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빈둥거리며 누워있는 주말이었다. 일없이 티비채널을 돌리다가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예비아빠가 이제 태어날 아기를 위해 천기저귀를 만드는 모습이 나왔다. 더 어려운 환경에서도 우리를 키워내신 부모님을 생각하게 되는 감사와 감동의 시간...이 지나고 천기저귀를 빨기 위해 천연 세탁세제를 꺼내어 설명서를 읽다가 예비아빠 제이슨이 투덜거린다. 구연산, 과탄산소다를 집어들었는데 '엄마의 선택'이라고 되어있다면서 이건 엄마만 선택하는 것이냐고. 그리고 이어서 부부가 선물받은 출산용품들을 살펴보는데 그중에 아빠의 모유수유기가 나왔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오로지 엄마의 몫이라거나 아빠의 도움이 아니라 부모가 함께 키우는 것이며 이 책의 저자인 파라 알렉산더가 말하듯이 온 마을의 사람들이 육아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뜻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아무 생각없이 무심코 책을 읽다가 저자의 이름을 다시 확인했다. 파라 알렉산더. 우리나라에 살며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아닌 것이 확실한데 어떻게 이웃 엄마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하는 것일까. 아니, 어쩌면 그래서 더 이 책의 내용이 현실감 있게 다가오고 아이를 위한 페미니즘이 무엇인지에 대한 방향제시에 공감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아이가 어릴때 아이의 온 세상은 부모가 되며, 세상에 대한 온갖 궁금증을 갖고 부모에게 물음을 던질 때 엄마가 편견없는 세상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깨달았다 말한다. 그러니까 내가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직접 식사를 챙겨드시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것이었기에 사회생활을 하며 밥상머리에 앉아있기만 하는 남자들의 모습이 비정상적인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던 것처럼 아이들의 어린 시절부터 차별과 편견이 없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중요한 것임을 새삼 일깨우게 된다. '페미니즘 하는 엄마'의 의미란 그런것일터이다.
이 책은 선택, 자기돌봄, 본보기 보이기, 정치의 주체로 서기 라는 네개의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삶의 방향은 개인의 선택에 달려있겠지만 의와 불의를 나눌 수 있는 것처럼 편견과 혐오가 없는 세상을 위한 선택이 필요하다. 올바른 삶의 방향을 위한 선택을 시작하며 자존감을 갖기 위한 자기돌봄은 당연히 따라오지 않을까.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페미니즘에 대한 공격적인 발언이 따르고 있는 것을 보면 많은 사람들의 인식속에 페미니즘은 진취적이고 급진적인 행동파 페미니스트들의 전투적인 선언과 행동이 밑바닥에 깔려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공감하고 연대하며 더 나아가 정치적인 행동까지 나아가게 되는 것이 나와 동떨어진 페미니스트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의 나 역시 페미니스트로서 함께 할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솔직하고 담백하게 쓰여진 이 책을 읽다가 잠시 멈춰 생각해보면 저자의 행보 역시 늘 쉬운것만은 아닐 것이다. 차별받는 흑인을 위한 시위에 참가하는 중산층 백인 여성의 입장과 똑같은 시위에 참가하는 흑인 여성의 입장이 다르지는 않을 것이지만 그들을 대하는 경찰의 태도는 분명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도 있고 그런 시위에 참가하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웃들의 차가운 시선도 이겨내야한다. 개인적으로는 친하게 지내지만 정치적 성향이 다른 친구와의 유대감을 이어가기는 힘들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그런 어색함과 관계의 깨짐, 은연중에 친구들로부터 내쳐지는 것까지 현실 페미니스트의 모습에 역시 어려운 선택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세상의 수많은 불의를 그대로 넘기려는 자신과의 타협이 더 어려운 것임을 깨닫게 해주고 있기도 하다. 가감없는 그대로의 이야기가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이 저자의 글의 매력이라는
"우리 아이들에게 사랑을 가르치면 아이들은 악을 넘어서는 법을 배울 것이다. 인류의 미래는 아이들에게 달려있기에 엄마의 육아는 무엇보다도 강력한 사회운동이 된다. 세상을 구하고 싶다면 미래를 키워내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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