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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 - 독신여성의 정조론를 읽고 나서 쓰는 후기입니다... 가격은 몇천원 남짓한 책이지만.. 한번쯤은 시간을 내서 읽어 볼 만한 책입니다... 단어나 표현들이 조금 낯설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이해하는데 크게 어려운 점은 없었습니다. 적극 추전합니다. 꼭 읽어보세요. 시간 내서 꼭 읽어보세요. 강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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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貞操觀念을 지키기 爲하야 神經衰弱에 들어 히스테리가 되는 것보다 돈을 주고 性慾을 풀고 明朗한 氣分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마 現代人의 社交上으로도 必要할 것이오. - 西洋 格言에 和平한 家庭을 이루려면 男便은 아내를 꽃으로 보고 아내는 꽃 핀 것을 自覺하여야 한다고 하였어요. - 西洋 사람의 스윗 홈이 決코 그 男便이나 아내의 힘으로만 된 것이 아니라 男女交際의 自由에 있습니다. 한 男便이나 한 아내가 날마다 朝夕으로 對面하니 싫症이 나기 쉽습니다. 그러기 前에 同夫人을 해가지고 나가서 男便은 다른 집 아내, 아내는 다른 집 男便과 춤을 추든지 對話를 하든지 하면 氣分이 새로워집니다. 그러기에 어느 座席에 가든지 自己 夫婦끼리 춤을 추든지 對話를 하는 것은 失體가 되는 것 입니다. 그럴 듯도 합니다. 그럴 것 아니야요. 밖에 나가서 새로운 氣分 을 收入해 가지고 집에 들어와 그 氣分을 利用하니 스윗 홈이 안 될 수 있어요? 朝鮮에도 次次 그렇게 되겠지요. Take long time 이지요.
- 꽃은 지더라도 또 새로운 봄이 올 터이지. 그것이 기다리는 不可思議가 아니라고 누가 말을 할까. 그날을 기다린다. 그날을 기다린다.
羅蕙錫(1896年~1948年)은 日帝强占期와 大韓民國의 畵家이자 作家, 詩人, 彫刻家, 女性運動家, 社會運動家, 言論人, 女性 知識人으로 評價를 받았다. 本貫은 羅州, 號는 晶月이다. 朝鮮 仁川府 水原郡 水原面 新豊里(現 京畿道 水原市 八達區 行宮洞) 出生으로 水原 三一小學堂과 서울 進明女學校를 卒業한 後, 日本의 女子美術專門學校에 留學하여 西洋畵를 專功했다. 歸國 後에는 貞信女學校 美術敎師를 지내기도 했고, 金一葉과 함께 雜誌 <新女子>를 創刊, 發行하기도 했다. 大韓民國의 1代 페미니스트라고도 불린다. 그女는 日本 留學 當時 읽은 女性雜誌를 通해 女性 啓蒙에 關心을 가지게 되었으며 以後 男女 平等과 女性의 權利, 當時 社會의 問題點들을 批判하는 글들을 投稿하는 等 多樣한 社會運動을 展開하였다. 그러나 한便으로는 이러한 行步가 極端的으로 女性優越主義的이고 過激하다는 批判도 있으며, 特히 親子息에 對한 그女의 態度나 崔麟과의 不倫 行爲를 비롯한 그女의 私生活은 當代에 많은 批判거리가 되었다. 또한 獨立 運動家라는 評價와 親日이라는 論難이 共存하고 있으나 大體로는 둘 다 否定되는 便이다. |
| 평소 친한사이로 지내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숨김없이 나눠오던 K와 언니S. 어느날 K는 언니S에게 자신의 연애편지를 대신 써달라는 부탁을 하게되고, 이전부터 동생 K와 그녀 의 약혼자인 Y의 사랑이야기를 자주 들어온 S는 동생과 이런저런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대신 대필해서 한 장 써주기로 한다. 이후 언니가 부탁을 들어준것이 고마웠던K와 그녀의 약혼자Y와 함께 식사자리를 가지게 된 S는 그 식사자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묘한 느낌을 받게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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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貞操觀念을 지키기 爲하야 神經衰弱에 들어 히스테리가 되는 것보다 돈을 주고 性慾을 풀고 明朗한 氣分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마 現代人의 社交上으로도 必要할 것이오. - 西洋 格言에 和平한 家庭을 이루려면 男便은 아내를 꽃으로 보고 아내는 꽃 핀 것을 自覺하여야 한다고 하였어요. - 西洋 사람의 스윗 홈이 決코 그 男便이나 아내의 힘으로만 된 것이 아니라 男女交際의 自由에 있습니다. 한 男便이나 한 아내가 날마다 朝夕으로 對面하니 싫症이 나기 쉽습니다. 그러기 前에 同夫人을 해가지고 나가서 男便은 다른 집 아내, 아내는 다른 집 男便과 춤을 추든지 對話를 하든지 하면 氣分이 새로워집니다. 그러기에 어느 座席에 가든지 自己 夫婦끼리 춤을 추든지 對話를 하는 것은 失體가 되는 것 입니다.
그럴 듯도 합니다. 그럴 것 아니야요. 밖에 나가서 새로운 氣分 을 收入해 가지고 집에 들어와 그 氣分을 利用하니 스윗 홈이 안 될 수 있어요? 朝鮮에도 次次 그렇게 되겠지요.
Take long time 이지요.
- 꽃은 지더라도 또 새로운 봄이 올 터이지. 그것이 기다리는 不可思議가 아니라고 누가 말을 할까. 그날을 기다린다. 그날을 기다린다.
羅蕙錫(1896年~1948年)은 日帝强占期와 大韓民國의 畵家이자 作家, 詩人, 彫刻家, 女性運動家, 社會運動家, 言論人, 女性 知識人으로 評價를 받았다. 本貫은 羅州, 號는 晶月이다. 朝鮮 仁川府 水原郡 水原面 新豊里(現 京畿道 水原市 八達區 行宮洞) 出生으로 水原 三一小學堂과 서울 進明女學校를 卒業한 後, 日本의 女子美術專門學校에 留學하여 西洋畵를 專功했다. 歸國 後에는 貞信女學校 美術敎師를 지내기도 했고, 金一葉과 함께 雜誌 <新女子>를 創刊, 發行하기도 했다. 大韓民國의 1代 페미니스트라고도 불린다. 그女는 日本 留學 當時 읽은 女性雜誌를 通해 女性 啓蒙에 關心을 가지게 되었으며 以後 男女 平等과 女性의 權利, 當時 社會의 問題點들을 批判하는 글들을 投稿하는 等 多樣한 社會運動을 展開하였다. 그러나 한便으로는 이러한 行步가 極端的으로 女性優越主義的이고 過激하다는 批判도 있으며, 特히 親子息에 對한 그女의 態度나 崔麟과의 不倫 行爲를 비롯한 그女의 私生活은 當代에 많은 批判거리가 되었다. 또한 獨立 運動家라는 評價와 親日이라는 論難이 共存하고 있으나 大體로는 둘 다 否定되는 便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