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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배우는 아이와 어른 (이오덕 일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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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배우는 아이와 어른[이오덕 선생님 책읽기 3] 《이오덕 일기》 3권     - 책이름 : 이오덕 일기 3 불 같은 노래를 부르고 싶다- 글 : 이오덕- 펴낸곳 : 양철북 (2013.6.24.)- 책값 : 14000원     왜 다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려고 할까 궁금합니다. 왜 다들 아이들을 학교에 안 보내면서 삶과 사랑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지구별 이야기를 가르칠 생각을 못 할까 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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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배우는 아이와 어른
[이오덕 선생님 책읽기 3] 《이오덕 일기》 3권

 

 


- 책이름 : 이오덕 일기 3 불 같은 노래를 부르고 싶다
- 글 : 이오덕
- 펴낸곳 : 양철북 (2013.6.24.)
- 책값 : 14000원

 


  왜 다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려고 할까 궁금합니다. 왜 다들 아이들을 학교에 안 보내면서 삶과 사랑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지구별 이야기를 가르칠 생각을 못 할까 궁금합니다.


  학교에 가는 아이들은 삶을 배울까요?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사랑을 나눌까요? 학교를 오가는 아이들은 사람이 누구요 어떤 숨결이고 어느 때에 아름다운 목숨인가를 배우는가요?


  학교라는 데가 선 지는 얼마 안 되었습니다. 학교가 서며 아이들을 가르친 지는 그야말로 얼마 안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학교라는 데는 굳이 있을 까닭이 없어요. 학교라는 데가 선다 하더라도 중앙권력하고는 금을 그은 채 마을마다 홀로 씩씩하게 서야 옳다고 느껴요. 왜냐하면, 중앙권력은 서울이라 하는 큰도시에서 이루어지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모두 똑같이 가르치려 할 뿐이에요. 잘 생각해 보셔요. 어느 교과서에도 부산말이나 광주말은 한 마디도 안 나옵니다. 모든 교과서에는 그저 서울말만 나옵니다. 그런데 이 서울말조차 서울 토박이말 아닌 중앙권력이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새로 바꾸면서 세운 표준말입니다. 서울 사투리가 교과서에 나오지 못해요. 무슨 소리인가 하면, 서울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교과서라 하지만, 막상 이 교과서로 배운다 하더라도, 서울이 어떤 삶터인가를 제대로 배울 수 없다는 뜻입니다. 


- 민주교육실천협의회의 기구표를 보니 운동 면만 하는 것으로 되어 있고, 교육 연구 실천 면은 거의 관심이 없는 것 같아 내가 기구표를 하나 만들어 보이니 거기 앉아 있던 선생은 참 그래야 되겠는데요, 했다. 그런데 조금 있다 들어온 유상덕 선생은 나와 의견을 달리했다. 나는 교육자들이 장사꾼이 되어 있는 상태에서 자기를 이겨 내는 싸움도 하도록 하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싸움도 효과적으로 해낼 수 없고 교육 운동이란 것이 설득력 있게 먹혀들어 가지 않는다고 했지만 유 선생은 그런 일까지 우리가 할 수는 없다고 했다. (1986년 5월 3일)
- 문교부 직원들은 바빠서 못 쓴다고 하고, 국회의원들도 써 준 사람이 없다고 했다. 학생들이 죽어 가고 있는 문제를 두고 글을 써 달라는데 바쁘다니 그보다 더 큰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자기들이 지은 죄라 말할 수가 없는 것이겠지. 국회의원은 도대체 무엇을 하는가? 문공위원들이란 게 무슨 일 하는 사람들인가. 한심하기 짝이 없다. (1987년 1월 16일)
- ‘아이들에게 일하기를 싫어하도록 하는 교육보다 더 나쁜 교육이 없다.’ 그러니까 오늘날 이 나라의 학교교육보다 더 나쁜 교육이 없다. 이것은 교육이 아니다. 아이들을 병들게 하는 비참한 훈련이다. 교육이라면 바로 살인 교육, 식인 교육이라 할밖에 딴 이름을 붙일 도리가 없다. (1987년 2월 27일)

 

 

 

 


  서울말과 경기말 다르고, 강원말과 충청말 다릅니다. 시와 도에서는 구와 읍에 따라 말이 다르고, 읍에서는 면마다 말이 다르지요. 면에서는 마을마다 말이 달라요. 마을에서는 다시 집집마다 말씨가 달라요. 똑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요.


  다 다른 삶터에서 나고 자라는 아이들은 다 다른 삶터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책으로 배워야 마땅합니다. 다 다른 삶터에서 나고 자라는 아이들은 다 다른 삶터에서 씩씩하게 커서 다 다른 삶터에서 슬기롭고 아름답게 살아갈 길을 배워야 올바릅니다.


  시골아이는 시골살이를 배워야지요. 도시아이는 도시살이를 배워야겠지요. 따로 교과서를 마련한다 할 때에는, 시골살이와 도시살이를 아우르는 사람살이를 담아야 올바릅니다. 그러면, 오늘날 교과서는 사람살이를 제대로 다룰까요? 사람살이 아닌 대학입시에 얽매인 지식조각만 머릿속에 집어넣지 않는가요?


  밀양 어린이는 밀양이라는 데에서 자라는 풀과 꽃과 나무를 알아야 하고, 밀양이라는 삶터 들판과 냇물과 멧골을 알아야 합니다. 장흥 어린이는 장흥이라는 데에서 자라는 풀과 꽃과 나무를 알아야 하고, 장흥이라는 삶터 들판과 냇물과 멧골에다가 바다를 알아야 합니다. 제 삶터를 모르고서는 ‘한국’도 ‘서울’도 알 수 없어요. 제 삶터조차 모르고서 학교에서 교과서로 배우는 한국이나 서울은 어떤 모습일까요. 참모습을 배울 수 있을까요. 겉핥기라도 한다 할 만할까요.


  동무와 사귀려면 동무를 알아야 하듯, 집에서 어버이와 지내는 아이들은 어버이를 알아야겠지요. 마을에서 노는 아이들은 마을을 알아야 할 테고요. 인천 어린이는 인천이라는 곳 발자취와 문화를 알아야지요. 부산 어린이는 부산이라는 곳 발자취와 문화를 알아야지요. 무엇보다 이런 것을 가르치고 배울 수 있어야 비로소 ‘학교’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못 가르치고 못 배운다면, 학교가 아닌 ‘시험지옥으로 내모는 감옥’일 뿐입니다.


- 차를 타고 가는데 전북에서 전남으로 넘어가는 산과 들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더구나 거기는 보리밭이 많이 보이고, 뽕나무밭이며 장다리꽃밭이 노랗게 눈에 띄어, 그 옛날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듯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1986년 5월 10일)
- 아, 하늘이 저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나? 나는 자꾸 그 바깥 하늘만 보고 있는데, 비행기 안에서는 아무도 그 하늘을 내다보는 사람이 없었다. 대부분 관광하러 온 사람들인 것 같은데, 이 사람들은 저 아름다운 노을보다 더 놀라운 구경을 모두 하고 온 것일까? … “제주도 독립운동을 모두 해야겠는데요.” 그러니까 모두 웃었다. 나는 다시 말했다. “문화적인 독립 말입니다.” (1987년 10월 23일)
- 아, 봄이 왔구나 하는 생각, 귀중한 그 무엇이 나도 몰래 온 천지에 와 있는데, 나는 모르고 있구나, 모르고 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988년 4월 8일)
- 아침에 해가 뜰 때 창 앞에 앉았는데, 하늘이 온통 그대로 가득 내려와, 새털구름과 앞 언덕과 바로 앞의 나뭇가지와 나뭇잎, 벼 이삭들이 너무너무 아름다워 오랫동안 정신없이 바깥만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한쪽 창밖에는 감나무 가지들이 내려와 노란 감들이 눈이 부시었다. 아,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두고 나는 지금까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았나? 이제는 이곳을 도무지 떠날 수 없을 것 같다. 어서 서울 일을 정리하고 와야지. 도시에서 하는 모든 일이 다 부질없는 짓 아니고 무엇인가? (1989년 10월 2일)

 

 


  어른들은 교사가 되어 학교에서 참교육을 하려고 힘쓰기도 합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의무교육이라는 굴레 때문에 학교에 가야 하니, 교사 되어 참교육을 펼칠 수 있으면 아이들이 참삶 배울 수 있으리라 여길 만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학교는 교육이 아닌 시험공부를 시킵니다. 초등학교도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시험지옥이에요. 교육이 아닌 시험공부뿐입니다. 고등학교쯤 되면 인문계와 실업계로 갈라 자격증지옥이 새로 생깁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삶을 배우지 못하고, 어른들은 학교에서 삶을 가르치지 못해요.


  그러면, 이제라도 어른들 스스로 생각해야지요. 학교교육이 의무교육이어야 하는가를 생각해야지요. 의무교육으로 모든 아이를 똑같이 생긴 건물이 척척 집어넣고 똑같은 교과서로 똑같은 시험문제풀이를 시킨 다음, 똑같은 대학교나 회사에 들어가도록 내모는 이 흐름이, 마치 톱니바퀴 조각을 맞추려는 듯이 아이들을 길들이는 끔찍한 노예사회 모습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야지요.


  아이들은 집에서 살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학교 아닌 집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려고 집을 짓고 가꾸고 마련하며 돌보고 꾸립니다. 집은 부동산 아닌 보금자리이니, 집에서 살지요.


  아이들은 집에서 살면서 따사로운 품을 느끼는 한편, 집을 둘러싼 숲을 누려야 합니다. 집을 둘러싼 숲에서 풀과 나무와 꽃과 흙과 바람과 햇살과 빗물과 눈송이를 누려야 합니다. 자연이 있어야 비로소 숨을 쉬거든요. 밥도 물도 자연이지, 가공식품 아닙니다. 가공식품이라 하더라도 자연에서 얻어 공장에서 만듭니다. 자연이 없이는 아무것도 못 만들고 아무것도 못 먹어요. 집 둘레에는 아름다운 숲이 있어야 마땅합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먼 옛날 어느 마을이나 ‘시골’이었고, 서울이라는 데이든 부산이라는 데이든, 모두 아름다운 숲과 들과 바다와 골짜기와 냇물이 있었어요. 예부터 사람들은 집 둘레에 숲을 가꾸며 살았습니다. 너무 마땅한 노릇인데, 예부터 사람들은 스스로 집과 밥과 옷을 마련했어요. 남이 마련해 주지 않아요. 스스로 땅을 일구어 밥을 얻고, 옷을 지으며, 집을 세우지요. 땔감도 스스로 나무를 해서 마련합니다. 불도 스스로 지핍니다. 겨도 스스로 절구를 찧어 벗깁니다. 스스로 하지 않는 살림이 없어요. 예부터 아이들은 ‘스스로 살아가는 길’을 집에서 지내며 아주 스스럼없이 제대로 익혔어요.


- 나는 오늘부터 1일 1식은 몰라도 1일 2식을 하기로 하고, 산 날 수도 셈하겠다고 결심한다. 예순한 살이 넘어서야 이런 것을 하니 부끄럽지만, 이제부터라도 옳게 살아야지. 이건 남의 흉내를 내는 건가? 앞서 간 남의 훌륭한 삶을 배우는 것은 좋은 일이다. 남을 배척할 것 아니라 내가 찾지 못한 것을 보여준 남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은 사람답게 사는 길이라 생각한다. (1986년 7월 25일)
- 나는 대체로 자기중심으로 살아가려는 사람에게는 자기를 혁신하고 탈피하는 자기와의 싸움을 하라고 말하고 싶고, 남 위해 사는 사람에게는 자기 마음을 끝까지 지키라고 말한다. (1986년 9월 12일)
- 학문이란 것이 꼭 학교에서만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현실의 체험과 독서를 통해 진실한 이치를 찾아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1987년 3월 4일)
- 서울사람 쳐다보지 말고 농어촌에서 우리 것을 지키고 창조해야 한다. (1989년 11월 27일)

 

 

 

 


  아이들은 집과 숲을 누리는 한편, ‘살림터’와 ‘배움터’를 누립니다. 집과 마을과 숲이 바로 살림터이면서 배움터입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아이들이 아니라, 어버이한테서 늘 배우는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이 쓰는 말은 모두 어버이와 이웃 어른들 말입니다. 아이들이 익히는 몸가짐은 모두 어버이와 이웃 어른들 몸가짐입니다.


  어른들이 옳고 바르게 살아가면 아이들이 옳고 바르게 살아갑니다. 어른들이 착하고 참답게 삶을 일구면 아이들이 착하고 참답게 삶을 일구는 길을 걷습니다.


  책이 없어도 얼마든지 가르치고 배웁니다. 책이 있을 까닭 없이 사랑으로 가르치고 배워요. 밥을 지으면서, 옷을 지으면서, 집을 지으면서 배웁니다.


  누구라도 생각할 일입니다. 한겨레가 오래도록 쓴 한국말을 살피면, 밥·옷·집을 밥짓기·옷짓기·집짓기라고 이야기했어요. 밥도 옷도 집도 짓는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짓는다’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짓는’ 일이란 무엇일까요.


  한겨레는 밥과 옷과 집처럼 ‘말을 지으’면서 살았어요. ‘밥’이라는 낱말을 짓고, ‘옷’이라는 낱말과 ‘집’이라는 낱말을 지었지요. ‘풀’과 ‘해’라는 낱말을, ‘나무’와 ‘바람’이라는 낱말을 지었어요.


  학자가 지은 낱말 아니에요. 임금이나 지식인이나 사대부나 양반 같은 사람이 지은 낱말 아니에요. 임금도 지식인도 사대부도 양반도 한 마디조차 못 지었어요. 한겨레가 예부터 쓴 모든 한국말은 시골에서 흙을 만지면서 흙을 먹고 흙으로 집을 지은 시골사람이 지었어요. 곧, 말짓기입니다.


  그러면, 말짓기란 무엇일까요. 바로 생각짓기입니다. 생각을 지어 말로 나타냅니다. 자, 저것은 냇물이라고 가리키자. 자, 이것은 잔치라고 가리키자. 자, 이 아름다운 목숨은 아기라고 가리키자. 자, 이것은 치마라 가리키고, 저것은 바지라 가리키자. 자, ‘오늘’과 ‘모레’라는 말을 쓰자. 자, ‘철’과 ‘날씨’라는 말을 쓰자. 자, 나는 너를 ‘믿는다’고 말하자. 자, 나는 내 삶을 ‘생각한다’고 말하자.


  모든 말은 생각을 지어서 태어납니다. 생각을 지으니 말짓기입니다. 생각을 짓는 말짓기란 곧 삶짓기예요.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기에 삶을 짓는 일이고, 삶짓기예요.


- 아무래도 김언호 사장은 아동문학, 아동문화에 대한 신념이라든가 사명감 같은 것은 부족하고, 잘 팔리는 상품을 만들려고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저자에 대한 대우 문제도 나와는 의견이 달랐다. 삽화료를 저자의 인세에서 지출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한길사에서 나오면서, 여기 작가들 소개해서 책 내는 일 도와주다가는 내가 또 욕을 얻어먹을 뿐 아니라 출판사들의 장사만 이롭게 해 주게 되겠구나 싶어 앞으로 한길사에 대한 협조도 그만둘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1986년 8월 25일)
- 웅진에서 얘기 들으니 이번 이 전집이 나온 것 보고 여기저기서 항의하는 전화가 왔다고 한다 … 이것이 분단된 나라에서 반쪽 문학도 안 된다. 해방 후 양심적인 문인들은 모두 좌익으로 몰려서 이곳에서 살 수 없게 되자 월북, 납북이 되고 겨우 이원수, 윤석중 두 사람이 남았는데, 여기에 반공 아동문학만이 판을 쳤으니 무슨 꼴이 되었겠는가? 편집장 말 들으니 지금도 이원수 선생을 공산주의 문학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니, 가히 짐작할 만하다. 반공동화나 쓰면서 사기꾼 노릇 하는 자들이 문단을 점거하고 있는 실태니! (1988년 5월 20일)
- 우리가 해야 하는 문학 운동은 정치나 교육같이 밖으로 외치고 남에게 호소하는 것보다 우리 자신이 인간으로 문학인으로 바로서고 옳게 쓰는 일을 해서 남들이 따라오게 하는 운동이라고 해 주었다. 그리고는 기성작가들이고 신인이고 일체 무시하고 모두 공부하는 몸가짐으로 나가야 한다고 했다. “그럼 누가 가르치고 누가 배웁니까? 나부터 가르칠 자격이 없는데.” 하여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가르치고 배우고 해야지요.” 했다. (1989년 11월 19일)

 

 


  삶을 짓는 사람이기에 말을 지을 수 있습니다. 삶을 짓는 사람이기에 생각을 지으며, 사랑을 지을 수 있어요. 말과 생각과 사랑을 짓는 사람들은 또 무엇을 지을까요? 그래요, 꿈을 지어요. 어떻게 살아갈 때에 참으로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시나브로 꿈 한 자락 태어나요. 이 꿈을 아이들한테 실어서 선물하지요.


  아이들은 어른들 생각과 사랑과 삶을 바탕으로 태어납니다. 어른들이 지은 생각과 사랑과 삶을 물려받는 아이들은 날마다 새롭게 놀면서 꿈을 짓습니다. 아이들 놀이는 그냥 놀이가 아니에요. 손가락과 발가락을 놀리고, 몸과 마음을 놀립니다. 아이들 놀이는 어른들 일과 같습니다. 어른들 일이란 고단하거나 힘겹게 하는 몸부림이 아니라, 삶을 아름답게 가꾸는 즐거운 빛입니다. 이리하여, 꿈을 지으면서 ‘빛’이라는 낱말로 이어져요. 빛은 곧 온누리를 밝히는 볕과 살, 햇볕과 햇살입니다. 이에 따라 철을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로 나누어, 사람들이 살아가는 흐름을 가눕니다. 아이들도 어른들과 함께 네 철을 누리면서 철마다 다 다른 놀이를 떠올립니다. 새롭게 떠올린 놀이를 스스로 즐기면서 동생한테 물려줍니다. 동생은 언니 오빠 누나한테서 물려받은 놀이를 한껏 즐기면서 조금씩 슬기를 보태어 새 놀이를 빚어 또 새로운 동생한테 물려주어요.


  우리 한겨레 삶은 이렇게 해서 수천 수만 수십만 수백만 수천만 해를 이었어요. 그런데, 고작 백 해조차 안 된 근대 제도권 학교교육이 아이들 놀이를 하루아침에 송두리째 짓밟아요. 아이들은 집에서 놀 줄 모르고, 마을에서 놀지 못하며, 학교에서는 아예 놀이를 할 수 없어요. 학교는 ‘놀이 금지’입니다. 학교에서 신나게 놀 수 있는 아이가 없고, 학교에서 아이들이 신나게 놀도록 북돋우거나 보살피는 어른이 없어요.


  놀지 못하면 삶을 짓지 못합니다. 놀지 못하니 삶도 생각도 사랑도 짓지 못하지요. 놀지 못하는데, 삶도 생각도 사랑도 새롭게 싹트지 못하고, 바야흐로 꿈이 태어나거나 자라지 못합니다. 오늘날 아이들한테서 꿈을 찾아볼 수 없는 까닭은 바로 이런 뿌리에 있어요. 놀지 못하게 하니 아이들이 꿈꾸지 못해요. 놀지 못하다 보니 아이들 스스로 꿈을 잊어요.


- 도대체 아이들이 왜 그런가? 왜 쓸거리가 없는가? 이 물음에는 첫째, 도시 아이들의 생활 자체가 기계적이고 피동적이며 도무지 주체적인 생활이 없으니 그렇고, 둘째, 학교에서 가르치고 아이들이 교과서며 다른 책에서 배우는 것이 겉보기 근사한 글, 제 자랑하는 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글이니, 자기의 정직한 생활이란 부끄러워서 쓸 수 없다 … 느낌이나 감동이 없는데 어떻게 생각이 있겠는가? 이래서 이 땅의 아이들은 인간 기계가 다 되어 갈 모양이다. 생각이 없는 아이들, 혼이 빠진 아이들이 다 되어 갈 모양이다 … 글쓰기는 생각이 있는 사람, 혼을 가진 사람을 만든다 … 전자오락, 텔레비전, 잘못된 교육 등 사람을 사람 안 되게 만든 모든 기계와 싸워야 한다. 사람을 노예로 만드는 교육과 싸워야 한다. 그릇된 일을 배반하는 정신을 가지도록 아이들을 키워야 한다. 그래야 조금씩 생각을 가지게 될 것이다 … 지금은 우리 말로 쓴다고 하지만 실제 자기가 겪은 일을 정직하게 쓸 수 없는 교육이 되어 있으니, 쓸거리를 못 찾고 글쓰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이것은 절대로 정상이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의 마음을 남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여 정직하게 쓰는 것을 즐거워 합니다. (1986년 10월 11일)
- 그런데 자세히 보지 않고 그 많은 공책들 겉모양만 보고, 벽에 붙여 놓은 그림일기나 원고지에 써 놓은 것을 구경만 하면 참 훌륭한 교육을 하는 줄 안다. 학부모들도 아이들의 글씨가 깨끗하고 바르게 씌어 있다고 모두 감탄하는 얼굴들이었다. (1986년 11월 23일)
- 나는 이 회(초교협)의 기본 목표가 아이들을 참된 민주 시민으로 기르기 위한 교육이 잘되도록 즉, 민주교육을 실천하는 일을 하는 것이며, 기본적 운동 방향으로서 민주교육의 실천을 도와주고, 민주교육을 방해하는 모든 문제를 협의해서 해결하고 장애를 제거해 주는 데 있어야 한다고 본다 … “그런데 지금 박 선생 말한 ‘돈봉투는 당연하고 인간적’인 것이란 견해가 한두 사람의 생각이 아니고 초교협의 견해라면 나는 이런 교육 운동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학부모들도 별 관심을 안 가질 것입니다.” (1987년 8월 27일)

 

 

 

 

 


  놀지 못한 채 큰 아이들이 대학교에 가며 더 머리 아프게 지식조각을 주워섬깁니다. 놀지 못한 아이들 마음 한켠에는 놀고픈 움직임이 있지만, 놀지 못한 채 억눌리는 동안, 다른 것들, 이를테면 손전화나 인터넷이나 게임이나 스포츠나 영화나 연속극이나 텔레비전 따위에 휩쓸립니다. 몸을 움직여 놀지 못하니, 몸을 안 움직이는 데에서, 그러니까 좁은 방구석에서, 또 오락실에서, 또 도서관에서, 또 버스나 전철에서, 또 어디에서나 손전화를 붙잡고 노닥거립니다. 놀이 아닌 노닥거림에 빠집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공부를 하지 않아요. 시험지옥에 갇혀요. 아이들은 공부 아닌 시험문제풀이만 해요. 아이들은 공부다운 공부하고도 동떨어져요. 그러니, 아이들은 책다운 책을 스스로 찾아서 스스로 아름답게 읽고 스스로 사랑스러운 빛줄기를 가슴에 품자는 생각을 못합니다. 고작 추천도서나 권장도서나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 몇 권 읽고 말아요. 책을 읽는 까닭은 지식을 넓히려는 뜻이 아닌데, 그나마 지식조차 넓히지 않아요. 시간 죽이기에 그치기 일쑤입니다. 게다가 시간 죽이기조차 즐겁게 하지 못하지요.


  놀지 못하면서 스무 살이 넘고 서른 살이 된 ‘애늙은이’ 같은 젊은이가 혼인을 해서 아이를 낳으면 이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요? 어쩔 수 없이, ‘애늙은이’ 같은 젊은이가 걸어온 길을 똑같이 걸어가겠지요. 똑같이 보육원, 유아원, 어린이집, 유치원을 떠돌며 ‘놀이’ 아닌 ‘조기교육’과 ‘재능학습’에 길들고 ‘영어 보조교재 서양 영화와 그림책’만 달달 외우듯 쳐다보면서 초등학교에 들어가겠지요. 초등학교부터는 숙제와 학원이 되풀이되고, 중학교부터는 집에 붙을 겨를도 없이 시험문제풀이에 들볶입니다. 고등학교에서는 더 끔찍하게 시달립니다.


  애늙은이 같은 젊은이도, 이 젊은이들이 낳은 아이들도, 삶이나 사랑이나 사람하고는 멀리 떨어져요. 어느 누구도 삶을 생각하지 않고, 사랑이나 사람을 생각하지 못해요. 생각이 없으니 말을 새롭게 짓지 못해요.


  오늘날 이 나라에 영어가 그토록 판치고, 한자말이 그토록 가득한 까닭을 생각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니, 새로운 문화나 문명이 있더라도, 이러한 문화나 문명을 ‘내 말(우리 겨레 말)’로 그릴 줄 몰라요. 말이 어지러워질 수밖에 없어요. 학교라는 데가 아이들을 몽땅 망가뜨려 애늙은이 같은 젊은이를 낳는데, 여기에다가 남과 북이 갈려서 남녘땅 아이도 북녘땅 아이도 군대에 끌려가요. 군대에서 사람 죽이는 재주를 배워요. 군대에서 계급과 신분과 차별과 학대와 폭력과 욕설을 배워요.


- (장애 어린이가) 내민 손이 오른손이고 손가락을 쫙 폈다. 손을 잡고 싶어 하는 것이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옆문을 열었더니 곧 달려와서 내 손을 잡고는 좋아서 못 견디었다. 한 손으로 내 손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내 얼굴을 쓰다듬었다. 차가운 그 손은 내 손바닥에서 따뜻하게 녹여졌다. 아, 어른들의, 인간의 사랑, 체온이 그리워 못 견디는 이 아이! … 권정생 선생 집에서 나오면서, 인간의 몸에 붙는 온갖 질병뿐 아니라 정치고 교육이고 문학이란 것도 그 진리, 그 바른 길이 아주 소박하고 단순하고 평이한 데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1987년 3월 8일)
- 현우(작은아들)가 아침에 와서 목욕을 하고 또 나갔다. 이틀 밤을 학교에서 농성을 하고, 오늘은 시내에 나가 시위를 한다고 했다. 밤에 농성을 하면서 토론회를 한 모양인데, 그렇게 해서 세상을 배우게 되는구나 싶었다. 나갈 때 “조심해라”고밖에 할 수 없었지만, 그런 데 나가는 것이 흐뭇한 생각이 들었다 … 나는 통의동까지 힘없이 걸어가면서, 시위 한 번 하지 못하고, 시위하는 젊은이들에게 박수 한 번 쳐 주지 못하고 지나온 나 자신이 한없이 무력한 존재로 느껴져 서글프고 또 부끄러웠다. 나이가 많아졌다고 한탄하는 것으로 될 일이 아니다. 뭔가 내 정신도 크게 거듭나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987년 6월 20일)
- 나는 최루탄 가스의 눈물이 아니고 진짜 눈물이 났다. 나도 박수를 치고 손을 흔들었다. 좀더 많은 시민들이 쏟아져 나와 길을 메우고, 교통을 차단시켜 아주 마음껏 외치고 뛰고 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렇게 안 된 것은 오늘 관공서고 기업체고 모조리 직원들의 발을 묶어 놓고 있는 데다 대회장에 못 들어오도록 전경들을 이중 삼중으로 배치하고 전철을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26일)

 

 


  학교에 다니더라도 마음을 올바르게 건사하는 아이들이 더러 있습니다. 군대에 끌려갔어도 신분과 계급에 따라 사람을 괴롭히거나 따돌리지 않는 아이들이 가끔 있습니다. 대단한 아이들이지요. 스스로 마음을 착하고 참답게 다스릴 줄 아는 아이들이 조금씩 있어요.


  그러나 거의 모든 어른과 아이는 쳇바퀴에 갇힙니다. 쳇바퀴에 갇힌 사람이 됩니다. 쳇바퀴에서 스스로 헤어날 줄 모르는 사람이 됩니다. 쳇바퀴질 멈추고 새장에서 빠져나와야 할 텐데, 새장 밖으로 나와서는 어떻게 스스로 삶을 지어야 할까를 생각하지 못합니다. 새장에 갇힌 채 먹이나 받아먹고 쳇바퀴질을 할 때에 비로소 먹고살 만한 듯 여깁니다. 새장 한쪽에 먹이를 남겨 놓거나 쌓으면서 ‘미래 보장’이라도 해 놓은 듯 여기기 일쑤입니다.


  감옥에 갇혀 지내더라도 밥만 잘 받아먹으면 좋은 삶이 될까요. 감옥에 갇혀 햇볕조차 못 쬐더라도, 하루에 십 분이나 한 시간씩 볕을 쬐도록 풀어 주면 좋은 삶이 될까요. 감옥에 갇힌 채 생각과 사랑이 모두 꽁꽁 묶여서, 내 마음을 펼치지 못해도, 밥과 집과 옷을 거저로 내주면 좋은 삶이 될까요.


  생각해야지요. 이 나라 아이들이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에 걸쳐, 시험문제풀이만 달달 외우도록 길들여지더라도 밥을 먹고 옷을 입으며 잠을 자는 이 얼거리란, 얼마나 아프며 슬픈 모습인가를 생각해야지요.


- 나도 “우리 교사들은 어디까지나 당하고 있는 아이들 편에 서야 한다”고 말하고, 다른 몇 사람의 비판적 견해도 나왔지만, 교육 이론을 연구한다는 사람이 실제 교육 문제에 부딪히면 뜻밖에도 고루하고, 전제적 행정가나 압제자의 처지에서 아이들을 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 의식 교육이니 해서 아이들에게 너무 지식으로만, 머리로만 가르치려고 하지는 않는가. 민주주의를 머리롬나 가르치려고 하고, 손발로 실천하는, 몸으로 살아가는 사람으로 가르치는 일은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글을 써도 추상적인 이론, 관념적인 글만 나오고, 남에게 들은 말, 책에서 익힌 말투만 나와서, 실속은 없는데 겉으로만 무슨 주의나 사상을 가진 것처럼 보이니. (1987년 8월 8일)
- 노동자들이 얼마나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이따금이라도 생각하지 않는다면 어떤 종교인이고 문인이고 정치인이고 그는 인간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면 위험하니 노태우를 찍어 줘야 한다고 말한다니, 이 사회가 얼마나 인간을 노예근성으로 길들여 놓았는가 알 수 있다. 노예사회가 결코 옛날 얘기가 아니다. 오늘날의 도시는 거대한 노예 도시로 노예국가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1987년 11월 6일)
- 내가 아니면 그 아무도 불러 주지 않는 짓밟혀 죽어 가는 생명들을 나는 노래해야지. 아름다운 그 생명을 노래해야지. (1988년 2월 14일)

 
  이오덕 님이 쓴 일기를 갈무리한 《이오덕 일기》(양철북,2013) 셋째 권을 읽으며 생각을 기울입니다. 셋째 권에는 “불 같은 노래를 부르고 싶다”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1986년부터 1991년 사이에 쓴 일기를 모은 셋째 권에는 멧골학교에서 쫓겨나다시피 떠나서 서울 둘레에서 집을 얻어 살아가며 부대낀 1987년 서울 모습을 비롯해, 우리 현대사 얼룩과 아픔과 생채기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씩씩한 젊은이들 모습을 《이오덕 일기》에서 읽기도 하지만, 못난 젊은이들 모습에다가, 못난 어른들 모습까지 읽어요.


  《이오덕 일기》 둘째 권을 읽으면 이오덕 님 딸아이(연우)가 국민학교 1학년 적부터 어마어마한 숙제더미에 짓눌린 채 반공글짓기 반공표어 따위를 끝없이 학교에 내야 하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이런 모진 군화발에 짓눌린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교에 나아가 젊은이 되어 반정부 집회를 엽니다. 이 젊은이들 가운데에는 정치꾼으로 빠지는 아이가 있고, 조용히 농사꾼 되는 아이가 있으며, 그냥 도시에 남아 여느 회사원이나 노동자 되는 아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젊은이 되어 짝을 짓고 아이를 새로 낳으면 어떤 삶 이루어질까요. 이 젊은이들이 낳은 아이들은 저희들이 어린 나날 겪은 굴레와 수렁을 이녁 아이들이 다시는 안 겪도록 힘을 기울였을까요. 아니면, 그냥 쳇바퀴 학교에 아이들을 집어넣고는 회사일에 바쁘고 공장일에 바빠서 아이들은 못 쳐다보며 살았을까요.


- 승객들이 세어 보니 16명밖에 안 되는데 귀에 이어폰인가 하는 것을 꽂고 앞에 나오는 비디오테이프리코더 영화를 본다. 전에는 고속버스에 중국 무술 영화가 나오더니 오늘은 국산 영화다. 이것이 잘 팔린다고 국산이 나온 모양이다. 치고받고 차고 넘어지고 하다가 어느새 이번에는 벌거벗은 여자들이 춤을 추고, 그러다가 또 치고 차고 한다. 그걸 잠시 봐도 머리가 아픈데 서울서 진주까지 가는 다섯 시간 내도록 본다 … 저런 기막힌 영화를 쳐다보고 거기 빠져 있는 어른들이, 자신을 표현하는 대신 자신의 어떤 병든 인간성, 인간의 마성을 대신 표현해 주는 것에 만족해 하고 거기 빠져 있는 것이구나 하고 깨달았다. 대신 표현, 대리 표현! 진정한 사람다운 표현이 아니고 병든 어른들의 악마적 표현으로 자기를 만족시키고 그 생명을 유지시키는 것이다. 오늘날의 모든 매스컴이란 것이 이런 대중들의 자기표현을 차단시키면서 그 병적 표현을 대행해서 대중들을 잡고 있는 것이다. (1987년 10월 31일)
- 우리 말이 어지러워지고 더러워지는 것을 생각하면 기가 막힌다. 이것이 모두 역사가 뒷걸음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병들고 썩고 하는데 말마저 다 버리게 되었다. 그런데 학자들은 모두 어디 갔는가? 대학의 교수들은 무엇을 연구하는가? (1988년 1월 17일)
- 말과 글, 그리고 의식, 삶, 이것들의 관계를 생각할 때,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은 삶이다 … 즉 글과 말을 바로잡음으로써 우리의 의식을 바로잡고 삶을 바로잡는 것이고. (1988년 2월 7일)

 

 


  잘 놀면서 잘 큰 아이들은 사랑도 잘 하고 꿈도 잘 꿉니다. 잘 놀며 큰 아이들은 언제나 새로운 말을 베풉니다. 틀에 박혀야 할 까닭이 없어요. 틀에 맞추어야 할 까닭이 없어요.


  우리 고장말을 살피면 민들레 한 가지이든 냉이 한 가지이든, 고장마다 가리키는 이름이 모두 달라요. 풀이름, 나무이름, 꽃이름, 몽땅 고장마다 다르지요. 물고기와 새와 벌레 이름도 고장마다 다 달라요. 왜냐하면 삶이 다르고 삶터가 다르잖아요. 그러니, 다 다른 삶터에서 다 다른 삶을 빛내면서 다 다른 말을 빛냅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다 똑같은 교과서로 다 똑같은 학교 건물에서 다 똑같은 말씨로 꾸민 다 똑같은 보이는 교사한테서 다 똑같은 지식을 외워야 합니다. ‘배우’지 않고 ‘외워’야 해요.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교사가 들려주는 지식을 ‘외우’지 못하면 미움을 받습니다. 교과서 지식을 외우지 못해 시험점수가 뒤떨어진 아이들은 뒤로 처지지요. 눈길을 못 받습니다.


  다 다른 아이들이 다 다른 삶터에서 다 다른 사랑을 빛내도록 북돋우는 구실을 학교가 하나도 안 합니다. 그러면 이 몫을 누가 해야 할까요? 바로 어버이들이 해야지요. 어머니가 하고 아버지가 해야지요. 아이들이 삶을 배우면서 노래할 수 있게끔, 마음껏 놀도록 북돋아야지요.


  아이들과 노래를 부르면서 신나게 뛸 수 있는 어른이 되어야지요. 아이들과 손을 맞잡고 춤을 추면서 해맑게 이야기꽃 피우는 어른이 되어야지요.


  케익은 안 사 주어도 돼요. 새옷 안 사 입혀도 돼요. 놀이공원 안 가도 돼요. 아이들을 바라보셔요. 아이들을 꼬옥 껴안으셔요. 아이들하고 나란히 드러누워 별빛 헤아리며 잠자리에 들어요. 그뿐입니다. 아이들과 놀고 어울리면서 아이들이 삶을 배우도록 이끌어 주셔요. 어버이 몫은 바로 이뿐입니다. 여행을 다니거나 외식을 해야 하지 않아요. 아이하고 살가이 눈빛 마주하면서 파랗게 눈부신 하늘을 누려요. 시원한 냇물에 발을 담가요. 함께 씻고 함께 빨래하며 함께 걸레질을 해요.


- 방에 돌아와서도 고양이 생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아래층 아주머니는 고양이를 보고도 무서웠는지 싫었는지 가까이 가지도 않고 오랫동안 서 있었다. 청소부는 도둑고양이 얘기를 했다. 지금은 30대, 40대가 된 사람들도 이렇게 짐승이고 자연을 모른다. 사람까지 모두 상태가 변해 버린 것이다. (1988년 11월 2일)
- 우리가 이제서 깨달은 것은 권정생 선생이 지금까지 혼자 살아온 것이 아니라 일직 조탑동 그 마을 사람들과 한식구가 되어 살았던 것이다. (1988년 11월 25일)
- 빨래를 다 마치고 그것을 걸어 둘 때도 즐겁지만, 다 마른 것을 거두는 것도 기쁘고 깨끗이 빤 옷을 입는 것도 기쁘다. 그래 문득 이런 생각이 났다. 여자들이 오래 사는 것은 바로 빨래를 하기 때문이라고. 참 엉뚱한 생각이지만 이건 재미있는 시적인 생각이라, 시를 한 편 써 보고 싶었다. ‘빨래’란 제목으로. (1989년 6월 8일)
- 오면서 생각했다.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데, 그걸 방해하기만 안 하면 다 된다. 그런데 그 가지를 모조리 비틀어 끈으로 매고, 잎을 쥐어뜯고 하니 그 나무가 제대로 자랄 리가 없고, 병신이 될밖에 없다. 그 아가씨들이 하고 있는 교육이 꼭 나무를 그렇게 못 견디게 쥐어틀고 꺾고 해서 묘한 예술품으로 만들어 놓은 것과 같다. 그 아가씨들뿐 아니라 교육부의 교육도 그렇고, 교과 모임의 ‘함께 쓰기’ 교육도 그렇다. 그들 중에서 이 아가씨들만 좀 다른 것은, 그렇게 만들어 놓은 나무가 아무래도 좀 부자연스럽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아가씨들에게 “보라, 이렇게 자연 그대로 자라는 나무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렇게 길러야 한다.”고 말해 주니, 그 아가씨들은 말하는 것이다. “아이구, 그렇게 자연스럽게 기르자면 얼마나 힘이 듭니까? 이 잎들을 모두 이렇게 뜯어서 여기저기 새로 붙여야 하네요. 이 가지는 다시 끊어서 접붙이기를 해야겠네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다듬자면 전지가위로 잘 잘라 줘야 하는데 그런 기술을 좀 배워야겠네요.” 꼭 이런 꼴이다. (1991년 12월 23일)

 

 


  요즈음 사회에서는 한국말 ‘일’을 거의 안 쓰고 한자말 ‘노동’을 씁니다. 참 어처구니없는 노릇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요즈음 사회에서는 ‘일’이라고 할 만한 일이 참 없어요. 참말 ‘노동’일 뿐이지 싶어요. 그런데, 요즈음 사회 ‘노동’이란 한국말로는 ‘품팔이’이지요. 품을 팔 뿐이고, 또 다른 모습으로는 ‘돈벌이’일 뿐이에요. 그러니, 이런 품팔이와 돈벌이는 ‘일’이 되지 않아요.


  일은 놀이와 같습니다. 놀이처럼 할 때에 일입니다. 일을 하듯 보람이 있으면 놀이가 돼요. 그래서 아이들이 놀이하는 모습은 어른들로서는 일하는 모습과 같아요. 아이들은 땀 흠뻑 쏟고 놀이를 하면서 살아가는 보람을 누리지요. 어른들은 땀 물씬 흘리며 즐거운 일을 할 때에 살아가는 보람을 누려요.


  아무 일이나 한대서 보람을 누리지 안아요. 즐거운 일을 해야 보람을 누려요.


  돈을 벌든 말든 그리 대수롭지 않아요. 삶을 지으면서 돈을 벌어야 돈다운 돈이에요. 삶을 짓고, 생각을 지으며, 사랑을 짓는 하루를 누리면서, 돈도 돈대로 알맞게 벌면 아름다운 돈이에요.


  그저 돈만 버는 기계가 되는 요즈음 사회이기에, 이럴 때에는 그냥 ‘노동’이 되지 싶어요. 그래서 누군가는 ‘노동’이라 하고 누군가는 ‘근로’라 하더라도, 밑바탕은 다르지 않아요. 노동부가 되든 근로부가 되든, 노동기준법이 되든 근로기준법이 되든 똑같아요. 밑바탕이 같으니까요. 노동자라 하든 근로자라 하든 달라질 것 없어요. 참답게 살아가자면, 노동자도 근로자도 아닌 ‘일꾼’이 되어야 하고, 일꾼들은 누구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어야 해요.


  곧, 우리 아이들이 즐겁게 놀면서 무럭무럭 자라 스스로 기쁘게 맞아들일 일거리를 찾은 다음, 새로운 사람 하나로 거듭나도록 할 때에 참배움이고 참가르침입니다.


- 노동자들의 노동운동도 임금 인상 싸움과 함께 노동자로써 바르게 살아가는 운동을 함께 해 나가야 되겠구나, 노동운동도 농민운동, 교육 운동, 여성운동과 마찬가지구나 싶었다. 결국 노동자들이 살아가는 목표가 돈 벌어 편리하고 편안하게 살아 보겠다는 데 있는 것이 문제다. 그러니까 이런 점에서는 노동자와 자본주가 똑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 일하는 것을 기쁨으로 살아가는 삶의 질서를 세우지 않고는 우리 인간에게 결코 구원은 없을 것이라 본다. (1990년 1월 5일)
- 우리 나라 분단 40여 년 동안 남한의 아이들이 부른 동요는 가사로는 윤석중, 김영일, 장수철, 박경종, 강소천 이런 사람들이고, 곡은 홍난파, 윤극영 들이다. 그리고 가사를 보면 참 어처구니없는 내용들이 많은 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아이들의 삶이란 전혀 없는 것뿐이다. (1990년 4월 7일)
- 내 책 《우리 글 바로쓰기》를 앞에 놓고 “선생님, 이 책을 쓰신 학문적인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했다. 그래 참 너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어 “뭐, 학문이라고요? 그 학문이란 게 뭡니까? 나는 우리가 글을 쓸 때 일반 민중들이 말하는 그 말을 따르고 그 말을 살려서 써야 한다는 신념뿐입니다. 학문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내 생각의 바탕과 뿌리는 민중의 삶이고 민중의 말입니다.” (1990년 5월 4일)
- 오전에 《사회평론》에 실려 있는 고길섶이란 사람이 쓴 글을 읽어 보았다. 성균관대학 철학과 4학년 학생이다. 그 내용이 내 주장을 아주 오해하고 있다. 제멋대로 논리를 펴 나가면서 내가 아주 옛날 농경시대의 말만 고집하면서 역사의 변혁을 부정하는 사람이라고 해 놓았다. 물론 그 문장도 잘못된 한자말 문장이요, 일본말 번역체 문장이다. 웬만하면 그대로 버려 둘까 했는데, 좀 철저히 비판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991년 11월 23일)

 

 


  이오덕 님은 《이오덕 일기》 셋째 권에서 ‘도시에서 살며 일하는 괴로움’을 꾸준하게 적바림합니다. 하루라도 빨리 이 도시를 벗어나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우리 사회를 아름답게 고치는 일을 하려고 서울로 왔지만, 정작 서울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느끼기로는, 이오덕 님 스스로도 쳇바퀴를 돌면서 이 틀에 갇히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왜냐하면, 이오덕 님이 서울에서 아름답거나 훌륭한 일을 하더라도, 아파트를 허물지 못하고 아스팔트를 걷어내지 못하며 시멘트를 치우지 못해요. 이오덕 님을 섬기거나 따르는 젊은이들도 아파트를 허물 생각을 못하며, 아스팔트와 시멘트를 걷어치울 꿈을 꾸지 않아요.


  지식을 넘는 삶을 생각하고, 지식을 아우르는 사랑을 살피며, 지식을 밝은 빛으로 거듭나게 하는 꿈을 헤아리지 못하게 가로막는 도시 얼거리예요.


  아름다움을 바라보아야 아름다움을 생각할 수 있는데, 도시에는 아름다움이 없어요. 문화나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작품은 많지만, 아름다움이 없어요. 숲이 없으니까요. 들이 없고 바다와 멧골이 없으니까요. 나무가 나무답게 자라지 못하고, 풀이 풀답게 돋지 못하며, 꽃이 꽃답게 피지 못하는 도시예요.


  도시에 있는 학교들을 보면 쉽게 압니다. 학교에서 나무가 나무답게 자라지 못해요. 그나마 이런 나무들이 있어도 아이들은 나무를 들여다보지 못하고 쓰다듬지도 못합니다. 감옥 같은 교실에 갇힌 채 시험문제풀이만 합니다. 더욱이, 아이들만 이런 모습이 아니라, 어른들도 이런 모습이에요. 교사라는 이름으로 아이들한테 시험문제풀이만 시키는 어른들 가운데 학교에서 자라는 나무를 아끼거나 돌보는 이는 거의 없어요. 학교에서 교사들은 자가용 몰고 출퇴근을 하며 월급을 받을 뿐이에요. 학교 운동장에 꽃씨를 심거나 푸성귀를 돌보는 교사가 거의 없어요.


- 독일의 청소년 문학이 어쩌면 독일 문화의 바탕이 되고 그것이 또 통일을 이룬 힘이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독일의 미하엘 엔데 같은 사람이 아무리 훌륭한 작품을 썼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독일 사회에 맞는 문학이지 우리에게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도 들었다. 독일의 문학은 그곳의 자본주의 산업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만 해결하면 되는 문학이었지만, 우리는 자본주의란 것도 아주 저질이고, 그것보다도 어처구니없는 폭력을 휘두르는 독재 권력이 아이들을 잡는 교육을 하고 있는데, 여기에 맞는 문학을 창조해야 하는 것이다. (1990년 11월 23일)
- 남의 목숨을 귀하게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 목숨도 귀하게 아껴야 옳다. 그러나 그렇게 제 몸을 불태워 죽을 결심을 하게 된 것은 얼마나 억울하고 기막히고, 도저히 살아서 평생을 일해도 자기 힘으로서는 어찌해 볼 수 없다고 생각하여 그렇게 죽은 것일까. 아무리 외쳐도 불러도 전혀 반응이 없어 너무나 자기 힘이 보잘것없다고 생각할 때 마지막 수단으로 죽음을 택한 것이다 … 〈조선일보〉는, 이 김지하 씨의 글 옆에 또 운동권 학생과 인사들을 비판하는 사설과 글을 실어 놓았다. 더러운 신문이다. (1991년 5월 5일)
- 세계 각국의 어린이들이 쓰는 공책을 전시한 자리가 있어 한참 구경했다. 어느 나라 공책도 우리 나라 공책같이 고급 용지를 쓰지는 않았고, 표지도 아주 깨끗한 공책이 많았다. 그러면서 공책 책장이 모두 우리 나라 공책보다 흔히 두 배나 많았다. 표지도 영어를 안 쓰고 자기 나라 글자를 쓴 나라가 많았다. (1991년 10월 7일)


  도시에서 벗어난 시골마을에서 풀을 뜯고 흙을 만지며 글을 쓰다가 삶을 마무리지은 박경리 님을 새삼스레 떠올립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자면 어떠한 길을 걸을 때에 사람다울 수 있는가를 다시금 생각합니다.


  글을 쓰자면, 박경리 님처럼 풀을 뜯고 흙을 만져야지 싶습니다. 풀내음을 맡고 흙숨을 쉬지 않고서야, 글이 글다울 수 없다고 느낍니다.


  이오덕 님이 남긴 《이오덕 일기》 셋째 권을 읽으면서, 풀을 뜯고 싶으며 흙을 만지고 싶은 뜨거운 마음을, 불 같은 마음을, 사랑을 꽃피우고 싶은 맑은 마음을, 하나하나 낱낱이 애틋하게 느낍니다. 누구보다 이오덕 님 당신 스스로 풀을 만질 때에 글다운 글을 쓰고, 흙을 만져야 말다운 말을 할 수 있다고 깨닫는 모습을 읽습니다.


  아이들을 왜 학교에 보내야 하겠습니까. 풀도 나무도 꽃도 마주할 수 없는 학교라면, 흙도 안 만지고 빗물하고 눈송이랑 동떨어진 학교라면, 바람과 구름과 햇살을 꽁꽁 가로막는 학교라면, 이런 학교에 아이들을 왜 보내야 하겠습니까.


  아이들은 삶을 배워야 할 뿐입니다. 어른들은 삶을 가르쳐야 할 뿐입니다. 아이들은 사랑을 물려받아야 할 뿐입니다. 어른들은 사랑을 물려주어야 할 뿐입니다. 삶을 배우고 사랑을 물려받으면서 꿈을 키울 아이들입니다. 삶을 가르치고 사랑을 물려주며서 삶을 빛낼 어른들입니다.


- 중동에 전쟁이 기어코 터졌다는 소식이다. 미국 놈들이 어째서 그곳까지 가서 전쟁을 하나? 참으로 용서 못 할 일이다. 그런데 노태우 정권은 전쟁을 일으킨 것을 축하하면서 군대를 보낸다고 한다. 기가 막힐 일이다. (1991년 1월 17일)
- 〈중앙일보〉는 학생들을 불량배, 폭행범이라면서 ‘각계의 소리’를 기사로 냈는데 내가 놀란 것은 거기 박완서 씨도 들어 있는 것이다. 온 나라 아이들을 병들게 하는 교육을 강제하던 그 철면피한 사람, 참된 교육을 해야 한다는 교사들을 모두 거리로 쫓아낸 사람, 이제 또 쇠몽둥이로 아이들을 때려잡던 정권의 앞장을 선 사람에게 달걀이고 밀가루 퍼부은 것이 그렇게도 악한 범죄 행위란 말인가? 학생들이 맞아 죽고, 노동자들이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게 죽어 가도 말 한 마디 없던 사람이 총리가 밀가루 덮어쓰고 달걀로 얻어맞은 것이 그렇게 분한가? 글만 쓰면서 살아가는 작가가 어떤 길을 걸어가게 되는가를 박완서 씨의 경우로도 알 수 있구나 싶다. (1991년 6월 4일)
- 우리 나라같이 국민학교 1학년부터 철저하게 거짓 글쓰기나 가르치고 있는 데서 어떻게 희망을 걸 수 있겠는가. (1991년 10월 18일)
- 서울역 구내에 있는 책방에 갔더니 《길》이 있었다. 그런데 책 표지가 꼭 《말》지 같아서 인상이 좋지 않았다. 이렇게도 창의성이 없이 이미 나오는 잡지 흉내를 내는가 싶으니 거기 담겨 있는 글들도 모두 남들의 흉내말같이 느껴졌다. (1991년 11월 22일)


  아이와 어른은 서로 가르치고 서로 배웁니다. 어른은 아이한테 말도 가르치고 밥짓기와 집짓기와 옷짓기를 가르치는데, 이렇게 가르치면서 ‘어떻게 가르쳐야 잘 배우고 즐겁게 받아들이는가’를 배웁니다. 아이들은 어떻게 먹고 입고 자는가 하는 삶을 어른들한테서 배웁니다. 아이들은 삶을 어른들한테서 배우며, ‘삶을 누리는 기쁨과 즐거움’을 웃음과 노래와 춤으로 어른들한테 가르칩니다.


  서로 가르치지요. 서로 배우지요. 학교라는 데를 세우려 한다면, 어른과 아이가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터로 일구어야 올바릅니다. 학교라는 데를 세워서 꾸리자면, 어른과 아이가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활짝 웃고 뛰노는 너른 마당 되도록 가꾸어야 아름답습니다.


  삶터는 일터요 놀이터이면서 쉼터이고 잔치터입니다. 삶터는 만남터이자 이야기터요 꿈터입니다. 삶터는 사랑터이고 생각터이며 빛터입니다. 살림을 꾸리는 살림터가 될 집입니다. 살림터 구실을 할 학교입니다. 살림터 몫을 톡톡히 하는 마을입니다. 이 아이들한테 숲을 베풀어요. 우리 아이들한테 놀이를 물려주어요. 이 땅 아이들 모두 사랑과 꿈을 밝히도록 슬기를 모아요. 4346.7.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이오덕 읽기)

 

 

 

 

 

 

 

 

이달의 사락 h*******e 2013.07.0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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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나 아이들 위한 교육 운동이라야 한다
"어디까지나 아이들 위한 교육 운동이라야 한다" 내용보기
1986년부터 1991년까지, 61세부터 66세 때까지의 일기이다. 선생님은 교장으로 퇴직하자마자 경기도 과천으로 이사한다. 시골 학교에 다니면서 대외 활동에 어려움을 겪은 아쉬움을 털어버리려는 듯 대외 활동을 활발하게 한다.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대표 연임, 민주교육실천협의회 공동대표, 전국초등민주교육협의회 자문위원, 한겨레신문 창간 발기인회 공동 부위원장과 창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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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부터 1991년까지, 61세부터 66세 때까지의 일기이다. 선생님은 교장으로 퇴직하자마자 경기도 과천으로 이사한다. 시골 학교에 다니면서 대외 활동에 어려움을 겪은 아쉬움을 털어버리려는 듯 대외 활동을 활발하게 한다.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대표 연임, 민주교육실천협의회 공동대표, 전국초등민주교육협의회 자문위원, 한겨레신문 창간 발기인회 공동 부위원장과 창간위원, 공해반대시민운동협의회 이사, 한국어린이문학협의회 회장, 전교조탄압저지와 참교육실천을 위한 범국민 공동대책위원회 고문, <노동문학> 자문위원, <농민> 지도위원, 사월혁명기념사업회 지도위원, 민족문학작가협의회 고문, 한겨레신문 주최 겨레의노래 선정위원, 과천시민의 모임 공동대표, <우리교육> 편집 자문위원 등을 맡아 활동한다.


선생님이 이 시기에 가장 많은 발품을 팔며 힘을 보탠 곳은 전교조로 발전하는 민주교사협의회 창립 행사장이 아닐까 싶다. 1987년 8월 22일 흥사단 강당에서 초등민주교육협의회가 결성될 때 자문위원을 맡아 창립총회 격려사를 한 것을 시작으로 강화도, 고양․파주 지역, 여수, 청양, 괴산 등 교사협의회가 창립되는 자리에 초대받으면 어디라도 참석하여 힘을 보탠다. 당시는 어린이도서연구회에서 낸 ‘어린이들이 읽을 만한 책’이라 해서 추천한 책을 아이들에게 읽혔다는 까닭으로 교사가 직위 해제되고, 단지 교사협의회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교사들이 해직되던 시절이었다. 선생님은 어떠한 방해 공작이 들어와도 당신이 가야 할 곳이라고 판단하면 기꺼이 달려갔다. 다만 교사들의 교육 운동이 교사들 자신의 이권 획득을 위주로 해서는 안 된다고 여겼다. 교사들이 아이들 비인간적으로 교육하는 일에 협력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 엄연한 사실을 덮어 두고서는 결코 민주교육 운동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보았다. 어디까지나 “아이들 위한 교육 운동이라야지 교사들 위한 교육 운동이 되어서는 안 된다”(119쪽, 1987년 8월 27일)는 것이다.


선생님은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아이들 교육에다가 문학에다가, 이제 우리 말 지키고 정화하는 일까지 새로 손을 댔다. 우리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우리말을 바로잡음으로써 우리의 의식을 바로잡고 삶을 바로잡기 위해서이다. 당신이 보기에 “말과 글, 그리고 의식, 삶 이것들의 관계를 생각할 때,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은 삶이다. 그 다음이 의식이고, 다음이 말이고 글이다. 즉, 삶 → 의식 → 말 → 글 이렇게 된다. 이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이것이 거꾸로 역행하는 수가 있다. 삶 ← 의식 ← 말 ← 글 이렇게 말이다. 분명히 우리의 역사에서 이 역행 현상을 볼 수 있다. 이런 역행은 잘못된 사회, 병든 역사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문화의 역행 속에서 사회와 역사를 바로잡으려면 역시 이 역행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142쪽, 1988년 2월 7일). 즉 글과 말을 바로잡음으로써 우리의 의식을 바로잡고 삶을 바로잡는 것이다.


말과 글을 바로잡는다고 해서 삶이 단박에 바로잡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민주 사회 실현에 큰 노릇을 하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선생님은 이러한 생각으로 우리말과 글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했다. 문익환 목사님이 “이오덕 선생은 아이들의 말에서 우리 말을 자각했지만 나는 할머니들한테서 우리 말 배웠어요. 교회 앉아 있는 할머니들에게 책에 쓰는 말 가지고는 얘기가 안 되거든요” 한 말은 선생님을 정확히 꿰뚫어본 것이다. 선생님의 이 시기 활동은 교육을 중심으로 문학과 어학을 한데 묶어 집중했다고 할 수 있다. 선생님의 활동은 어디까지나 어린이가 중심이었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이 모든 운동보다 앞선다고 여겼다. 강경대 열사 민주 국민장을 결행하는 날, 66세의 나이로 데모대와 함께한 모습은 감동적이거니와 당신의 생각과 실천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오후 5시가 지나서 대열이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포 공덕동 로터리로 노제 장소를 옮기기로 했다는 것이다. 오늘은 시청 앞 노제를 포기하고 서울역에서 노제를 지내기로 했는데, 당초에 허락하겠다던 서울역 광장도 못 가게 하는 바람에 또 종일 맞서 있다가 결국 이렇게 마포 쪽으로 가게 된 것이다. 세상에 노제도 못 지내게 하는 놈들이 정치를 하고 있다. 시청 앞이고 서울역이고, 거기 노제 지내는 것이 뭣이 겁나는가?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대 앞 가까이 가는데 최루탄 가스 때문에 눈이 따갑고 눈물이 나서 혼이 났다. 고춧가루가 눈에 들어가고 입에 코에 들어간 느낌이다. 고춧가루 고문을 한다고 했는데, 그 고문은 얼마나 끔찍한 고문일까 생각이 들었다. 마포 쪽으로 고개를 넘어 한참 오니까 괜찮았다. (316 - 317쪽, 1991년 5월 18일)

YES마니아 : 골드 g*******g 2013.07.1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