까지 육로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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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신사 옛길을 따라서 2- 오사카부터 나고야까지 육로 기행 걷는 변호사 ・ 2026. 10. 30. 8:38URL 복사  통계 본문 기타 기능조선통신사가 가는 길은 한양부터 에도까지 만리길이라고 한다. 만리면 4천킬로미터이고, 오고 가는 시간은 1년 남짓 걸리는 길이다. 말타고 배를 타고 가는 여정은 생사를 거는 일이었다. 조선에서 출발한 500명의 사행단은 아무리 극진히 대접을 받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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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신사 옛길을 따라서 2- 오사카부터 나고야까지 육로 기행

프로파일 걷는 변호사 ・ 2026. 10. 30. 8:38

조선통신사가 가는 길은 한양부터 에도까지 만리길이라고 한다. 만리면 4천킬로미터이고, 오고 가는 시간은 1년 남짓 걸리는 길이다. 말타고 배를 타고 가는 여정은 생사를 거는 일이었다. 조선에서 출발한 500명의 사행단은 아무리 극진히 대접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일본에 오갈 때에는 부모님에게 인사를 드리고 갈 수밖에 없었다. 행여나 바다에서 객이 될 수 있으니 미리 인사를 하였던 것이다. 실제 부산에서 시모노세키까지 가는 길에 배가 난파되어 많은 사람이 죽은 적도 있다. 지금은 안전한 페리로 부산에서 시모노세키까지 갈 수 있지만, 그 당시는 바람에 의존하고 때로는 노를 저어서 일본에 가는 때여서 위험할 수밖에 없다. 


오사카부터 나고야까지는 조선통신사들이 육로를 통해서 이동했다. 오사카, 교토, 오미하치만, 히코네, 오가키, 나고야에 이르는 길은 일본의 고대 역사가 남아 있는 곳이다. 오사카는 일본의 최대 상업도시였고, 수로가 발달된 곳이다. 오사카에는 조선통신사 400년 기념비가 있고, 조선통신사를 기리는 행사도 있다. 병에 걸려 죽은 김한중의 쓸쓸한 이야기와 산삼으로 인한 분쟁으로 쓰시마인에게 살해당한 최천종의 이야기가 있다. 우리나라에 고구마를 처음 도입한 조엄은 조선통신사였다. 그는 오사카 부근인 요도에서 물레방아를 처음 보았고, 물을 끌어 올리는 물레방아가 우리 농사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여 물레방아 기술을 배워 왔다. 농업발전을 위해 조선통신사가 고구마의 도입과 물레방아 기술을 얻은 것이다. 


교토는 일본의 천황이 있는 곳이다. 그러나 실세가 없었기 때문에 조선통신사들은 천황의 존재에 대하여 부정적이었다. 교토에는 조선통신사와 관련한 자료가 재일교포 정조문씨가 만든 고려미술관에 있다. 조선통신사 중에는 재주를 부리는 광대도 있었는데 그들이 마상재라는 재주를 부렸다. 이 마상재 공연 그림이 고려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조선통신사는 교토에서는 쇼코쿠지에서 머물렀는데 그곳은 임제종의 본산이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법당이 있는 유명한 사찰이다. 조선통신사는 묵는 곳이 주로 사찰이었고, 조선통신사가 올때면 절에서 사람들은 비워내고 여관으로 사용하였다. 쇼코쿠지 법당 뒤에 있는 지쇼인이 있는데 그곳에 조선통신사들이 쓴 유묵이 많이 남아 있다. 그곳에는 조선통신사들이 한글로 남긴 글도 남아 있어 흥미로운 곳이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비와호는 바다같은 곳이다. 비와호 주변의 오미하치만은 비와호와 연결된 평야가 많아서 부자 동네이다. 이곳부터 조선인가도가 시작된다. 일본에서 조선인가도는 이곳뿐이다. 오미하치만에서 히코네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 조선통신사가 지나간 길을 기리는 표지판도 있다. 길이가 40킬로미터라고 하니 이틀 정도면 조선인가도를 걸을 수 있겠다. 야스의 유키하타에서 비와 호반을 따라 히코네의 도리이모토에 이르는 길이고, 히코네 모리야마의 도몬인에서 하룻밤 보냈던 것이다. 이 길은 원래 천황이 있는 교토를 오가는 길이고 교카이도, 하마카이도라고 불렸다. 주변에 세키가하라 전투가 있는 곳이니 매우 역사적인 장소다. 


히코네성은 일본에서도 유명한 천수각이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 나왔다. 바로 아메노모리 호슈이다. 그는 조선과 일본의 외교관계가 성신교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메노모리 호슈는 조선통신사를 담당했던 고위 관리였다. 그는 조선과 일본의 외교를 위해 평생을 바친 분이다. 비와호 북쪽에 호슈를 기리는 박물관이 있다. 그 박물관에는 호슈가 보관한 많은 조선통신사에 대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그는 원래 도쿄에서 의학을 공부했으나 쓰시마에 들어간 이후에 조선과의 외교업무를 담당했다. 조선통신사 신유한도 호슈를 가장 뛰어난 인물로 기억했다. 호슈는 임진왜란을 잘못된 전쟁이라고 비난하고, 조선과는 항상 성실히 외교관계를 유지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조선통신사를 보내던 시절은 한일외교가 매우 정상적이고 평화로운 때였다. 


조센야마라는 말이 있다. 조선통신사 행렬이 일본의 지역 축제에 반영된 것을 말한다. 오가키 지역에서 마쓰리가 열릴 때에 조선통신사의 모습을 한 인형들이 등장한다. 일본의 각 지역이 조선통신사가 지난 역사를 기억해내서 축제에 동원하는 것이다. 오가키 축제와 우시마도의 가라코오도리는 일본 사람들이 조선통신사를 자신의 문화로 정착시킨 대표적인 민속행사이다. 나고야에서는 소카구지에서 나온 조선통신사 병풍사입도가 유명하다. 조선통신사의 흔적이 아직도 일본에 많이 남아 있고, 이를 연구하고 기리는 사업을 계속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조선통신사 박물관 조차도 없고, 조선통신사의 역사적 역할에 대한 의미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오랫동안 교류를 통해 문화적 경제적으로 서로 도우며 살았다. 그것이 정상적인 시기이다. 우리가 일제에 의하여 지배당한 것은 우리에게 매우 부끄러운 역사이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일본의 잘못만이라고 할 것인가. 우리는 정상으로 돌아와 일본과 성신교류를 해야 한다. 호슈의 정신이야말로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닌가. 조선통신사의 길은 한국와 일본의 정상적인 외교를 보여주는 것이다. 곤지왕 순례길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한국과 일본의 정상적인 역사를 기억하고 복원해야 한다. 친일이나 반일이니 그것은 예외적인 역사만을 아는 사람들의 비정상적인 정신상태라고밖에 할 수 없다. 


2026. 10. 30.


걷는 변호사 조용주

YES마니아 : 플래티넘 y*******3 2026.11.0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