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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에 출간된 유용주 시인의 첫번째 시집 『오늘의 운세』(문학마을)에서 시인의 가난했던 성장기와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는 고달픈 삶, 그 속에서 느낄 수밖에 없는 '궁핍만을 강요하는 이 사회의 구조, 체제'에 대한 불만, 자탄과 비꼼의 미학을 느낄 수 있었다면, 93년에 출간된 두번째 시집인 이 『가장 가벼운 짐』에서 시인은 세련된 깊이를 지향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시인의 직업은 이제 목수다. 그래서 나무는 이제 매일 손으로 만지는 시의 재료이다. 나는 나무를 소재로 이렇게 유용주처럼 눈물나는 시를 쓰는 시인을 본적이 없다. 하루 한편, 온몸으로 시를 쓰는, 일당 사만 오천원의 노동이 바로 이 시집의 진정한 시다. 그렇다고해서 이 시집이 80년대를 풍미하던, 집단의 저항의식을 결집시키는 류의 저항시라고 보기는 힘들다. 유용주의 시는 세상과의 싸움보다는, 세상과 화해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의 작업이라는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일생 동안 목수들이 져 나른 목재는,
삶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겨우 자기 키만한 나무를 짊어지는 것으로
그들의 노동은 싱겁게 끝나고 만다
숨이 끊어진 뒤에도 관을 짊어지고 가는 목수들,
어깨가 약간 뒤틀어진 사람들
ㅡ[가장 가벼운 짐] 부분
겨우 자기 키만한 나무를 짊어지는 것으로 생이 끝날 것을 안다는 것은, 삶의 덧없음에 대한 한탄일까. 아니, 그것보다는 오직 하루하루의 노동을 통해서만 자기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긍정할 수 있고 스스로 삶의 주체임을 자각하게 되는 가능성의 확보라고 보여진다. 그래서 시인은 가장 무거운 삶을 가장 가벼운 짐으로 기꺼이 껴안게 된다.
그러나 사실 이 시집은 2% 부족한게 사실이다. 시인도 그것을 알았기 때문일까, 첫번째 시집의 시 아홉 편을 재수록했다. 그 시 중 하나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시다.
이른 아침 산에 오르다보면
쓸쓸하게 꽂혀 있는 지상의 나무들
일생 동안 좁은 공간에서
단순한 동작을 되풀이하다가
슬프게 말라 죽는 나무들, 사람들
때가 되면 이파리를 달고 꽃을 피우고
때가 되면 가지를 떨어뜨리고 메말라 죽는
낯선 땅 속에 숙연히 꽂혀
눈과 비의 매를 맞는
빛의 칼날에 피 흘리는
바람의 고문을 견디어내는
고집불통의 슬픈 나무들, 사람들
ㅡ[새벽나무] 전문
난 놀랍게도 이 시를 읽으며 엉엉 울어버렸다. "일생동안 좁은 공간에서/ 단순한 동작을 되풀이하다가/ 슬프게 말라죽는 나무들, 사람들" 노동의 보람, 노동의 순결함, 노동의 성스러움. "단순한 동작"의 깊은 뜻. 노동자는 매 맞고 피 흘리고 고문당해도 때가 되면 이파리를 달고 꽃을 피우는 존재다. 그리고 때가 되면 가지를 떨어뜨리고 메말라 죽는 존재다. 그래서 고집불통의 나무는 슬프다. 눈물나는 노동 예찬시다.
오늘도 난 유용주의 시 속에서 가슴시린 행복을 느낀다.
[인상깊은구절] 못은 상처를 위한 가장 뚜렷한 파탄, 좋은 목수들 끈질기게 못질 계속한다 그리하여 못은 파탄을 두려워하지 않고 가까이 가려 하는 것에만 전력투신한다 모든 사랑은, 빛나는 상처의 못박힘들이다 ㅡ[못] 부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