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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바다' 하면 동해의 푸른 파도를 먼저 떠올리지만, 책을 펼치는 순간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풍요로운 보물을 등지고 살았는지 깨닫게 된다. 이 책은 단순히 관광지를 나열한 가이드북이 아니다. 저자의 발길이 닿은 서해의 쉰여섯 개 섬들은 저마다의 시간을 품고 숨 쉬는 살아있는 유기체로 다가온다. 특히 물때에 따라 길이 열리고 닫히는 서해 섬 특유의 리듬을 '기다림의 미학'으로 승화시킨 저자의 시선은 속도에 매몰된 현대인들에게 잠시 멈춰 설 용기를 준다. "섬은 단절된 공간이 아니라, 세상과의 소음을 잠시 끄고 나 자신에게 접속하기 위한 가장 완벽한 거리두기의 장소다." 이 문장은 섬 여행의 본질을 꿰뚫는다. 우리는 흔히 섬을 '고립된 곳'이라 생각하지만, 저자는 그 고립이 오히려 진정한 자유를 준다고 말한다. 배 시간에 몸을 맡겨야만 들어갈 수 있는 섬의 제약이, 역설적으로 우리를 일상의 강박에서 해방해준다는 통찰은 이 책을 관통하는 가장 아름다운 철학이다. "서해의 바다는 깊이가 아니라 넓이로 말한다. 썰물 뒤에 드러나는 광활한 갯벌은 수만 생명이 써 내려간 거대한 일기장과 같다." 동해의 바다가 수직적인 깊이로 압도한다면, 서해의 바다는 수평적인 넓이로 품어준다. 갯벌을 '생명의 일기장'이라 표현한 저자의 문장을 읽으며, 저는 서해의 흐릿한 물색이 탁함이 아닌 '풍요'였음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의 여행 습관에는 아주 큰 변화가 생겼다. 이전의 여행은 유명한 식당과 '인생 사진' 명소를 찾아다니며 도장을 찍듯 이동하는 강행군이었다. 여행을 다녀와도 몸은 늘 피곤했고, 기억에 남는 것은 카메라에 저장된 이미지뿐이었다. 책에서 소개된 홍성의 작은 섬 "죽도"를 목표로 삼고, 이번에는 오직 '섬의 시간'에만 집중해 보았다. 저자가 알려준 대로 배 시간과 물때를 미리 확인하고, 섬에 들어가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가졌다. 책에 실린 유려한 사진들을 이정표 삼아 걸으며, 갯벌 너머로 지는 붉은 낙조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유명한 곳을 다 봐야 한다"는 조바심을 내려놓자, 파도 소리와 갈매기 울음소리가 비로소 들리기 시작했다. 일상의 스트레스와 복잡한 고민이 썰물과 함께 씻겨 내려가는 듯한 경이로운 치유의 경험이었다.
"대한민국 100 섬 여행 : 서해편"은 배편 정보부터 섬 안에서의 이동 수단, 놓치지 말아야 할 풍경 포인트까지 저자의 꼼꼼한 취재가 빛을 발한다. 하지만 이 책이 진짜 훌륭한 이유는 그 친절함 속에 '바다를 향한 경외심'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도시의 소음에서 벗어나 나만의 숨구멍을 찾고 싶은 분들, 서해의 투박하지만 진실한 매력을 발견하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은 최고의 지도이자 친구가 되어줄 것이다. "서해는 멀지 않다. 다만 우리가 그곳을 보지 않았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