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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 지나면 모든 순간이 잊힌다는 걸 어릴 적에는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야간 운행을 하던 아버지가 안방에 자는 낮 동안 나머지 네 식구가 숨죽여 생활해야 했던 좁은 방에 홀로 남겨지면 어김없이 시도하던 게 있었다. 오후의 창에서 스며드는 빛의 조도와 낡은 장롱이 드리우던 그림자의 기울기, 철 지난 이불의 구겨진 모양새, 거울을 마주보고 선 나의 어색하고 굳은 표정, 그 순간 주워 담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애쓰며 되뇌었다. (-10-) 죽음! 절대적인 죽음! 결단코! 죽음! 울분에 찬 외침이 입밖으로 새나가지 못하도록 삼키면서 출근을 준비한다. 더는 못하겠다. 싶은 순간에는 머리통을 주먹으로 서너번 세게 내리쳐 가며, 사람들에게 거지 같은 행색으로 비치지 않게 옷을 갈아입고 누구도 감염시킬 의지가 없는 사람으로 보이도록 마스크를 쓴다. 그녀의 약통에서 더듬더듬 종류별로 한 알씩 꺼내 입에 털어 넣고 현관문 밖으로 나선다. (-47-) 돈을 돌려받으려면 나도 지하로 내려가 노인을 잡아내야 할 판이었다. 지불하는 데는 아무 거리낌 없으면서 돌려받는데는 어찌나 큰 용기와 당위가 필요한지. 이내, 지하로 내려가 사기꾼과 드잡이해야 할 이유를 찾아냈다. 셋방을 빼면서 반환받은 보증금의 반은 그녀 것이었다. 언젠가 돌려줘야 하는 돈이었다. 만나지 못하더라도 그녀의 돈은 죽는 순간까지 맡아야 했다. 젖은 장작같이 무거운 다리를 겨우겨우 움직여 이미 사라진 고양이를 따라 층계로 내려갔다. (-95-) 이미 그의 출입증은 상사에게 지급되었다. 상사는 주민등록 등본과 백신 접종 증명서를 지참해 왔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미 본사에서 제출했다고 거짓말했다. 상사는 당황한 기색으로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다 물었다. 일은 단순하고 반복적이고 정적이어서 지루할 텐데 적용할수 있겠느냐고. 그가 대답했다.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에 익숙합니다.』 (-169-) 또한 모두가 퇴근하고 서고에 아무도 없어야 할 시각에 안에서 뛰쳐나왔다가 도로 되돌아온 글를 보안요원이 아무런 추궁이나 제지 없이 단지 체온만 재고 들여보냈다는 사실도 몹시 수상쩍었다. 만약 모든 직원이 한통속이고 이곳 도서관이 허술하면서도 웅숭 깊은 하나의 덫이라면, 모든 것을 계획하고 직원들에게 지시 내렸을 누군가가 뭘 노리는지 그는 짐작도 가지 않았다. 그가 보기에 이곳 도서관은 단순한 덫이 아니었다. 사냥감을 속여야 하는 덫이라는 구조물에 이리도 뚜렷한 자의식과 손길이 묻어 나올 수는 없으므로,직원 누구든 그를 딱히 사냥감으로 여기지도 않앗다. 그들은 그에게 융숭한 동시에 태평했다, (-197-) 첫번째로 만난 사람은 그를 그녀에게로 이끌었던 선생님으로,더는 이곳 도서관에서 형체로 존재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타자 소리와 마찬가지로 천장에서 말했는데 보다 더 선명하고 가까웠다. 선생님은 이제야 자신이 삶으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이곳 도서관 밖 삶으로 돌아가 먼거리에서 목소리로나마 이야기를 전할 수 밖에 없었는지, 아니면 이곳 도서관와 하나 됨으로써 자신의 진정한 삶을 찾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239-) 그는 배게에서 풀려났다. 그녀는 한결 온화해졌다. 다시 머그잔에 술을 가득 채워왔다.그는 순순히 약 한 주먹을 여러 차례에 나눠 술과 함께 찬찬히 삼켰다. 그녀는 항구 토제가 있는지 물엇고, 그가 색깔을 가르쳐 주었다. 그녀가 모은 약들을 받아들고 그는 술의 도움 없이도 능숙하게 삼켰다. 그러고는 술에 젖어 축축한 자리에 누웠다. (-289-) 소설 『냉담』은 작가 김갑용의 첫번째 장편소설이다. 그는 이 소설에서 동정심, 죄의식, 감정의 표현이 쇠약해진 한 남자를 언급하고 있으며, 길거리에서, 불명의 여자를 만나면서 생겨나는 변화를 담고 있었다. 그는 단편소설 『토성의 겨울』(2022) 을 써낸 바 있다.인간의 본성 너머에 숨겨진 생각과 의식의 흐름에 대해서, 도서관이라느 공간, 코로나 펜데믹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흘러가는지 물어보고 있었으며,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여행을 떠나고 있었다. '냉담'이라는 단어는 차가운 의미를 품고 있다.그 반대의 의미는' 돌봄 이다. 작가는 우리의 삶과 죽음 너머에 냉담과 일치하는 요소들이 곳곳에 숨어 있음을 놓치지 않는다. '함께' '공동체'를 좋아하고,인간 관계를 우선하는 사회의 분위기,우리가 추구하는 미덕과 상반되고 있다. 걸국 우리 스스로 관심에서 벗어난 무존재감 속에서 살아가며, 어떤 위기에 봉착하게 될 때는, 혼자서 ,각자 살아가는 존재였음을 놓치지 않았다.작가는 이 소설을 도서관이라는 특정한 공간에 한정하고 있다. 지루하면서도 조용한 공간 도서관에 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상황들을 관찰하고, 소설에 이미지화하면서,작가느 남자와 여자 두 사람의 만남을 상징과 은유로 더하고 있었다. 2020년부터 3년간 이어진 코로나 시국에서, 격리는 당연한 처사였다. 이 과정에서,역학 조사원이 나오고, 서로 말과 행동을 조심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인간의 삶이 한순간에 멈추면서, 보이지 않았던 작은 생명체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었다. 인간의 행동 하나하나에 대해 법으로 통제할 수 있지만, 동물들을 통제하는데는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상황 속에서, 이세상 살아가는 모든 것에 대해 관찰 하였고,그것을 소설 『냉담』 으로 형성화 했다. 지금 현재에서, 가까운 미래를 엮어내면서,우리가 처한 현실을 담담하게 그려내고자 한다. 소설 『냉담』 속에는 어떤 이름도 존재하지 않았고, 어떤 상황과 주인공의 생각과 의식흐름을 놓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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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은,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히고 모범이 될 만한 문학이나 예술작품을 말한다. 시대의 균형, 세대의 간극을 줄이는데 일조하고 그러기 위해선 작가의 사유에 철학이 들어있어야 한다. 소전서가에서 카프카 전시를 하고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소개할때, 대체 이 출판사는 백여 년이 지난 해묵은 이야길 왜 꺼냈을까? 의문이 들었다. 거기다 카프카라니! 박태원이라니! <냉담>을 읽는데 처음 소제목처럼 ‘기시감’을 느꼈다. 통상 소설에서 그런 감정을 느끼면 내용의 표절을 의심하나 그런 것과는 달랐다. 책에서 풍기는 묘한 분위기, 오래된 책을 넘기면 나던 묵은 종이의 냄새를 어떤 작품에서도 느꼈다. 아,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다! 시대도, 소재도 전혀 다른데 왜 나는 이 두 작품이 한 작가가 쓴 것같은 착각을 느꼈을까? 다른점이 있다면, 구보씨의 행보는 어딘가 답답하고 지루하기까지 했다면, <냉담>의 주인공은 대단한 지위도, 엄청난 반향도 없지만 언젠가 나도, 또는 내 주변의 누군가가 이럴것 같아 페이지가 빨리 넘어간다. 실제로 내가 겪은 과거이기도 하고. 코로나는 우리 일상을 바꿨고, 이 전무후무한 팬데믹은 예술가들에게 좋은 소재가 되었다. 최악의 상황을 가지고 작가들은 저마다 일상과 사유, 사회를 담는다. 외전 <벽의 틈새>는 마스크를 쓰고 다녔을때 갑갑함이 훅 들어온다. 이 답답함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암담함, 재해인지 인재인지 헷갈리는 상황에서 언제쯤 일상이 돌아올지 모른다는 참담함이 전해온다. 외전이라 했지만, <냉담>의 핵심이 <벽의 틈새>에 녹아있다. <구보씨의 일일>이 당시에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듯, <냉담>도 소설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줄것이다. |
![]() 김갑용 장편소설/ 소전문화재단 내일의고전 제1호! 이 소설을 정의 내리기 힘들다. 무엇이든 정의 내리고 규정해야만 의미 있는 독서가 되는 걸까?! 그렇지 않다. 정의 내리기 힘든 경우, 예를 들면 줄거리 중심으로 읽을 소설이 아닌 경우를 만날 때! 자주 만나기 힘든 경험이라 좀 특별하다. ( 사실, 책을 처음 받고 몇 번 읽기를 시도했을 때, 초반 몰입이 안 돼서 두 번, 세 번 자꾸만 몰입을 시도했고 마침내 하루 만에 다 읽었다. 책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난 다음, 다시 내가 펼치고 싶은 페이지, 손 닿는 페이지를 넘기며 읽고 또 읽은 책이다. 완독 후에도 자꾸만 소설 언저리를 기웃하게 된다. 줄거리 중심으로 서사를 인지하기보다 문장 하나하나에 몰입하고 싶은 소설이다. 1990년생 작가라고 쓰여있다. 2000년대 학창 시절을 보낸 작가. 굳이 작가의 나이를 언급할 필요 없지만, 책 후반부를 읽으며 작가가 학창 시절을 보낸 시절을 상상해 보게 된다. 소설가의 연인, 동거인으로 묘사되는 그녀. 고양이를 사랑하는 그녀가 부럽기까지 했다. 어떤 면에서 실제로 존재했던 사람인가 싶은 의문이 들 만큼, 존재감을 또렷이 드러내지 않는 그 여자. 철저히 작품과 작가를 분리하여 읽는 편이지만, 소설 마지막에 가서는 화자가 곧 소설가 자신이라는 생각에 도달했다. 《냉담》이라는 제목과 흰 눈이 생각나는 표지의 은빛회색이 주는 색감, 전주 페이퍼 제지라는 본문의 종이, 그리고 이 소설을 읽은 만성 수족냉증을 앓고 있는 독자 바로 나. 그 모든 박자가 조화롭다. 냉기가 밀려와 몸을 으스스 떨었다. 코로나 시절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작가도 작품에서 자주 말한다. 팬데믹 시절을 쓴다는 것에 대해, 너무 가까운 역사라 그것이 다 끝난 이후 쓰겠다고 결심했으나 정작 끝이 언제인지 알 수 없었다고 한다. 종종 코로나 팬데믹을 소재로 한 소설을 만날 때가 있는데 너무 빨리 그 시절을 쓰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가까운 거리에서 보이지 않는 것들, 그러나 이 시기가 많이 지난 후, 이 시절을 보낸 느낌을 기억이나 할까.... 그렇다면 팬데믹을 쓰는데 시의적절한 시기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역학조사관과 대화하는 장면 잊을 수 없다. 아래 문장에서 특히 도둑 어쩌고 하는 문장 정말 웃프다 ㅎㅎㅎㅎ 이 문장이 소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인데 이 사회가 화자를 바라보는 관점 아닐까 싶다. 혹은 화자와 같은 정체성을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들을 볼 때 역학조사관의 관점처럼 그들은 도둑 취급이 된다. (CCTV를 통해 본 당신은 대로를 걷는 사람이 아니며, 한가운데로 걷는 자들을 혐오하고, 쥐새끼처럼 되는 한 벽에 바싹 붙어 도망 다닙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순종합니다. 전문가에게 힘을 쓰지 못하지요. 전문가의 말이란 따를 수밖에 없음을 누구보다도 잘 압니다. 우리는 전문가입니다. 그 사실을 명심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당신의 당당하지 못한 면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습니다. 우리가 빛을 밝힐 부분이란 바로, 짙게 그늘져 드러나지 않은 한구석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빛을 알지 못하는 사람같이 구는군요. 성경에서 도둑들을 그렇게 일컫는다지요 P71) 토성의 겨울을 쓴 작가 소설 《냉담》.... p316 긴 호흡으로 지면을 가득 채운다. 내용 혹은 문장이 길어서 긴 호흡이라는 뜻이 아니다. 한 문단 혹은 챕터를 다 읽고 나서야 꿈인지 현실인지 혹은 그 너머인지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어떤 세계인지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의 슬픔은 태생적이라는 문장이 잊히지 않는다. 책, 소설, 소설가, 소설을 쓴다는 일에 대해 작가는 말한다. 공공기관 혹은 공공의 것에 대한 저자의 시각이 보였다. 공공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지극히 개인적으로 쓰인다. 공공은 정작 공공의 것이 아니었다. 얼마 전에 읽은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도서관에 대한 소재가 있었는데 순간 그 소설이 떠올랐다. 덧. 시대를 온전히 살아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는 시대를 완전히 살아낸 인간인가?!!! 유행하는 모든 것에 둔감하고 그 여파가 미치는 영역에 관심 없는 삶을 살았으니.... 그런 의미에서라면 나는 시대를 온전히 살아내지 못하고 말았다... 그러나 전혀 슬프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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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으로 낱낱이 해체된 소설은 결국 우리를 끌어들여 매몰시킵니다. “냉담” 냉담 챌린저로 독파에서 보내주셨습니다. 코로나시기를 배경으로 객체와 사회와의 관계를 지극히 흐릿하고 불완전하게 표현하면서도 감정만큼은, 생존하고자 하는 마음만큼은 처절하고 생생하게 표현합니다. “왜 스스로가 모두와 연관 없는 혼자라고 여기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지하철에서, 이어진 세포들처럼 꼼짝없이 붙어서서 누군가의 요구에 객체가 아니라 더미로 반응하는 것처럼, 이 소설에서 모든 개념은 해체됩니다. 비밀이라는 개인적인 요소는 “솔직함”이라는 키워드로 떠밀려지고, 언제든 열려야 하는 문은 작동을 멈추고 사람을 가둬두죠. 방은 머무르는 곳이 아니라 떠나야 하는 곳이 됩니다. 주인공은 그를 채워주고 완성해줄 것 같았던 그녀로 인해 해체됩니다. 이 소설은 의도적으로 모든 존재를 지워 부속물로 만들어 전체로 만들어놓아 독자들을 부유하게 합니다. 우리는 누구에게도 이입할 수 없고 호명할 수 없는 대신 모든 인물이 될 수도 있고, 그들을 지켜보는 독자로 남을 수도 있습니다. “이름을 숨기자. 나아가 아는 모든 이름을 숨기자. 하는 일을 숨기자. 해치려야 해칠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거야.” 무익하고 무해하고 무존재인 이 소설의 인물들은 자신의 열망과 존재를 감추고 “냉담”하게 살기 위해 몸부림칩니다.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썼다는 작가의 고백처럼, 그저 혼란스럽게 읽고 결론을 내리지 않아도 좋겠다고 결정했습니다. 고전과 비교하자면 “데미안”보다 어렵습니다. 읽고 난 후에도 명쾌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 다시 읽으면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리라 기대해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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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소설 제목이 '냉담'일까요? 냉담이라는 단어의 뜻 한번 찾아봤어요.
<냉담>을 읽으면 읽을수록 수수께끼 같았어요. 상징, 은유가 참 많았거든요. 전염병 이야기 같다가도 아닌것 같다가도... 그녀 이야기 같다가도 아닌것 같다가도... 전체적으로 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네요. 1부와 2부는 다른 이야기가 아니에요. 하나의 이야기더라구요. 1부의 도서관과 1부의 도서관만 달라졌을 뿐... 주인공 그를 둘러싼 이야기 코로나19로 우리가 겪었던 마스크 이야기들이다. "모두가 마스크를 썼다."
코로나19를 겪을 때도 동선, 자가격리에 대해 많은 소문들,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잖아요. 이 부분이 특히 마음에 와닿더라구요. ┌ 동선은 수많은 이를 위한 지침입니다. 그래야만 당신과 동일한 길 위에 있었던 수많은 이가 자진하여 협조할 것입니다. 당신 하나로 끝이 아닙니다. 그런데 당신 하나로 끝난다는 착각에 빠진 것처럼 구는군요. 왜 스스로가 모두가 연관 없는 혼자라고 여기는지 모르겠습니다. ┘ ┌ 뭐라 반박도 못 하고 끝없는 비난을 듣고만 있다. 틀린 말도 아니다. ┘ 우리도 겪은 일이라 이 비난이 옳은지 한번 물어보고 싶었어요..
┌ 이 시대는 그렇지 않아. 걸작이 있다면 어떻게든 조명받게 되어 있어. 좋든 싫든 한 개인이 숨기고 살기가 불가능한 시대라고. 이 새대의 놀라운 특성은 바로 그거야. 아무도 숨기기고 살기가 불가능한 시대라고. 이 새대의 놀라운 특성은 바로 그거야. ┘ 내가 살고 있는 바로 이 시대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좋든 싫든 숨기고 살기 불가능한 시대... 그런 곳에서 주인공은 어떤가? 내가 보기엔 참 허술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좋든 싫든 숨기고 살기 불가능한 시대에 너무 티가 많이 나요. 그런데 이 주인공이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도 궁금했어요. ┌ 그가 보아 오기로는 도서관이란 생기가 없어야 자연스러운 곳이었다. 관내는 마치 공공장소에 세워진 분향소처럼, 이용객이 많을수록 더 생긱 없어지고 삭막해져야 하는 법이었다. ┘ ┌ 당신이 어떻게 해서 오게 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당신은 받아들여졌어요. 우리 도서관에 잘 어울려요. 우리 도서관은 당신이 내부에서 기거하도록 허가했어요. ┘ 당신은 받아들여졌다?! 도서관과 잘 어울리는 주인공이라... 무엇보다 공간적 배경이 되는 곳 중에 단연 최고는 쇼팽의 1번 야상곡이 흐르는 도서관이었어요. 쇼팽의 1번 야상곡을 들으면서 읽었네요.
날이 갈수록 가까워죠. 끝이. 죽음이. 나는 두렵고 부끄러워. 마지막으로 갈수록 주인공에게 권하고 있어요. 다름이 아니라 그도 삶으로도 돌아가지 않겠냐고? 죽음이 아니라 삶을 제안하고 있어요. 그런데 주인공은 이 제안을 받아들였을까요? 1부에서부터 등장하는 그녀, 2부에서도 등장하지만 사람이 아닌 나무에요. 엥?! 도대체 그녀는 무엇일까요? 그런데 왜 나무를 구해 달라, 나무로부터 자기를 구해 달라고 하는걸까요? ┌ 이 모든 건 내가 지어낸 거야. ┘ 진짜 주인공 그의 지어낸 이야기인가요? 마지막에 그녀가 다시 등장해 주인공 그와의 여행을 승락하거든요. ┌ 그래도 나와 여행을 가줄 거지? ┘ ┌ 그래. 같이 가자. ┘ 마지막에 쓸쓸하고 외롭게 주인공 그는 죽는데, 그가 지어낸 이야기 속 그녀 덕분에 그는 쓸쓸한 죽음이 아닌걸까요? 아님 더 쓸쓸한 죽음인걸까요? 작가의 의도일까요? 주인공 이름이 안나와요. 책 속 누구도 이름이 없어요. 그런데 이름 없는 걸 뒤늦게 알아차렸거든요. 읽는데 전혀 이상하지 않아어요. 그게 더 신기했어요. 이름도 없는 주인공 그... 그래서 더 쓸쓸해보이고 외로워보인걸까요? 맨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책은 저에게 수수께끼같은 책이었어요. 작가를 만나 속시원하게 어떻게 쓴건지 묻고 싶네요. ㅎ 작가의 의도를 궁금해하면서 주인공 그를 이해하기보다는 한발자국 떨어서 제3자의 눈으로 지켜보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옳은 건 없지만 틀린 것은 있다는 관점 말이야." ![]() |
![]() 이 책의 표제어 냉담(apathy)은 영어 사전적 풀이로는 '무관심'을 뜻한다. 국어 사전에는 ① 태도나 마음씨가 동정심 없이 차가움. ② 어떤 대상에 흥미나 관심을 보이지 않음. 으로 풀이돼 있다. 우리의 일상적인 언어 생활에서 "차갑고 냉담한 태도를 드러내다"는 사례로 쓸 수 있다. 정신분석학에서는 감정의 부재를 일컫는 용어로 쓰인다. 냉담한 사람은 즐거움도 불쾌함도 경험하지 않는다. 냉담한 상태는 긴장이나 성마름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권태와는 다르다. 냉담은 종종 정동 결핍이 심하고 오래 지속되거나 스트레스가 아주 심할 때 나타나는 최종적인 결과로 간주된다. 이것은 견딜 수 없는 유기(abandonment)의 감정이나 특히 전시(戰時)에 전멸의 위협에 대한 방어적 몸부림의 결과로 나타난다. 냉담한 개인은 대상 세계를 “포기”하는 분열성 성격으로 가정되기도 하지만, 분석작업에서는 무의식적 애착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드러나는데, 이 사실은 방어적으로 부인되거나 부정된다.고 정신분석용어사전은 풀이하고 있다. 이 책 『냉담』은 동정심과 죄의식 그리고 감정의 표현이 쇠약해진 한 남자가 거리에서 불명의 여자를 갑작스레 만나면서 벌어지는 내외부의 변화를 그리고 있다. 공동체 안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지키려 분투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밀도 있는 문장과 다양한 소설 기법으로 나타내고 있다. 진실을 찾아가는 자신의 운명이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임을 알아채는 주인공의 모습은, 냉담하고 속물적인 공동체 안에서 삶의 불완전성을 받아들이는 하나의 '보기'가 된다. 저자 김갑용은 이 작품에서 지금까지 벼려 온 사고의 폭과 깊이를 발휘해 자신의 소설 경력 중 현재에만 쓸 수 있는 이야기를 쓴 뒤,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려 한다. 저자는 이 작품 뒷 부분에 「도래한 미래」라는 제목의 〈부록〉을 썼다. 이 글은 24페이지에 달한다. 〈작품 후기〉나 〈작가의 말〉로 보기에는 길다. 내용은 자작 해설로 추정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작품 구상 전후의 과정 및 작품 해설'로 기능하도록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자신의 '소설 쓰기'에 대한 배경과 취지에 대해 설명도 겸한다. 이 소설 작품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기 시작할 무렵, 거리에서 한 여자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한 남자의 내외부의 변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소설을 쓰지 못하는 남자는 그에게 끝까지 필요한 영감을 주는 '그녀'를 절대적으로 쫓는다. 이 소설은 작가와 소설 그리고 배경이 되는 도서관이 가진 이미지의 일탈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이상한 쾌감을 선사하기도 한다. 그의 말대로 소설을 따라가다 보면 전염병이 심화되는 시기, 남자는 거리에서 만난 그녀와 한 집에서 살게 된다. 그는 언젠가 그녀와의 여행을 위해, 마스크를 쓴 날 사람들 사이에서 전쟁 같은 출퇴근을 견디고, 회사에서는 마스크 위에 떠오르는 동료들의 의심스런 눈초리를 견딘다. 그러나 어느 날, 그녀가 사라진다. 더 이상 집에 들어갈 수 없게 된 남자는 밤엔 거리를 배회하고, 새벽엔 직장 건물 층계참에서 잠을 잔다. 그렇게 CCTV가 추적하지 못한 사각지대 속의 남자는 역학 조사관에게 지독한 추궁을 당하고, 행방불명되어 어느새 '사라진 고리'가 된 그녀를 결국 찾지 못한 채, 격리된다. 그의 머릿속에서 '죽음'이라는 단어가 사라졌을 즈음, 남자는 한 도서관에 취직한다. 그런데 새롭고 낯선 그곳에서 남자는 기이한 광경을 목격한다. 관내의 노동자들이 '그녀'라고 부르는 존재를 마주한 것이다. 그곳의 그녀는 거대했고, 중심에 있었고,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봐요, 어르신. 사람을 찾습니다. 내 이야기를 들어 봐요." 나이가 지긋한 노인은 말 한마디마다 싹싹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내 어깨를 두드리기까지 했다. 자기가 이 바닥을 잘 안다며, 그녀를 찾으려면 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인은 내가 그녀에게 지불한 액수를 상기하기를 권했다. 아! 마침 내게는 탕진할 돈이 있었다. 인근의 편의점 ATM 기기에서 두어 번에 걸쳐 최대한도로 현금을 인출해 노인에게 건넸다. 빗방울이 툭툭 떨어졌다."(p.93) 소설 속에는 '소설이 사라진 미래의 마지막 도서관'이 나온다. 이 도서관은 『냉담』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저자가 상상해 왔던, 그러니까 저자의 머릿속 '바벨의 도서관' 같은 공간이었다. 저자는 미셸 푸코를 인용한다. 푸코는 "도서관이 헤테로피아(Heterotopia)적인 속성을 지닌다"고 말한 적 있다. "모든 시간, 모든 시대, 모든 형태와 모든 취향을 하나의 장소 안에 가두어 놓으려는 의지, 마치 이 공간 자체는 확실히 시간 바깥에 있을 수 있다는 듯 모든 시간의 공간을 구축하려는 발상"이 근대에 이르러 도서관에 형성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냉담』의 '이곳 도서관'은 도서관의 이러한 속성이 노골적으로 불거진 공간이다. 먼 미래가 왜 내게 멀게 느껴지느냐면, 소설이 더는 쓰이지 않을 무렵이라는, 곧 도래할 테지만 현재의 내가 체감하기 힘든 전제가 함께하기 때문이다. 그때는 모든 소설이 도서관에 갇혀 있을 것이다. 도서관은 그야말로 소설의 공동묘지가 된다. 그렇게 소설이 옛 유물 신세로 전락한다면, 더는 쓰이지 않게 된 그 연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소설이라는 장르의 마지막을 상상하며 소설을 쓴다. 사람이 평생 죽음을 전제하며 살 듯이. 그에게 이곳 도서관은 새롭고 낯설었다. 더는 기시감이 없었다. 여느 도서관과는 달리 공공을 위하지 않고 한 개인만을 위하고 반영한 장소라는 특이적 정체성이 전염병으로 인한 무기한 휴관에 힘입어 여실히 드러났다. 내부가 한 사람의 의지와 의도만으로 축조된 공간으로 여겨지는 점을 그는 곰곰이 생각했다. 사용이 아니라 보이기 위한 공간임을 이곳 도서관 사람들은 아주 잘 이해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보안 요원들은 도서관을 지키려고 이곳에 왔다기보다는 내부에서 벌어지는 무엇을 가리기 위해서 역할극을 수행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고 해도, 도서관이라는 공간과 내부 구성원이 이곳에 도사리는 무엇을 숨긴다고 확실히 판단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 그건 바로 이 공간과 구성원들이 이면 없이 얄팍해 보인다는 것이었다.(p.171~172) 1부와 2부, 그리고 그사이와 뒤에 붙은 두 짧은 소설 속에서까지 '그녀'를 변주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그 정체에 대한 의문을 증폭시켜 뒷모습만 남기고 사라지는 그녀를 끝까지 따라가게 한다. 그녀라는 상징적 이미지를 중심으로 촘촘히 구성된 세계, 즉 꿈속의 꿈, 소설 속의 소설로 중첩되고 이어진 복잡다기한 세계는 자신의 존재 의미와 진정한 진실을 찾아나서는 한 인간의 운명, 즉 영육의 죽음 위에 포개진다. 남자는 선(善)과 진정성이 결여된, 어쩔 수 없이 관습적이고 속물적인 공동체를 태생적으로 견딜 수 없다. 공동체 생활에 필요한 제도화된 가식의 세계에서 인간은 진심을 다하지 않는다. 수많은 예식과 인사치레가 불가피한 그곳에는 본능적으로 냉담이 깃들어 있다. 그들은 무관심하고, 동정심을 잃어버리고, 죄의식을 회피하고, 감정을 숨겨 자신을 보호한다. 남자는 그곳에서 빠져나와 진정성의 보증자가 되고자 한다. 남자는 끝이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에서 끊임없이 진실을 찾으려는 '소설가'이다. 하지만 진실이 입 밖으로 새어나와 공기 중에 노출된 순간 그것은, 진실한 진실이 될 수 없다. 그때부터 가짜 진실을 감추기 위한 연기와 가면이 생성된다. 남자는 자신의 소설에 진실을 담을 수 없음에 계속해서 죄책감을 느끼고 반성한다. 진정성에 도달하지 못하는 '공동체'에 속한 다수의 사람들이 비밀하게 느끼지만 절대 드러내지 않는 그 부끄러움을, 남자는 그들의 몫까지 대신하여 느낀다. 소설가인 남자는 진실의 추구가 실패할 것임을 예감하면서도, 진실에 다가설 수 없다는 죄의식을 결코 멈추지 않는다. 이는 독자 앞에서 결백하고자 하고, 자신의 문학에게도 당당한 주인이 되고자 하는 소설가의 운명이다. 진정한 소설 쓰기는 결국 자신을 소각해 버림으로써 예술이 되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 결국 『냉담』의 작가는 남자에게 죽음을 선고한다. 생존하기 위해 냉담해질 수밖에 없었다고, 우리는 이 속물성을 벗어날 수 없다고, 어차피 삶의 끝은 죽음이라고 냉소하는 이 시대에 『냉담』은 이 익명의 남자를 '보기'로 보여 준다. 우리는 소설로서 이 냉담한 시기를 견뎌낼 수 있을까? 이 시대의 필연적인 숙명인 냉담의 다음 단계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냉담』을 통해 던지는 작가의 질문은 그것이 아닐까. 앞서 언급한 〈부록〉 「도래한 미래」의 서두는 "내가 의무 교육을 받던 새천년 전후 무렵에는 첨단 정보 통신 기술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토막글이 교과서나 여타 간행물에 흔했다. 분명 지면에 따라 글쓴이도 제각각 달랐을 텐데, 근미래를 사는 가상 인물의 하루로 첫 문단을 시작하는 점이나 주제, 논조, 미래상이 엇비슷해 나는 마치 한 사람 글을 반복하여 읽은 듯 하나의 인상만을 선명히 기억한다. 특히 첫 문단에 등장하는 가상 인물에 관해서는 굳이 옛날 지면을 뒤적이지 않아도 특유의 전형성을 깬다고 자신한다. 추측컨대 가상 인물은 이삼십 대 연령 중산층 독신이고 화이트칼라다. 이름은 저마다 달라도 당시 기준으로 세련되고 도회적인 인상을 주려다 보니 작위적인 느낌이 역력하다."(p.294) 저자는 지금 자신이 당시(마스크를 쓰기 시작하던 시기-이 글을 쓰고 마치던 시기)에 예견한 근미래 부근을 사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 당시 첨단이던 정보 통신 기술들은 대부분 상용화되었고 핸드폰 없이는 제때 출근도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토막글 속 가상의 그처럼 사는 건 아니다. 그는 자기 육신 무게를 모르는 듯 생활하지만 나는 나 자신의 무게를 압도적으로 느낀다. 미래에는 없고 현재에 있는 나라는 육체, 그러니까 실체 말이다. 저자는 가상의 그 같은 윤택한 생활을 원한다는 사실은 당연하다고 밝힌다. 깡마른 육체를 중력으로 지탱하는 일이 더할 나위 없이 지긋지긋하다. 동시에 내가 짊어질 게 없다진다는 가능성에도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메타버스라는 용어가 한창 유행했을 무렵, 머지않아 가상이 현실을 대체하리라는 매체들의 호들갑에 저자는 두려움을 넘어 숨 막힘을 느꼈다고 털어놓는다. 어릴 적 죽음을 떠올렸을 때 '나'라는 실체가 사라진다는 예감에 형용할 길 없이 막막했듯이. 저자의 비유는 극단적이기는커녕 지극히 걸맞다. 첨단 과학의 미래가 얼마나 빨리 다가오든 간에, 거기에 저자는 없다고 단정한다. 마치 죽음 뒤에 아무도 없듯이 도래한 미래에 '나'는 없을 것이다. 나의 현재가 지난날들의 미래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앞 문장을 쓸 때 나는 건넛방에서 잠든 동거인이 기침하는 메마른 소리를 듣는 중이었다. 근 몇 년간 동거인은 기침을 멈추지 못하였다. 이런 내용을 기술하는 저자는, 과거의 근미래에 해당하는 지금과는 다른 자아를 말하는 것 같다. 저자의 말 중에는 결정적 추인이 따른다. "여기 쓰인 동거인은 실제라기보다는 당시 내가 사로잡혔던, 동거인을 바라보는 관점이다."(p.312) 이 소설의 구성에 대해 앞서 잠깐 언급을 했지만 이 작품은 특이한 구성을 갖고 있다. 오롯이 한 권의 장편 소설이지만 마치 단편의 연속인 듯한 느낌으로 1, 2부로 나뉜 뒤 각 부를 또 19개의 제목을 붙였다. 이와 함께 19개의 글로 파편화된 이후에 각 부의 뒷 부분에 두 개의 별도의 글 「벽의 틈새」, 「도래한 미래」란 제목으로 실려 있다. 저자는 이에 대해 인터뷰에 실린 내용을 여기에 인용한다. "나는 최대한 잘게 쪼개고 싶었다. 많은 소제목을 갖기를, 각 소제목에 할당된 내용의 끝마다 매번 새로운 충격이 나타나기를, 그 어떤 소설보다 클라이맥스가 많은 형식이기를 바랐다. 여기서 쇼팽의 녹턴이 실마리가 되었다. 쇼팽의 녹턴은 정규 번호가 붙은 열아홉 곡과 그 외 두 곡으로 분류된다. 한 연주자가 쇼팽의 전집을 녹음한다면 두 가지 경우가 있는데, 스물한 곡을 모두 녹음하거나, 정규 번호가 부여되지 않은 두 곡을 제외한 나머지 열아홉 곡만을 녹음하는 것이다. 재밌는 발상이 떠올랐다. 만약 장편소설에 본문 외의 부속 원고가 두 편 있는데, 이 두 편은 본문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으면서도, 책 내에서 아무 쓸모가 없어서도 안 된다. 동시에 본문과 함께 어우러져 한 권의 책을 이뤄야 한다." 저자는, 나아가 독자는 이 한 권의 책을 어떤 식으로 구분 짓게 될까? 본문과 부속 원고 두 편을 하나의 소설로 볼까, 아니면 한 편의 장편소설과 두 편의 단편소설로 분명히 구분 지어 바라볼까? 그리함으로써 『냉담』은 열아홉 개의 소제목을 가진 본문과 부속 원고 두 편을 갖추게 된 것이다. 저자 : 김갑용 빈틈없는 구성과 마음 깊은 곳을 찌르는 심중한 문장들 사이로 인간 삶의 불완전성과 무지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담는 소설가. 1990년 대구에서 태어나 아산에서 자랐다. 10대 때부터 장편소설을 썼고, 2016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슬픈 온대」가 당선되어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한 사람의 모든 것을 소설에 담는다는 불가능성에 도전하고 절망하는 이들이 주인공인 8편의 단편 소설집 『토성의 겨울』(2022)이 첫 책이다. 『냉담』은 그의 첫 장편소설로 동정심과 죄의식 그리고 감정의 표현이 쇠약해진 한 남자가 거리에서 불명의 여자를 갑작스레 만나면서 벌어지는 내외부의 변화를 그린 소설이다. 이 소설은 겉으로는 공동체를 잠식해 가는 사회에 스민 냉담성에 관한 화두를 던지고 있지만, 독자는 문학에 냉담한 이 시대를 견디는 소설가의 고귀한 분투를 같이 겪게 될 것이고, 결국 자신이 찾고자 하는 진정한 가치와 진실에 도달하고자 하는 인간 본연의 과정에 서 있게 될 것이다. 작가는 <소설에서 끝내 말하지 못하는 진실>을 해방시킴으로써 그 진실을 독자로 하여금 마주하게 한다. 그 진실은 모두에게 유익할 리 없을 것이고, 누구에게나 무해할 수도 없을 것이다.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는 두 인물을 축으로 하는 장편소설을 구상 중이다. 『냉담』이 무리로부터 떨어져 나간 한 사람을 다루었다면, 차기작에서는 두 사람의 이야기, 즉 이원적 관계에서터 출발하여 세상과 공동체에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
모든 것이 멈춘 것 같았던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저희 집 가까이에도 확진자가 발생하는 바람에 걱정이 된 남편이 저와 아이를 친정에 보냈습니다.아이의 온라인 수업을 봐 주는 것을 제외하면 저에게는 결혼 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여유로움을 한껏 즐길 수 있었던 시기였지요. 생각보다 그 시기가 길어지는 바람에 오랜 기간 동안 남편은 혼자 생활해야 했고 사람들을 가까이 대면하는 직업 특성 상 친정에 들러도 절대 집에 들어오지 않고 물건만 전해주고 재빨리 돌아가곤 했습니다. 남편은 평소에도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라 뭘 하든 같이 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그와는 정반대인 성향을 가진 저는 남편이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을 못했어요 [소전서가]의 [냉담]을 읽다 보니 그 때, 남편이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싶은 생각이 이제서야 드네요. ![]() ![]() [소전서가]의 [냉담]을 읽으며 제일 처음에 든 생각은 아주 오래된 소설을 읽는 것 같다는 느낌이었습니다.암울했던 시기에 쓰여졌던 소설들을 읽었을 때의 그런 느낌이랄까요? 읽는 내내 출구가 없는 답답함이 느껴져서 몇 번이나 그만 읽고 싶었는데 일단 읽기 시작하니 그녀의 존재가 궁금해서 덮을 때까지 도저히 눈을 뗄 수 없게 만들더군요. 사실 공감 가는 내용이 많았어요. 제가 평소에 느끼면서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던 막연한 느낌들을 글로 명확하게 풀어 놓으셔서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습니다. 마지막에 실려 있는 부록 덕분에 책을 읽는 내내 느꼈던 답답함을 떨쳐버릴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거침없이 써 내려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부록을 읽다 보니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이 작가님의 경험이 바탕이었더군요. 읽기 힘들었지만 평소에 읽던 책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책을 읽을 수 있어서 한편으로는 반가웠습니다. 좋은 책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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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냉담_김갑용_소전서가
표지가 정말 순수한 느낌을 준다. 하얗고 하얀색이다. 특별한 그림 없이 그저 존재하는 공간을 표현한 듯하다. 하염없이 생겨나는 안개 같기도 하고 혹은 인간의 무의식 세계를 하얗게 가려버린 건가 싶다.
‘냉담’ -그 일을 그만두는 대로 그녀와 여행을 가기로 했다. -사람들은 말한다. 괜찮으니 숨김없이 고백하라고. 그들은 솔직함에 집착한다. 진실하기를 바라서라기보다는 상대가 품은 비밀이 자신을 괴롭힐까 경계해서다.
소설가 김갑용은 1990년에 태어나 아산에서 자랐으며 어린 나이인 10대 때부터 소설을 썼다고 한다. 이후 2016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슬픈 온대’가 당선되어 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한 사람의 모든 것을 소설에 담는다는 불가능성에 도전하고 절망하는 이들이 주인공인 8편의 단편 소설집 ‘토성의 겨울(2022)’이 첫 책이다. 그리고 ‘냉담’은 그의 첫 장편 소설이다. 현재는 두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는 장편소설을 구상 중이라고 한다. 이 소설은 전염병이 창궐한 세상에서 정신적으로 나약한 한 남자가 기묘한 여자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내적 변화를 그린 소설이다. 무엇보다도 특히 코로나19 시대를 겪어온 사람들은 소설의 배경 설정에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자극적인 것도 아닌 아니어도 내적 갈등을 통한 공감을 주는 게 매력으로 보인다. 무거운 철학적 주제가 느껴지면서도 감정의 흐름을 타고 가다 보면 도달하는 심리적인 요소도 이 소설을 읽는 매력이라고 보였고 표지 디자인처럼 비어있는 듯하지만 하얗게 채워진 색처럼 독자만의 해석으로 매울 수 있는 특별한 작품이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해석은 독자의 몫이고 느끼고 감동하는 것 또한 그렇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누구나 혼자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즐겁게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사회적 존재라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독한 건 마찬가지라고 본다. 하지만 그게 무조건적으로 나쁘다기보다는 상실과 존재함이라는 이분법적 나눔 속에서 그래도 무언가 행복을 찾아야 하고 그래야만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이 소설은 진정성이 느껴지는 작가의 첫 장편 소설이었다. 다시 한번 읽으면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좋은 작품이며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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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비드19는 우리 삶의 많은 것을 바꾼 일대 대사건이었습니다. 그간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살아왔던 삶의 근간이 흔들리는걸 모두가 느꼈을 것입니다. 안그래도 현대 사회 들어 심화된 타인에 대한 배척, 소외가 일상적으로 일어났고 백신이나 정부 대책을 둘러싸고 여러 계층의 밑바닥을 확인하기도 했죠. 김갑용 작가의 장편 소설 냉담은 팬데믹 시기를 배경으로 인간이 겪는 소외, 제목 그대로 사회의 '냉담'을 그려낸 작품입니다. 서사를 이루는 많은 부분이 작가가 실제 코비드19 시기를 살아가면서 겪었던 일화, 삶의 궤적에서 가져오고 있습니다. 소설은 1,2부로 나뉘는데 같은 소설이 맞나 싶을 정도로 굉장히 다른 분위기로 전개됩니다. 1부가 리얼리즘 그 자체라면 2부는 마술적 사실주의에 가깝게 꽤나 몽환적인 스타일로 전개됩니다. 물론 '공동체로부터 떨어져 나간 한 개인'을 다루고 있다는 공통점은 분명 존재합니다. 소외되어 있는 주인공이지만 한 사회에 속한 처지인만큼 주변 여러 사람 들과 어쩔 수 없는 관계 맺음에 직면합니다. 연인이라 할 수 있는 그녀를 비롯하여 친척, 가족, 친구, 상사, 직장 동료, 심지어 교수까지 그의 팬데믹 삶에 끼어드는 인물들은 은근히 많습니다. 그렇지만 대부분 그가 생각하는 딱 그 정도만큼만 그들 또한 그를 생각하고 배려합니다. 팬데믹 상황이 아니라해도 그 정도의 인간 관계가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서관에서 일하게 된 주인공을 비롯 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소위 '아래 계급'은 스스로를 의지하기 보다는 그녀로 지칭되는 도서관 중앙의 나무를 의지하고 숭상하기까지 합니다. 목숨까지 바치는 이도 생겨나죠.. 이 또한 추상적 객체를 자신과 동일시하고 타인과는 차별화하려는 대표적인 소외 현상이라고 볼 수 있겠죠. 과연 우리의 지금의 삶과 타인과 맺게 되는 관계는 어떠한 것일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었습니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냉담 #소전서가 #김갑용 #컬처블룸 #컬처블룸리뷰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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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담 옆에 몇 사람이 있든, 누가말을 걸든, 그말에 대답을 하든 않든, 읽고 쓰는데 빠지는 순간 우리는 혼자입니다. 읽는이를 홀로 고립시키고자 쓰인책이다. 냉담은 전염병이 창궐하는 시기를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코로나 코로나가 우리의 삶에 끼친 영향은 너무 깊고 넓다. 인간은 홀로 살아간다 하지만 더불어 살아가야한다. 하지만 그당시에는 우리는 더불어 살면 안됐었다. 같은집에 주거하는 사람외에는 만남도 줄이고 대면해서 대화나는 것도 조심해야했다. 그때 우리는 쉼표 , 쉬어가는 시간이였다. 소설속 그는 코로나 전에도 혼자였다. 하지만 우연히 만난 그녀를 자신의 삶에 들여놓았다. 혼자여서 편하고 좋았다 라고 말한것이 거짓이였을까? 그녀와의 여행을 꿈꾸며 꾸역꾸역 전염병사이에서 착실히 삶을 살아갔다. 아무런 이유없이 나타났던 그녀는 아무런 이유없이 사라진다. 삶이라는 긴 경주속에서 스쳐가는 인연이였을테지만 공허하고 외로웠던 그의 삶에는 그녀가 어쩌면 희망이였을지도 모른다. 혼자가 아니라고 혼자가 아니여도 괜찮다고 "전염병이 한창일 때 말이야 한편으로 나는 자유로웠어.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않았고 나 또한 누구도 알아보지 않았어 그때만큼 내가 자유롭고 살아있따고 느껴진 때가 없어. 그다음에 뭐가 올지 무서워 벌써 익숙해졌나봐." "너는 그렇지 않아 너는 견디지 못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마스크생활 과연 그 생활이 끝나기는 할까 싶었다. 마스크를 쓰면서 더이상 거짓표정을 짓지 않아도 되서 좋았다. 그저 눈만 웃었다 입은 야무지게 닫혀있었다. 가끔은 그래서 마스크 뒤로 도망가고싶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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