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종종 우리의 세계관으로 어떠한 단어를 정의하곤 합니다. 기존의 관점이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본래 전하려는 메시지를 퇴색시키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질문을 던지며, 전혀 모른다는 마음으로 새롭게 배워야 할 때도 있습니다. 특히 기존에 자주 사용했던 용어의 경우, 짧은 단어에 내포된 의미가 매우 다양해집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부여하는 정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텍스트 자체의 문맥과 더불어 역사 속에서의 여러 논의들은 우리를 풍성하게도 하지만, 혼란스럽게도 합니다. 신학자이자 감리교 목사인 크리스토퍼 모스(Christopher Morse)는 이 책 『천국을 다시 묻다』를 통해, 오랫동안 사용해왔던 '천국'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천국'이라는 단어야말로 학계에서의 논의와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의미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천국'을 내세와 연결시킵니다. 그곳에 가기 위해서의 방법은 다를 수 있겠지만, '죽어서 가는 좋은 곳' 기본적인 이미지는 비슷합니다. 지옥과 반대되는 개념으로서 즐겁고 화평한 곳, 행복한 곳이라는 환상을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성경에서 반복하고 있는 '천국'은 우리가 생각하는 개념과 다르다고 주장합니다. 복음이 증언하는 천국은 죽음 이후의 삶과는 무관합니다. 성경에서 600회 이상 언급하는 '천국'은 물리적 하늘이나 사후세계로 환원해 해석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저자는 복음이라는 맥락에서 천국은 우리가 가는 장소가 아니라 오는 무엇이라고 강조합니다. 죽고 나서 가는 내세가 아니라 지금 그리고 이곳에서 누리는 생명에 관한 무언가입니다. 무시간적인 정적 상태가 아니라, 때에 따라 발생하는 역동적인 사건입니다. 저자는 '천국'에 관한 신학적 담론을 간단하게 소개합니다. 이러한 탐구들은 크게 네 가지로 그려볼 수 있습니다. 먼저는 성경에서 말하는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견해입니다. 둘째는 '신화'로 들어야 한다는 견해이며, 셋째는 '사화'로 들어야 한다는 견해입니다. 마지막으로 '약속'으로 듣자는 견해입니다. 각각의 견해에서 다양한 신학자들은 자신들의 논리에 근거해 천국에 대해 논합니다. 요하네스 바이스, 알베르트 슈바이처, 프란츠 오버베크는 천국에 관련해서 문제를 제기한 인물들이지요. 이후 루돌프 불트만과 폴 틸리히, 칼 바르트, 위르겐 몰트만은 이러한 논의를 더욱 확장하며 새로운 관점을 제공했습니다. 복음의 맥락에서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 침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저자를 통해 다양한 신학자와 조우하며 '지금, 이 땅'에서의 천국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배우게 됩니다. 온전한 모습은 아니지만,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현실임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결국 복음을 재정의하고 보다 더 명확한 의미를 추구하는 이유는 복음 자체가 가진 능력 때문입니다. 본래의 의도를 알게 되었을 때 경험하는 그 단어의 영향력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즉, 추상적인 문장이 구체적 실제가 되어, 우리의 존재와 삶을 움직이게 됩니다. 참된 복음을 깨달을 때 우리는 윤리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이 땅으로 침투하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해는 우리의 존재를 새롭게 규정하며,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도전합니다. 현재하는 참 희망을 누리며, 그 풍성함을 다른 사람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 되는 것입니다. #천국을다시묻다 #크리스토퍼모스 #윤상필옮김 #비아 #하나님나라 #천국 #복음 #이땅에도래하는하나님나라 #베스트셀러 #책리뷰 #북리뷰 #책추천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새벽독서 #모찌모찌의맛있는책읽기 #모찌모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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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모습이 어떠한가 라는 질문을 받을 때 혹은 그런 질문을 할 때 우리의 머리속에는 세상의 금은보화와 물리적, 육체적 어려움과 아픔이 없는 이상적인 공간을 그리고 상정한다. 지옥도 마찬가지 일테고, 천국과 지옥을 떠올리고 생각하고 바라 볼 때에 우리의 머리에 가장 많이 드러나고, 새겨지는 의미는 공덕을 쌓아 얻어내는 이상의 현실화가 아닐까 그런데 성경은 또 저자는 성경에 근거하여 천국, 하나님의 나라는 죽어야만 가는 '어떤 곳'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원받은 이들이 살아가는 현실이 되어야함을 전한다. 적극적 의미의 금욕이자, 성화가 상정하는 길도 아마 저자가 말하는 바와 그리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살아가는 여기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하다. 그리고 살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 죽어서야 만나는 하나님이 아니라,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이시기에, 또 그 하나님을 원할 때 원하는 형태로 소비하는 감정적, 소비적 형태의 신앙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