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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응칠은 안중근의 어릴 때의 이름(아명)이다. 간략한 태어난 일들부터 우리의 안중근이 어떠한 자랑스러운 일들을 한 것인지 우리는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바로 잡을 때가 되었다. 안중근 의사가 어떻게 독립운동가 이면서 독실한 신자이기도 한 이분의 삶을 누구 제대로 아는 이는 없다. 1905년 12월 상해로부터 아버지의 부고 소식과 함께 조선의 을사늑약 소식을 듣게 되면서 절망을 하게 된다. 돌아온 안중근은 통곡을 하면서 울다가 기절을 한다. 상례를 마친 안중근은 술을 끓기로 다짐을 하면서 조국이 독립을 하는 그날까지 마시지 않을 것이라고 가족 앞에서 약속을 한다.두 곳의 학교도 설립을 한다. 이토히로부미를 죽일 계획을 짜면서 결의를 다지는 약지를 자르면서 피를 모아서 국기에 -대한독립-이란 글을 쓰며 결의를 다졌다. 그는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 하면서 한마디 던진다. korea uro라고 외친다. ![]() 그러나 안타깝게도 안중근 의사의 후손은 그렇게 다른 이보다 편안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하진 않는다. 거의 대부분이 해외에 거주를 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일본에서는 여전히 흉악한 살인자로 여겨서 간혹가다 일본 정치에서도 폄하 하기도하며, 예전의 일들을 왜곡으로 하면서 우리의 영웅을 오히려 범죄자로 끌어 내리려고 있다. 감옥에 있을 당시 자신의 사상을 정리한 글이 있다고 한다. 그 글이 담겨있는 책이 바로<동양평화론>이라 한다. 이토의 처단과 조선의 독립을 기다리다가 수수방관 동양의 전체가 다 타 들어가는 모습이 눈 뜨고 못 볼 것처럼 동아시아와 세계 평화를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쓴 글이라 할 수 있는데 아직 완성이 될 수 없었다. 사형 집행이 빠르게 이루어진 바람에 완성이 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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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안중근’이라는 인물을 모를 수 없을 것이다. 약 50년이라는 세월 동안 나라를 빼앗겨 일제에 의해 온갖 설움을 겪었던 우리나라와 국민. 그 중심에 안중근이 있었다. 얼마 전 그의 일대기를 담은 뮤지컬 영화를 보았다. 제목은 “영웅”. 안중근의 일생을 잘 다루고 있어 재밌게 보기도 했지만, 특히 ost가 좋아 평소에도 즐겨 듣게 되었다.
그러던 중 ‘안중근 자서전’이라는 책이 출간되었고, 내 이목을 사로잡았다.
그가 ‘당시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았던 것인지’, 그가 ‘어떤 이유 때문에 나라를 위해 몸을 던진 것인지’ 알고 싶었다. 책은 안중근이 투옥되었을 때 직접 서술한 “안응칠 역사”와 “동양평화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응칠 역사”는 그가 살아오면서 겪은 일들을 담담한 어조로 서술하고 있다. 특히 영화에서는 잘 알 수 없었던 그의 심정을 엿볼 수 있어 좋았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지만 부적절한 신부의 언행에 저항하는 모습에서는 평소 그가 강인한 성품을 가지고 소신있게 행동했음을 알 수 있다. 또 의병을 일으켜 참모중장으로 전장에 뛰어들었지만, 전쟁에서 패배하고 소속 군인들이 흩어져 씁쓸한 마음을 내비치는 곳도 있었다.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뒤 투옥되었을 때, 일본인이지만 자신에게 후의를 베푼 사람들이 있었음을 밝히고, 감동했던 사실도 기록한다. 특히 개인적으로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은 뤼순 감옥에서 검찰관의 심문 과정 중 이토를 살해한 이유에 대해 밝힌 것이다. ‘일제와 이토가 저지른 15개의 죄목’을 들며, 자신의 입장을 밝힌다. 이 부분은 영화 ‘영웅’ ost ‘누가 죄인인가’의 모티프가 된 듯하다.
“동양평화론”은 그가 사형을 선고받은 뒤 쓴 원고이다. 원고 작성을 위해 형 집행을 늦춰달라고 요청했고, 약속을 받아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끝내 마무리 짓지는 못했다고 한다. 이 글에서는 안중근이 당시 국제 정세를 잘 이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일제의 만행이 동양 국가의 평화를 해친다는 것도 논리적으로 서술한다.
“안중근 자서전”은 어렵지 않은 문체로, 또 그리 길지 않은 분량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단순히 ‘안중근 의사’라고만 알고 있었지만,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진 인물이었으며, 얼마나 국가를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그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책이기 때문에,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보아야 한다고 본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리뷰어클럽리뷰 #더스토리 #안중근자서전 #안응칠 #이토히로부미 #동양평화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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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광복절을 맞아 일제강점기에 나라의 독립을 위해 희생한 독립투사분들의 희생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수많은 독립운동가분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안중근 의사는 온국민이 존경하고 사랑하는 인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인데요. 영화나 뮤지컬, 책을 통해 안중근 의사를 만나 보았지만 그가 직접 쓴 자서전 만큼 안중근 의사의 생각을 오롯이 알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싶은데요. 이번에 더스토리에서 하얼빈 의거 115주년 기념 특별판으로 안중근 자서전이 출간되었는데, 동양평화론이 함께 수록되어있었고, 저는 처음 그의 자서전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1879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안중근 의사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였다고 해요. 유독 활쏘기를 즐겨 하였고 열여섯 나이에 김아려와 결혼하였으며,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낳았습니다. 열일곱 살에는 천주교에 입교하여 세레를 받고 도마라는 세례명을 받았지요. 일제강점기 일본의 만행에 맞서 독립운동을 하였고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세워 미래의 인재를 육성하는 데에도 힘을 기울였습니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총으로 쏘아 사살하였고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한 죄로 뤼순 감옥에서 갇혀 지내는 동안 자서전 안응칠 역사를 집필하였고, 1910년 3월 26일 서른두 해의 짧고도 치열했던 삶을 마감합니다. 안중근 자서전인 안응칠 역사는 1909년 12월 13일 음력 11월 1일 쓰기 시작하였는데 1879년 기묘년 7월 16일 대한국 황해도 해주부 수양산 아래 한 남자가 태어났으니 성은 안이요 이름은 중근이며 자는 응칠입니다. 성격이 경솔하고 급한 편이라 이름을 중근이라 하고, 가슴과 배에 일곱 개의 검은 점이 있어 자를 응칠이라 하였다고 하지요. 안응칠의 아버지는 문재가 뛰어났었다고 하는데요. 중년에는 과거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으며, 조씨 부인을 배필로 맞아 첫째가 안중근, 둘째가 안정근, 셋째가 안공근까지 삼남 일녀를 낳았습니다. 이후 경성에서 머물고 있을 때 갑신정변에 엮어 몸을 피신하여 고향으로 돌아와 숨어 살다 어느날 가산을 팔고 재산을 정리하고는 식솔들을 이끌고 산 좋고 물 좋은 황해도 신천군으로 이사를 갔다고 하지요. 안응칠은 6~7세 정도에 조부모님의 사랑으로 길러지다 한문학교에 들어가 8~9년 간 보통 학문을 익혔고 14세 무렵 조부가 돌아가시자 슬퍼하다 반 년간 병을 앓고 겨우 살아났고 어릴적 부터 성품이 사냥을 좋아하여 항상 사냥꾼을 따라 산과 들로 수렵을 다녔다고 해요. 16세에는 김씨와 결혼을 하여 이남 일녀는 낳았고 동학당과의 전투에서 공을 세웁니다. 이후 응칠의 아버지가 천주교당에 머물면서 천주교에 입교하였고 이후 가족 모두가 함께 천주교를 신봉하게 되었고 입교하여 프랑스인 선교사인 홍요셉 신부에게 영세를 받고 도마라는 세례명을 받게 됩니다. 안응칠은 이웃의 억울한 사연을 돕기도 하는 등 의로운 면을 언제가 갖고 있었고 이후 자서전의 내용을 보면 조선인의 설움을 글 곳곳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어요. 이후 세월이 지나 러일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고 그 결과 시노모세키조약을 통해 일본은 요동반도의 영유권을 확보하였으며 아시아의 주도권을 차지함으로써 이토 히로부미 주도로 을사늑약을 체결하게 됩니다. 이후 아버지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시고 상례를 끝마친 후 그는 대한 독립의 날까지 술을 끊기고 맹세하며 큰 뜻을 세우게 됩니다. 이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결의를 다지며 의병을 일으키지만 일본군과의 싸움에서 패하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동지 12명과 함께 왼손 약지를 끊어 그 피로 태극기 앞면에다 '대한 독립' 네 글자를 크게 쓴 뒤 다 함게 대한 독립 만세를 세 번 외치며 독립을 맹세하고 각자 흩어져 각지를 다니며 교육을 장려하고 인민의 뜻을 모으고 신문을 보급하는 데 힘을 씁니다. 이후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는데 이토 히로부미가 그곳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거사를 준비한 뒤 하얼빈 역에서 그를 저격합니다. 안중근 자서전에는 히토 히로부미를 저격할 당시의 상황들이 묘사되어 있는데 안중근 의사의 생각을 그대로 느낄 수 있어서 그 부분이 저는 매우 긴장이 되면서도 어떤 마음으로 그자를 쏘았는지 저도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었어요. 이후 뤼순 감옥에 수감되어 일제의 억지 재판의 과정들을 보면서 정말 마음이 답답하고 속 부터 끓어 오르는 어떤 감정이 올라오더라고요. 그가 밝힌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한 까닭을 15가지로 일목요연하게 이야기하는데 그것을 말하는 안중근 의사의 단호하면서도 힘이 느껴지는 대답들에 울컥한 감정이 들었어요. 안중근 의사의 대답을 다 들은 검찰관이 그에게 "가히 동양의 의사라 할 만하다"며 놀라움을 표현하는데 직접 그의 대답을 듣고 있다면 누구라도 이런 말이 나올 수 밖에 없지 않나 싶더라고요. 그렇지만 결국 그는 사형을 선고받게 되고 동양평화론을 저술을 위해 형 집행을 한 달여만 늦춰 달라 요청하지만 결국 안중근의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동양평화론은 서문과 본문 일부만이 저술된 채 미완성으로 남게 됩니다. 그리고 이내 그의 마지막 자서전의 끝이 왔는데요. 홍 신부가 감옥에 와 미사 성제 대례를 드리고 홍신부를 배웅하고 자서전의 마지막은 1910년 음력 2월 초5일, 양력 3월 15일 까지로 끝이 납니다. 이 마지막 부분을 읽는데 너무 마음이 울컥하더라고요. 이후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유언이 담겨있는데 국권이 회복되거든 자신의 유골을 고국으로 반장해달라는 유언을 지키지 못한 것이 너무너무 마음이 아팠고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 오면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라는 안중근 의사의 말에 끓어 오르는 어떤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어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이 자유와 평화는 바로 이러한 독립투사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누릴 수 있는 것인데요. 하지만 요즘 우리나라의 상황을 저 하늘에서 안중근 의사가 보시면 어떤 생각을 하실까 생각하니 정말 통탄하지 않을 수가 없고요. 이렇게 나라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친 분들의 희생을 생각해서라도 더이상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같은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역사를 제대로 알고 배우며 그들의 값진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더불어 광복절을 맞아 안중근 자서전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ㅣ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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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자서전
1909년 봄, 안중근은 동지 11명과 함께 최채형의 집에서 왼손 무명지 한 마디를 자른다. 태극기에 그 피로 대한독립 네 글자를 쓰고 단지 동맹을 결성했다.
이토 히로부미와 이완용을 처단하자
1909년 10월 26일 오전 만주 하얼빈역에 홀로 선 안중근 의사 그는 하얼빈역에서 아시아 침략의 원흉이자 조선통감부 총독인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였다. 체포된 뒤에도 재판정에서 고개를 숙이지 않은 안중근은 동양의 평화를 파괴하는 이토 히로부미의 죄를 낱낱이 밝히고, 자신이 대한 의군의 참모 중장으로서 전쟁에 참여하여 정당하게 침략자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다고 말했다. 이토, 일본에서는 일본의 근대화를 이끈 애국자라고 한다. 그를 하얼빈에서 총을 쏘아 죽인 안중근 의사는 우리의 영웅이다. 이렇게 나라 대 나라로 보면 우리의 원수는 저들의 애국 영웅이 되고, 반대로 우리의 영웅은 저들에게는 테러 범죄자가 된다. 안중근은 “한국의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고종황제를 폐위시킨 죄, 무고한 한국인들을 학살한 죄 등등”의 15가지의 죄를 들어 러시아의 하얼빈에서 이토를 사살한다. 하지만 그 또한 그 자리에서 바로 체포되어 그날 밤 일본 총영사관에서 최조를 받고, 뒤에 뤼순 감옥에 수감된다. 안중근은 뤼순 감옥에서 이토 히로부미가 저지른 죄목 15가지를 조목조목 따지며 대한의 자주권과 재산권의 막중한 국권을 짓밟은 것을 질타했다. 그리고 이듬해 3월 뤼순감옥에서 순국하게 된다. 도마, 한자로 표기할 때는 다묵(多?)인데, 영어 세레명 ‘토마스’로 조선 사람들이 ‘도마’라고 부른데서 유래되었다. 도마 안중근이 간 길은 정말 험하고 먼 길이었으며, 그 누구도 가려하지 않는 길이었다. 그는 얼마든지 편하고 안락한 삶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망국의 조선에서 매국노들과는 다르게 안락한 삶을 거부했고, 포기하며, 오직 조선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온 몸을 불살랐다. 중국, 일본, 러시아, 불란스, 미국 등 열강의 틈바구니 속에서 조선은 안팎으로 무너지고 파멸되어 가고 있었다. 대한제국 왕실의 존재는 유명무실 했고, 동서양 열강들의 의해 백성들의 삶은 점점 피폐해져 갔다. 김광석의 “부치지 않는 편지”란 노래 가사말 중에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란 대목이 있는데, 이 가사를 대할때면 나라를 위해 숭고한 목숨을 바친 거룩한 인물들이 생각난다. 안중근 선생도 그 가운데 한 분이다. 안중근 선생은 강직했고, 정의로웠으며, 대한제국에도 이처럼 의로운 사나이가 있음을 세계만방에 당당히 보여주었다. 그는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고 나고 뤼순 감옥에 갇혀 일본에 의해 재판을 받고 테러리스트란 죄명으로 사형을 당했다. 그가 만약 당시 일본보다 강한 나라의 군인이었다면, 과연 일본이 그를 재판하고 사형시킬 수 있었을까? 그의 억울하면서도 안타까운 죽음은 힘없는 나라, 약한 나라 백성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본 안중근은 불꽃이었다. 그의 삶과 행적을 보면서 나는 그는 왜 그렇게 자신을 산화했을까? 그가 조선이라는 나라에, 아니 대한제국이라는 나라에서 받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나라를 위해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했다. 대한제국에서 그는 가장 뜨거운 사람이었다. 안중근을 보면서 미스터 션샤인의 이방인 유진초이가 연상되기도 했고, 양복을 입고 총을 든 고애신이 연상되기도 했다.
“나도 그렇소. 나도 꽃으로 살고 있소. 다만 나는 불꽃이오. 그렇게 환하게 뜨거웠다가 지려 하오. 불꽃으로. 죽는 것은 두려우나 난 그리 선택했소.”
희안하게도 나는 드라마 속 고애신의 이 말을 들으면서 도마 안중근이 생각났다. 드라마 속 남장한 고애신은 마치 안중근 같았다. 진정 삶다운 삶이 무엇인지, 뜨겁게 사는 삶이 무엇인지 ‘불꽃’이라는 한 단어를 통해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죽거든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조국이 해방되는 날 나를 고국으로 반장해다오.”라는 안중근 선생의 마지막 유언이 자꾸만 귓가에 맴도는 것 같다. 선생이 순국 하신 지 언 10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건만, 일본은 선생의 시신을 어떻게 했는지 지금까지도 감추고 있고, 우리나라는 이를 찾을 생각조차도 하고 있지 않는 것 같아 애통하다. 안중근 의사는 대한 독립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분이셨고, 대한의 살아있는 자존심이었다. 그런데 우린 그분의 시선이 어디에 묻혔고,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감감무소식이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죽음을 눈 앞에 두고도 당당한 영웅, 불꽃같은 삶을 살다가 독립군 안중근의 삶과 행적이 궁금하다면, <안중근 자서전>을 통해 그를 만나 볼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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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24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1879년 9월 2일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안중근은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총으로 사살하였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남녀노소 불문 안중근의 그 이름 석자를 모르는 이가 없으리라.... 그에게 조국이란 무엇이고 어떤 마음이면 나라를 되찾기 위해 한 목숨 받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지. 안중근의 이야기를 직접 보고 듣고 느껴보고 싶었다. 안중근에 관한 책, 영화, 다큐 등 수많은 이야기가 있고 그가 살아낸 시대의 우리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서른두 해의 짧고도 치열했던 삶을 마감한 열사의 생애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 대한 독립을 꿈꾸고! 죽어서도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마땅이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라 했던 그의 소망은 일시적으로 이루어진듯 하였으나 우리는 여전히 안중근의 뜻을 제대로 이어가고 있는지 의문이다. '우리나라'라고 부를 수 있는 나의 조국이 있고 내 나라 말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지 우리가 깨닫고 있는가? 안중근의 자서전을 보면서 벅차오르는 감동과 또 죄송함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 나라를 팔아 먹지 못해 안달이 나있었던 친일부역 세력들이 시퍼렇게 눈을 뜨고 살아가던 세상 해외에서 풍찬노숙하며 자유 독립을 회복하면 죽어도 한이 없겠노라고 이천만 형제자매에게 전하는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 지금 2024년의 대한민국이 주권을 갖고 있는 독립국가로 존재할 수 있었던 역사에 대해 우리는 빚을 지고 있다. 잊어서도 안되고 잊을 수도 없다. 그들의 희생과 조국에 대한 사랑으로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얻을 수 있었다. 사랑하는 아들과 부인 ,부모님을 조국에 두고 이토히로부미를 처단하러 가는 여정을 따라가는 동안 가슴 먹먹함과 슬픔, 분노를 멈출 수 없었다. 안중근 자서전... 두껍지 않다. 꼭 읽어보자!! '사나이 뜻 품고 해외로 나왔으나 뜻대로 일 되지 않으니 처신키 어려워라. 바라건대 동포여 흐르는 피에 맹세하고 세상에 의리 없는 귀신은 되지 마시게... #리뷰어클럽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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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시대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고 또 존경하는 인물이 있다면 '안중근 의사'였다. 그 이유는 '동양 평화론'에 있다. 대부분 독립투사들은 식민지가 된 조선의 상황을 타파하기 위한 대책들로만 바빴지만, 안중근 의사는 동양 평화론을 외치며 청, 일본, 조선이 힘을 합쳐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 사상에 맞서야 한다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외쳤기 때문이다. 사실 나도 동양평화론을 원래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고 대학교 때 남산의 안중근 의사 박물관에 가서야 알게 되었다. 당시 유럽에서 동양인 차별이 극성을 부리던 때에 그 문제가 개인적으로 최대 관심사기도 했던 것이 한몫했을 것이다. 모쪼록 그 이후로 동양의 단합이라는 관점이 좋아진 이후로는 가장 존경하는 위인이자 영웅이 되었다. 그런 와중에 하얼빈 의거 115주년 기념 특별판으로 <안중근 자서전>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양장으로 되어있는 이 책을 운 좋게도 Yes24 리뷰어 클럽 서평단으로 임명되어 다른 분들보다 먼저 읽고 소감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를 담고 있는 이 자서전은 뤼순 감옥에서 직접 쓰신 것이다. 동양 평화론은 사형 집행일자를 미뤄달라는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며 서문까지만 남아 미완성이다. 그럼에도 남겨진 부분 만큼 이 곳에 첨부되어 있어 그 의미가 깊다. 살아온 환경이 지금과는 달랐기에 좋게 말하면 인간적이고 또 나쁘게 말하자면 굉장히 보수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어려서부터 의병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등 강단이 있고, 천주교라는 종교를 가지고 프랑스어를 공부하였으나 조선인을 하대하는 프랑스 신부의 태도에 그 배움을 그만둔 것 또한 인상 깊었다. 단순히 동양평화론이라고 하면 좀 뜬구름 잡는다고 생각하거나 탁상공론만 펼치는 유약한 사나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목표한 바를 달성하기 위해 행동하는 사업체를 만들고 인수하는 개인적인 발자취들을 마주한다면 그것이 편견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비록 나는 종교가 없지만 그가 당시 천주교 권면을 하던 긴 글을 읽으며 굉장히 달변가라고 느꼈다. '만일 사람들이 천주님의 천당과 지옥을 보지 못했다 하여 그 존재를 믿지 않는다면 유복자가 그 아비를 보지 못했다 하여 아비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것과 무엇이 다르며, 소경이 하늘을 보지 못했다 하여 하늘에 해가 있는 사실을 믿지 않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소.'로 시작하는 긴 권면의 대화 장면 또한 그럼으로 배타적으로 읽기보다는 어떤 신념을 가지고 삶에 임하였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과연 스스로 정립할 수 있는 인생의 가치관이나 신념이 있는가 되돌아보며 반성하기도 하였다. 더운 주말에 에어컨을 켜고, 편한 의자에 앉아 블로그에 소감 한 줄 편하게 쓸 수 있게 도와주신 안중근 의사님께 존경을 담아 이 서평을 마친다. 무엇이 옳고 그르다는 관점에서 이 책을 읽기보다는, 한 사나이가 태어나 어떤 신념을 가지고 오직 조국을 위하여 목숨까지 바친 것인지를 유념하며 읽기를 추천한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리뷰어클럽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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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의 본명은 안응칠이다. 1909년 10월 26일 그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다. 이후 뤼순 감옥에 수감된 후 옥중에서 탈고한 자서전이다. 내용은 간단하다. 어린시절, 가족, 청년시절, 종교(그의 종교는 천주교였다), 구국활동, 의병활동, 그리고 이토 히로부미 저격에 이르기까지 그의 일대기를 짧고 굵은 문장들로 서술한다. 또한 수감 이후 기록과 공판과정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이 책 마지막 부분은 그가 저술하다만 동양평화론이 실려 있다. 저물어 가는 국가를 걱정하는 그의 생각들, 더 나은 조국으로 가기 위한 젊은 안중근의 고민들을 엿볼 수 있다. 안중근 의사가 생각하는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였을까? 책의 내용은 짧지만 한 시대를 짧지만 굵게 마감했던 청년 안중근이 주는 메시지는 강하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리뷰어클럽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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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영웅 도마 안중근 의사. 황해도 해주부 광석동에서 1879년 9월 2일에 부친 안태훈, 모친 조 마리아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천주교 신자로 세례명은 도마(토마스)이다. 삼흥학교 설립, 돈의 학교 인수하여 경영(1906) 1909년 2월 15일 일심회 발기 3월 2일 김기용 등 11인과 단지 동맹 결성 10월 19일 이토의 만주 방면 시찰 소식을 들음. 10월 20일 우덕순과 이토 처단 계획 합의 10월 26일 안중근, 7시경 하얼빈 역에 도착. 이토 9시 15분에 열차에서 하차, 9시 30분 이토에게 3발 발사하여 즉석에서 처단하고 수행원에게 3발을 발사하여 부상을 입힘. 러시아 군인이 덮쳤을 때 "코레아 우라!"를 세 번 외쳤다. 이토는 10시에 절명함. 우덕순, 조도선도 체포당함. 10월 30일 미조부치 검사 1회 심문 1910년 2월 7일 1회 공판 2월 14일 제6회 공판, 안중근 사형 언도. 3월 15일 안중근, <안응칠 역사>를 탈고. 3월 24일 안중근, 유서 6통을 작성. 3월 26일 안중근, 동양 평화를 유언으로 남기고 뤼순 감옥에서 순국함. 공동묘지에 묻힘. 안정근, 안공근이 안중근 유해 인도를 요구하나 감옥 당국으로부터 거부당함. 1946년 3월 26일 안중근 의사 순국 37주년 기념식이 서울운동장에서 10만 군중이 모인 가운데 거행. ![]()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뒤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모두 각각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 된 의무를 다하며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일러 다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유언- # 일단 책은 글자가 커서 읽기 편했고, 180도 펼쳐져서 너무 편하게 읽었다. 서평을 신청한 이유는 안중근 의사가 독립운동을 위해 힘쓰고, 우리 민족의 원수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것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다 알겠지만, 어린 시절이나, 이토 저격 때 어떻게 거사가 거행된 건지, 뤼순 감옥에서 어떻게 돌아가신 건지, 더 자세히 알고 싶고, 동양평화론에 대해서도 알고 싶었다. 평소 안중근 의사에 대해 독립운동가, 영웅으로만 알고 있었지. 어떻게 어디서 태어난 사람이고, 어떤 일을 했었는지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어린 나이에 학교를 세우고 가리키며. 가르침에 힘썼고, 각지를 돌며 연설하고 사람들을 설득하고 모아진 사람들로 의병을 일으키고, 몇 백 안되는 사람들과 이번에 안되면 다음다음도 안되면 또 다음, 내 대에서 안되면 자식 대에서 계속 이어질 거라는 의지. 젊은 나이에 조국에 대한 충성심과 애국심이 저리 대단할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12인의 단지 동맹을 맺고, 약지를 끊어내며 굳게 다짐하고, 결국엔 이토를 처단했다. 일본은 살인자라 칭하겠지만. 우리에겐 영웅이다. 안중근 의사의 말대로 뭐를 잘못했단 말인가? 우리나라에 한 짓에 비하면 이토 하나로 약한 거 같은데 말이다. 인상 깊었던 부분은 안중근 의사가 나는 중대한 죄인이다. 내게 죄가 있는 게 아니라 어질고 약한 한국 인민이라서라는 말이 가슴에 남는다. 지금이나 그때나 나라가 힘이 약하면 그럴 수밖에 없다. 그때 우리나라가 식민지가 되지 않고 힘이 있었더라면 지금은 달라졌지 않았을까. 사형선고받은 것도 일사천리에 진행되고, 일본 재판장, 일본 검사, 일본 변호사, 일본 통역관 말도 안 되는 재판. 자기 나라의 영웅시 했던 이토를 처단했다는 이유로 부당한 재판을 받고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안중근 의사. 국권이 회복되면 고국으로 반장 해달라던 안중근 의사의 유언. 지금까지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시고, 홀로 타지에서 계실 생각을 하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백 년이 지나도록 못 돌아오고 있으니 천국에서 얼마나 비통하실까. 안타깝다. 동양평화론이 미완성이라는 것이. 몇 달이고 시간을 준다더니. 역시 일본이 약속을 지킬 리가 없지. 말도 안 되는 재판을 할 때부터 알았으니까. 읽으면서 또 한 번 느끼지만, 일본은 예전부터 우리나라에 대한 열등감, 질투 그런 게 있는 거 같다. 35년을 식민지 삼아 남의 나라 재산 빼앗고, 저들이 저만큼 사는데 우리나라에서 빼앗은 것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아직까지도 제대로 된 사과도 하지 않고, 우리 늘 미개한 종족이라고 무시하고 있으니. 내 개인적 생각이지만, 요즘 sns 보면 일본 여행 가는 사람이 많이 보인다. 나는 내 나라를 사랑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역사를 알고도 그 나라 가서 돈을 쓰고 싶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몇 년 전 우리나라 사람이 일본 갔다가 무시당했다는 기사를 본거 같다. 그러고도 가고 싶을까? 그러고도 가니 무시당하는 거다. 우리나라에도 예쁜 곳 많다. 아니 예쁜 다른 나라도 많다. 왜 하필 원수의 나라에 가서 그런 취급을 받는지. 이해할 수 없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는 없다고 한다. 그런 일이 또 되풀이되지 말라는 법이 있나? 독도를 자기 땅이라 우기고. 예전이나 지금이나 힘없이 지켜만 보고 있는 나라님들. 우리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우시고, 지금의 우리를 이만큼 살게 만들어주신 위대한 영웅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 위인들의 피와 눈물과 헌신을. 읽는 내내 가슴이 아파서 자꾸 눈물이 났다. 이 책은 안중근 의사의 어릴 적 이야기와 그가 나라를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싸웠는지. 의병을 일으키기 위해 사람들을 설득했는지에 대한 과정과 나라를 잃은 슬픔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고, 동양평화론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들. 미완성이라는 것이 너무 아까울 뿐이다. 분명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을 위대한 책이 됐을 텐데. 서문만 읽어도 평화에 대한 마음이 전해져 마음이 아팠다. 우리는 역사를 잊지 않아야 하고, 되풀이되지 말아야 하며, 우리를 희생하신 영웅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어른들도 아이들도 꼭 한 번 두 번 읽어봤으면 좋겠다. ![]() 'YES24 리뷰어 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리뷰어클럽리뷰 |