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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당 선언의 의미는 블랙코메디 같은 이 책의 제목이 할매당 선언이다. 할매라고 부르면 차별이라는데, 이들은 스스로 할매라고 부르면서 전국의 할매여 단결하여 일내자고, 서울, 경기, 충청, 경상남북도 이른바 기호와 영남, 지리적으로 한반도 허리 근처다. 다섯 분이 글을 썼다. 글발은 다들 한 번씩 글을 써본 솜씨들이다. 누구에게 전해야 할지 염두에 둔 글들로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다. 신세 한탄 속에서 삼천포로 빠지기에 십상인데, 70년대 한국 사회의 공업화 과정에서 젠더역할론, 남성은 경제사회 활동, 여성은 전업주부로 육아와 교육 그리고 돌봄으로, 사회경제적으로 부가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한 것으로, 지금이야 재생산이라는 항목으로 돌봄을 톺아보려는 움직임이 있지만, 그런 시대를 다양한 직업과 활동 영역에서 쌓은 경험, 그 속에서 여성의 지위에 관해 할매들은 할 말이 많다. 불합리, 가치를 창출하는 노동이 아닌 여성의 사회적 임무와 역할로 치부되면서 중심에서 밀려나게 되는 가부장 중심의 남성 우월사회 대한민국을 뜯어고치자고, 불평등이 묵인되고 차별이 미덕인 양 포장됐던 그 시절은, 아, 옛날이여로 돌려놓자는 의지의 찬 할매들이 나섰다, 100세 시대를 노래하면서 정작 노인들에 관한 권익보장은 어디에도 없는 사회를 뜯어고치자고, 전하는 메시지, 헌법개정 “노인의 권리” 명문화, 이른바 인권을 어느 각도에서 보느냐 문제 70대의 권오자를 비롯한 할매들의 인생 경험이 묻어난다. 세상을 향한 노년 여성들의 다양한 삶의 이야기가 신세 한탄이나 과거에는 그랬다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향수 유도제가 아니라 이렇게 살아 온 노년의 여성들이 사회에 요구하는 것, 이른바 “헌법개정”이다. 이를 위해서 당을 만들겠다고 나선 것이며, 대국민 선언을 한 사회적 메시지 전달이다. 그리고 이들 할매들은 주체적으로 나섰다. 세상의 주인공은 우리며, 그 안에는 할매도 들어있다고, 용도와 기능이 다 해 폐품이 되는 게 노년이 아니며, 할매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제부터 우리 인생도, 누군가를 위해 살아가야 한다는 사회적 굴레, 왜곡된 젠더상, 세상은 넓지만, 여성이 갈 곳은 그리 넓지도 않은 곳, 사회적 이슈를 담아, 세상에 고하노라 권오자 할매, 평생 철물점 이른바 만물상회의 실질적 주인장으로 입성 좋고 노름 외에는 특별한 재주가 없는 팔자 늘어진 남편과 자식들 그리고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들까지 건사해야 하는 진짜 팍팍한 인생, 좋게 말하면 자영업 이른바 사장이다. 주체적인 여성, 내 팔자가 그렇지 뭐에서 내 팔자는 내 하기 나름으로 전환되고, 서현숙 할매의 손주 돌봄 이야기 또한 눈물 나는 현실이다. 경제사회 활동의 장에서 은퇴는 곧 육아 독박이라는 또 다른 현실 지옥의 문으로 들어서게 되니, 할매들이 설 자리는 어디인가, 헌법개정 운동본부 가사와 돌봄노동의 정당한 사회적 평가 요구, 졸혼이란 말이 우스갯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일본의 황혼이혼 사유, 내조의 반생, 이제 나도 은퇴하여 나만을 위해 살련다는 독립선언이란 의미로 해석되기도, 자 보자. 국가는 여자의 복지와 권익의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는 노력 의무규정을 이렇게 바꾼다. 전업주부의 은퇴를 법적으로 인정하고, 전업주부 은퇴 신청서를 작성하여 동행정복지센터에 제출하면 연금처럼 남편과 자식의 수입 50%를 받는다. 실현할 수 있다. 전업주부에게 주는 건 용돈이 아니다. 며느리가 제 자식 돌봐줬다고 주는 용돈이 아니라 정당한 노동의 대가요. 사회적 품앗이다. 가족이란 개념과 정의를 다른 차원에서 정립해야 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가족은 서로 돌보는 품앗이 문화를 바탕으로 서로 배려하고 사랑을 주는 곳이다. 내리사랑이라는 이상한 논리로 노인들을 짐짝처럼 여기는 현실 풍토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그렇게도 무서워하고 신경이 쓰이는 “돈”으로의 가치환산을 통해서 공적 돌봄 청구가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할매당선언은 한국 사회의 인권의식을 한 단계 올리는 계기가 돼야! 100세 시대, 어중간하게 부모니까, 가족이니까 이건 의무니까가 아니라, 사회복지 영역 등 사회적 돌봄 주체가 국가이며, 국민은 납세의무가 있고, 복지 처우를 받거나 요구할 권리가 엄연히 존재한다. 연령을 중심으로 하든 뭘 하든, 자녀에게 쏟아붓고 불안한 노후생활을 보내야 하는 여전히 착한 부모들, 이 노인들은 국가에 돌봄을 청구할 당연한 권리가 있음을 인식하라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이 보장받고 보장해야 할 인권이었다면, 우리는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되는 셈이다. 할매당 선언에 실린 헌법 수정조항들을 현실화하기 위한 지난한 싸움의 서막이 열린듯하다. 이야기가 이야기로 끝나면, 역사는 바뀌지 않는다. 할매당의 선언과 헌법개정운동을 지지한다. 어차피 언젠가는 우리도 할매당의 당원이 될 테니 할매당은 할머니의 경상도 지역 방언, 사투리가 아니라, 상징적 표현이다. “할매”란 노자의 표현대로 여성이며, 모성이며, 자연이며 포용이기도 하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
![]() 살다보니 별일이 다 있네...하고 말할 수 있는 이 땅의 무수히 많은 사람들, 그들의 의식속에 할매는, 아니 여성은 어떤 의미로 자리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정치가 자기가 원하는 사람들을 뽑는 것이라면 왜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이 가진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고, 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가려 뽑지 않는걸까? 이는 철저히 그러한 행동 이전에 뿌리내린 의식의 문제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여자가 뭘 알아?" 다른 무수한 말들을 뺴 놓고라도 이 한마디 말로써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여성의 지위가 어떠한지를 살펴볼 수 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어제의 꽃다운 청춘들은 오늘의 할매가 되었고 이러한 과정은 반복적으로 이어갈 것이라 믿지만 여성들의 사회적 존재감은 더이상 조선의 명리를 따르지 않는다고 생각해야만 한다. 실질적으로 현실의 나, 우리 삶의 현장을 통해 살펴보는 모습들은 더이상 그녀들이 피해받는 여성으로의 삶이 아닌 주체적인 삶의 존재로 거듭나고 있음을 확인하고 응원해야 하는 시대임을 부인할 수 없다. 할매당의 선언, 익히 아는 우리 할매들의 할매당 선언이 무엇인지, 삶의 깨달음을 주는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할매당 선언' 은 이 땅에서 수고로운 삶을 살아야만 했던 다섯 할매들의 부끄럽지 않은, 위풍당당한 삶의 행진곡으로 만나볼 수 있는 책이다. 우리 사회의 모든 이들의 삶에는 앞선 이들의 삶의 자양분이 녹아들어 있다고 해도 틀린말이 아니다. 충분히 자신의 역량이라 판단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의 근본으로 우리의 어머니, 할머니들의 일을 마다하지 않는 수고로움의 영향력이 깔려 있다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배우지 못했지만 삶에는 충실했고 인간의 도리를 다한 할매들, 그들을 욕할 수 있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 아니, 하려고 해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그녀들이 당을 창당한다면 초고령시대로 접어든 지금 그 어떤 당보다 더욱 지지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된다. 다섯 할매들의 삶의 이야기들은 그동안 숫하게 들어왔을 이야기들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나, 우리가 직접 그러한 삶을 경험해 보지 못했기에 현실적인 상황에 대한 이해에 있어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시대의 다름이라고 자평할 수도 있지만 시대를 사는 인간은 똑같다. 무지하다는것... 그러하다면 지금의 나, 우리는 우리의 할매들과 같은 마음으로 가족과 사회를 바라보고 삶을 살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을 가질 수 있다. 가능한가? 아마도 열이면 열 모두 '아니오' 라는 답변을 할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시대의 악습이라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예'라고 답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으리라, 하지만 그들은 할매들과 같은 상황, 환경에 놓여보지 못한 터이지만 여성의 지위에 대한 개선에 목놓아 울부짖는 현실에 동참하고자 하는 의미를 이해하고 있으리라 판단한다. 아마도 현실적인 상황에서의 남, 녀의 공평과 평등에 대한 모습을 일찍이 할매들이 알았다면, 그러한 대우를 우리 사회가 해 주었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누구나 나이를 먹고 세월은 화살과, 아니 총알과 같이 빠르게 간다. 나의 어제와 오늘의 일이 바로 할매당의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천사같은 마음, 생각은 맥가이버이고 몸은 소머즈로 살아 온 우리의 할매들, 그들의 삶이 연못에 띄워 놓은 한 떨기 연꽃처럼 아름다울 수 만은 없다. 하지만 연꽃을 피우기 위해 연못의 진흙뻘 바닥 양분을 끌어모아 삶의 환희를 맛볼 수 있는 꽃을 피워내듯 할매들의 삶을 녹여낸 모습을 만나 볼 수 있게 한다. 나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을 생각해 보는 시간, 할매당뿐만이 아닌 할배당과의 연합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삶의 현실적인 이야기로 의미있는 현실을 반추해 보는 시간이 되었기에 독자들의 일독을 권유해 본다. **네이버 카페 책과콩나무의 지원으로 개인적 의견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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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할매들의 할매당 선언! 제목을 접했을 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당찬 할매들의 모습이 연상됐었다. 혹여 유쾌함이 곁들어 있으면 더 즇고! 싶었지만 힘들고 모진 세상살이에 남은건 넋두리만 남은 여인들의 이야기에 가슴 짠함과 아림, 죄송함이 밀려와 그 어느때보다 글자 하나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며 읽어내려갔다. 그땐 다 그렇게 사는거라고, ’여자가 무슨‘이란 말에 화도 내지 못하고 오히려 죄책감을 느끼며 살았던 세월, 구박하면 구박하는대로, 남편과 자식, 부모 사이에서 뚱한 말한마디 표현하지 못하고 끙끙거리며 살아온 세월, 누가 알아줄까, 어디에 하소연할까, 도련님같은 남편 대신 억척스럽게 가정을 꾸렸지만 고생했다는 따뜻한 말한마디 듣지 못했던 세월, 우리내 어머니들은 어찌 그런 세월을 견뎌냈을지 마음이 아프기만하다. 어린시절엔 할매란 단어가 주는 아련함과 따스함이 있었지만 나이가 들고보니 쉴틈 없이 고생한 흔적만 남은 여인네들이 아줌마에서 할머니로 변해가는 과정이 너무나 서글프기만하다. 아마도 나의 어머니가, 앞으로 나의 삶이 그러하리란 생각이 드니 더 사무치게 공감이 됐던가보다. 비단 이 책은 다섯 여인들의 이야기뿐만은 아닐 것이다. 주변에서 많이 봐왔고 나의 어머니 또한 그에 못지 않은 삶을 살았기에 책을 읽으며 친정 엄마 생각이 많이 났다. 퇴근하고 파김치가 되어 집에 돌아오면 좋은소리보다 싫은 소리를 쏟아내 사람 진을 빼놓는 일이 일쑤인 친정엄마의 패턴은 혼자 있어 이야기 들어줄 이 없어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대부분 퉁명스럽게 밀쳐내어 엄마를 속상하게 했던 적이 많았는데 책을 읽으며 엄마가 글을 쓰면 이런 느낌이겠구나 싶어 울컥했었다. 후회는 늘 있었지만 표현하지 못한채 시간만 흘려보냈던 지난날들이 엄청난 후회로 밀려와 약간의 유쾌함을 기대했던 나의 예상은 깡그리 날아갔지만 나름 소중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기에 책장 한켠에 고이 꽂아 그 감사함을 표하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