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목욕을 하지않는다. 샤워는 최근 읽은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첫 문장을 가진 소설이었다. 나와 가장 가까운 가족이 갑자기 샤워를 거부한다는 설정이 황당했지만, 동시에 어서 다음 장을 넘겨보고 싶게 만들었다. 이쓰미는 어느날부터 샤워를 하지 않는 남편 겐시에게 씻었느냐 물어보고, 그는 이제부터 목욕을 하지 않으려 한다는 충격적인 대답을 태연히 내뱉는다. 깨끗하게 몸을 씻는다는 건 오늘의 우리에겐 너무나 당연해져서 난 이 문장을 읽고 이제부턴 밥을 먹지 않겠다든다 잠을 자지 않겠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샤워를 거부하며 시간이 갈수록 더해가는 겐시의 "더러움"을 묘사하는 부분은 그저 줄글일 뿐인데도 소름돋을 정도로 불쾌하게 느껴졌다. 나는 '샤워를 안 하고 살 수 있는거야?' 라는 지극히 현대적인 인간으로서의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인간이 매일같이 몸을 깨끗이 유지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되지 않은 일이다. 불과 백년전만 해도 매일 깨끗한 수돗물로 몸을 씻는다는 것은 필요하지도 가능하지도 않았다. 우리는 왜 샤워를 하는가? 고민해 본적 없는 질문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 본질적으로는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기 위해서 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과하게 깨끗이 씻는 이유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샤워는 인간관계의 필요조건이 된 것이다. 우리는 샤워를 정말 좋아해서, 너무나 필요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해야하니까 습관처럼 아침마다 욕실로 향하는 것뿐이다. 우리의 인간관계도 그와 같다. 정말 좋아서, 필요해서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습관적으로 인사하고, 껍데기뿐인 피상적인 만남을 가지고, 거짓으로 꾸며진 SNS에 좋아요를 누른다. 그냥 샤워하는 것 처럼. 샤워를 거부하는 겐시는 그 결과 직장에서도 해고되고 계곡을 찾아 시골로 이사하기까지 한다. 기존의 인간관계를 거부하고 달아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는 수돗물에서 빗물로 거기서 다시 강물로, 더 자연스러운 물을 찾아 도망친다. 이 도피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쓰미의 반응이었다. 만약 지금 나와 같이 사는 가족이 갑자기 그런 소리를 한다면 나는 강제로 물에 던져 넣던가 그가 미쳤다고 생각하고 병원에 데려갈 것이다. 하지만 이쓰미의 선택은 나와는 달랐다. 그녀는 겐시가 샤워를 했으면 바라지만 그가 생수나 빗물로만 씻는 모습을 나름 침착하게 지켜본다. 이쓰미는 겐시를 미친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심지어 자신도 며칠간 샤워를 하지 않으면서 겐시를 이해하려 노력해 보기도 한다. 나는 어쩌면 이쓰미도 겐시처럼 과감하게 인간관계를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고 생각했다. 겐시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았던 이쓰미는 그가 미치지 않았다고 믿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수돗꼭지만 돌리면 깨끗한 물이 콸콸 쏟아지는 것처럼 너무나 손 쉽게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또 그래야 하는 세상이다. 우리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는 이 물이 진정 깨끗한지 한 번 돌아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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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야. 샤워 못하겠어. 그냥 너무 싫어.” 어느 날부터 남편이 씻지 않는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가고 있다. 아쿠타가와상 수상 작가 다카세 준코 화제의 대표작! 어느 날부터 남편이 몸을 씻지 않는다. 목욕은 이제 안 하려고. 물에서 소독약 냄새가 나. 몸에 닿으면 가렵고. 남편은 비 오는 날 밖에 나가 온몸을 흠뻑 적시는 것으로 씻기를 대신한다. 나는 남편이 갈 정신과를 알아보다 그만둔다. 냉정한 말을 서슴지 않는 시어머니와도 거리를 둔다. 이 온화한 사람과 결혼하고 함께 살면서 이제 내 인생에 예기치 못한 일 따윈 없을 것 같았는데…… 그렇게 닷새, 열흘, 한 달이 지나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