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복을 맞이하였지만, 다시 간도에서 쫓겨난다. 이 마지막 장면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우리민족의 당시 모습을 잘 말해준다. 광복을 맞았지만, 일본인들에게 쫓기고, 한쪽에서는 간도의 떼놈들에게 쫓기는 마지막 장면, 참으로 우리민족의 고통과 한, ... 일본에 쫓겨서 간도로 갔지만, 그곳에서 중국인과의 갈등. 결국 해방을 맞이했을때는 그곳이 중국땅이기에 또한번 시련을 겪어야 하는 우리민족, 이 마지막 장면에서 도저히 마음이 편치않다. 우리민족의 그 깊은 한을 누가 이해하면, 알 수 있을까? 일본에 쫓기고, 중국에게 쫓기고, 다시 미국에 쫓기고, 우리민족의 한을 느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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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하나....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은 독자들로 하여금 새삼스러운 문제로 안내한다. 한민족의 지나온 운명에 대한 고뇌!!! 그리고, 역사의 흐름속에 이제는 구석으로 밀려나 있는 민족혼에 대한 동정심........
"아리랑" 두울-
나는 12권 책장을 넘기는 동안 그 어느 곳에서도 값싼 행복을 찾지 못했다. 기구한 운명의 보름과 수국 자매 그리고 소리명창 옥비.... 그녀들은 조선의 어머니들이다. 그러나 조선의 어머니들은 비참하게 일제의 승냥이 같은 야욕에 짖밟히고 친일파들의 욕망의 희생물이 되어 사그러지고 만다.
조정래는 어쩌면 그러한 비참함을 유도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항상 같은 구조, 동일한 내용으로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다... 그러한 반복되는 절제된 형식은 화려함으로 치장한 그 어떤 메시지보다도 더 힘차게 독자의 가슴을 파고든다.
"아리랑" 세엣-
맺는 말에서 조정래는 소설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끝내 하고야 만다. <상황불가피론>과 <책임회피><책임전가>....이런 겉발린 말로 자신들을 변론한 친일자들에 대한 분노를 최남선의 시조 한 수로 속내를 드러내고 만 것이다.『아리랑』은 피끓는 분노를 담고 있다. 우리 민족의 안타까운 그리고 가엽기까지한 운명이 책 속에 흐르고 있다. 누군가?누가 책임질 것인가? 없다........아무도 없다..... 『아리랑』의 노여움은 끝이 없다. 그러나 『아리랑』은 감당하기 힘든 분노를 참고 또 참았다. 마치 조선의 어머니들처럼.......
"아리랑" 네엣-
조선에겐 두 가지 길이 있었다. 민족을 살리는 길이 있었고 다른 하나는 편안함을 보장해 주는 친일의 길이었다. 지금 우리에게도 두 가지 길이 있다. 아니, 언제나 두 가지의 선택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누구인가? 옳은 것에 대한 꺾이지 않는 고집이냐,,,, 아니면, 강한 부조리에 앞에 패자이냐..... 『아리랑』은 이것을 생각하게 한다. [인상깊은구절] 다시 최남선의 시조를 읽어보라. 그 시조 아닌 시조에 친일파들이 누 하나 깜짝하지 않고 내세우는 <상황불가피론>과 <책임회피><책임전가>가 얼마나 충실하고 뻔뻔하고 교묘하게 잘 나타나고 있는가. 이것은 바로 60년대를 풍미하고, 70년대에 절정을 이루었던 친일파들의 자기 변호를 넘어선 역습논리인 <그때 조금씩이라도="" 친일="" 안한="" 놈이="" 어디="" 있느냐=""><네가 그때="" 살았으면="" 별수="" 있었을="" 것="" 같으냐="">,<너는 뭐가="" 잘났다고="" 그러느냐="">,<이제 와서="" 친일이고="" 뭐고="" 따지는="" 건="" 다="" 촌놈들="" 짓이야=""> 이런 언행들이 횡행하게 만든 바탕을 이룬 것이었다.이제>너는>네가>그때>책임전가>책임회피>상황불가피론>책임전가>책임회피>상황불가피론> |
| 처음 아리랑이 나왔을 때는 읽지 않으려고 했다. 조정래의 대부분의 작품을 읽었었고 태백산맥의 감동을 잊지 못했지만, 그의 작품을 관통하여 흐르고 있는 집착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그의 생각에 약간은 질려 있는 상태였다. 아리랑이라고 별 수 있으랴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읽어 갈수록 느낌이 달랐다. 일단 태백산맥과는 약간 시대적 배경이 달랐을 뿐 아니라 그의 집착이나 컴플렉스도 느껴지지 않았다. 모든 소설이 하나의 세계를 창조해 내는 것이라 할 수 있겠지만 대한 소설은 특히 그렇다. 그런 점에서 조정래가 존경스럽다. 또 어떤 사람들은 아리랑의 마지막 장면에서 '뭐, 이렇게 끝나? 끝을 못 내니까 그냥 관 둬 버리는 것 아냐?'한다. 그러나 나는 아리랑의 아니 조정래의 가장 위대한 모습을 아리랑의 마지막 장면에서 봤다. |
| 송수익이 중심이 되어 펼쳐지는 이야기는 독립운동.그리고 아무 힘도 없는 농민들 .농민들을 착취하는 지주들 친일파들 또 우리나라를 지배했던 일본인들. 만주로 옮겨 독립운동을 하면서도 전혀 힘든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우리 나라를 독립하겠다는 일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감탄을 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런 사람을 칭찬을 못해줄 망정 같은 동포끼리 서로 조금이라도 자신의 이익을 차리기 위해서 고발하여 많은 사람들은 죽인 죄를 짓는 친일파들이 넘넘 미웠고.. 나는 그런 시대에 살았다면 독립운동가의 아내로 살았을 것인가? 아니면 내가 직접 독립운동가로 나섰을 것인가? 그야말로 '대일본'이라는 명목 아래서 친일파로 살아갔을 것인가? 그것이 지금도 풀리지 않는 궁금증이다. |
| 태백산맥의 감동을 고스란히 간직한채 아리랑을 손에 잡았다. 역시 조정래야..하는 소리가 나오는 책이였다. 정말 다시 한번 그에게 놀라고 있었고, 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태백산맥에서는 6.25를 전후한 얘기를 통해 그 시대의 역사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아리랑을 통해서는 일제시대의 역사에 대해서 더 알게 되었다. 어느 책을 읽든 우리 근현대사를 접한다는 것은 상당히 곤혹스런운 일이다. 역사의 진실은 밝혀진다고하고..또 진실한 사람이 복을 받는다는건 그저 위안삼기 위해서 인간들이 만들어낸 말일까?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그들은 과연 누구를 위하여 독립운동을 하였을까? 그래..그들은 특정한 누구가 아니라 내조국, 내 동포들이 모두 함께 잘 살기를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어찌되었는가.? 독립 운동을 한 후손들은 모두가 궁상스럽고 살고 있고, 그때도 잘 살았던 친일파, 매국노들이 지금도 잘 살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그래...어찌되었건 거꾸로 가든..바로 가든...역사는 흐르고 있다. 그의 소설을 통해 얻은 것이 많지만 이 가슴 아픔은 어떻게 해야하나? |
| 드디어 마지막 12권이다. 그야말로 대한민국에 태양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해방이 찾아왔다. 자유가 온 것이다. 그러나 그 마지막 순간까지 마음을 놓지 못하고 살아간 수 많은 인생들이 거기에 있었다. 그들은 왜 그런 삶을 살아야만 하는 것인가... 그 대답은 그들도 알고, 나도 알고, 우리 모두 안다. 그것은 나라 없는 백성이 겪는 서러움인 것이다. 어디가서 하소연 할 데 없는 백성들의 인생인 것이다. 나라가 없으면, 전쟁이 나면 가장 고생하는 것은 여인들이다. 이 12권으로 이루어진 아리랑에다 구구절절이 조선 여인들의 한이 녹아 있다. 수국이나, 명창 옥비, 그리고 순임이, 복실이 등 이름 모를 정신대에 끌려간 여인들, 그리고 남편을 징용으로 보내는 아낙네들, 자식을 멀리 떠나보내는 어머니 등 여인들의 조선 여인들의 한이 서려 있다.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리게 할 만큼 많은 한을 품은 여인들이 여기 조선 땅에 있었다. 한이 서려 있는 여인들 중의 일부가 여기 소설 아리랑에 들어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