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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리샤家의 그조르그가 제프 크리예키크를 쏘았어요!"
『부서진 사월』의 베리샤家의 그조르그는 할아버지 대 방문한 손님을 대신해 핏값을 회수할 차례가 되었다. 그 사이 베리샤家에서 죽은 자는 마흔네 명이었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복수가 이어져 내려온 오랜 세월 동안 증오심은 식어버렸고 의무만이 남았을 뿐이다. 치욕은 오직 관습법에서만 출구를 찾을 수 있다고 관습법은 규정하고 있었다. 크리예키크가의 일족 중 한 명을 죽이는 일만이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었다. 피의 회수를 지연한다면 사람들은 그와 그의 가족에게 다리 아래로 커피를 건네기 시작할 것이다. 카눈의 관점에서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서로를 죽고 죽여야만 하는 이 부조리한 복수극이 어느 시대의 이야기일까? 대부분의 현대 국가에서는 개인의 사적 복수가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관습과 전통에 따라 복수를 해야만 하는 운명은 수 세기 전의 일이 아닐까 짐작했지만, 믿을 수 없게도 알바니아에서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일이다. 2009년 방송된 다큐를 찾아보았다. 여전히 카눈에 의해 수만 명이 죽고, 복수를 피해 수많은 가족들이 은둔해 살아가고 있었다. 피로써 피의 대가를 회수하고, 다시 그 피로써 피의 빚을 갚는 복수의 방식으로 질서를 세운 그들에게 삶은 무엇일까.
그조르그는 3월 17일, 제프 크리예키크를 쏘았다. 그리고 중재인들에 의해 크리예키크가에서는 삼십 일간의 대 베사(약속)를 받아들여 휴전이 선언되었다. 총알 한 발이 그의 삶을 두 동강 내버린 것이다. 한편에는 살아온 이십육 년의 삶이 있고, 반대편에는 3월 17일에 시작되어 4월 17일에 끝날 삼십 일이 놓여 있다. 죽음의 4월, 그에게 더 이상 5월은 오지 않을 것이다. 남은 삼십 일간 무엇을 할 것인가.
이 작품은 핏값을 회수해야만 하는 주인공 그조르그 외에도 관습법에 대해 글을 쓰는 베시안, 핏값의 세금을 거둬들이는 피 관리인, 분쟁이 있을 때 중재하는 카눈 해석가라는 인물들을 통해 알바니아의 관습법인 '카눈'을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태어난 순간부터 정해진 운명처럼 복수를 하고, 복수에 의해 죽어야 하는 운명의 부조리함. 자유로운 것 같지만 태어난 순간부터 누구에게나 부여된 인간이 지닌 부조리함이 극대화된 한 편의 연극을 보는 것만 같다.
이스마일 카다레, 알바니아, 카눈 그 어떤 것도 낯설지 않은 것이 없지만, 매해 노벨문학상 후보에 거론되는 이유를 이 한 작품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기에 많은 분들이 꼭 보셨으면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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