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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의 책은 내 기대와 맞지 않았다. 혹은 내 성향과 맞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재미있다거나 신기하다거나 이상하고 찬란하다 싶은 글을 만나지 못했다. 여섯 편 중에 하나도. 이럴 때 리뷰 쓰는 게 참 난감한데. 주제 혹은 소재를 빛으로 삼은 글들이다. 빛의 속성, 빛의 비유, 빛의 의미 등등을 SF 세상과 연결시켜 놓았다면 상당히 흥미로울 줄 알았는데 나는 왜 읽은 것이 없다고 느껴지는 것일까. 내가 생각하는 빛과 작가들이 생각하는 빛이 만날 수 없는 차원에서 흘렀나 보다. 그럴 수도 있을까, 있겠지, 세상이 다차원일 수도 있다고 하니, 나는 그러려니 여기니. 읽기의 본질을 떠올려 본다. 다른 사람이 쓴 글을 통해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는 일. 상상도 있고 비판도 있고 감정도 있고 이성도 있고, 내 것과 비교하고 대조하고 분석하면서 읽는 일. 자체만으로는 세상 무해한 일. 읽고 난 뒤에 뭐라고 하는 것, 읽고 난 뒤에 무슨 일이라도 하는 것은 방향에 따라 세상에 이로울 수도 해로울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나의 이 독후감으로 작가들이 서운해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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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보다 Vol. 3 빛』 문학과 지성사에서 출간했고, 1년에 2번 씩 출간되는 기획 소설집으로 벌써 3번 째 책. 매 권마다 관통하는 테마/소재가 있다. 1, 2집이 '얼음', '벽'으로 여섯 작가의 단편을 묶었다면 3집은 '빛'이라는 소재로 단요, 서이제, 이희영, 서윤빈, 장강명, 위래 작가의 단편을 모았다. 우리의 일상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입자이자 파동인 이중성을 갖고 있는 '빛'은 이 소설집에서 지향점이거나 기억을 영사하는 매체, 과잉된 폭력, 혹은 상대적이거나 왜곡된 시공간 개념을 상징한다. 이번 3집은 전작보다 하드 SF(자연과학 이론 기반)에 가까운 작품 비중이 높아 천선란, 김초엽, 구병모 등 최근의 여성작가들의 감성적인 필치에 익숙한 독자들은 읽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SF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선보이려는 기획자의 의도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이게 무슨 SF야?' 라는 비아냥은 듣지 않을 만큼 나름의 황금비율을 맞췄다는 생각. 스토리를 요약하면 읽는 재미가 떨어지니, 대신 각 단편에 대한 짧은 감상평을 덧붙여 본다. - 어떤 구원도 충분하지 않다 (단요) : 기술이 더 이상 마법이지 않은 세상에서 인간으로 사는 권태로움을 예수, 마녀, 흡협귀가 실은 적외선을 보는 사람이었다는 가설을 단초로 풀어낸다. - 굴절과 반사 (서이제) : 오존층 파괴로 더 이상 지상에 머물지 못하는 인간은 빛이 잘 들지않는 해저도시에서 생활한다. 사고로 실종된 반려인을 잊지 못하는 '나'의 육상 탈출기. - 시계탑 (이해영) : 불이 꺼지지 않는 세상, 폭력적인 빛이 인간의 신체와 정신에 미치는 영향과 폐해를 '다른 세계' 체험으로 알려준다. - 라블레 윤의 마지막 영화에 대한 소고 (서윤빈) : 영화 감독의 독특한 영화론에 대한 이야기로 빛과 시간, 속도에 대해 논문/비평 헝식으로 흥미롭게 기술한다. - 누구에게나 신속한 정의 (장강명) : 기자 출신 작가답게 AI 법률서비스의 보편화로 고소가 남발되는 근미래의 어두운 현실을 르포 형태로 설득력있게 다룬다. 어떤 방식으로 사회와 역사가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인사이트가 놀랍다. - 춘우삭래 (위래) : 태양계와 인류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다. 우리는 결코 빛의 속도를 넘을 수 없고, 우리가 볼 수 없는 차원은 늘 존재한다. 삼체 3부급의 스케일로 보여주는 제대로 된 하드 SF의 맛. 몇몇 설정은 조금 익숙했고, 몇몇 작품은 많이 어려웠지만 그럼에도 이처럼 다양한 작가들이 하나의 테마를 놓고 높은 필력과 기발한 상상력으로 완성한 단편을 비교해가며 읽은 재미가 쏠쏠했다. 서이제, 장강명 작가는 나름 잘 알고 있지만, 하드 SF를 다루는 서윤빈과 위래 작가를 알게 되어서 기뻤다. 이 기획을 너무 좋아하는 입장에서, 미리 다음 권의 테마를 알려주거나 혹은 화두를 선정하게 한다거나 등 독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가능한 캠페인을 실시하면 좋겠다. #SF보다 #SF보다_빛 #SF보다_서평단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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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보다 시리즈의 세번째 책인 <SF 보다 Vol. 3 빛>에는 '빛'을 키워드로 한 여섯 작가의 여섯 편의 단편 소설이 담겨있다. 생소한 형식에 조금 낯설게 느껴지는 작품도 있었지만, 모든 단편이 여운이 깊게 남아 작가님들의 다른 작품도 찾아 읽고 싶을 정도로 좋았다. ?? 단요, 『어떤 구원도 충분하지 않다』 지구의 마지막 빙하가 녹은 남극에서 원시인이 발견되고, 그가 열화상 카메라처럼 빛을 감지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당연히 보아야 할 빛’을 보지 못하고, ‘대개는 보지 못하는 빛’을 보는 이들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어쩌면 역사 속에서 사라진 이들이 인류를 흔들 수 있을 만큼 강력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러한 상상력을 통해 이 이야기는 인간의 역사를 날카롭게 재조명한다. ?? 서이제, 『굴절과 반사』 이 이야기는 지상에서 더 이상 살 수 없게 된 인류가 해저도시에서 살아가는 미래를 그린다.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유리 천장 아래에서 살아가는 기분을 상상하며 읽었다. 기후 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동시에, 희망을 놓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게 한다. 주인공이 지상으로 올라가 쏟아지는 빛을 마주하는 결말이 뭉클했고, 마지막 문장은 시를 읽는 것처럼 아름다웠다. ?? 이희영, 『시계탑』 현대인의 질병인 만성 피로, 과로, 수면 부족으로 고통받는 주인공은 지인이 소개해준 곳을 찾아가고, 치료의 일환으로 ‘그 세계’를 방문하게 된다. 이 뒤틀려 있는 불안한 세계는 바로 자신의 뇌 속이었다. 작품의 몽환적인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대부분의 새벽을 깨어 있고, 낮잠과 쪽잠으로 하루를 버티는 내게 섬뜩하면서도 묘하게 위로가 되었다. ?? 서윤빈, 『라블레 윤의 마지막 영화에 관한 소고』 이 작품은 알파 켄타우리를 배경으로 한 영화계 모습을 그리고 있다. 봉준호 73세, '미련곰탱이상' , 우주 공간에서의 촬영 기법 등 피식피식 웃음을 자아내는 설정들이 재미있었다. 한편의 예술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내용보다도 글의 형식이 신선해서 특히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 장강명, 『누구에게나 신속한 정의』 각종 분쟁을 법정 밖에서 해결해주는 인공지능 법률 서비스 기업 '신속한정의'에 관한 이야기로, 이 글 역시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된 기사라는 설정이다. 인공지능 활용의 이점과 고민할 지점들을 다루면서, 과학 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현재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여러 문제들을 날카롭게 그리고 있어 더욱 현실감있게 다가왔던 작품이다. ?? 위래, 『춘우삭래』 가장 수수께끼같은 작품이었다. 부서져가는 행성에서 떠나 정착할 곳을 찾던 이들은 SN2024B를 인간을 구원할 빛이라 생각하지만, 그 빛이 결국 함정이었을 발견한다. 작품의 제목인 춘우삭래는 봄비가 자주 온다는 뜻으로 '무익함'을 비유하는 말이라고 한다. 이들의 여정은 정말 무익한 것이었을까? 긴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여섯 편의 이야기 속에서 '빛'은 단순한 물리적 현상을 넘어 우리의 내면을 비추는 도구가 된다. 다채로운 빛의 스펙트럼을 담은 여섯 편의 이야기를 읽는 동안 나의 상상력의 스펙트럼 또한 넓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어 뜻깊었다. _ ?? 한때는 그 빛이 무척 아름답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 생각마저도 들지 않았다. 아니, 그 무엇에서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었다. 너 없이,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p. 50) ?? 중요한 건 우리는 실패를 기억하고 있고, 우주가 두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로 남지 못하더라도, 서로를 위할 수는 있겠죠. 그러니 다시 만날 때를 대비해 이렇게 우리의 불우한 청춘사를 남깁니다. 우리를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p. 188-189)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SF보다 #SF보다_빛 #SF보다_서평단 #문학과지성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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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시각에 상당히 의존하는 종이다. 즉, 빛 속에서 살아간다. 볼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볼 수 있는 만큼만 보며 살아간다. 얻을 수 있는 정보도 그 범위에 국한된다. 인간은 가시광선의 범위에서 벗어난 종류의 빛인 적외선을 맨눈으로 볼 수 없다. 적외선 카메라를 통해 간접적으로 볼 수 있을 뿐이다. 「어떤 구원도 충분하지 않다」(단요)는 남극의 얼음이 모두 녹아 냉동된 원시인이 발견된 사건을 두고 종교역사학 연구자와 송전망 관리자인 두 친구가 대화하는 형식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연구 결과 원시인은 가시광선이 아닌 적외선을 봤던 것으로 밝혀진다. 적외선을 보는 사람은 사람도 잘 분간하지 못하고, 글자도 읽을 수 없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어쨌든 소설의 현재 시점에는 원시인과 같은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고대와 중세 시대에 그들은 마술사로 불리다가 제거됐기 때문이다. 세상을 다르게 본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배척되고 마녀로 몰려 죽었다. 그렇게 죽은 사람들은 먼 미래에 발견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믿으려는 사람들은 그곳에도 없다. 스무 세기에서 서른 세기가 지나도록 그들은 여전히 타자로 남았다. 진실은 쉽게 가려진다. 권력자들이 작정하고 진실을 숨기거나 왜곡하는 세상에서는 희생양이 생길 수밖에 없다. 「굴절과 반사」(서이제)의 세계에도 피해자가 존재한다. 인류는 환경 파괴로 인해 해저 도시에서 살게 되었고, 정치인들은 지상에서 절대 살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해저 도시는 수압으로 인해 "최고의 기술력으로 시공되었다던 해저터널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세계다. 그 참사로 연인을 잃은 주인공에게 의뢰가 도착한다. 굴절을 거듭하다가 간신히 도착한 빛 한 줄기는 빛이 없는 해저 도시에 균열을 낸다. 빛은 세계를 무너뜨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 빛을 잘못 사용하면 빛의 힘이 자신을 망가뜨릴 수도 있다. 분명히 인간에게 빛은 꼭 필요하다. 하지만 언제, 얼마나, 어떤 빛을 보느냐에 따라 빛은 필수품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 불규칙한 생활 습관으로 인해 빛을 보면 안 되는 시간에 빛에 노출되면 뇌의 ‘시계탑’이 고장 나듯이 말이다.(「시계탑」, 이희영) 이토록 빛은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 너무나 다면적이어서 어떤 빛을 보며 살아가고, 빛을 어떻게 이용하는지에 따라 삶의 양식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인간이 지구를 포기하고 우주로 나간다면, 그리고 광속에 가까운 속력을 낼 수 있게 된다면 인류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물리 법칙을 적용받으며 살 것이다.(「라블레 윤의 마지막 영화에 관한 소고」, 서윤빈) 라블레 윤은 제한 속도가 광속이나 다름없는 세계에서 광속이라는 제한을 위반하는 인물들을 영화에 담는다. 모두가 그의 영화에 관심을 갖지 않아도 그는 끝까지 제약에 반기를 드는 영화를 찍는다. 방향이 필요 없어진 세상에서 방향을 찾고자 한다. 라블레 윤의 방향 찾기는 비단 미래에 우주에서 사는 인간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지금 이곳에서도 우리는 방향을 너무나 쉽게 잃곤 하니 말이다. 「누구에게나 신속한 정의」(장강명)는 사법 기관의 역할이 민간에 넘어가면서 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진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법적 문제를 빠르게 해결함으로써 신속하게 정의를 구현할 수 있다는 주장에 의문을 던진다. ‘신속한정의’는 정말로 정의로울 수 있는지, 현실에 발붙이고 있는 SF가 현재를 사는 독자(와 현실)에게 질문한다. 빛은 정의를 비유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것이 정의라고 사회적으로 합의되는 과정과 결과가 정의롭지 못하다면 정의는 사회를 파멸로 이끌 수도 있다. 「춘우삭래(春雨數來)」(위래)의 인류는 SN 2024B라는 우주 존재가 보내는 빛을 “인간종을 구원할 빛”이라 여기며 그를 ‘등대’라고 부른다. 그러나 SN 2024B를 등대로 여기고 그에게 가는 과정이 정당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화자는 부인하지 않는다. ‘등대’로 향하는 인류의 모습은 마치 하루살이를 닮았다. 욕심 때문에 거짓된 빛에 현혹되고, 파멸의 길을 걸으면서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는 현실을 우주 공간에 투영한다. 도처에 빛이 있다. 정의의 빛과 정의를 표방한 거짓된 빛은 뒤섞여 있다. 어떤 빛을 볼지 정하는 일은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역시 감당해야 하는 몫이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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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우리의 외부적 내부적 세계를 비추거나 창조하고, 때로는 얼룩을 만들며, 확장해 나간다. 마치 빛과 같이,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접하는 만큼만 확장하는 한계를 지닌 것 또는 무한한 가능성을 나타내는 것. 빛은 이야기와 그리고 그 이야기로부터 빚어낸 상상력과 닮아있다. 상상력이 빛난다. 라는 표현이 있다는 건. 위 문장에 개연성을 더 해주는 것 같다. 그러나 굳이 이 표현이 아니더라도 빛을 주제로 나타낸 SF보다는 빛과 이야기를 연결 짓게 만드는 데 충분했다.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우리에게 아직 도착하지 않은 빛을 향해 손을 뻗는 일이 아닐까" 소설을 읽으면서 기분이 좋은 순간 중 하나는 생각해 보지 않았던 현상이나 감정에 대해 “그럴듯하다.”라고 느낄 때이다. 이 그럴듯하다는 이야기에 완전히 몰입하게 만들며, 끝에 다다랐을 때 여러 개의 물음표를 낳는다. 마치 아이를 낳는 것처럼, 어떤 이야기가 자아의 확장과 세계의 확장으로 이어진다. 이 책에는 열화상 카메라 인간과 신과의 관계, 해저 마을과 심해 교도소, 몸속 가상 세계, AI 민간 법률 서비스 등등 여러 가지의 가능성이 소개되어 있고,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놀라웠던 건 문지혁 작가의 하이퍼링크와 이희영 작가의 시계탑, 장강명 작가의 누구에게나 신속한 정의다. 책 소개의 가장 상단 2~3문장은 문지혁 작가가 쓴 빛을 압축해 놓은 거나 다름없다. 초반의 빛 소개 글 덕분에 빛을 탐험하는 기분으로 소설을 읽어나갈 수 있었다. 이희영 작가의 시계탑을 읽은 후엔 이런 가상 체험이 실제로 있으면 조금 더 자신을 돌보기 좋지 않을까 싶다가도 이제는 내 머릿속에서 할 수 있는 것으로 느껴졌다. 마지막 장강명 작가의 글에선 역시나 법적, 사회적인 질문과 문제를 엿볼 수 있었는데 공상 과학보다는 조만간 닥칠 현실을 조명하는 느낌이기에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작가가 카리스마 있는 인물의 말을 늘 주의해서 들어야 한다고 여러 번 경고하지만 아직은 자유보단 안전이 더 높은 가치로 느껴지는 건 별수가 없다. 이번에 SF보다를 처음 접해봤지만, 앞으로도 꾸준히 찾게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빛나는 가능성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음 주제가 벌써 기다려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신은 빛을 창조했지만, 빛은 세계를 창조한다. 빛은 우리를 보게 하고, 우리가 볼 수 있는 한 세계는 존재한다. 말하자면 우리의 우주는 빛이 어둠을 밀어내는 만큼만 확장된다." 자신의 빛을 확장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기를 매우매우 추천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서로 맞닿아있겠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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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 단편들보다는 여는 글과 닫는 글에 마음을 더 빼앗겼다. 그렇다고 해서 단편들이 훌륭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단요의 <어떤 구원도 충분하지 않다>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 단편을 정말 거칠게 요약하자면 '마술을 과학과 유전자로 해체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소설의 주요 소재는 열화상을 육안으로 판별해 낼 수 있었던 고대의 돌연변이다. 죽은 자를 무덤에서 일으키고 환자의 아픈 부위를 정확하게 짚어내던 예수의 기적은 사실은 그가 돌연변이 중 하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가설을 제시하며, 종교적 기원마저 그 원리를 밝혀내고 낱낱이 해체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이 모든 내용은 공식적으로 발표될 수 없다. 인간을 위해서라도 신은 지나치게 해체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열화상 카메라도 더 이상 새롭지 않은 이 시대에서 "어떤 구원도 충분하지 않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그 사실에 지겨움을 느끼는 결말이 어딘가 씁쓸하면서도 마음에 들었다. |
sf 도서를 리뷰하며 서두에 이런 말을 쓰는 것은 조금 웃기지만, 나는 sf 장르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도서는 물론이고 영화 또한 찾아서 보는 편은 아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즉, 내가 sf 장르의 문법에 익숙하지 않다는 의미다. 그래서 조금 긴장하며 책을 펼친 것도 사실이다. 우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 인류의 존속에 대한 과학적인 논의들을 생각-기대-하며 책을 열었다. 하지만 웬걸? 내가 생각하고 있는 바와는 상당히 달랐다. 우선 무엇보다 책을 펼치면 가장 처음으로 나오는 글(따지자면 서문일까?)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그렇다면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우리에게 아직 도착하지 않은 빛을 향해 손을 뻗는 일이 아닐까.(후략) 빛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도 마음에 들었지만, 내 마음을 가장 관통한 문장은 저 문장들이다. 어쩌면 이야기를 쓴다는 건 빛을 향하는 일이라는 것. 그리고 이야기를 읽는 것은 그 빛을 받아내는 일이라는 것. 고개를 끄덕이며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이 단편집에 수록된 소설은 총 여섯 편이다. 단요 - 어떤 구원도 충분하지 않다 서이제 - 굴절과 반사 이희영 - 시계탑 서윤빈 - 라볼레 윤의 마지막 영화에 관한 소고 장강명 - 누구에게나 신속한 정의 위래 - 춘우삭래 사실 나의 마음에 가장 들었던 편을 한 편만 꼽자면, 단요 작가의 <어떤 구원도 충분하지 않다>다. 왜 이 소설을 꼽았냐면, 나는 종교적인 이야기를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다. 종교에 관한 이야기야 말로 인간의 갖가지 감정과 인간사를 함축적으로 보여 준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기존 sf 문학의 틀을 깨는 것 같은 진행이라고 할까. 통상적으로 세계관에 대한 어떠한 설명과 이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 보여 주는 묘사들 후에 이야기가 진행되곤 하는데, 별다른 묘사보다 조금은 시니컬하고 특이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두 인물이 통화를 하며 독자의 상상 속에 세계를 쌓아 올린다. 이 소설에는 밑줄을 치며 읽었던 문장들이 정말이지 많은데, 하나만 꼽아 보자면. 어쩌면 인간들은 고통으로부터의 탈출이 아니라 고통에 대한 해명을 바라는지도 몰랐다. 그것 하나만 충족되면 기약 없는 구원조차 기다릴 만한 것으로 변하니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고통에서 벗어나길 원한다. 종교에 의지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 아닌가. 종교가 고통에서부터 우릴 구원해 줄 수 있다 믿으니까.(물론 불교의 경우, 구원은 셀프라고 말하긴 한다. 번뇌에서 해방될 수 있는 어떤 가이드 정도만 마련해 주곤 하지.) 하지만 사람은 어쩌면, 구원 그 자체보다 ‘내가 지금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가?’에 대한 답을 찾고 싶어하며 그 답을 찾는다면 까마득한 구원을 기다릴 수 있다는 것. 내가 평소에 조금 고민하고 생각하던 지점과 맞닿아 있어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인물들의 생각들도 상당히 흥미로웠고. 특히 나는 구원이라는 것에 대한 시니컬함이 상당히 좋았다. 그리고 이건…… 좋은 것과 별개로, 이희영의 <시계탑>을 읽으며 굉장히 자기반성적이 되었다. 왜냐하면 나도 생활패턴이 상당히 뒤죽박죽인 사람이기에, 내 뇌도 저렇게 무너지고 있겠지 하면서 상당히 찔려하며 읽었다. 심지어 그 단편을 읽을 때의 시간이 새벽 세 시였기에……. 아무튼, 수록된 단편들과 기획의원들의 글까지 모두 상당히 흥미롭게 읽었다. 빛이란 것은 사람들에게 각각 다른 의미를 가진다. 구원으로 비유되기도 하며, 정말 말 그대로의 빛-태양-으로 여겨지기도 하며, 스펙트럼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이 온 우주에서 빛이 필요하지 않은 곳은 없다는 것. 모든 생명들은 빛이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것. <sf보다 빛>에서 그 지점을 정확히 관통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갖가지의 빛이 있지만, 우리 삶에서 빛은 필수적인 존재라는 것. 그리고 이를 향해 손을 뻗는 이야기들. 기꺼이 그 손을 맞잡고 싶다. #SF보다 #SF보다_빛 #SF보다_서평단 #문학과지성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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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SF보다> 시리즈의 세번째 테마 '빛'으로 여섯 작가의 단편소설로 이루어진 책이다. 단편소설로 글은 짧지만 생각지 못한 스토리 전개로 놀라움을 주었다. _빛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뿐 아니라 우리의 내면적 공간 역시 확장하고, 이를 통해 우리의 상상력 역시 ‘빛난다‘. 책의 들어가는 말처럼 문지혁 작가의 하이퍼링크에 언급된 빛에 관한 저 기말한 문구는 책에 대한 기대를 한껏 높인다. 결국 빛과 소설, SF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아닌가. _기적은 이 시대에 너무나도 흔하고, 우리는 너무 많은 빛을 알고 있으며, 열화상 카메라조차 특별하지 않다. 따라서 어떤 구원도 충분하지 않다. 단요 작가의 ‘어떤 구원도 충분하지 않다’는 장파장 적외선에 반응하는 태양빛을 보지 못하는 대신 온도를 시각 정보로 바꾸는 능력이 있는 원시인에 관한 이야기로 고대에서 르네상스, 종교개혁에 이르기까지 종교와 마녀, 각종 음모론들과 관련지어 펼쳐진다. _인간은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_살기 위해 빛을 받으라. 서이제 작가의 ’굴절과 반사‘는 지상에선 더 이상 사람이 살아갈 수 없어 해저에서 살아가는 나에 대한 이야기다. 충분히 있을 수 있고 앞으로 언젠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약간의 두려움과 역시 인간은 빛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_인간의 삶이란, 낡고 오래된 철길 위를 달리는 고속 열차와 같아요. 인간의 생체리듬은 정작 빠르게 변화하는 삶을 못 쫓아갑니다. 음식과 수면과 시간까지도요. 이대로 가다가는 결국 탈선할 수 밖에 없겠죠. 낡고 오래된 철길이 고속 열차의 질주를 더는 견딜 수 없을 테니까요. 이희영 작가의 ’시계탑‘은 주인공 휴가 언제부터인지 머릿속이 뿌옇게 되며 일에 집중하기 힘든 문제를 겪고 치료하고자 찾은 곳에서 체험을 통해 본인의 문제점을 찾게되는 과정이다. 빛의 소음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겪는 망가진 생체리듬에 관한 이야기를 이렇게 표현하다니, 나의 시계탑의 시간이 제대로 맞도록, 낡고 오래된 철길을 지켜야겠다. _ 그는 우주에서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관념에 맞서 우주에서 오케스트라 경연대회를 하는 영화를 찍었고, 우주에서 걸을 수 있는 영화를 찍었고,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날 수 있는 우주선이 나오는 영화를 찍었다. 서윤빈의 ’라블레 윤의 마지막 영화에 관한 소고‘는 제목 그대로 라블레 윤이라는 영화감독의 마지막 영화에 관한 소고가 펼쳐진다. 약간은 어려운 듯하지만 실제 영화 평론처럼 느껴지는 각주들과 유머는 이 영화감독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다. _정의로운 세상을끔찍하다고 비판하는 분들은 정의가 부족했던 세사에서 이득을 누렸던 분들뿐입니다. 장강명 작가의 ’누구에게나 신속한 정의‘는 이세아 대표가 창업한 인공지능을 이용해 판결을 해주는 신속한정의라는 회사와 대표에 대한 이야기다. 이제 판사도 인공지능으로 대체하자는 말이 나오는 요즘 많이 생각해볼거리였다. 역시 장강명 작가라며 글을 읽어내려갔다. _ 우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었고 우리를 우리라고 믿게끔 만드는 지성은 짚으로 만든 개와 구분이 되지 않는군요. 우리는 우리의 과오로 빚어낸 못난 최후로서 끝을 맺습니다. 마지막 위래 작가의 ‘춘우삭래’ 는 SN 2024B를 발견하고 등대라 부르며 그곳에서 보낸 외계인의 신호를 해독하며 인간종을 구원할 빛이라 여겨 그곳을 향해가는 인류의 이야기다. 인류에게 빛처럼 보였을 그 등대는 결국 제목처럼 쓸데없이 해롭기만 한 존재였다. 무조건적인 믿음이 잘못된 것일까, 헛된 희망과 욕심으로 실패한 것일까.책에서도 이유없이 주어지는 것은 없다고 나왔지만 나는 발 모르겠다. 이것이 욕심으로 벌어진 것인지 믿음을 꺽어버린 등대가 못된건지. 그래도 난 속이는 게 나쁘다고 생각하니까…. 등대가 나쁜걸로… _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우리에게 아직 도착하지 않은 빛을 향해 손을 뻗는 일이 아닐까 #SF보다 #SF보다_빛 #SF보다_서평단 #문학과지성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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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SF 소설집에 참여하신 여섯 분의 작가님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빛’이라는 주제에 접근하시는 것이 재밌는 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다. ‘빛’의 과학적 정의는 자기장과 전기장이 수직으로 전파되는 전자기파다. 이 빛 덕분에 우리는 사물을 볼 수 있고, 라디오를 들을 수 있고, 신체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다.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져볼까? 밤하늘을 바라볼 때 우리가 마주하는 반짝이는 별들. 그 별들도 빛이 있기 때문에 볼 수 있다. 심지어 그 빛은 몇천년 전의 빛, 몇억년 전의 빛이다. 이렇듯 ‘빛’은 그 주제 만으로도 무척 흥미롭다. 그리고 이를 주제로 다양하게 빚어지는 6개의 이야기는 그것을 더 흥미롭게 만든다. 먼저, 단요 작가님의 <<어떤 구원도 충분하지 않다>>는 마치 옛날 이야기를 전해듣는 것 같은 생생함으로 ‘빛’의 일부 파장인 가시광선 외의 빛을 볼 수 있던 인류종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류는 가시광선 영역대의 빛만을 인지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외 파장의 빛을 인지하는 인류종이 있었다면 그들의 삶은, 역사는 어땠을까? 그 질문에 독창적이고 흥미진진한 대답을 하는 것이 이 이야기의 내용이라 할 수 있겠다. 나에게는 이 책에서 이 이야기의 아이디어가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볼 수 ‘없는’ 빛을 ‘보는’ 사람들이라니!!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을까? 그리고 오늘날의 과학기술이 가능케 해준 인류 시야의 확장에 대해서도 동시에 생각하게 되었다. 가시광선 영역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매우 한정적이라서, 우리는 이제 적외선, 라디오파, X선 등 다양한 파장대의 빛을 수용할 수 있는 기기를 만들고 이를 사용하면서 훨씬 많은 양의 정보를 이용하고 있다. 그렇게보면 지금의 인류종도 볼 수 없는 빛을 보는 종이 된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역사 속 볼 수 없는 빛을 보던 사람들과, 지금의 우리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어서 가장 좋았던 글이라 생각한다. 서이제 작가님의 <<굴절과 반사>>는 깊은 해저를 배경으로 한다. 해저에는 빛이 거의 들지 않아 어두컴컴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우리가 흔히 바다와 빛, 하면 생각하는 윤슬이 반짝이고 쨍쨍 내리쬐는 빛에 넘실거리는 파도의 모습은 단지 몇미터면 끝이 난다. 그 아래는 그야말로 암흑이다. 이 이야기에서는 빛이 주는 감동이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스포일러일 수 있기에 구체적으로 말하지는 않아도… 컴컴한 해저에서도 젤 어둡고 깊은 교도소에서 근무하던 주인공이 넘실거리며 빛을 아름답게 반사시키는 수면을, 물결을 처음 만났을 때. 그때 내가 다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빛의 아름다움과 생명력에 경탄했다. 가장 아름다웠던 것은 71페이지의 문장 배열이다. 책에서 확인해보시길!! <<시계탑>>을 쓰신 이희영 작가님의 아이디어도 굉장히 새롭다고 느꼈다. 물리적인 의미의 빛이 아니라 생물학적 의미로 빛에 접근하신 점이 인상깊었다. 사람에게는 생체시계라는 것이 있고, 그 시계에 맞춰 삶을 살아갈 때 신체와 정신이 제기능을 하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은 다들 한 번 즈음 들어봤을 것이다. 그리고 그 생체시계에 근본적으로 관여하는 것이 바로 빛이다. 이 이야기는 이를 바탕으로 하여 전개된다. 생체시계의 흐름을 따르지 않을 때 사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그것을 풍부한 상상력과 디스토피아적 묘사로 그려내신 점이 정말 독창적이라고 느꼈다. 생각해보면, 과거 인류는 해가 지면 자고 해가 뜨면 일어나 생활하는 삶을 하며 진화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삶에 치여 생체시계를 자꾸만 놓치고 있는 것 같다. 경각심과 동시에 빛의 흐름이라는 것, 생체의 시간이라는 것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다. <<라블레 윤의 마지막 영화에 대한 소고>>는… 제일 어려웠다. 개념적으로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흐름 전체가 조금 따라가기 버거운 느낌? 그렇다고 글이 별로였다는게 아니다. 제목에서 보이다시피, 이 글은 라블레 윤이라는 영화감독의 유작에 대한 해석과 함께 그의 삶에 대해 마치 논문처럼 풀어쓴 설명문의 소설이다. 비평같달까… 비평 형태의 글에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어렵게 느꼈던 것 같다. 그와는 별개로 이 이야기 또한 빛에 대한 독특한 발상을 포함한다. 라블레 윤이라는 캐릭터가 빛을 다루는 방식에 대한 설명을 읽다보면 마치 실제 존재하는 영화 한 편을 감상한 것 같이, 그 영화에 나오는 빛을 상상하게되고 그것은 강렬하게 머리에 기억된다. 더군더나 그의 영화 중 중요한 요소로 꼽히는 ‘시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시간’도 빛과 때려야 땔 수 없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시간이 포함된 개념인 ‘속도’를 이야기함으로서 빛과 연관된다. 굉장히 물리학적인 연관성이다. 그리고 나는 물리학을 공부하는 학생이기에… 라블레 윤이 영화에서 시간을 다루었다는 점도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소설이 아니라, 진짜 존재하는 감독의 진짜 존재하는 영화를 본 것만 같은 기분으로 글을 읽었다. <<누구에게나 신속한 정의>>는 처음에 ‘이게 왜 빛에 대한 이야기지?’하고 생각했다. 근데 과학적 의미의 빛 말고도, 빛은 종종 문학적 의미에서 구원이나 혁신로 비유 된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여기에 등장하는 신속한 정의는 그런 의미에서 빛이라고 생각한다. 신속한 정의의 등장으로 사회의 모습이 이전과 매우 다르게 변화하고, 세계를 바꾸었다는 점이 그렇다. 원래는 소수의 사람들만 사유하고 누리던 것들이 신속한 정의를 통해 모든 사람에게 열리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세상의 체계를 바꾸었다면 그것이 혁명이고 빛 아닐까? 장강명 작가님이 해석하신 빛. 어떠한 사회적 혁신을 기점으로 변화한 사회와 그 미래에 대해 풀어내는 이야기가 정말 있을법한 내용이라 재밌게 읽었다. 마지막은 위래 작가님의 <<춘우삭래>>이다. 젤 물리학적인 이야기였고, 그래서 술술 읽었다. 빛은 옛날부터 어떤 신호를 전달하는 방법으로도 쓰였다. 처음에는 불을 이용한 빛으로 (봉화라던가), 램프를 이용한 암호의 전달 (모스 부호 같은 것들), 그리고 지금은 무선 통신 기술에 쓰인다. 이 이야기의 시작도 변광성 하나가 보내온 빛 신호의 관측에서 시작된다. 그 빛에서 시작된 인류의 오랜 시간을 걸친 우주로의 진출과 여정, 그 과정에서 진화하고 변화하는 인류종과 사회 모습, 사상에 대한 글이다. 우주에서 빛을 내는 천체는 다양하다. 흔히 알고 있는 항성, 변광성, 블랙홀 주변의 강착 원반 등… 그 곳들을 종횡무진하며 벌어지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광활한 이야기가 날 강렬히 빨려들게 했다. ‘빛’이라는 하나의 단어가 이렇게 많은 방법으로 해석될 수 있을 줄은 정말… 읽으면서 작가님들의 아이디어에, 상상력에 감탄하기를 반복했다. 빛은 어디에나 존재하기에 그 존재의 무게감을 우리는 종종 잊는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마주한 여름의 이글거리는 태양빛은 왜인지 조금 다르게 느껴져서 소름이 돋았다. 역시 이번 SF 보다 시리즈도 믿고 읽을 만한 책이다. 빛이 작렬하는 여름의 한가운데에서 읽어보면 정말 좋을 책인 듯하다. 왕추천! 이 글은 문학과 지성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서평임을 알립니다. #SF보다 #SF보다_빛 #SF보다_서평단 #문학과지성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