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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몽드디플로마티크코리아에서 모집한 신간 서평단에 선정되어 이 잡지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1. 방향 잃은 파리 올림픽 - 〈기쁘지 않은 2024 파리 올림픽〉(p.20~23) - 〈’사회적 파급 없는‘ 파리 올림픽, 성과는 글쎄?〉(p.24~31) - 〈메달리스트들만 예찬하는 프랑스의 반(反)올림픽 정신〉(p.32~36) 모름지기 언론이란 자국을 비판할 때 더욱 날 선 법인가 보다. 이번 2024 파리 올림픽에는 몇 가지 요소가 돋보인다. 우선 런던에 이어 역대 세 번째로, 그것도 정확히 100년만에 열린 파리 올림픽이라는 상징성이 있다. 또한 올림픽의 발상지인 아테네에 이어 두 번째 도시라는 자긍심도 있다. 게다가 국제올림픽위원회 (IOC)를 조직하고 개최한 쿠베르탱 남작은 프랑스 사람이다. 외적인 면만 봐도 이 정도인데, 프랑스는 이번에 주경기장이 아니라 센강에서 개막식을 개최하기로 했다. 일부 수상 종목 역시 센강에서 치러진다. 여러 비판점 중 도드라지는 건 센강에 대한 것이다. 숱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센강의 수질오염을 완전히 조절하기는 힘들다. 선수들의 안전과 건강이 위험할 수도 있다. 그리고 센강을 통제해야 하기 때문에 유서 깊은 헌책방들은 영업할 수도 없다. 주변 도로 통제 때문에 자국민들이 겪을 불편함과 고충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알다시피 파리의 인구 밀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고, 교통난도 악명 높다. 도시 곳곳에서 통제가 이뤄지니 아무리 세계적인 축제라고 해도 자국민들이 온전히 감수하기란 쉽지 않다. 프랑스 역시 다른 유럽 국가와 마찬가지로 급격한 난민 유입과 후손 이민 세대가 성장하면서 생기는 갈등, 노령화와 정년 연장 문제, 도-농 간 격차 등으로 몸살을 앓는 중이다. 이런 와중에 막대한 예산을 퍼부어야 하는 올림픽이라는 행사에 프랑스 사람들이 마냥 고운 시선을 줄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올림픽 정신이 아무리 숭고하고 가치 있다해도, 당장 사람들이 먹고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하진 않다. 2. 〈피 한 방울만 섞여도 흑인이다!〉(p.37~44) 우리나라에 대대로 이어진 노비에 관한 법률이 생각났다. 일천즉천, 즉 부모 중 한 쪽이 천민이면 자식도 당연히 천민이 된다는 뜻이다. 미국의 악명 높은 인종차별법인 짐 크로 법은 훨씬 강도 높다. 이를 둘러싸고 마틴 루터 킹, 말콤 엑스 같은 인물들이 투쟁했다. 남북전쟁 이후에도 인종차별은 1960년대 민권법 제정까지 살아남았다. 나치 독일의 인종차별이 미국을 본보기로 삼았던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민의 나라 미국의 인종 갈등과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
?![]()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사월간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7월호도 흥미진진한 내용들로 가득했습니다. 특히 러시아 경제제재가 전혀 먹히지 않았다는 기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금융 자립과 식량 자립이 이루어져 있는 나라인 러시아의 경제력은 생각보다 거대했습니다. 석유, 천연가스, 비철금속, 곡물의 3대 생산국이지요. 원전 수출국에 이어 우주 강국이기도 합니다. 러시아 금융 메신저 시스템, 국내 카드결제 시스템을 통해 서방의 제재를 피했습니다. 러시아는 군비 지출을 늘려 경제 성장을 촉진하는 군사 케인즈주의를 따릅니다. 그리고 올리가르히들은 경제 제재 때문에 해외에 자산을 은닉할 수 없게 되어 이 자본을 국내에 재투자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러시아의 경제 성장을 이끌었지요. 서방은 결국 동결 자산을 건드리지 않고, 이 자산에서 나오는 이자 수익만 사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과 러시아 경제 제재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 왜 러시아가 승승장구할 수 있었는지 흐름이 파악되지요. 두번째로 인상깊었던 기사는 파리 올림픽에 대한 비판 기사입니다. 파리올림픽은 일시적인 경제 효과를 내세우고, 막대한 공공 지출을 정당화한다는 한계를 가집니다. 그리고 코카콜라와 맥도날드가 파리 올림픽의 메인 스폰서인데, 전혀 건강에 좋지 않은 식음료 기업이 건강을 상징하는 올림픽을 선전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비판적입니다. 올림픽 자체에 대한 비판도 있었는데요. 프로 스포츠 대회는 신체와 승리만을 숭배하고, 그 결과 만성적인 부상을 과소평가하고 약물을 복용하게 하는 악순환을 가져온다고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세번째로 인상깊었던 기사는 '피 한방울만 섞여도 흑인이다'라는 기사입니다. 저번 호에도 흑인 인종차별에 대한 기사가 실렸는데, 그 기사에 대한 후속편입니다. 미국이 특히 피의 순수성에 대한 절대성이 심한 국가였는데, 예를 들어 플로리다에서는 16분의 1이라도 흑인의 피가 섞이면 흑인이라고 규정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백인과 흑인이 동일한 영혼과 사고를 지닌 존재로 취급되지 않았던 미국의 어두운 역사를 다시한번 조명합니다. 시의성 있는 주제들과 흥미로운 내용들로 가득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7월호. 기성 언론에서 찾아보기 힘든, 영미권 매체와는 또 다른 세상을 보는 시각을 넓힐 수 있었습니다. 다음 호도 기대하겠습니다. @lediplo.kr |
![]() 세계적인 일간지인 《르몽드》의 자매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2024년 7월 호이다. 이번 호에서 가장 기대되는 기사는 바로 이달 말이 시작될 제33회 파리 올림픽에 글이었다. 과연 프랑스 시사지에서는 자국의 올림픽 준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포커스 기사 '진실을, 모든 진실을, 오직 진실만을 말하라'라는 멋진 언론관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국제 관계 전문 시사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4년 7월 호의 포커스 기사는 미국 정부의 감시에 맞서 싸운 신좌파(New Left)와 블랙 팬더스(Black Panthers)에 대한 글과 금융 자립과 식량 자급 등의 낙수효과를 통해 서방의 제재로 극복한 러시아 경제에 대한 글이다. 1. 미국 정부의 감시에 맞서 싸운 신좌파와 블랙팬더스 1960년대 미국의 신좌파 운동과 블랙팬더당에 대한 CIA의 표적 감시 이야기가 왜 포커스 기사로 등장했을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기자인 르노 랑베르가 쓴 이 글은 당시 CIA의 무분별한 감시활동이 불러일으킨 사회적 논란, 미국 정부의 불법 사찰 활동으로 인해 실추된 CIA와 FBI에 대해 설명한다. 이 기사의 도입부에 최근 프랑스에서 정보기관의 사찰 활동으로 인해 사회운동가들, 특히 환경운동가들이 기소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언급한다. 바로 아 지점에서 이 글이 포커스 기사로 실린 연유를 유추해 본다. 2. 군사 케인스주의로 서방 제재를 극복한 러시아 두 번째 포커스 기사는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의 경제에 대한 글이다. 서방 국가는 전례 없이 강한 제대로 동원하여 러시아를 압박했지만 수입 대체 정책, 신흥국과의 교역, 독립적인 금융 시스템 도입 등으로 오히려 러시아 경제는 튼튼해졌다고 한다. 군사사업단지 활성화 정책에 힘입어 러시아는 놀랄만한 경제 성장을 이루어냈다. 러시아는 군비 지출을 늘려 경제 성장을 촉진하는 군사 케인스주의를 따랐는데, 덕분에 여러 경제 분야도 낙수효과를 보았다고 한다. 미국과 유럽이 러시아의 적응력과 산업 잠재력을 과소평가했고, 이 오판 때문에 오히려 서방 국가가 국제적으로 고립되었다는 분석은 참으로 씁쓸하다. 방향 잃은 2024 파리올림픽 가장 궁금했던 파리 올림픽에 대한 글은 총 세 개이다. 7월 26일부터 8월 11일까지 프랑스에서 개최되는 파리 올림픽은 만 명이 넘는 선수들과 그 두 배가 넘는 기자단이 참석한다. 올림픽을 준비하는 대회조직위원회는 지난 대회들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으려 하는 노력을 기울였지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의 날카로운 분석을 피해 가지는 못한다. 1. 기쁘지 않은 2024 파리 올림픽 제목부터 강렬하고 시작하는 문장은 매섭다. 첫 문단을 그대로 가져왔다. " 미디어가 만든 집단 이미지 속에서 이번 하계 올림픽은 '국제 종합대회'라는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거대 규모 뒤에 숨는다고 해서 지키지 못한 약속 리스트가 감추어지지는 않는다. 돈이 아마추어 스포츠 정신을 파괴했다. 고대의 휴전을 대신하여, 상황별로 다른 잣대를 적용하여 러시아는 제대하고, 이스라엘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국가를 초월한 조직인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가장 불투명한 조직임이 드러났다. 일시적인 경제 효과를 내세우며 막대한 공공 지출을 정당화한다. 국제 안보라는 명분 아래 제대를 강요하며, 자유를 짓누른다. 스포츠 해설자들의 울부짖는 애국주의 멘트는 국가 간의 연대 정신을 물거품으로 만든다......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4년 7월 호, '기쁘지 않은 2024 파리 올림픽' 중 p20 이 글의 소제목들은 더 매섭다. "엘리트 스포츠 진흥만으로는 시민의 운동량 증가 어려워" "세계적인 정크푸드 회사가 메인 스폰서라니..." "프랑스는 스포츠 국가가 전혀 아니다" 올림픽은 엘리트 스포츠의 경연장이 되었고 이러한 대회는 신체와 승리만을 숭배한다. 선수들의 만성적인 부상은 과소평가하고, 오로지 메달을 위해 선수들을 몰아가다 보니 각종 약물을 복용하게 만드는 악순환을 가져온다. '올림픽은 '규격화된 인공적인 환경과 대립적, 규칙적, 개인적인 문화'라는 불쾌한 틀을 강요하고 있다'(p23)고 비판한다. 2. '사회적 파급 없는' 파리 올림픽, 성과는 글쎄? 두 번째 글에서는 파리 올림픽 준비 과정에 대해 분석한다. 2024 파리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올림픽 역사상 최초로 지속 가능하고, 포용적이고, 연대적인 올림픽을 준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올림픽 건설 현장에서는 불법 외국 노동자들의 노동 착취가 일어났고, 무리한 작업을 강행하다 보니 사고가 속출했다. 이 글에서는 올림픽 폐막 이후 사회적 파급효과에 대한 우려와 걱정도 담겨 있다. 올림픽이 창출한 일자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 요란했던 지역 활성화 효과에 대한 홍보는 과연 성과가 있을 것인가. 3. 메달리스트만 예찬하는 프랑스의 반 올림픽 정신 세 번째 글은 프랑스 문화 정책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나는 원래도 프랑스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그러나 하나 확인한 것은 나 역시 유럽이 퍼뜨린 제국주의적 문화 이념을 은연중에 내재화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문화 선진국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프랑스 정부의 올림픽 준비는 이 글에서 가차 없이 비판된다. 프랑스 정부는 올림픽에 문화적 기품을 더해 스포츠 행사를 대하는 시민들의 태도를 바꿔보겠다는 생각에 파리 문화 올림피아드 행사를 출범시켰다. 프랑스 정부가 준비하고 있는 각종 문화 행사는 '탁월성, 사회통합, 문화다양성, 보편성 등 예술과 스포츠 사이에 서로 공통된 가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려는 것을 주요 취지로 했다. 그러나 정작 어떻게 탁월성이 사회통합과 짝을 이루는지, 경쟁 지향적인 성격을 띠는 이 스포츠 행사가 문화 다양성과 보편성을 어우러지게 하고 있는지는 발견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이 외에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4년 7월 호에는 미국의 인종차별 문제, 마요트의 불법 이민자 문제, 살충제 남용 로비로 흔들리고 있는 프랑스 농업의 속내, 프랑스 외교 원칙에 대한 비판, 인종주의 문학, 한반도 평화 등 역사/르포타주/사회/지구촌/문화 등에 다방면에 걸친 기사들이 실려 있다. 세계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기르고자 한다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은 언제나 강력추천하고 싶다. *출판사 서평단 자격으로 쓴 리뷰입니다 #르몽드디플로마티크 #2024년7월호 #국제관계 #시사전문지 #진실을모든진실을오직진실을 #파리올림픽 #신좌파 #블랙팬더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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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르몽드 디플로마티크》2024.7월
프랑스《르몽드》의 자매지로 전세계 27개 언어, 84개 국제판으로 발행되는 월간지입니다. ‘진실을, 모든 진실을, 오직 진실만을 말하라’라는 언론관으로 유명한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Le Monde)》의 자매지이자 국제관계 전문 시사지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국제 이슈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과 참신한 문제제기로 인류 보편의 가치인 인권, 민주주의, 평등박애주의, 환경보전, 반전평화 등을 옹호하는 대표적인 독립 대안언론입니다.
올림픽 개최를 반기지 않는다는 파리 소식이 눈에 띕니다.
프랑스 여론 조사 경과 올림픽 개최 지지자가 점차 줄어들고 있음이 확인 됐습니다. 특히 수도권의 반대 여론이 유독 높았고 2024년 3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전체 조사대사자 가운데 57%가 올림픽 제전에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모든 국민이 대형 스포츠 행사에 전적으로 찬성하는 것이 아니라는 결과입니다. 세계적인 올림픽이 세계인이 즐기는 대회가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스포츠만 예찬하기에 급급한 문화 올림피아드 올림픽 홍보 행사에 타깃이 된 청소년과 어린이들, 1894년 근대 올림픽 창시자인 쿠베르탱 남작과 협력한 앙이 디동 신부는 ‘더 빨리, 더 힘차게, 더 높이’라는 슬로건으로 근대 올림픽의 표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것이 단순히 영향력 있는 인사의 활동이 아닌 정부 정책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습니다. 막대한 나랏돈을 쏟아부으면서 국민들의 희생을 외면한채 말이죠.
“흑인 노예제 지지자들의 상상에서 시작됐으며 그 상상 속 흑인 남성은 노예일 땐 온순하고 사랑스럽고, 자유민일 땐 사납고 위험하다는 두 가지 본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
이번 7월호의 표지를 장식한 사진은 <자선이라는 신화의 이면>으로 티투스 카파르,2014입니다. 노예제 폐지로 백인과 흑인 간 평등이 명백히 확립된 나라에서 어떻게 인종차별 제도가 유지되었는지? 민주주의 천국에서 아니 천국인 척했던 나라에서 일어난 일과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악의적인 표현은 20세기 중반까지도 지속된 이야기를 <커튼을 걷어올리다>의 사진으로 실감나게 표현했습니다. 작가 장 콕토 서거 60주년을 맞아 소개된 이야기와 이 밖에 세계적인 이슈와 다양한 소식들을 책 한권에 볼 수 있는 유익한 매거진으로 매월 기다리며 읽게 됩니다. 상식도 키우고 인문학적 소견도 넓히는데 도움이 됩니다.
출판사 제공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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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로비치에 따르면 자연적인 신체는 정치적인 신체보다 하위에 있으며, 그에 속해 있다. ”왕의 인간적인 면이 왕의 신적인 면을, 그리고 필멸성이 불멸성을 압도할 때 왕은 폐위된다.” 영국의 왕실이 이 책을 금서로 지정한 이유는 어쩌면 두려운 진실 때문일 것이다.’ - p.6 Editorial ‘대통령의 페르소나’ 中
에른스트 칸토로비치 (1895-1963)의 1957년 저작 <왕의 두 신체 (The King’s Two Bodies)>에 등장한 문장을 읽는데, 손바닥에 王자를 쓰고 나와서 꿈을 이룬 그가 자꾸만 어른거립니다.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은 채 자신을 공격하기 위해 왜곡되었다고 하는 그의 남은 임기가 하염없이 길게만 느껴집니다.
이번 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7월호>는 현재와 과거, 여기와 저기를 바라보는 시선을 다양하게 담아내려 애쓴 노력들이 곳곳에서 느껴지는 이슈였습니다. 1960년대 미국의 CIA를 통한 정부 감시에 대항했던 신좌파(New Left)와 블랙팬더스(BPP)의 이야기를 통해 실추된 공권력의 사례를 기억합니다. 최근 대한민국의 법정이 설파한 국정원 문건에 대한 폄훼(?)는, 그 공권력의 케미스트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골똘히 생각해보게도 합니다.
그리고 올 여름에 개최되는 2024 파리올림픽에 대한 우려 섞인 시선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들이대는 글들은 특히 눈에 뜨였습니다. 벌써부터 국내 언론들에서도 준비과정에서 불거져 나오는 이야기들은 올림픽과 스포츠를 그닥 즐기지 않는 저 같은 스알못에게도 제법 신경쓰이는 부분이었는데 그 안을 들여다보는 기획기사들의 내용은 더욱 심각한 것들로 보였습니다. 전지구적 행사를 유치하기 위한 각국들의 과잉경쟁과 부풀려진 경제효과 등에 따른 터무니없는 혈세낭비와 양극화 강화, 유치실패에 따른 책임전가 등 눈꼴 사나운 과정과 결과를 우리나라도 이미 경험한 바라 낯설지도 않은 이야기이긴 했습니다. 그러기에 여전히 남아있는 과제들, 특히 인권의 문제와 환경의 문제 등을 아우르는 지구촌 공동의 소리에 더욱 귀 기울일 이유를 발견할 수 있게 해줍니다.
‘콕도는 자신과 결별한 데보르드가 겪은 시련 속에서, 한 인간으로서의 그의 강렬한 목소리를 발견한다. 이 사랑과 춤과 작별 인사는 언제나 은총과 함께 기록된다. 보네와 샤르뉴에 의해 재평가된 데보르드는, 확실히 이전보다 위대한 모습이 된 것이다.’ - p.100, ‘장 콕도와 그의 연인, 장 데보르드’ 中
예전 우연히 만난 1952년 작 영화 <미녀와 야수>의 감독으로 처음 그 이름을 접해서 그의 다른 영화들과 문학작품들까지 찾아봤던 장 콕도의 60주기를 맞은 프랑스 현지의 스케치와 더불어 그의 연인 장 데보르드 관련한 기사는 우선 반가웠고, 또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렇게 자국의 문화를 드러내고 공유하는 방식도 부러웠습니다. 만화 <아편의 시간>이 국내에도 적절한 시점에 소개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가져봅니다.
무엇보다 말미에 편지 혹은 기행문처럼 자리하고 있는 한국어판 발행인의 세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발행인들의 연례모임에 대한 이야기는 특히 뭉클하게 미소짓게 하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각국의 이해관계가 있고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공존하지만, 함께 하는 친구로서의 연대가 느껴졌고 그렇게 함께 흥겹게 춤추는 몸과 마음들이 있음에 희망도 품어볼 수 있었습니다. 만나지 못했다곤 했지만, 어쩌면 만났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함께 했던 여러 발행인들이 여기저기에 시선을 두고 생각의 유목민인 집시들일지도, 그렇게 독자들의 마음을 들쑤시는 테러리스트들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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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기쁨을 주는 잡지 -르몽드디플로마티크 7월호 이야기 나는 ‘르몽드디플로마티크’를 사랑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고품격’이다. 그리고 ‘넓고 깊은 이야기를 전문성을 넣어 이야기하는 것’이 매우 좋다. 르몽드디플로마티크가 갖고 있는 이 세 가지는 ‘엄마’, 그러니까 일종의 ‘모기업’이라 할 수 있는 ‘르몽드’는 물론 ‘아들’로서 ‘르몽드디플로마티크’가 갖고 있는 DNA에 해당하는 것이기에 피할 수 없는 존재다. 르몽드디플로마티크(LMD)는 좋은 DNA를 바탕에 갖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긍정’을 받는 게 이상하지 않다. LMD의 다른 글은 물론 7월호에 있는 글은 ‘슬픈 부조리에 대항하는 글을 읽는 기쁨’이 있고, 세계에서 일어나는 안타까운 현실을 보여주는 ‘창’이며, 좋은 방향을 찾아주는 디딤돌과 주춧돌이라 생각한다. 이와 같은 언급이 과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단언하건대, 앞에 쓴 표현은 서평을 ‘쓰기’ 때문에 ‘쓰거나, 쓰는, 쓸’ 표현이 아니다. LMD를 보는 시각은, 방금 앞에서 표현한 것처럼, 긍정적으로 표현하는 게 과할 게 없는 까닭이다. 그러기에 ‘남용’으로 착각해 ‘과식’을 염려할 필요는 전혀 없다. LMD는 그만한 품격과 수준을 갖고 있는 까닭이다. 지금 쓰는 서평은 ‘서평단’ 차원에서 쓰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이 글은 LMD를 설명하고 이해하고 권장하는 데 있어 전혀 아쉬움이 없다. ‘부득이한 예외’가 없는 이상, 제대로 된 명품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는 것처럼, LMD는 명품과 샴쌍둥이처럼 닮았고 주변에서 보는 시선 또한 이와 크게 다를 바 없으니 무리가 없다고 본다. 서평단 차원에서 LMD를 받은 후 가장 먼저 살폈던 것은 ‘목차’다. 책을 이해할 때 가장 먼저 찾아보는 게 목차였던 만큼 7월호를 받은 후 가장 먼저 찾은 것도 목차였다. 물론 시선이 가장 닿은 것은 목차보다 표지였다. 책의 구조상 목차보다 표지를 먼저 볼 수밖에 없는 것은 피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실제에서는 표지보다 목차에서 의의와 가치를 찾는 게 나의 오래된 습성이다. 소위 ‘편집 동네’에 있는 사람으로서는 피할 수 없는 생리적 현상이다. LMD 7월호에서 주목한 글은 △피 한 방울만 섞여도 흑인이다 △탈레반, 이제는 정의가 아니라, 빈곤 타파가 우선 △우리는 본능적으로 인종차별주의일까? △튀르키예, 쿠르드, 한국, 유럽, 중남미…“친구여, 우리는 형제다” 등 네 꼭지다. 프랑스 일간지인 르몽드(Le Monde)는 ‘진실을, 모든 진실을, 오직 진실만을 말하라’는 게 바탕이다. LMD도 이 같은 바탕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르몽드가 지향하는 ‘진실최우선주의’는 LMD에 고스란히 들어 있다. 글 앞머리에서 LMD를 아주 좋은 매체로 인정한 이유기도 하다. LMD를 좋아하는 이유는 글의 품격이 좋다는 것도 있지만, 일간지와 달리 주간지나 월간지처럼 ‘일정한 시간’을 두고 나오는 매체는 빠름보다는 깊이와 넓이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독자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다. 이는 하루 또는 몇 시간을 기준으로 보도하는 신문이나 방송과는 다른 것이다. LMD 7월호에서 눈길을 잡은 네 꼭지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흑인과 인종차별주의는 연결고리가 있다고 보기에 좋다. 탈레반이 정의보다 빈곤에서 벗어나려 한다는 이야기는 세상의 변화를 향한 ‘읽기’와 ‘생각하기’를 제공해주는 좋은 글이다. 특히 지역이 달라도 ‘우리는 형제’라는 표현에서 느끼는 것은 각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본다. 즉, 오늘날의 세계는 이제 톱니바퀴처럼 ‘떨어지면 안 되는 상태’(맞물려 있는 상황이나 관계)를 넘어 ‘떨어져 있는 톱니바퀴’ 상태에서도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세계를 맞이했다. LMD 7월호를 읽고 이와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은 LMD가 주는 큰 장점이다. 이는 LMD를 비롯해 TIME, NewsWeek 등과 같은 세계적인 매체가 갖고 있는 특성이자 장점이다. 쉽게 말하자면, ‘보는 눈’이 다르다. 마찬가지로 LMD와 같은 좋은 매체에 있는 글을 읽는다면, 독자의 눈도 달라진다. ‘글은 사람과 사회며, 좋은 비판은 세상을 바꾼다’는 표현을 아주 좋아한다. LMD에 있는 글은 사람과 사회를 담고 있고, 좋은 비판을 갖고 있어 세상을 바꾸고 다르게 보는 눈을 갖게 해준다. 7월호 표지와 목차(원고)에 있는 첫째 글에 들어가는 사진은 같은 의도를 담고 있다. 같은 뜻을 품고 있지만, 표지와 원고에 있는 사진이 보여주고 싶은 것은 결국 하나다. LMD는 ‘세계를 보는 창’이라고 자랑스럽게 표현한다. 공감하고 동감한다. 서평이라는 점에서 글 자체보다는 LMD를 바라보는 시선에 초점을 뒀고, LMD가 갖고 있는 긍정적 측면과 장점을 글에 많이 담았다. 글 한두 편을 다루는 것보다는 LMD를 이해할 수 있도록 쓰는 게 훨씬 더 좋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세상을 보는 창은 창문을 열고 보면 세상을 더 잘 볼 수 있을 것이다. LMD를 통해 창문을 열고, 그런 다음 창문 너머를 더 잘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이 마음을 담아 LMD 7월호 서평을 마친다. @lediplo.kr #르몽드디플로마티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