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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중국행 슬로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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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지만 글을 쓰는 것도 결국은 언어를 어떻게 배치하느냐의 문제다. 어떤 단어를 어디에 둘 것인가. 이 배치에 따라 말은 표면상의 의미 이상의 무언가를 개화하기도 하고 반대로 원래 가지고 있던 의미까지 시들어 버리기도 한다. 예컨대 이 책에 실려있는 첫 번째 단편 <중국행 슬로보트>가 그랬다. “그리고 자부심을 가지세요” 흔하디 흔해서 이제는 오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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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지만 글을 쓰는 것도 결국은 언어를 어떻게 배치하느냐의 문제다. 어떤 단어를 어디에 둘 것인가. 이 배치에 따라 말은 표면상의 의미 이상의 무언가를 개화하기도 하고 반대로 원래 가지고 있던 의미까지 시들어 버리기도 한다. 예컨대 이 책에 실려있는 첫 번째 단편 <중국행 슬로보트>가 그랬다. “그리고 자부심을 가지세요” 흔하디 흔해서 이제는 오히려 보기가 어려워진 이 말은 어떤 원리에 의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딱 알맞은 자리에 놓여서 읽는 순간 마음의 공동을 흔들었다. 보신각 종을 치듯이 깊은 소리가 난 것이다.


사족을 달 수는 있다. 예컨대 ‘자부심을 가지세요’와 ‘그리고 자부심을 가지세요’는 다르다는 것. 전자가 밑도 끝도 없이 알아서 힘내라는 뜻처럼 들린다면 후자는 그 앞에 무슨 일이 있었든 간에 당신은 자부심을 가질 자격이 있다는 말처럼 들린다. 역접이 아니라 순접이라서 더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부심을 가지세요’라고 했다면 자부심은 앞에 있는 어떤 좋지 않은 상황의 반대 급부로서만 일어난다. 말하자면 자부심이란 그 어떤 좋지 않은 상황을 극복하거나 견뎌낸 선물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리고’ 앞에는 무슨 일이든 올 수 있다. 그러니까 ‘그리고 자부심을 가지세요’라는 말은 좋은 일이 있든 나쁜 일이 있든 혹은 희한한 일이 있든 그것과 무관하게 자부심을 가질 자격이 있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굳이 이렇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앞서 사족이라고 했거니와 말은 그야말로 귀에 걸면 귀걸이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라서 누군가는 내가 했던 말과 정확히 반대의 뜻으로 ‘자부심을 가지세요’와 ‘그리고 자부심을 가지세요’의 차이를 설명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마도 그 말은 맞을 것이다. 그래서 사족 없이 그냥 이렇게 생각하기로 한다. ‘그리고 자부심을 가지세요’라는 말은 정확한 자리에 놓였다. 종으로 따지자면 당목으로 정확히 중심을 타격해서 맑은 소리를 낸 것이다.


참 신기하기 짝이 없다. 물론 진지할 때는 세상 진지하지만 이 작가는 한없이 나이브해 보이는 글에도 이상한 무게감을 느낄 때가 있다. 마치 고속으로 회전하는 프로펠러처럼 슬쩍 보기에는 엄청 천천히 돌고 있는 것 같은데 실제로는 온힘을 다해 필사적으로 회전하고 있는 느낌이다. 정면에 서면 시원한 바람이 쏟아져 나오지만 엔진은 과열 중이다. 예컨대 <오후의 마지막 잔디> 같은 작품이 그렇다. 마지막 아르바이트로 주인공이 잔디를 깍기 위해 찾아간 집은 낮부터 술을 마시는 50대 여자가 혼자 있는 집이었다. 주인공은 여자가 “미인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팔은 하얗”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집주인을 여자로 보고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주인공은 잔디를 깎으러 다니는 동안 빈집을 혼자 지키고 있던 기혼 여성과 성관계를 맺은 적이 있다. 남편은 죽고 없는데다 낮부터 술을 끊임없이 들이키는 팔이 하얀 여자라니. 주인공이 잔디를 깎다가 발기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게다가 여자는 주인공에게 끊임없이 술을 권하고 일을 마친 후에는 집에 들어오라고 한다. 이거야 원 다른 생각을 할래야 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여자가 주인공을 데려간 곳은 부부가 쓰던 침실이 아니라 딸의 방이었다. 그 방에는 딸은 없지만 딸이 사용하던 모든 물건이 가지런하게 정돈되어 있다. 여자는 주인공에게 딸이 어떤 사람일 것 같냐고 묻는다. 여기서 우리는 딸이 어쩌면 죽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면 이 여자가 대낮부터 술을 마시고 있던 이유를 다시 이해하게 되고 주인공을 왜 집으로 들어오라고 했는지도 납득하게 된다. 가령 이런 것이다.


남편도 죽고 딸도 죽은 여자에게 세상은 뭔가를 열심히 할 의미가 없는 곳이다. 여자도 온 힘을 다해 열심히 한 것이 있었을 것이다. 가령 샌드위치를 만드는 것이라든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은 남편과 딸을 모두 데려가 버렸다. 그래서 여자는 대낮부터 술을 마신다. 취하지 않고는 버티기 힘들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남편과 딸이 죽은 마당에 혼자만 멀쩡히 살아있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여자는 이제 자기를 관리할 힘을 잃어버렸다. 자기를 관리할 힘이 없어서 여자는 아르바이트를 불러 잔디를 깎는다. 그러다 문득 보게 된다. 주인공이 정성스럽게 깎은 잔디를. 그 잔디는 여자의 표현을 빌린다면 “마음”을 담아서 깎은 잔디다.


술에 취해서 누가 업어가는 줄도 모르는 여자애를 봐도 여자는 딸 생각이 났을 것이다. 그런데 주인공은 아무도 그렇게까지 하라고 시키지 않았는데 마음을 다해서 잔디를 깎고 있다. 마음을 다한다는 건 시간을 정성스럽게 사용한다는 뜻이다. 여자는 주인공을 보면서 딸이 자신의 몫으로 받았지만 미처 다 쓰고 가지 못한 시간을 떠올린 게 아닐까. 딸이 살아있었다면 주인공 못지 않게 정성을 다해 다듬었을 그 시간들을.


말하자면 이 소설은 가볍고 쉬워 보이는 중년 여자와 대학생의 성적 일탈로 시작하는 것 같다가 그 정점에 왔다고 생각한 순간 갑자기 포맷 자체를 바꿔버린다. 바람이 너무 경쾌하고 시원해서 무심코 엔진에 손을 얹었다가 화상을 입은 셈이랄까. 게다가 마지막에 헤어진 여자친구를 생각하면 내뱉는 독백. '그렇잖아'의 자리도 정확해서 울림이 오래 간다. 여자가 딸이 그립고 보고 싶지만 다시 볼 수 없는 것처럼 주인공도 여자친구가 그립고 다시 보고 싶지만 이젠 볼 수 없다. 여자친구는 말했다. “너는 나에게 많은 것을 바라고 있겠지만 나는 내가 그 대상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아” 그러나 주인공에게 여자친구는 맞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다. 잔디를 깎을 때 잔디를 깎는 법을 따르듯이 그렇게 하는 법외에는 몰랐기에 그렇게 했을 뿐이다. 그러니 어쩔 수 없다고 주인공은 말하는 것이다. '그렇잖아'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제각기 다른 이야기들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모두 마음이 붙어 있었던 자리에 어느 날 마음이 떨어져 나가고 그 자리에 ‘그렇잖아’만 남은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 마음은 주인공이 원해서 떼어낸 게 아니지만 결국은 떨어져 버렸다. <중국행 슬로보트>에서는 중국인 선생님에게 들은 자부심을 가지라는 말을 기억하면서도 의도하지 않았던 실수로 중국인 여학생에게 상처를 준다. <가난한 아주머니 이야기>에서 소녀는 억울하게 마음을 짓밟히고 <땅속 그녀의 작은 개>의 여자는 통장을 찾기 위해 죽은 개의 무덤을 파냈다가 이제 그곳에 마음이 묻혀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상처받는다. 말하자면 이 이야기들은 모두 한때 강렬하게 마음이 붙어 있었던 자리를 보면서 ‘그렇잖아’라고 스스로를 위무하는 이야기들이다.


심보선 시인의 <슬픔이 없는 십오초>에 이런 시구가 있다. “누구나 잘 안다. 이렇게 된 것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말 그대로 삶이 불가항력이라는 것은 누구나 잘 안다. 어쩔 수 없다는 것도. 그러나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 사이에는 작은 간격이 있다. 그 간격을 메우기 위해 우리는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이다. '그렇잖아'


그러니 '그렇잖아'는 체념의 언어다. 다만 나는 이 말을 좋아하는데 그건 아마도 체념이 좋은 것이어서 그럴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체념의 뜻은 포기에 가깝지만 체념의 체諦를 한자사전에서 찾아보면 가장 먼저 나오는 뜻은 ‘살피다’라는 뜻이다. 말하자면 체념이란 마음을 살피는 일이다. 좀 더 나아가서 말한다면 마음을 ‘보살피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래서 그런지 체념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어쩐지 가슴에 두 손을 모은 사람의 모습이 떠오른다. 보낼 것을 다 보낸 뒤에도 남을 것은 남는다. 체념은 보낸 것을 생각하는 언어가 아니라 남은 것을 다독이는 언어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이 책이 그러했다.



2025년 5월 5일부터 2025년 5월 8일까지


읽고

생각하고

쓰다

g*******1 2025.05.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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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행 슬로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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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1 2025.04.1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