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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 -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 이창실 옮김
"피라미드 -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 이창실 옮김" 내용보기
기원전 2600년 경의 이집트, 새 파라오 쿠푸 자신은 어쩌면 피라미드를 만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암시를 흘리고 이 말을 듣고 있던 왕궁의 점성가와 파라오의 최측근 대신들, 늙은 고문관과 대제사장은 파라오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을 합니다. 파라오가 자신의 피라미드를 만들지 않겠다는 말을 꺼낸 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대재앙으로 다가옵니다. 얼마전 가장 오래된 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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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600년 경의 이집트, 새 파라오 쿠푸 자신은 어쩌면 피라미드를 만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암시를 흘리고 이 말을 듣고 있던 왕궁의 점성가와 파라오의 최측근 대신들, 늙은 고문관과 대제사장은 파라오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을 합니다.

파라오가 자신의 피라미드를 만들지 않겠다는 말을 꺼낸 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대재앙으로 다가옵니다. 얼마전 가장 오래된 신전 두 곳을 폐쇄 했고, 그 직후에는 이집트인들에게 희생 제의를 금하는 법령까지 제정한 파라오의 말 한 마디였기에 충격은 크게 다가옵니다.

애꾸눈의 늙은 서기 이푸르를 만나러 고문서들이 보관되어 있는 지하로, 훼손되었을지언정 파피루스들에서 온갖 정보를 찾아내어 피라미드의 필요성을 새 파라오에게 언급해야만 합니다. 드디어 대제사장은 자신들이 조사한 피라미드에 대해 고문서들이 감추고 있던 비밀들을 설명해나갑니다. 피라미드는 거대한 묘소임에 틀림없지만, 그걸 만들게 된 원래의 의도에 무덤이나 죽음은 전혀 포함되지 않는다고. 그런 것들과는 별개로, 즉 그 두 개념과 상관 없이 피라미드는 탄생했고, 그 둘과 피라미드를 연결짓게 된 건 순전히 우연에 불과하다고.(12쪽) 풍요롭고 안락한 생활에 빠진 이집트인들을 결집하기 위한 방법, 피라미드는 바로 이런 위기의 시대에 구상 되었으며 백성들의 넘치는 에너지를 소모시킬 방법으로, 요컨대 심신을 지치게 하고 파괴하는 동시에 철저히 무용한 무엇이야야 했기에 파라오와 대신들은 차츰 거대한 묘비를 생각해내기에 이르러 바로 피라미드 건축이 시작되었다는 설명에 파라오 쿠푸는 매료되었습니다.

"무엇보다 피라미드는 권력입니다. 폐하. 억압이요, 힘이요, 부이지요. 동시에 군중을 지배하고 그 정신을 우매화하고 의지를 꺾어놓는 무엇이며, 단조로움이요 소모입니다..."(16쪽)

쿠푸는 선언합니다. "피라미드를 만들겠노라. 가장 높은 피라미드, 더없이 웅대한 피라미드를."(18쪽)

이스마일 카다레의 [피라미드]는 이렇게 지어져 갑니다. 가장 높은 피라미드, 더없이 웅대한 피라미드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쿠푸가 파라오로 집권하는 내내 진행 되고 새로운 피라미드를 건축하기 위한 초석으로 왕국의 서른여덟 개 주에 채석장을 향한 관리들의 발걸음이 시작되고 거대한 돌덩이들의 이동을 위한 도로를 설계하는 이들과 피라미드 건축을 담당할 중앙 부서 설계가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1만 999번째 돌을 앉히던 때엔 여기저기서 정신착란 증세가 급증하고 1만 1384번째 돌은 피라미드에 도착하기도 전에 불길한 소문에 휩싸이더니 제자리를 찾기도 전에 사망자가 속출했고 결국 인부들은 파리떼처럼 소리없이 죽어나가고 현장감독 역시 수석 감시관의 채찍에 저세상 사람이 되었습니다. 7년, 10년, 20년...마지막 돌 네 개만을 남긴 피라미드, 그리고 그 돌들을 지키기 위해 보초까지 세워진 상황, 피라미드의 완성은 곧 파라오의 죽음을 의미하기에 파라오는 파라오대로, 설계하고 건축을 진행해오던 관리들은 관리들대로 마지막을 선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집트하면 떠오르는 건축물 '피라미드'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거대한 돌을 채석장에서 옮겨오는 동안에, 경사진 피라미드에 정확한 위치에 올리고 움직이고 고정하는 과정에 많은 목숨이 그야말로 소모되었음을. 국가라는 권력체가 힘을 과시하고 통솔한다는 명목으로 대규모 관계시설과 운하와 같은 시설들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큰 희생을 불러일으키는지 목도한 기분입니다. 작가 이스마일 카다레는 독재정권으로 인한 고국 알바니아의 현실을 기원전 이집트의 피라미드 건축과 다른 시대, 다른 장소에 자행 된 동양의 피라미드, 바로 티무르 칸-절대군주-이 세운 칠만 개의 머리통으로 이뤄진 해골 피라미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통해 밝히고 있습니다. 그들이 결국 그 피라미드의 주인이 되었다고, 죽음으로서.

강렬한 이스마일 카다레의 [피라미드]의 건축 현장으로 초대합니다. 으스러지고 절규하는 이들의 비명속에서 우리가 발견해야 할 것은 과연 무엇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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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골드 i******u 2022.06.07.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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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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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라미드, 이스마일 카다레(알바니아, 프랑스 망명)    이스마에 카다레는 1936년 발칸반도에서 가장 약하고 고독하며 억압적인 공산주의 체제였던 알바니아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시절부터 시집을 발간하고, 1963년 첫 장편소설 ‘죽은 군대의 장군’을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했다. 수차례 노벨문학상 후보자로 추천되었고, 몇 년 전 박경리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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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 이스마일 카다레(알바니아, 프랑스 망명)

 

 이스마에 카다레는 1936년 발칸반도에서 가장 약하고 고독하며 억압적인 공산주의 체제였던 알바니아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시절부터 시집을 발간하고, 1963년 첫 장편소설 죽은 군대의 장군을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했다. 수차례 노벨문학상 후보자로 추천되었고, 몇 년 전 박경리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우리에게 낯익은 작가이기도 하다.

 

 그가 작품 활동을 시작할 즈음 조국 알바니아는 전체주의와 독제정권의 발굽아래 신음하고 있었다. 조국의 암울한 현실을 목도한 카다레는 알바니아의 우울한 현실을 고발하고 풍자하는 글들을 번득이는 우화와 스토리텔링을 덧붙여 표현했다. 많은 작품들이 출판과 판매금지의 시련을 겪었다. 1990, 사랑하는 조국의 현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는 망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작품들은 전체주의와 독제정권에 신음하는 조국 알바니아의 현실을 특유의 시선으로 고발했다. 1992년에 발표한 피라미드도 기원전 2600년경 이집트인의 고혈을 기반으로 건설한 파라오 쿠푸의 피라미드를 통해 전체주의와 공산독제의 실상을 우화적으로 표현했다.

 

기원전 2600년경 이집트에서는 젊은 파라오 쿠푸가 취임한다. 새로운 파라오가 취임하면 이집트인들은 파라오 무덤인 피라미드 건설이라는 고통과 환희의 상반된 목표로 전율한다. 이집트 백성들은 피라미드 건설현장에 차출될까봐 불안한 나날들을 보낸다. 백성을 사랑하는 젊은 파라오는 피라미드를 건설하지 않겠다고 발표한다. 대신들은 피라미드 건설 목표가 파라오의 무덤 역할보다는 통치의 수단이라고 탄원서를 올린다. "폐하! 피라미드는 권력입니다. 억압이요, 힘이요, ()이지요. 동시에 군중을 지배하고 그 정신을 우매화하고 의지를 꺾어놓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입니다.”

 

 세종대왕께서 중국문자가 익히기 어려워 백성들이 억울함을 호소하지 못해 불이익을 당하는 것을 막고, 백성들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훈민정음을 창제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집현전 학자들과 대신들은 많은 상소를 올려 반대했다. 특히 청백리로 이름을 떨친 집현전학자 최만리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상소를 올렸다. 최만리가 밝힌 반대 이유는 1) 중국과 외교적·문화적 사대관계상의 문제점, 2) 새로운 문자를 만드는 일 자체가 이적(夷狄)의 일이라는 것, 3) 백성들의 통치 정책인 우문정책(右文政策)에 미쳐질 손실 등이다. 백성들의 우민화 정책은 기원전 2600년경에도 있었다는 카다레의 풍자로 소설은 시작된다.

 

 웅장한 규모와 화려함의 산물을 문화유산이라는 이름으로 치부한 유럽, 중국, 인도, 러시아의 고도를 방문하면 화려함에 놀라기보다는 이 건축물 건설에 참여한 이름 없는 백성들의 피와 땀과 죽음의 광시곡이 공포로 남아있는 감정은 나의 것만 아닐 것이다.

 

 기원전 2600년경 파라오 쿠푸는 통치를 시작하면서 그의 무덤 피라미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엄청난 시간과 비용 그리고 백성들의 노동력과 목숨을 수반한 대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피라미드 건설이 공표되고 채석장에서 현무암을 채굴하는 인부들은 집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 밖으로 추방되는 결과를 낳았다. 예상보다 걸어진 작업시간, 적어도 15. 거의 한평생에 해당하는 시간이었다. 수 톤이나 되는 무거운 돌덩이에 깔려 많은 일꾼들이 죽어나갔다. 그들의 꿈은 죽지 않고 사랑하는 가정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죽음은 채석장에서만 발생한 것이 아니다. 수 톤에 달하는 수만 개의 돌들을 나르고 쌓는 과정에서 건설지도자들의 매질과 고문 그리고 하나의 돌을 쌓을 때마나 죽어나가는 여러 명의 인부들. 수만 개의 돌을 쌓아 완성한 피라미드는 얼마나 많은 죽음을 강요했는가?

 이 소설에서는 피라미드 건설과정에 나타난 피비린내 나는 이야기 외에 중앙아시아에 세워진 티무르의 해골더미 피라미드라는 더욱 비열한 사례를 소개한다. 티무르의 피라미드는 칠만 개의 머리를 잘라 생성한 해골로 피라미드를 만들었다. 한꺼번에 칠만 개의 해골을 준비하지 못하자 많은 전쟁을 통해 해골들을 수집했고, 최종적으로 피라미드 완성을 앞당기기 위해 살아있는 사람들의 목을 수집하였다. 쿠푸와 티무르의 피라미드 건설을 위해 공통적으로 무수한 죽음을 엮어내는 광기를 뿜어냈다.

 

 피라미드가 완성되고 주인인 쿠푸가 죽은 뒤에도 죽음과 고문은 지속된다. 파라오가 묻혀있는 지점을 알고 있는 설계자나 인도자도 죽음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었고, 부실건설에 원인을 제공한 사람을 찾고, 벌하는데 얼마나 많은 고문과 목숨을 거둬들였을까?

 

 파라오 쿠푸가 사망하자 새로운 파라오 디두프리도 자신의 피라미드를 짓겠노라 선포한다. 음란한 행실 탓에 궁에서 쫓겨나 발길을 끊은 지 오래인 쿠푸의 외딸 헤나우첸도 피라미드를 만들겠다고 곁불을 쬔다.

 

 쿠푸왕의 완전한 영면을 위해 설계자와 최종적으로 안치한 인부들도 죽였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세월이 흐르고 슬픈 밤이 되면 복면을 쓴 도굴꾼들이 피라미드를 정교히 탐험한다. 그들은 주요 통로가 이어지는 내벽을 찾아내 예상보다 수월하게 돌파했고 석관이 안치된 방에 접근할 수 있었다. 예상대로 값비싼 장신구들이 석관에 들어있었고 귀중품을 쓸어 담아 부대자루에 채웠다.

 

 비싼 장신구를 획득한 도굴꾼들은 다시는 피라미드 안에 발을 들여놓지 않겠다고 했지만 두 계절이 지나자 인육의 맛을 잊지 못하는 호랑이처럼 피라미드의 미라를 그리워했다. 피라미드 안으로 다시 들어간 도굴꾼들은 미라의 아미포 붕대를 풀었다. 미라는 목이 졸린 흔적이 있었다. “목이 비틀린 파라오라니.. 누가 파라오를 죽였지. 정권 핵심부의 암투도 담담하게 그려냈다.

 

 작가는 피라미드라는 건축물에 스토리텔링을 입혀 전체주의 허상과 잔인함을 고발하고 있다. 웅장한 건축물(전체주의와 독재정치)을 구축하기 위해 아군적군 구별 없이 자신의 이익과 필요에 따라 모함하고, 고문하고, 살해를 냉정하게 집행하는 현실이 5000년이 지난 지금도 지구촌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 참담하다.

 

 

1. 좋은 글귀, 마음에 드는 가사 인상 깊은 영화 대사 등을 메모해 주세요.
2. 출처를 넣어주세요. ex) 234page, 4번 트랙<사랑해>, <브리짓존스의 다이어리>에서 브리짓의 대사
k******9 2022.10.12.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