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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를 보면 얼룩말은 가축화에 실패한 동물이라고 나온다. 사람들이 타는 말을 보라. 얼룩말은 없다. 이유는 녀석의 성질 때문이다. 얼룩말은 성장하면서 난폭해진다. 한 번 물면 놓지 않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동물원 사육사 가운데 가장 많이 다치는 사람이 바로 얼룩말 사육사라고 하니 녀석의 성질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녀석들은 어떻게 이런 줄무늬를 가지게 됐을까. 자연선택에 따른 것이라는 대답이 간단하긴 하지만 정답이다. 요컨대 줄무늬가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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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볼의 형태학 3부작 중 첫 번째 책인 『모양』은 굳이 분류를 하자면 과학 교양서이지만, 꼭 그렇게 봐야만 하는 이유도 없고, 과학의 분야
중에서도 어느 한 쪽으로(예를 들어,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으로) 치우쳐서 분류를 할 필요가 없는 책이다.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으면서, 서로의 분야에 침투해 들어가는 순간이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다. 그래서 어쩌면 조금은 어려울 수도 있지만, 조금의
인내심만 갖는다면 상당히 많은 영감을 받을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필립 볼은 패턴이라고
하는, 무엇인지는 알지만 딱히 정의 내리기 쉽지 않은 현상 중에서도 '모양'에 관해서 다양한 논의를 진행하면서 그 논의를 20세기 초반 출판된 톰프슨의 『성장과 형태』와 헤켈의 발생학에 관련한 삽화에서 시작하고 있다. 비록 톰프슨은
자연의 형태와 패턴을 분석함으로써 생명과 비생명의 경계를 허물고 있어 그 동안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전혀 과학적인 모양새를 취하고 있지 않지만, 필립 볼은 그의 생각에 충분히 취할 만한 면이 있으며, 실제로
그의 생각은 그 동안 많은 연구에서 활용되어 왔음을 지적하고 있다. 필립 볼이 예를 들고 있는
물리학이나 화학에서의 패턴 관찰이 모두 톰프슨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필립 볼은 그런
자연의 패턴과 생명체에서 나타나는 패턴의 유사성을 비교하면서 단순한 진화학적 설명을 배격하고 있다. 예를
들어 동물에서 나타나는 줄무늬가 그 동물에게 가해진 선택압력 때문에 진화되었다는 설명은 너무 단순하고, 동어반복적이라는
얘기다.그래서 필립 볼은 다윈주의를 절대적인 진리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보인다. "그것들이 처음에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가라는
주제에 대해 다윈주의는 불특정 범위의 팔레트를 무작위 검색하는 것 이상의 설명은 하지 못한다."
(209쪽) "이러한 패턴은 조금도 진화론적 목적을 이룰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239쪽) "그것들은 선택압 아래에 놓이지 않았고, 따라서 거기에는 어떤 다위주의적 근거도 없는 것이 분명하다. ... 자연은 '놀도록 내버려 두었다.'" (240쪽) 하지만, 필립 볼이 얘기하는 것은 다윈주의가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과도함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일 뿐, 또한 진화라는 현상에 대해서 좀더 명확히 이래하려는 것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위의 다윈주의의 한계에 대한 지적 뒤의 결론 부분은 분명한 진화론적 설명만이 생물의 현재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생물학은 이렇게 '기성품'을 이용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그것은 또한 눈부실
정도로 화려하고 거의 한없는 변이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두가 진화적 맥락 안에서
나타나고, 이것은 자연이 '작동'하는 패턴을 선별할 권한을 가졌음을 의미한다. 살아 있는
자연은 본질적으로 창조적이며 또한 그 창조물의 가치를 평가할 능력이 있다." (265쪽) 그러니까 동물의
줄무늬나 고둥의 나선 모양의 생장이나 모두 진화학에서 말하는 자연선택이 아니라, 자연에 내재되어
있는 어떤 규칙성이 발현되고 있음을 여러 증거를 통해서 발견하고 있다. 바로 그런 자연에 내재되어
있는 규칙성이야말로 물리학, 화학, 생물학
뿐만 아니라, 광물학, 우주학 등을 관통하는
어떤 일반적인 법칙이 될 수 있다는 견해를 갖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생물에게 있어 그것이
자리를 잡는가, 아니면 사라져 없어지는가는 분명히 진화적 맥락에서 평가된다는 의미다. 필립 볼은 현대
과학에서 이런 논의가 대다수의 과학자에 의해서는 그리 환영받지 못한 까닭을 분석한다. 과학에는
두 가지 접근 방식이 있으며, 한 가지는 세부 사항을 완전히 이해하는 방식의 과학이지만, 또 한 가지는 '사물 간의 관계에서 큰 그림을
찾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접근 방식 중 큰
그림을 찾는 사람들은 세부 사항에 집중하는 사람들을 환원주의적이라며 비꼬기도 하지만, 정작은
환원주의자들에 의해서 과학이 발달해왔으며, 큰 그림의 옳고 그름도 판별되어 왔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큰 그림을 찾는 사람들을 동일한 부류의 과학자라 잘 부르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필립 볼은
이러한 생각에서 잘못을 찾지는 않지만, 헤켈이나 톰프슨 같이 큰 그림을 찾는 사람들의 작업을
옹호한다. "원대한 비전은 더 많은 연구를 자극하는
질문을 만들고 과학이 작은 사실들의 뒤범벅으로 조각나는 것을 막는 일종의 뼈대(비록 일시적이거나 불안정하더라도)를 제공한다." (345쪽) 물론 전제는 존재한다. "그러나 옳은 길을 간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세부 사항에 주의를 기울일 때뿐이다." (346쪽)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살아 있는' 자연이 만들어내는
많은 패턴이 우연에 의해서 만들어지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물리적으로나, 화학적으로, 그리고 생물학적으로 그렇게 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필연적인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반드시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비슷하다고 무생물에 어떤 의식을 가정하는 것이 아니라, 무생물에서
나타난 어떤 패턴이 생물에서 나타나는 이유를 신비로운 의식이나 의지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원인을 찾는 것, 이게 필립 볼이 제시하고 있는 다양한, 아름답고도
신기한 모양의 패턴을 제대로 이해하는 방식이다. "이 패턴들은 어떤 보이지 않는 불가항력으로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니라, 어찌 보면 적절한 기회를 따라 만들어진 것 같다." (376쪽)
(2014. 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