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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구상을 위해 문자를 배격하게 된 이들이 만들어가는 이야기, 문자 살해 클럽
"순수한 구상을 위해 문자를 배격하게 된 이들이 만들어가는 이야기, 문자 살해 클럽" 내용보기
나는 환상을 여기에 모두 가두고 열쇠로 잠가버렸고 이렇게 보이지 않는 내 도서관은 다시 나타났다오. 환상 옆에 환상이, 작품 옆에 작품이, 사본 옆에 사본이 바로 이 서가를 채우기 시작했소.17쪽, 문자 살해 클럽. 문자가 모여 만들어진 이 책은 문자를 철저히 배격한다. 문자라는 수단에 환멸을 느낀 이들은 이른바 문자 살해 클럽을 설립했다. 구상을 위한 구상이라는 단 하나의 목
"순수한 구상을 위해 문자를 배격하게 된 이들이 만들어가는 이야기, 문자 살해 클럽" 내용보기


나는 환상을 여기에 모두 가두고 열쇠로 잠가버렸고 이렇게 보이지 않는 내 도서관은 다시 나타났다오. 환상 옆에 환상이, 작품 옆에 작품이, 사본 옆에 사본이 바로 이 서가를 채우기 시작했소.

17쪽, 문자 살해 클럽.

 문자가 모여 만들어진 이 책은 문자를 철저히 배격한다. 문자라는 수단에 환멸을 느낀 이들은 이른바 문자 살해 클럽을 설립했다. 구상을 위한 구상이라는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구성된 이 클럽의 회원은 총 일곱 명이다. 매주 토요일 저녁 한데 모여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물론 문자가 있어서는 안 된다. 이야기는 철저히 입으로만 옮겨져야 하며 회원들의 의견에 맞춰 즉시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니컬한 회원들에 의해 멸시받고 말 테니. 회원들이 구술하는 이야기는 희곡이 되기도, 우화가 되기도 한다. 제각각의 특성이 돋보이는 가운데에서도 몇 가지 공통점이 존재한다. 첫째는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 모호하다는 것이고, 둘째는 기묘한 소재와 진행으로 주요한 메시지를 찾아내기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어딘가 무력해지는 느낌을 자아내는 것이 이야기들의 공통된 사항이다. 이러한 작품의 특성으로 인해 저자가 러시아의 카프카라고 칭해졌으리라 짐작된다. 



뛰어난 웅변가의 발화 패턴을 마스터하고 그 펜의 움직임을 장악한 후 고도로 정교해진 차별 출력장치가 그의 모든 말을 돌이키도록 강요했습니다. 
124쪽, 문자 살해 클럽. 

사회 윤리와 보건의 관점에서 볼 때, 적합한 사람보다 부적합한 사람을 희생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건강한 사람들이 처음엔 부자연스럽고 우스꽝스럽게 여겼던 '윤리적' 기계라는 명칭이 이제는 정당해 보였고 전혀 우스꽝스럽지 않았습니다.
125쪽, 문자 살해 클럽.

 독특한 이야기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다스가 구술한 '엑스'다. 1920년대라는 창작 시기를 의심하게 될 만큼 현시대와 맞닿아 있는 치밀한 SF일뿐더러 메시지 또한 심오하다. 한 생물학자가 사람에게 박테리아를 주입하여 기계화하는 방법에 대해 연구한다. 정신 질환자에게 이 박테리아를 주입하면 정상적인 근육을 노동으로 활용할 수 있겠다는 데서 비롯하여 정부의 출원도 받게 된다. 이후, 특정 엘리트 집단을 제외한 전 국민에게 박테리아가 노출된다. 윤리를 잃은 채 고도의 효율만 요구하는 사회에서 인간에 대한 고민은 심화된다. 결국 모든 것이 파괴되어 자연으로 도피한 인간만이 남았다. 21세기에 이르러 줄곧 논의가 되어왔던 AI 혹은 로봇 사회에 대한 우려가 돋보인다. 20세기 그 이전부터 줄곧 이어져 왔을 인간을 인간으로서 존중하지 않는 사회를 보며 이미 예견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토요일 모친 사망. 참석 요망. 긴급.' 아침 일찍 전보가 내 책들을 공격했소. 저녁 무렵 서가들이 텅 비었고 나는 서너 개의 수표로 변해버린 내 도서관을 옆 주머니에 꽂아 넣었소.
10쪽, 문자 살해 클럽.

그가 빚는 이야기는 그 시작과 끝이 너무 갑작스럽고 독자가 서 있는 현재 위치의 좌표조차 뒤흔들어버리기에 독자는 곧 심연으로 추락한다. 
221쪽, 문자 살해 클럽.

 문자 살해 클럽의 의장 제즈가 어머니의 부고로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을 때, 가진 것이 책밖에 없었던 그는 모든 책을 팔아야 했다. 텅 빈 서가를 바라보던 그는 머릿속의 도서관에 들어가 존재했던 책들의 문자 하나하나를 되짚어 보곤 했다. 무거운 책들이 놓여있던 책장이 여전히 휘어있듯 관성처럼 문자를 되찾게 된 것이다. 책의 도입부에 등장한 이 이야기는 실제 시기즈문트 크르지자놉스키의 일화이다. 그는 비범할 정도로 박식했고 기억력도 좋았다. 강연 중 메모를 사용하지 않고 복잡한 논문의 페이지 전체를 인용하거나 단테의 신곡을 원문으로 낭송함과 동시에 번역을 했다고 한다. 이러한 능력으로 그 역시 사라진 책들의 내용을 모두 기억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비범함에서 비롯된 진정한 창조의 순간과 산물이 이 책에 담겨있다. 



다섯 입에서 갑자기 쏟아져 나온 말들이 펜촉의 갈라진 틈 아래서 서로를 밀쳤다. 허기와 성마름으로 그들은 잉크를 탐욕스럽게 마셨고 그들의 줄달음은 한 줄 한 줄 나를 채근했다. 
213-214쪽, 문자 살해 클럽.

 문자 살해 클럽의 이야기는 결국 문자화되고 말았다. 제즈는 자신들의 사상에 크게 동요하지 않는 주인공을 클럽에 초대했다. 주인공은 내내 클럽의 취지에 혼란을 겪다 끝내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만다. 클럽의 회원들이 강요했던 문자와의 이별이 되려 문자와의 만남으로 연계해 준 것일까. 집필과는 거리가 멀었던 그가 나흘에 걸쳐 글을 써 내려갔다. 글을 모두 쓰고 난 뒤 깨닫는다. 문자 살해 클럽의 회원들이 그들의 순수한 구상, 진정한 창조물이 사라지지 않도록 자신을 초청했다는 것을. 문자를 향한 복수가 마침내 성공되었음을. 이로써 문자가 아닌 것에서 만들어진 실험적인 창조물은 문자라는 수단을 통해 우리 곁에 남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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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0 2024.08.2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