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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이유 혹은 여유 - [한밤의 읽기]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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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을 읽을 이유 혹은 여유<한밤의 읽기>를 읽고  보통의 한밤은 나에게 있어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시간이다. 한낮에는 밥벌이를 하거나 아이를 돌보기 때문이다. 올해 여름은 유난스러운 더위로 밤잠을 설치기 일쑤여서 한밤에 독서나 글쓰기는 사치에 가까울 정도였지만 말이다. 일기예보에 따르면 이번 주말 동안 비가 내린 뒤 한낮의 기온을 나타내는 숫자의 앞자리가 바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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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을 읽을 이유 혹은 여유
<한밤의 읽기>를 읽고


  보통의 한밤은 나에게 있어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시간이다. 한낮에는 밥벌이를 하거나 아이를 돌보기 때문이다. 올해 여름은 유난스러운 더위로 밤잠을 설치기 일쑤여서 한밤에 독서나 글쓰기는 사치에 가까울 정도였지만 말이다. 일기예보에 따르면 이번 주말 동안 비가 내린 뒤 한낮의 기온을 나타내는 숫자의 앞자리가 바뀔 것이라고 하니, '계속(곧 소개할 책에서 재발견하기도 한 이 단어에는 '끊지 않고 이어나가다'와 '끊었던 행위나 상태를 다시 이어나가다'라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읽고 쓰는 여유도 곧 되찾을 수 있을 듯하다. 아무튼, 여름의 끝자락에 전해진 읽기예보처럼 읽(고 쓰)기의 의미를 새삼 일깨워준 책 한 권을 한 밤만에 읽었고, 이 책에 관한 것들을 다른 한 밤에 써보려 한다. 바로 『아무튼, 택시』로 처음 알게 된 금정연 작가의 <한밤의 읽기>이다.
  네 편의 강연 에세이로 구성된 책은 각각 도블라토프의 『여행 가방』을 통한 '읽기의 즐거움'을 이야기하고, 조지 오웰이 쓴 『나는 왜 쓰는가』에서 '읽고 쓰는 것의 의미'를 찾아보며, 베른하르트의 『몽테뉴』 등에서 '한밤의 읽기'란 무엇인지 발견하고, 대니 샤피로의 『계속 쓰기』를 살펴서 '계속 읽기'의 방법을 궁리한다. 저자는 서문에서부터 단도직입으로 이 책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와 함께, 책 곳곳에서 우리 사회로부터 (이 책을 포함한) 책을 읽을 여유를 얻어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럭저럭 '읽기'가 아니라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의 '밤의 읽기'나 프랑스 작가 엘렌 식수의 '백주의 대낮에 탈주하는 읽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매일 24시간이 주어졌고, 우리가 다른 삶을 살고 싶다면 그 24시간을 재배치하는 방식으로 스스로 그것을 살아내야 합니다. 얼마 있지 않은 달콤한 밤의 시간을 쪼개고 희생해서 자기가 중요하고 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해야 하는 거죠. 저는 그중 하나가 한밤의 읽기라는 말씀을 드리는 거고요.(168쪽)

  대체로 우리는 낮에 학교나 직장, 가정에서 공부와 각종 노동에 힘을 쏟아부은 탓에 밤에 집으로 돌아와도 독서를 비롯한 다른 어떤 활동에 쓸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본능적으로 유튜브, 인스타그램과 같은 공간에 머물며 즉각적이고 자극적인 콘텐츠에 한눈 팔기 십상이고, 그러다가 늦게 잠들어 이내 퀭한 두눈으로 다시 어제와 같은 아침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게 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부분은 '한밤의 읽기'가 꼭 밤에 이뤄지는 행위만을 뜻하는 게 아니며, 반대로 한낮의 읽기 역시 낮에 읽는 일이 쓸모없음을 비유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사람마다 체감하는 낮과 밤은 다르기에 하루 중 오롯이 자기만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시간을 '한밤'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책에 따르면 읽기의 이유를 조지 오웰이 글을 쓰는 이유, 이를테면 순전한 이기심,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 그리고 여기에 저자가 덧붙인 '(통제할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인간적) 반응'으로 치환해 볼 수 있다. 읽기와 쓰기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들과 더불어 (원래부터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제외하고) 앞서 언급했듯 고착화된 사회 구조와 분위기를 깨뜨려 책을 읽을 여유를 되찾기 위해서라도 읽기는 필요한 것이다. 바쁜 일상에 조금의 여유를 내어 몸 운동을 하듯 정신을 차리고 늘 깨어 있어야 가능한 일이리라.
  어쩌면 한밤의 읽기는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 삶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고 아울러 지금보다 더 깊이 그 의미를 더해가는 일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우리에게 읽을 거리가 되어주는 책은 이야기와 다름 없으며, 이야기는 곧 삶이라는 걸 모르지 않는다. <한밤의 읽기> 덕분에 삶 혹은 이야기에 관한 생각을 좀 더 넓혀볼 수 있었다. 성서에서 인간이 선악과를 먹었듯이 베른하르트의 작품에서 아이는 결국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책을 읽고야 만다. 이를 두고 저자는 말한다. 모든 이야기는 금기를 어기면서 시작되기에 만일 금기를 지킨다면 어떤 이야기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이제 이 책을 손전등 삼아 여태껏 밝지만 잘 보이지 않았던 통제와도 같은 '한낮의 읽기'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이유를, 자유를, 여유를 찾아나서는 '한밤의 읽기'를 시도해봐도 괜찮을 것 같다.

삶이라는 것은 결국 이야기라는 거죠.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게 먼저 들려주는 이야기. 그런데 이 이야기는 하나가 아니에요. 다양한 작은 이야기들인데, 계속해서 내용이 바뀌고 분위기가 변하는 다양한 이야기들인 거죠. 우리는 그때그때 스스로에게 들려줄 우리 인생의 이야기를 선택하고, 때로는 지어내면서 삶을 살아가는 것이고요. 아니, 그렇게 이야기를 선택하고 지어내며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것이 바로 삶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67쪽)

이달의 사락 k*****o 2024.09.21. 신고 공감 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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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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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정의한 ‘한밤의 읽기'와 '한낮의 읽기’가 인상적이었다.소설 『마틴 에덴』 주인공이 ‘한밤의 읽기’하고 있는것에 빗대어 본 다면 ‘한밤의 읽기’는 몰래 읽는 것으로 한낮의 학교에서는 전혀 필요하지 않은 독서이다. 철학과 과학을 섭렵하는 철학적 독서로 여겨진다. 반면 주인공의 연인은 ‘한낮의 읽기’를 권한다. 직업적으로 발을 붙일 실용과 교양으로서의 읽기를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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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정의한 ‘한밤의 읽기'와 '한낮의 읽기’가 인상적이었다.

소설 『마틴 에덴』 주인공이 ‘한밤의 읽기’하고 있는것에 빗대어 본 다면 ‘한밤의 읽기’는 몰래 읽는 것으로 한낮의 학교에서는 전혀 필요하지 않은 독서이다. 철학과 과학을 섭렵하는 철학적 독서로 여겨진다. 반면 주인공의 연인은 ‘한낮의 읽기’를 권한다. 직업적으로 발을 붙일 실용과 교양으로서의 읽기를 권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작가는 답은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계속 읽으라고 한다. 이와 비슷한 상황에서 어떤 사람들이 했던 노력을 기록한 책을 자신이 읽다 말다 했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그래서 우리는 한밤의 읽기를 멈추어서는 안된다.

l***1 2025.04.1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