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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세상과 조우한 9살의 그 날 [난 두렵지 않아]
온 세상이 밀로 뒤덮여 있었다. 언덕과 평지를 뒤덮은 금빛 밀밭이 파도치듯 출렁거렸다. 지평선에 펼쳐지는 건 밀과 하늘과 메뚜기와 태양, 그리고 폭염뿐이었다. -10
저주받은 1978년의 여름. 태양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뜨거운 여름, 신과 인간 모두에게 버림받은 듯한 마을 아쿠아 트라베르세의 9살 소년 미켈레는 이제 곧, 상상 속의 괴물이 아닌 진짜 세상이 가져다주는 두려움을 만나게 된다.
책을 읽은 후에 서평을 쓰기 위해서는 책을 읽는 동안 메모를 하든지 페이지를 표시해야만 한다. 아무 준비 없이 책읽기를 시작했다가는 걷잡을 수없이 책에 빠져들어 주인공의 이름이고 상황이고 모두 깡그리 잊은 채 책장을 덮게 되는 경우가 생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내용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중간중간 임팩트가 되는 사건이나 멋진 문장을 만나게 되는 경우에도 메모는 필수다. 메모까지 할 여유가 없을 때에는 북다트를 이용하게 되는데, 그게 또 일단 책을 읽기 시작하면 중간에 움직이기가 귀찮아지므로 꼭 옆에 있어야지만 사용할 수 있다. 여러 권의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요령이 생긴다. 한 번 읽고 다시는 펼쳐보지 않을 책 같으면 북다트를 찾으러 가야 하는 수고를 덜기 위해서 그냥 책장의 귀를 꺾어 놓는 것이다. 앞부분만 읽고도 척 감이 오기 때문에 다음에 다시 꼭 읽고 싶어질 것 같은 책을 만나면 북다트를 찾아다가 옆에 대령시켜 놓는다. 이 책의 경우는...후자였다. 바로 저 문장, 10페이지에 나타난 저 문장 때문에 부랴부랴 북다트를 찾아 놓고 그 문장의 옆에다 척 꽂아 놓았다. 그리고 앉은 자리에서 1시간여. 북다트를 여러 개 꽂은 채 살금살금 마음 속으로 걸어들어온 책이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여운으로 떨면서 내 옆에 덩그러니 놓였다. 작가 니콜로 암마니티는 이 책으로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 뭐랄까, 밥만 먹던 사람이 떡을 씹으며 쫄깃쫄깃한 식감에 황홀해하는 심정이 들었달까...
소년 미켈레는 쨍한 햇볕 아래 오래된 고물자전거를 끌고 또래아이들과 나름의 원정 모험을 떠났다. 돼지가 닭을 어떻게 먹어치우는지를 직접 보려고 멜리케티 농장으로 출발했다가 이제껏 보지 못했던 파네토네처럼 생긴 언덕을 올라가기로 한 것이다. 단 꼴찌는 벌을 받아야 한다는 내기를 걸고서...여자아이 바르바라가 꼴찌를 하자 해골은 팬티를 내려보이라고 하는데 욱한 미켈레는영웅 행세를 하며 대신 벌을 받겠다고 자청한다. 대장격인 12살 해골이 고추를 꺼내보라고 하거나 꼬챙이를 엉덩이에 쑤셔 넣으라는 벌을 내릴까 내심 걱정했지만, 해골이 내린 벌은 낡은 집의 2층까지 탐색한 후 돌아나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미켈레는 집 안의 구덩이에서 비슷한 나이 또래의 아이를 발견하게 된다. 구덩이 아래에 갇혀 있는 아이는 비스듬히 누워서 머리를 다리 사이에 파묻고 있었다. 도무지 움직이질 않았다. 기다리고 있던 친구들이 부르는 소리에 얼른 그 아이를 발견한 흔적을 덮어놓고 서둘러 빠져나오는 미켈레. 미켈레는 자전거를 숨겨놓고 밀밭을 헤치며 나아가 다시 그 아이를 만나러 간다. 죽은 건 아닐까? 산 사람의 느낌이 조금도 없었는데...
"난 두렵지 않아." 용기를 내보려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다리가 후들거렸고 머릿속 한구석에서는 누간가가 내려가지 말라고 외치고 있었다. 죽은 사람은 아무 짓도 할 수 없어.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77
구덩이 속에 숨어 있는 아이는 살아 있었고, 너무 오랫동안 어둠에 익숙해져 있어서 차라리 눈을 감고 생활하는 것이 더 편한 듯 했다. 아이는 빨래 곰 이야기로 입을 열었고 물과 먹을 것을 갖다 주는 미켈레를 수호천사라고 불렀다.
아이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면서 내 손가락을 살짝 건드렸다. 나는 마치 해괴한 해파리나 독거미라도 만진 것처럼 비명을 질렀다. 뼈만 남은 앙상한 손이 기다랗고 시커멓고 삐뚤어진 손톱을 내세우며 나를 건드렸던 것이다. (...) 아이가 쉰 목소리로,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듯이 날카롭고 동시에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 죽었어? 죽었어? 나 죽었구나." -121
엄마한테 늦었다고 죽도록 혼난 그날 저녁, 일찍 잠자리에 들었으나 잠들지 못하고 오줌을 누려고 문 손잡이를 연 그 때, 미켈레의 세상은 산산조각이 났다. 아버지의 친구라던 세르조 영감과 몇 몇 마을 사람들이 TV뉴스를 보며 저마다 성화를 해대고 있었고, 뉴스에서는 필립포 카르두치라는 소년의 납치 소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두워지면 시커먼 남자가 나타나서 아이들을 잡아다가 집시들한테 팔아버린단다.' 시커먼 남자가 바로 아버지였다. -138
악몽을 꾸면 너무 무서워서 잠자리에다 오줌을 지려도 이해한다~ 하고 넘어갈 수 있는 나이 9살.
두려움도 어느 정도 갖고 있고, 세상에 대한 분별력도 어느 정도 자리잡을 정도의 나이. 그 나이의 소년이 실로 엄청난 사건을 마주했을 때, 소년의 가슴 속에서는 어떤 크기의 폭발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 순진무구했던 어린시절과는 완전히 안녕, 을 고할 만큼 충격적인 사건에 맞서 그냥 주저앉을 수도 있다. 미켈레는 어떤 선택을 했는가?
이미 2001년에 소설이 발표되었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하니, 결말을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제야 이 책을 읽게 된 나는 그저 머릿속으로 그 장면을 상상해 본다. "I'll be back" 하는 여운을 남기며 끝맺음된 유명한 액션영화처럼 미진한 마지막을 상상력으로 대체하는 수밖에. 아마도 아쉬운 결말이 작가의 의도인지도 모른다. 열린 결말이니 생각은 각자의 몫이라며. 제대로 만들었다면 이 영화는 실로 대단한 감동을 줄 수 있을 터. 어쨌든 소설 속에서의 배경 묘사는 영화를 보는 듯 세밀했고, 9살 소년의 눈에 비친 세상은 크고 두렵고 모호했을 것이다. 9살 꼬마의 세상에도 악은 존재했다. 12살이 대장 노릇을 하는 해골의 공평무사하지 못한 행동도 그렇고 5채 밖에 안되는 마을 빌라 중에서 가장 큰 집에 살고 있는 살바토레의 신의를 저버린 행동도 그랬다. 그래도 아이가 감당할 수 있는 악과 감당할 수 없는 악은 뚜렷한 차이가 있는 법. 도덕적 기준이 제대로 서 있지 않은 9살 꼬마에게 부모를 비롯한 어른들은 실로 무시무시한 본보기를 보여주었다. 나쁜 짓은 바로 이렇게 하는 거야...라는 듯이. 애써 난 두렵지 않다, 며 주문을 걸고 있는 미켈레의 모습이 안쓰럽다. 언덕의 왕, 흙 거인들, 쫓아오던 이삭들. 차라리 상상의 세계 속에서 그것들에 대한 두려움에 떨던 때가 훨씬 나았으리라. 아마도 열린 결말의 이 책은 때때로 현기증이 일어날 만큼 강렬한 태양과 황금빛 밀밭 같은 배경이 펼쳐지는 여름이 되면 계속 생각날 것 같다. 말하자면 내가 꼽는 나만의 여름 블록버스터 쯤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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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말의 이탈리아 시골 마을이 이야기의 무대가 된다. 그날은 며칠째 이어지는 무더위로 모두가 외출을 자제하는 상황이였다. 바깥에서 놀 수가 없으니 어른들은 어떨지 몰라도 아이들은 지루했고, 아홉 살이 된 미켈레는 놀이에서 진 소녀를 대신해서 벌을 받겠다고 하고, 골목대장인 안토니에게 떠밀려서 버려진 집에 들어 가게 된다.
그렇게 들어간 집의 구덩이에서 미켈레는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도망쳐 온다. 미켈레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고 몰래 그곳을 가보게 되고 그속에서 감금되다시피 한 필립포라는 소년과 만나게 된다.
이후에도 미켈레는 사람들 몰래 필립포를 만나러 가고, 먹을 것을 져다 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 소년이 왜 구덩이에 갇혀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버지에게 말할려고도 했지만 그럴수도 없다. 오히려 그곳에 가지 말라는 말을 들을 뿐이다.
사람들과 필립포의 관계를 알게 되고, 그속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갈등하게 되는 미켈레의 모습은 안타깝다. 무엇도 할 수 없는 상황이였을거란 생각이 들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그리고 많은 시간을 고민하게 되는 모습을 보면 그 용기가 대단하게 생각되기도 한다.
그 어린 아이들의 세계에서도 권력은 존재하고, 그것은 곧 어른들의 세계를 축소 해놓은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강압에서도 정의를 추구하고자 하는 미켈레의 모습은 주변의 인물들과 대비되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뭔가 성정소설처럼 시작한 이야기가 스릴러적인 요소로 변하고, 그 끝이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은 열린 결말이라는 점도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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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도였을까. 2003년? 2004년? 한때는 광주지역을 대표하는 개봉관이었으나, 갑자기 찾아온 멀티플렉스 시대 치명상을 입고 저물어가며 예술영화 전용관 형식으로 마지막 명맥을 유지하던 광주극장이란 곳이 있었다. 지금은 광주에 사는 젊은이들도 알지못하는 이름으로 남아있지만. 지금 아내와 연애하던 그 때 그곳에서 이름없는 영화를 봤었다. '아임 낫 스케어드'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서평을 쓰고있는 니콜로 암마니티의 소설 '난 두렵지 않아'를 영화화했던 작품이었던 거다. 당시에도 극장 개봉은 했지만 막강한 상업영화들 틈에서 제대로 된 개봉관도 찾지 못하고 예술영화로 분류되며 잠시잠깐 매니아들 사이에서만 입소문을 타고 종영했던 영화로 기억한다. 나 역시 이 영화를 일부러 보려고 의도했던건 아니었다. 여자친구가 어디서 구해온 공짜표가 아까워, 또 그 어떤 빌미만 있어도 한번이라도 더 데이트를 하려고 안달이었던 시기라 '나 이런 예술영화도 좋아하는 사람이야' 코스프레를 하며 봤던 영화다. 근데 어라? 꽤 흥미진진했다. 치고 박고, 부수고, 총을 쏴대는 액션영화도, 현란한 컴퓨터 그래픽이 적용된 SF도, 그렇다고 잔잔한 멜로도 없는, 굳이 분류하자면 청소년 영화였음에도 화면이 아름다웠고, 스토리가 있었고, 감동이 있었다. 그 후로 잊어버리고 있던 이 영화를 다시 일깨운건 한 권의 소설을 만나면서부터다.
왠지 소설 제목이 낯설지 않은 '난 두렵지 않아' 영어로는 아임 낫 스케어드. 그래 바로 그 영화의 원작소설이었던 거다. 영화가 기억에 남지 않았다면 굳이 다른 읽을 책도 많은데 굳이 이 소설을 다시 펼쳐들지 않았을터다. 하지만 난 이 소설을 발견하고 다시 첫 장을 넘기고 있었다. 그리고 어제 드디어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얼핏 얼핏 생각나는 영화의 장면들과 더불어 정말 재밌는 작품이다는걸 다시 느낀다. 청소년 성장소설도 이렇게 재밌게 쓸수가 있는거구나...
특히 영화나 소설의 전반부에 묘사되는 공간적 배경 아쿠아 트라베르세 마을의 시골 풍경은 끝없이 펼쳐지며 바람에 넘실대는 밀밭의 풍경을 짜릿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속에서 뛰어노는 아홉살 꼬마 아이들. 우리네 시골에서 흔히 볼수 있듯 막대기 하나만 가져도 하루종일 지치지 않게 놀수 있는 그런 다섯 아이들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집이라야 이들 다섯 아이들의 다섯집이 전부인 외딴 마을에서 벌어지는 어른들의 은밀한 비밀과, 그 비밀을 알게된 주인공 미켈레의 갈등, 그리고 가족에 대한 사랑, 우정, 약속과 믿음을 세밀하게 소년의 감정을 토대로 써나간 명작이다.
나는 더듬거리면서 대답했다. "다시는 안 갈게요. 약속해요." "내 목숨 걸고 맹세해라." "맹세해요." "따라해. 그곳에 다시는 안 간다고 아버지 목숨을 걸고 맹세합니다." 나는 그대로 따라했다. "그곳에 다시는 안간다고 아버지 목숨을 걸고 맹세합니다." "이젠 네 아버지 목숨걸고 맹세한 거다" 아버지는 잠시동안 아무말 없이 내 곁에 앉아 있었다.
그냥 약속이 아니었다. 절대로 안할게요. 다시는 안그럴게요. 우리가 어렸을적, 또는 우리 어린 아이들이 부모에게 수없이 많이 했던, 그 나름대로 당시에는 절실하게, 그러나 지나고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똑같은 실수와 잘못을 반복하며 다시 되풀이했던 그 약속이 아니다. 맹세. 그것도 아버지의 목숨을 걸고 맹세를 했다. 하지만 맹세 이전에 주인공 미켈레는 그 아이에게 약속을 했었다. '꼭 다시 오겠다'고. 그 약속을 지키려 번번히 근처까지 갔다가도 아버지와의 맹세때문에 발걸음을 돌리는 아홉살 소년의 마음. 나도 열살짜리 딸아이가 있다. 아이와 대화하면서 무심코 지나쳤던 말들이 어떤 말은 깊은 상처가 됐을터이고, 또 어떤말은 희망에 부풀게 했을터이다. 또 약속들은 어떠한가. 내가 꺼낸 약속을 지키는데 얼마나 신경을 썼을까.
미켈레는 생전 처음 보는 아이에게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다시는 가지 않겟다고 맹세를 했다. 미켈레는 약속을 지켰을까? 아버지 믿음을 지켰을까? 잔잔한 감동을 느끼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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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두렵지 않아》 [지중해]의 가브리엘 살바토레 감독 영화화, [아임 낫 스케어드] 원작 소설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본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 늘 온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놀던 재미있고 신나는 기억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농사짓던 부모님을 대신해 맏이로써 동생들을 돌봐야 했던 책임이 있었기에 동생들이 잘 못한 것도 늘 대신해서 회초리를 맞아야 했던 조금은 억울했던 일이 떠오르고, 이어 늘 조그만 소리로 소문이 나곤 했던 누구누구네 자식이 어느 집의 사과나 수박 서리를 했다더라 하던 일들도 떠오른다. 그리고 그런 저런 추억 맨 마지막에 떠오르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다시는 떠올리기 싫은 차마 입에 담기도 두려운 일들이다. 아이들은 누구나 백지 같다. 그래서 그들의 행동은 늘 어리다는 이유로 용서가 되고 쉽게 덮고 잊는다. 아니 그러라고 강요당하고 강요한다.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하면 자식을 낳기 때문일 것이다. 언젠가는 나의, 내 자식의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이 소설의 주인공을 말하고자 함이다. 아이들의 폭력은 도덕적,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없는 나이이기에, 또 그들만의 은밀함을 갖기에 더욱 위험하고 더욱 잔인하다. 한번 그들의 규칙이 만들어지면 그들은 그 규칙의 당위성에 상관없이 절대적으로 복종한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아 '경악'했다. 나는 잊고 있었다. 간혹 나는 피해자가 되기도 가해자가 되기도 하며 유년기를 지나왔다. 내가 소설 속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릴 때 어렴풋이 내 어린 시절이 떠오르며 나는 순간 책을 덮고야 말았던 것이다. 그냥 별것 아니었다. 아이들은 무리를 지어 어울려 놀고, 그네들이 '민주적인 방법'으로 만든 규칙 안에서 그들만의 놀이를 한다. 그 놀이에서 지는, 꼴찌를 하는 아이는 절대 권력을 가진 대장이 내린 벌을 받아야 한다. 그 벌은 누구를 때리기도, 속옷을 벗어 속살을 보이기도, 몸이 다칠 수도 있는 위험한 곳에 다녀와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상벌은 그네들이 각자의 자유의지에 따라 만든 것이고, 거부했다가는 대장의 주도하에 구성원에게 따돌림을 당하게 되기 때문에 아무리 이상하고 가혹한 벌이라 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들은 그렇게 놀이를 하고 강제적으로 벌을 받았다. 주인공은 한 여자아이를 대신에 벌을 받으며 오래되 쓰러져가는 위험한 오두막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그 은밀한 곳에 마치 죽은 것처럼 방치된, 오물과 어둠과 쓰레기 더미에 갇힌, 사슬에 묶인 짐승처럼 버려져있는 한 소년을 만난다. 그 아이는 거기에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 정신까지 오락가락하는 상태였고 사슬이 묶인 발목은 곪아 터져 피고름이 나고 있다. 아이는 이 일을 친구들에게도 어른들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홀로 상상의 나래를 편다. 그 우리 안에 있던 프라이팬이 바로 자신의 집에 있던 것과 똑 같다는 것을 단서로 주인공은 급기야 그 남자아이가 자신의 형이라고 단정한다. 그리고 단지 축구 놀이 장난감을 얻고 싶어 가깝다고 믿는 친구에게 이 비밀을 털어놓게 되는데, 이 일이 그를 엄청난 비밀 속으로 밀어 넣게 되고, 이내 주인공은 엄청난 혼란과 자괴감과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 휘말리게 된다. 가혹한 장난과 끈끈한 결속력으로 무장된 아이들의 무리와 동네 어른들의 무리는 별반 다르지 않다. 그 안에 우두머리가 있고, 비이성적인 일들이 있으며, 그들이 공유하는 비밀은 너무나 엄청나다. 결론을 내야 할 때 쓰는 방법이라곤 제비뽑기 같은 허술한 방법이며, 합리적이며 좋은 방법을 내버려두고 늘 최악의 상태를 만들어 버리고야 만다. 그 안에서 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은 어린 주인공이 유일하다. 그는 그런 상식적인 행동을 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했다. 그는 속으로 좋아하는 영웅을 생각하며 스스로 두려움을 떨쳐낸다. 아니, 떨쳐 낸다기보다는 그 두려움을 안고, 그 두려움 속에서도 스스로 해야만 하는 일을 향해 걸어갔던 것이다. 이 소설은 어떤 면을 보느냐에 따라 많은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의 행동에 맞춰 본다면 누구보다 용감한 모습에 박수를 칠 수도 있을 것이고 아이들이나 어른들의 무리에 맞춰 본다면 이 무리들이 확장된 조직과 국가의 부조리에 대해 볼 수도 있을 것이고, 아이가 휘말렸던 그 '사건'을 본다면 그 끔찍함에 경악을 금치 못 할 것이다. 나는 처음에는 내 기억이 무차별적으로 떠올라 무척 괴롭고 불쾌했고 아이들과 어른들의 무리에서 같은 부조리를 발견했으며, 주인공의 모습에선 그 용기와 행동에 감탄했다. 그리하여 나는 이 소설이 참으로 묘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보는 시각에 따라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줄 그런 소설이다. 소설의 배경이 된 이탈리아의 뜨거운 여름, 파리 날리고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타는 여름의 공기가 느껴질 정도로 현실감 있는 그런 대단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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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나는 책이 있었다. <앵무새 죽이기>라는 책이었다. 꽤나 오래전에 읽었던 책이 다른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또 다시 생각난다는 것은 역시 많이 읽혀지고 베스트셀러인 책은 이유가 있는가보다. 이 책은 미켈레라는 이름을 가진 한 소년의 순수함과 두려움을 보여주고 어른들의 무자비함과 폭력을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결말이 조금 애매하기는 했지만, 읽는 내내 뒷 이야기가 궁금해졌던 소설이었다. 22년전 자신이 아이였을때를 회고하면서 써내려간 이야기였다. 그 아이였을때의 이야기가 꽤나 충격적이었으니, 어른이 되어서도 잊혀질수 없었을 것이다.
어린 미켈레는 용감한 아이였다. 내가 보기엔 그랬다. 구덩이 속에 시체로 보일수도 있었던 자기 또래의 한 아이를 보고, 그렇게 용감하게 행동할수 있었던 아이가 또 누가 있었을까. 어른들의 무자비함과 옳지 못함을 보고, 거기에 비록 아주 큰 대항은 하지 않았지만, 어른들과 함께 그릇된 행동을 보인, 그 또래 아이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미켈레의 용감함에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내 아이였더라면, 정말 장하다고, 다른 사람들은 못했던 일들을 네가 해냈구나. 라고 토닥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위험한 일을 했다고 혼냈을지도 몰랐다. 가만히 있는것이 네가 할일이라고. 그렇게 말했을지도 모를일이다.
미켈레는 아이들사이에서 받은 벌칙으로 언덕위 집안에 들어갔다가, 구덩이 속에서 시체와 같이 보이는 한 아이를 발견하였다. 하지만 그 아이는 살아있었고, 사슬에 묶여 있었다. 용감하게 그 아이가 살아 있었는지 죽었는지 확인을 한 미켈레는 자신의 아버지가 그 아이와 연관이 있는 것을 알게 되고, 아버지만의 일이 아닌 마을 어른들 모두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같은 비밀을 알게 된 다른 아이는 그 비밀을 미끼로 미켈레를 궁지로 몰게 된다. 어른들의 세계에서 아이들의 대응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책이었다. 어떻게 보면 아이들의 세계와 어른들의 세계는 똑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책은 청소년, 어른들, 두루두루 읽어도 좋을 책인것 같았다. 지루하지 않고 쉼없이 읽어 내려갔던 책. 추천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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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작가의 소설은 처음 읽어보았다. 이 소설은 <아임 낫 스케어드>로 영화화 된 작품이기도 하다. 책의 소개에 이탈리아 현대소설의 선두주자이며 극찬이 있었기에 읽어보고 싶었다.
이 책의 주인공인 미켈레 아미트라노는 9살이다. 여동생 마리아는 5살. 마리아는 사이이다.안경없이는 앞을 볼 수 없었다. 그런 마리아를 미켈레는 어디든 데리고 데리고 다닐 수 밖에 없었다. 해골이란 별명을 가진 안토니오는 12살. 살바토레는 미켈레와 같은 반이며 가장 친한 친구이다. 그리고 장작처럼 생긴 레모 마르자노와 11살의 소녀 바르바라. 그들은 아쿠아 트라베르세 마을에 살고 있으며, 세기의 가장 더운 여름 중에 하나로 기록 되었다는 저주받은 1978년의 여름을 보내고 있다. 아이들의 놀이는 경주로 이어졌고, 거의 바르바라가 꼴지였다. 골찌에게는 벌이 있었는데 해골은 바르바라에게 벌로 가슴을 보여달라고 했었고, 팬티도 벗어서 보여 달라고 했다. 바르바라는 외톨이가 되는게 싫었나보다. 바지를 벗자 미켈레는 처참한 생각이들어 자신이 꼴찌였다며 다시 투표를 하고 바르바라 대신에 벌을 받게 되었다. 미켈레는 곧 무너질것 같은 빈 집을 둘러보게 되는 벌을 받았다. 빈 집을 거의 다 들러보고는 내려오다가 떨어졌는데 그 곳 구덩이에서 아이의 시체를 보게 되었다. 미켈레는 아이들에게 자신이 본것을 말하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일찍 미켈레는 다시 그 빈 집으로 갔다. 누군가 꼭 들락거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미켈레는 용기를 내어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 아이의 시체를 확인하였다. 죽은 아이는 벌거벗은 상태였고,오른쪽 발목에 쇠사슬에 잠겨있었다. 얼굴을 버려고 담요를 끌어내려는 순간, 시체는 벌떡 일어났고 소리까지 질렀다. 미켈레는 너무 놀라 튀어나왔다. 미켈레는 구덩이에 그 아이를 또 찾아 갔다. 그 아이는 살아 있었다. 미켈레는 물과 먹을 것을 갖다 주기도 하고 아이와 대화를 나누기도 하였지만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미켈레의 집에 동네 사람들과 세르조라는 처음 보는 노인이 모였다. 텔레비젼에서 구덩이에서 본 아이의 사진이 나왔다. 2개월 전에 납치되었다고, 그 아이는 롬바르디아 주의 사업가 조반니 카르두치의 아들 필립보였던 것이다. 아버지와 세르조, 그리고 동네 어른들이 그 아이를 납치하였던 것이다. 미켈레는 아이를 보러 갔다가 펠리체에게 들키고 말았다. 살바토레에게 비밀을 말했는데 펠리체에게 일렀던 것이다. 이제 미켈레가 그 아이를 보러 간 사실을 다 알게 되었다. 아이는 멜리게티 농장 지하실로 옮겨졌다. 미켈레는 어른들이 싸우는 틈을 타 필립포를 찾으러 나섰다. 장작더미 뒤 구덩이에서 아이를 찾았다. 미켈레는 아이를 구덩이에서 간신히 꺼내었지만 자신은 나오지 못했다. 미켈레는 필립포에게 두려움이 없는 아이라고 위로하며 도망치도록 하였다. 그러고는 아버지가 권총을 들고 나타났다. 아버지는 다친 미켈레를 안고 다른 무리들에게 자신의 아들임을 알리고는 이야기는 끝이난다.
낮에는 자신을 사랑해주고 따뜻한 아버지가 한 아이를 납치한 사람중에 하나임을 알게 됐을때는 얼마나 놀랐을까? 사실 책을 읽으면서 아버지가 그런 무리가 아니기를 바라기도 했다. 미켈레가 옛날 이야기처럼 듣기만 했던 괴수들이 실제는 주위의 어른들이였던 것이다.
아!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나로서는 뭐라고 평하기가 어렵다. 단지 이 소설이 잔잔한듯 하면서 긴장감을 주는 그런 묘함이 있었고, 재미있었다는 느낌만이 아쉽게도 내가 표현 할 수 있는 전부이다.. 아이를 납치하는 그런 일들이 안 일어나길 바랄 뿐이다.... |
우리가 밤에 본 것들 / 재클린 미처드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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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말 무더위 속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별 기대없이 책을 들었다. 이책의 주인공인 미켈레는 동생인 마리아를 귀찮아하지만 오빠답게 챙겨주고 남자답게 바르바라를 위해 기꺼이 벌을 받겠다고 나서는 따뜻한 마음씨의 9살 소년이었다. 골목대장인 해골의 횡포에 맞서다가 우연히 산위의 집에 들어가게 되는데 구덩이 속에서 시체와 같은 아이를 발견하고 깜짝놀라 집으로 돌아가 아버지에게 알리려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바쁜 일이 있는 듯 매번 미뤄버린다. 미켈레는 어른들이 해주는 시시껄렁한 이야기의 괴물이 바로 그 아이라 생각하며 두려워하다 다시 그 집을 찾아가게 된다. 구덩이 갖힌 시체같은 다리가 살아있는 아이의 몸이었고 또 자신을 필리포라 말한 아이에게 미켈레는 부모 몰래 먹을 것을 가져다주면서 그들은 순수한 우정을 쌓아간다. 그러나 미케레는 9살짜리답게 갖고 싶은 장난감때문에 친구인 살바토레에게 필리포에 대해 털어놓았다가 배신당하게 된다. 미켈레는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 결국 어른들의 세상과 다르지 않다는 걸 알아가기 시작한다. 어느 날 밤 자신의 집에 모인 마을 어른들의 이야기 속에 자신의 아버지를 비롯한 마을의 어른들이 돈 때문에 그 아이를 납치했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돈에 눈이 먼 추악한 어른들의 세계를 엿보게 된다. 미켈레는 어떻게든 필리포를 도우려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다시 필리포를 만나면 그 애를 죽여버리겠다는 어른들의 말에도 굴하지 않고 결국 필리포를 구하러 간다. 그러나 그곳에서 총을 든 아버지를 만나게 되는데.. 열린 결말이라는 점이 조금은 허망하기도 낯설었지만 내내 이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순수한 우정이 현실과 상상을 오가며 펼쳐내는 환상적인 장면들에 집착하듯 읽게 되었다. 미켈레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어른들의 모습과 아이들의 모습이 별반 다르지 않는 것이 어쩌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른들의 세계와 아이들의 세계가 다르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런 현실을 뛰어넘는 순수한 미켈레와 필리포의 모습은 아이들은 얼마나 순수할 수 있는가 이 책을 통해 다시금 들여다보게 되었다. 스릴러이지만 스릴러가 아니고 성장소설이지만 성장소설이 아닌듯한 묘한 매력이 있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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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주인공 미켈레는 정이 넘치며 정의롭다. 늘 여동생만 감싸고도는 엄마 때문에 여동생을 귀찮아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잘 보살피고 챙긴다. 달리기 시합 도중 넘어져 다친 동생 때문에 다시 되돌아간다. 그로 인해 친구들과의 시합에서 동생 때문에 꼴지를 하게 된다. 하지만 공평하지 못한 대장은 여자인 바르바라에게 수치심을 주는 벌칙을 내린다. 그로 인해 마음이 편하지 않은 미켈레는 자신이 꼴찌라며 벌을 대신 받겠다고 나섰고, 벌로 언덕위의 집에 혼자 들어가 무엇이 있는지 살피고 오라는 벌을 받고 집속으로 들어갔다가 우연히 구덩이 속에 갇힌 알 수 없는 한 아이를 발견하게 된다. 그 뒤에도 과연 구덩이 속에 그 아이는 무엇일까 하는 호기심에 구덩이를 드나들면서 아이를 보살피고 관심을 가지게 된다. 아버지에게 말하려고 했으나 그 전에 오히려 어른들이 그 아이를 구덩이 속에 가둔 것을 알게 되고 더 이상 가지 말라는 엄포를 듣는다. 필립포와 한 약속과 아버지에게 한 맹세사이에 갈등을 하지만 미켈레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또 다시 언덕을 오른다. 너의 목숨을 노리는 사람들 때문에 더 이상 못 온다고 그러니 기다리지 말라고 마지막으로 말해주기 위해 말이다. 미켈레는 사실을 알고 난 뒤 수많은 밤을 고통으로 보냈을 것이다. 이렇듯 이해할 수 없는 어린들의 세계와 행동돌이 미켈레를 괴롭힌다. 또 다시 언덕 위를 오르고 필립포를 찾아 나선 미켈레를 보고 있자니 갈등의 순간에 결국에는 정의를 선택하는 것을 보고 자신의 편안함과 안위를 위해 무시하고 모른척 할 수도 있지만 미켈레는 그러지 않았다는 사실에 나 자신과 비교되었다. 오히려 미켈레는 문제를 똑바로 직시하고 바로잡으려는 경향을 보인다. 어리지만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아는 나이인 것이다. 하지만 끝끝내 그 이유는 속 시원하게 밝혀지지 않는다. 필립포의 납치, 감금 사건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저 미켈로가 그 아이를 우연히 구덩이 속에서 발견하고, 몇 번씩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고, 먹을 것을 챙겨주고, 어른들의 이야기를 엿들으면서 알아낸 사실들이 책 속의 전부일 뿐이다. 책의 이야기가 끝 난 뒤에 혹시나 싶어서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뒤져보았으니 이야기는 끝이 났다. 끝이 아닌 것 같은데 끝이라니 뒤에 이야기가 더 이어지길 하는 바랬는데 마지막장이 유난히도 무거운 느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