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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신견식은 무려 15개 언어를 해독할 수 있는 '언어 괴물'이다.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스웨덴어, 덴마크어, 노르웨이어, 핀란드어, 그리스어, 일본어, 중국어, 라틴어 등을 사전 없이 읽는다. 중세 영어와 중세 프랑스어 같은 옛말도 다룬다. 번역가들이 골치를 썩이는 외국어 문제를 해결해 '번역가들의 선생님'으로 불리는 저자는 이 책에서 한국어 속 외래어, 콩글리시 문제를 꺼내든다. 콩글리시는 어디에서 왔을까? 한국인은 그 뜻을 정확하게 알고 사용하고 있을까? 저자는 콩글리시의 뿌리와 일본식 영어가 아닌 말들, 잘못된 영어 표현, 한국어와 영어의 충돌과 융합, 한국식 발음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 올바른 콩글리시 등을 풍부한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음주 후 일시적으로 기억을 잃어버리는 현상을 '필름 끊기다'라고 말하는 이유는 뭘까? 저자는 '필름 끊기다'라는 표현이 1950년대 후반에 생긴 독일어 표현과 유사하다고 지적한다. 이 표현은 1982년 <동아일보>에 연재된 이병주의 소설에 처음 등장한다. 저자는 와세다 대학교 불문과에서 수학한 이병주가 독일어 지식도 가지고 있어서 이 같은 표현을 작품 속에 사용한 것으로 짐작한다. 일본식 영어로 오해받는 단어도 많다. '가방', '마네킹', '메스', '모르모트', '스포이트', '(우유) 팩', '쿠키' 등은 영어가 아니라 네덜란드어에서 비롯된 표현으로 일본을 거쳐 들어왔다. '퍼센트'와 혼용되는 '프로'도 네덜란드어 procent에서 왔다. 일본에서는 '퍼센트'를 '프로'로 줄여서 쓰는 일이 거의 없고 한국과 북한에서만 쓴다. '사라다'는 영어 '샐러드'의 일본어 발음이 아니라 포르투갈어 '사라다(salada)'에서 왔다. '샐러드/사라다'는 '소스', '소시지', '할로겐' 등과 같은 어원을 공유하며, 그 뿌리는 라틴어 '소금(sal)'이다. 재미있는 통찰도 많다. '금수저 흙수저' 같은 표현은 한국에서만 가능하고 중국과 일본에서는 불가능하다. 중국과 일본 음식은 숟가락이 필수적이지 않은 반면 한국 음식은 밥과 국을 먹을 때 꼭 숟가락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숟가락/수저 관련 표현은 한중일 중에 한국에만 있다. '헬조선'의 '헬'을 영어 hell(지옥)로 풀이하면 끔찍하지만 독일어 hell(밝은)로 풀이하면 희망이 있다. 핀란드어 korea는 '다채로운, 아름다운, 밝은' 등의 뜻을 가진 단어라는 것도 재미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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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나라의 말을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의 장점은 무엇일까요? 아무래도 정확하게 알 수 있다는 것이겠죠. 물론 해당나라의 문화와 관습을 잘 알 테구요. 이 책은 콩글리시에 대한 역사를 쭉 일별해 놨네요. 콩글리시 즉 브로큰 잉글리시의 일종이어서 부끄러웠던 한국식 영어가 실제로는 영어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독일어와 스페인어 프랑스어, 심지어 러시아어와도 관련이 있었네요. 콩글리시가 전혀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는 언어적 현상이네요. 콩글리시라고 하면 무조건 배척하고 질시하며 우리 스스로를 탓할 게 아니라 언어의 진입과정 나오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부분이네요. 언어뿐만 아니라 각종 영역을 두루 아우르는 해박한 지식에 벌어진 입을 다물수가 없게 만드네요. 특히 이 말이 와 닿네요. '번역가는 아는 낱말도 늘 뒤져보느 일종의 문한학자가 돼야겠다'. 그렇죠. 언어가 쓰인 맥락과 여카를 알아야 더 정확하고 아름다온 번역이 되겠죠. 이 저자가 강조하는 것차럼 우리말을 더 잘 알아야 한다는 건 기본이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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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노르웨이에 가기 전에 본 노르웨이 관련 여행 프로그램 중에 이 책의 저자 신견식 씨가 출연한 편을 본 적이 있는데, 그때 노르웨이의 풍경과 더불어 이 번역가가 보여준 엄청난 어학 능력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비교적 회화가 약하다고는 하지만 노르웨이어를 구사하고 어쩌다가 스페인 사람을 만나면 스페인어를 구사하고... 보통 사람은 아닐 것이라 짐작했고, 그래서 이 책 표지에서의 '언어괴물 신견식'이란 수식이 과장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책 본문을 봤을 땐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콩글리시란 기존에 있던 영어가 한국어나 한국 문화와 결합돼 탄생한 유사 영어로 실제로 영어가 국어인 사람은 알아들을 수 없어 콩글리시 사용을 지양해야 한다는 게 통념이곤 했다. 나 역시 그 생각에 크게 반대하지 않았는데 저자인 신견식 씨는 언어를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생각을 달리해보는 것은 어떠냐고, 아울러 콩글리시 또한 존중받을 만하다고 주장한다. 책의 내용들은 우리가 실제로 영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온전히 영어인지 살펴보거나 실제 영어와 쓰임이나 형태가 다른 단어들의 변천 과정, 그 과정에서 영어가 아닌 다른 여러 나라의 언어가 결합된 경우도 살펴본다. 이때, 막연히 콩글리시 얘기를 할 테니까 영어만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큰 오산이다. 불어, 독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헝가리어, 스웨덴어, 중국어, 일본어, 베트남어, 포르투갈어...... 온갖 언어가 다 언급돼 일일이 기억하고 옮겨적기 버거울 정도다. 저자는 쉽게 쓰려고 노력했던 것 같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전문적이라 책의 본문은 어느 순간부터 어쩔 수 없이 어렵게 다가왔다. 저자가 살펴본 온갖 예시는 우리 일상 속에서 충분히 마주친 단어들이라 반갑고 신기하긴 했지만 그 양이 너무 많아서 지레 질렸던 것 같다. 그리고 각각의 글들의 담론이 비슷한 감이 있어 비교 언어학 전공자가 아닌 이상 끝까지 흥미를 갖고 읽어가기에도 쉽지 않았다. 물론 저자의 한결같은 담론이 전문성에 기반했고 일리가 있으며 무엇보다 저자의 세상 모든 언어에 대한 사려가 깊은 자세가 여실히 전해져 그 담론 자체를 깎아내릴 생각은 전혀 없다. 저자의 주장은 한마디로 이런 것이다. 우리가 쓰는 한국어 속에서 일각을 차지하고 있는 한자는 원래는 중국의 언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한자는 중국의 한자와는 매우 다른데 우리는 이에 대해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솔직히 부끄럽다느니 뭐니 할 정도로 신경 쓰는 사람 자체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우리가 쓰는 영어는 무조건 변형이나 아종에 대해선 배척하려는 경향이 강한데 문제는 우리가 기준점으로 삼고 있는 영어가 영국이나 미국 내에서의 백인들이 구사하는 영어에 가깝다는 것이다. 영어야말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글로벌한 언어임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텐데 그렇다면 그만큼 여러 언어권의 사람들이 쓴다는 얘기니 백인이 쓰는 영어만이 아니라 각각의 영어 역시 존중받아야 하지 않을까? 물론 현지인과의 의사소통을 위해서라고 한다면 정석대로 배우고 구사하는 게 맞지만 이 책을 쓴 저자는 단순히 기존에 있는 언어가 아닌 그 나라의 문화에 맞춰 변모를 거듭하는 현상에서 엿볼 수 있는 감탄스럽고도 재밌는 지점에 대해서 주목해주길 바라며 열심히 글을 썼을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저자는 콩글리시로 대표되는 여러 유사 영어, 변형된 언어에 대해서도 인식을 달리하자는 취지에서 이 책을 집필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번역가가 쓴 책을 많이 읽지 못했는데, 모든 번역가가 신견식 씨 같은 태도로 언어를 다룬다면 참 바랄 나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번역한 다른 책들도 찾아 읽어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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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삶읽기 396 《콩글리시 찬가》 신견식 뿌리와이파리 2016.10.4. 일상은커녕 전문 영역에서도 과연 잘 쓸까 싶은 희한한 외래어가 국어사전에 꽤 많다. (209쪽) 국제적 의사소통을 너무 영어에만 맞추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봤으면 한다. (231쪽) 한국어사전은 용례가 너무 모자라고 사용 시기도 거의 표시해 두지 않는다. 조선시대 어휘나 돼야 옛말이라고 나올 뿐, 이를테면 20세기 초중반과 지금은 뜻이 달라진 말에 관해 구체적으로는 거의 알 수가 없다. (333쪽) 《콩글리시 찬가》(신견식, 뿌리와이파리, 2016)라는 책이름에서 엿볼 수 있듯, 한국사람이 어설피 들여왔지만 이래저래 퍼진 한국영어를 그냥그냥 쓰자고 하는 줄거리를 다룬 책이다. 이러면서 한국영어 말밑을 찬찬히 짚어서 알려주는 구실을 한다. 글쓴이는 번역을 꽤 하는구나 싶은데, 맞춤법이나 적기법 때문에 골치를 앓지 싶다. 한국은 국립국어원이 온누리 여러 말을 영어 틀에 가두려고 하니 번역을 할 적에 늘 애먹을 수밖에 없다. 네덜란드말을 배운 사람이라면 알 테지만 네덜란드에는 ‘반 고흐’가 없다. ‘환 호흐’가 있을 뿐이다. 한글로 적자면. ‘반 고흐’는 어디에서 뚝 떨어진 적기법일까? 한글이 엄청나게 훌륭한 글이라면 굳이 영어라는 틀에 갇혀서 온누리 여러 말을 적어야 할 까닭이 없다. 그리고 우리는 영어만 배워야 하지도 않는다. 한국말도 온누리 여러 말도 모두 제대로, 즐겁게, 똑똑히, 환하게, 곱게 배워서 나눌 수 있기를 빈다. 그나저나 ‘콩글리시를 그냥 쓰든 말든’ 한국사람이라면 한국말이나 한국 말씨를 더 깊고 넓으며 제대로 배워야지 싶다. 글을 쓰거나 옮기는 일을 한다면 더더욱 한국말부터 제대로 익힐 노릇 아닐까? 글쓴이는 이 대목에서 좀 무딘 듯하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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