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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제와 뽀루뚜까 아저씨의 관계가 현실이 되는 곳 : '학교'【우리반 일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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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 때 무척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아이였다. 발표 수업이 있는 날에는 전날 잠들기 전부터 걱정이 앞섰고 당일이 되면 등교한 시간부터 안절부절못하며 무엇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막상 발표 시간이 되면 얼굴이 새빨개지고 목소리는 덜덜 떨려 나왔으며 그전까지 달달 외웠던 발표 내용이 새까만 먹지가 되는 경험도 수없이 했다. 그만큼 남 앞에 서는 걸 부끄러워했으며 수업
"제제와 뽀루뚜까 아저씨의 관계가 현실이 되는 곳 : '학교'【우리반 일용이】" 내용보기

 

나는 어릴 때 무척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아이였다. 발표 수업이 있는 날에는 전날 잠들기 전부터 걱정이 앞섰고 당일이 되면 등교한 시간부터 안절부절못하며 무엇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막상 발표 시간이 되면 얼굴이 새빨개지고 목소리는 덜덜 떨려 나왔으며 그전까지 달달 외웠던 발표 내용이 새까만 먹지가 되는 경험도 수없이 했다. 그만큼 남 앞에 서는 걸 부끄러워했으며 수업 시간에 자율적으로 내 의견을 표출해본 적도 없다. 나는 자연스럽게 조용한 아이, 말수가 없는 아이로 인식되었고 방학식 때마다 손에 쥐어지는 통지표에는 그런 내 모습이 적나라하게 기록되고는 했다. 그렇게 조용한 아이였다 보니 친구들과 우정을 쌓기도 쉽지 않았다. 살갑게 다가오는 친구 몇몇에게만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마음 한 켠을 내어주고는 했던, 지금 성인이 된 내가 생각해도 그게 과연 내 어린 시절의 모습이었던가 하고 의아할 때도 있다. 내 초등학교 시절만 해도 한 반에 기본 50명의 인원이 공부하던 때이다. 이 많은 아이 한 명 한 명을 담임 한 사람의 힘으로 똑같이 챙기기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자연적으로 '편애'란 단어가 아이들의 입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머니들의 치맛바람이 있었다. 누구의 어머니가 학교에 왔다 간 다음 날부터는 그 누구를 대하는 선생님의 태도가 달라지고는 했던 걸 어린 눈에도 분명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엄마를 학교에 오시라 할 수 없었다. 아니 말은 할 수 있었지만 직장을 다니셨기 때문에 시간과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저학년 때는 대부분의 아이들 어머니가 학교에 다녀가시는데 나만 그렇지 않아서 차별 대우를 받을까 겁이 났었다. 그래서 더 소극적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내게 조금의 용기를 불어넣어 주셨던 선생님 한 분이 계시다. 누구나 학창 시절에 가장 기억에 남을만한 은사님 한 분 정도는 있을 테지만, 나에게 가장 처음으로 무언가를 잘한다고 적극 응원을 해주셨던 분이었기에 더 기억에 남는다. 대개 말수가 없는 아이는 자신을 표현할 대체물을 찾기 마련이다. 나에게는 글쓰기가 일종의 표현 수단이었다. 그래서 대다수 아이들이 싫어하는 일기 쓰기 같은 숙제도 매일 잠자기 전에 꼬박꼬박 썼고 방학 때도 가장 좋아하는 숙제가 탐구 생활 채워넣기 다음으로 일기 쓰기였을 정도다. 어느 날 종례 시간, 아직도 그날을 잊지 못한다. 소극적인 한 아이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고 고개는 푹 숙인 채 귀까지 달아오른 얼굴을 들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내 가족이 아닌 타인이 내 글을 칭찬하고 아이들 앞에서 읽어주었던 날이다. 그날을 계기로 선생님은 내 일기, 글 한 줄에도 큰 관심을 보여주셨다. 선생님의 관심과 애정 덕분이었는지 나는 매번 글짓기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는 했다. 좋은 책은 권해주시고 글에 대한 첨삭도 잊지 않았으며 글 쓰는 습관을 게을리하지 말라고 격려해주시고는 했던 나의 선생님... 그때는 너무 어려서 그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잘 몰랐다. 성인이 되어보니 알겠다. 내가 그때 선생님께 무엇보다 가장 감사했던 건, 칭찬과 격려 이전에 사람 대 사람 간의 애정을 기초로 한 '관심'의 표출이었다는 걸. 그때를 계기로 나는 조금은 남들 앞에 서는데 용기 낼 수 있었고 타인과 동화되는 법을 알아갔으니 말이다. 아이들에게는 무엇보다 관심과 격려의 힘이 얼마나 큰지 지금, 어른이 되어서 돌아보는 계기를 가진다.

 

 

서로를 가슴으로 끌어안은 아이들과 선생님의 이야기.

제제와 뽀루뚜까 아저씨의 관계가 현실이 되는 곳 : '학교'

 

『우리반 일용이』는 그런 선생님들의 이야기다. 아니 아이들을 가슴으로 끌어안은 선생님과 그런 선생님들을 있게 한 아이들의 이야기다. 이 책의 사연을 통해 학창 시절을 반추해보는 감상 어린 경험도 했지만, 무엇보다 나를 뭉클하게 했던 건 아직, 아이들의 순수는 사라지지 않았다는 데 있다. 요즘 아이들은 세속의 때에 물들어 어른보다 더한 행동을 일삼는다는 주위 사람들의 말과 매스컴을 통해 들려오는 사실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확인받는 시간이었기에 더 가슴이 따뜻해짐을 느꼈다. 30년에서 불과 2~3년 전 사연들까지 쭉 읽어보며 참 다행이다 싶었다. 아직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리 삭막한 곳은 아니라는 데에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8~90년대 시대상을 보는 것 같은 어려운 아이들의 사연에서는 눈물이 앞을 가렸고 한 반에 꼭 한두 명씩 있는 괴짜 아이들의 4차원 세계는 나를 까르르 웃음 짓게 해주었다. 가끔, 요즘 교육계의 현실이 어쩌니, 아이들의 인성이 어떻다느니 하는 말을 들으면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편치만은 않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무턱대고 그들만 손가락질할 것은 아니라는 걸 새삼 상기한다. 어른이 바로 서야 아이들이 올곧게 자란다는 옛말은 그른 게 하나도 없다. 사람을 품어줄 넓은 아량이 없는 사람이 어찌 아이들의 여린 속마음과 순수성을 들여다볼 수 있을까. 이해의 폭과 관심의 표출이 아이들을 바로 서게 할 수도 있고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우리반 일용이』는 전해준다. 그리고 이 안에 있는 아이들의 해맑은 순수와 생에 대한 의지가 어른들에게 본보기가 된다는 걸 부정하지 못하겠다.

 

열한 살짜리 소녀 가장 민희가 보여 준 삶에 대한 자세는 나에게 많은 깨우침을 주었습니다. 내 생활을 밑바탕부터 되돌아보게 했으며, 나보다 가난하거나 불행하게 보이는 이웃을 동정하는 눈이 아니라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마음으로 행동해야 함을 알게 했습니다. 나아가 나는 민희한테 어떤 환경에서도 삶에 대한 희망과 믿음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용기를 또렷하게 배웠습니다.-139p (민희 이야기)

 

저에게 가장 많은 걸 가르쳐주신 선생님, 저에게 가장 큰 자신감을 내게 해 주신 선생님, 저에게 가장 큰 용기를 주신 선생님도 바로 저의 지금 선생님. 제가 중학생이 되어도 고등학생이 되어도 대학새오가 어른이 되어도 선생님을 잊지 못할 거에요. 선생님, 저의 선생님. 제제의 뽀르뚜까 같은 선생님.-235p(일용이)

 

"나 같은 건 이 세상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요."-241p (호민이)

 

 

 '삶이 그리도 고단했던 건, 절대 너희의 잘못이 아니란다...'

 

어른들에게서 파생된 상처로 자꾸만 자기만의 고치 속으로 파고들려는 아이들을 지켜봐 주며 천천히, 조금씩 글로라도 드러내게 하는 선생님들의 다독임이라는 인내는 종래에 다디단 열매를 선사한다. 나 같은 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며 눈물 콧물을 쏟으며 악다구니를 쓰던 호민이... 어머니의 재가 때문에 없는 존재가 되어야 했던 일용이... 비가 오는 날이면 세들어 사는 지하실 방 물을 종일 퍼 나르느라 허리 펼 틈도 없는 5남매의 가장 민희... 무엇이 이 아이들의 삶을 이토록 아프고 고되게 했을까. 어른들이었다. 어른들 삶의 고단한 무게를 아이들에게 전가했고 그 무게를 고스란히 떠안은 아이들이 아파했다. 그런데 모순되는 건 그런 아이들을 다독이고 지켜봐 주는 이들 또한 선생님이라는 이름의 어른들이라는 거다. 부모에게서 방치되어 세상이 무서웠던 아이들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잃어버리는 법이다. 그 아이들을 이끌어줄 수 있는 건 결국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부대끼는 선생님과 친구들밖에 없다. 하지만 스스로 만든 벽은 그들의 손을 잡기까지도 힘에 부친다. 그런 아이들이 점차 세상과의 단절에서 화합되어 가는 여정을 지켜보는 과정은 결코 즐겁지만은 않았다. 왜냐하면 이 아이들의 현실적 고통의 무게가 너무나 커 보였기 때문이다. 교사 한 사람만의 힘으로 이 아이들의 삶을 180도 바꿔줄 수는 없는 것이다. 단지 지켜봐 주고 넘어지면 일어나라 격려해주는 정도밖에 해줄 수 없음에 더 마음 아프다 말하는 여러 선생님의 한탄에 나조차도 목이 멨다. 그러나 이런 교사들이 있어 아이들이 바르게 인도될 수 있으니 이 또한 감사하고 또 감사할 일이다. 『우리반 일용이』 속 교사와 아이들의 모습에서 깨달은 건 아이들은 스스로 치유의 정화력을 가지고 있는 귀한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어른보다 더 삶의 가치를 충실히 살아내고, 거리낌 없이, 사심 없이 받아들이는 천사들. 이 아이들의 이야기 하나하나가 어찌도 마음에 콕콕 박혀 왔는지 모른다. 스스로 일어날 용기를 가진 아이들이기에 더 그랬을 것이다. 길게는 80년대, 나와 함께 자랐던 친구들의 이야기, 그리고 근래의 아이들 사연까지. 시대는 달라지고 시간은 흘러도 아이들의 순수와 그에 따른 아픔은 여전하다는 걸 새삼 확인하는 시간은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다독임을 건네고 싶게 했다.

 

구 자행 선생님 이하 대부분의 교사가 자신들이 아이를 감싸고 이끌어준 게 아니라 오히려 아이들에게서 배운다고 했다. 하지만 이 책의 사연들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아이들이 그렇게 나아가기까지 잔소리하고, 때로는 밉다 싫다 힘들다고 말들 해도 그 속에는 애정에서 기인한 마음과 관심이 있었기에 이 아이들이 스스로 나아갈 수 있었다는 걸. 얼마나 울었던지 눈이 퉁퉁 붓고 말았다. 요즘에는 내 어린 시절처럼 환경이 매우 어려운 아이들은 없을 거라 안이하게 생각했나 보다. 그런데 아니었다. 더 어려운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려는 천진난만할 정도로 용기있는 아이들의, 세속에 물들지 않은 모습을 엿보는 순간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다. 연민도 아니며 동정도 아니었다. 그저 따뜻한 슬픔이었다. 그저 예뻤다. 그래, 너희가 어른보다 백배 천배는 낫다 싶었다. 친구의 허물을 감싸 안아 줄 수 있는 따듯함, 자신의 허물을 부끄러워하기보다는 용기를 내 살아가려는 아이들, 그 뒤에는 말없이 지켜봐 주고 독려해주는 선생님들이 있었다. 아이들의 상처를 보며 대신 아파 줄 수 없어 힘들어하는 선생님들의 교실 일기 안에서 배우고 깨달아야 할 것이다. 선생님들의 포기하지 않는 의지와 아이들의 끈질긴 재생력 뒤에 피어오르는 소통과 관심의 표현이, 사람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졌는지 말이다. 그리고 참 대단한 직업임을 처음으로 느꼈다. 나 같은 일반인이 감당하기 벅찬 이 아이들의 조력자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는 선생님들. 그 걸음에 화이팅을 보내고 싶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너무 궁금해졌다. 이 사연 속 아이들은 지금,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그 시절 누구와 단 한마디 건네는 것조차 힘겨워하던 나는 잘 살고 있다고. 아마 당신들도 친구들과 선생님의 관심과 사랑 덕에 인생의 항해를 잘 해나가고 있을 거라고 나는 믿는다. 아니 믿고 싶다. 어른의 눈물과 회한과 자책으로 점철된 안타까움을 자양분 삼아 꿋꿋하게 잘 살아가고 있을 거라고 그렇게 믿는다. 책 속의 가장 많은 지면을 차지하는 사연은 역시, 힘겨운 환경 속에서도 오뚝이처럼 살아가려는 아이들과 몸과 정신이 조금 불편하고 아픈 아이들의 이야기였다. 한 번 더 눈길이 갈 수밖에 없는 아이들, 그러나 왜 너희는 남들과 똑같지 못하냐는 안타까움과 한탄 섞인 눈물 속에서 그들이 나름의 방법으로 적응하고, 또 서로 보듬어 안아주던 친구들의 모습까지. 잘 다듬어진 글이 아닌 너무도 일상적인 일기 같은 글이 전하는 파장은 참으로 크다. 사람의 마음을 파고드는 글은 멋들어진 수사로 포장한 글이 아닌, '글쓰기회' 선생님들이 추구하는 사실적이고도 진실한 글이자, 우리들의 진솔한 이야기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경험한다.

 

남들 앞에 서길 극도로 두려워하던 한 아이가 있었다. 그게 바로 나다. 초등학교 시절의 내 모습이다. 그때 그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나는 한참을 더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겉도는 아이였을 테고 어쩌면 지금까지 그랬을지도 모른다. 작은 것이라도 잘하는 걸 독려해주는, 그것으로 아이들은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준비를 하기 충분하다는 걸 배운다. 이 책을 읽으며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건 선생님이라는 어른도 무조건 聖人이 될 수 없다는 걸, 자라나는 아이들을 통해 한 인간의 사실적인 감정의 고조를 내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제제처럼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아이들이 학교, 교실에서 뽀루뚜까 아저씨 같은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우리반 일용이』를 읽고 나서인지, 나의 뽀루뚜까 선생님이 무척 보고 싶은 날이다. 질책과 훈계보다는 격려와 다정함으로 우리를 품어주셨던 선생님. 그런 선생님도 딱 한 번 매를 드신 일이 있었다. 어린 시절에는 누구나 한 번쯤 남의 물건이 탐나게 마련이다. 도난 사건 한 번 없던 학년이 없었을 정도였으니. 반에서 처음이자 유일하게 도난 사건이 일어난 날. 아이들 눈을 감게 한 후 선생님은 조용하지만 근엄하게 호소하셨다. 그러나 잃어버린 사람은 있지만 가져간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선생님은 그때 처음, 자로 반 아이들 손바닥을 한 대씩 때리셨다. 나도 물론 맞았다. 하지만 아프지 않았다. 아픈 건 그다음 선생님의 말씀이었다. 아마도 반 아이들을 다 때리지도 못하셨던 것 같다. 아이들 모두는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고 있었지만 나는 알 것 같았다. 그때 선생님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모든 게 나의 불찰이다."라는 말씀 끝에 울먹거리며 떨리던 목소리.... 끝내... 잃어버린 사람만 남았고, 나는 그날 내 귓가를 아프게 맴돌던 선생님의 목소리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1993년, OO초등학교 6~3반 담임이셨던 김O섭 선생님! 16년이라는 학창 시절을 보내며 가장 기억에 남는 저의 선생님, 저의 뽀루뚜까 아저씨! 정말... 보고 싶습니다!!!!!

 

 

 



w*****8 2013.02.28. 신고 공감 18 댓글 27
리뷰 총점 종이책
사랑 꽃이 활짝 피어난 교실을 고대하며 오늘도 교단을 지키는 선생님들의 아이들 사랑에 감동하다.
"사랑 꽃이 활짝 피어난 교실을 고대하며 오늘도 교단을 지키는 선생님들의 아이들 사랑에 감동하다." 내용보기
배우며 가르치는 일을 천명으로 받아들이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교사가 되겠다고 다짐하며 아이들과 함께 생활한 지 23년째다. 단상에 서서 인사말을 전하는 이를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로 지켜보던 시절의 아이들은 이제 삼십 대 중반을 넘어서 함께 한 세월을 추억의 재료로 이야기를 나누며 지낸다.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교사와 학생으로 만나 스
"사랑 꽃이 활짝 피어난 교실을 고대하며 오늘도 교단을 지키는 선생님들의 아이들 사랑에 감동하다." 내용보기

  배우며 가르치는 일을 천명으로 받아들이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교사가 되겠다고 다짐하며 아이들과 함께 생활한 지 23년째다. 단상에 서서 인사말을 전하는 이를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로 지켜보던 시절의 아이들은 이제 삼십 대 중반을 넘어서 함께 한 세월을 추억의 재료로 이야기를 나누며 지낸다.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교사와 학생으로 만나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맺고 간간이 소통하며 살게 된 일도 교실이라는 공간이 하나의 끈으로 이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 저 임용 합격했습니다. 선생님이 늘 응원해주고 지켜봐 주신 덕분입니다.’

  부모와 헤어져 중병을 앓으시던 할머니를 돌보며 지내던 제자가 마음의 의지처를 잃고 방황할 때 그의 등을 토닥거리며 힘내라는 말 한 마디・댓글 한 줄이 힘이 되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교사는 보람을 느낀다.

 

 

   2월 말 한 학기를 마무리하고 새 학기를 계획하는 달 담임이라도 맡게 되면 배정된 아이들 명단을 보고 지난해 말썽을 부리며 문제를 일으키던 아이들을 피해갈 수만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바람과는 달리 지각 대장에 무단결석을 일삼는 녀석이 우리 반에 배정되자 동료 교사들은 우려의 눈길을 보내며 인정사정 봐 주면 안 된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햇볕도 들지 않는 단칸방에서 아버지와 함께 살던 녀석은 궂은 날에는 학교를 무단으로 빠지기 일쑤였다. 전화를 해도 연락이 안 되던 녀석은 2교시 수업이 시작될 즈음에 학교로 나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고 점심을 챙겨 먹은 뒤 한 시간이라도 빨리 학교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강하게 내비춰 대화를 시도하며 그의 반응을 살펴보지만 여의치 않았다. 마음을 비우고 관심을 보이자 녀석은 한 달 남짓 지났을 때 입을 열고 집안 사정을 말하였다. 자신이 갓난애였을 때 어머니와 이별하고 엄마 얼굴도 모른 채로 아버지와 함께 있기 싫어 친구들과 새벽까지 어울려 다니며 지냈던 탓에 뒷날 일어나지 힘든데다 학교에 수업 받고 싶은 마음이 가셔서 결석한다는 말을 전했다. 빗장으로 걸어 둔 마음의 문을 열고 담임의 말을 들으려 하는 아이의 태도에 눈물이 핑 돌아 앞으로의 학교생활을 어떻게 하고 싶은지 물었을 때 고등학교 졸업은 해야겠다는 의지를 보여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라며 희망을 품고 관심을 드러내자 아이는 조금씩 변화해 갔다.

 

 

  결핍된 환경에서 보호자의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존재감 없이 지내는 아이들을 만나 그 아픔까지 사랑하고 감싸주려던 선생님들의 교단일기를 모아 묶은 <<우리 반 일용이>>는 초심을 잃고 매너리즘에 젖어 지내던 자신을 내리치는 죽비처럼 다가온다. 아이들의 모습 이면에 있는 암울한 현실은 밝게 자랄 아이들을 옥죄는 질곡처럼 따라다니며 상처를 남겼다. 가시 세운 고슴도치처럼 타인을 해하며 말썽을 부리던 호민이 버림받기를 거듭하여 가슴에 주홍글씨처럼 자리하는 아픔을 드러내며 자신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부르짖는 아이를 포용하고 서로 다치지 않을 만큼의 거리를 유지하는 선생님의 혜안은 나를 울린다. 이해력이 부족해 학습 부진을 겪는 유진이 모르겠다고 외치며 선생님을 찾는 통에 수업 진행이 힘들 때도 있지만 모든 것을 품고 사랑하는 엄마처럼 선생님은 아이들을 품는다.

 

 

  어머니가 새아버지와 결혼한 뒤 7년 동안 숨겨진 존재로 살아야 했던 일용이 새아버지의 규제 아래 어린 아이가 감당하기 힘든 일을 함께 나누려 했던 선생님을 통해 삶의 희망을 찾았고,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었다는 아이의 일기에 감동하며 교사의 관심과 사랑이 아이들을 살리는 양분으로 자리함을 다시 일깨운다. 비오는 날이면 물을 퍼내느라 결석할 수밖에 없는 열한 살 소녀 가장 민희는 동정을 받기보다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삶에 대한 희망을 저버리지 않고 꿋꿋이 이겨내는 질긴 생명력에서 삶의 용기를 배웠다는 선생님의 글은 고무적이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부모가 이혼을 하고 오갈 데 없는 상황에 놓인 남매가 아버지 고향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난방도 할 수 없는 퇴락한 집에서 함께 지내며 장학금으로 대학을 다니면서도 환경을 탓하기보다는 제대로 잘 수도 없는 아이들이 있는데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이 있어 다행이라던 제자의 얼굴이 떠올라 눈물이 났다. 물질적인 지원을 앞세운 의례적인 값싼 동정보다는 지금의 아픔을 함께 나누며 살아가려는 마음에서 우러난 사랑이 이들에게는 중요한 가치였을 것이다.

 

 

  수많은 교사들은 지금도 아이들이 처한 절망적인 현실에 아파하며 그들의 고독한 생활을 나누려는 마음이 커 변화를 시도하며 희망을 품게 하는 일에 골몰한다. 키가 또래보다 크지만 훌쩍거리기 일쑤인 형준이 비둘기처럼 자유롭게 비상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쓴 글을 보고 또 다른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자신의 마음을 토로하는 글쓰기를 통한 치유는 어둠 속에 갇혀 있는 아이들의 잠재력을 깨어주는 힘을 지녔다. 글자를 모르는 성두에게 낱말을 가르치면서도 진척을 보이지 않자 회의를 느끼고 말썽을 부리던 그를 미워하며 야단쳤던 일을 성찰하는 선생님의 글에서는 등급이 낮은데다 학업에 의욕을 보이지 않는 아이를 닦달할 줄만 알았지 학습법을 제대로 일러주며 벽을 넘어서게 하였는지 반성케 한다. 부모와 생이별을 하고 연로한 할머니와 함께 지내며 틈틈이 농사일을 거들고 지내는 아이들의 고단한 일상을 어루만지며 그들이 지금의 환경을 탓하며 푸념하기보다는 희망을 품고 생활할 수 있는 안내자로 자리해야 할 당위성을 배운다.

 

 

  결핍을 견디어 내던 힘으로 꿋꿋하게 살아 고통의 시간을 디딤돌로 삼아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펼쳐가는 제자들의 일상은 교사로서의 보람을 더한다. 병든 아버지 곁을 떠난 어머니, 아버지의 투병과 죽음으로 고아 아닌 고아로 오갈 데 없는 그를 거두어 준 먼 친척 할아버지의 내복을 마련하기 위해 모아 둔 상수리 자루를 잃어버리고 절규하던 남수가 떠오른다. 제 힘으로 할아버지 내복을 사드리고 싶었던 남수의 당당한 모습은 훗날 공무원으로 민의에 봉사하고 한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으로 변모해 선생님의 안부를 물어와 보람이 더했을 것이다. 십 리를 걸어 다니던 초등학교 시절 비빌 언덕이 없었던 내게 먼저 손을 내밀어 준 선생님은 애정 결핍으로 가슴 곳곳에 아로새겨진 실금을 관심과 사랑으로 치유하여 줬다.

 

  설 연휴를 앞두고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퇴근하고 몇몇 선생님들만 자리를 지키고 앉아 학교 생활기록부를 작성 중이었다. 봉사활동을 입력하고 진로 활동을 입력하려는데 세 명의 졸업생들이 도착했다. 깜짝 방문으로 행복을 선물한 제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자리를 옮겨 술 한 잔을 곁들이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지난 학창 시절 힘들었지만 선생님의 다정한 말 한 마디에 힘을 낼 수 있었다는 말에 진정한 소통은 일상 속 관심과 사랑 속에 자리하였음을 다시 깨닫는다. 교권 추락, 공교육의 위기를 진단하며 학교 교육의 문제가 비화될 때마다 우울함이 더하지만 배우며 가르치는 길을 택한 교사는 주목받지 못하는 학생들이 삶의 희망을 안고 살 수 있는 에너지를 퍼부을 수 있어야 한다. 겉으로는 웃고 떠들며 이야기하더라도 이면에는 음울한 일상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음을 알아차리고 아이들의 고통까지 끌어안고 갈 수 있는 사랑이 전제되었을 때 따돌림 당하던 세희도 우리 반 세희로 자리할 것이다.



n*****9 2013.02.12. 신고 공감 9 댓글 12
리뷰 총점 종이책
밤하늘에 마음을 비추는 별처럼 희망을 주는 선생님들
"밤하늘에 마음을 비추는 별처럼 희망을 주는 선생님들" 내용보기
우리는 옛부터 스승을 어버이와 동일시 여기곤 했다. 성장기를 내내 함께 하는 선생님들이니만큼 과히 틀린 대우가 아닐것이다. 성함은 기억나지 않아도 모든 선생님들이 한 분 한 분 얼굴이며 분위기며 그 분들과 함께 했던 일 년동안의 느낌들이 고스란히 되살아 나곤 한다. 그러나 가끔 돌아봐지건데 참된 선생님은 몇이나 되실까. 궁금하기도 하다. 내가 어렸을 적에 '행복이 성적순
"밤하늘에 마음을 비추는 별처럼 희망을 주는 선생님들" 내용보기

우리는 옛부터 스승을 어버이와 동일시 여기곤 했다. 성장기를 내내 함께 하는 선생님들이니만큼 과히 틀린 대우가 아닐것이다. 성함은 기억나지 않아도 모든 선생님들이 한 분 한 분 얼굴이며 분위기며 그 분들과 함께 했던 일 년동안의 느낌들이 고스란히 되살아 나곤 한다. 


그러나 가끔 돌아봐지건데 참된 선생님은 몇이나 되실까. 궁금하기도 하다. 내가 어렸을 적에 '행복이 성적순은 아니잖아요' 라는 영화가 있었다. 이미연이 주인공으로 나왔던 영화 내용은 딱히 생각이 나질 않는데 영화가 나온지 몇 년 후던가 원작을 읽었고 원작의 내용은 기억이 나니 영화도 원작과 같으리라 여길뿐이다. 당시 '행복이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에서는 8학군의 이야기가 나왔었다. 이런 세상이 있구나 싶게 강남 8학군의 풍경은 살벌했고 선생님이 아니라 교사도 아니오 강사보다 못한 선생들이라 여겼던 씁쓸한 내용이었다.


어린시절 유독 위인전기집을 많이 읽었던 탓인지 역사성적은 좋았으나 한편으로는 유교사상이 나도 모르게 뿌리박혀 스스로가 보수적으로 생각되는 면이 참으로 깊었다.  그 중하나가 선생님들은 당연히 존경해야하는 대상이라 생각했던 것인데 한 해 한 해 머리가 굵어지면서 문득 떠올랐을때 기억들이 참된 스승이라 하지 못할만한 기억들로 재구성될때는 참으로 당혹스럽기도 했다.


아이들이 부모를 무조건 따르듯이 학생들은 어릴수록 선생님을 무조거 따르게 된다. 하루종일 초롱초롱 집중하는 대상이고 부모 외에 가장 오랜 시간을 자주 보내는 어른이다보니 내면에서 솟아나는 친밀함 또한 높아질 수밖에. 그랬던 선생님들이 사실 그리 바람직하지 못했던 모습들로 떠올려질때면 새삼 상처가 되기도하고 이미 상처로 남아있던 기억은 또 한번 생채기를 내기도 했다. 그렇다고 내가 선생님들에게 특히 담임 선생님들에게 모진 상처를 받은 것은 아니다. (나쁜 추억만을 준 선생님도 다수 있긴 하다)다만 선생님들에 대한 나의 환상이 깨졌을 뿐이다. 


생각해보면 새로운 학년이 될때마다 새로운 반에는 특이한 아이들이 꼭 한 명씩 있곤 했다. 유독 산만한 아이, 바보라고 놀림을 받을 정도로 어벙한 아이, 집이 몹시 가난한 아이, 학년이 올라갈 수록 특이한 아이들은 공부하기 싫어하고 껌좀 씹으며 무단 결석에 가출까지 하는 문제아라고 부르는 아이들로 바뀌어 갔다. 그런 아이들을 대하는 선생님들의 태도는 선생님들마다 달랐다. 


초등학교 5학년 담임선생님은 아버지같은 느낌이 많이 나는 분이셨는데 아이들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특히 남자아이들을 매로 다스리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심하게 나무란만큼 아이가 오래 학교로 돌아오지 않으면 직접 찾아가 설득을 하시기도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를 돕기도했는데-당시 학교 방침이었던 것 같다- 그 때 선생님은 항상 특정 아이를 위해 모금을 하셨다. 그리고 반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모금된 학용품등을 건넸는데 그 아이가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폭발했던 기억이 난다. 생각해보면 옛날 많은 선생님들이 가부장적인 아버지마냥 아이들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는것이 아니라 어른의 입장에서만 아이들을 대한 모습들이 많았지싶다.


중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은 촌지를 밝히는 분이셨고 공부를 잘하는 아이와 잘 사는 아이 순으로 아이들을 예뻐하셨다. 유독 나를 별로 안좋아하셨는데 심리적으로 괴롭히길 즐겨하는 스타일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부모님이 맞벌이하느라 학교에 찾아가지 못하니 촌지를 받지 못하고 촌지를 받지 못하니 나를 은근히 괴롭히셨던 분이다. 그 분이 엄마와 통화할때까지 몇 달간을 일주일에 두 세번씩 전화하던 일과 교내 글짓기 대회에서 장원을 해서 아침 전체조회시간에 학년 대표로 상 받으러 나갈때 내게 눈길조차 안주시고 그 일에 관해 단 한마디도 꺼내지않은 일(그러나 예뻐하는 아이들에 대해서는 대수롭지 않은 일에도 칭찬을 했다)은 지금도 싫은 일로 기억된다.


고 1학년때의 담임선생님은 불어선생님이셨는데 아이들 사이에서 별명이 변태였다. 예쁜 아이들을 이유없이 불러다가 개인적인 것을 묻기 좋아하셨고 청소시간에 여자아이들의 뒤태를 대놓고 감상하기도 했으며 성희롱에 해당하는 말들을 자주 해대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권위를 내세우며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에 대해 비아냥을 늘어놓길 좋아하고 여학생들의 손바닥을 회초리로 때리는 것을 즐기는 남자선생님도 있었다. 그 분이 3학년 내내 국어를 담당하자 국어가 그렇게 싫어질 수가 없었다.


초등학교 2학년때 버스 정류장 3개정도의 거리에 있는 시장에 순대 심부름을 시키셨던 임신중이셨던 선생님도 계셨고, 거슬리는 말대답을 한다고 반 친구의 뺨을 사정없이 갈겨대던 여선생님도 계셨고, 해골만큼 퀭하게 마르신 연세가 많은 남자선생님은 자주 통통한 아이의 손을 쓰담는걸 즐기셨고 아이들에게 무관심한 선생님도 있었다. 흔히 스승이라 일컫는 선생님들의 자질이 무엇인지 나는 점점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다. 만약에 내 학창시절동안 온통 그런 선생님들밖에 없었다면 나는 학교란 곳을 부정하기만 했을테지만 다행스럽게도 진심으로 존경스러운 선생님들이 계셨기에 학교가 부정적인 공간이 되지 않을 수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때 우리반에는 유독 더러운 여자아이가 있었다. 머리는 늘 부시시 헝클어져있었고 얼굴이며 옷은 꼬질꼬질하고 냄새까지 날 정도로 더러웠다. 도저히 간과할 수 없었던 일이 생겼으니 바로 이사건이다. 그 아이의 머리에서 이가 수십마리가 기어다니다못해 벼룩처럼 튀어오르기까지 한 것이다. 아이들은 다들 그 아이를 꺼려했고 분담학습 시간엔 거부까지 당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담임선생님은 미인에 상당히 온화한 분이시기도했고 평소 아이들에게 글짓기와 서예와 그림그리기를 자주 시키시는 분이셨다.  우리는 모두 담임선생님도 그 아이를 싫어할 것이라고 여겼다. 선생님은 그 아이를 불러 많은 이야기를 나누셨고 그 아이의 집에도 여러번 찾아가셨다. 선생님이 따로 말씀하시지 않아서 우리는 그 아이의 집 사정이 어떤지 몰랐지만 친분이 있는 아이를 통해 들은바에 의하면(선생님이 그 아이의 집을 방문한 것도 그렇게 알았다) 선생님이 그 아이의 집을 방문해서 여러가지를 살펴보고 샴푸와 옷도 사다주셨다고 했다. 학교에서는 쉬는 시간마다 그 아이의 머리를 검사하고 빗으로 머리를 빗어서 이를 잡아 주시기도했다.


중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은 교사가 되신지 오래 되지 않은 젊은 분이셨다. 화장도 하지 않으셨고 옷차림이 매우 수수하셨다. 그 때문에 아이들 틈에 계실때면 구분이 잘 가지 않기도 했다. 내가 다니던 사립중학교는 독특함이 많은 곳이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매일 대청소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냥 대청소가 아니라 책상을 싹 밀어내고 비질을 한 이후 세제 푼 물을 뿌려 싹싹 닦은 후에 물기를 제거하고 그 곳에 왁스칠을 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무슨 일제시대 학교같다) 보통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청소를 지시하고 청소가 끝날때까지 교무실에 계셨다. 학기초였고 나는 친구와 함께 어째서 선생님들은 함께 하지 않는건지를 열심히 토로하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내 앞에서 담임선생님이 튀어오르며 내 이름을 호명하시고는 "○○○! 너 청소안하고 떠들래?" 하시는게 아닌가 그야말로 혼비백산했다. 선생님이 우리와 함께 구부리고 앉아 열심히 청소하시는게 아닌가. 선생님은 칭찬은 아끼지 않으시고 매를 드실때도 매에 감정을 싣지 않으셨다. 아이들에게 경각심을 주기위해 매를 드셔야할때면 우시기도했다. 쉽게 돈주고 사지않고 집에서 못쓰는 수건으로 만들어간 걸레를 칭찬해주시고 교과서와는 상관없는데도 철학자를 아는 나를 대견해해주셨던 분이기도 하다. 아이들에게 소외당하는 아이에게 특히 신경을 써주셨고 엄청난 문제아를 끝까지 포기하지 못하셔서 가슴 아파하셨던 분이다.


생각해보면 흔히 학창시절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빛나는 소중한 시간이라 일컬어지는데 학창시절을 돌이켜봤을때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았던 것은 결코 빡빡한 수업때문만도 아니었고 아이들과 치열한 경쟁때문도 아니었다. 가장 힘든 것은 학기초에 결정됐다. 바로 어떤 선생님을 만나느냐의 문제였던 것이다. 선생님도 한 인간이며 서툴고 감정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직업보다 괜찮은 직업으로써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인격체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위치에 있으므로 우리는 교사라는 직업에 남다른 자질의 기대를 품게 된다. 우리가 옛부터 생각하던 인생의 길라잡이가 되어줄 어른, 스승으로써 말이다. 가끔은 사회가 점점 출세와 성공을 덕목으로 하는 분위기탓에 선생이라는 직업도 단순히 직업으로만 변화되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조심스러워지도 하기도하지만 존경할 만한 선생님이 옛날에는 더 많았을까 떠올려보자면 내 어린시절들이 떠오르고 그건 아니었지 싶다.


우리반 일용이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복잡한 가정사정등으로 세상에 마음의 문을 닫고 삐뚤어진 길로 가는 아이들을, 많은 사람들이 문제아라 치부하고 몇 번 형식적인 제스추어만을 보인채 포기해버리는 아이들을 가슴아파하며 열심히 함께 한 선생님들의 이야기다. 우리반 일용이의 아이들은 내가 학창시절 함께 했던 아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때로는 나도 덩달아 꺼리더 아이들이었으며 때로는 내가 좋아하던 친구들이기도 했다. 진정 가슴으로 그 아이들과 함께 하는 선생님들의 이야기다. 99마리의 양도 소중히 여기고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도 찾아나서는 마음을 가진 선생님들을 보며 나 역시 백 명 중 한 명의 진정한 선생님들이 주는 희망적인 메세지에 마음을 녹이게 된다. 우리에겐 좋은 선생님들이 많이 있다고. 좋은 선생님들께 감사한 마음이 몽실몽실 피어오르며 말하고 싶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2***s 2013.04.30. 신고 공감 6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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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반 일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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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이 반에는 냄새나고 더러운 아이가 있다고 한다. 부모님은 맞벌이로 늘 저녁 늦게 들어오고, 장남인 그 아이가 동생들을 챙기고 생활하느라 자신을 돌볼 시간이 없다. 산만하고 정신없는 그 아이는 아직 한글을 모른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는데 그럴 때마다 주먹으로 모든 일을 해결하려고 해서 같은 반 아이들과 트러블이 있다고 한다. 작은 아이 역시 그 아이와 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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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이 반에는 냄새나고 더러운 아이가 있다고 한다. 부모님은 맞벌이로 늘 저녁 늦게 들어오고, 장남인 그 아이가 동생들을 챙기고 생활하느라 자신을 돌볼 시간이 없다. 산만하고 정신없는 그 아이는 아직 한글을 모른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는데 그럴 때마다 주먹으로 모든 일을 해결하려고 해서 같은 반 아이들과 트러블이 있다고 한다. 작은 아이 역시 그 아이와 몇 번 같은 반을 했고, 그러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 아이의 가정환경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 아이의 모든 행동이 이해할 수 없는 민폐 행동이었다면 이제는 그 아이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한창 사랑받고 돌봄을 받아야 할 나이에 동생들을 챙기는 것이 작은 아이 눈에는 안쓰럽게 비춰진 모양이다. 그래서 그 아이와 더 사이좋게 지내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이런 아이들이 아직 각 학교마다 몇 명씩 있는 모양이다. 텔레비전에서, 주변에서 모두 소황제 대하듯 아이들을 사랑하고 과잉보호하는 부모들이 넘쳐나는 것 같지만 우리가 모르는 사각(?)지대에는 아직 사랑 받기를 갈구하며 삐뚤어지길 갈망(?)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 하다. 사랑받는 것이 늘 당연하기만 했던 작은 아이는 그 친구를 통해 생각이 달라졌다고 한다. 우리가 모르는 곳에, 당연하게 생각했던 일들이 결코 당연하지 않은 아이들이 있다는 것. 그건 작은 아이에게 또 다른 충격이었던 샘이다.

어제 논술 시간에 아이들은 글을 쓰고 나는 이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이 책의 좋은 구절을 아이들에게 읽어주었다.

 

사랑은 하나하나가 소중하다고 하는데 겉으로 보면 다 똑같아 보인다. 별로 소중한 것 같지도 않다. 때로는 말도 안 듣고 멍청한 짓을 해서 화가 나기도 한다. 그런데 조디처럼 이렇게 생각을 글로 드러내면 소중해 보인다. 그래서 나는 자꾸 글을 쓰자고 하는 것이다 (92)

글을 쓰는 것이,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늘 어렵다고 말하지만, 글로 생각을 드러내지 않으면 각자의 생각이나, 자신이 가진 품을 아무도 알 수 없다. 아이의 생각을 알고 나면 엉뚱한 행동마저도 이해할 수 있는 게 사람이다.

 

이 책에는 다양한 아이들의 사연들이 소개 되어 있다. 모든 이야기들이 미소 지을 수 있는 아이들의 순수함만을 이야기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아픈 사연들이 더 많다. 죽은 엄마를 그리워하는 아이도 있고, 부모의 매질로 인해 삐뚤어진 아이도 있고, 집 나간 엄마와 술주정꾼 아빠 사이에서 갈팡질팡 아파하는 아이도 있고, 자폐아인 아이도 있고, 부모 없이 어린 아이들만 지하 셋방에서 생활하는 아이도 있다. 희망도 없고, 사랑도 없는 그곳에서 선생님의 노력만으로 그 아이들을 평범한 궤도 안으로 편입시키기엔 아무래도 무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아무것도 놓고 싶지 않은 선생님들은 노력할 수밖에 없다. 비록 1년의 담임이지만 사랑을 주고 싶어 한다.

 

나는 엄마가 되고 부터는 마음이 아픈 아이들을 보면 내 자식의 아픔처럼 눈물이 난다. 순수하고 착한 아이들을 그렇게 만든 그들의 부모가 원망스럽고, 문제아로만 보려는 선생님도 원망스럽고, 루저로 낙인 찍어버리는 이 사회도 화가 난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찾아보지 않고 모든 잣대를 공부 못하는 문제아로만 생각하는 그 가이드라인에 화가 난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이해는 못해줘도 마음에 상처는 주지 말아야 되는데 그러려면 선생들도 정신 바짝 차려야지 이러다간 큰일 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36) 어른들이 아이들을 평가하는 잣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어른이라는 이유로 선생님이라는 이유로 아무 생각 없이 말을 했던 것은 아닐까? 분명... 생각해 봐야 한다.

 

책의 1부가 대부분 중 고등학교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라면 2부는 초등학교 아이들의 이야기다. 2부에서는 읽는 내내 눈물이 났다.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의 무거운 짐을 온 어깨에 짊어지고는 그 상처를 어디에 이야기 하지 못한다. 2000년대를 살아가는 지금 현재 어떻게 이런 아이들이 있는지 마음이 아프다. 선생님들의 노력 이전에 가장 기본이 되는 가정이 바로 서지 않는다면 이렇게 아파하는 아이들은 결코 줄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인생 앞에 사연 없는 부모는 없다. 모두가 나름의 사연과 아픔을 갖고 인생을 살아간다. 그 아픔이 무거워 아이들마저 버리는 부모가 있다는 것이 슬프다.

 

너무 이른 나이에 상처만 가득한 아이들. 이 아이들이 그 상처에 매몰되지 않고 이겨나가면 좋겠다. 이 책... 꼭 우리 아이들에게 읽게 하고 싶다.



YES마니아 : 로얄 k*****3 2013.04.18. 신고 공감 5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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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의 한숨과 웃음소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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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실린 내용들은 선생님들의 글쓰기 모임 회보인 <우리말과 삶을 가꾸는 글쓰기>에서 가려뽑은 교실 현장의 이야기다. 아이들을 정직한 글쓰기로 이끌기 위한 선생님들 스스로의 글쓰기 공부 결과물이며, 아이들을 좀 더 믿고 기다려주는 교사와 학부모가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의 호소였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선생님들이 쓴 글쓰기의 내용은 어떤 면에서는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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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실린 내용들은 선생님들의 글쓰기 모임 회보인 <우리말과 삶을 가꾸는 글쓰기>에서 가려뽑은 교실 현장의 이야기다. 아이들을 정직한 글쓰기로 이끌기 위한 선생님들 스스로의 글쓰기 공부 결과물이며, 아이들을 좀 더 믿고 기다려주는 교사와 학부모가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의 호소였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선생님들이 쓴 글쓰기의 내용은 어떤 면에서는 비슷하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행동에 대처하는 자신들의 모습이 어쩐지 부끄럽다. 그 부끄러움을 숨기려하기보다 자기  반성으로 이끌어오고 회지에 내보임으로써 다른 선생님들과 함께 나누고 있다. 그래서 많은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서 오히려 배우는 역할을 자처한다. 아이들이 보여준 어른스러움이나 속 깊은 마음을 들여다보며 아직 여물지 않은 자신의 행동을 반성한다. 그래서 이 책에 있는 이야기들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 아이들의 삶이 바르기를 바라는 마음, 이것이 이 책에 참여한 선생님들이 가진 기본적인 마음이었다.


그 중에서 눈에 띄는 두 가지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많은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상처받고 그 상처 때문에 답답해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교직이라는 직업에 대해 어떤 숭고한 사명감이 느껴진다. 교직도 어차피 먹고 살기 위한 소득을 전제로 하는 직업군이다. 천사가 하는 행위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자식 같은 아이들에게 끔찍한 욕을 듣거나 모욕감을 받을 때면 의욕이 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글쓰기 모임을 통해 공부를 하고 있는 선생님들답게 이 책에 나오는 많은 선생님들의 마음은 따뜻하다. 그 따뜻하고 감동적인 내용들 중에 원종찬 선생님의 <아침 교문에서>는 특이하게 교사의 마음을 날 것 그대로 솔직하게 보여준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 이야기에는 새로 맡은 선도부 담당 교사와 작년부터 선도부를 맡아왔던 학생들 간의 갈등 구조를 담고 있다. 서로 맡은 일을 잘해보려는 것은 분명한데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교사와 아이들은 대립한다. 더구나 아이들에게는 작년에 자신들을 지도했던 선생님이 뒤에 있다. 원종찬 선생님은 이런 현실이 답답하고 아이들 위에 군림하려는 선도반 아이들의 행패가 마치 군부의 위세를 업고 시민들에게 폭압을 저지르는 작은 <완장>들처럼 보인다. 반면에 선도부 아이들은 자신들이 작년과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칭찬은커녕 비난을 받고 있는 현실이 얼떨떨하기만 하다. 자신들이 다른 아이들보다 일찍 등교해서 봉사하는 것은 분명히 칭찬 받을 일인데도 새로 오신 선생님은 그런 모습을 보기보다 자신들이 정당한 행동이라고 생각하며 규율을 어기는 아이들에게 가하는 제제행위에 대해 끊임없이 비난을 하고 있다. 결국 교장선생님의 의지로 선도부는 해체되고 봉사부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이 과정에서 원종찬 선생님은 학교에서 작은 권력을 행사하고 있던 선도부 아이들에 대해 끝까지 곱지 않은 인상을 지우지 못한 채, 이것을 잘 포장하지 않고 그대로 글로 적은 것이다. 처음에 이 글을 읽을 때는 당황스러웠다. 교사라면 잘못된 학생들에게도 결국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원종찬 선생님의 솔직한 글을 통해서 교사에게 천사의 역할을 바라고 있는 학부모의 기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선생님은 천사가 아니라 선생님인 것이다.


책 속에는 이런저런 일들 때문에 힘들지만 그래도 아이들 때문에 웃을 수 있는 선생님들의 이야기가 많았다. 아직도 이렇게 어렵게 사는 아이들이 있을까 싶을 만큼 불우한 아이들을 마음으로 감싸 안는 선생님들을 만나면 나 자신은 그렇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감동을 받는다. 그 중에서 김경해 선생님의 <세희>도 기억에 남는 이야기였다. 세희는 아이들에게 지속적으로 따돌림을 받는 아이였다. 특수반 아이들과 친하다는 이유로, 지저분한 외모로 인해 반 아이 모두가 세희를 외면했다. 선생님은 아무도 없는 세희 곁으로 무심한 척 다가가면서 가끔씩 세희에게 관심을 표현했다. 세희는 그런 선생님의 관심 속에서 차츰 자심감을 얻고 친구들과의 사이를 회복한다는 내용이다. 글의 끝부분에서 아이들에게 큰소리로 “휴대폰 가져가라”고 소리치는 세희의 모습을 보며 선생님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세희의 경우는 어른들의 작은 관심이 아이를 어떻게 긍정적으로 변화 시킬 수 있는 지를 보여준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세희가 선생님의 배려 속에서 아이들과 친밀감을 형성해나가는 과정이 하도 자연스러워서 그 자연스러움이 오히려 돋보였다. 그리고 나의 학창시절에도 선생님의 이런 모습이 있었을 텐데 하며 오랜만에 그동안 나를 가르쳐주셨던 선생님들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교실에서 선생님과 학생들 간의 소통이 사라졌다는 소리를 가끔 듣는다. 그럴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 책임은 개인적인 것 보다는 사회적인 것이며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선생님들이 바깥으로 드러난 아이들의 거친 말투와 행동을 보기보다 그 속에 감춰진  귀한 진심을 찾으려고 애쓰는 것을 보았다. 나는 이런 마음을 가진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싶다. 나 역시 어린 시절 선생님들에 대한 좋은 기억이 있고 내 아이를 가르친 선생님들과 함께 아이가 가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썼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에 소개 된 선생님들이 아이들과 소통하려고 애쓰고 있는 모습을 보면 조금은 마음이 놓이기도 한다.


많은 선생님들이 아이들과의 불통에 대한 경험을 이렇게 글로 쓰는 이유는 이 나눔을 통해 소통을 배우고 싶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것도 아니고 글쓰기를 통해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려는 이유는 뭘까. 선생님들은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글로 드러내면 아이들 스스로가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자신이 소중한 줄 알면 아이들의 마음은 자연스럽게 바른 모습으로 자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선생님들의 고단한 한숨소리를 들었다. 눈물과 함께 짜증도 보였으며, 인간적인 연민도 느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웃음과 감동도 같이 느꼈다. 아이들의 겉모습보다는 마음을 들여다보기를 원하는 선생님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읽으며 아이들을 한 명이라도 제대로 키우기 위해 노력하는 선생님들의 모습을 보는 일은 고마운 거였다. 이런 모습을 동료 교사 분들이 함께 읽고 공감해주셨으면 한다. 어떤 선생님들은 교사만 참아야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면 반발도 하겠지만 그런 내용 또한 글로 적어서 얘기를 나누다보면 풀리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갖는다.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님들과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들께 먼저 권해드리고 싶은 책이었다.




t******e 2013.02.20. 신고 공감 4 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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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반 일용이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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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곱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었나니 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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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곱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었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월요일 화요일 저녁 열시만 되면 우리집 텔레비전앞은 눈치작전이 한창이다.

역사드라마를 보고 싶어하는 남편과 요즘 한창 인기몰이중인 드라마 [2013학교]를 보고

싶어하는 나머지 세식구들간의 소리없는 전쟁이 시작되는것이다. 결국 남편의 양보로

텔레비전을 지켜낸 세사람은 브라운관앞을 지키고 앉아 학교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진풍경을 있는소리 없는소리 다 내어가며 감상하며 아쉬운 한회를 마감하곤 한다.

드라마속에서 만나는 학교는 내가 다니던 학교와는 전혀 다른 별천지의 세상처럼 다가온다.

학교를 보면서 우리집 아이들에게 제일 많이 하는 말은 아마도 "학교가 정말 저러니?"

일 것 같은데 그런 나의 질문에 아이들의 대답 또한 쿨하기 짝이 없다."저건 드라마니까

저렇지." 한편에서는 교실이 붕괴되고 있다는 말을 하는데 다른 한켠에서는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상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을 한다.분명 학교라는 공간이 예전과는

달라진것이 사실이겠지만 방송에서 보여지는것처럼 그렇게 극단적인 상황은 못보았다는

것이다.그말이 사실이기를, 드라마속에서 보여지는 모습들은 어디까지나 극적인 재미를

위해서 설정된것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한채 화면에 다시금 눈을 빼앗긴다.

 

드라마 [2013학교]가 인기리에 방영되는 이면의 한켠에는 학부모나 아이들 그리고

선생님들이 이구동성으로 꼽는 이상적인 교사 정인재선생님이 있기때문이 아닌가하는

마음이 든다.공부를 잘하는 아이는 아이대로 못하는 아이는 그 아이대로 사고만 쳐대는

아이에게도 따뜻한 마음을 나눠줘가며 지금은 아이들이 흔들리고 있을뿐이라며 잡아주려고

애를 쓰는 선생님..내가 학교다니던 시절을 떠올려봐도 정인재선생님같은 분을 만난

기억은 없는것 같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화살은 아이들에게로 향한다.

"니네 학교에는 저런 선생님 없니?" 이번에도 역시나.."엄마 저것은 어디까지나 판타지야."

학교선생님이 되면 아이들 공부만 가르치면 될 줄 알았는데 이런저런 잡무로 인해

공부를 할 시간조차 내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다. 특히나 담임을 맡게되면

자질구레한 공문부터 시작해서 이런저런 서류를 준비해야하는 일들이 꽤나 번잡하다고

하는데 그런 상황에서 아이들의 마음까지 살피기란 쉽지않을것을 이해한다.

그래서 그런 상황을 알기에 드라마속에서 비쳐지는 정인재선생님의 모습에 많은 분들이

호감의 눈길을 보내는것이 아닌가한다. [우리반 일용이]는 바로 그런 선생님들의 이야기다.

드라마와는 조금 다르지만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아이들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때로는

내가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아이들에게서 배운다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살피는

선생님들의 따뜻한 이야기..교실에서 만난 제자들에게 때로는 감동하고 때로는 상처를

준 사실을 미안해하는 어제보다 내일은 더 나은 선생님이 되고자 하는 분들의 이야기.

 

내가 아는 학교의 모습은 단편적일수밖에 없다. 벌써 몇십년이 지난 내 학창시절 학교의

모습과 드라마나 동화 혹은 성장소설에서 보여지는 모습들, 그리고 우리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의 모습..내가 볼 수 있는것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않는다고 할 수 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가장 더디게 변화하는곳이 학교라고는 하지만 세대의 빠름을

생각한다면 그 더딘 변화 또한 빠르지않다고는 볼 수 없을것같다.아이둘을 학교에 보내

놓고도 나는 학교에 발걸음을 자주하는 편은 아니었다. 선생님과의 통화 또한 예기치않게

이뤄진적이 있을뿐 어떤 목적을 가지고 선생님을 만나본 적은 없던것 같다.

우리집 작은아이는 왼손잡이이다. 내가 어릴때는 왼손잡이를 아무래도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 오른손을 바른손으로 일컬어가며, 글을 쓸때는 꼭 바른손으로 써야한다는 교육이

심했었는데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서 혹시나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었다.

'왼손으로 글씨를 쓴다고 혼나면 어떻게 하나?'하는 기우가 들긴 했지만 예전과는 다르게

요즘에는 굳이 왼손잡이를 오른손으로 고쳐주려는 노력보다는 양손을 다 사용하는 방법을

권장하는 추세이다보니 믿고 넘겼었다. 그런데 한날 아이가 시무룩한 얼굴로 하교를 해서는

왼손으로 글씨를 쓴다고 선생님한테 혼이 났다고 학교에 가기 싫다고 말을 하는것이다.

혹시나싶었지만 상황설명이 자세한지라 일단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여쭙고자

했는데 아이의 오해였을뿐 왼손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꾸지람이었었다.만약에 전화를 걸어

선생님에게 설명을 듣지않았다면 나는 아이의 말만 믿고 공연히 선생님을 원망할뻔 했다.

가끔은 내아이들도 내게 버겁게 느껴질때가 있는데 학교에서 아이들을 담당해야하는

선생님들의 경우에는 그 고충이 상당하리라는 것은 미루어 짐작할수 있다.

아롱이다롱이라고 각양각색 전부 다 다른 아이들에게 관심을 골고루 나누어줘야하는

선생님들의 고단함에 나도 한몫 거든것은 아닌지 죄송스런 마음이 지나고나서야 들었다.

[우리반일용이]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상처가 제법 깊은 아이들의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여기에서 만난 선생님들은 어떤 빛으로 기억될런지 궁금해졌다.

 

이책에서 만난 아이들의 사연은 전부 다 인상깊었지만 그중에서 특히나 시선을 잡아끈

아이가 있었다. 바로 (이새끼 불량품이야)의 주인공 황승준이었는데 승준이보다는

승준이를 바라보는 선생님의 시선때문에 더욱더 그랬던것 같다. 선생님이 승준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드라마속에서 오정호를 바라보는 내 시각과 비슷해서였는지도 모른다.

선생님의 기준에서 벗어난다는 이유만으로 학생앞에서 대놓고 "이 새끼 불량품이야"라고

말하는 선생님은 불량품이 아닌건지 되묻고 싶은 마음이 드는 한편에 나 또한 내 기준에서

벗어나는 아이들의 모습에는 가차없이 불량이라는 딱지를 붙이던 모습이 생각났다.

"이 아이는 이래서 안 어울렸으면 좋겠어" "이 아이는 조금 그렇지않니" 내 기준을

정해놓고 아이들의 기준과는 전혀 다른 잣대를 들이밀면서 내 판단을 강요한던 내모습이

때때로 아이들을 숨막히게 했을것이라는 반성이 든다.그러나 내가 쉬이 변하지않을것을

그리고 승준이를 불량품으로 폄하하던 선생님또한 그 편견의 시선을 쉽게 거두지않을것을

안다. 그래서 상처입었을 승준이에게 진심어린 마음으로 다가가는 다른 선생님이 더욱

고맙게 다가온다.사람은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입지만 결국 그 상처를 치유해주는것 또한

온기를 지닌 사람이기때문에 승준이에게 그 아픈 말이 상처로 남지않기를 바라게된다.

 

[우리반일용이]는 선생님들의 고백이다. 가정불화로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품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고백, 다른 아이들에게 신경쓰느라고 조금 더 집중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고백, 너희들로 인해 내가 한뼘 더 성장하고 진화할수 있었다는 고마운 고백..

나는 이책을 읽으면서 참 많은 시간 행복할 수 있었다. 아이들의 편에 서서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해주려는 선생님들이 이렇게나 많구나..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지만

어른이 되면서 실수를 인정하는것은 점점 더 어려워져만 가는데 아이에게 내가 잘못했다고

말할수 있는 선생님이라면 아이들의 실수 또한 따뜻하게 안아줄수 있겠구나 하는 안도감.

처음 [우리반일용이] 표지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초등학생의 이야기겠구나였었는데

읽다보니 비단 초등학생뿐아니라 중학생 고등학생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모두의 이야기였다.글쓰기회 선생님들이 만난 다양한 아이들의 이야기 [우리반일용이]로

계사년 한해의 시작을 여는것도 꽤 뜻깊은 시간이 될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교실에서는 이런일들이 벌어지고 있구나..그런 아이들을 이렇게 따뜻하게 지켜봐주는

선생님들도 계시는구나..뉴스에서 보여지는 기사들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반일용이]가 알려주는것만 같은 따뜻한 기분으로 책장을 덮었다.

j******3 2013.01.26. 신고 공감 3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우리반 일용이- 울고 웃게 만든 이야기
"우리반 일용이- 울고 웃게 만든 이야기" 내용보기
어느 누구든지 한번 태어나면 살아가는 날까지 겪게 되는 수많은 일들이 있다. 그 많은 일들 중에서 좋은 일과 좋지 않은 일 겪어서는 안 되는 일도 있고, 기쁨의 박수를 치는 일들도 있다. 아니면 어느 누군가에게 많은 감동을 받는 일도 있고 슬픔에 빠지게 만드는 일들이 있다. 나의 어린 시절은 부모를 잘 만나서 그런지 시골이지만 무난하게 학교생활을 한 것 같고. 학교생활도 그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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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누구든지 한번 태어나면 살아가는 날까지 겪게 되는 수많은 일들이 있다. 그 많은 일들 중에서 좋은 일과 좋지 않은 일 겪어서는 안 되는 일도 있고, 기쁨의 박수를 치는 일들도 있다. 아니면 어느 누군가에게 많은 감동을 받는 일도 있고 슬픔에 빠지게 만드는 일들이 있다. 나의 어린 시절은 부모를 잘 만나서 그런지 시골이지만 무난하게 학교생활을 한 것 같고. 학교생활도 그럭저럭 잘 지난 것 같다. 그래서 잘은 모르면서도 이렇게 아이들, 청소년 이야기가 들어간 책을 읽으면 가슴 뭉클하기도 하고 슬픈 내용들을 볼 때 면 제발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말기를 바라기도 한다. 천만 다행인 것은 이 책 속에 아이와 선생님들은 아주 잘 만나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고 아파하고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해 안 좋은 길로 가는 아이들을 많이 있는 세상이 되어서 너무 안타깝고 슬프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 우리 반 일용이 는 한국 글쓰기 교육 연구회에서 이오덕 선생님을 중심으로 전국 초. . 고 선생님들이 모여서 만든 연구회다. 거기에서 여러 아이들 글이나 선생님들의 글을 엮어서 만들어 낸 소중한 책이다. 1부는 지금도 나를 가르치는 아이의 글과 나머지 글이 중, 고등학교의 내용들이고, 2부인 달팽이는 초등하교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대부분 우리가 학교 다니던 시절에 웃고, 울던, 아니면 모르게 지나가던 내용들이라는 점에서 충격적인 글도 있고 웃긴 글도 있다. 나를 웃게 하는 글을 보면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들고, 나를 울게 하는 글을 보면 참 슬프다는 생각이 든다. 나라는 사람은 참 단순한가 보다. 슬픔, 기쁨 대부분 두 가지로 구분해서 나타나는 것 보면 그렇지만 그 두 가지가 가슴 뭉클하고 크게 다가왔다.

 

특히 책을 읽으면서 선생님도 아이도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처음에 선입견에서 아이를 대하고 조금은 멀리하던 선생님이 아이로 인해 변해가는 모습을 보니 참 행복했다. 그리고 선생님도 잘못하면 아이들에게 용서를 하는 모습에 가슴이 뿌듯해 온다. 어른이어도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 정말 좋은 것 같다. 아이들도 그렇다 친구에게, 어른에게 아니면 부모에게 잘못한 일이 있다면 사과를 하던지 용서를 빌어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깨닫는 모습을 보니 더우 좋았다. 앞으로 우리 미래가 참 밝다고 생각이 든다, 특히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여러 이웃님들 중에 선생님이 계신데 그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대하거나 아이와 소통하는 모습을 보고 참 행복하고 믿고 맡겨도 될 학교라는 생각이 학부모로서 많이 들게 만들었다. 선생님들 아이 하나하나 대하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그 힘 들으심을 표현 안하시고 조용히 잘 이끌어 주시니 말이다.

 

우리 집의 아침은 아주 정신없다. 아이 두 명이 학교 가는 시간도 다르고 학교 입구에서의 학생부에서 단속이 다르다. 여기에 나온 원종찬 선생님의 아침 교문에서 이야기를 읽으면서 참 웃고 울게 만들었다. 아무리 아침에 엄하게 단속을 한다고 해도 아이들의 생각에서 먼저 반성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압적인 방법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학교 다닐 때 학교 버스를 타고 다녀 우리는 아침 등교에 단속이 없어서 그런지 잘 모르지만 아침에 괜히 걸리면 하루 종일 기분이 안 좋을 것 같다. 우리집 작은 아이는 선도부에 걸리지 않으려고 학교를 30분 정도 일찍 간다. 여자 아이라 그런지 멋도 내고 치장도 해야 하니 그런가 보다. 나는 사실 그게 나쁘다고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 만큼 자기 개발을 한다고 생각이 든다. 물론 그걸 안 좋은 개발로 하면 안 되겠지만 그래도 좋은 쪽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면 좋겠다. 학교 첫 출발인 아침이 중요하지 아니한가? 그 아침에 혼나서 수업도 못 들어가고 운동장에서 시간을 소비 한다면 그 아이의 미래도 소비되는 것 같아 안스럽다.

 

가슴을 울리는 내용의 글을 보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도가니라는 책을 읽으면 그 아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 난지 알 것이다. 그런 아이가 제발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가득하다. 그런 어른, 인간은 무슨 벌로도 용서가 안 된다. 특히 부모의 구타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 마음 아프다. 물론 나라고 아이에게 손지 검을 한 번도 안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른으로서 부모로서 조심해야할 문제인 것 같다. 물론 선생님들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조심해야한다. 물론 말을 안 듣고 정해진 규칙에 의해 아이가 잘못한다면 나는 채벌도 그리 나쁜 문제라고는 말 못하겠다. 그 수위가 문제라고 본다. 아이가 매를 맞아서 아파하고 학교 못나오는 문제 정말 심각해 보인다. 그런 아이가 생기지 말기를 바란다. 부모로서 많이 반성하게 만들고 어른으로서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주변에서 아이들에게 힘든 상황을 본다면 말 한마디라도 걸어서 잘 해결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가난해서 먹지 못하는 아이를 보니 많이 안타깝다. 부모가 일찍 돌아가셔서 힘든 아이를 보니 어떻게 해줘야한다는 생각만 앞서게 된다. 물론 내 주변에 그런 아이가 있다면 도와주고 싶다. 남수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자기도 힘들지만 할아버지에게 선물하고 더 어려운 친구와 같이 먹을 것을 나누는 것을 보고 참 뿌듯했다. 그리고 오빠는 학교 다니지만 5남매 먹여 살리고 물세는 지하에 살지만 희망이라는 단어를 놓지 않는 민희, 어머니의 재가로 존재가 없어지고 새아버지의 구타로 방황하는 일용이, 이런 아이들을 보니 환경에서 어렵지만 그래도 희망이라는 단어를 놓지 않고 살아가는 게 대견해 보인다. 어느 누구의 잘못이라는 말은 못하겠다. 그 아이들이 지금 잘 자라고 있을 거라 생각해 본다. 지체 아동이나. 조금 느린 아이들도 나온다. 그 아이들에 대한 선입견이 조금씩 변해가는 이야기를 읽을 때 나도 반성하게 된다. 길이나 차에서 그 아이들을 보면 우선 색안경을 끼고 본 나 자신에게 채찍질을 하고 앞으로 조심해야겠다. 얘들아 미안해! 특히 안쓰러운 건 선생님이 아이에 대해 선입견을 보고 이 아이는 문제아라는 전 선생님의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점이 문제다. 물론 이런 선생님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이 책의 내용은 그런 선입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선생님만의 사랑으로 아이를 대하고 그 아이가 선생님을 만나 변해가는 게 참 좋았다. 자꾸 착해지려고 하는데 한번, 두 번 실수로 아이를 문제아로 만들어 가면 그 아이가 그걸 이겨내려는 희망이 살아지니 말이다. 문제아라도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다. 자꾸 긍정의 소리로 아이를 칭찬해 주길 바란다.

 

우리 반 일용이를 읽으면서 그래도 이 멋진 선생님들이 계시기에 우리 아이들 앞날이 참 밝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아이들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운 선생님도 계시기도 하지만 그 서로의 가르침에서 앞으로 우리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자기의 삶을 바로 보고 정직하게 쓰면서 사람다운 마음을 가지게 하고, 생각을 깊게 하고, 바르게 살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해 연구하고 실천하는 분들이 많이 있는 것 같아서 말이다. 앞으로 우리 모든 선생님이나 학생, 부모님들이 이런 가르침을 잘 받아들여 차별, 선입견, 멸시, 구타, 가난에 허덕이지 않고 모두 긍정이라는 단어로 희망을 가지고 잘 살았으면 좋겠다. 이 책의 글을 올려주신 선생님들, 그리고 글속에 주인공 아이들 지금 모두 건강하게 잘 살고 있는 거죠? 선생님 따라, 아이들 따라 가슴 아프고 속상해서 눈물이 나고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많이 배운 것 같다. 나를 웃게 해준 아이, 선생님도 있다. 이 사회는 나 혼자만이 살아가는 사회가 아니고 여러 사람이 서로 같이 어우러져 사는 사회다. 앞으로 그 사회에 모두 걱정, 고민, 아픔 없이 잘 살아가는 사회가 되길 바래본다. 모든 사람이 읽고 생각해 보게 만드는 책이다.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k*****7 2013.02.28. 신고 공감 2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일용이 덕분에 나의 과거와 화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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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반 교사들   초등학교 4학년 담임이던 손모 선생은 무척이나 돈을 밝히는 사람이었다. 아이들을 차별하는 것이 적나라했고 특히 여자 아이들을 편애했다. 학교에 내야 할 돈을 제대로 내지 않는 아이에 대해서는 수업 시간에도 공공연하게 핀잔을 주기도 했다. 당시 나는 부반장이었는데 반장인 여자 아이와도 어김없이 차별했다. 그리고 회의 차 학교에 들른 어머니로부터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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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반 교사들

 

초등학교 4학년 담임이던 손모 선생은 무척이나 돈을 밝히는 사람이었다. 아이들을 차별하는 것이 적나라했고 특히 여자 아이들을 편애했다. 학교에 내야 할 돈을 제대로 내지 않는 아이에 대해서는 수업 시간에도 공공연하게 핀잔을 주기도 했다. 당시 나는 부반장이었는데 반장인 여자 아이와도 어김없이 차별했다. 그리고 회의 차 학교에 들른 어머니로부터 내가 눈치를 많이 본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그때는 그 말 자체가 너무 큰마음에 상처가 되었다. 나는 눈치 보지 않고 열심히 부반장 활동을 하고 있는데 왜 그런 쓸데없는 말을 해서 어머니를 속상하게 만드는지 그 선생이 더 싫어졌다. 나중에 어머니께서 넋두리 하듯이 그 때 좀 더 손모 선생을 잘 대접했더라면 좋았을 거라고 하시는 얘기를 들었다. 어머니도 일을 하시던 때라 많이 신경 쓰지 못한 것이 못내 미안하신 모양이었다.

그 손모 선생은 아이들을 아주 무섭게 대했다. 물론, 몇몇 아이들은 아주 좋아했고. 고등학교 땐가 우연히 본 초등학교 4학년 일기장에 ‘학교에 가기 싫다.’라는 말이 많았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어린 내게도 꽤 힘든 시기였던 것 같다.

지금도 그 손모 선생의 능글능글하고 시커먼 얼굴이 생생하다.

 

고등학교 1학년 담임이던 김모 선생은 장교 군 복무 제대 후 바로 학교에 복직했다. 굵은 ROTC반지를 자랑스레 끼고 다니며 기고만장했다. 우린 다른 선생들보다 나이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 담임이라 기대가 많았다. 하지만 꼰대도 그런 꼰대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장교로 군 생활을 하고 바로 교사로 부임한 터라 우리들을 마치 자기 부하 다루듯이 했던 것 같다.

어느 날 김모 선생을 화나게 만드는 일이 교실에서 벌어졌고 종례 후에도 하교시키지 않고 모두 기합을 줬다. 누구 하나가 잘못했다고 나올 때까지 멈추지 않겠다고 했고 나는 객기였는지 오기였는지 손을 들고 있지도 않은 자백을 했다. 당시 학교에서 말하는 불량학생 중 한명이었던 나였기에 김모 선생도 ‘옳다구나 잘 걸렸다.’ 마음먹었던지 손발을 다 이용해 내게 구타를 가했다. 30분 정도 이어진 구타는 분명 폭력이었다. 감정이 들어간 폭력. 어차피 분명한 잘못을 가릴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손들고 나올 아이도 없었다. 자기 분을 이기지 못해 가한 체벌은 폭력이다. 성적은 좋지만 평소 행실에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내가 김모 선생의 타깃으로는 제격이었던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12년 동안 기억에 남는 선생이 없다. 존경하거나 좋아했던 기억 말이다. 초등학교 손모 선생과 고등학교 김모 선생이 특별히 안 좋은 기억 중에 하나일 뿐이고 다른 10명의 교사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학창시절 얘기를 하며 선생님 기억을 나눌 때 나는 별로 할 말이 없다. 서른이 훌쩍 넘어서도 아직 그 선생님을 기억하고 존경하고 눈물 흘리는 사람을 보면 신기할 따름이다. 혼자 ‘쳇~! 나는 다 별로였는데~’라며 생각하고 만다.

 

 

 

일용이 반 선생님들

 

이 책 「우리 반 일용이」를 읽으면서 또 다시 나는 씁쓸해졌다. ‘나는 왜 이런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을까?’ 라는 아쉬움 때문이다.

 

“성두를 내려 보내고 담배를 피우는데 씁쓸했다. 이런 못난 선생이 어디 있나 싶다. 이야기를 차분하게 들어 보기도 전에 애를 다그치고 길길이 날뛰었으니 어떤 아이가 마음을 열고 이야기할까.” (p.73) 김상기 선생님, 속초 속초중

“버럭 화를 내고 나서야 내 행동을 또 후회했다. 좋은 말로 하면 될 텐데 왜 또 화를 냈을까? 못난 선생에게 창훈이가 와서 먼저 손을 내민다. 언제 혼이 났냐는 듯 웃으며 다가온다. ‘선생님, 가위바위보 해요.’” (p.175) 임기연 선생님, 안산 호동초등

 

성두와 창훈이에게 화를 내고는 돌아서서 바로 후회하는 선생님들이 나는 부러웠다. 내가 볼 때는 크게 혼낸 것도 아니고 분명히 잘못한 것을 가지고 혼을 낸 것인데도 이 선생님들은 괴로워한다. 나는 이 선생님들이 정말 낯설다.

 

“나는 마음속으로 몇 가지 원칙을 정해 두었다. 내가 뭘 변화시킬 수 있다고 욕심내지 말기, 상수를 있는 그대로 보고 사랑해 주기.” (p.180) 김숙미 선생님, 부산 반산초등

“어어, 알지. 쌤, 전에 내가 이야기한 거 있잖아. 아이와 잘못을 따로 두고 봐야 한다고.” (p.211) 신경혜 선생님, 원주 교동초등

 

중증 자폐아인 상수를 위해 선생님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김숙미 선생님. 부모도 하지 못했던 일을 상수를 위해 했다. 반 아이들에게도 서서히 상수를 이해시키고 나중에는 반 아이들 전체가 상수를 배려하고 상수의 걸음과 눈높이에 맞춰 이해를 배우고 도움을 배우는 아이들의 모습 또한 부럽고 낯설었다.

신경혜 선생님에게 아이들과 잘못을 따로 두고 봐야 한다고 조언 한 정연이 선생님 같은 분을 왜 나는 만나지 못했나 한탄스럽기 까지 했다.

 

욕을 해 대던 호민이가 주먹을 풀더니 눈물을 닦으며 어깨를 들썩이며 운다. 호민이가 너무 서럽게 우니까 나도 눈물이 줄줄 흘렀다.” (p.241) 김은주 선생님, 부산 서곡초등

“저에게 가장 많은 걸 가르쳐주신 선생님, 저에게 가장 큰 자신감을 내게 해 주신 선생님, 저에게 가장 큰 용기를 주신 선생님도 바로 저의 지금 선생님, 제가 중학생이 되어도 고등학생이 되어도 대학생과 어른이 되어도 선생님을 잊지 못할거예요. 선생님, 저의 선생님. 제제의 뽀르뚜까 같은 선생님” (p.235) 김경해 선생님, 부산 용호초등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학교 짱 호민이를 서서히 변화시킨 김은주 선생님

깨어진 가정에서 생긴 감당 못할 상처 덩어리를 작은 두 어깨에 진 채 살아가는 일용이에게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해 준 김경해 선생님. 이전까지 내가 편견을 가지고 있었고 나의 경험만으로 함부로 재단했던 선생님에 대한 생각을 부끄럽게 만들어 주었다. 내 편견과 내 경험 안에서의 선생이었다면 일용이는 학교생활에 절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문제아’, ‘불량학생’, ‘깨어진 가정’ 이라는 낙인이 찍혀 학창시절 내내 주홍글씨를 안고 살아야 했을 것이다.

십 수 년 전부터 학교폭력으로 얼룩진 학교 문제가 불거졌던 것 같다. 단순하게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음에도 이 문제를 둘러싼 학교, 교사, 학생, 정부, 가정이라는 각 주체는 함께 마음을 합해 머리를 싸매도 해결방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학교의 문제는 더욱 심각해져 가고 각 주체가 서로를 믿고 신뢰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가끔 친구들을 만나 이런 얘기를 한다. ‘이야~ 우리 때 같으면 어림도 없다. 선생이 때리면 그냥 맞는 거지 뭐. 그 때 선생들 참 쉽게 교사 생활 했지.’ 내지는 ‘요새 애들 답 없다. 제 부모들도 컨트롤 못 하는데 학교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지 뭐.’ 내지는 ‘우리는 나중에 홈스쿨링 하자. 학교 못 보낸다.’

하지만 이 책 「우리 반 일용이」에 나온 선생님들이 정말 전국의 학교에 단 몇 분이라도 계신다면 적어도 내 아이만큼은 학교에 보내 내가 학창시절 만나지 못했던 이 책에 나오는 선생님을 꼭 만나게 해 주고 싶다. 그리고 학교와 아이들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학부모가 되고 싶다.

 

 

“여기 선생님들은 ‘이 아이가 왜 이럴까?’, ‘이 아이에게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안타까워합니다. 곁에서 가만히 지켜봐 줍니다. 흐름에 맡기면서 끝까지 참고 기다려 주지요.” (p.6)

“아이들은 아직 생각이 덜 자랐으니 어른들이 끌어 주어야 한다는 욕심이 오히려 아이를 망친다고 봅니다. 아이들도 온전한 생각과 느낌을 가진 귀한 인격체입니다. 이 세상 온갖 생명체가 그러하듯 우리 아이들도 스스로 살아갈 힘을 지니고 났습니다.” (p.7)

 

이 책의 선생님들은 아이가 교실 안에서 보이는 모습만으로 그 아이를 판단하지 않는다. 아이가 쓴 일기를 보거나 그 아이와 따로 시간을 내어 깊은 대화를 나눈다. 친국들이 있어서 하지 못하는 얘기를 선생님께 하고 부모에게도 보이지 않았던 눈물을 선생님 품에 안겨 터뜨린다. 아이의 일기를 깊이 읽고 깊은 마음을 담아 글을 써 주고, 단지 가르치는 대상이 아니라 온전한 인격체로 대우해 준다. 그렇게 하니 아이들이 변한다. 정말 신기한 일이다. 비록 나는 그런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지만 그래도 아직 참 선생님들이 있다는 사실에 괜히 콧등이 시큰해 진다.

무너진 교권, 많은 비정규직 교사, 사학재단의 여러 가지 문제점 등 해결해 나가야 할 일이 산더미지만 이 책에 소개된 선생님 같은 분들이 많이 계시다면 희망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근본적인 해결은 없다. 그렇다고 ‘학교 일은 학교에서 알아서 하라.’라는 책임 회피는 더 심각하다. 그리고 너무 나서서 학교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참견하는 것도 심각한 일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학교와 아이를 둘러 싼 각 주체들이 서로를 믿고 신뢰하는 단계가 우선해야 한다.

사는 게 바빠 도저히 아이들에게 관심을 쏟을 수 없거나 시간도 있고 아는 게 너무 많고 똑똑해서 학교와 아이에게 너무 관심은 부모가 많거나 교사들이 진정한 사명감이 아니라 단지 직업으로써 교사 생활을 하고 있거나 학교와 교육당국의 면피성 대책만 난무하다면 학교 문제의 실마리를 찾는 일은 불가능 할 것이다.

 

 

 

우리 반 아이들

 

예전에 학원에서 일 할 때 나는 엄청나게 무서운 선생님이었다. 가방을 3층에서 집어 던지기도 하고 수업 시간 중에 부모에게 전화 해 학원비 돌려줄 테니 당장 아이를 데려가라고도 하였다. 그런데 부모들이 더 좋아했다. 아이들에게 더 잘해주고 친절한 선생님보다 내가 더 낫다고 했다. 꽤나 인정받았다.

교회에는 주일학교라는 것이 있는 데 나는 고등부 교사를 맡고 있다. 교회에서도 나는 무서운 선생님이다. 흔히 교회에서는 아이들을 나무라지 않는데 나는 종종 나무란다.

 

 

“나는 누가 울 때, 왜 우는지 궁금합니다. 아이가 울 땐 더욱 그렇습니다. 아이를 울게 하는 것처럼 나쁜 일이 이 세상엔 없을 거라 여깁니다. 나는 우는 것들을 사랑합니다. 나는 우는 것들을 사랑합니다. 나는 우는 것들을 사랑합니다.” (p.282) 고(故) 임길택 선생님

 

이 책을 보면서 반성을 많이 했다. 과연 내가 잘 했던 것인가 많이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그런 선생을 만나지 못했다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똑같이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처음부터 잘해주면 안되니 처음엔 좀 엄하게 하다고 나중에 잘 해줘야지 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이 책을 읽으며 매일 아이들과 만나는 학교 선생님은 아니지만 교회에서 만나는 아이들에게도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일용이가 김경해 선생님에게 진심을 담아 쓴 편지를 나도 받아보고 싶다. 내가 한 번도 존경하거나 좋은 기억에 남는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다는 이유로 다하지 못했던 마음을 내가 만나는 아이들에게 부어주고 싶다. 혹 아이들이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인다면 그 아이를 붙잡고 그 아이의 눈높이에 내 눈을 맞추고 그 아이의 발걸음에 내 발걸음을 맞춰 이 책의 선생님들이 그랬던 것처럼 기다려 주며 그 마음을 다독이고 싶다.

 

방점을 찍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 어려운 다짐을 한다.

정확하게 알고 있지 못했지만 내가 받은 상처의 원인이 되었던 초등학교 손모 선생님과 고등학교 김모 선생님을 용서한다. 내 마음에 박힌 상처이기에 의지를 담는다. 어리고 아팠던 기억에 약을 바른다. 쓸데없는 편견과 아픔의 원인이 되었던 학창시절의 쓰린 과거와도 화해하고자 한다.

이것이 나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나의 과거와의 화해는 일용이 덕분이다.



l****h 2013.02.28. 신고 공감 2 댓글 3
리뷰 총점 종이책
다시, 꽃피는 교정 속의 학교로 돌아가고 싶게 만드는 『우리 반 일용이』
"다시, 꽃피는 교정 속의 학교로 돌아가고 싶게 만드는 『우리 반 일용이』" 내용보기
한때 나는, 학생이었고 학부형이었다. 학교 다닐 때 학생이었던 것과 어른이 되고 나서 학부형의 역할을 했던 것, 그렇게 학교라는 무대 위에서 나는 두 가지 역할만을 담당했었다. 내가 직접적으로 선생님이 되지 않는 한, 선생님이라는 역할과 입장은 알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사십 여년 가까이 살아온 지금까지, 나는 내가 경험한 입장만을 생각하고 얘기할 수밖에 없
"다시, 꽃피는 교정 속의 학교로 돌아가고 싶게 만드는 『우리 반 일용이』" 내용보기

한때 나는, 학생이었고 학부형이었다. 학교 다닐 때 학생이었던 것과 어른이 되고 나서 학부형의 역할을 했던 것, 그렇게 학교라는 무대 위에서 나는 두 가지 역할만을 담당했었다. 내가 직접적으로 선생님이 되지 않는 한, 선생님이라는 역할과 입장은 알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사십 여년 가까이 살아온 지금까지, 나는 내가 경험한 입장만을 생각하고 얘기할 수밖에 없다. 학생일 때 내가 기억하는 선생님은 이런 모습이었다. 권위적인 모습으로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사람, 조금만 잘못해도 야단만 치는 짜증나는 사람, 자기(선생님)들이 지나온 시간을 이제야 겪고 있는 내가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는 것처럼 구는 사람. 그래서 ‘선생님’과 ‘싫은 사람’은 동의어에 가까웠고, 나는 ‘그 시간을 경험한 사람이 나(학생)를 그렇게 이해 못해?’ 하는 생각만을 하는 불량모드였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 학부형 역할을 했을 때는 자식을 학교에 맡겨 놓은 부모의 마음 그대로였다. (실제로 나는 7년 가까이 바쁜 언니 대신에 가끔씩 조카의 학부형 역할을 했다.) 아무리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해도 부모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순간 약자가 된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잘못해서 선생님께 혼나거나 미운털 박히는 건 아닐까, 개인적인 이유로 학부형 임원을 거절하면 그 서운함이 내 아이에게로 흐르는 건 아닐까, 공부를 잘하고 붙임성 있어서 선생님께 예쁨이라도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들만 가득 찬다. 졸업을 할 때까지만 참자는, 어차피 시한부 인연이니 빨리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바라곤 했었다. 이제껏 상대방(선생님)의 마음을 진솔하게 들어본 적이 없고 그럴 기회도 만든 적 없었으니 이렇게만 생각해왔던 것도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는 변명을 해보지만, 나와 같은 입장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비슷한 마음 아니었을까 공감을 구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펼쳐 들고 몇 페이지 넘기던 순간 나는 앞서 생각했던, 선생님이라는 대상을 향해 불협화음을 내려고만 했었던 내 입장을 내려놓았다. 이 책을 읽기 위해 내 머릿속은 백지가 되어야만 했다. 중립도 아닌 반감으로 채워졌던 나의 마음은 이 책을 대할 자세가 되어있지 않았던 것이다. 긴 호흡을 한번 넘기고 읽어가던 이 책은 내가 높게 세워두었던 벽 하나를 넘어가는 기분이 들게 했다. ‘선생님의 입장과 마음은 이런 것이란 말인가?’ 하는 놀라움과 그동안에 가졌던 생각들에 대한 미안함이 동시에 밀려오는 순간이었다. 처음부터 다시 써야할 관계도였던 것이다.

그동안의 <글쓰기회>에서 펴낸 책이 아이들의 글을 엮어왔던 것에 반해 이번 출간작 『우리 반 일용이』는 선생님들의 글이다. ‘교실일기’라고 이름 붙여진 것처럼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만나는 선생님과 학생들이 주인공이 되어 그려지는 일기다. 그리고 그 일기의 서술자는 선생님이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선생님이 하고 있는 생각들이 글에 그대로 담길 수밖에 없다. 학생이었거나 학부형이었던 내가 그동안에는 결코 헤아릴 수 없었던 마음들이 이 이야기에 고스란히 담겨 있던 것이다.

 

1부의 「지금도 나를 가르치는 아이」는 중고등학생들을 만난 이야기다. 조금은 큰 아이들이어서 그런지 오고 가는 대화의 내용이나 인솔하는 자의 입장에서도 초등학생을 대하는 것과 다른 자세일 수밖에 없다는 게 눈에 들어온다. 할아버지에게 내복을 사드리겠다고 상수리를 따서 모으던 남수는 공무원이 되었다며 소식을 전했다. 구자행 선생님이 말썽을 부리는 아이들을 데리고 체험활동을 하던 시간은 서로의 살을 부대끼면서 쌓은 돈독함과 이해를 동시에 전하고 있었다. 선도부라는 이름으로 어긋난 권력을 행사하려 했던 아이들에게는 옳은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기 위해 조금 험한 분위기도 이어가야 했다. 조금 거칠기도 했었지만 아이들이 풀어내는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봐주려 애써야 했고, 아이들이 만들어가고 있는 인성이 비단 학교에서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감당해야 했다. 그리고 머지않은 시간에 성인이 되고 사회에 나가게 되는 이 아이들에 대해 더 가깝게 봐야만 했다는 것이 보였다. 어른과 아이의 경계에 서 있는 나이대의 학생들을 조금은 위태롭게 보기도 했지만 기본은 다르지 않았다. 아이들은 순수함을 가지고 있었고, 솔직했다. 그에 맞게 선생님도 그 기본을 다하려 노력하는 마음들이 보여 애틋했다. 상황과 사연에 맞추어서 다르게 대처하는 선생님들의 융통성이 많은 장애물들을 건너가게 하고 있다는 것이 그대로 보이고 있었다. 사춘기(중고등학교) 학생을 둔 부모님들이 이 책을 본다면 자녀들을 대하는 또 다른 자세를 배울 수도 있을 것 같은 장면들이 많았다.

 

산소 없는 독서실 (연제고 1학년 유성훈)

시험 기간이 되자

내 발길은 독서실로 향한다.

신발을 갈아 신고 들어가니

숨 막히는 독서실이 보인다.

산소가 없는 독서실

내가 저길 들어가야 하나. (<백일장> 중에서)

 

2부의 「달팽이」에서는 말 그대로 느리게 가는 것의 인내와 끈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초등학교 아이들의 이야기가 슬픔과 아픔으로 그대로 전해져왔다. 내가 자라던 어려웠던 어린 시절의 많은 모습들이 이십년이 넘는 시간의 간극을 가지고 있는데도 여전했다. 세상이라는 무대를 놓고 보면 크게 달라진 것도 없었다. 초등학생의 나이로 혼자 이사를 하는 미영이, 새아버지의 폭력에 그대로 방치되어야만 했던 일용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혼나고 마음 상했을 현숙이, 지저분한 겉모습만으로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했던 세희, 물이 찬 지하방에서 살고 있는 민희, 그리고 더 많은 아이들의 이야기가 눈물로 함께 다가왔다. 아이였으면서도 아이일 수 없었던 아이들. 읽어가면서, 이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는 내 모습은 금세 이 아이들을 눈앞에서 직접 보고 있었을 선생님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같은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이 당황스러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어떤 말을 건네야 할까, 그리고 어른이면서 선생님으로써 어떤 해결을 보여주어야 할까. 정답 없는 물음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고, 나 역시도 계속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이야기들 앞에서, 이런 현실 앞에서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답을 줄 수가 없어 지켜보기만 하는 게 최선인 그 마음을 무엇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암흑 같은 환경 속에서도 아이들이 스스로 자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도 있었지만, 그래도 어른의 따뜻한 시선과 온기를 품은 손이 필요하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리라.

 

엄마, 잠이 올 때는 엄마 냄새가 나요.

엄마는 맨날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 웃으면서 푹신한 의자에 앉아서 낮잠도 자지요? 엄마가 이제 안 아파서 나도 좋아요. - 2005년 10월 19일 엄마 딸 유경이가.

(<비 오는 미장원 놀이를 하는 유경이> 중에서)

 

기다림의 온기, 자라나는 마음.

기다린다는 것, 기다려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가 이 책 속의 이야기들에 녹아 있었다. 만능 해결사, 학생의 말을 무조건 들어주어야 하는 대상, 한 가지로 열 가지를 판단할 수 있게 만들어버리는 대상이 선생님이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듣게 된 학교라는 현장의 모습은 나에게 ‘선생님’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시 쓰게 만들었다. 선생님은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아이들과 함께 자라면서 기다림을 배우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이 책에서 들려오는 선생님의 마음은 한결 같았다. 무심코 자신이 한 행동에 아이가 상처받은 것을 보고 아파하는 사람, 최선을 다해 마음을 전하고자 하면서 다 전해지지 못 했을 때 안타까워하는 사람, 해결사가 아니라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같이 기다려주는 사람. 기다림에 있어 의무적으로 수반되는 인내심을 함께 가지고 가는 사람이라고…….

 

물리적·시간적 여건 상 서로의 마음을 들을 수 없었던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이 책을 통해 들은 것만 같다. 선생님도 시행착오를 할 수 있는 사람이고, 때로는 보여주고 싶은 진심이 그대로 전해지지 못 해서 아프기도 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무언가 어긋나기 시작하는 것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가지는 선입견이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내가 경험했던 것들이 가져온 것은 상대방의 입장을 들을 이유가 없다고 차단해버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막혀있던 것들을 ‘글’로써 들을 수 있다는 시도를 열어준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었는지 이 책을 통해 내 눈으로 확인했다. 글을 통해서 말문을 여는 아이들이 보여주었던 것은 진심이었다. 그리고 이 책으로 선생님은 그 진심에 대한 답을 같은 진심으로 전하고 있었다. 때로는 지켜보는 것이 해답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는 이들로 하여금 수긍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하여 학생과 학부형이라는 입장만을 고수했던 나에게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을 들려주었다. 그동안 들어왔던 아이들의 이야기와 오늘 내가 이 책을 통해 들은 이야기는 똑같이 앞으로 나란히 가고 있는 듯하다. 입장이 달라도 방향이 같은 것, 학교라는 공간에서 함께 호흡하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자세를 배운 듯하다. 아이들이 어른들을 보고 배우는 것처럼 어른들 역시 아이들을 보고 배우면서 자라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라도, 이제서라도 내가 영원히 알 수 없었을지도 모를 마음을 들을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읽는 이의 마음을 가져가고 움직이게 하는 것, 새로운 시선을 갖게 해주는 것과 같은 화음을 모두 가진 책이 이 책이 아닐까 싶다. 한편 한편의 이야기가 길가에 피어있는 이름 모를 들꽃을 보는 기분이었다. 어디선가 바람 타고 날아와 안착한, 그렇게 뿌리 내려 흙과 먼지를 뒤집어쓰고도 길 가장자리에서 계속 자라나는 생명력을 보여주는 것만 같은 들꽃을 떠올리게 했다. 모양이 아름답고 향기를 풍겨서 눈길을 끄는 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으면서도 사람을 불러들여 마음에 들어오는 꽃 같다고. 아이들이 하는 말들과 상황들을 담은 이야기를 꾸미지 않은 솔직함과 투박함으로 들려주는 선생님들의 교실일기는 그래서 들꽃 같았다. 마음이 저절로 가 닿아 움직이게 했다. 현장을 경험하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일들이었기에 더 귀에 담을 수밖에 없었음이리라. 지나고 생각해보면, 괜히 미워했던 선생님마저 그때의 마음은 그게 아니었을 것이라는 이해의 감정까지 가져온다. 선생님은 진심을 담은 마음으로 아이들을 보고 배우며, 아이들은 그런 선생님을 보고 배우면서 꿈을 키워가고 있을 것이라는 희망적인 생각을 자동적으로 그리게 된다.

 

“선생님, 배가 너무 아파요.”

“배가 아프면 일단 양호실에 가봐라.”

“선생님, 저 그냥 조퇴하면 안 될까요?”

초등학교와 중학교 내내 개근상을 받았는데, 고등학교 때 단 한 번의 조퇴로 정근상을 받았다. 담임선생님께는 아프다는 이유로 조퇴를 신청했지만 사실 나는 아팠던 것이 아니라 가수 윤상 오빠의 공연을 보러 가기 위해 일찍 학교를 나서고 싶었던 것이다. 지방이라 가수의 공연이 많지도 않았고, 그날은 여러 가수들의 합동공연이 열리기로 한 날이라 윤상 오빠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앞자리를 사수해야만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조퇴를 하는 마음이 영 불편했지만 어쩌겠나, 윤상 오빠를 봐야만 했는데. 그런데 하늘은 내 편이 아니었나 보다. 그날 담임선생님께 거짓말까지 하고 갔던 그 공연에서 윤상 오빠를 보지 못했다. 윤상 오빠는 그날 개인적인 사정으로 공연에 오지 않았고, 그 자리를 다른 가수가 채워주었다. 처음으로 조퇴라는 것도 했는데 윤상 오빠도 못 보고, 담임선생님께 한 거짓말 때문에 마음도 불편했고, 개근상을 놓치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던 그날, 나는 너무 슬퍼서 펑펑 울었다. (우등상은 못 받아도 개근상은 받아야 한다고 엄마한테 늘 들어왔던 말이라 더욱 마음이 무겁고 죄송했다. 담임선생님께도 역시나.)

이 책 속의 이야기를 계속 듣고 있다 보니, 그때 일이 자꾸만 생각났다. 그때 담임선생님은 내가 거짓말을 하고 조퇴한 것을 알고 계셨던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고 있었다. 알면서도 모른 척 속아주겠다 싶은 마음으로, ‘네가 조퇴하는 이유가 꾀병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한번쯤은 봐주마.’ 하고 나의 조퇴를 허락해주셨던 게 아니었을까. 어쩌면 솔직하게 말씀드렸더라도 조퇴를 허락해주셨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윤상 오빠 싸인을 꼭 받아와라~’ 하시면서 말이지. ^^

 

 



n******i 2013.04.12. 신고 공감 2 댓글 3
리뷰 총점 종이책
부모와 교사가 함께 봐야할 책, 우리반 일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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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운전 중에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가에서 한 아주머니가 대여섯살 되어보이는 남자아이를 건물 앞 구석에 세워놓고 뺨을 심하게 연이어 내리치는 장면을 목격했다. 아이가 반항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데도 마치 분풀이 하듯 후려치고 있는 것이다. 누구라도 공포에 떨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아이가 얼마나 극도의 공포감을 느끼고 있을까란 생각에 무척 마음이 아팠던
"부모와 교사가 함께 봐야할 책, 우리반 일용이" 내용보기

 오래 전, 운전 중에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가에서 한 아주머니가 대여섯살 되어보이는 남자아이를 건물 앞 구석에 세워놓고 뺨을 심하게 연이어 내리치는 장면을 목격했다. 아이가 반항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데도 마치 분풀이 하듯 후려치고 있는 것이다. 누구라도 공포에 떨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아이가 얼마나 극도의 공포감을 느끼고 있을까란 생각에 무척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한번은 차를 타고 가다 엄마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딸아이를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대로에서 두 손을 들게 한 채로 야단을 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길가에서 아이를 세워두고 저럴 정도면 엄마가 얼마나 화가 났을까란 생각이 드는 한편 그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가에 두손 들고 서서 엄마를 빤히 바라보는 그 아이의 심정은 어떨까란 생각을 했다. 아이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어린 아이에게 할 행동들은 아니었다. 부모란 사람들이 말이다.

 나는 초등학생보다 국민학생이란 말이 더 친근한 시대를 살았다. 지금 아이들에겐 구석기 시대 사람 같겠지만, 나도 초등학생이었고, 중학생이었고 고등학생이었다. 지금은 어른이라 불리지만 지금 아이들과 똑같은 시기를 겪어온 것이다. 나 자신이 평탄한 초등학교 시기를 보낸 것 같지 않다. 힘든 집안 형편과 이로인한 가정불화 때문에 나름 어린나이에 힘든 시기를 보낸 기억이다. 그래서 소극적이었고 위축되어 지낸 시절이었다. 그 때문일까 성격도 무척 내성적이고 조용한 편이었다. 그 시절 그런 나를 이해해주고 다독여주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나는 지금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있지 않았을까하는 근거없는 추측을 한번 해본다. 세월이 흘러 이젠 초등학생 둘을 키우고 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내가 지나온 시기를 똑같이 지나고 있는 우리 아이들을 나는 얼마나 이해하고 공감해주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어떤 문제로 아파하는지 뭘 가장 바라는지 그리고 아이들이 바라는 아빠 엄마의 모습은 어떤 것일지 등등을 생각이나 해보고 부모노릇을 하는지 의문이 든다.
 

 지금은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부모의 모습대로 살고 있느냐고 물으면 선뜻 그렇다고 대답할 자신이 없다. 아이들을 키우며, 육아에 대한 책들을 보며 우리 아이들은 나처럼 커선 안된다는 생각 때문에 더 관심과 사랑을 주려고 나름 애쓰고 있단 생각은 한다. 그런데 이제 초등학생으로 훌쩍 커 버린 아이들을 보면서 아이들을 위해 더 많이 노력하지 못했다는 후회가 늘 함께 한다. 아이들을 위한다고는 하지만 아이들 입장을 먼저 생각하기 보단 내가 편한 방식으로, 딱 그 상황에서 해줄 수 있는 만큼만 관심을 주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정작 아이들이 내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어떤 언행을 하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해선 생각조차 안한 듯하다. 개구리 올챙이적 시절 기억 못한다는 속담이 떠오르며 공감을 하게 된다. 맞다. 개구리는 올챙이적 기억을 못한다. 누구나 올챙이였지만 그 올챙이들이 왜 아파하고 힘들어하는지, 자신도 겪었을 만한 일들까지 아예 기억해 내지 못하니 말이다.

 

《우리반 일용이》를 보면서 내 어린 시절처럼 불우한 환경에 있던 아이도 만나고, 더 비참하게 사는 아이도 만났다. 그리고 나와 다른 환경에서 다른 조건 때문에 아파하는 아이들도 만났다. 그리고 아이들은 자기의 아픔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표현한다는 걸 다시 깨달았다.  아이들은 예상 외의 행동으로 자신을 감춘다. 어쩌면 제대로 표현할 줄 몰라서일 것이다. 말이나 행동으로 어른들의 감정을 건드리고 힘들게 하기도 한다. 그러니 부모나 교사들이 아이들의 행동을 이해하기 보다 화를 내거나 감정적으로 대응하기 쉽다. 문제있어 보이는 아이들의 속내를 들여다 보면 모두 다 이유가 있는데도 말이다. 이 책에 소개된 아이들을 겉으로만 보고 판단한다면 문제아로 낙인 찍혔을 아이들이 참 많아보인다. 그래서 부모나 교사는 아이들 겉모습을 볼게 아니라 그 속을 봐야한다. 보여주지 않으려는 그 속내를 어떻게든 열어보려 해야하는데 그러지 못하니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말과 행동이 따를 뿐이다.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아이들도 어른들 못지않게 온전한 인격체란 걸 깨닫고 놀랄 때가 있다. 그래서 생각이 부족한 쪽은 아이들이 아니라 우리 어른이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일용이 이야기는 한 번 읽고 다시 읽었다. 내가 한 때 부산 살며 다녔던 초등학교의 학생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아이뿐 아니라 아픈 현실을 그냥 바라볼 수 밖에 없어 무력감에 망연자실한 선생님 이야기가 안타깝고 그 입장에 공감이 간다. 일용이 부모는 일용이를 이해 못한다. 단지 곁에서 지켜보는 선생님보다 못한다. 부모가 그러면 대책이 없다. 그래서 아이 인생은 부모하기 나름이라 믿고 있다. 선생님들이 반성하고 눈물짓고 아이들에게서 교훈을 얻은 이야기들이었지만 부모입장인 나는 나 자신을 우선 돌아볼 수 밖에 없었고, 책 속 아이들 부모를 먼저 찾아 살필 수 밖에 없었다. 똑같이 올챙이 시절을 보냈으면서 왜 아이들 세계를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는지 답답할 뿐이다. 그러면서 나를 반성한다. 난 내 아이들을 제대로 살피고 있는지, 그들이 원하는 만큼 사랑해 주고 있는지 하고 말이다. 《우리반 일용이》는 아이들 세계를, 실상을 들여다 봐야하는 부모들이 봐야할 책이다. 한편 한편의 소설같은 이야기가 우리 아이들이 실제 겪고 있는 현실임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엄마는 무조건 아이를 품는 존재다. 무조건 사랑을 주고 무조건 아이 편이 되어준다. 그게 엄마다.(P.219)

 

 아이가 어떤 행동을 하던 아이가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고 이해하려 해야하는 사람이 부모다. 그런 부모만 있으면 아이가 아플 일이 없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대로에서 아이를 때리고, 벌도 세운다. 반대로 선생님이 아이들 하나하나를 속속들이 이해하고 감싸안기 힘들다. 그런데도 부모보다 더 관심과 사랑을 베푸는 분들이 있다. 상처받는 아이들 때문에 마음이 아프면서도 그런 선생님들 때문에 세상의 어느 한편은 따뜻함이 존재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모든 부모와 아이를 가르치는 모든 교사들이 함께 읽어야 할 책이다. 자라나는 우리 미래의 주역들을 위해 말이다. 아이들이 행복해야만 그 아이들이 만드는 세상도 행복한 세상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부모와 교사를 포함한 모든 어른들이 우리 아이들을 품는 존재가 돼야한다.



YES마니아 : 골드 l*****j 2013.02.28. 신고 공감 1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