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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한 번은 살고 싶은 한옥에 대한 로망 때문에 한옥에 관련된 책들은 눈에 띄는대로 훓어보고 내용, 편집, 가격..등이 왠만하면 사두는 편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쓰일 법한 한옥 짓기 교본이거나 전국의 멋진 한옥들을 둘러보는 여행기&사진집의 형태인 경우가 많아서 정독&완독한 기억은 별로 없는데, 비로소 한옥 짓기, 한옥에 살기에 대한 막연함을 해소시켜 주는 책을 만난 것 같다.
저자가 글쓰기를 업으로 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게 의아할 정도로 문장이 참 아름답다. 책을 관통하고 있는 정서는 매우 서정적이다. 한옥을, 그 속에 들어가는 돌, 나무, 종이..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 노동에 대한 태도. 그리고 노동을 하는 사람에 대한 마음 쓰임..이 참 따뜻하고 애틋하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느낄 수 있는 땀 흘려 일하는 분들에게서 배어 나오는 담백함. 힘. 겸양. 겸손함..은 그 자체로 감동이다.
건축주이신 미국인 교수님과 저자분이 끊임없는 토론, 협의를 통해 결론을 도출해가는 과정은 매우 인상적이고 감탄스러웠다. 민주적 의사 결정 사례의 본보기로 삼아도 좋을 법한 합리적, 민주적 의사 도출 과정의 정석을 보는 것 같았다고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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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범의 <작은 한옥 한 채를 짓다>가 내게는 가장 처음으로 읽는 건축서적이다. 책을 읽어온 지난 시간동안, 인문 사회에 대해 생각하거나 읽을 필요성을 느꼈었지, 건축이라니.. 건축이 속한 대분류인 예술에서도 사진이나 회화, 연극, 영화에 대한 호기심은 늘 가져보았지만 건축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다. 사실 건축이 예술의 한 분야 라는 것을 안 것도, 그리 오래된 것 같지는 않다. 나는 빌라와 같은 작은 아파트에서 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15층 짜리 아파트의 맨 꼭대기 층인 15층에 살고 있다. 나의 기억에 의하면 내가 주택에 살았던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제 막 4년 내내 통학을 했던 대학을 졸업했으니 당연히 내가 살 집에 대해 고민할 시간 같은 것도 없었다. 심지어 나는 막연하게 나마 어떤 집에 살고 싶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사실 나는 한옥을 참 좋아한다. 대학교 1학년때 학술 답사 숙소가 한옥이었던 적이 있다. 나는 아직도 그 넓은 마루와, 방과 방을 잇는 통로와, 처마와 창같은 것들이 기억 난다. 그때 하룻밤을 보냈던 것을 시작으로 삼청동의 한옥마을도 자주 갔고, 창경궁이나 창덕궁에 가는 것도 좋아했다. 그런데 사실 그런 것들이 왜 좋았는지에 대해서 자신에게 질문을 하면, 그것은 또 대답하기가 선뜻 어려워 진다. '편의'로 이루어진 아파트에서 살아온 내가 꼭 편하지만은 않은 한옥에 매력을 느꼇던 것은 왜일까.
'조화'에 대해 생각하기
"과연 어떻게 해야 지역, 역사, 경관적 가치 등을 훼손하지 않고 집을 지을 수 있을 것인가?" (p.25)
책 전체를 읽으면서, 책이, 집을 지은 도편수와 집주인이 지향하는 가치에 가장 부합하는 단 하나의 질문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한옥을 짓는 사람의 가치 판단 기준은 보통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그것과는 현저히 다르다. 이 질문은 내 '집'의 가치, 편리함, 아름다움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주변과의 조화, 민족의 시간과의 조화를 생각하는 것이다. 집의 크기, 방향, 화장실의 개수, 층수에 신경 쓰는 아파트 입주민과는 다르게 주변의 모습과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전통의 가치는 얼마나 살리고, 현대의 편익은 어떻게 가져올 것인지에 대한 고민, 그것은 현대적인 한옥만이 갖는 고민이다. 그리고 이것은 아마 옛날 우리 선조들이 '집'이라는 공간을 지을 때 고민했을 가장 중요한 질문이었을 것이다. 사실 조화를 생각하는 것은 우리 특유의 정신문화가 아닐까 싶다. 사실 나는 그런 주변과의 조화에 대해 고민하는 것을 극히 싫어하는 개인주의자이기도 하다. 남이 내일에 관심 갖는 것도 싫고, 내가 남의 일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도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 문화의 남일도 내 일처럼한다거나, '우리가 남이가'라거나, 주변에 영향을 너무 많이 받는 전체주의적 성향이 싫었다. 하지만 결국 사람들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타인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나아가야 한다. 타인의 삶에 관심을 꺼버리고 자신만의 삶에 집중 하는 것은 합리적으로 보이고, 편해 보이지만 결국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일이라는 것도 나는 알고 있다. 사회적 인간에게 '조화'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리고 인간에게 그렇게 중요한 가치가 한 존재를 대표하는 '집'에도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새삼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가 '아, 이것은 노가다구나'라고 생각할 때 쯤 그는 나무 향기가 몸에 밴 진짜 목수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이 '노가다'이상의 무엇을 시작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예술이든, 장인이든, 건축이든, 그의 일당은 9만원 이라고 한다. " (p.85)
책 중간에는 한옥을 짓는 목수로서의 삶에 대한 부분이 있다. 아마도 가장 강렬하고, 오래도록 기억될 부분이지 싶다. 장인정신을 갖는다는 것, 건축노동자로 살아간다는 것 모두 결코 쉬운 일이 아닐것이다. 대체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그렇게 살아질 수 있을까. 누구든 가치 판단을 하고 직업을 얻는다. 그 것은 때로는 명예이고, 돈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것들은 모두 뒤로하고 오로지 자신이 믿는 어떤 '가치'하나만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쏟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목수들은 일당 9만원을 받고 위험한 연장을 들고 높은 지붕위에서 위태롭게 서있고, 고된 노동탓에 술을 마시고 하루에 다섯 끼를 먹어야 하고, 처자식을 뒤로 하고 몇개월 이면 몇개월을 전국에 있는 현장을 떠돌면서 살아가야만 한다. 그 직업을 통해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이 '보람'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없는데도 그들은 어쨋든간에 목수가 된다.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어떤 용기로 직업을 택하면 그렇게 살아 갈 수 있는 것일까. 나도 지금 위태로운 산업 안에 내가 믿는 '가치'를 구현하는 직업을 택하려고 공부를 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두렵다. 내가 굳게 믿고 있는 가치에 배신을 당하거나, 시장의 흐름속에 살아가다가 내가 믿었던 가치를 어느새 잊어버리고 살게 될까봐 무섭다.
한옥은 아름답다. 짓는 과정, 살아가는 모습 모두 아름답다. 한옥은 인간적이고 그 안에 사는 사람과 동화되어 가서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빛을 발한다. 그리고 그 한옥을 짓는 사람과, 짓는 과정은 어렵고 복잡하면서, 누군가의 인생에 걸친 장인정신이 깃들어 있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더 가치가 있는 것 같다. 공장에서 만들어 내듯 획일화된 아파트가 아니라, 그안에 사는 사람의, 짓는 사람의 심성을 닮은 것이기 때문이다. <한옥 한채를 짓다>는 그래서, 한옥 한채를 짓는 과정을 그리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 있는 모든 장인들의 삶을 이 보인다.
과연 나도 그렇게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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