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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올지도 몰라 불 밝혀둔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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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을 생각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새의 이미지입니다. 세상에서 날개를 다친 뒤 모악산으로 들어가 외로움을 견디며 그리움을 시로 삭이는 작고 여린 새. 산문집 한 권을 읽었고 이런 저런 풍문을 들으며 그이의 홈페이지에도 들락거렸지만 시집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리고 이번 시집을 읽으며 「그 숲에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있다」에 나오는 ‘유년을 비상했던 새’와는 많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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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을 생각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새의 이미지입니다. 세상에서 날개를 다친 뒤 모악산으로 들어가 외로움을 견디며 그리움을 시로 삭이는 작고 여린 새. 산문집 한 권을 읽었고 이런 저런 풍문을 들으며 그이의 홈페이지에도 들락거렸지만 시집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리고 이번 시집을 읽으며 「그 숲에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있다」에 나오는 ‘유년을 비상했던 새’와는 많이 다른 작고 여린 새 이미지가 어떻게 왜 생긴 것인지 나 자신 궁금했지만 어쩌면 그것이 진짜 시인의 이미지를 잘 나타내는구나 생각했습니다. 시인이 모악산으로 들어간 이유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아름다운 사람이 떠나고 오랜’세월이 흘러도 ‘너는 떠나지 않’기에 ‘망각의 늪이라는 / 그 늪에 빠지고 싶어’(「아름다운 사람이 떠나고 오랜」) 모악산 작은 집으로 찾아든 게 아닌가 짐작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다른 ‘길이 없어서 가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세상의 흐르는 강물 바다로 / 바다에로 흐르기를 꿈꾸며 혹은 / 멈추며 달려갈’(「절망의 노래가 아니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득하던 사랑 더는 막막할 길 없을 때 / 산에 들었습니다’(「산숲을 내려가며」). 산에서 시인은 ‘봄날이라는 이름의 그대 기다리는 동안 눈가에 잔주름도 하나 둘 매달려’ 갈 만치 오랜 세월을 홀로 지냅니다. 혼자 밥하고 혼자 밥 먹으며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먹는 밥’의 쓸쓸함을 느끼고, 그러면 ‘누가 올지도 몰라 처마 끝에 불 걸어 밝혀둔 채 다시 눈을 뜨는 또 하루의 아침’(「산중일기」)을 맞습니다. ‘부는 바람처럼 길을 떠’(「먼 길에서 띄운 배」)났다가 집에 돌아와 ‘멀리 소식 없는 사람보다 아무도 없는 것보다’(「자동응답기」) 낫다 싶어 자동응답기에 녹음된 기계음을 듣습니다. 긴 세월 산에서 외로움과 그리움을 홀로 견디며 시인은 깨닫습니다. ‘그립고 그리운 것들, 산중의 삶도 세상사와 다름아니었습니다 관조의 눈을 더 들어 깊어지면 거기, 피어나는 꽃 한 송이 고요를 가르며 비상하는 산새 한 마리의 눈물나는 삶이 있었습니다 이 작은 작은 모두의 삶들이 모여 이루어진 산의 일상 - 떠나온 삶은 없구나’하는 마음입니다. ‘세상을 내려두고는 무엇도 나를 / 긴 늪의 잠에서 눈뜨게 하지 못하’리라는 것과 ‘어느 것 하나 눈물나지 않은 것 없’(「가슴에 병이 깊으면」)다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깨달음입니다. 취나물국 늦은 취나물 한 움큼 뜯어다 된장국 끓였다. 아흐 소태, 내뱉으려다 이런, 너 세상의 쓴맛 아직 당당 멀었구나. 입에 넣고 다시금 새겨 빈 배에 넣으니 어금니 깊이 배어나는 아련한 곰취의 향기 아, 나 살아오며 두 번 열 번 들여다보지 못하고 얼마나 잘못 저질렀을까. 두렵다 삶이 다하는 날. 그때 또 무엇으로 아프게 날 치려나. 자동응답기 마당 앞 감나무에는 빠알간 감들이 꽃처럼 매달려 눈물처럼 지고 남은 몇 잎새들과 함께 흔들립니다 술 생각, 소주 한잔 하러 나갑니다. 잠시 후 삐 소리가 난 후 용건이나 연락처를 말씀하시면 돌아오는 대로 연락 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뚜뚜뚜뚜 삐 ― 여보세요 철커덕 뚜뚜뚜뚜 삐 시 쓰냐 엿먹어라 끊어 뚜뚜뚜뚜 삐 ― 산중에 어울리지 않는다지만 기계음이 싫다지만 깊은 밤 돌아와 듣는다 또 듣는다 적막보다 낫다 멀리 소식 없는 사람보다 아무도 없는 것보다…….
YES마니아 : 골드 g*******g 2004.09.0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빛나는 보석으로 성숙한 시편
"빛나는 보석으로 성숙한 시편" 내용보기
박남준의 이번 시집은 어른이 되었다는 성장 보고서이다. 그러나 그 흔한 통과의례적인 답습을 하지는 않았다. 이 시집 이전까지 박남준의 시는 동요적인 색채가 예사로 묻어날 만큼 '착한' 시인이었다. 고운 꽃잎을 따다 모은 마음결에 언어를 수놓는 그러한 시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길은 여러 길이 있다. 박남준은 그 수많은 길 중에 자기 스스로를 가만히 응시하는 내면적인 시선을 택
"빛나는 보석으로 성숙한 시편" 내용보기
박남준의 이번 시집은 어른이 되었다는 성장 보고서이다. 그러나 그 흔한 통과의례적인 답습을 하지는 않았다. 이 시집 이전까지 박남준의 시는 동요적인 색채가 예사로 묻어날 만큼 '착한' 시인이었다. 고운 꽃잎을 따다 모은 마음결에 언어를 수놓는 그러한 시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길은 여러 길이 있다. 박남준은 그 수많은 길 중에 자기 스스로를 가만히 응시하는 내면적인 시선을 택했다. 시인은 세계를 가슴 안으로 끌어안는 자이다. 이 점을 상기한면 박남준의 선택은 현명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시인은 자신을 다스릴 줄 알면 세계를 마음대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내면 응시의 열매가 얼마나 영글었는가 하는 점일 것인데, 표제작 <그 숲에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있다>는 그에 값하는, 아니 너무 영롱히 빛나는 수작이다.

[인상깊은구절]
그 숲에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있다. 나 오래 침엽의 숲에 있었다. 건드리기만 해도 감각을 곤두세운 숲의 긴장이 비명을 지르며 전해오고는 했지. 욕망이 다한 폐허를 택해 숲의 입구에 무릎 꿇고 엎드렸던 시절을 생각한다. 한때 나의 유년을 비상했던 새는 아직 멀리 묻어둘 수 없어서 가슴 어디께의 빈 무덤으로 잊지 않았는데 숲을 헤매는 동안 지상의 슬픈 언어들과 함께 잔인한 비밀은 늘어만 갔지. 우울한 시간이 일상을 차지했으므로 빛으로 나아갔던 옛날을 스스로 가두었으므로 이끼들은, 숨어 살아가는 것이라 여겼다.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포자의 눈물 같은 습막을 두르고 숲의 어둠을 떠다니고 있다.
w*****6 2001.08.0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