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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마일 카다레는 내게 강렬한 이미지로 남아 있다. ‘죽은 군대의 장군’을 읽은 후 내가 선 발밑에 깔린 시체들이 진동해와 오래 전 만남에 그치고 말았었다. 대선과 지선을 연달아 치르며 정치 우화를 한편 더 읽고 싶어졌는데, 자전 소설이라고 불리는 짧은 소설 ‘인형’을 읽었다. 언제부터인가 말에 치일 때면 노작가의 짧은 소설을 찾게 된다. 여러 사건 사고를 흘러보내고 저무는 해안가를 거니는 혜안의 시간을 제공해서다. 알바니아어에서 불어로 다시 한글로 옮겨온 소설은 다소 분절적이다. 이전 소설보다 시적이라는 느낌이 강했고, 어머니의 죽음으로 시작해 돌고 돌아온 이야기는 끊김과 여백이 따랐다. 소설 ‘인형’은 아래 인용처럼 진상 규명이 어려운 인생이라는 점이 이끌어내는 소설 창작의 당위성을 바탕으로 지어진 건축물이다. 나중에 이사한 아파트가 아닌 광인로에 위치한 저택 같은 구조로, 감방이 있고 미완의 방들과 비밀의 문이 있을지도 모르는, 죽음의 그림자들이 너울대는 유구한 집성체인 것이다.
집이라는 설정은 국경을 넘나들며 경계에 선 예술가가 시원적으로 다시 돌아갈 구심점이 된다. 자연스레 제임스, 카프카 같은 작가의 뿌리와 탈원심적 분투를 떠올리게 한다. 태어나 죽는 순간까지 함께 하는 나를 품는 집이라는 요체이자 요람에 대해 지긋이 들여다보게 이끈다. 사실 기억 속 고향은 어머니로 주인공이자 문인인 그와 따로 떨어뜨려 볼 수 없는 탯줄이다. 고향 집은 그가 일찌감치 떠나오고 벗어나고자 했던 공간이지만 결혼과 창작물과 사회적 관계들이 다시 연결되는 얼개로 작동한다.
집과 인형이라는 이미지 설정으로 한편의 소설을 완성하다니 놀랍다. 인형은 공산주의 진영에서 갖는 별개의 함의가 있으나 소설에서는 어머니를 지칭하는 객관화의 표현이다. 집과 인형이라는 실로 짜나가는 이야기는 카다레 집안의 응축된 보고서이기도 하다. 작가는 시끄럽고 분열돼 충돌하는 국가를 한 집안의 고부 갈등으로 축소하여 그 치열한 전쟁과 상처를 묘사한다. 두 여자의 알력 싸움 사이에서 “재판관”을 맡았던 아버지의 무게를 조금씩 알아가며. 표면적으로는 그가 인형의 “공포”를 뒤로하고 유학 생활을 감행하며 문학과 자유연애 속에서 ‘자유’를 탐색하는 내용이다. 주인공은 문학도로서 오이디푸스와 햄릿을 접하며 아버지와 자신을 대입해보지만 이내 미끄러진다. 오히려 작가를 매혹한 인물은 맥베스였다. 죽음과 광기는 카다레 집안의 내력이고 떨쳐내기 어려운 성질로 비추어진다. 그는 문학이라는 보호막 안으로 들어가 권력 탈환에 천착한 국가권력과 집안의 분쟁을 집요하게 캐묻고 답했던 것으로 보인다. 작가는 과거로부터 벗어나 고유한 세계를 세우기 위해서 부득이 어머니를 열일곱 살에 성장이 멈춘 순진무구한 ‘소녀’로 묶어두어야 했다고 고백한다. 그 과정에서 똑똑한 시어머니와는 다른 노선을 걸으며 대치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어느덧 주인공은 인형의 연극적 성향과 멋 부리기와 허영을 자기에게서 발견한다. 시를 쓰고 선전 문구로 장식된 산문을 쓰는 자신이 인형과 유사하게 느껴져, 석고 인형으로 멀찍이 두고 분리하려 할수록 성모마리아 조각상처럼 그 시선 아래 머물고 만다. 좀 과장하자면 그의 창작의 씨앗과 출처는 “오만 바이러스”를 지닌 인형에게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버지가 할머니와 어머니 사이에서 재판을 결행했던 근원이 ‘사랑’이었음을 깨닫듯이, 주인공은 인형을 향해 “분노의 파도”만큼 거대하고 뜨거운 연민에 휩싸인다. 어리석고 분리불안에 사로잡힌 창백한 인형은 칠십 년의 사랑/복역을 완수하고 남편 곁에 묻힌다. 사랑에 대해 소설가는 별도의 지면을 할애하지 않지만 다시 지은 고향 집을 아내와 함께 방문하는 지점이 끈질긴 연결성을 증명한다. 아무리 구태라고 배척하고 부인해도 끊어낼 수 없는 운명과 역사의 그림자 같은 것을 “어둠”과 어머니라고 하나로 잇고 “수수께끼”로 남겨둔다. 인형과 마찬가지로 강렬한 캐릭터가 바르딜 B. 이다. 햄릿의 친구인 호레이쇼와 동급으로 처리되고 ‘부재’를 그리워하며 추억하는 모습에서, 주인공의 분신이자 반쪽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이 그가 가상의 인물, 즉 창작을 위한 상상 속 파트너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그를 격려하며 칭송을 아끼지 않았던 고향 친구를 통해 현실의 ‘결핍’과 자기환멸과 허무를 극복했던 것 같다. 자기과시적이고 에고가 넘쳐나던 시절의 시를 현실에서 헬레나와의 결합으로 협상해나가듯이 그는 삶과의 대화를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이때 “얼마간의 협상” 제안 방식은 인형에게서 배운 것임을 알 수 있다. 칸트적 경계인의 위치에서 인형의 장례식과 카다레 가문을 회상하는 이야기는, 생명 탄생의 자궁과 죽음의 무덤을 경유하며 결핍이 새로운 길을 창조함을 암시하는 강력한 메타포로 자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